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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윤



과제다.

. 해서 농구를 찾아서 보기가 너무 힘들어요 ㅠㅠ과제가 너무 많아서.. ncaa 결승이 있었는지도 몰랐고.. 다행히 영상을 구해서 조만간 올리겠지만..ㅎㅎ제가 오랜만에 와서 쓰는 글은 잊혀진 천재이자.. 부상으로 인해 자신의 재능을 다 보여주지 못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의 대학생 신분 주축선수 였던 방성윤 선수입니다.

출처- newsis먼저 프로필을 소개하자면!방성윤1982. 06. 03195cm. 100kg스몰포워드? 슈터? 그의 수상 경력을 살펴보면 2000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상, 2000년 영맨선수권대회 3점슛상, 2000년 코맥스배 국제초청대회 우승,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년 KCC 프로농구 신인상 등...휘문중, 휘문고 시절부터 그는 경복고 정상헌과 더불어 김동욱, 김학섭과 같이 한국농구를 이끌 차세대 유망주로 손꼽혔으며 2000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 대회에서는 정상헌과 함께 숙적 중국을 120:92로 물리치며 미래를 밝힌 선수 였습니다.

그는 연세대 진학 후 그 당시 연세대 서태웅으로 불리던 김동우, 이정석과 함께 연세대 천하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2002년 부산아시안 게임 대표에 유일한 대학생 대표 선수로 발탁되어 활약하여 금메달과 함께 병역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미 대학에서 방성윤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그는 NBDL 일명 'D-리그' 라 불리는 NBA 하부리그에 도전하게 되는데..... 로어노크 대즐에 지명되어 활약하게 됩니다.

이제까지 아시아 선수가 NBA나 해외 무대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하드웨어를 갖추어야 되었는데 방성윤은 국내무대에서는 포지션별 사이즈가 좋은 편이었으나 외국으로 범위를 넓혀본다면 그 부분은 전혀 플러스 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타 다른 아시아 선수들과는 달리 기술적으로 NBA의 벽을 넘으려 하였고 평균 12.5점, 팀 최다 3점슛 기록을 가지며 활약하였습니다/이후 방성윤은 농구 외적으로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였고 2005년 국내무대로 돌아오게 됩니다.

국내로 돌아와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한 방성윤은 KT에 1순위 지명을 받았지만 이후 SK 나이츠에 트레이드 되며 아시안 게임 당시 호흡을 맞춰봤던 문경은, 전희철과 함께 당시 부진에 빠져있던 SK를 다시 재건하려 합니다.

방성윤은 34게임 17.2점 평균 3점슛 2.5개를 성공시키며 20게임 이상을 결장하면서도(KBL 신인상 자격은 27게임 이상 출전가능한 선수에게 주어진다) 신인왕에 등극하게 됩니다.

이미 미국에서 2년동안 프로생활을 해온 방성윤에게 국내무대가 적응하기 어렵지 않았나 봅니다.

..이후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을 위한 전초전으로 국내에서 WBC(월드 바스켓볼 챌린지)가 열리게 되었고 대한민국 대표팀에 선발되어 미국전에서 팀 최다 17점을 퍼부었으며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 발탁됩니다.

물론 방성윤은 대표팀 훈련 도중 부상을 당하면서 대회 참가여부가 불확실 했지만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3점슛 12개 포함 42점을 퍼부으며 대표팀을 벼랑 끝에서 구해냅니다.

 이후 2006

2007 프로농구에서 평균 19.3득점 평균 3점슛 2.7개를 성공시키며 그 해 베스트 5에 등극하였고 다음 해에는 22.1 득점을 기록하며 국내 선수로는 드문 평균 20득점 돌파를 성공하였습니다.

방성윤은 시즌이 종료된 후 다시 미국으로 넘어갔고 주로 식스맨으로 출전하여 12.3 득점을 기록합니다.

방성윤 선수의 도전 의식은 대단했고 NBDL에서 보여준 모습도 여타 다른 아시아 선수들과는 다른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발목은 잡는 건 실력도 신장도 아닌 바로 부상이었습니다.

출처- newsis그의 부상 이력을 보면.. 대뷔 첫해 2005

2006 시즌에 어깨 부상으로 시즌을 중도에 그만두었고 그 다음 시즌에는 왼쪽 발목과 손가락 인대가 끊어졌습니다.

또 한창 전성기 기량을 보여주던 2007

2008 시즌에는 경기 도중 코트 바닥에 다리가 좌우로 미끄러지며 무릎 내측 인대가 파열되는 등... 신은 그에게 재능을 준 대신 건강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또.. 2008

2009 시즌에는 드리블 돌파 도중 상대 선수와 충돌하여 인대가 늘어났고 다음 시즌에는 뇌진탕과 오른쪽 발목 부상, 이밖에도 무릎과 손, 발목 등등 한 시즌을 건강하게 보낸 적이 없을 정도로 일명 '유리몸' 이었습니다.

그의 농구 인생 마지막은 너무 초라했습니다.

SK 나이츠에서 5억에 계약하려 했으나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희망하였고 이후 김효범과 계약한 SK 나이츠의 샐러리 캡 한계로 인해 1억 3천만원의 헐값으로 4년 계약을 맺었고 이후 5경기에 나와 평균 6득점을 기록하고 스트레스성 골절로 인해 다시금 시즌 아웃 되어버렸습니다.

방성윤은 김승현과 같이 2000년대 국내농구팬들의 희망이었고 스타였습니다.

그의 플레이 때문에 길거리 농구에서는 방가! 를 외치며 3점슛을 쏘았고 그의 별명인 '방난사' 처럼 슛만 쏘는 일반 농구인들도 많이 생길정도로 방성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다른 국내선수들과는 차이가 있는 독보적 스타일이 있었으며 그 당시 암흑기였던 한국농구의 희망이자 해결사였습니다.

물론 그의 독특한 스타일로 인해 '방난사' 라는 별명을 얻었고 국제 대회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김승현과, 김주성의 어깨를 더 무겁게 하였지만 그가 카타르 전에서 보여준 그 쇼타임은 아직도 회자될 정도로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영상에서만 볼 수 있는 방성윤은 은퇴 후 외국 자동자 딜러가 ?榮募� 소문도 있었고 2015년 당시 상습 폭행 혐의로 뉴스에도 나오며 좋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반인과 농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킬 트레이닝 동영상에 등장하며 요즘 다시금 방성윤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고 있으며 GP&B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bgGlMVatMU동영상???WBC???????www.youtube.comhttps://www.youtube.com/watch?v=Quw9wGvfnbE동영상??? ?? ?? ??www.youtube.com방성윤 선수의 하이라이트 영상입니다.

굿바이

방가특히 아시안 게임에서의 금메달은 고참선수들의 국가대표 마무리와 차세대 기둥들의 병역면제를 선물해준 메달이었다.

2002년과 2014년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건 사람은 김주성(동부,선수)와 이상범(무직,코치) 뿐이다.

그렇게 오래 전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그 중심에는 촉망받던 방성윤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 2002년 대표팀,14번이 방성윤선수이다.

 2004년, 방성윤은 NBA진출의 꿈을 갖고 마이너리그 격인 D-League에 합류한다.

당시 195cm, 100kg의 탄탄한 체구에 긴 슛거리를 가진 그는 평균 12.5점의 성적으로 진출 첫해에 인상적인 기록을 남겼다.

팀 최다 3점슛을 기록하는 등 NBA 입성의 꿈을 이뤄 나가는 듯 했다.

하지만, 미국생활 적응이 순탄치 않았다.

그렇게 돌연 한국으로 귀국해 KBL에 입성하게 된다.

뛰어난 하드웨어는 코트를 뒤짚어 놓았으며, 3점슛은 깔끔하게 림을 갈랐다.

SK나이츠에서 유감없이 실력을 보여주며 역시 방성윤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였때쯤다시 NBA 도전의 꿈을 선택한 그는 D-League에 재입성하였다.

주로 식스맨으로 출전하던 그는 평균 12.3점을 기록하였다.

- 출처: NBA D-리그 기록실이때, KBL에서 6강 PO의 진출에 사활을 걸던 SK나이츠에 긴급 SOS를 받고 방성윤은 재차 KBL로 돌아오게 된다.

불운은 방성윤을 찾아오기 시작했고, 각종 부상들로 경기장에서 그를 보기 힘들어졌다.

한국 최고의 스몰포워드였던 방성윤은 부상이라는 불운에 발목잡혀 NBA 포기와 더불어,선수생명이 단축 되었으며, 이후의 생활에서 문제의 소지를 만들게 되었다.

-SK나이츠 시절 방성윤많은 농구 관계자들과 팬들에게 기대를 받고 즐거움을 선사했던 방성윤.단순히 체형으로만 NBA진출을 도전했던 기존 아시아 선수들과는 달리 처음으로 기술로 승부를 보았던 방성윤.근래 기사화 되었던 그를 둘러싼 사건들과 논란들은 본인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그의 실력만큼은 SK나이츠 시절 보여주었던 것 처럼 확실한 팩트였다.

