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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1 이제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은 모두 첫번째, 즉 철학적·물리학적 전통에 속하는 이론들이었다.

다만 마지막으로 살펴본 스토아학파의 감각론에서는 어렴풋하게나마 성격이 다른 나머지 두 모델, 즉 수학적·의학적 모델에서 비롯된 영향을 볼 수 있다.

 시각론의 공리들   (좌) 에우클레이데스, (우)  『기하학 원론』 라틴어 번역본의 한 페이지시각론의 수학적 모델을 대표하는 것은 에우클레이데스Eukleides, 유클리드 BC c.300다.

『기하학 원론』(Stocheia)의 저자인 그는 비슷한 시기에 『광학』(Optica)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학자가 광학에 관한 책을 쓴다는 것이 당시에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Physica)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광학은 수학적 선들을 연구하되, 그것들을 수학적 선이 아니라 물리적 선으로 다룬다.

” 즉 관념적 공간에만 머무는 일반기하학을 현실의 물리적 공간에 옮겨놓은 것이 바로 광학이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광학을 기하학의 한 분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에우클레이데스의 『광학』은 시각에 대한 역사에 등장한 최초의 기계적 설명으로, 훗날 이는 르네상스 원근법의 토대가 된다.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

1472가 그의 『회화론』(De Pictura)에서 소묘와 원근법의 기하학적 기초로 원용한 것도 에우클레이데스의 『광학』이었다.

이 책에서 에우클레이데스는 시각론의 물리적·생리적 측면은 무시한 채 논의를 오직 기하학적으로 기술될 수 있는 것에 한정한다.

방법론은 『기하학 원론』에 사용된 것과 다르지 않다.

먼저 그는 공리의 역할을 하는 일곱가지 ‘요청’ 혹은 ‘정의’를 제시하고, 거기서 모두 58개의 정리를 연역해낸다.

일곱가지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눈에서 나와 직진하는 광선이 끝없이 뻗어나간다.

2. 일군의 시각 광선들이 눈을 꼭짓점으로, 대상의 표면을 밑으로 하는 원뿔을 이룬다.

3. 시각 광선이 닿는 대상은 보이고, 시각광선이 닿지 않는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

4. 더 큰 각도로 보이는 대상들은 커 보이고, 더 작은 각도로 보이는 대상들은 작아 보이며, 같은 각도로 보이는 대상들은 크기가 같아 보인다.

5. 더 높은 시각 광선에 의해 보이는 대상은 높아 보이고, 더 낮은 시각 광선에 의해 보이는 대상은 낮아 보인다.

6. 오른쪽으로 비껴난 광선에 의해 보이는 대상은 오른쪽에 있는 것으로 보이고, 왼쪽으로 비껴난 광선에 의해 보이는 대상은 왼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7. 더 많은 각들로 볼수록 대상은 더 명확하게 보인다.

정의 1은 시각의 전제 조건이 눈에서 뻗어나간 광선이라고 말한다.

이는 엠페도클레스에서 플라톤을 거쳐 스토아학파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형의 유출설이 공유하는 가정이다.

정의 2는 눈에서 뻗어나간 광선들이 원뿔 모양을 이룬다고 말한다.

여기서 스토아학파의 시각원뿔 이론이 에우클레이데스 광학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의 3은 대상이 보이려면 시각 광선의 진행을 중간에서 차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역시 스토아학파의 이론과 일치한다.

같은 유출론이라 하더라도 플라톤은 시각 광선의 입자들이 대상 자체가 아니라 거기서 발사된 불의 입자들과 중간 어딘가에서 만난다고 생각했다.

정의 4, 5, 6은 너무나 당연하여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대상이 클수록 시야각이 널어지고, 대상이 작을수록 시야각이 좁아지며, 크기가 같은 두 대상의 경우에는 시야각도 같을 것이다.

위에 있는 대상을 보려면 시선이 위를 향하고, 아래에 있는 대상을 보려면 아래를 향해야 할 것이다.

또 오른쪽에 있는 대상을 보려면 시선이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왼쪽에 있는 대상을 보려면 중앙에서 왼쪽으로 치우쳐야 할 것이다.

이어지는 정의 7은 시각의 선명성의 조건을 말해준다.

더 많은 시각광선들을 받아 더 많은 시각원뿔이 생길수록 대상은 더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광학의 정리들 이렇게 모두 일곱개의 공리를 제시한 후 에우클리데스는 거기서 58개의 정리를 연역해낸다.

위의 정의들이 각각의 정리들을 증명하는 데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보자. (Fig.1) 어떤 대상도 한번에 전체 모습이 보이지는 않는다.

시각대상을 AD라 하고, 눈을 B라 하며, 거기서 나와 대상에 닿는 시각광선을 BA, BG, BK, BD라 하자. 시각광선들은 뻗어나가면서 서로 갈라지기 때문에 AD 위에서 연속적인 선을 이루지 못한다.

그 결과 AD 위에는 시각광선이 닿지 않는 틈들이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AD의 전체 모습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대상의 전체상이 동시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시각광선이 워낙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에우클레이데스는 스토아학파와 달리 시각광선을 연속적인continuous 것이 아니라 분산적인 것으로 보았다.

즉 원뿔 모양으로 갈라지는 시각광선들 사이에는 간격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번에 사물의 전체상을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첫눈에 대상의 모든 디테일을 보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증명에 사용된 것은 물론 정의 3이다.

두번째 정리는 거리에 따라 시각의 선명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Fig.2) 가까이에 있는 대상은 멀리 있는 대상보다 더 선명하게 보인다.

B를 눈이라 하고 GD와 KL을 시각대상이라 하자. 이 두 대상의 크기가 서로 같으며 또한 평행을 이룬다는 점을 명심하라. 그리고 GD가 눈에 더 가까이 있으며, 시각광선이 (두 대상의 위로) 떨어져 BG, BD, BK, BL를 이룬다고 하자. 대상 KL의 위로 떨어지는 시각광선은 점 G, D를 통과하지 못한다.

(만약에 통과한다면 시각광선이 점 G, D를 통과해 KL을 연장한 선을 만나서 만들어낼) 삼각형 BDLKGB에서는 선 KL이 선 GD보다 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위에서 그 두 선의 길이가 같다고 가정했다.

따라서 GD는 KL보다 더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각들이 많을수록 사물은 더 선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선 KL을 보는 데에는 원뿔의 각이 하나만(∠KBL)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가까이에 있는 선 GD 위로로는 각이 둘(∠KBL, ∠GBD)이 떨어진다.

따라서 같은 길이라도 멀리 있는 KL보다 GD가 더 선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정의 7에 의해 “더 많은 각들로 볼수록 대상은 더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세번째 정리는 왜 멀리 떨어질수록 사물이 점차 보이지 않게 되는지 설명한다.

    (Fig.3) 모든 시각대상은 특정한 거리의 한계를 갖고 있어서 그 한계에 이르면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

   눈을 B라 하고, 시각대상을 GD라 하자. GD를 멀리 떨어뜨려놓으면 그것은 더이상 보이지 않을 것이다.

GD를 갈라지는 시각광선들의 중간지점에 놓고, 그 광선들의 한계가 K라고 하자. 그러면 B에서 나온 어떤 광선도 K 위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위로 시각광선이 떨어지지 않는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

이 증명에 사용된 것은 물론 정의 3, 즉 ‘시각광선이 닿는 대상은 보이고, 시각광선이 닿지 않는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학과 원근법그뒤로 이어지는 정리들은 주로 오늘날 ‘원근법’이라 부르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정리 5를 보자. (Fig.5) 동일한 크기의 대상이라도 거리에 따라 크기가 달라져 눈에 가까운 것이 더 커 보인다.

크기가 같은 두 대상 AB와 GD가 있고, E를 눈이라 하자. 그리고 이 눈과 두 대상의 거리가 서로 다르되, AB가 더 눈에 가깝다고 하자. 그러면 AB가 더 커 보일 것이다.

그 위로 시각광선 EA, EB, EG, ED를 떨어뜨리자. (정의 4에 의해) 더 큰 각도 안에서 보이는 대상은 더 커 보이고, 각 AEB가 각 ∠GED보다 크므로, AB가 GD보다 커 보일 것이다.

  정의 6은 두 평행선의 간격이 눈에서 멀어질수록 좁아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좌) Fig.6 (우) 평행선은 멀어질수록 간격이 좁아진다평행선들은 멀리서 보면 간격이 다른 것처럼 보인다.

서로 평행하는 두개의 선 AB와 GD가 있고, 눈이 E에 있다고 하자. 이때 AB와 GD는 평행이 아니어서, 가까운 쪽의 간격이 먼 쪽의 간격보다 넓은 것처럼 보인다.

두 평행선 위로 시각광선 EB, EZ, ET, ED, EL, ET을 떨어뜨리고, 그 점들을 직선 BD, ZL, TK로 이어보자. 그러면 각 BED가 각 ZEL보다 크므로 (정의 4에 의해) BD가 ZL보다 길어 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각 ZEL은 각 TEK보다 크므로 (역시 정의 4에 의해) ZL이 TK보다 길어 보일 것이다.

