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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휴가



 "국민"에 대한 "국군"의살육이 자행된 후주검이 빛고을 광주를 덮었다.

 '화려한 휴가'를 통해'암울한 독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 독재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처럼 죽음으로 맞선광주시민에 힘입어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5.18 민주화 운동 기념일"이 보수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국가 기념일로 제정되었다.

    2008년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집단이 다시 집권하였다.

 30년이 지난 지금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눈물은 마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이러한 "기억해야 할 눈물들"을 먹고 자랄 것이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지난주에 화려한 휴가를 화정의 화정시네마에서 감상을 하였었습니다.

음. 상당히 기분이 그렇더라구요. 뭐라할가. 아마 보신 분 들이라면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개봉중인 영화리뷰글에는 스포일러성 글은 거의 넣지 않지만  (밀양이 예외였죠)화려한휴가는 특별히 넣고 말고 할 것 도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꾸며졌기 때문에..광주시민운동을 기억하는 분들은 아마 어느 정도 영화의 흐름과 결말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을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의 역사를 중심으로 하는 영화는 전체적인 줄거리보다는..사건의 디테일과 인물의 감정표현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한 시선에 중점을 두게 되기 마련입니다.

만약 그러한 부분이 떨어지게 된다면, 정말 심심한 다큐멘터리가 되고 마는거죠.     그러한면에서 저는 화려한휴가가 무언가를 던져줄 수 있는 영화는 되지만,훌륭한영화나 웰메이드영화는 되지 못 한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사건의 디테일과 인물의 감정표현은 어느 정도 살렸지만, 인물의 감정표현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고..사건에 대한 시선이 너무 시민들에게 쏠려있던 점과 감독의 주체적인 시선이 너무 어영부영하게 나왔다는게 아쉬웠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대목 중 하나가 시민군이 폭도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경계선입니다.

안성기의 말에 김상경씨는 발끈을 하며, 마지막까지 김상경씨는 나는 폭도가 아니라고 말을 하지만,그러한 과정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 하였습니다.

조금 더 러닝타임을 늘리더라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다 명확히 집어주는 부분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매우 핵심적인 부분이고 중요한 부분인데어물쩡하게 넘어가게 되는 것 같아서 아쉬웠거든요. 사실 그 후의 일련의 역사적 과정들이 김상경이그런말을 하게 되는 것을 짐작하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의 주 시청층인 10-20 대의 젊은층들이안타깝게도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그러한 부분을 자세히 다루어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단지 군인들의 무차별적인 사격으로 인한 대응- 을 폭도냐 아니냐의 설명으로 한다면 아쉽네요.)물론 감독의 의중이 있었겠지만 시민의 편에서만 이야기를 다룬 것 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군인들의 입장도 어느 정도 나왔더라면 이른바 양심적 군인으로 나오는 김대위의 갈등을 조금 더나타내준다는가 흔들리는 일반병의 모습등을 보다 더 넣어주었다면 더 의미가 깊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제가 광주시민운동에 대해 조금이라도 언급이 된 영화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영화는 이창동감독님의 박하사탕입니다.

여기서 설경구씨는 광주에 투입된 군인으로 나오지요.박하사탕의 챕터 중에 하나의 챕터이며, 또한 하나의 씬을 뿐이지만 영화상에서 군인이었던 설경구씨가 아무 죄가 없던 아니 누구보다 순수하여 보이는 여학생을 사살하게 되고이에 넋을 잃은듯한 모습은 너무나 전해주던 바가 많았습니다.

사실 광주시민운동은 진압에 투입된 군인과 시민들 모두에게 상처로 남을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군인들이 몹쓸짓이라고 보일 행동을 하였지만 모든 군인이 그랬던 것 은 아니고,그들도 또한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 또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가운데..진압을 하게 된 군인들을 살인자로 몰아가는 것 또한 옳지는 못 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진정으로 생각하고 조명해야될 곳 은 진압을 할 군인이 아니라 그 군인들에게 명령을 내린.이른바 전장군이 되겠지요. 이러나 이러한 부분은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에 쉽게 다루어 질 수 없겠지만그렇다손치더라도 전장군에 대한 확실한 비판을 구도를 세우는 영화가 없는 것 은 안타깝습니다.

 영화의 배우들의 연기는 상당히 뛰어납니다.

평균치 자체가 무척 높습니다.

주연급인 김상경 안성기 이준기 이요원씨의 연기는 매우 뛰어난 수준과 괜찮은 수준정도의 선에서 보여줍니다.

이요원씨의 연기는 사실 너무 신비주의적인 부분이 강해서 이번에는 조금 더 감정의 폭발이 있어도 좋았을듯싶은데.나쁘지는 않고 괜찮은 수준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무언가 깊은 울림을 주는 그러한 깊이가 조금 아쉬웠습니다.

충분히 그러한 역활을 할 수 있을 극중 역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눈물방울을 안경밑으로 몰래 닦게 만든 신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나문희 선생님의 독백신이었습니다.

와.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정말 어찌보면 일반적인 연기와 다름이 없습니다.

감정이 막 복받혀서 오열을 하는 것 도 아니고.그렇다고 울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것도 아닌데. 그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현실적인 연기가.그리고 그 연기가 내표되어있는 그 깊은 울림이.. 아 이래서 배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화려한휴가의 의미는 저는 광주운동에 대해서 젊은층들이 인지하게 되었다는데 있다고 봅니다.

사실 이 영화가 개봉하면서 아이들과 얘기하면서 놀랐는데. 그 이유중에 하나가 광주운동에 대해 제대로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알고 있다손 치더라도 정말 대충. 그런일이 있었다드라. 정도 였다는 것 입니다.

왜 광주운동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않았다는데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일정수준 이상의 교육수준을 받은 사람들이고.이른바 엘리트라고 불리우는 대학에서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나 고등학생이나 아는건 매한가지라는점에서 였습니다.

아직도 광주 운동보다는 광주 사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것 자체가 이를 말해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P.S.나이가 있으신 분들과 말씀을 나누다 보면, 빨갱이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백번 양보하여서 광주운동 당시에 빨갱이 세력이 있다고 하여 봅시다.

그렇다면 나라가 해야할 처사가.. 무엇일까요.첫째로는 당신들이 침투해있다던 빨갱이를 잡아내지 못 한 책임 자체가 정부에 있는 것 이고.둘째로는 빨갱이 세력이 있다고 무고한 국민들까지 다 사살하는게 정부의 대응인 것 인지.은평구에 빨갱이가 있다고 하면 아주 은평구의 거주하는 시민들을 다 패서 죽일것인지...개인적으로 빨갱이가 있어서 군인을 동원해 진압을 한 것 이다라는 말은 어이가 없습니다.

국가가 해야할 일은 무고한 시민이 간첩에 이용당하거지 않게 보호하여주는것이지. 같이 사살하는것이 절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물론 어두움도 있었지만, 그의 업적자체를 인정하고 존경하고 있지만.(전 정치란 흑과백을 고르는 것 이 아닌, 백에 가까운 것을 고르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두환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지극히 비관적 입니다.

역대 대통령 중 에서 최악의 대통령을 고르라면 전두환대통령을 추천합니다

!          광주에 사는 택시기사 민우( 김상경 분).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끔찍이 아끼는 동생 진우(이준기 분)와 단둘이 사는 그는 오직 진우 하나만을 바라보며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진우와 같은 성당에 다니는 간호사 신애(이요원 분)를 맘에 두고 사춘기 소년 같은 구애를 펼치는 그는 작은 일상조차 소중하다.

이렇게 소소한 삶을 즐기는 이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다.

무고한 시민들이 총,칼로 무장한 시위대 진압군에게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한다.

눈 앞에서 억울하게 친구, 애인, 가족을 잃은 그들은 퇴역 장교 출신 흥수(안성기 분)을 중심으로 시민군을 결성해 결말을 알 수 없는 열흘 간의 사투를 시작 하는데…    광주국민들을 BBal 갱이다 .등등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짓거리는 분들이 많죠

특히 요즘 중,고등학생들이 생각하고 있는 광주민주화운동을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 유언비어좀 제발 퍼트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자

!! 영화 화려한휴가의 사건이 정말 왜곡된 , 북한에서 김정일이 시킨일이였다라고 가정을 했을때,과연 영화 화려한휴가가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요??? 두번째, 자국민들을 BBal갱이라고 말들이 맞다면그 가족들은 지금 TV에 출연도 못했을 지언정, 국가유공자 가족으로 등록도 안됐겠죠?? 당연한거 아니겠습니까!! 이 사건은 한사람  즉, 전두환 그사람이 군사정권을 잡기 위한 쿠테타입니다.


!어떻게 한사람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 자신의 자국민들을 죽이는 그런 사람이 아닌짓을 할 수가 있습니까

!! 전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다던 그 사람의 재산은 약 1조원이 넘는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29만원에서 1조원까지 가려면 재테크를 정말 열심히 해도 대대손손이 그 재테크를 물려 받아도 가능하지 못한일인데, 그 사람은 결국 자국민도 죽이면서 자국민들의 혈세를 자신의 비자금으로 만들고, 당신네 가족들은 호위호식 하게 살게 한 정말 인간으로써 할 수 없는 짓거리를 한 장본인이죠

!! 또한 육사 출신이라고 해서 재작년인가? 육사생도 사열도 하신 그분 정말 대단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정예 장교를 육성하는 육군사관학교 학교장부터 해서 정말 반성해야합니다.