 ..이란전 26점 폭발카타르 감독"외곽포 세계적 수준"극찬그가 3점라인 밖에서 슛을 쏘자 취재석의 이란 들은 "오!노!"라고 외치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마치 볼에 자석이라도 박아 놓은 듯 정확하게 림에 빨려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란 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주인공은 한국인 최고슈터 문경은(34)이었다.

역시 국제무대에 강한 "람보슈터"였다.

문경은의 진가는 14일(이하 한국시간)카타르 도하의 가라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 23회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8강리그 마지막 3차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드러났다.

문경은은 3점슛 성공률(9개 시도, 7개 성공)을 무려 80%가까이 끌어올리며 양팀 최다인 26점을 폭발시켰다.

이날 경기에서 패하면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 사상 첫 4강 진출 실패라는 치욕을 당할 뻔했던 한국을 수렁에서 구해낸 귀중한 활약이었다.

거침이 없었다.

오픈찬스에서는 백발백중, 이란의 수비수가 악착같이 달라붙어도 조금의 틈만 보이면 3점슛을 작렬시켰다.

그의 슛감각은 절정에 달해있다.

8강리그 2차전에서 한국을 격침시킨 카타르의 조셉 스티빙 감독이 "문경은의 외곽포는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8강리그 1차전 요르단전에서 경기종료 19초 전 천금같은 역전 3점포를 작렬시켰던 문경은은 이날의 맹활약으로 '아시아 최고의 슈터'의 명성을 재확인했다.

사실 문경은은 대표팀에서 '1인다역'을 하고 있다.

확실한 주득점원일 뿐 아니라 주장으로서 후배들을 다독거리며 대표팀의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 걸죽한 입담으로 대표팀의 분위기까지 주도하고 있다.

 어제 같은 대회 8강전 방성윤 2/10, 특히 3쿼터 15초 남겨 두고 공격시 수비달고 무리하 3점 슛을 시도하여 속공 버저비터 3점을 허용...방난사...  이 블로그rss를 정기적으로 구독하시려면  클릭하세요.  퍼가실 땐 공감 버튼 눌러주세요.                 특히 아시안 게임에서의 금메달은 고참선수들의 국가대표 마무리와 차세대 기둥들의 병역면제를 선물해준 메달이었다.

2002년과 2014년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건 사람은 김주성(동부,선수)와 이상범(무직,코치) 뿐이다.

그렇게 오래 전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그 중심에는 촉망받던 방성윤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 2002년 대표팀,14번이 방성윤선수이다.

 2004년, 방성윤은 NBA진출의 꿈을 갖고 마이너리그 격인 D-League에 합류한다.

당시 195cm, 100kg의 탄탄한 체구에 긴 슛거리를 가진 그는 평균 12.5점의 성적으로 진출 첫해에 인상적인 기록을 남겼다.

팀 최다 3점슛을 기록하는 등 NBA 입성의 꿈을 이뤄 나가는 듯 했다.

하지만, 미국생활 적응이 순탄치 않았다.

그렇게 돌연 한국으로 귀국해 KBL에 입성하게 된다.

뛰어난 하드웨어는 코트를 뒤짚어 놓았으며, 3점슛은 깔끔하게 림을 갈랐다.

SK나이츠에서 유감없이 실력을 보여주며 역시 방성윤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였때쯤다시 NBA 도전의 꿈을 선택한 그는 D-League에 재입성하였다.

주로 식스맨으로 출전하던 그는 평균 12.3점을 기록하였다.

- 출처: NBA D-리그 기록실이때, KBL에서 6강 PO의 진출에 사활을 걸던 SK나이츠에 긴급 SOS를 받고 방성윤은 재차 KBL로 돌아오게 된다.

불운은 방성윤을 찾아오기 시작했고, 각종 부상들로 경기장에서 그를 보기 힘들어졌다.

한국 최고의 스몰포워드였던 방성윤은 부상이라는 불운에 발목잡혀 NBA 포기와 더불어,선수생명이 단축 되었으며, 이후의 생활에서 문제의 소지를 만들게 되었다.

-SK나이츠 시절 방성윤많은 농구 관계자들과 팬들에게 기대를 받고 즐거움을 선사했던 방성윤.단순히 체형으로만 NBA진출을 도전했던 기존 아시아 선수들과는 달리 처음으로 기술로 승부를 보았던 방성윤.근래 기사화 되었던 그를 둘러싼 사건들과 논란들은 본인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그의 실력만큼은 SK나이츠 시절 보여주었던 것 처럼 확실한 팩트였다.

 ..이란전 26점 폭발카타르 감독"외곽포 세계적 수준"극찬그가 3점라인 밖에서 슛을 쏘자 취재석의 이란 들은 "오!노!"라고 외치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마치 볼에 자석이라도 박아 놓은 듯 정확하게 림에 빨려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란 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주인공은 한국인 최고슈터 문경은(34)이었다.

역시 국제무대에 강한 "람보슈터"였다.

문경은의 진가는 14일(이하 한국시간)카타르 도하의 가라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 23회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8강리그 마지막 3차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드러났다.

문경은은 3점슛 성공률(9개 시도, 7개 성공)을 무려 80%가까이 끌어올리며 양팀 최다인 26점을 폭발시켰다.

이날 경기에서 패하면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 사상 첫 4강 진출 실패라는 치욕을 당할 뻔했던 한국을 수렁에서 구해낸 귀중한 활약이었다.

거침이 없었다.

오픈찬스에서는 백발백중, 이란의 수비수가 악착같이 달라붙어도 조금의 틈만 보이면 3점슛을 작렬시켰다.

그의 슛감각은 절정에 달해있다.

8강리그 2차전에서 한국을 격침시킨 카타르의 조셉 스티빙 감독이 "문경은의 외곽포는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8강리그 1차전 요르단전에서 경기종료 19초 전 천금같은 역전 3점포를 작렬시켰던 문경은은 이날의 맹활약으로 '아시아 최고의 슈터'의 명성을 재확인했다.

사실 문경은은 대표팀에서 '1인다역'을 하고 있다.

확실한 주득점원일 뿐 아니라 주장으로서 후배들을 다독거리며 대표팀의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 걸죽한 입담으로 대표팀의 분위기까지 주도하고 있다.

 어제 같은 대회 8강전 방성윤 2/10, 특히 3쿼터 15초 남겨 두고 공격시 수비달고 무리하 3점 슛을 시도하여 속공 버저비터 3점을 허용...방난사...  이 블로그rss를 정기적으로 구독하시려면  클릭하세요.  퍼가실 땐 공감 버튼 눌러주세요.                 SK는 지금 너의 중심에 맞춰졌던 색깔을 바꾸느라 선수들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고 모두 하나가 되어 감히 그 근처에 얼씬거리기가 미안할 정도이다.

그들이..얼마나 너의 복귀를 바라고 기다리고 있는지..그리고 너의 가슴은 얼마나 찢어질지..지켜보는 팬으로써 안타깝다.

  팀도..팬들도 너무나 멋진 서울SK

7년 팬으로써 후회없다.

돌아만 와

 -----------------------------------------------------------------------------------------  일주일 동안 SK 팬들이 많이 울었나보다.

  3점차로 지고 2점차로 지고 1점차로 졌다.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놓지 않는 멋진 선수들이 있는 곳 ..서울SK!!! 방성윤 다쳤을때 그 다친 영상 때문에 울고 그리고 안타깝게 졌지만 선수들의 투혼을 보면서 울고..많이 울고들 계신 것 같다.

 모두 희망을 버리지 말자. -------------------------------------------------------------------------------------------------- 방성윤 완전 정복

올해 꼭 우승하고 NBA 가길 바란다.

물론 그대가 없으면 우리팀은 ..^^그래도 큰 물에서 놀고 큰 꿈 이루고 하는거알고 보면 많은 농구 꿈나무들에게 큰 희망 아니겠어?보란듯이 본보기가 되길..그 길이 힘듦에도 불구하고 갈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우리 아이들이 꼭 배웠으면 싶다.