그리하여 간격 BD는 간격 ZL보다, 그리고 간격 ZL은 간격 TK보다 커 보일 것이. 그러므로 간격이 같은 선들이라도 거리에 따라서 평행이 아닌 것처럼 보일 것이다.

   (왼쪽부터) Fig.4, Fig.10, Fig.11정리 4는 평행선들의 간격이 멀어질수록 좌우로 좁아져 보이는 이유를(Fig.4), 정리 10은 눈높이 아래에 있는 평면이 (가령 수평선처럼) 멀어질수록 점점 높아져 보이는 이유를(Fig.10), 그리고 정리 11은 눈높이 위에 있는 평면이 (가령 구름층처럼) 멀어질수록 낮아져 보이는 이유를 설명한다(Fig.11). 이 세 정리를 하나로 종합하여 우리 눈에 나타나는 대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은 그리드가 얻어진다.

원근법이란 결국 기하학의 객관적 도면을 화가의 주관적 광경으로 번역한 것이다.

즉, 기하학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기한다면, 원근법은 그것을 ‘보이는 대로’ 묘사한다고 할 수 있다.

     원근법 그리드 정리 8, 9는 네모난 사물이 먼 거리에서 왜 둥글게 보이는지 설명한다.

이 문제는 이미 고대 철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바 있다.

먼 훗날 데카르트 역시 이 현상을 근거로 들어 감각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먼저 Fig.8을 보자. 사물 GD 위로 시각광선 EG와 ED가 떨어진다.

GD를 뒤로 물려 AB의 위치에 놓으면, 광선 ED는 연장해도 점 B에 닿으나, 광선 EG를 연장하면 점 A 위로 비껴간다.

따라서 A는 안 보이게 된다.

이 원리를 사물의 네 귀퉁이마다 적용하면 Fig.9가 얻어진다.

시각광선은 점 B, G를 포함한 귀퉁이들을 비껴가기에 네모가 둥글게 보이는 것이다.

기하학이냐 물리학이냐  그밖에도 『광학』에서는 사물의 그림자를 이용해 높이를 측정하는 방식, 해가 없을 때 사물의 높이를 측정하는 방식, 움푹 파인 지형의 깊이를 측정하는 방법, 구체가 활처럼 보이는 이유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여기서 다시 위의 예로 돌아가보자. 네모난 사물이 멀리서 둥글게 보이는 이유를 에우클레이데스는 철저히 기하학적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 현상을 다른 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유출설에서는 이를 뻗어나가는 광선의 힘이 멀리 갈수록 떨어지기 때문이라 말할 것이고, 발산설이라면 원자막이 눈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손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에우클레이데스의 것이 기하학적 설명이라면, 유출설과 발산설의 설명은 물리적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물음이 떠오른다.

에우클레이데스가 말한 ‘시각광선’은 물리적 성격의 것인가? 아니면 관념적·기하학적 성격의 것인가? 물론 그의 『광학』은 “시각적 문제의 물리적·생리학적 측면을 모두 체계적으로 무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서 광선이 뻗어나간다’거나 ‘광선이 대상 위로 떨어진다’는 표현이 ‘시각 광선’이라는 낱말이 그저 은유로 사용된 게 아님을 강하게 시사한다.

에우클레이데스는 아마도 시각광선을 기하학적 직선이자 동시에 물리적 광선으로 여겼을 것이다.

이 추측이 맞는다면, 그는 엠페도클레스에서 출발하여 스토아학파로 이어지는 유출설의 전통 위에 서 있는 셈이다.

물론 눈이 빛을 뿜어낸다는 주장은 우리에게 매우 이상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로서는 그렇게 믿을 이유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동물들의 안광은 차치하고라도, 가령 바닥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다고 해보자. 만약 시각이 밖에서 눈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바늘은 저절로 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바늘을 찾는 일은 눈의 수고를 요한다.

3 따라서 그로서는 시각이 안광(眼光)의 능동적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스토아학파도 비슷한 논증을 제시한 적이 있다.

그들은 시각만이 아니라 청각도 능동적이라 여겼다.

 가령 여러 사람이 떠드는 시끄러운 방에서 특정한 소리를 들으려면 귀를 긴장시켜야 한다.

따라서 청각도 감관의 능동적 작용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에우클레이데스의 『광학』에서 시작된 기하학적 시각론의 전통은 알렉산드리아의 헤론Heron, AD c.10?c.70을 거쳐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 AD c.100?c.170 로 이어진다.

에우클레이데스가 ‘시각 광선’을 기하학적 구성이자 동시에 물리적 현상으로 보았듯이, 기하학적 모델이 다른 유형의 시각론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다음 장(章)에서 살펴볼 갈레노스는 시각에 대한 자신의 의학적 설명을 기하학적 설명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광학』의 마지막 후예인 프톨레마이오스는 기하학적 모델에 의학적 모델과 철학적 모델을 결합시켜 이 세가지 위대한 전통을 하나로 종합하려 했다.

4다음 주 계속창비의 다른 연재 보기     David C. Lindeberg, Theories of Vision from Al-Kindi to Kepler. The Unvisity of Chcago Press. 1976 p.1 . 이 구분법이 “오해를 일으키기 쉽다”는 지적도 있다.

(A. Mark Smith(1999) pp.46-47)Euclid, The Optics of Euclid. tr. Harry Edwin Burton In: Journal of the Optical Society of America. Vol. 35, No. 5. May, 1945. pp.357-372, p.357Arthur Zajonc, Catching the Light: The Entwined History of Light and Min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p.25 A. Mark Smith, Ptolemy and the Foundations of Ancient Mathematical Optics: A Source Based Guided Study. Transactions of the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New Series, Vol. 89, No. 3 (1999), pp.1-1721 이제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은 모두 첫번째, 즉 철학적·물리학적 전통에 속하는 이론들이었다.

다만 마지막으로 살펴본 스토아학파의 감각론에서는 어렴풋하게나마 성격이 다른 나머지 두 모델, 즉 수학적·의학적 모델에서 비롯된 영향을 볼 수 있다.

 시각론의 공리들   (좌) 에우클레이데스, (우)  『기하학 원론』 라틴어 번역본의 한 페이지시각론의 수학적 모델을 대표하는 것은 에우클레이데스Eukleides, 유클리드 BC c.300다.

『기하학 원론』(Stocheia)의 저자인 그는 비슷한 시기에 『광학』(Optica)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학자가 광학에 관한 책을 쓴다는 것이 당시에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Physica)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광학은 수학적 선들을 연구하되, 그것들을 수학적 선이 아니라 물리적 선으로 다룬다.

” 즉 관념적 공간에만 머무는 일반기하학을 현실의 물리적 공간에 옮겨놓은 것이 바로 광학이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광학을 기하학의 한 분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에우클레이데스의 『광학』은 시각에 대한 역사에 등장한 최초의 기계적 설명으로, 훗날 이는 르네상스 원근법의 토대가 된다.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

1472가 그의 『회화론』(De Pictura)에서 소묘와 원근법의 기하학적 기초로 원용한 것도 에우클레이데스의 『광학』이었다.

이 책에서 에우클레이데스는 시각론의 물리적·생리적 측면은 무시한 채 논의를 오직 기하학적으로 기술될 수 있는 것에 한정한다.

방법론은 『기하학 원론』에 사용된 것과 다르지 않다.

먼저 그는 공리의 역할을 하는 일곱가지 ‘요청’ 혹은 ‘정의’를 제시하고, 거기서 모두 58개의 정리를 연역해낸다.

일곱가지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눈에서 나와 직진하는 광선이 끝없이 뻗어나간다.

2. 일군의 시각 광선들이 눈을 꼭짓점으로, 대상의 표면을 밑으로 하는 원뿔을 이룬다.

3. 시각 광선이 닿는 대상은 보이고, 시각광선이 닿지 않는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

4. 더 큰 각도로 보이는 대상들은 커 보이고, 더 작은 각도로 보이는 대상들은 작아 보이며, 같은 각도로 보이는 대상들은 크기가 같아 보인다.

5. 더 높은 시각 광선에 의해 보이는 대상은 높아 보이고, 더 낮은 시각 광선에 의해 보이는 대상은 낮아 보인다.

6. 오른쪽으로 비껴난 광선에 의해 보이는 대상은 오른쪽에 있는 것으로 보이고, 왼쪽으로 비껴난 광선에 의해 보이는 대상은 왼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7. 더 많은 각들로 볼수록 대상은 더 명확하게 보인다.

정의 1은 시각의 전제 조건이 눈에서 뻗어나간 광선이라고 말한다.

이는 엠페도클레스에서 플라톤을 거쳐 스토아학파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형의 유출설이 공유하는 가정이다.

정의 2는 눈에서 뻗어나간 광선들이 원뿔 모양을 이룬다고 말한다.