 자국민을 죽인 사람을 , 선배라고 사열을 시킨다라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 이제 전두환 추징법을 통해 검찰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말 하늘이 도와주셔서 영화 화려한휴가에서희생당했던 분들의 원한을 풀어 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부사관이 아닙니다.

부사관 중사 출신입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나 , 주관적으로나 바로잡야 할것과, 그리고 사죄를 해야하는 부분은 마땅히 해야합니다.

 잘못된 역사, 그리고 왜곡된 부분은 제대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     - 영화 예고편 -  10.17. http://blog.naver.com/alsn76/220511169987  작전명, 화려한 휴가 ● 5월 18일 오전 : 5.18의 서막 12.12 쿠데타를 통해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의 신군부는'정권'의 장악을 위해 5개월 뒤 다시 쿠데타를 감행했으니, 이것이 바로 5.17 쿠데타였다.

 이때 신군부는 시국을 수습한다는 명목 아래, ?전국적으로 재야인사와 운동권 학생 등 총 2,700여 명을 체포하게 되는데,(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69)   광주에서도 경찰에 의해 재야인사들이 검거되었고, ?공수부대가 들이닥쳐 운동권 학생들을 붙잡아가고, 전남대와 조선대 캠퍼스를 점령해버렸다.

   이때 신군부는 광주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지역 정서상 커다란 반발이 예상되는 김대중을 체포했기 때문에 광주시민들의 저항이 남다를 것이라 예상했던 탓이다.

▲ 잡혀가는 김대중 : 드라마 제5공화국의 장면 그리고 다음날 정말로 광주에서 시위가 발생했다.

5월 18일 오전 10시, ?휴교령이 내려진 전남대 정문 앞에서 학생 100여 명이 공수부대원과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4) 공수부대 간부"휴교령이 내려졌으니 학생 여러분은 즉시 귀가하길 바란다.

" 학생"저, 도서관에서 공부하러 왔는디 휴교하더라도 도서관엔 들어갈 수 있잖아요." 공수부대 간부"상부의 지시다.

 학생들은 학내로 들어올 수 없다.

즉시 귀가하라!" 학생"아니, 비싼 등록금 내고 다니는 핵교인데, 왜 도서관에도 못 들어가게 한다요." 이렇게 옥신각신하고 있는 사이, 학생들의 수는 200

300명으로 불어났고, 갑작스러운 휴교에 불만을 품은 학생들은 곧 시위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계엄을 해제하라!  전두환은 퇴진하라!  김대중을 석방하라!" 그러다 일부 학생들은 공수부대를 향해 돌을 던지기도 했다.

"당장 꺼져라!"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었다.

화가 난 간부가 돌격 명령을 내렸으니, 공수부대 간부"돌격 앞으로!" 공수부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뛰쳐나오며, 학생들에게 곤봉을 휘둘렀던 것이다.

☞ (참고영상)그냥 곤봉이 아니었다.

쇠심이 박힌 살상용 곤봉으로 맞은 학생들은 저마다 피를 철철 흘렸다.

"이 새퀴들이!""뜨악!" 놀란 학생들은 서둘러 시내로 도망쳤고,"큰일 나부렸어. 군인들이 학생들을 겁나게 패고 있당게.""뭐셔?" 소식을 듣고 달려 나온 학생들이 가세하며, 오후 2

3시경 시위대는 2천여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계엄을 해제하라!  공수부대는 물러가라!" 700명이던 공수부대의 수보다 시위 군중의 수가 3배는 더 많아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과잉진압의 빌미만을 제공할 뿐이니, 공수부대원들은 이때부터 총에 대검을 꽂고  3

4명이 1개조가 되어 무력진압에 나서게 된다.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5) 지난 3개월 동안 지겹도록 연습한 '충정훈련'의 효과가 곧 나타날 순간이었다.

신군부는 왜 과격진압을 하려했던 것일까? 전두환"부마사태 때도 공수부대를 투입했더니 시끄러웠던 시위가 조용해졌어. ?앞으로 다른 곳에 시위가 발생하면.. 아예 초장부터 공수를 투입해서 속전속결로 무마시키는 거야." 하지만 광주시민들은 전두환의 바람과는 달리 잔인한 진압에 공포를 느끼기 보다는 분노하기 시작했고, 오히려 진압이 과격해질수록 시위도 거세졌다.

 전두환"아놔.."   ● 5월 18일 오후 : 공수부대원들의 광기 충정훈련의 효과란 어떠했을까? 공수부대원들은 학생처럼 보이는 청년들을 무조건 쫓아가서 곤봉으로 머리를 때리고, 가슴과 배를 군화발로 내질렀다.

 골목마다 뛰어다니면서 숨어 있는 청년을 발견하면, 일단 두들겨 패고 손목을 뒤로하여 포승줄로 묶고는 차에 던져 올렸다.

차 위에는 무전병이 기다리고 있다가 체포되어 올라온 즉시 발가벗기고  굴비 엮듯 엎드리게 하고는 군화발로 지졌다.

☞(참고영상)  거리에는 일시에 살기가 맴돌았고, 골목마다 비명과 흐느낌이 요란했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49) 어떤 경우는 막다른 골목까지 달아난 학생이드디어 잡히게 되자 무릎을 꿇으며 살려달라고 연신 빌었고,"너 이 새끼 잘 걸렸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이때 대문에 나와 내려다보던 할아버지가 너무도 애처로워 봐달라고 사정하자, 할아버지"워메, 한 번만 봐주시오잉

예?“ 공수부대원은 할아버지를 가차 없이 곤봉으로 내리쳤으니,"비켜 이 새끼야!!" 할아버지는 피를 뒤집어쓰며 고꾸라졌고쫓겼던 학생은 이에 분노하여 돌을 집어 들었으나"개 자식들!" 공수부대원들은 가차 없이 곤봉으로 후려친 뒤에"이 새퀴가! 대검으로 등을 쑤시고는 다리를 잡아 질질 끌고 길거리로 나갔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49) 공수대원들은 시위대는 모두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라 교육받은 탓에시민이고 여자고 노인이고 가리지 않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박남선,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p.121

122)공수부대원들이 여고생을 붙잡고, 교복 상의를 찢으면서 희롱을 하고 있었다.

"야 이 씨X년아, 어디서 데모질이야?""왜 이래요? 이러지 마세요." 그러자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만류하고 나섰다.

 할머니"아이고, 내 새끼.. 왜들 이러요?"  하지만 공수부대원은 할머니의 배와 다리를 걷어찼고 공수부대원"이 씨X년은 또 뭐냐? 너도 죽고 싶어?"할머니가 쓰러지자 군화발로 얼굴을 뭉개버렸다.

그리고 여학생의 젖가슴을 대검으로 그어 버렸고, ?여학생의 가슴에서는 선혈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24) 주위의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지켜보다가 공수부대가 떠나자 놀라움과 두려움에 모두들 울었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51)"요거이 시방 사람의 짓이여?""워매! 워매! 어찌 저럴 수가 있단 말여?""나는 왜정 때에 무서운 순사들도 많이 보고 6.25 때 공산당도 겪어봤지만.. ?저렇게 잔인한 놈들은 첨 봐부렸소!""나는 월남전에 참전해서 베트콩도 죽여봤지만, 저렇게 잔인하지는 않았당게라." 지나가던 신혼부부도 애꿎은 화를 입어야 했다.

"너희들은 뭐냐?""우린 신혼부부라요. 참말이어라.""뭐야, 이 새끼, 거짓말을 해? 데모했지?""퍽!""이 년은 또 뭐야?"그렇게 신혼부부의 머리를 피투성이로 만들더니 군인들은 낄낄거리며 떠났다.

?이를 본 시민들은 더욱 치를 떨어야만 했다.

폭행을 가하면서 즐기는 듯한 표정, 묘한 미소로 서로 낄낄거리며 진압하는 모습은 과감한 타격을 넘어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25

126) 그리고 금남로에서 최초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28세의 청년 김경철은 광주농아협회 관리부장으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우였다.

▲ 김경철 공수부대원"이 새끼 뭐야?" 김경철"어버버버!!" 공수부대원"이 새끼가 말을 안 해?" 김경철"어버버버 (살려주세요)" 공수부대원"이 새끼가 죽고 싶어 환장했나? 어디서 개수작이야."퍽퍽퍽퍽! 그리고 그의 시신은 군경 트럭에 의해 실려 갔다.

 당시 공수부대의 주축인 하사관들의 경우, 상당수가 월남전 경력을 갖고 있어서잔인한 행위가 몸에 배고 그에 대한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25

126) 5월 20일 공수부대에 붙잡혀 끌려간 어느 시민의 증언이다.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오월항쟁사료전집 p.1451)"공수부대원들은 상당수가 월남전 얘기를 입에 올리더군요. 그 중 한 명은 대검을 빼어들고..""이 대검은 월남에서 베트콩 여자 가슴을 40개 자른 기념 칼이다!""이렇게 자랑하면서 그 대검으로 앞사람의 더벅머리를 탁 쳤어요.그러자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면서 스포츠 머리처럼 되더군요."    ● 5월 19일 : 가열되는 시위 날이 어두워지면서 군의 시위 진압은 종료되었으나, 2천여 명의 대학생들은 오후 9시까지 산발적으로 시위를 계속했고, 일부 군인들은 젊은 남녀가 있는 여관까지 난입해서청년들을 붙잡아가기도 했었다.