 ----------------------------------------------------------------------------------------------------오

인간이 됐어  ---------------------------------------------------------------------------------------------------- 연대 입학전 100문 100답 1. 생년월일 --> 1982.06.03 2. 가족관계 --> 할머니, 아빠, 엄마, 동생, 나 3. 혈액형은.....? --> A형  4. 농구를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땐 언제예여?? 그니깐.. 농구 때려치고 싶을땐? --> 운동하다 맞을때 5. 2000년 1월 1일 뭐 했을까여?? (기억을 잘 더듬어 보세용

^^*) --> ?  6. First.... 처음이라는데 많은 의미를 두잖아여.... 음...첫눈... 첫눈

! 하면 생각나는 사람을 차례루 7명만 써 보세용


--> ? 7. 가족중에 가장 친한 사람은 누구예여? --> 없음 8. 자신의 주특기는 뭐라고 생각해여...? ( 농구에서....) --> 슛 9.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 젤 많이 울어본 기억이 있는.. 영화는여? --> 편지  10. 노래방 18번은 뭐예여...?? --> 나만의 슬픔 11. 가장 좋아하는 음식? --> 바다음식 빼구 다

 12. "이건 날 죽인대두 못 먹어

!!!" 하는 음식은? --> 애벌레  13. 농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 --> 운동을 좋아해서.. 14. 제일 좋아하는 가수? --> 특별히 없구 그냥 발라드 가수 15. 이상형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여자 연옌을 한명만 꼽아보셔



--> 고소영  16. 자신의 좌우명은? --> 열심히 재밌게 살자

(주문 받을때바다 바뀜) 17. 한달 용돈.. 얼마나 쓰세여? --> 필요할때마다 받음 18. 스트레스를 받을땐 어떻게 풀어여? --> 소리지른다 19. 종교가 있어여? 뭐예여? --> 불교 20. 심심할땐 뭘 하져? --> PC방(?)  21. 숙소생활하면서 제일 불편한점이 있다면? --> 답답하다  22. 숙소에서 제일 친한 사람은? --> 그냥...생각해본적 없음 23. 룸메이트를 공개해 주세요



^^ --> 김경렬 24. 봄, 여름, 가을, 겨울.... 울 나라 4계절 넘나두 이뿌져? 젤루 좋아하는 계절은? --> 여름 25. 세상에서 젤루 무서운건? --> 내 자신 26. 농구이외의 또다른 특기가 있나여? 뭐져? --> 없음 27. 별명.... ? 이유는? --> 방가 . 방씨라서  28. 지금 농구선수가 안됐다면... 지금쯤 뭐하구 있을까여? --> 백수 29. 좋아하는 영화배우는? --> 정우성. 이정재 30. 좋아하는 색깔...?? 파란색 31. 엄마, 아빠중... 누굴 더 닮았다고 생각하나여? --> 반반 (엄마라고 썼다가 지움

[방성윤]


^^;) 32. 좋아하는 옷 스타일.... (즐겨입는 옷 스타일이겠져?) --> 청바지에 티셔츠 33. 즐겨보는 TV 프로...? --> 서세원쇼 34. 좋아하는 향수? 사무라이 35. 좋아하는 메이커? --> 나이키 (나이키 로고를 그림으로 그림^^) 36. 농구말고 좋아하는 운동은 뭔가여? --> 조금씩 다 37. 가장 받고 싶은 선물..? 옷 38. 젤 좋아하는, 즐겨먹는 과자? --> 스윙칩 39. 젤 좋아하는, 즐겨먹는 음료? --> 딸기음료 40. 젤 가고 싶은 나라와 그 이유는? --> 호주, 이쁘자나 41. 지금까지 여행한 곳 중 젤 인상깊어 다시 가고싶은곳은? --> 없음 42. 팬 중에 자신의 이상형을 발견했다

!!!! 어떻게 할 것인가?? --> 그냥 지나친다 43. 즐겨찾는 인터넷 사이트.... --> han game. 44. 단골 미용실? 이발소? --> 쎄미김 45. 좋아하는 악세사리...? --> 없음 46. 평균 하루 수면시간? --> 7

8시간 47. 술, 담배는 어느정도? (운동선수에게 젤 해로운 3가지

! 술, 담배, 여자

!!^^;;;;) --> 술(소주1병), 담배안핌 48. 술버릇은? --> 말 많아짐 49. 잠버릇? --> 코를곰 50. 첫팬은? --> 고1때 51. 친구들 만나면 뭐 하나여? --> 노래방감 52. 고딩, 중딩 시절 젤 좋아했던 과목은? --> 체육 53. 운동선수로써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 --> 담배 54. 미용실(이발소?)는 얼마나 자주 갑니까?? --> 3달에 한번 55.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는 일... --> 양말신기 56. 그럼 자기 바로 전에 뭐 하져? --> 불끄기 57. 신입생들은 연대에 들어오게된 소감을..? 아닌 선수들은... 선배가 되는기분? --> 좋다, 힘들다 58. 숙소에서 젤 무서운 선배 --> ? 59. 꼴불견인 남자&여자 --> 닭살커플 60. 처음으로 부모님께 사 드린 선물..? 잘 기억해봐욧


^^* --> 나훈아 베스트앨범 61.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 푸우 62. 연대 응원가 많져? 다 아시나? 그중에 제일 좋아하는 연대 응원가 하나반꼽아봐여

--> 하나도 모름 63. 당구는 얼마나 치세여? --> 50 64. 움...... 지금 핸펀 초기화면에 있는 말? --> 다짐! 65. 운동하다보면.. 슬럼프라는 것이 찾아오져... 그때마다 어떻게 극복했나여..? --> 어떻게 하다보면 없어짐 66. 시력은? --> 좌1.5 우1.2 67. 사랑하는 여자땜 울어본적 있나여? --> Yes. 68. 무인도에 가져갈 3가지

!! --> (애인이라썼다 지움) 69. 외출할 때 꼭 지참하는 소지품

! --> 핸드폰, 지갑, 돈  70. 첫사랑은... 언제? 궁금타..... -->비밀 71. 자신의 등번호에 얽힌 이야기? 지금의 등번호를 택한 이유

! --> 그냥 달고 싶어서  72. 젤 좋아하는 과일은? --> 딸기 73. 자신의 Best friend? --> 형석 74. 좋아하는 동물? --> 개  75. 어른이 ?映립�..(혹은 나이를 먹었구나..)느낄때.. --> 거울을 볼때  76. 숙소에 첨 들어왔을 때 어땠나여? 솔직히... 좀.... 후져보이는데..헤헷...^^;; 대문도 고장나구.. 벨두.... 어땠는지 솔직히 말해봐여.. --> 답답했다.

 77. 고등학교때 진학하고 싶었던 대학이 있었을텐데... 어디일까여? (아무한테두 안 이를테니깐.. 말해보셔


^^;;;) --> 연대  78. 미신을 믿나여? --> 조금.. 79. 좋아하는 프로야구팀? --> 현대 80. 좋아하는 프로농구팀? --> SK 81. 좋아하는 프로축구팀? -->삼성 82. 숙소에 불이나면 가장 먼저 챙길물건 한가지

! --> 돈  83. 죽어도 못 타는 놀이기구..? --> 없음 84. 농구부원중 여장하면 제일 잘 어울릴 것 같은 선수... --> 김경열 85. 가장 최근에 극장에서 본 영화? 단적비연수 86. 숙소에 있을 때... 제일 보고싶은 사람? --> 동생. 87. 혹시.. 악기 다루는거 있나여? --> X  88. 솔직히.. 수능 몇점 나왔나여?? (말해줘



^^;;;;) --> 비밀 (60점은 넘었음) 89. 숙소에서 젤 안 씻는 선수... --> 김종완 90. 팀내에서 닮고싶은 선배? --> 박광재 91. 자신의 룸메이트의 장점과 단점... 꼭 쓰세여


!!!!! --> 청소를 절대 안함, 장점은 아직까지 92. 아는 연대팬중에.. 아는 이름을 다 써봐여..... --> 하나도 모름. 아

은정이. 혜영 . 소이 (소희인데 잘못씀) 93. 나중에 결혼해서 아들, 딸 이름을 뭐라구 짓구 싶나여? 방.. 방.. 94. 핸드폰 한달 요금? --> 60000원  95. 내 인생 최대의 실수

!!! --> 없음 96. 가장 성형수술 하고 싶은곳... --> 피부 97.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하고싶은 일.. 농구 말구... --> 모르겠음 98. 10년 후 나의 모습은..? --> 프로선수  99, 자신의 이름으로 삼행시 짓기... 음....^^ --> 방 방가가

방가에요! (이거 다지움) 100. 마지막으로 연대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한 마디씩 해 주십셔




*^^* --> 감사랍니다.