여기서 스토아학파의 시각원뿔 이론이 에우클레이데스 광학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의 3은 대상이 보이려면 시각 광선의 진행을 중간에서 차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역시 스토아학파의 이론과 일치한다.

같은 유출론이라 하더라도 플라톤은 시각 광선의 입자들이 대상 자체가 아니라 거기서 발사된 불의 입자들과 중간 어딘가에서 만난다고 생각했다.

정의 4, 5, 6은 너무나 당연하여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대상이 클수록 시야각이 널어지고, 대상이 작을수록 시야각이 좁아지며, 크기가 같은 두 대상의 경우에는 시야각도 같을 것이다.

위에 있는 대상을 보려면 시선이 위를 향하고, 아래에 있는 대상을 보려면 아래를 향해야 할 것이다.

또 오른쪽에 있는 대상을 보려면 시선이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왼쪽에 있는 대상을 보려면 중앙에서 왼쪽으로 치우쳐야 할 것이다.

이어지는 정의 7은 시각의 선명성의 조건을 말해준다.

더 많은 시각광선들을 받아 더 많은 시각원뿔이 생길수록 대상은 더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광학의 정리들 이렇게 모두 일곱개의 공리를 제시한 후 에우클리데스는 거기서 58개의 정리를 연역해낸다.

위의 정의들이 각각의 정리들을 증명하는 데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보자. (Fig.1) 어떤 대상도 한번에 전체 모습이 보이지는 않는다.

시각대상을 AD라 하고, 눈을 B라 하며, 거기서 나와 대상에 닿는 시각광선을 BA, BG, BK, BD라 하자. 시각광선들은 뻗어나가면서 서로 갈라지기 때문에 AD 위에서 연속적인 선을 이루지 못한다.

그 결과 AD 위에는 시각광선이 닿지 않는 틈들이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AD의 전체 모습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대상의 전체상이 동시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시각광선이 워낙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에우클레이데스는 스토아학파와 달리 시각광선을 연속적인continuous 것이 아니라 분산적인 것으로 보았다.

즉 원뿔 모양으로 갈라지는 시각광선들 사이에는 간격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번에 사물의 전체상을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첫눈에 대상의 모든 디테일을 보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증명에 사용된 것은 물론 정의 3이다.

두번째 정리는 거리에 따라 시각의 선명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Fig.2) 가까이에 있는 대상은 멀리 있는 대상보다 더 선명하게 보인다.

B를 눈이라 하고 GD와 KL을 시각대상이라 하자. 이 두 대상의 크기가 서로 같으며 또한 평행을 이룬다는 점을 명심하라. 그리고 GD가 눈에 더 가까이 있으며, 시각광선이 (두 대상의 위로) 떨어져 BG, BD, BK, BL를 이룬다고 하자. 대상 KL의 위로 떨어지는 시각광선은 점 G, D를 통과하지 못한다.

(만약에 통과한다면 시각광선이 점 G, D를 통과해 KL을 연장한 선을 만나서 만들어낼) 삼각형 BDLKGB에서는 선 KL이 선 GD보다 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위에서 그 두 선의 길이가 같다고 가정했다.

따라서 GD는 KL보다 더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각들이 많을수록 사물은 더 선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선 KL을 보는 데에는 원뿔의 각이 하나만(∠KBL)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가까이에 있는 선 GD 위로로는 각이 둘(∠KBL, ∠GBD)이 떨어진다.

따라서 같은 길이라도 멀리 있는 KL보다 GD가 더 선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정의 7에 의해 “더 많은 각들로 볼수록 대상은 더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세번째 정리는 왜 멀리 떨어질수록 사물이 점차 보이지 않게 되는지 설명한다.

    (Fig.3) 모든 시각대상은 특정한 거리의 한계를 갖고 있어서 그 한계에 이르면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

[진중권] 세상에. 왜..


   눈을 B라 하고, 시각대상을 GD라 하자. GD를 멀리 떨어뜨려놓으면 그것은 더이상 보이지 않을 것이다.

GD를 갈라지는 시각광선들의 중간지점에 놓고, 그 광선들의 한계가 K라고 하자. 그러면 B에서 나온 어떤 광선도 K 위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위로 시각광선이 떨어지지 않는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

이 증명에 사용된 것은 물론 정의 3, 즉 ‘시각광선이 닿는 대상은 보이고, 시각광선이 닿지 않는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학과 원근법그뒤로 이어지는 정리들은 주로 오늘날 ‘원근법’이라 부르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정리 5를 보자. (Fig.5) 동일한 크기의 대상이라도 거리에 따라 크기가 달라져 눈에 가까운 것이 더 커 보인다.

크기가 같은 두 대상 AB와 GD가 있고, E를 눈이라 하자. 그리고 이 눈과 두 대상의 거리가 서로 다르되, AB가 더 눈에 가깝다고 하자. 그러면 AB가 더 커 보일 것이다.

그 위로 시각광선 EA, EB, EG, ED를 떨어뜨리자. (정의 4에 의해) 더 큰 각도 안에서 보이는 대상은 더 커 보이고, 각 AEB가 각 ∠GED보다 크므로, AB가 GD보다 커 보일 것이다.

  정의 6은 두 평행선의 간격이 눈에서 멀어질수록 좁아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좌) Fig.6 (우) 평행선은 멀어질수록 간격이 좁아진다평행선들은 멀리서 보면 간격이 다른 것처럼 보인다.

서로 평행하는 두개의 선 AB와 GD가 있고, 눈이 E에 있다고 하자. 이때 AB와 GD는 평행이 아니어서, 가까운 쪽의 간격이 먼 쪽의 간격보다 넓은 것처럼 보인다.

두 평행선 위로 시각광선 EB, EZ, ET, ED, EL, ET을 떨어뜨리고, 그 점들을 직선 BD, ZL, TK로 이어보자. 그러면 각 BED가 각 ZEL보다 크므로 (정의 4에 의해) BD가 ZL보다 길어 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각 ZEL은 각 TEK보다 크므로 (역시 정의 4에 의해) ZL이 TK보다 길어 보일 것이다.

그리하여 간격 BD는 간격 ZL보다, 그리고 간격 ZL은 간격 TK보다 커 보일 것이. 그러므로 간격이 같은 선들이라도 거리에 따라서 평행이 아닌 것처럼 보일 것이다.

   (왼쪽부터) Fig.4, Fig.10, Fig.11정리 4는 평행선들의 간격이 멀어질수록 좌우로 좁아져 보이는 이유를(Fig.4), 정리 10은 눈높이 아래에 있는 평면이 (가령 수평선처럼) 멀어질수록 점점 높아져 보이는 이유를(Fig.10), 그리고 정리 11은 눈높이 위에 있는 평면이 (가령 구름층처럼) 멀어질수록 낮아져 보이는 이유를 설명한다(Fig.11). 이 세 정리를 하나로 종합하여 우리 눈에 나타나는 대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은 그리드가 얻어진다.

원근법이란 결국 기하학의 객관적 도면을 화가의 주관적 광경으로 번역한 것이다.

즉, 기하학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기한다면, 원근법은 그것을 ‘보이는 대로’ 묘사한다고 할 수 있다.

     원근법 그리드 정리 8, 9는 네모난 사물이 먼 거리에서 왜 둥글게 보이는지 설명한다.

이 문제는 이미 고대 철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바 있다.

먼 훗날 데카르트 역시 이 현상을 근거로 들어 감각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먼저 Fig.8을 보자. 사물 GD 위로 시각광선 EG와 ED가 떨어진다.

GD를 뒤로 물려 AB의 위치에 놓으면, 광선 ED는 연장해도 점 B에 닿으나, 광선 EG를 연장하면 점 A 위로 비껴간다.

따라서 A는 안 보이게 된다.

이 원리를 사물의 네 귀퉁이마다 적용하면 Fig.9가 얻어진다.

시각광선은 점 B, G를 포함한 귀퉁이들을 비껴가기에 네모가 둥글게 보이는 것이다.

기하학이냐 물리학이냐  그밖에도 『광학』에서는 사물의 그림자를 이용해 높이를 측정하는 방식, 해가 없을 때 사물의 높이를 측정하는 방식, 움푹 파인 지형의 깊이를 측정하는 방법, 구체가 활처럼 보이는 이유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여기서 다시 위의 예로 돌아가보자. 네모난 사물이 멀리서 둥글게 보이는 이유를 에우클레이데스는 철저히 기하학적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 현상을 다른 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유출설에서는 이를 뻗어나가는 광선의 힘이 멀리 갈수록 떨어지기 때문이라 말할 것이고, 발산설이라면 원자막이 눈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손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에우클레이데스의 것이 기하학적 설명이라면, 유출설과 발산설의 설명은 물리적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물음이 떠오른다.

에우클레이데스가 말한 ‘시각광선’은 물리적 성격의 것인가? 아니면 관념적·기하학적 성격의 것인가? 물론 그의 『광학』은 “시각적 문제의 물리적·생리학적 측면을 모두 체계적으로 무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서 광선이 뻗어나간다’거나 ‘광선이 대상 위로 떨어진다’는 표현이 ‘시각 광선’이라는 낱말이 그저 은유로 사용된 게 아님을 강하게 시사한다.