"모두 나와!" "나와!!""뭔 소리당가?""나오라고 새끼야!"이날 하루 동안에만 총 270여 명이 트럭에 실려갔다.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6)   그리고 그날 밤, 광주 쌍촌동 전투교육사령부에서는 이런 말들이 오고 갔다.

 윤흥정 중장"지금 강경진압하자는 거요? 정 장군." 정호용 (특전사령관)"마, 계엄 확대에도 이래 소요가 계속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겠십니꺼? ?계엄군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초기에 군중심리를 가라앉혀야 옳지 않겠냐, ?이 말입니더. 그러니 강경하게 시위대를 진압하겠십니더." 윤흥정"..." 정호용은 한 술 더 떠 공수부대 1,146명을 광주로 증파시켰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시위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버스와 택시를 검문검색하기 시작하였으니 이로 인해 시민들의 출근길은 공포와 불편함, 분노로 얼룩졌고 청년들은 영문도 모른 채 현장에서 붙잡혀가야만 했다.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6)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또다시 전개되었고, 시위대는 거리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돌과 각목, 화염병으로 맞섰다.

 정호용"아니 이것들이!" 그렇게 시위대가 2천여 명으로 늘어나자, 결국 공수부대는 탱크까지 동원했고, 전날과 마찬가지로 시내 중심부 일대를 샅샅이 수색해 ?체포하면 곤봉으로 때리고 총검으로 난자질했다.

"이 새끼들이!" "퍽퍽퍽!" 당시 공수부대의 진압이 어찌나 잔인했던지, ?진압하러 나온 경찰조차 시민에게 울먹이며 애원할 정도였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60) 경찰"지발 집으로 돌아가랑 게요. 공수부대한테 걸리면 다 디져부려요."당시 시민들의 증언이다.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오월항쟁사료전집 p.1112)     이선(당시 23세)"아따, 공수부대 겁나게 무서웠지라. 도망가는 사람의 등을 대검으로 콱콱 찔러뿔고, ?잡은 사람을 때릴 때도 얼굴이나 머리통를 주로 때렸지라." 김후식"여학생들을 질질 끌고 가 발로 차고 욕설을 하고..심지어 시위대를 풀어준 경찰관조차 초주검이 되도록 두들겨 팼당게요."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5)   이때 때리지 말라고 외쳤다는 이유로 무등 고시학원에 들이닥쳐수업을 받고 있던 학원생들을 마구잡이로 구타하고 끌고 가기도 했고,(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7) 이런 소식들에 고교생들까지 분노해 수업을 집단 거부하고 ?시내로 나가 싸울 것을 결의했을 정도여서,결국 교육청은 광주 일대의 초중고교에 무기한 휴교조치를 내리게 된다.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8) 한편 이날부터 시민들도 시위에 대거 참여하면서 시위의 양상이 크게 달라지게 되는데,어제까지 일방적으로 쫓겨 다니던 시위대였다면,1만여 명을 넘어서자 점차 공세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공수부대 물러가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당시 트럭에 끌려간 시위대는 이후 어떻게 됐을까?광주 상무대 교육훈련소로 끌려온 이들은 다음과 같은 고문들을 받았다고 한다.

정말이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고 믿기 어려운 고문들이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259

262)① 워커발로 얼굴 문질러버리기② 눈동자를 움직이면 담뱃불로 얼굴이나 눈알을 지지는 '재떨이 만들기'③ 발가락을 대검으로 찍는 '닭발요리'④ 사람이 가득 찬 트럭 속에 최루탄 분말 뿌리기⑤ 두 사람을 마주 보게 하고 몽둥이로 가슴 때리기⑥ 며칠째 물 한 모금 못 먹어 탈진한 사람에게 자기 오줌 싸서 먹이기⑦ 화장실까지 포복해서 혀끝에 똥 묻혀오게 하기⑧ 송곳으로 맨살 후벼파기⑨ 대검으로 맨살 포 뜨기⑩ 손톱 밑으로 송곳 밀어 넣기 이때 고문을 하면서 장교들은 이런 말들을 내뱉었다고 한다.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p.1453)"전라도 새끼 40만은 전부 없애버려도 끄떡없어!""너 김대중이한테 지령 받았지?"   "김대중이가 니 애비냐?" 때문에 당시 끌려와 고문을 받았던 교사 출신 황남열은 끊임없이 ?"우리 국민성이 이토록 잔인한가?"를 반문해야만 했었다.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p.997)    ● 5월 20일 : 화염방사기·탱크·실탄사격의 등장 다음날 20일, 또다시 시민·학생들은 시위에 나섰다.

 이번에는 매우 조직적이었다.

200여 대의 택시·버스 운전사들이 차량을 몰고 헤드라이트를 켜고 시위에 동참한 것.   도대체 왜 이런 모습들이 나타나게 된 걸까?5월 19일에 이런 일이 있었다.

도로 한복판에 머리가 으깨지고 팔이 부러져온통 피범벅이 된 부상자를 목격했고"워매! 이것이 뭣이당가." 택시기사는 서둘러 부상자를 차에 실었다.

"아이고메, 이 사람 다 죽어가네." 하지만 이때 공수부대원들이 부상자를 내려놓으라고 명령했고"야! 그 새끼 내려놔." 기사는 안타깝게 애원했다.

"아따 , 시방 사람이 죽어가는디 병원으로 옮겨가야 않겄소." 그러나 공수부대원은 차의 유리창을 부수고 운전기사를 끌어내려 대검으로 무참하게 배를 찔러 살해했다.

 이런 식으로 최소한 3명의 운전기사가 살해당했는데,이것이 바로 20일 차량 시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72)"우리만큼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많이 보고 많이 듣고 하는 사람들이 또 어디 있당가요.""그란디 공수놈들은 사람이 아니에요. 에잇! 찢어죽일 놈들!그라서 택시기사들끼리 의기투합해서 모인거랑게요." 이러한 차량시위야 말로, 시위과정에서 나타난 최초의 조직적인 운동이었다.

 하지만 이날 진압군의 대응 또한 최고조에 올랐다.

[화려한휴가] 세상에. 왜..


?대검만으로도 모자랐던지 '화염방사기'를 사용하여2시 30분경 공수부대가 쏜 화염방사기에 여러 명의 시민들이 그 자리에서 타 죽기도 했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37) 당시 한 특전사의 회고록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서중석, 한국현대사 p.425) 공수부대원"야, 넌 왜 시위에 참여한 거야?" 여학생 "군인들한테 맞아 죽은 시체를 보니깐, 나도 모르게.." 공수부대원"어떻게 죽었는데?" 여학생"마치 튀김가루를 묻혀 튀긴 듯 사람 시체가 페인트로 범벅이 돼있었어라." 공수부대원"뭐? 페인트?" 그 말을 들은 공수부대원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당시 군에서는 시위 주동자를 잡기 위해 화염방사기에 페인트를 넣고 쏘아 맞힌 다음 잡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었으니, 필시 그렇게 희생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밤 8시 40분쯤에 MBC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전날 밤 TV를 본 시민들은 자신들의 시위가 전혀 방송되지 않은 것에 분노를 터트린 것이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77)  ▲ 전소된 광주 MBC"계엄군 물러가라"  "관제언론 MBC를 불태워라" 하지만 불에 타고 있는 MBC 쪽으로 계엄군의 탱크가 무서운 속도로 쳐들어왔고, ?이때 미쳐 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탱크에 밟혀 처절한 비명을 울렸으니그렇게 깔린 사람들은 그만 육신이 산산이 으깨지고 말았다.

(박남선,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p.42

43)"뜨아!" MBC 외에 KBS와 세무서도 불에 탔다.

훗날 신군부는 이 방화를 '폭동'의 증거로 TV를 통해 반복해서 보여준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45)그리고 이날 밤 11시부터 소총 사격이 실시되게 되는데, 이때 공수대 대원들에게는 각자 실탄 120발씩이 지급되었다.

   ● 5월 21일 : 피의 금남로 실탄사격·탱크·화염방사기가 투입되던 20일,그리고 21일 오전에서는 헬기가 땅을 향해 '기총사격'을 해댔다.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p.188)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광주 시민들이 그토록 죽을 죄를 지었단 말인가? ?그렇더라도 5월 21일 오전 10시, 금남로에는 10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들었다.

   자칫하면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시민들은 정오까지 ?공수부대를 시 외곽으로 철수시키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약속한 정오가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속았다"며 흥분한 시민들 중 일부가 한 시간 남짓 실랑이를 벌였다.

"야 이 놈들아! 왜 약속을 안 지키는 거냐?" 그러더니 오후 1시 정각,건물 외부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애국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 그러나 그건 집단 발포를 알리는 신호였으니,"탕탕탕탕!"▲ 백무현, 만화 전두환 1권 p.162 시민들은 갑작스러운 발포에 어리벙벙한 채로 정면으로 맞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때 현장에서 최소한 54명의 사망자와 500명 이상의 총상자가 발생했다.

?(5.18특별취재반, 正史 5.18 상권 p.284

285)   당시 목격자의 증언이다.