열심히 할께요! ^^ -------------------------------------------------------------------------------------- 연대 2학년때 100문 100답 1. 먼저 2학년이 된 소감은? --> 실감이 잘 안남 (1학년때 많이 쉬어서 그런가?) 2. 친하거나 잘따르는 후배는??--> 없음^^ 3. 지금 현제 룸메이트? --> 승태 4. 실제의 키? --> 194cm 5. 현재의 몸무게? --> 97kg 6. 방성윤선수의 IQ는? --> 알아본적 없음. 7. 가장 잘하는 요리는? --> 정말 아무것도 없음.( 심지어는 라면도 못끓임) 8. 농구말고 관심분야는?? --> 연예계 9. 식구들 소개 좀 해주세요

--> 할머니 , 아버지, 어머니, 동생    ? 10. 휴일에 주로 하는 일은? --> PC방, 노래방 11. 체력장 급수는? --> 특급 12.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전생은? --> 변강쇠.ㅋㅋㅋ 13. 가장 마음이 편할때?? --> 이불펴고 잠자기전 14. 가장 긴장 될때? --> 무슨 경기든 승부가 갈릴때. 15. 잘?? 많이 사용하는 단더.. --> 캡?�, 대따 16. 방성윤선수 이름 한자뜻은? --> 方(모방) 成(이룰성) 允(맡윤) 정확히는 모름, 알아서 해석에 네모! 17. 농구부 선수들 중에 가장 요리를 잘하는 선수?? --> 최승태 18. 100m 기록은?? --> 17초  19. 농구선술써 방성윤은 몇점? (400점 만점) --> 399점 하하하

 20. 나 자신이 보는 농수선수로써 장점. --> 체력 21. 내가 보는 농구선수로써의 단점. --> 점프력 22. 라이벌이라고 생각되는 선수는? --> 최승태 23. 고등학교농구와 대학농구의 차이점은? --> 별 차이 없음. 24. 21을 살면서 가장 후회했을때? --> 공부를 안한것. 25. 자신의 성격에 대해서.. --> 나도 잘 모름.  26. 다시 여행을 가보고 싶은곳이 있다면... --> 그때 거기(?) 27.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 생션류빼고 다.

 28. 태몽은 --> ? 29. 컴플렉스? --> 없음 30. 징크스? --> 없음. 31. 시력은 얼마나 되죠? --> 왼 1.5  오 1.2 32. 사람을 볼때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은? --> 눈 33. 허리둘레 그리고 옷사이즈는? --> 34,  4XL 34. 대학 입학후 가장 먼저 했던일?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 --> 머리 자름 35.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은? --> 너무 많음 36. 요즘 즐겨보는 TV? --> 쿵쿵따 쿵쿵따 37. 요즘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요? --> 즐겁게 살고 있음 ^^ 38. 사장 많이 가는 패스트 푸드점은? --> 파파이스 39. 영화속의 주인공이 될수 있다면 어떤 영화의 어떤 배우? --> 영웅 40. 여자가 된다면 해보고 싶은것? 가보고 싶은곳? --> 여자 화장실, 목욕탕 41. 가장 날씬했을때의 kg과 가장 살이 쪘을때의 kg을 말해주세요

--> 85kg / 115kg 42. 가장 자신있는 신체부위는? --> 눈 43. 면허증이 있는걸로 알고있는데, 드라이브 하고 싶은 곳은? --> 전국일주 44. 여기는 꼭가보세요

추천하는곳은? --> 안면도 45. 방성윤선수는 언제 결혼하고 싶나요? --> 별 생각없음. 46.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 무엇을 하고 싶나요? --> 프로감독. 47. 운동선수여서 불편한점? --> 자기 생활이 없음 48. 운동선수여서 편한점?--> 없음. 49. 프로경기는 자주보는 편인가요? -->네 50. 인터넷 사용시간은? (솔직히 말하세요

) --> 하루에 1

3시간. 51. 좋아하는 가수?(없다면 이가수의 음악 또는 노래를 좋아해요

) --> 김돈규, 나만의 슬픔 52. 숙소 합숙할때 가장 방을 더럽히는 선수는? --> 김종완 53. 선수들 중에서 머리가 좋은것 같은 선수는? --> ? 54. 받고싶은 선물은? --> 노트북, 자동차 55. 성윤선수가 생각하는 경우있는 사람? --> ? 56. 존경하는 위인은? --> 아버지, 김재원선생님. 57. 다른학교 선수들 중에서 친한선수? --> 없음. 58. 가장 잠을 많이 잤던 시간은? --> 이틀 59. 내가 생각하는 농구란... --> 즐기는 농구, 재밌는 농구 60.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 음... 이쁜것 61. 죽은후에 묘비에 쓰고 싶거나 적히고 싶은 말? --> 방성윤 사망. 62. 사진을 찍는걸 좋아하나요? 찍히는걸 좋아하나요? --> 둘다 시러함. 63. 3.4학년 선배들 중에 가장 무서운 선배와 편안한 선배는? --> 무서운 선배 없음. 64. 투시력, 예지력, 투명인간중에서 한가지만 골라서 쓰라면 어떤것을? --> 투시력 65. 올해 라이벌이라고 생각되는 팀을 3팀 고르자면? --> 없음. 66. 올해 연대의 팀성적을 예상해본다면? --> 전승 67. 월드컵에서 한국은 16강 진출을 할수있을까요? --> 못함. 68. 이 상 만큼은 꼭 받아보고싶은 상은? --> ? 69. 지금까지 받은상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상은? --> 청대표 MVP. 70. 만약 농구가 아니라 다른종목의 선수였다면, 어떤종목? --> 야구. 71.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뿌듯했을때? --> ? 72. 대학교 1학년때 성적은? --> 대학1차 준우승 1회. 73. 방성윤선수 솔직히 말해주세요! 지금까지 002 횟수는? --> 셀수 없음. 74. 가장 사진있는 신체부위는? --> 배 75. 보물1호 --> 나자신 76. 즐겨가는곳? --> PC방 77. 연세대 응원가중에 제일 좋아하는 곡은? --> 원시림 78. 지금까지 이상형을 만난적이 있습니까? --> 있는데 그림의 떡. 79. 방성윤선수가 팬들에게 바라는점은? --> 응원 욜심히 해주세요! 80. 나의 버릇이나 습관은? --> 가끔 멍하고 있을때가 있다.

 81. 화가 났을때의 나는? --> 얼굴색이 변한다.

 82. 비가 올때 듣는 노래는? --> 사랑해 이말밖엔... 83. 비올때 성윤선수는 무엇을 하나요? --> 비맞는다.

 84. 이성들이 나를 보고서 하는 말? --> 무섭다.

 85. 내가 엽기적인 그녀를 만난다면? --> oh my god! 86. 타임머신을타고 과거로 돌아갈수있다면 어느시절로 갈것인가요? --. 고3시절로 87. 좋아하는것 10개 나열하세요. --> 할머니.나.아버지,어머니,동생,농구,밥,팬,친구,노트북 88. 싫어하는것 10개나열하세요.--> 생선,뿔테안경,고양이,술,담배,커피,탄산음료,아픈것,주사,바늘 89. 나는 평생 얼마의 돈을 벌었으면 좋나요? --> 1조 90. 가장 창피했을때? --> ? 91. 슬램덩크에서 나오는 사람중에서 나랑 가장 흡사한것 같은 사람? --> 이정환 92. 기억에 남는팬은? --> 은정이 93. 운동을 할때 이런거는 싫다 이런것을 좋다.

--> 억압된것/ 자유로운것 94. 이제 다음달이면 게임이 시작되는데 각오는? --> 전승 95. 프로경기를 보면서 가장 눈여겨 보게되는 선수는? --> 김승현 96. 팬레트주소 (쑥쓰럽죠?) --> 이사갈꺼라서... 97. 존경하는 운동선수? --> 최승태 98. 이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99. 100문100답 두번째했는데 첫번째와두번째 다른점이 있다면?--> 새롭고 나를 한번더 생각해보게됐다 100. 끝내고난 소감은? --> 힘들다  ------------------------------------------------------------------------------------ 그리고 이건 고딩때 그의 동기가 쓴 글 휘문고등학교 재학시 방성윤선수를 처음본건 신입생때였습니다 그 당시에도 덩치가 장난이 아니었죠 단 키도 고1때 이미 195였습니다 이게 좀 아쉽죠^^; 저같은경우는 당시 주4일 등교를 기본마인드로 하는.. 말 그대로 공부와는 담을 쌓은 학생이기에.. 키와는 무관하게 맨뒷자리에 않았었죠 방성윤선수의 자리는 물론 맨뒤 구석이 지정석이었고요ㅎ; 저도 당시 농구를 좋아해서 얘기를 많이 했엇는데 언젠가 그런대화를 한 기억이 납니다 "너희는 연대나 고대 농구시험쳐서 가는거야?" "아니 스카웃이 돼야지" "그럼 스카웃돼겠네?" "야 불러줘야 가는거지" "야 너정도면 가겠지" "불러줄만큼 열심히해야지" 그때부터 참 겸손한 친구였습니다 그와더불어 제 앞에있던 친구가 방성윤선수보고 그런말을 한 기억도 나네요 "방가 내 친구가 너 진짜 잘생겼대 너보고 타이거우즈 닮았대" 저를 비롯한 주변의 친구들은 "어 진짜 좀 닯았는데?" 하니까 방선수가 그런소리 첨 들어본다면서 웃더라구요 물론 그래도 기분은 좋은지 씨익 웃더군요 ㅎㅎ 암튼 정말 겸손하고 말이 별로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방선수의 덩크.. 요즘 말이 많던데 덩크 고1때도 이미 했습니다--; 방선수의 운동신경에 대해서 말이 많던데.. 물론 개인적으로 아시아에서는 20-3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하다고보는 현주엽선수의 신체대비 운동능력엔 안되겠지만.. 그래도 보통이상은 충분히 된다고 봅니다 확실한건 그당시에 이미 덩크는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본 방성윤선수의 대뷔전은 방선수 고1당시 첫대회에서 휘문과 낙생의 결승전이었습니다 그 당시 방선수는 후반에 나왔었죠 휘문은 전통이 오래되어서인지 신입생이 첫대회때부터 주전으로 나가거나 그런경우는 없는걸로 압니다.