에우클레이데스는 아마도 시각광선을 기하학적 직선이자 동시에 물리적 광선으로 여겼을 것이다.

이 추측이 맞는다면, 그는 엠페도클레스에서 출발하여 스토아학파로 이어지는 유출설의 전통 위에 서 있는 셈이다.

물론 눈이 빛을 뿜어낸다는 주장은 우리에게 매우 이상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로서는 그렇게 믿을 이유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동물들의 안광은 차치하고라도, 가령 바닥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다고 해보자. 만약 시각이 밖에서 눈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바늘은 저절로 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바늘을 찾는 일은 눈의 수고를 요한다.

3 따라서 그로서는 시각이 안광(眼光)의 능동적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스토아학파도 비슷한 논증을 제시한 적이 있다.

그들은 시각만이 아니라 청각도 능동적이라 여겼다.

 가령 여러 사람이 떠드는 시끄러운 방에서 특정한 소리를 들으려면 귀를 긴장시켜야 한다.

따라서 청각도 감관의 능동적 작용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에우클레이데스의 『광학』에서 시작된 기하학적 시각론의 전통은 알렉산드리아의 헤론Heron, AD c.10?c.70을 거쳐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 AD c.100?c.170 로 이어진다.

에우클레이데스가 ‘시각 광선’을 기하학적 구성이자 동시에 물리적 현상으로 보았듯이, 기하학적 모델이 다른 유형의 시각론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다음 장(章)에서 살펴볼 갈레노스는 시각에 대한 자신의 의학적 설명을 기하학적 설명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광학』의 마지막 후예인 프톨레마이오스는 기하학적 모델에 의학적 모델과 철학적 모델을 결합시켜 이 세가지 위대한 전통을 하나로 종합하려 했다.

4다음 주 계속창비의 다른 연재 보기     David C. Lindeberg, Theories of Vision from Al-Kindi to Kepler. The Unvisity of Chcago Press. 1976 p.1 . 이 구분법이 “오해를 일으키기 쉽다”는 지적도 있다.

(A. Mark Smith(1999) pp.46-47)Euclid, The Optics of Euclid. tr. Harry Edwin Burton In: Journal of the Optical Society of America. Vol. 35, No. 5. May, 1945. pp.357-372, p.357Arthur Zajonc, Catching the Light: The Entwined History of Light and Min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p.25 A. Mark Smith, Ptolemy and the Foundations of Ancient Mathematical Optics: A Source Based Guided Study. Transactions of the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New Series, Vol. 89, No. 3 (1999), pp.1-17225. 상세보기 책에는 여러 예술가 구본창, 이외수, 안상수와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저 예술가와 인터뷰 형식을 취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회적 운동권, 정치적 성향을 띄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1/3정도는 차지했다.

책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와 정치적 비밀' 로. 그 와중에 그래도 생각할만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주로 가르쳐서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잠재성이 있는 학생들을 뽑는다.

- 진중권.무엇보다도 먼저 본인이 살아온 경험에서 뭘 표현하고 싶은지를 우선 찾아야 하죠. 꿈에 대해서 표현, 성냥갑 같은 것을 주면서 입체를 만들라던가. 독일에서는 '이미 네 스타일이 있는데 왜 여기 오느냐' 이렇게 보는 거죠. 다행히 저는 오히려 새롭게 배울 수 잇는 기회를 주려고 했는지 받아주더라구요. - 구본창.정물화와 자화상을 많이 한다.

독일에서는 관찰 훈련을 열심히 시킨다.

ex) 강가에서 주워 온 물건 그리기 found object. - 구본창뭘 하건 대한민국에서는 실력이 어중간하면 어차피 다 먹고 살기 힘들어 "쫄지마" - 이외수.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아름답지 않은 것을 사랑할 수 있다.

-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라테스의 말 中.예술가의 인터뷰를 다룬 이야기이다.

구본창 선생님이 한 말 중 '본인의 경험에서 뭘 표현하고 싶은지 찾아라.' 라는 말이 인상 깊다.

과연 내가 '표현' 하고 싶은 건 뭘까? 라는 의문이 든다.

- '15년 전반기 독서 목록 주식배당이 나왔대요. 169,200원. 와, 맛 있는 거 사먹자. 사회주의자였던 내가 자본가가 되다니.....  진중권 씨는 생산수단(?) '시사IN' 주주로서 169,200원을 배당받으며 자본가 대열에 합류했다ㅋ 그럼 평소에 주식투자를 안하는 건가?주식투자는 좋은 건데.... 노후준비에 주식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건 금방 알 수 있다.

-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갑자기 (두 분 의견이 다르다는 전제 하에)주식 혹은 자본에 대해 토론을 펼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강경파 vs 초강경파  아무튼ㅋ 자신만의 색깔이 강하고,때때로 발언을 너무 자극적으로 해서 저평가 받는 면이 있지만..그래도 상당한 전투력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거성 전원책 성님과 토론할 정도면 검증은 충분히 되지 않았나 싶다.

 일설에 따르면..그를 가벼이 본 모 사이트의 대표로 나온 회원을 압살하면서 클래스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줬다고도 한다.

  관련 글 : 전원책 변호사의 레전드 어록??? ???? ??? ????? ???? ??? ?? - ??? ??? ?? ? ?? ???? ? ? ??? ??? ?? ? ???...blog.naver.com?전원책 변호사는 (내가 생각하는 한) 군복무에 관해서는 반박불가의 명언을 남기셨다.

 토론에서는 공격적이나사석에서는 좌우 구분할 것 없이 다 같은 사람, 인간미가 있다.

  관련 영상 : 진중권vs전원책 백분토론,무대뒤에서.. 사실 유시민은 백태웅, 이정우 등과 더불어 80년대 초기 NL,PD계열로 나뉘어져 극렬 학생운동을 펼친 일원으로 유명한 이른바 좌경 학생운동의 선봉에 있었다.

그러나 이는 학생운동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만 유명한 일일 뿐 일반인들에게 유시민은 다른 측면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니 그의 불후의 명저 '거꾸로보는 세계사'를 통해서이다.

이 책은 국내에 나온 그 어떤 세계사 책과도 다른 철저히 민중의 시각에서 평범하게 보이는 사건이 어떻게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는가를 여러 에피소드를 통하여 펼쳐낸 책으로 매우 획기적이고 읽기 쉽게 씌여진 명저였다.

남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거창한 역사관을 들먹이지 않으면서도 담담하게 세계사의 에피소드를 개인적 시각에서 잘 해석해낸 명저로 꼽히는 책이다.

아마 역사책 역사상 국내에서 이 책보다 많이 팔린 책은 없을 것 같다.

반면 진중권은 90년대 중반 '미학오디쎄이'란 책으로 대중앞에 그 이름 석자를 처음으로 각인시기키 시작한다.

디스테파뇨 역시 대학시절 한 책 하던 입장이라, 신림동 광장서적과 녹두거리 앞 그날이 오면, 그리고 서울대 구내 서적을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가서 죽치고 앉아 신간서적부터 주욱 훑어내던 터라, 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란 독특한 구조의 책은 필자의 눈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저자를 보니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소비에트 미학으로 서울대에서 석사를 하고 독일의 베를린자유대학으로 유학을 간 사람이다.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독일 유학파라는 것인데, 디스테파뇨가 알기로 유시민도 경제학 석사까지만 하고 왔고, 진중권 역시 박사 진입에는 실패하고 돌아온 것으로 안다.

그만큼 독일 박사 취득이 쉽지 않다는 것이기도 하려니와, 솔직히 학문적으로 논하기에는 두 사람 다 전공분야에서는 그렇게 소질이 탁월한 사람같지는 않아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오늘날 유시민과 진중권은 명확하게 '작가'란 칭호가 어울리는 글쟁이들이고, 바로 이점에서 둘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해봄직한 충분한 명분이 있다고 본다.

또한 공중파 티비토론에서 유시민과 진중권만큼 토론 논객으로 탁월함을 보여준 사례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도 둘은 충분히 비교되어볼만한 이유가 있는 인물들이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그 가족적 배경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유시민은 그 유명한 명문 '항소이유서'와 여러 언론에서 비추어진 바 있듯이 가난한 슈퍼마켓 가게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의 친 누나 유시춘은 시민사회운동가로 유시민만큼 유명한 사람이고, 둘째 누나 유시정 역시 참스승으로 인터넷상에서 알려질 만큼 알려진 깨어있는 인물이었다.

보건복지부 장관시절 유시민은 의약분업, 차등수가제 등 갖은 제도를 추진하여 사회적 이슈를 만든 장본인이었고 의료도 산업이라는 의료산업론을 설파하며 사실 공공재로서의 의료의 본질을 훼손한 측면도 많이 지적을 받고 있기도 하다.

물론 '중증 고액질환 비용인하 정책'을 추진하여 일존의 의료 사각지대의 저소득계층에게 희망의 끈을 잡게 해주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될 일이다.