(박남선,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p.49) 박남선"아스팔트 바닥 위에서는 부상자들이 살려달라고 처절하게 애원하고 있어서..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을 구하려고 어떤 시민이 뛰어나가게 되었는데,"  박남선"그라면 공수놈들이 그런 시민에게 사격을 가해 사살해버리는 거예요.부근 건물의 벽에 바짝 붙어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시민들은 모두가 울었죠." 그리고 1시 30분경, 한 청년이 웃통을 벗고 태극기를 높이 휘날리며 도청을 향해 달려들었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50)"광주 만세!" 모든 시민들이 긴장되어 그를 응시하는 가운데한 발의 총소리와 함께 피가 튀며 청년의 목이 꺾어졌다.

이 광경을 본 모든 시민들은 모두가 온몸을 바르르 떨어야만 했다.

 이때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임산 8개월의 임산부(최미애, 당시 24세)도조준사격에 머리를 맞고 사망했다.

"아이고 내 새끼 미애야!! 아이고 아이고! 워매 워매!! ?뱃속에 아기가 뛰고 있네. 아기는 살려야지, 병원에 연락 좀 해주시오잉."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기는 살리지 못했다.

  당시 광주 120여 개의 개인병원과 3개의 종합병원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상자들이 밀려들어 왔고피가 모자라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헌혈을 했다.

▲ 헌혈을 하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 이때 여고생 박금희(18세) 양도 광주기독병원에서 헌혈을 했는데,헌혈을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 진압군의 총에 맞고 살해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  (참고영상)   ● 5월 21일 저녁 : 시민군의 도청 함락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의 선택은 '무력항쟁'이었다.

시민들은 총을 얻기 위해 시내, 시외의 경찰서·동사무소의 무기고를 습격하여   총, 실탄, 폭약 등을 대량 습득했으니, 이때 피탈한 소총이 총 5,400정,?수류탄이 1천 개가 넘었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50) 또 방위산업체인 '아세아자동차'를 털어 200여 대의 차량을 탈취하고는나주, 화순 등으로 소식을 알리러 나갔다.

  이들 무장 시위대는 스스로를 '시민군'이라 불렀다.

 하지만 '부마항쟁'이 그러했듯이 시위의 주축은 대부분 도시의 빈민들이었고,중산층들은 무장투쟁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중산층1"공권력에 대항했다가 나중에 어찌되는 줄 몰러?"  중산층2"그러게, 저러면 위험한디.." 따라서 총을 잡은 시민군들은 대부분 공사장 인부, 목수, 구두닦이, 넝마주이, 술집 웨이터, 부랑아, 일용품팔이 등이었고연련층은 다양해서, 교련복을 입은 고등학생에서 가끔은 예비군복을 입은 장년층들도 있었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121

122)   어쨌거나, 그렇게 시민군들이 무장을 하자 도청을 지키던 공수부대원들은 갑자기 곤혹스러워졌다.

특히 도청 인군의 전남대병원 옥상에서는 기관총을 든 시민군까지 목격되었다.

"큰일 났습니다.

""뭐야?""저기 병원 위를 보십시오!""저건 기관총이잖아. 저 새끼들이 언제 저걸 가져왔지? 제기랄, 여기 있다간 벌집이 되겠구먼." 그리하여 상부에서는 도청 철수를 명령하게 되어21일 오후 6시, 진압군은 모두 도청을 떠났고, 도청을 접수한 시민군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도청을 접수했다!" "공수부대 놈들을 몰아냈다!“ 이로써 한국 현대사 이래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10.17. http://blog.naver.com/alsn76/220511169987  작전명, 화려한 휴가 ● 5월 18일 오전 : 5.18의 서막 12.12 쿠데타를 통해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의 신군부는'정권'의 장악을 위해 5개월 뒤 다시 쿠데타를 감행했으니, 이것이 바로 5.17 쿠데타였다.

 이때 신군부는 시국을 수습한다는 명목 아래, ?전국적으로 재야인사와 운동권 학생 등 총 2,700여 명을 체포하게 되는데,(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69)   광주에서도 경찰에 의해 재야인사들이 검거되었고, ?공수부대가 들이닥쳐 운동권 학생들을 붙잡아가고, 전남대와 조선대 캠퍼스를 점령해버렸다.

   이때 신군부는 광주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지역 정서상 커다란 반발이 예상되는 김대중을 체포했기 때문에 광주시민들의 저항이 남다를 것이라 예상했던 탓이다.

▲ 잡혀가는 김대중 : 드라마 제5공화국의 장면 그리고 다음날 정말로 광주에서 시위가 발생했다.

5월 18일 오전 10시, ?휴교령이 내려진 전남대 정문 앞에서 학생 100여 명이 공수부대원과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4) 공수부대 간부"휴교령이 내려졌으니 학생 여러분은 즉시 귀가하길 바란다.

" 학생"저, 도서관에서 공부하러 왔는디 휴교하더라도 도서관엔 들어갈 수 있잖아요." 공수부대 간부"상부의 지시다.

 학생들은 학내로 들어올 수 없다.

즉시 귀가하라!" 학생"아니, 비싼 등록금 내고 다니는 핵교인데, 왜 도서관에도 못 들어가게 한다요." 이렇게 옥신각신하고 있는 사이, 학생들의 수는 200

300명으로 불어났고, 갑작스러운 휴교에 불만을 품은 학생들은 곧 시위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계엄을 해제하라!  전두환은 퇴진하라!  김대중을 석방하라!" 그러다 일부 학생들은 공수부대를 향해 돌을 던지기도 했다.

"당장 꺼져라!"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었다.

화가 난 간부가 돌격 명령을 내렸으니, 공수부대 간부"돌격 앞으로!" 공수부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뛰쳐나오며, 학생들에게 곤봉을 휘둘렀던 것이다.

☞ (참고영상)그냥 곤봉이 아니었다.

쇠심이 박힌 살상용 곤봉으로 맞은 학생들은 저마다 피를 철철 흘렸다.

"이 새퀴들이!""뜨악!" 놀란 학생들은 서둘러 시내로 도망쳤고,"큰일 나부렸어. 군인들이 학생들을 겁나게 패고 있당게.""뭐셔?" 소식을 듣고 달려 나온 학생들이 가세하며, 오후 2

3시경 시위대는 2천여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계엄을 해제하라!  공수부대는 물러가라!" 700명이던 공수부대의 수보다 시위 군중의 수가 3배는 더 많아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과잉진압의 빌미만을 제공할 뿐이니, 공수부대원들은 이때부터 총에 대검을 꽂고  3

4명이 1개조가 되어 무력진압에 나서게 된다.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5) 지난 3개월 동안 지겹도록 연습한 '충정훈련'의 효과가 곧 나타날 순간이었다.

신군부는 왜 과격진압을 하려했던 것일까? 전두환"부마사태 때도 공수부대를 투입했더니 시끄러웠던 시위가 조용해졌어. ?앞으로 다른 곳에 시위가 발생하면.. 아예 초장부터 공수를 투입해서 속전속결로 무마시키는 거야." 하지만 광주시민들은 전두환의 바람과는 달리 잔인한 진압에 공포를 느끼기 보다는 분노하기 시작했고, 오히려 진압이 과격해질수록 시위도 거세졌다.

 전두환"아놔.."   ● 5월 18일 오후 : 공수부대원들의 광기 충정훈련의 효과란 어떠했을까? 공수부대원들은 학생처럼 보이는 청년들을 무조건 쫓아가서 곤봉으로 머리를 때리고, 가슴과 배를 군화발로 내질렀다.

 골목마다 뛰어다니면서 숨어 있는 청년을 발견하면, 일단 두들겨 패고 손목을 뒤로하여 포승줄로 묶고는 차에 던져 올렸다.

차 위에는 무전병이 기다리고 있다가 체포되어 올라온 즉시 발가벗기고  굴비 엮듯 엎드리게 하고는 군화발로 지졌다.

☞(참고영상)  거리에는 일시에 살기가 맴돌았고, 골목마다 비명과 흐느낌이 요란했다.

[화려한휴가] 짱입니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49) 어떤 경우는 막다른 골목까지 달아난 학생이드디어 잡히게 되자 무릎을 꿇으며 살려달라고 연신 빌었고,"너 이 새끼 잘 걸렸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이때 대문에 나와 내려다보던 할아버지가 너무도 애처로워 봐달라고 사정하자, 할아버지"워메, 한 번만 봐주시오잉

예?“ 공수부대원은 할아버지를 가차 없이 곤봉으로 내리쳤으니,"비켜 이 새끼야!!" 할아버지는 피를 뒤집어쓰며 고꾸라졌고쫓겼던 학생은 이에 분노하여 돌을 집어 들었으나"개 자식들!" 공수부대원들은 가차 없이 곤봉으로 후려친 뒤에"이 새퀴가! 대검으로 등을 쑤시고는 다리를 잡아 질질 끌고 길거리로 나갔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49) 공수대원들은 시위대는 모두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라 교육받은 탓에시민이고 여자고 노인이고 가리지 않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박남선,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p.121

122)공수부대원들이 여고생을 붙잡고, 교복 상의를 찢으면서 희롱을 하고 있었다.

"야 이 씨X년아, 어디서 데모질이야?""왜 이래요? 이러지 마세요." 그러자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만류하고 나섰다.

 할머니"아이고, 내 새끼.. 왜들 이러요?"  하지만 공수부대원은 할머니의 배와 다리를 걷어찼고 공수부대원"이 씨X년은 또 뭐냐? 너도 죽고 싶어?"할머니가 쓰러지자 군화발로 얼굴을 뭉개버렸다.