. 그 당시 후반중반에 투입되어서 12점을 넣죠 그리고 스포츠신문에도 방성윤(12득점)이라고 나왔었죠.. 근데 이 경기에서 집니다 낙생한테 3점 버저비터 얻어맞고 아직도 기억나네요--; 암튼 다음날 당시 저희반 담임선생님이 앞으로 유명한스타가 될꺼니까 다들 미리 싸인받아놓으라고 했었는데.. 그 당시엔 그냥 다들 웃었죠 누가 알았겠어요 ㅎㅎ;; 암튼 당시 울학교의 에이스는 지금은 동양에서 뛰는 오용준 선수였지만.. 방선수는 이미 슈페에이스의 가능성을 인정받고있었죠.. 아 참고로 그때는 지금처럼 3점 스탈은 아니었습니다 골밑에서 묵묵히 득점하던 스탈이었죠.. 이것도 역시 선배들이 있는 학교의 전통이 아니었나봅니다 체육관에서 연습하는거보니 2학년때부턴 3점슛 엄청 연습하더라고요 ㅎㅎ; 암튼 방선수는 그렇게 연대에 스카웃되고 다른 농구부 한명도(당시 우리학년 농구부가 방선수 이선수 단 둘이었다는;;) 연대에 들어갑니다 근데 이 선수는 프로에서 뛰는지는 모르겟네요 대학 4학년땐가.. 무슨 시합에서 이 선수가 버저비터 넣었던건 확실히 기업납니다만 이름은 기억이 안나네요 너무 오래전이라;; 암튼 중학교때까지 운동부하고 하도 많이 싸운 저로서는 방성윤만큼 괜찮았던 운동부학생을 못본것같습니다.

. 솔직히 인간적으로 정말 괜찮은 선수가 아니라면 이렇게 잘되길 바라지도 않을겁니다.

. 벗.. 1년동안 같은반에서 방선수의 인간성과 성품을 보아온 사람으로서.. 정말 방선수가 레이알렌하고 3점대결을 해보고 싶단 소리를 했을때.. 레이앨런선수가 신경이 상당히 쓰일정도의 대선수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 10년전쯤 전이라 당시 일이 많이는 기억이 안나는데.. 허접하지만 기억나는대로 몇자 적어봤습니다^^;  ---------------------------------------------------------------------------------------------------------------  Real Talk with Big Bang서울 SK 에이스 방성윤 ‘내가 살아가는 힘’Big Bang 1.[천문] 우주대폭발 2.[경제] (1986년 10월의) 런던 주식시장 제도 대개혁. KBL에는 또 다른 의미의 ‘빅뱅’이 있다.

SK 나이츠의 에이스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슈터 방성윤의 별칭이 그것이다.

세 시즌을 거치며 프로농구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한 방성윤. 05-06시즌 신인왕을 거쳐 매 시즌 올스타에 선발되었고,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있다.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과 우승, 그리고 NBA 진출이 그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최고의 무대를 꿈꾸는 방성윤을 일으켜 세우는 힘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를 달리게 하는 것일까?내가 살아가는 힘 : 농구 “농구요? 저의 전부죠.”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방성윤의 입에서는 ‘농구는 나의 전부’라는 말이 나왔다.

“이제 농구와 저는 헤어질 수 없는 관계죠. 저는 농구말고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요.” 농구 이외의 다른 운동은 해본 적도 없다.

단 한 번 야구공을 잡아보긴 했지만 그다지 좋은 기억이 남아있진 않다.

“대학시절 야구부에 있는 친구와 캐치볼을 한 적이 있어요. 봐주지 말고 던져 보라는 저의 요청에 친구가 힘껏 볼을 던졌는데, 공이 너무 빨라 잡지 못했어요. 공이 글러브를 맞고 나와 제 이마에 맞았는데, 너무 아프더라고요. 그 이후로 야구는 절대 안 해요.”사실, 어쩌면 방성윤은 농구 이외의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그는 휘문고 시절부터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고 연세대를 거쳐 국가대표에 선발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기 때문이다.

방성윤은 고 1때부터 최고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프로 경기든 국제경기든 플레이에서 나타나는 자신감은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신감은 KBL무대에서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이다.

누구와 매치업을 이루던지 그는 크게 개의치 않고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한다.

[방성윤] 대박이네요.



그리고 위기 상황에 볼을 요구하며 클러치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에이스의 덕목인 ‘킬러 본능’의 근원은 바로 이러한 자신감인 것이다.

방성윤은 스몰포워드와 슈팅가드를 넘나들며 외곽에서 3점슛으로 공격에 불을 당기고 수비가 붙으면 힘을 앞세운 돌파로 득점을 올리는 스윙맨이다.

그러나 방성윤은 자신의 플레이스타일을 “주눅 들지 않는 농구”라고 간단하게 설명한다.

미국 D리그에서 낯선 환경 속에 외로운 사투를 벌인 것도, 아시안게임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부상에도 불구하고 42점을 폭발시킨 것도 그의 자신감 넘치는 농구가 남긴 장면이다.

방성윤은 자신의 주눅 들지 않는 농구 스타일을 플레이오프와 더 나아가 NBA 무대에서도 펼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내가 살아가는 힘 : SK하지만 천하의 방성윤도 2년 동안 SK를 플레이오프로 이끌지 못했다.

때문에 모든 인터뷰 마다 그에게 플레이오프에 대한 질문은 빠지지 않는다.

“모든 분들마다 플레이오프에 대해 물어보시죠. 그 때문에 더욱 부담을 가지게 되지만 극복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평생 농구를 하면서 진 경기보다 3년 동안 프로에서 뛰면서 진 경기가 더 많을 것 같아요. 이제는 그만 질 때도 됐죠. 하하.” 방성윤의 말대로 프로에서 그는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로 인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잘 들지 않는다고 한다.

“자꾸 지다보니 경기에서 이기고 있어도 역전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새 시즌 방성윤은 김태술의 입단으로 든든한 도우미를 얻었다.

다른 매체의 촬영을 위해 옷을 차려입은 김태술이 사진 촬영중인 방성윤 앞을 지나가며 장난 섞인 한마디를 던진다.

“멋있다

.” 둘은 연세대 선후배로 서로 장난을 잘 주고받는 친근한 사이다.

“태술이는 대학교에서 같이 뛰었기 때문에 손발을 맞추기가 한결 편해요. 최근엔 저보다도 언론의 관심을 더 받는 것 같아요. 태술이는 자기가 하려는 의지가 강하죠. 삼성과의 시범경기에서 (이)상민이 형을 상대로도 자신 있는 플레이를 펼쳤죠.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에 실책도 하고 무리하다 싶은 플레이도 했지만, 원하는 플레이를 마음껏 펼쳤다고 생각해요. 아마 저희가 다시 만나게 된 건 이제 그만 지기 위해서일 겁니다.

하하.” 또, 방성윤은 오프시즌 동안 김태술과 다른 한 명의 도우미를 만났다.

바로 김진 감독이다.

“저에겐 너무 고마운 분이죠. 제가 대학생 신분인데도 불구하고 부산 아시안게임 대표로 뽑아 주셨어요. 감독님 덕분에 금메달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죠. 병역 면제 혜택도 받게 됐고요. 감독님이 오신 뒤에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감독님과 좋은 인연을 맺었던 만큼 프로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 방성윤은 신동파-이충희-김현준-문경은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슈터 계보를 잇는 선수이다.

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3점슛 하나만큼은 최고임을 자부하는 문경은은 현재 방성윤의 팀 선배이자 코치로써 그를 보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둘은 어떤 대화를 주로 나눌까?“너는 대한민국 슈터 계보를 이을 선수다.

너는 내 뒤를 이을 선수다.