어쨋든 유시민은 굉장한 강한 사람이다.

[진중권] 란 무엇인가?



본인의 생각과 철학을 실제 삶의 현장에서 그대로 구현하는데 익숙한 인물이며 다분히 그 과정에서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기 보다는 자신의 견해를 관철시키는데 능한 사람으로, 따라서 적도 많고 비판도 많이 받는 사람임에는 특림없는 인물이다.

  이는 어쩌면 본인이 살아온 삶의 과정 자체가 온통 부조리함과 힘으로 정당화된 폭력으로 일관된 시대 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타협과 협상보다는 저항과 항쟁이 필요했던, 행동이 필요했던 시대였기에  이러한 캐릭터가 고착화되지 않았나 추측도 해보게된다.

그러나 그의 글과 논쟁에서 보여지는 그의 치밀한 논리와 유려한 사고의 흐름은 충분히 이시대의 '인물'로서 손색이 없음을 증명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다만, 타협과 협상을 불허하는 그의 지나친 지적 오만함은 어쩌면 똘레랑스가 요구되는 최고 통수권자의 위치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참모적 인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진중권은 사실 목사의 자식으로 알려져 있고 그의 누나 진은숙은 클래식 작곡 계열에서는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올라있는 거장이고 어쩌면 진중권의 논리에는 다분히 이러한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혈통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소비에트 미학연구로 석사를 받았는데 사실 진중권 당대에 소비에트 문학예술이론을 공부한 것만 봐도 그가 그렇게 제도가 강요하는 친미적 사고방식에 대해 얼마나 저항감을 가진 인물이지 미루어짐작해 볼 수 있다.

사실 디스테파뇨 또한 대학 때 미학 수업도 들어봤고 진중권 미학오디세이도 읽어봤지만 순수 미학적 관점에서 진중권의 책들의 수준이 사실 인정해줄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진 사실이다.

그저 미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개인적 시각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다가서기 쉽게, 다시말해 유학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알바용 정도로 씌여진 책이라는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바로 이부분에서 어쩌면 유시민과 비교되는 진중권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유시민의 논리에는 치열한 투쟁적 삶이라는 배경이 자리잡고 있으나, 진중권의 논리는 말그대로 이상적이고 순수한 논리 그 자체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시민이 보다 팩트 중심의 선팩트 후해석의 사회과학적 두뇌라고 한다면, 진중권은 팩트보다는 해석이 앞서는 선해석 후팩트의 보다 철학적, 인문학적 두뇌의 소산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의 논리체계는 궤를 달리한다.

팩트 중심의 사고다 보니 유시민의 발언에는 보다 힘이 실리고, 해석 위주의 사고다 보니 진중권의 발언은 굉장히 기발하다.

진중권은 어쩌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이야기 되는 '선험성'에 굉장히 천착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사안에 대한 구체적 팩트 이전에 철저한 보편타당성을 근거한 자신의 사고 체계에서 사안을 일단 한번 걸러내고 자신의 사고체계안에서 팩트를 바라보는 다분히 주관적인 철학자의 시각 말이다.

그러다보니 세상사 모든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한마디씩 거들게 되고 자신만의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습성이 몸에 베어 있다.

유시민과 진중권. 굳이 규정하자면 유시민은 리얼리스트, 진중원은 아이디얼리스트라고 규정하고 싶다.

다만 리얼과 아이디얼의 공존을 맛볼 수 있는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 둘에게 충분히 감사할 이유가 있다고 본다.

 14.리뷰보기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작가진중권출판휴머니스트발매2011.07.05.리뷰보기서양미술사의 커다란 줄기를 정리하기 좋다.

 2016년 8월 예술 감각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미술 이야기!미학의 시각으로 보는 서양 미술사!미학의 눈으로 읽는 고전 예술의 세계『서양 미술사 1』. 《미학 오디세이》로 잘 알려진 진중권이 이번에는 미학의 눈을 통해 보는 서양의 고전 예술을 소개한다.

이 책은 시간적 흐름에 따라 소개하던 여느 서양 미술사 도서를 벗어나 '서양미술의 원리'와 '서양미술의 역사'를 하나로 묶어낸 것이 특징이다.

서양미술의 원리를 그 시대의 상황 안에서 설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서양미술의 역사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술하고 있다.

미학과 미술사를 접목한 특별한 구성과 서술로 이루어진 진중권의 <서양 미술사>는 형태ㆍ색깔ㆍ빛깔 등 미술을 이루는 구성 요소들을 통해 각 시대 예술의 형상화 원리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각 시대의 미학적 관념을 명쾌하게 드러냈다.

다시 말해 그림을 그릴 때 드로잉을 한 후에 채색을 하듯 미술의 근본 요소인 형태와 색채에서부터 공간을 재현하는 투시법까지 미학적 단계를 밟아가며 미술 작품들을 살펴본다.

예술에서의 양식의 변화와 비평가를 다룬 점도 이 책의 특징이다.

예술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 등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친 양식의 변화를 알아보고 거대한 양식의 변화를 초래했던 비평가의 이야기도 들어본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르네상스 시대에 새로운 미술의 역사를 쓴 서양 미술사, 그리고 19세기까지 이어진 고전주의 예술론과 붕괴되는 과정, 곳곳에서 터진 혁명의 역사 이후 피어난 모더니즘 등 미술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시도된다.

☞ 이런 점이 좋습니다!진중권의 <서양미술사>는 단순한 미술사만을 이야기한 책에서 한 단계 뛰어 넘어 미술 양식에 대한 분석, 시대를 반영한 예술 양식 등 미학과 철학의 관점에서 서양 미술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고대 미술에서부터 근대 미술까지 시대를 초월하며 미술 양식의 세계를 탐험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새로운 시각, 남다른 미적 감각으로 쓴 아방가르드 시대의 예술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이 살펴본 아방가르드 시대의 예술『진중권의 서양 미술사: 모더니즘 편』. 이 책은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대 중 하나였던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당시의 예술운동은 저마다 선언과 강령을 발표하며 정당운동을 방불케 하는 정치적 수사를 구사했다.

‘모더니즘 편’에서는 이러한 예술가들의 강령과 선언, 즉 ‘예술가 진술(ARTIST STATEMENT)'을 중심으로 아방가르드 예술의 본질을 추적해나간다.

공장의 기계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나타났다가 사라진 모던 시대의 복잡한 현대 예술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이다.

1 이제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은 모두 첫번째, 즉 철학적·물리학적 전통에 속하는 이론들이었다.

다만 마지막으로 살펴본 스토아학파의 감각론에서는 어렴풋하게나마 성격이 다른 나머지 두 모델, 즉 수학적·의학적 모델에서 비롯된 영향을 볼 수 있다.

 시각론의 공리들   (좌) 에우클레이데스, (우)  『기하학 원론』 라틴어 번역본의 한 페이지시각론의 수학적 모델을 대표하는 것은 에우클레이데스Eukleides, 유클리드 BC c.300다.

『기하학 원론』(Stocheia)의 저자인 그는 비슷한 시기에 『광학』(Optica)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학자가 광학에 관한 책을 쓴다는 것이 당시에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Physica)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광학은 수학적 선들을 연구하되, 그것들을 수학적 선이 아니라 물리적 선으로 다룬다.

” 즉 관념적 공간에만 머무는 일반기하학을 현실의 물리적 공간에 옮겨놓은 것이 바로 광학이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광학을 기하학의 한 분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에우클레이데스의 『광학』은 시각에 대한 역사에 등장한 최초의 기계적 설명으로, 훗날 이는 르네상스 원근법의 토대가 된다.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

1472가 그의 『회화론』(De Pictura)에서 소묘와 원근법의 기하학적 기초로 원용한 것도 에우클레이데스의 『광학』이었다.

이 책에서 에우클레이데스는 시각론의 물리적·생리적 측면은 무시한 채 논의를 오직 기하학적으로 기술될 수 있는 것에 한정한다.

방법론은 『기하학 원론』에 사용된 것과 다르지 않다.

먼저 그는 공리의 역할을 하는 일곱가지 ‘요청’ 혹은 ‘정의’를 제시하고, 거기서 모두 58개의 정리를 연역해낸다.

일곱가지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눈에서 나와 직진하는 광선이 끝없이 뻗어나간다.

2. 일군의 시각 광선들이 눈을 꼭짓점으로, 대상의 표면을 밑으로 하는 원뿔을 이룬다.

3. 시각 광선이 닿는 대상은 보이고, 시각광선이 닿지 않는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

4. 더 큰 각도로 보이는 대상들은 커 보이고, 더 작은 각도로 보이는 대상들은 작아 보이며, 같은 각도로 보이는 대상들은 크기가 같아 보인다.

5. 더 높은 시각 광선에 의해 보이는 대상은 높아 보이고, 더 낮은 시각 광선에 의해 보이는 대상은 낮아 보인다.