그리고 여학생의 젖가슴을 대검으로 그어 버렸고, ?여학생의 가슴에서는 선혈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24) 주위의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지켜보다가 공수부대가 떠나자 놀라움과 두려움에 모두들 울었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51)"요거이 시방 사람의 짓이여?""워매! 워매! 어찌 저럴 수가 있단 말여?""나는 왜정 때에 무서운 순사들도 많이 보고 6.25 때 공산당도 겪어봤지만.. ?저렇게 잔인한 놈들은 첨 봐부렸소!""나는 월남전에 참전해서 베트콩도 죽여봤지만, 저렇게 잔인하지는 않았당게라." 지나가던 신혼부부도 애꿎은 화를 입어야 했다.

"너희들은 뭐냐?""우린 신혼부부라요. 참말이어라.""뭐야, 이 새끼, 거짓말을 해? 데모했지?""퍽!""이 년은 또 뭐야?"그렇게 신혼부부의 머리를 피투성이로 만들더니 군인들은 낄낄거리며 떠났다.

?이를 본 시민들은 더욱 치를 떨어야만 했다.

폭행을 가하면서 즐기는 듯한 표정, 묘한 미소로 서로 낄낄거리며 진압하는 모습은 과감한 타격을 넘어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25

126) 그리고 금남로에서 최초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28세의 청년 김경철은 광주농아협회 관리부장으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우였다.

▲ 김경철 공수부대원"이 새끼 뭐야?" 김경철"어버버버!!" 공수부대원"이 새끼가 말을 안 해?" 김경철"어버버버 (살려주세요)" 공수부대원"이 새끼가 죽고 싶어 환장했나? 어디서 개수작이야."퍽퍽퍽퍽! 그리고 그의 시신은 군경 트럭에 의해 실려 갔다.

 당시 공수부대의 주축인 하사관들의 경우, 상당수가 월남전 경력을 갖고 있어서잔인한 행위가 몸에 배고 그에 대한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25

126) 5월 20일 공수부대에 붙잡혀 끌려간 어느 시민의 증언이다.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오월항쟁사료전집 p.1451)"공수부대원들은 상당수가 월남전 얘기를 입에 올리더군요. 그 중 한 명은 대검을 빼어들고..""이 대검은 월남에서 베트콩 여자 가슴을 40개 자른 기념 칼이다!""이렇게 자랑하면서 그 대검으로 앞사람의 더벅머리를 탁 쳤어요.그러자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면서 스포츠 머리처럼 되더군요."    ● 5월 19일 : 가열되는 시위 날이 어두워지면서 군의 시위 진압은 종료되었으나, 2천여 명의 대학생들은 오후 9시까지 산발적으로 시위를 계속했고, 일부 군인들은 젊은 남녀가 있는 여관까지 난입해서청년들을 붙잡아가기도 했었다.

"모두 나와!" "나와!!""뭔 소리당가?""나오라고 새끼야!"이날 하루 동안에만 총 270여 명이 트럭에 실려갔다.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6)   그리고 그날 밤, 광주 쌍촌동 전투교육사령부에서는 이런 말들이 오고 갔다.

 윤흥정 중장"지금 강경진압하자는 거요? 정 장군." 정호용 (특전사령관)"마, 계엄 확대에도 이래 소요가 계속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겠십니꺼? ?계엄군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초기에 군중심리를 가라앉혀야 옳지 않겠냐, ?이 말입니더. 그러니 강경하게 시위대를 진압하겠십니더." 윤흥정"..." 정호용은 한 술 더 떠 공수부대 1,146명을 광주로 증파시켰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시위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버스와 택시를 검문검색하기 시작하였으니 이로 인해 시민들의 출근길은 공포와 불편함, 분노로 얼룩졌고 청년들은 영문도 모른 채 현장에서 붙잡혀가야만 했다.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6)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또다시 전개되었고, 시위대는 거리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돌과 각목, 화염병으로 맞섰다.

 정호용"아니 이것들이!" 그렇게 시위대가 2천여 명으로 늘어나자, 결국 공수부대는 탱크까지 동원했고, 전날과 마찬가지로 시내 중심부 일대를 샅샅이 수색해 ?체포하면 곤봉으로 때리고 총검으로 난자질했다.

"이 새끼들이!" "퍽퍽퍽!" 당시 공수부대의 진압이 어찌나 잔인했던지, ?진압하러 나온 경찰조차 시민에게 울먹이며 애원할 정도였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60) 경찰"지발 집으로 돌아가랑 게요. 공수부대한테 걸리면 다 디져부려요."당시 시민들의 증언이다.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오월항쟁사료전집 p.1112)     이선(당시 23세)"아따, 공수부대 겁나게 무서웠지라. 도망가는 사람의 등을 대검으로 콱콱 찔러뿔고, ?잡은 사람을 때릴 때도 얼굴이나 머리통를 주로 때렸지라." 김후식"여학생들을 질질 끌고 가 발로 차고 욕설을 하고..심지어 시위대를 풀어준 경찰관조차 초주검이 되도록 두들겨 팼당게요."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5)   이때 때리지 말라고 외쳤다는 이유로 무등 고시학원에 들이닥쳐수업을 받고 있던 학원생들을 마구잡이로 구타하고 끌고 가기도 했고,(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7) 이런 소식들에 고교생들까지 분노해 수업을 집단 거부하고 ?시내로 나가 싸울 것을 결의했을 정도여서,결국 교육청은 광주 일대의 초중고교에 무기한 휴교조치를 내리게 된다.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8) 한편 이날부터 시민들도 시위에 대거 참여하면서 시위의 양상이 크게 달라지게 되는데,어제까지 일방적으로 쫓겨 다니던 시위대였다면,1만여 명을 넘어서자 점차 공세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공수부대 물러가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당시 트럭에 끌려간 시위대는 이후 어떻게 됐을까?광주 상무대 교육훈련소로 끌려온 이들은 다음과 같은 고문들을 받았다고 한다.

정말이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고 믿기 어려운 고문들이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259

262)① 워커발로 얼굴 문질러버리기② 눈동자를 움직이면 담뱃불로 얼굴이나 눈알을 지지는 '재떨이 만들기'③ 발가락을 대검으로 찍는 '닭발요리'④ 사람이 가득 찬 트럭 속에 최루탄 분말 뿌리기⑤ 두 사람을 마주 보게 하고 몽둥이로 가슴 때리기⑥ 며칠째 물 한 모금 못 먹어 탈진한 사람에게 자기 오줌 싸서 먹이기⑦ 화장실까지 포복해서 혀끝에 똥 묻혀오게 하기⑧ 송곳으로 맨살 후벼파기⑨ 대검으로 맨살 포 뜨기⑩ 손톱 밑으로 송곳 밀어 넣기 이때 고문을 하면서 장교들은 이런 말들을 내뱉었다고 한다.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p.1453)"전라도 새끼 40만은 전부 없애버려도 끄떡없어!""너 김대중이한테 지령 받았지?"   "김대중이가 니 애비냐?" 때문에 당시 끌려와 고문을 받았던 교사 출신 황남열은 끊임없이 ?"우리 국민성이 이토록 잔인한가?"를 반문해야만 했었다.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p.997)    ● 5월 20일 : 화염방사기·탱크·실탄사격의 등장 다음날 20일, 또다시 시민·학생들은 시위에 나섰다.

 이번에는 매우 조직적이었다.

200여 대의 택시·버스 운전사들이 차량을 몰고 헤드라이트를 켜고 시위에 동참한 것.   도대체 왜 이런 모습들이 나타나게 된 걸까?5월 19일에 이런 일이 있었다.

도로 한복판에 머리가 으깨지고 팔이 부러져온통 피범벅이 된 부상자를 목격했고"워매! 이것이 뭣이당가." 택시기사는 서둘러 부상자를 차에 실었다.

"아이고메, 이 사람 다 죽어가네." 하지만 이때 공수부대원들이 부상자를 내려놓으라고 명령했고"야! 그 새끼 내려놔." 기사는 안타깝게 애원했다.

"아따 , 시방 사람이 죽어가는디 병원으로 옮겨가야 않겄소." 그러나 공수부대원은 차의 유리창을 부수고 운전기사를 끌어내려 대검으로 무참하게 배를 찔러 살해했다.

 이런 식으로 최소한 3명의 운전기사가 살해당했는데,이것이 바로 20일 차량 시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72)"우리만큼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많이 보고 많이 듣고 하는 사람들이 또 어디 있당가요.""그란디 공수놈들은 사람이 아니에요. 에잇! 찢어죽일 놈들!그라서 택시기사들끼리 의기투합해서 모인거랑게요." 이러한 차량시위야 말로, 시위과정에서 나타난 최초의 조직적인 운동이었다.

 하지만 이날 진압군의 대응 또한 최고조에 올랐다.