이런 대화를 나눈다는 건 거창하고 상황이 좀 웃기지 않나요? 그런 얘기는 하지 않죠. 팀이 이기는 것, 잘 되는 것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눠요. 저한테는 많은 도움을 주시는 선배님이시죠.” 그렇다면 그는 슈터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을까?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슛을 성공시킬 수는 없어요. 마이클 조던도 모든 슛을 성공시키지는 못해요. 하지만 조던이 위대한 것은 중요한 순간에 슛을 성공시키기 때문이죠. 경기 내내 슛이 들어가지 않아도 결정적인 순간에 한방을 터뜨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 그게 바로 슈터라고 생각해요.” 이처럼 든든한 감독과 선, 후배를 만나게 된 방성윤. 그는 SK가 플레이오프에 오르기 위해서는 우선 에이스인 자신부터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한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플레이를 하면 SK가 더 많이 승리할 것이고 이를 통해 팀이 플레이오프에 나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많이 지다보니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자꾸 줄어들죠. 이길 수 있다는 각자의 마인드 컨트롤 조절이 필요하다고 봐요. 어떤 팀과 붙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죠. 김진 감독님이 오시면서 분위기가 좋아지고 태술이도 들어왔고 외국인 선수들도 팀에 잘 적응하고 있어요. 이번엔 정말 느낌이 좋아요. 꼭 플레이오프에 오르도록 하겠습니다.

” 내가 살아가는 힘 : 팬, 가족 그리고 친구 방성윤이 가세한 2005-2006시즌부터 잠실 학생체육관은 관중이 늘었다.

지난 10월 10일에 열렸던 원주 동부와의 시범경기에서도 그와 SK를 보기 위해 많은 팬들이 잠실 학생체육관을 찾아왔다.

“농구를 하면서 나와 농구, 농구와 팬은 하나의 연결고리가 된 느낌이에요. 팬들이 없는 농구장에서 농구를 한다면 정말 농구할 맛 안 날 것 같아요. 저와 우리 팀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아주시는 팬 여러분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팬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뜁니다.

” 비록 아마추어 농구의 인기가 예전만 못 하다지만, 방성윤은 연대 시절부터 팬들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기억에 남는 팬을 꼽아달라니 “갑자기 누구 한 명을 기억하기가 어렵다”며 너스레를 떤다.

“특이한 선물을 주신 팬들이 있는데요. 한번은 팬티를 선물 받은 적이 있어요. 팬티에 제 이니셜과 등번호인 ‘BSY7’을 새겨 주셨는데 안타깝게도 사이즈가 작아서 그냥 잘 보관하고 있어요. 또 한 분은 물총을 보내셨는데,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그 시기가 여름이었던지라 물총으로 장난치면서 시원하게 여름을 보내라는 뜻이었겠죠? 독특한 선물이었어요.”방성윤은 지난 시즌 팬들을 위해 콘로우 헤어스타일을 선보인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올 시즌에도 그의 머리스타일에 대한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아직 특별히 생각한 머리스타일은 없어요. 콘로우는 하면 진다고 해서 조심스러워요(웃음). 지금은 머리가 좀 지저분해서 시즌 들어가지 전에 정리할 생각이에요.”마지막으로 그에게 농구 외에 가장 소중한 것을 물어봤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모범답안이 준비된 질문이었다.

그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가족들은 지금의 저를 있게 한 분들이죠. 친구들은 또한 제게 가장 힘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 “선수들 중에는 (이)정석이(서울삼성)와 (최)승태(전 창원 LG)가 가장 친해요. 정석이와 승태 모두 부상 때문에 걱정이에요”라며 친구들의 안부를 염려했다.

SK는 올 시즌 홈 경기에서 스포테인먼트의 일환으로 별명 유니폼을 시범경기부터 착용하고 있다.

방성윤에게 붙은 별명은 ‘Mr.빅뱅’.한때 ‘방가’로 불렸던 그가 KBL에 데뷔할 당시 언론에 의해 만들어져, 팬들에게까지 굳어진 별명이다.

몇몇 선수들이 별명에 대해 어색해하지만, 방성윤은 오히려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너무 멋진 별명이죠. 미국에서 KBL로 들어오면서 생긴 별명인데, 정말 마음에 들어요. 팀 동료들에게는 저만 멋진 별명을 가진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해요. 백만돌이(전형수), 얄루(최종훈) 같은 별명도 있는데, 저도 시간이 지나면 익살스런 별명으로 바꿔볼까 해요. 지금 생각엔 ‘방가방가’가 가장 재미있는 거 같아요.” JUMPBALL 2007년 11월호(발행일 10월 25일) 기사   ----------------------------------------------------------------------------------------------------------  흔히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이른바 ‘잠재력 있는 노력파’ 타입이라면 그의 라이벌은 보통 ‘천재’인 경우가 많다.

물론 슬램덩크처럼 주인공이 (자칭)천재인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주인공의 성장에 맞춰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그가 넘어야 할 산으로 천재적인 라이벌이 등장하곤 한다.

요즘 흔히 쓰이는 표현으로 ‘엄마 친구 아들’ 같은 캐릭터다.

그러한 천재들은 최고의 동료들 가운데서도 에이스로서 전천후 활약을 펼친다.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물론 노력도 하겠지만 세상은 그의 노력보다는 재능에 더 관심을 갖기 때문에 그런 모습은 좀처럼 남들의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다.

예전에 보던 방성윤의 모습이 꼭 그랬다.

같은 농구선수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당당한 체구에 슈팅가드부터 센터까지 폭 넓게 소화할 수 있는, 농구를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완성되어 있는 듯한 실력. 그리고 청소년기부터 줄곧 대표로 선발되면서 차근차근 밟아온 엘리트 코스는 그를 대학 최강 연세대의 에이스이자 ‘대학생 국가대표’로 만들었다.

사실상 국내 대학 무대에서 그를 막을 선수는 거의 없었고 프로에서도 곧 그렇게 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꿈을 꾸기 시작했다.

자신이 약자로 분류되는 곳에서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며 아무도 하려고 들지 않던 도전에 몸을 던졌다.

국내에 돌아와서는 패배로 점철된 시즌을 보내며 상대 팀의 집중 견제 뿐 아니라 안티 팬들의 질타를 상대로 싸워야 했다.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방성윤이 입체적인 주인공 캐릭터로 변신한 것은. 그는 도전하고, 때로는 자신의 계획보다 멀리 돌아가고, 패배하고, 힘겨워하면서 자신이 주인공인 자신만의 농구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최근 방성윤에게서는 어쩐지 변화가 느껴진다.

그에게 “어떤 변화를 느꼈는지 아느냐”고 묻자 “헤어스타일?”이라는 웃음기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물론 그것도 그의 변화를 알리는 하나의 단면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처럼 전보다 더 여유롭고 밝아진 방성윤의 모습은 일상생활에서나 플레이 면에서나 분명 큰 변화임이 분명하다.

방성윤 자신은 그렇게 보이느냐고 반문하면서 “속으로는 여전히 조급해한다”고 엄살을 부렸지만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SK 허남영 매니저는 “여유가 많아진 모습이 얼마나 좋으냐”며 내심 뿌듯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바로 얼마 전까지 방성윤의 캐릭터가 ‘멋지지만 고독한 히어로’ 같았다면 지금은 모험 만화 속 주인공인 평범한 소년 같다.

그만큼 친근하고 친숙해졌다는 말이다.

기사 하나만 나가면 줄줄이 ‘악플’을 달던 안티 팬의 수도 급격히 줄었다.

이는 물론 꾸준한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일이지만 결정적으로 팬들을 움직인 것은 분명 그 자신의 변화다.

요즘 방성윤은 많이 웃는다.

원래 무표정한 편은 아니었지만 최근에는 되도록 더 웃고 기분 좋을 때면 감정 표현을 확실히 해준다.

때때로 사람들은 웃는 얼굴에 침을 뱉기도 한다.

방성윤의 경우가 바로 그 피해자인 격인데, 그의 사진에는 유독 악의성 댓글이 달리는 일이 잦았다.

가끔씩 한 쪽 입꼬리가 더 올라가는 그의 웃음은 네티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재였던 것. 그도 이를 알기 때문에 사진 촬영에 임하면서 “웃으라고만 하지 마세요”라는 농담을 던졌을 정도. 물론 말뿐이었지 촬영은 순조로웠다.

그는 카메라를 앞에 둔 채 와 이야기 하면서도 거리낌 없이 웃었다.

“처음에는 그런 댓글을 보고 뭐야, 이거! 그랬는데 지금은 신경 안 써요. 악플도 관심의 일부니까, 어떤 말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마침 인터뷰 다음날은 화이트데이였다.

“내일 사탕 줄 사람은 있어요?” 의 물음에 방성윤은 “너무 많아요. 팬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은데…” 라며 질문의 의도를 슬그머니 피해갔다.

비록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부쩍 팬들의 고마움을 실감하고 있다는 그는 이 발언을 통해 최근의 급격한 변화들도 팬들을 위한 것임을 시사했다.