6. 오른쪽으로 비껴난 광선에 의해 보이는 대상은 오른쪽에 있는 것으로 보이고, 왼쪽으로 비껴난 광선에 의해 보이는 대상은 왼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7. 더 많은 각들로 볼수록 대상은 더 명확하게 보인다.

정의 1은 시각의 전제 조건이 눈에서 뻗어나간 광선이라고 말한다.

이는 엠페도클레스에서 플라톤을 거쳐 스토아학파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형의 유출설이 공유하는 가정이다.

정의 2는 눈에서 뻗어나간 광선들이 원뿔 모양을 이룬다고 말한다.

여기서 스토아학파의 시각원뿔 이론이 에우클레이데스 광학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의 3은 대상이 보이려면 시각 광선의 진행을 중간에서 차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역시 스토아학파의 이론과 일치한다.

같은 유출론이라 하더라도 플라톤은 시각 광선의 입자들이 대상 자체가 아니라 거기서 발사된 불의 입자들과 중간 어딘가에서 만난다고 생각했다.

정의 4, 5, 6은 너무나 당연하여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대상이 클수록 시야각이 널어지고, 대상이 작을수록 시야각이 좁아지며, 크기가 같은 두 대상의 경우에는 시야각도 같을 것이다.

위에 있는 대상을 보려면 시선이 위를 향하고, 아래에 있는 대상을 보려면 아래를 향해야 할 것이다.

또 오른쪽에 있는 대상을 보려면 시선이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왼쪽에 있는 대상을 보려면 중앙에서 왼쪽으로 치우쳐야 할 것이다.

이어지는 정의 7은 시각의 선명성의 조건을 말해준다.

더 많은 시각광선들을 받아 더 많은 시각원뿔이 생길수록 대상은 더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광학의 정리들 이렇게 모두 일곱개의 공리를 제시한 후 에우클리데스는 거기서 58개의 정리를 연역해낸다.

위의 정의들이 각각의 정리들을 증명하는 데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보자. (Fig.1) 어떤 대상도 한번에 전체 모습이 보이지는 않는다.

시각대상을 AD라 하고, 눈을 B라 하며, 거기서 나와 대상에 닿는 시각광선을 BA, BG, BK, BD라 하자. 시각광선들은 뻗어나가면서 서로 갈라지기 때문에 AD 위에서 연속적인 선을 이루지 못한다.

그 결과 AD 위에는 시각광선이 닿지 않는 틈들이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AD의 전체 모습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대상의 전체상이 동시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시각광선이 워낙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에우클레이데스는 스토아학파와 달리 시각광선을 연속적인continuous 것이 아니라 분산적인 것으로 보았다.

즉 원뿔 모양으로 갈라지는 시각광선들 사이에는 간격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번에 사물의 전체상을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첫눈에 대상의 모든 디테일을 보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증명에 사용된 것은 물론 정의 3이다.

두번째 정리는 거리에 따라 시각의 선명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Fig.2) 가까이에 있는 대상은 멀리 있는 대상보다 더 선명하게 보인다.

B를 눈이라 하고 GD와 KL을 시각대상이라 하자. 이 두 대상의 크기가 서로 같으며 또한 평행을 이룬다는 점을 명심하라. 그리고 GD가 눈에 더 가까이 있으며, 시각광선이 (두 대상의 위로) 떨어져 BG, BD, BK, BL를 이룬다고 하자. 대상 KL의 위로 떨어지는 시각광선은 점 G, D를 통과하지 못한다.

(만약에 통과한다면 시각광선이 점 G, D를 통과해 KL을 연장한 선을 만나서 만들어낼) 삼각형 BDLKGB에서는 선 KL이 선 GD보다 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위에서 그 두 선의 길이가 같다고 가정했다.

따라서 GD는 KL보다 더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각들이 많을수록 사물은 더 선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선 KL을 보는 데에는 원뿔의 각이 하나만(∠KBL)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가까이에 있는 선 GD 위로로는 각이 둘(∠KBL, ∠GBD)이 떨어진다.

따라서 같은 길이라도 멀리 있는 KL보다 GD가 더 선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정의 7에 의해 “더 많은 각들로 볼수록 대상은 더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세번째 정리는 왜 멀리 떨어질수록 사물이 점차 보이지 않게 되는지 설명한다.

    (Fig.3) 모든 시각대상은 특정한 거리의 한계를 갖고 있어서 그 한계에 이르면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

   눈을 B라 하고, 시각대상을 GD라 하자. GD를 멀리 떨어뜨려놓으면 그것은 더이상 보이지 않을 것이다.

GD를 갈라지는 시각광선들의 중간지점에 놓고, 그 광선들의 한계가 K라고 하자. 그러면 B에서 나온 어떤 광선도 K 위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위로 시각광선이 떨어지지 않는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

이 증명에 사용된 것은 물론 정의 3, 즉 ‘시각광선이 닿는 대상은 보이고, 시각광선이 닿지 않는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학과 원근법그뒤로 이어지는 정리들은 주로 오늘날 ‘원근법’이라 부르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정리 5를 보자. (Fig.5) 동일한 크기의 대상이라도 거리에 따라 크기가 달라져 눈에 가까운 것이 더 커 보인다.

크기가 같은 두 대상 AB와 GD가 있고, E를 눈이라 하자. 그리고 이 눈과 두 대상의 거리가 서로 다르되, AB가 더 눈에 가깝다고 하자. 그러면 AB가 더 커 보일 것이다.

그 위로 시각광선 EA, EB, EG, ED를 떨어뜨리자. (정의 4에 의해) 더 큰 각도 안에서 보이는 대상은 더 커 보이고, 각 AEB가 각 ∠GED보다 크므로, AB가 GD보다 커 보일 것이다.

  정의 6은 두 평행선의 간격이 눈에서 멀어질수록 좁아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좌) Fig.6 (우) 평행선은 멀어질수록 간격이 좁아진다평행선들은 멀리서 보면 간격이 다른 것처럼 보인다.

서로 평행하는 두개의 선 AB와 GD가 있고, 눈이 E에 있다고 하자. 이때 AB와 GD는 평행이 아니어서, 가까운 쪽의 간격이 먼 쪽의 간격보다 넓은 것처럼 보인다.

두 평행선 위로 시각광선 EB, EZ, ET, ED, EL, ET을 떨어뜨리고, 그 점들을 직선 BD, ZL, TK로 이어보자. 그러면 각 BED가 각 ZEL보다 크므로 (정의 4에 의해) BD가 ZL보다 길어 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각 ZEL은 각 TEK보다 크므로 (역시 정의 4에 의해) ZL이 TK보다 길어 보일 것이다.

그리하여 간격 BD는 간격 ZL보다, 그리고 간격 ZL은 간격 TK보다 커 보일 것이. 그러므로 간격이 같은 선들이라도 거리에 따라서 평행이 아닌 것처럼 보일 것이다.

   (왼쪽부터) Fig.4, Fig.10, Fig.11정리 4는 평행선들의 간격이 멀어질수록 좌우로 좁아져 보이는 이유를(Fig.4), 정리 10은 눈높이 아래에 있는 평면이 (가령 수평선처럼) 멀어질수록 점점 높아져 보이는 이유를(Fig.10), 그리고 정리 11은 눈높이 위에 있는 평면이 (가령 구름층처럼) 멀어질수록 낮아져 보이는 이유를 설명한다(Fig.11). 이 세 정리를 하나로 종합하여 우리 눈에 나타나는 대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은 그리드가 얻어진다.

원근법이란 결국 기하학의 객관적 도면을 화가의 주관적 광경으로 번역한 것이다.

즉, 기하학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기한다면, 원근법은 그것을 ‘보이는 대로’ 묘사한다고 할 수 있다.

     원근법 그리드 정리 8, 9는 네모난 사물이 먼 거리에서 왜 둥글게 보이는지 설명한다.

이 문제는 이미 고대 철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바 있다.

먼 훗날 데카르트 역시 이 현상을 근거로 들어 감각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먼저 Fig.8을 보자. 사물 GD 위로 시각광선 EG와 ED가 떨어진다.

GD를 뒤로 물려 AB의 위치에 놓으면, 광선 ED는 연장해도 점 B에 닿으나, 광선 EG를 연장하면 점 A 위로 비껴간다.

따라서 A는 안 보이게 된다.

이 원리를 사물의 네 귀퉁이마다 적용하면 Fig.9가 얻어진다.

시각광선은 점 B, G를 포함한 귀퉁이들을 비껴가기에 네모가 둥글게 보이는 것이다.

기하학이냐 물리학이냐  그밖에도 『광학』에서는 사물의 그림자를 이용해 높이를 측정하는 방식, 해가 없을 때 사물의 높이를 측정하는 방식, 움푹 파인 지형의 깊이를 측정하는 방법, 구체가 활처럼 보이는 이유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여기서 다시 위의 예로 돌아가보자. 네모난 사물이 멀리서 둥글게 보이는 이유를 에우클레이데스는 철저히 기하학적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 현상을 다른 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유출설에서는 이를 뻗어나가는 광선의 힘이 멀리 갈수록 떨어지기 때문이라 말할 것이고, 발산설이라면 원자막이 눈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손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에우클레이데스의 것이 기하학적 설명이라면, 유출설과 발산설의 설명은 물리적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물음이 떠오른다.