?대검만으로도 모자랐던지 '화염방사기'를 사용하여2시 30분경 공수부대가 쏜 화염방사기에 여러 명의 시민들이 그 자리에서 타 죽기도 했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37) 당시 한 특전사의 회고록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서중석, 한국현대사 p.425) 공수부대원"야, 넌 왜 시위에 참여한 거야?" 여학생 "군인들한테 맞아 죽은 시체를 보니깐, 나도 모르게.." 공수부대원"어떻게 죽었는데?" 여학생"마치 튀김가루를 묻혀 튀긴 듯 사람 시체가 페인트로 범벅이 돼있었어라." 공수부대원"뭐? 페인트?" 그 말을 들은 공수부대원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당시 군에서는 시위 주동자를 잡기 위해 화염방사기에 페인트를 넣고 쏘아 맞힌 다음 잡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었으니, 필시 그렇게 희생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밤 8시 40분쯤에 MBC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전날 밤 TV를 본 시민들은 자신들의 시위가 전혀 방송되지 않은 것에 분노를 터트린 것이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77)  ▲ 전소된 광주 MBC"계엄군 물러가라"  "관제언론 MBC를 불태워라" 하지만 불에 타고 있는 MBC 쪽으로 계엄군의 탱크가 무서운 속도로 쳐들어왔고, ?이때 미쳐 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탱크에 밟혀 처절한 비명을 울렸으니그렇게 깔린 사람들은 그만 육신이 산산이 으깨지고 말았다.

(박남선,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p.42

43)"뜨아!" MBC 외에 KBS와 세무서도 불에 탔다.

훗날 신군부는 이 방화를 '폭동'의 증거로 TV를 통해 반복해서 보여준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45)그리고 이날 밤 11시부터 소총 사격이 실시되게 되는데, 이때 공수대 대원들에게는 각자 실탄 120발씩이 지급되었다.

   ● 5월 21일 : 피의 금남로 실탄사격·탱크·화염방사기가 투입되던 20일,그리고 21일 오전에서는 헬기가 땅을 향해 '기총사격'을 해댔다.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p.188)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광주 시민들이 그토록 죽을 죄를 지었단 말인가? ?그렇더라도 5월 21일 오전 10시, 금남로에는 10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들었다.

   자칫하면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시민들은 정오까지 ?공수부대를 시 외곽으로 철수시키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약속한 정오가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속았다"며 흥분한 시민들 중 일부가 한 시간 남짓 실랑이를 벌였다.

"야 이 놈들아! 왜 약속을 안 지키는 거냐?" 그러더니 오후 1시 정각,건물 외부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애국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 그러나 그건 집단 발포를 알리는 신호였으니,"탕탕탕탕!"▲ 백무현, 만화 전두환 1권 p.162 시민들은 갑작스러운 발포에 어리벙벙한 채로 정면으로 맞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때 현장에서 최소한 54명의 사망자와 500명 이상의 총상자가 발생했다.

?(5.18특별취재반, 正史 5.18 상권 p.284

285)   당시 목격자의 증언이다.

(박남선,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p.49) 박남선"아스팔트 바닥 위에서는 부상자들이 살려달라고 처절하게 애원하고 있어서..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을 구하려고 어떤 시민이 뛰어나가게 되었는데,"  박남선"그라면 공수놈들이 그런 시민에게 사격을 가해 사살해버리는 거예요.부근 건물의 벽에 바짝 붙어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시민들은 모두가 울었죠." 그리고 1시 30분경, 한 청년이 웃통을 벗고 태극기를 높이 휘날리며 도청을 향해 달려들었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50)"광주 만세!" 모든 시민들이 긴장되어 그를 응시하는 가운데한 발의 총소리와 함께 피가 튀며 청년의 목이 꺾어졌다.

이 광경을 본 모든 시민들은 모두가 온몸을 바르르 떨어야만 했다.

 이때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임산 8개월의 임산부(최미애, 당시 24세)도조준사격에 머리를 맞고 사망했다.

"아이고 내 새끼 미애야!! 아이고 아이고! 워매 워매!! ?뱃속에 아기가 뛰고 있네. 아기는 살려야지, 병원에 연락 좀 해주시오잉."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기는 살리지 못했다.

  당시 광주 120여 개의 개인병원과 3개의 종합병원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상자들이 밀려들어 왔고피가 모자라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헌혈을 했다.

▲ 헌혈을 하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 이때 여고생 박금희(18세) 양도 광주기독병원에서 헌혈을 했는데,헌혈을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 진압군의 총에 맞고 살해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  (참고영상)   ● 5월 21일 저녁 : 시민군의 도청 함락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의 선택은 '무력항쟁'이었다.

시민들은 총을 얻기 위해 시내, 시외의 경찰서·동사무소의 무기고를 습격하여   총, 실탄, 폭약 등을 대량 습득했으니, 이때 피탈한 소총이 총 5,400정,?수류탄이 1천 개가 넘었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50) 또 방위산업체인 '아세아자동차'를 털어 200여 대의 차량을 탈취하고는나주, 화순 등으로 소식을 알리러 나갔다.

  이들 무장 시위대는 스스로를 '시민군'이라 불렀다.

 하지만 '부마항쟁'이 그러했듯이 시위의 주축은 대부분 도시의 빈민들이었고,중산층들은 무장투쟁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중산층1"공권력에 대항했다가 나중에 어찌되는 줄 몰러?"  중산층2"그러게, 저러면 위험한디.." 따라서 총을 잡은 시민군들은 대부분 공사장 인부, 목수, 구두닦이, 넝마주이, 술집 웨이터, 부랑아, 일용품팔이 등이었고연련층은 다양해서, 교련복을 입은 고등학생에서 가끔은 예비군복을 입은 장년층들도 있었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121

122)   어쨌거나, 그렇게 시민군들이 무장을 하자 도청을 지키던 공수부대원들은 갑자기 곤혹스러워졌다.

특히 도청 인군의 전남대병원 옥상에서는 기관총을 든 시민군까지 목격되었다.

"큰일 났습니다.

""뭐야?""저기 병원 위를 보십시오!""저건 기관총이잖아. 저 새끼들이 언제 저걸 가져왔지? 제기랄, 여기 있다간 벌집이 되겠구먼." 그리하여 상부에서는 도청 철수를 명령하게 되어21일 오후 6시, 진압군은 모두 도청을 떠났고, 도청을 접수한 시민군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도청을 접수했다!" "공수부대 놈들을 몰아냈다!“ 이로써 한국 현대사 이래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10.17. http://blog.naver.com/alsn76/220511169987  작전명, 화려한 휴가 ● 5월 18일 오전 : 5.18의 서막 12.12 쿠데타를 통해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의 신군부는'정권'의 장악을 위해 5개월 뒤 다시 쿠데타를 감행했으니, 이것이 바로 5.17 쿠데타였다.

 이때 신군부는 시국을 수습한다는 명목 아래, ?전국적으로 재야인사와 운동권 학생 등 총 2,700여 명을 체포하게 되는데,(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69)   광주에서도 경찰에 의해 재야인사들이 검거되었고, ?공수부대가 들이닥쳐 운동권 학생들을 붙잡아가고, 전남대와 조선대 캠퍼스를 점령해버렸다.

   이때 신군부는 광주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지역 정서상 커다란 반발이 예상되는 김대중을 체포했기 때문에 광주시민들의 저항이 남다를 것이라 예상했던 탓이다.

▲ 잡혀가는 김대중 : 드라마 제5공화국의 장면 그리고 다음날 정말로 광주에서 시위가 발생했다.

5월 18일 오전 10시, ?휴교령이 내려진 전남대 정문 앞에서 학생 100여 명이 공수부대원과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4) 공수부대 간부"휴교령이 내려졌으니 학생 여러분은 즉시 귀가하길 바란다.

" 학생"저, 도서관에서 공부하러 왔는디 휴교하더라도 도서관엔 들어갈 수 있잖아요." 공수부대 간부"상부의 지시다.

 학생들은 학내로 들어올 수 없다.

즉시 귀가하라!" 학생"아니, 비싼 등록금 내고 다니는 핵교인데, 왜 도서관에도 못 들어가게 한다요." 이렇게 옥신각신하고 있는 사이, 학생들의 수는 200

300명으로 불어났고, 갑작스러운 휴교에 불만을 품은 학생들은 곧 시위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계엄을 해제하라!  전두환은 퇴진하라!  김대중을 석방하라!" 그러다 일부 학생들은 공수부대를 향해 돌을 던지기도 했다.

"당장 꺼져라!"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었다.

화가 난 간부가 돌격 명령을 내렸으니, 공수부대 간부"돌격 앞으로!" 공수부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뛰쳐나오며, 학생들에게 곤봉을 휘둘렀던 것이다.

☞ (참고영상)그냥 곤봉이 아니었다.

쇠심이 박힌 살상용 곤봉으로 맞은 학생들은 저마다 피를 철철 흘렸다.

"이 새퀴들이!""뜨악!" 놀란 학생들은 서둘러 시내로 도망쳤고,"큰일 나부렸어. 군인들이 학생들을 겁나게 패고 있당게.""뭐셔?" 소식을 듣고 달려 나온 학생들이 가세하며, 오후 2

3시경 시위대는 2천여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계엄을 해제하라!  공수부대는 물러가라!" 700명이던 공수부대의 수보다 시위 군중의 수가 3배는 더 많아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과잉진압의 빌미만을 제공할 뿐이니, 공수부대원들은 이때부터 총에 대검을 꽂고  3

4명이 1개조가 되어 무력진압에 나서게 된다.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5) 지난 3개월 동안 지겹도록 연습한 '충정훈련'의 효과가 곧 나타날 순간이었다.