KBL 입성 직후 가졌던 인터뷰에서 그는 미장원에 잘 안 가다보니 머리를 기르고 있다고 밝혔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갈기머리를 휘날려왔지만 2007년 들어서는 파격의 극치인 ‘콘로우’를 비롯,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요즘 농구 인기가 예전 같지 않으니까… 어떻게 하면 팬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드릴 수 있을까 생각했거든요. 저 하나 귀찮다고 머리를 기르기보다는, 제가 머리 모양을 바꿔서 한 명이라도 더 농구에 관심 갖고 농구를 보러 와줄 수 있다면 빡빡 깎은 머리라도 할 수 있는 거죠.”그의 이러한 생각은 그대로 맞아떨어졌고 팬들은 옥수수 머리를 한 그를 두고 NBA 스타 카멜로 앤쏘니 같다는 뜻에서 ‘방멜로’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에 대한 이미지가 호감 쪽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팬들의 즐거움을 위해, 더 크게는 농구의 인기를 위해 얼마든지 스타일을 바꿀 수 있다는 방성윤. 그럼 그가 앞으로 보여주겠다고 공언했던 쇼킹한 머리는 그의 말 그대로 ‘빡빡’ 깎은 머리가 될까? 아쉽게도 당분간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의 말에 따르면 ‘김혜수 머리’도 충분히 쇼킹하기 때문.방성윤은 최근 얌전히 머리를 다듬었고 이는 신기성(KTF)이 올스타전 방송 해설 도중 김혜수 머리로 선포하면서 또 한 번 유명세를 치렀다.

그러나 사실 그의 이 머리는 결의를 다지기 위한 것. 5라운드 이후 전보다 활약이 주춤해진 그는 실제로 머리 모양이 플레이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없었음에도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차원에서 머리카락을 잘랐고 자신의 미니홈피에 팬들에 대한 감사와 결의를 담은 장문의 글을 남겼다.

‘Basketball Is My Life’라는 제목을 가진 그의 미니홈피에는 슈팅 연습하는 모습부터 운전하는 모습, 콘로우 스타일로 머리를 땋을 때의 모습까지 다양한 그의 일상이 담겨 있다.

팬들의 일촌신청을 모두 받아주면서 방성윤은 이 공간을 통해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고 팬들과 소통을 꾀하고 있다.

“모두가 제 마음을 알 수는 없는 거잖아요. 이곳에 와주시는 분들 만이라도 저를 조금은 이해해달라는 의미에서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해드리고 있어요. 계속 접속해놓은 채 시간 날 때마다 들어가서 사진도 올리고 글도 올리곤 하고 있죠.”그의 미니홈피에 팬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니홈피를 운영하는 농구선수들은 꽤 있지만 그가 미니홈피를 한다는 사실은 기사화까지 되었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농구팬들은 접속 중인 일촌 목록에 있는 방성윤의 이름을 캡쳐해 놓고 그와 동시접속 했다며 신기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을 밤새 싸이월드나 하니까 그런 게 아니냐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이 자리를 빌어 확실히 오해를 푸는 게 좋겠다.

방성윤은 종일 로그인 한 채로 생활하며 접속 중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또 하나의 도전, KBL이렇게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방성윤이지만 사실 그의 06

07시즌은 그리 밝지 못하다.

이 기사가 독자에게 읽혀질 때에는 이미 6강 진출 팀이 모두 가려져 있겠지만 아직까지 SK는 실낱같은 희망만을 붙들고 있을 뿐이다.

이번 시즌에도 SK는, 그리고 방성윤은 험난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시안게임 대표팀 차출로 전력 이탈이 불가피하던 상황에서 설상가상 소집 전날 발목을 다치기까지 한 것. 얼마 후 태릉 선수촌에서 만난 그는 깁스를 한 채 우울한 얼굴로 훈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러다 또 다치면 시즌을 접게 되는 것 아니냐”는 말에서는 그답지 않게 불안해하는 모습마저도 엿볼 수 있었다.

결국 방성윤은 진통제를 먹고 나선 카타르 전에서 42점을 몰아넣으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지만 다음 경기에서 또다시 부상이 찾아왔고 간신히 복귀한 후에는 자신에게 의존도가 너무 큰 팀을 힘겹게 이끌고 가야 했다.

SK는 주전들의 높은 네임 밸류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제 몫을 해줄 선수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시즌 초에는 해결사 역할을 해줄 것으로 예상했던 외국인선수들이 소극적인 플레이를 보여서 곤란을 겪었고 과거 농구대잔치 영광의 세대인 문경은과 전희철은 눈에 띄게 노쇠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임재현은 상당한 스피드와 공격력을 지녔음에도 가드로서 팀을 조율하는 데는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이 모인 SK는 여전히 좌표를 찾지 못한 채 흔들렸고 김태환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당한 뒤에는 강양택 감독 대행이 근근이 팀을 이끌고 있다.

패스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상대 수비에 득점이 막히면 공격 제한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채 그에게 볼이 전달되고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슈터로서 던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 방성윤의 득점 및 야투, 3점슛 개수가 높은 데 비해 상대적으로 슛 성공률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선수 생활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패배를 당하고 있는 방성윤은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잦은 부상이 쌓이면서 컨디션은 떨어졌고, 딴에는 몸을 추슬러 전과 같이 플레이를 한다는 것이 마음처럼 들어가 주지 않는 것. 하지만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당분간 팀 성적만을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저 뿐 아니라 (문)경은 형, (전)희철 형 같은 분들도 워낙 많이 이기는 것에 익숙하신 분이라 팀 전체가 많이 힘든 상황이에요. 저 혼자 잘 해서 이기려 하는 것 보다는 형들 믿고 같이 잘 해나가야죠. 그동안 득점 랭킹에 신경 쓴다든지 용병을 넘어서야겠다는 생각을 하느라 팀에 방해가 되어왔던 게 사실인데 이제라도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개인적인 순위 같은 것은 팀을 생각한 후에 신경 써도 늦지 않습니다.

우리 팀이 잘 되면 제 득점도 올라가있을 테니까요.”사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신인들에게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어왔다.

하지만 팀의 중심이자 KBL을 대표하는 선수로 확고히 자리 잡은 그의 입으로 듣는 것은 상당히 신선하다.

그것도 “득점 부분은 용병에게 뒤지고 싶지 않다”면서 자존심을 걸고 랭킹에 들도록 하겠다고 말해온 그가 아닌가. 물론 득점 국내 1위(전체 7위), 리바운드 국내 2위(전체 16위), 3점슛 성공 1위, 자유투 성공 4위에 올라있는 등 블록슛과 야투 성공률을 제외하고는 전 부문 2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성적도 아직 그는 모자람을 느낀다.

하지만 이전까지 4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그러한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데려온 선수가 바로 방성윤임을 그 자신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실질적인 팀의 리더로서 SK의 마지막 ‘믿을 구석’인 그는 목표를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와 SK의 플레이오프 도전이 성공을 거두면 좋겠지만, 혹여 또 한 번의 실패를 더해주게 되더라도 정규시즌이 끝난 뒤 방성윤이라는 선수는 한 단계 더 성장해 있으리라는 믿음이 든다.

1982년생. 방성윤은 올해로 26세가 된다.

아직 생일 안 지났으니 만으로 24세라고 외치는, 자신이 어른이라고 느낄 때는 거의 없다는 이 청년에게 한 팀의 명운이 걸려있다는 현실은 너무 무거운 짐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를 주저 않는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NBA 진출이 바로 그것이다.

“대학교 1학년이 지나면서부터였어요. NBA에 가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 건. 농구선수에게 있어 끝은 그 곳이니까요. 혹시 나도 갈 수 있을까… 되는 데까지라도 해보자, 하고 생각했죠. 일단은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그러나 그는 꿈을 꾸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군 복무를 면제받은 2년의 시간을 NBA 진출에 투자하기로 했고, 비록 KBL 행으로 선회하기는 했지만 NBDL에서 혼자 고생하며 귀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NBDL 생활은 ‘떨리고 긴장되고 농구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말도 안 통하고 마음 터놓을 이 없는, 모든 것을 혼자 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 치열한 경쟁을 경험하며 20대 초반의 그는 충분히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의사소통을 하기에 족한 언어를 습득하고, 동양인이기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극복해냈고, 동료를 만들었으며, 3점슛 1위 타이틀이라는 보너스를 얻기도 했다.

방성윤이 처음 농구란 운동의 매력에 빠진 것은 오래 전 농구대잔치 시절, 연세대와 고려대를 이끌던 현재 팀 내 최고 고참 문경은과 전희철의 플레이를 보고서다.

그리고 농구가 좋아서 열심히 농구를 하던 소년은 농구가 좋고, NBA가 좋아서 고통 또한 감내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NBA 진출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그를 지켜본 험프리스 전 전자랜드 코치나 KT&G 단테 존스 등이 평가했듯이 자신을 믿는 강한 마인드는 3점슛 능력 이상으로 그의 강한 무기가 될 것이다.