에우클레이데스가 말한 ‘시각광선’은 물리적 성격의 것인가? 아니면 관념적·기하학적 성격의 것인가? 물론 그의 『광학』은 “시각적 문제의 물리적·생리학적 측면을 모두 체계적으로 무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서 광선이 뻗어나간다’거나 ‘광선이 대상 위로 떨어진다’는 표현이 ‘시각 광선’이라는 낱말이 그저 은유로 사용된 게 아님을 강하게 시사한다.

에우클레이데스는 아마도 시각광선을 기하학적 직선이자 동시에 물리적 광선으로 여겼을 것이다.

이 추측이 맞는다면, 그는 엠페도클레스에서 출발하여 스토아학파로 이어지는 유출설의 전통 위에 서 있는 셈이다.

물론 눈이 빛을 뿜어낸다는 주장은 우리에게 매우 이상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로서는 그렇게 믿을 이유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동물들의 안광은 차치하고라도, 가령 바닥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다고 해보자. 만약 시각이 밖에서 눈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바늘은 저절로 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바늘을 찾는 일은 눈의 수고를 요한다.

3 따라서 그로서는 시각이 안광(眼光)의 능동적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스토아학파도 비슷한 논증을 제시한 적이 있다.

그들은 시각만이 아니라 청각도 능동적이라 여겼다.

 가령 여러 사람이 떠드는 시끄러운 방에서 특정한 소리를 들으려면 귀를 긴장시켜야 한다.

따라서 청각도 감관의 능동적 작용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에우클레이데스의 『광학』에서 시작된 기하학적 시각론의 전통은 알렉산드리아의 헤론Heron, AD c.10?c.70을 거쳐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 AD c.100?c.170 로 이어진다.

에우클레이데스가 ‘시각 광선’을 기하학적 구성이자 동시에 물리적 현상으로 보았듯이, 기하학적 모델이 다른 유형의 시각론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다음 장(章)에서 살펴볼 갈레노스는 시각에 대한 자신의 의학적 설명을 기하학적 설명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광학』의 마지막 후예인 프톨레마이오스는 기하학적 모델에 의학적 모델과 철학적 모델을 결합시켜 이 세가지 위대한 전통을 하나로 종합하려 했다.

4다음 주 계속창비의 다른 연재 보기     David C. Lindeberg, Theories of Vision from Al-Kindi to Kepler. The Unvisity of Chcago Press. 1976 p.1 . 이 구분법이 “오해를 일으키기 쉽다”는 지적도 있다.

(A. Mark Smith(1999) pp.46-47)Euclid, The Optics of Euclid. tr. Harry Edwin Burton In: Journal of the Optical Society of America. Vol. 35, No. 5. May, 1945. pp.357-372, p.357Arthur Zajonc, Catching the Light: The Entwined History of Light and Min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p.25 A. Mark Smith, Ptolemy and the Foundations of Ancient Mathematical Optics: A Source Based Guided Study. Transactions of the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New Series, Vol. 89, No. 3 (1999), pp.1-1721 이제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은 모두 첫번째, 즉 철학적·물리학적 전통에 속하는 이론들이었다.

다만 마지막으로 살펴본 스토아학파의 감각론에서는 어렴풋하게나마 성격이 다른 나머지 두 모델, 즉 수학적·의학적 모델에서 비롯된 영향을 볼 수 있다.

 시각론의 공리들   (좌) 에우클레이데스, (우)  『기하학 원론』 라틴어 번역본의 한 페이지시각론의 수학적 모델을 대표하는 것은 에우클레이데스Eukleides, 유클리드 BC c.300다.

『기하학 원론』(Stocheia)의 저자인 그는 비슷한 시기에 『광학』(Optica)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학자가 광학에 관한 책을 쓴다는 것이 당시에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Physica)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광학은 수학적 선들을 연구하되, 그것들을 수학적 선이 아니라 물리적 선으로 다룬다.

” 즉 관념적 공간에만 머무는 일반기하학을 현실의 물리적 공간에 옮겨놓은 것이 바로 광학이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광학을 기하학의 한 분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에우클레이데스의 『광학』은 시각에 대한 역사에 등장한 최초의 기계적 설명으로, 훗날 이는 르네상스 원근법의 토대가 된다.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

1472가 그의 『회화론』(De Pictura)에서 소묘와 원근법의 기하학적 기초로 원용한 것도 에우클레이데스의 『광학』이었다.

이 책에서 에우클레이데스는 시각론의 물리적·생리적 측면은 무시한 채 논의를 오직 기하학적으로 기술될 수 있는 것에 한정한다.

방법론은 『기하학 원론』에 사용된 것과 다르지 않다.

먼저 그는 공리의 역할을 하는 일곱가지 ‘요청’ 혹은 ‘정의’를 제시하고, 거기서 모두 58개의 정리를 연역해낸다.

일곱가지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눈에서 나와 직진하는 광선이 끝없이 뻗어나간다.

2. 일군의 시각 광선들이 눈을 꼭짓점으로, 대상의 표면을 밑으로 하는 원뿔을 이룬다.

3. 시각 광선이 닿는 대상은 보이고, 시각광선이 닿지 않는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

4. 더 큰 각도로 보이는 대상들은 커 보이고, 더 작은 각도로 보이는 대상들은 작아 보이며, 같은 각도로 보이는 대상들은 크기가 같아 보인다.

5. 더 높은 시각 광선에 의해 보이는 대상은 높아 보이고, 더 낮은 시각 광선에 의해 보이는 대상은 낮아 보인다.

6. 오른쪽으로 비껴난 광선에 의해 보이는 대상은 오른쪽에 있는 것으로 보이고, 왼쪽으로 비껴난 광선에 의해 보이는 대상은 왼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7. 더 많은 각들로 볼수록 대상은 더 명확하게 보인다.

정의 1은 시각의 전제 조건이 눈에서 뻗어나간 광선이라고 말한다.

이는 엠페도클레스에서 플라톤을 거쳐 스토아학파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형의 유출설이 공유하는 가정이다.

정의 2는 눈에서 뻗어나간 광선들이 원뿔 모양을 이룬다고 말한다.

여기서 스토아학파의 시각원뿔 이론이 에우클레이데스 광학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의 3은 대상이 보이려면 시각 광선의 진행을 중간에서 차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역시 스토아학파의 이론과 일치한다.

같은 유출론이라 하더라도 플라톤은 시각 광선의 입자들이 대상 자체가 아니라 거기서 발사된 불의 입자들과 중간 어딘가에서 만난다고 생각했다.

정의 4, 5, 6은 너무나 당연하여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대상이 클수록 시야각이 널어지고, 대상이 작을수록 시야각이 좁아지며, 크기가 같은 두 대상의 경우에는 시야각도 같을 것이다.

위에 있는 대상을 보려면 시선이 위를 향하고, 아래에 있는 대상을 보려면 아래를 향해야 할 것이다.

또 오른쪽에 있는 대상을 보려면 시선이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왼쪽에 있는 대상을 보려면 중앙에서 왼쪽으로 치우쳐야 할 것이다.

이어지는 정의 7은 시각의 선명성의 조건을 말해준다.

더 많은 시각광선들을 받아 더 많은 시각원뿔이 생길수록 대상은 더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광학의 정리들 이렇게 모두 일곱개의 공리를 제시한 후 에우클리데스는 거기서 58개의 정리를 연역해낸다.

위의 정의들이 각각의 정리들을 증명하는 데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보자. (Fig.1) 어떤 대상도 한번에 전체 모습이 보이지는 않는다.

시각대상을 AD라 하고, 눈을 B라 하며, 거기서 나와 대상에 닿는 시각광선을 BA, BG, BK, BD라 하자. 시각광선들은 뻗어나가면서 서로 갈라지기 때문에 AD 위에서 연속적인 선을 이루지 못한다.

그 결과 AD 위에는 시각광선이 닿지 않는 틈들이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AD의 전체 모습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대상의 전체상이 동시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시각광선이 워낙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에우클레이데스는 스토아학파와 달리 시각광선을 연속적인continuous 것이 아니라 분산적인 것으로 보았다.

즉 원뿔 모양으로 갈라지는 시각광선들 사이에는 간격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번에 사물의 전체상을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첫눈에 대상의 모든 디테일을 보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증명에 사용된 것은 물론 정의 3이다.

두번째 정리는 거리에 따라 시각의 선명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Fig.2) 가까이에 있는 대상은 멀리 있는 대상보다 더 선명하게 보인다.

B를 눈이라 하고 GD와 KL을 시각대상이라 하자. 이 두 대상의 크기가 서로 같으며 또한 평행을 이룬다는 점을 명심하라. 그리고 GD가 눈에 더 가까이 있으며, 시각광선이 (두 대상의 위로) 떨어져 BG, BD, BK, BL를 이룬다고 하자. 대상 KL의 위로 떨어지는 시각광선은 점 G, D를 통과하지 못한다.