신군부는 왜 과격진압을 하려했던 것일까? 전두환"부마사태 때도 공수부대를 투입했더니 시끄러웠던 시위가 조용해졌어. ?앞으로 다른 곳에 시위가 발생하면.. 아예 초장부터 공수를 투입해서 속전속결로 무마시키는 거야." 하지만 광주시민들은 전두환의 바람과는 달리 잔인한 진압에 공포를 느끼기 보다는 분노하기 시작했고, 오히려 진압이 과격해질수록 시위도 거세졌다.

 전두환"아놔.."   ● 5월 18일 오후 : 공수부대원들의 광기 충정훈련의 효과란 어떠했을까? 공수부대원들은 학생처럼 보이는 청년들을 무조건 쫓아가서 곤봉으로 머리를 때리고, 가슴과 배를 군화발로 내질렀다.

 골목마다 뛰어다니면서 숨어 있는 청년을 발견하면, 일단 두들겨 패고 손목을 뒤로하여 포승줄로 묶고는 차에 던져 올렸다.

차 위에는 무전병이 기다리고 있다가 체포되어 올라온 즉시 발가벗기고  굴비 엮듯 엎드리게 하고는 군화발로 지졌다.

☞(참고영상)  거리에는 일시에 살기가 맴돌았고, 골목마다 비명과 흐느낌이 요란했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49) 어떤 경우는 막다른 골목까지 달아난 학생이드디어 잡히게 되자 무릎을 꿇으며 살려달라고 연신 빌었고,"너 이 새끼 잘 걸렸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이때 대문에 나와 내려다보던 할아버지가 너무도 애처로워 봐달라고 사정하자, 할아버지"워메, 한 번만 봐주시오잉

예?“ 공수부대원은 할아버지를 가차 없이 곤봉으로 내리쳤으니,"비켜 이 새끼야!!" 할아버지는 피를 뒤집어쓰며 고꾸라졌고쫓겼던 학생은 이에 분노하여 돌을 집어 들었으나"개 자식들!" 공수부대원들은 가차 없이 곤봉으로 후려친 뒤에"이 새퀴가! 대검으로 등을 쑤시고는 다리를 잡아 질질 끌고 길거리로 나갔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49) 공수대원들은 시위대는 모두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라 교육받은 탓에시민이고 여자고 노인이고 가리지 않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박남선,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p.121

122)공수부대원들이 여고생을 붙잡고, 교복 상의를 찢으면서 희롱을 하고 있었다.

"야 이 씨X년아, 어디서 데모질이야?""왜 이래요? 이러지 마세요." 그러자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만류하고 나섰다.

 할머니"아이고, 내 새끼.. 왜들 이러요?"  하지만 공수부대원은 할머니의 배와 다리를 걷어찼고 공수부대원"이 씨X년은 또 뭐냐? 너도 죽고 싶어?"할머니가 쓰러지자 군화발로 얼굴을 뭉개버렸다.

그리고 여학생의 젖가슴을 대검으로 그어 버렸고, ?여학생의 가슴에서는 선혈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24) 주위의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지켜보다가 공수부대가 떠나자 놀라움과 두려움에 모두들 울었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51)"요거이 시방 사람의 짓이여?""워매! 워매! 어찌 저럴 수가 있단 말여?""나는 왜정 때에 무서운 순사들도 많이 보고 6.25 때 공산당도 겪어봤지만.. ?저렇게 잔인한 놈들은 첨 봐부렸소!""나는 월남전에 참전해서 베트콩도 죽여봤지만, 저렇게 잔인하지는 않았당게라." 지나가던 신혼부부도 애꿎은 화를 입어야 했다.

"너희들은 뭐냐?""우린 신혼부부라요. 참말이어라.""뭐야, 이 새끼, 거짓말을 해? 데모했지?""퍽!""이 년은 또 뭐야?"그렇게 신혼부부의 머리를 피투성이로 만들더니 군인들은 낄낄거리며 떠났다.

?이를 본 시민들은 더욱 치를 떨어야만 했다.

폭행을 가하면서 즐기는 듯한 표정, 묘한 미소로 서로 낄낄거리며 진압하는 모습은 과감한 타격을 넘어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25

126) 그리고 금남로에서 최초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28세의 청년 김경철은 광주농아협회 관리부장으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우였다.

▲ 김경철 공수부대원"이 새끼 뭐야?" 김경철"어버버버!!" 공수부대원"이 새끼가 말을 안 해?" 김경철"어버버버 (살려주세요)" 공수부대원"이 새끼가 죽고 싶어 환장했나? 어디서 개수작이야."퍽퍽퍽퍽! 그리고 그의 시신은 군경 트럭에 의해 실려 갔다.

 당시 공수부대의 주축인 하사관들의 경우, 상당수가 월남전 경력을 갖고 있어서잔인한 행위가 몸에 배고 그에 대한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25

126) 5월 20일 공수부대에 붙잡혀 끌려간 어느 시민의 증언이다.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오월항쟁사료전집 p.1451)"공수부대원들은 상당수가 월남전 얘기를 입에 올리더군요. 그 중 한 명은 대검을 빼어들고..""이 대검은 월남에서 베트콩 여자 가슴을 40개 자른 기념 칼이다!""이렇게 자랑하면서 그 대검으로 앞사람의 더벅머리를 탁 쳤어요.그러자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면서 스포츠 머리처럼 되더군요."    ● 5월 19일 : 가열되는 시위 날이 어두워지면서 군의 시위 진압은 종료되었으나, 2천여 명의 대학생들은 오후 9시까지 산발적으로 시위를 계속했고, 일부 군인들은 젊은 남녀가 있는 여관까지 난입해서청년들을 붙잡아가기도 했었다.

"모두 나와!" "나와!!""뭔 소리당가?""나오라고 새끼야!"이날 하루 동안에만 총 270여 명이 트럭에 실려갔다.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6)   그리고 그날 밤, 광주 쌍촌동 전투교육사령부에서는 이런 말들이 오고 갔다.

 윤흥정 중장"지금 강경진압하자는 거요? 정 장군." 정호용 (특전사령관)"마, 계엄 확대에도 이래 소요가 계속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겠십니꺼? ?계엄군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초기에 군중심리를 가라앉혀야 옳지 않겠냐, ?이 말입니더. 그러니 강경하게 시위대를 진압하겠십니더." 윤흥정"..." 정호용은 한 술 더 떠 공수부대 1,146명을 광주로 증파시켰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시위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버스와 택시를 검문검색하기 시작하였으니 이로 인해 시민들의 출근길은 공포와 불편함, 분노로 얼룩졌고 청년들은 영문도 모른 채 현장에서 붙잡혀가야만 했다.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6)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또다시 전개되었고, 시위대는 거리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돌과 각목, 화염병으로 맞섰다.

 정호용"아니 이것들이!" 그렇게 시위대가 2천여 명으로 늘어나자, 결국 공수부대는 탱크까지 동원했고, 전날과 마찬가지로 시내 중심부 일대를 샅샅이 수색해 ?체포하면 곤봉으로 때리고 총검으로 난자질했다.

"이 새끼들이!" "퍽퍽퍽!" 당시 공수부대의 진압이 어찌나 잔인했던지, ?진압하러 나온 경찰조차 시민에게 울먹이며 애원할 정도였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60) 경찰"지발 집으로 돌아가랑 게요. 공수부대한테 걸리면 다 디져부려요."당시 시민들의 증언이다.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오월항쟁사료전집 p.1112)     이선(당시 23세)"아따, 공수부대 겁나게 무서웠지라. 도망가는 사람의 등을 대검으로 콱콱 찔러뿔고, ?잡은 사람을 때릴 때도 얼굴이나 머리통를 주로 때렸지라." 김후식"여학생들을 질질 끌고 가 발로 차고 욕설을 하고..심지어 시위대를 풀어준 경찰관조차 초주검이 되도록 두들겨 팼당게요."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5)   이때 때리지 말라고 외쳤다는 이유로 무등 고시학원에 들이닥쳐수업을 받고 있던 학원생들을 마구잡이로 구타하고 끌고 가기도 했고,(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7) 이런 소식들에 고교생들까지 분노해 수업을 집단 거부하고 ?시내로 나가 싸울 것을 결의했을 정도여서,결국 교육청은 광주 일대의 초중고교에 무기한 휴교조치를 내리게 된다.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p.78) 한편 이날부터 시민들도 시위에 대거 참여하면서 시위의 양상이 크게 달라지게 되는데,어제까지 일방적으로 쫓겨 다니던 시위대였다면,1만여 명을 넘어서자 점차 공세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공수부대 물러가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당시 트럭에 끌려간 시위대는 이후 어떻게 됐을까?광주 상무대 교육훈련소로 끌려온 이들은 다음과 같은 고문들을 받았다고 한다.

정말이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고 믿기 어려운 고문들이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259

262)① 워커발로 얼굴 문질러버리기② 눈동자를 움직이면 담뱃불로 얼굴이나 눈알을 지지는 '재떨이 만들기'③ 발가락을 대검으로 찍는 '닭발요리'④ 사람이 가득 찬 트럭 속에 최루탄 분말 뿌리기⑤ 두 사람을 마주 보게 하고 몽둥이로 가슴 때리기⑥ 며칠째 물 한 모금 못 먹어 탈진한 사람에게 자기 오줌 싸서 먹이기⑦ 화장실까지 포복해서 혀끝에 똥 묻혀오게 하기⑧ 송곳으로 맨살 후벼파기⑨ 대검으로 맨살 포 뜨기⑩ 손톱 밑으로 송곳 밀어 넣기 이때 고문을 하면서 장교들은 이런 말들을 내뱉었다고 한다.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p.1453)"전라도 새끼 40만은 전부 없애버려도 끄떡없어!""너 김대중이한테 지령 받았지?"   "김대중이가 니 애비냐?" 때문에 당시 끌려와 고문을 받았던 교사 출신 황남열은 끊임없이 ?"우리 국민성이 이토록 잔인한가?"를 반문해야만 했었다.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p.997)    ● 5월 20일 : 화염방사기·탱크·실탄사격의 등장 다음날 20일, 또다시 시민·학생들은 시위에 나섰다.

 이번에는 매우 조직적이었다.

200여 대의 택시·버스 운전사들이 차량을 몰고 헤드라이트를 켜고 시위에 동참한 것.   도대체 왜 이런 모습들이 나타나게 된 걸까?5월 19일에 이런 일이 있었다.

도로 한복판에 머리가 으깨지고 팔이 부러져온통 피범벅이 된 부상자를 목격했고"워매! 이것이 뭣이당가." 택시기사는 서둘러 부상자를 차에 실었다.

"아이고메, 이 사람 다 죽어가네." 하지만 이때 공수부대원들이 부상자를 내려놓으라고 명령했고"야! 그 새끼 내려놔." 기사는 안타깝게 애원했다.

"아따 , 시방 사람이 죽어가는디 병원으로 옮겨가야 않겄소." 그러나 공수부대원은 차의 유리창을 부수고 운전기사를 끌어내려 대검으로 무참하게 배를 찔러 살해했다.

 이런 식으로 최소한 3명의 운전기사가 살해당했는데,이것이 바로 20일 차량 시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72)"우리만큼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많이 보고 많이 듣고 하는 사람들이 또 어디 있당가요.""그란디 공수놈들은 사람이 아니에요. 에잇! 찢어죽일 놈들!그라서 택시기사들끼리 의기투합해서 모인거랑게요." 이러한 차량시위야 말로, 시위과정에서 나타난 최초의 조직적인 운동이었다.

 하지만 이날 진압군의 대응 또한 최고조에 올랐다.

?대검만으로도 모자랐던지 '화염방사기'를 사용하여2시 30분경 공수부대가 쏜 화염방사기에 여러 명의 시민들이 그 자리에서 타 죽기도 했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37) 당시 한 특전사의 회고록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서중석, 한국현대사 p.425) 공수부대원"야, 넌 왜 시위에 참여한 거야?" 여학생 "군인들한테 맞아 죽은 시체를 보니깐, 나도 모르게.." 공수부대원"어떻게 죽었는데?" 여학생"마치 튀김가루를 묻혀 튀긴 듯 사람 시체가 페인트로 범벅이 돼있었어라." 공수부대원"뭐? 페인트?" 그 말을 들은 공수부대원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당시 군에서는 시위 주동자를 잡기 위해 화염방사기에 페인트를 넣고 쏘아 맞힌 다음 잡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었으니, 필시 그렇게 희생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밤 8시 40분쯤에 MBC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전날 밤 TV를 본 시민들은 자신들의 시위가 전혀 방송되지 않은 것에 분노를 터트린 것이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77)  ▲ 전소된 광주 MBC"계엄군 물러가라"  "관제언론 MBC를 불태워라" 하지만 불에 타고 있는 MBC 쪽으로 계엄군의 탱크가 무서운 속도로 쳐들어왔고, ?이때 미쳐 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탱크에 밟혀 처절한 비명을 울렸으니그렇게 깔린 사람들은 그만 육신이 산산이 으깨지고 말았다.

(박남선,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p.42

43)"뜨아!" MBC 외에 KBS와 세무서도 불에 탔다.

훗날 신군부는 이 방화를 '폭동'의 증거로 TV를 통해 반복해서 보여준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45)그리고 이날 밤 11시부터 소총 사격이 실시되게 되는데, 이때 공수대 대원들에게는 각자 실탄 120발씩이 지급되었다.

   ● 5월 21일 : 피의 금남로 실탄사격·탱크·화염방사기가 투입되던 20일,그리고 21일 오전에서는 헬기가 땅을 향해 '기총사격'을 해댔다.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p.188)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광주 시민들이 그토록 죽을 죄를 지었단 말인가? ?그렇더라도 5월 21일 오전 10시, 금남로에는 10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들었다.

   자칫하면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시민들은 정오까지 ?공수부대를 시 외곽으로 철수시키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약속한 정오가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속았다"며 흥분한 시민들 중 일부가 한 시간 남짓 실랑이를 벌였다.

"야 이 놈들아! 왜 약속을 안 지키는 거냐?" 그러더니 오후 1시 정각,건물 외부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애국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 그러나 그건 집단 발포를 알리는 신호였으니,"탕탕탕탕!"▲ 백무현, 만화 전두환 1권 p.162 시민들은 갑작스러운 발포에 어리벙벙한 채로 정면으로 맞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때 현장에서 최소한 54명의 사망자와 500명 이상의 총상자가 발생했다.

?(5.18특별취재반, 正史 5.18 상권 p.284

285)   당시 목격자의 증언이다.

(박남선,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p.49) 박남선"아스팔트 바닥 위에서는 부상자들이 살려달라고 처절하게 애원하고 있어서..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을 구하려고 어떤 시민이 뛰어나가게 되었는데,"  박남선"그라면 공수놈들이 그런 시민에게 사격을 가해 사살해버리는 거예요.부근 건물의 벽에 바짝 붙어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시민들은 모두가 울었죠." 그리고 1시 30분경, 한 청년이 웃통을 벗고 태극기를 높이 휘날리며 도청을 향해 달려들었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50)"광주 만세!" 모든 시민들이 긴장되어 그를 응시하는 가운데한 발의 총소리와 함께 피가 튀며 청년의 목이 꺾어졌다.

이 광경을 본 모든 시민들은 모두가 온몸을 바르르 떨어야만 했다.

 이때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임산 8개월의 임산부(최미애, 당시 24세)도조준사격에 머리를 맞고 사망했다.

"아이고 내 새끼 미애야!! 아이고 아이고! 워매 워매!! ?뱃속에 아기가 뛰고 있네. 아기는 살려야지, 병원에 연락 좀 해주시오잉."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기는 살리지 못했다.

  당시 광주 120여 개의 개인병원과 3개의 종합병원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상자들이 밀려들어 왔고피가 모자라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헌혈을 했다.

▲ 헌혈을 하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 이때 여고생 박금희(18세) 양도 광주기독병원에서 헌혈을 했는데,헌혈을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 진압군의 총에 맞고 살해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  (참고영상)   ● 5월 21일 저녁 : 시민군의 도청 함락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의 선택은 '무력항쟁'이었다.

시민들은 총을 얻기 위해 시내, 시외의 경찰서·동사무소의 무기고를 습격하여   총, 실탄, 폭약 등을 대량 습득했으니, 이때 피탈한 소총이 총 5,400정,?수류탄이 1천 개가 넘었다.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p.150) 또 방위산업체인 '아세아자동차'를 털어 200여 대의 차량을 탈취하고는나주, 화순 등으로 소식을 알리러 나갔다.

  이들 무장 시위대는 스스로를 '시민군'이라 불렀다.

 하지만 '부마항쟁'이 그러했듯이 시위의 주축은 대부분 도시의 빈민들이었고,중산층들은 무장투쟁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중산층1"공권력에 대항했다가 나중에 어찌되는 줄 몰러?"  중산층2"그러게, 저러면 위험한디.." 따라서 총을 잡은 시민군들은 대부분 공사장 인부, 목수, 구두닦이, 넝마주이, 술집 웨이터, 부랑아, 일용품팔이 등이었고연련층은 다양해서, 교련복을 입은 고등학생에서 가끔은 예비군복을 입은 장년층들도 있었다.

(황석영,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p.121

122)   어쨌거나, 그렇게 시민군들이 무장을 하자 도청을 지키던 공수부대원들은 갑자기 곤혹스러워졌다.

특히 도청 인군의 전남대병원 옥상에서는 기관총을 든 시민군까지 목격되었다.

"큰일 났습니다.

""뭐야?""저기 병원 위를 보십시오!""저건 기관총이잖아. 저 새끼들이 언제 저걸 가져왔지? 제기랄, 여기 있다간 벌집이 되겠구먼." 그리하여 상부에서는 도청 철수를 명령하게 되어21일 오후 6시, 진압군은 모두 도청을 떠났고, 도청을 접수한 시민군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도청을 접수했다!" "공수부대 놈들을 몰아냈다!“ 이로써 한국 현대사 이래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광주에 사는 택시기사 민우( 김상경 분).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끔찍이 아끼는 동생 진우(이준기 분)와 단둘이 사는 그는 오직 진우 하나만을 바라보며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진우와 같은 성당에 다니는 간호사 신애(이요원 분)를 맘에 두고 사춘기 소년 같은 구애를 펼치는 그는 작은 일상조차 소중하다.

이렇게 소소한 삶을 즐기는 이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다.

무고한 시민들이 총,칼로 무장한 시위대 진압군에게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한다.

눈 앞에서 억울하게 친구, 애인, 가족을 잃은 그들은 퇴역 장교 출신 흥수(안성기 분)을 중심으로 시민군을 결성해 결말을 알 수 없는 열흘 간의 사투를 시작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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