(만약에 통과한다면 시각광선이 점 G, D를 통과해 KL을 연장한 선을 만나서 만들어낼) 삼각형 BDLKGB에서는 선 KL이 선 GD보다 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위에서 그 두 선의 길이가 같다고 가정했다.

따라서 GD는 KL보다 더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각들이 많을수록 사물은 더 선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선 KL을 보는 데에는 원뿔의 각이 하나만(∠KBL)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가까이에 있는 선 GD 위로로는 각이 둘(∠KBL, ∠GBD)이 떨어진다.

따라서 같은 길이라도 멀리 있는 KL보다 GD가 더 선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정의 7에 의해 “더 많은 각들로 볼수록 대상은 더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세번째 정리는 왜 멀리 떨어질수록 사물이 점차 보이지 않게 되는지 설명한다.

    (Fig.3) 모든 시각대상은 특정한 거리의 한계를 갖고 있어서 그 한계에 이르면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

   눈을 B라 하고, 시각대상을 GD라 하자. GD를 멀리 떨어뜨려놓으면 그것은 더이상 보이지 않을 것이다.

GD를 갈라지는 시각광선들의 중간지점에 놓고, 그 광선들의 한계가 K라고 하자. 그러면 B에서 나온 어떤 광선도 K 위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위로 시각광선이 떨어지지 않는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

이 증명에 사용된 것은 물론 정의 3, 즉 ‘시각광선이 닿는 대상은 보이고, 시각광선이 닿지 않는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학과 원근법그뒤로 이어지는 정리들은 주로 오늘날 ‘원근법’이라 부르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정리 5를 보자. (Fig.5) 동일한 크기의 대상이라도 거리에 따라 크기가 달라져 눈에 가까운 것이 더 커 보인다.

크기가 같은 두 대상 AB와 GD가 있고, E를 눈이라 하자. 그리고 이 눈과 두 대상의 거리가 서로 다르되, AB가 더 눈에 가깝다고 하자. 그러면 AB가 더 커 보일 것이다.

그 위로 시각광선 EA, EB, EG, ED를 떨어뜨리자. (정의 4에 의해) 더 큰 각도 안에서 보이는 대상은 더 커 보이고, 각 AEB가 각 ∠GED보다 크므로, AB가 GD보다 커 보일 것이다.

  정의 6은 두 평행선의 간격이 눈에서 멀어질수록 좁아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좌) Fig.6 (우) 평행선은 멀어질수록 간격이 좁아진다평행선들은 멀리서 보면 간격이 다른 것처럼 보인다.

서로 평행하는 두개의 선 AB와 GD가 있고, 눈이 E에 있다고 하자. 이때 AB와 GD는 평행이 아니어서, 가까운 쪽의 간격이 먼 쪽의 간격보다 넓은 것처럼 보인다.

두 평행선 위로 시각광선 EB, EZ, ET, ED, EL, ET을 떨어뜨리고, 그 점들을 직선 BD, ZL, TK로 이어보자. 그러면 각 BED가 각 ZEL보다 크므로 (정의 4에 의해) BD가 ZL보다 길어 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각 ZEL은 각 TEK보다 크므로 (역시 정의 4에 의해) ZL이 TK보다 길어 보일 것이다.

그리하여 간격 BD는 간격 ZL보다, 그리고 간격 ZL은 간격 TK보다 커 보일 것이. 그러므로 간격이 같은 선들이라도 거리에 따라서 평행이 아닌 것처럼 보일 것이다.

   (왼쪽부터) Fig.4, Fig.10, Fig.11정리 4는 평행선들의 간격이 멀어질수록 좌우로 좁아져 보이는 이유를(Fig.4), 정리 10은 눈높이 아래에 있는 평면이 (가령 수평선처럼) 멀어질수록 점점 높아져 보이는 이유를(Fig.10), 그리고 정리 11은 눈높이 위에 있는 평면이 (가령 구름층처럼) 멀어질수록 낮아져 보이는 이유를 설명한다(Fig.11). 이 세 정리를 하나로 종합하여 우리 눈에 나타나는 대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은 그리드가 얻어진다.

원근법이란 결국 기하학의 객관적 도면을 화가의 주관적 광경으로 번역한 것이다.

즉, 기하학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기한다면, 원근법은 그것을 ‘보이는 대로’ 묘사한다고 할 수 있다.

     원근법 그리드 정리 8, 9는 네모난 사물이 먼 거리에서 왜 둥글게 보이는지 설명한다.

이 문제는 이미 고대 철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바 있다.

먼 훗날 데카르트 역시 이 현상을 근거로 들어 감각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먼저 Fig.8을 보자. 사물 GD 위로 시각광선 EG와 ED가 떨어진다.

GD를 뒤로 물려 AB의 위치에 놓으면, 광선 ED는 연장해도 점 B에 닿으나, 광선 EG를 연장하면 점 A 위로 비껴간다.

따라서 A는 안 보이게 된다.

이 원리를 사물의 네 귀퉁이마다 적용하면 Fig.9가 얻어진다.

시각광선은 점 B, G를 포함한 귀퉁이들을 비껴가기에 네모가 둥글게 보이는 것이다.

기하학이냐 물리학이냐  그밖에도 『광학』에서는 사물의 그림자를 이용해 높이를 측정하는 방식, 해가 없을 때 사물의 높이를 측정하는 방식, 움푹 파인 지형의 깊이를 측정하는 방법, 구체가 활처럼 보이는 이유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여기서 다시 위의 예로 돌아가보자. 네모난 사물이 멀리서 둥글게 보이는 이유를 에우클레이데스는 철저히 기하학적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 현상을 다른 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유출설에서는 이를 뻗어나가는 광선의 힘이 멀리 갈수록 떨어지기 때문이라 말할 것이고, 발산설이라면 원자막이 눈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손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에우클레이데스의 것이 기하학적 설명이라면, 유출설과 발산설의 설명은 물리적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물음이 떠오른다.

에우클레이데스가 말한 ‘시각광선’은 물리적 성격의 것인가? 아니면 관념적·기하학적 성격의 것인가? 물론 그의 『광학』은 “시각적 문제의 물리적·생리학적 측면을 모두 체계적으로 무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서 광선이 뻗어나간다’거나 ‘광선이 대상 위로 떨어진다’는 표현이 ‘시각 광선’이라는 낱말이 그저 은유로 사용된 게 아님을 강하게 시사한다.

에우클레이데스는 아마도 시각광선을 기하학적 직선이자 동시에 물리적 광선으로 여겼을 것이다.

이 추측이 맞는다면, 그는 엠페도클레스에서 출발하여 스토아학파로 이어지는 유출설의 전통 위에 서 있는 셈이다.

물론 눈이 빛을 뿜어낸다는 주장은 우리에게 매우 이상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로서는 그렇게 믿을 이유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동물들의 안광은 차치하고라도, 가령 바닥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다고 해보자. 만약 시각이 밖에서 눈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바늘은 저절로 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바늘을 찾는 일은 눈의 수고를 요한다.

3 따라서 그로서는 시각이 안광(眼光)의 능동적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스토아학파도 비슷한 논증을 제시한 적이 있다.

그들은 시각만이 아니라 청각도 능동적이라 여겼다.

 가령 여러 사람이 떠드는 시끄러운 방에서 특정한 소리를 들으려면 귀를 긴장시켜야 한다.

따라서 청각도 감관의 능동적 작용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에우클레이데스의 『광학』에서 시작된 기하학적 시각론의 전통은 알렉산드리아의 헤론Heron, AD c.10?c.70을 거쳐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 AD c.100?c.170 로 이어진다.

에우클레이데스가 ‘시각 광선’을 기하학적 구성이자 동시에 물리적 현상으로 보았듯이, 기하학적 모델이 다른 유형의 시각론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다음 장(章)에서 살펴볼 갈레노스는 시각에 대한 자신의 의학적 설명을 기하학적 설명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광학』의 마지막 후예인 프톨레마이오스는 기하학적 모델에 의학적 모델과 철학적 모델을 결합시켜 이 세가지 위대한 전통을 하나로 종합하려 했다.

4다음 주 계속창비의 다른 연재 보기     David C. Lindeberg, Theories of Vision from Al-Kindi to Kepler. The Unvisity of Chcago Press. 1976 p.1 . 이 구분법이 “오해를 일으키기 쉽다”는 지적도 있다.

(A. Mark Smith(1999) pp.46-47)Euclid, The Optics of Euclid. tr. Harry Edwin Burton In: Journal of the Optical Society of America. Vol. 35, No. 5. May, 1945. pp.357-372, p.357Arthur Zajonc, Catching the Light: The Entwined History of Light and Min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p.25 A. Mark Smith, Ptolemy and the Foundations of Ancient Mathematical Optics: A Source Based Guided Study. Transactions of the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New Series, Vol. 89, No. 3 (1999), pp.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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