“가능성도, 혹은 도전에 대한 두려움도 다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봐요. 두려워하던 것도 마음만 먹으면 즐기는 게 될 수도 있는 거고.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즐겁게, 쉽게 생각하다보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06

07시즌이 끝나면 방성윤은 또다시 도전에 임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문을 두드리기보다는 SK 선수로서 구단의 도움을 받으며 NBA 진출을 타진하겠다는 것이 당초의 계획이었던 만큼 그는 멀리 돌아왔지만 다시금 꿈을 향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일단 비시즌 중 썸머리그에 참가하는 식이 될 것이며 SK 구단 측에서도 미국 내 생활을 전부 책임지는 등 적극적으로 그를 도울 작정이다.

농구를 좋아하고, 어릴 때 농구를 보면서 느꼈던 설렘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농구를 한다는 방성윤. 이제 그는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처음 농구를 시작했을 때는 농구의 인기가 높았지만 지금은 농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 그는 어떻게 하면 대중이 농구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할까, 어떻게 하면 연예인을 보러 가는 것 대신 농구를 보러 오게 할 수 있을까를 고심하는 데 한창이다.

그래서 특이한 머리로 주목도 받았고 미니홈피를 통해 팬들과의 장벽을 허물었으며 힘들지만 더 많이 웃으면서 코트에 몸을 던진다.

자신에 대한 오해와 폄하도 이겨냈다.

그리고 그가 NBA 입성의 꿈을 이룬다면, 설령 그 꿈이 그저 아름다운 꿈으로만 존재하게 될지라도, 그와 같이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이가 있는 한 농구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결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저 작은 소년에 불과하던 만화 속 주인공은 모험을 하면서 점차 성장하고 영웅으로 거듭난다.

꿈을 잃지 않고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는 방성윤도 언젠가 농구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우뚝 서있게 되지 않을까? 그가 옮기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주목하고 싶은 이유다.

    -------------------------------------------------------------------------------------------------------------- 저는 농구를 참 좋아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농구를 보면서느꼈던 설렘을 다른 사람에게도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오늘도 열심히 운동하고 있습니다.

저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나저를 싫어하시는 분들이나그만큼 농구에 신경을 써주신다는 마음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제가 머리를 콘로우를 하건 대머리로 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러한 저로 인해서 단 한 분이라도 농구에관심을 가져주신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농구 많이 사랑해주시고한국축구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누비는 것처럼언젠가 한국농구선수들도NBA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과 뛰는 그 날까지저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방성윤 미니홈피 발췌 ---------------------------------------------------------------------------------------------------     ..이란전 26점 폭발카타르 감독"외곽포 세계적 수준"극찬그가 3점라인 밖에서 슛을 쏘자 취재석의 이란 들은 "오!노!"라고 외치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마치 볼에 자석이라도 박아 놓은 듯 정확하게 림에 빨려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란 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주인공은 한국인 최고슈터 문경은(34)이었다.

역시 국제무대에 강한 "람보슈터"였다.

문경은의 진가는 14일(이하 한국시간)카타르 도하의 가라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 23회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8강리그 마지막 3차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드러났다.

문경은은 3점슛 성공률(9개 시도, 7개 성공)을 무려 80%가까이 끌어올리며 양팀 최다인 26점을 폭발시켰다.

이날 경기에서 패하면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 사상 첫 4강 진출 실패라는 치욕을 당할 뻔했던 한국을 수렁에서 구해낸 귀중한 활약이었다.

거침이 없었다.

오픈찬스에서는 백발백중, 이란의 수비수가 악착같이 달라붙어도 조금의 틈만 보이면 3점슛을 작렬시켰다.

그의 슛감각은 절정에 달해있다.

8강리그 2차전에서 한국을 격침시킨 카타르의 조셉 스티빙 감독이 "문경은의 외곽포는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8강리그 1차전 요르단전에서 경기종료 19초 전 천금같은 역전 3점포를 작렬시켰던 문경은은 이날의 맹활약으로 '아시아 최고의 슈터'의 명성을 재확인했다.

사실 문경은은 대표팀에서 '1인다역'을 하고 있다.

확실한 주득점원일 뿐 아니라 주장으로서 후배들을 다독거리며 대표팀의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 걸죽한 입담으로 대표팀의 분위기까지 주도하고 있다.

 어제 같은 대회 8강전 방성윤 2/10, 특히 3쿼터 15초 남겨 두고 공격시 수비달고 무리하 3점 슛을 시도하여 속공 버저비터 3점을 허용...방난사...  이 블로그rss를 정기적으로 구독하시려면  클릭하세요.  퍼가실 땐 공감 버튼 눌러주세요.                 ..이란전 26점 폭발카타르 감독"외곽포 세계적 수준"극찬그가 3점라인 밖에서 슛을 쏘자 취재석의 이란 들은 "오!노!"라고 외치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마치 볼에 자석이라도 박아 놓은 듯 정확하게 림에 빨려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란 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주인공은 한국인 최고슈터 문경은(34)이었다.

역시 국제무대에 강한 "람보슈터"였다.

문경은의 진가는 14일(이하 한국시간)카타르 도하의 가라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 23회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8강리그 마지막 3차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드러났다.

문경은은 3점슛 성공률(9개 시도, 7개 성공)을 무려 80%가까이 끌어올리며 양팀 최다인 26점을 폭발시켰다.

이날 경기에서 패하면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 사상 첫 4강 진출 실패라는 치욕을 당할 뻔했던 한국을 수렁에서 구해낸 귀중한 활약이었다.

거침이 없었다.

오픈찬스에서는 백발백중, 이란의 수비수가 악착같이 달라붙어도 조금의 틈만 보이면 3점슛을 작렬시켰다.

그의 슛감각은 절정에 달해있다.

8강리그 2차전에서 한국을 격침시킨 카타르의 조셉 스티빙 감독이 "문경은의 외곽포는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8강리그 1차전 요르단전에서 경기종료 19초 전 천금같은 역전 3점포를 작렬시켰던 문경은은 이날의 맹활약으로 '아시아 최고의 슈터'의 명성을 재확인했다.

사실 문경은은 대표팀에서 '1인다역'을 하고 있다.

확실한 주득점원일 뿐 아니라 주장으로서 후배들을 다독거리며 대표팀의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 걸죽한 입담으로 대표팀의 분위기까지 주도하고 있다.

 어제 같은 대회 8강전 방성윤 2/10, 특히 3쿼터 15초 남겨 두고 공격시 수비달고 무리하 3점 슛을 시도하여 속공 버저비터 3점을 허용...방난사...  이 블로그rss를 정기적으로 구독하시려면  클릭하세요.  퍼가실 땐 공감 버튼 눌러주세요.                 한때는 한국농구의 희망이였던 "빅뱅" 방성윤에 대해 소개 해드리겠습니다.

그는 82년생으로 휘문중 - 휘문고 - 연세대를 졸업했으며고등학생때인 2000년에는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상을 거머쥔 경력이 있습니다.

그러다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던 2002년..한국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대회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하는데 크게 공헌합니다.

그리고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방성윤은 병역면제 혜택까지 받게됩니다.

그리고 2004년..방성윤은 미국으로 진출합니다.

약 2년간 미국에서 활약한 방성윤은 KBL 05-06시즌이 개막하기 직전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당연히 신인 1순위로 부산KTF에 들어갑니다만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SK로 전격 트레이드 됩니다05-06 시즌부터 SK에서 활약한 방성윤은 첫시즌 34게임을 뛰면서 평균득점 17.2점 3점슛 평균 2.5개를 기록하며 신인상을 수상합니다.

이 당시 방성윤 하면 빨려들어가는 3점슛으로 유명했었지요.그러다 2006년..국가대표로 선발. WBC (월드바스켓볼첼린지)에 참가하여 미국을 상대로 17점이나 뽑아내면서당시 한국선수들중 최다득점을 기록했습니다그리고 그 해 열린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해도해도 너무한 중동 텃세속에서도 방성윤은 카타르전에서정말 신들린듯 3점슛을 마구마구 꽂아넣으며 맹활약을 펼치고 돌아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방성윤은 06-07 시즌에서도 맹활약하며 평균득점 19.3 3점슛 평균 2.7개를 기록.신인 시즌때보다 더 나은 활약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해 시즌. 방성윤은 베스트 5에 뽑힙니다하지만 방성윤의 시련은..07-08 시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07년 12월 열린 정규경기에서 방성윤은 큰 부상을 당하게 되고약 3개월간 코트에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08년 3월에 복귀 이후 꾸준한 활약을 보여준 방성윤이지만 잦은 부상때문에 결국2011년 6월에 전격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의 나이 30살..농구선수로 치면 아직 한창 활동할 나이였죠..저는 20대 초반이지만 프로농구는 창단때부터 쭉 봐왔습니다.

그리고 여러 플레이어를 봐왔지만 방성윤은 정말 폭풍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의 3점슛은 정말 언빌리버블...놀라움 그 자체였죠진정한 KBL 팬이라면방성윤이 어떤 선수였는지 잘 기억하실겁니다.

만약 지금까지 방성윤이 부상에 시달리지 않고SK에서 쭉 활약했더라면..지금의 SK는 무적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뛰어난 포인트 가드 김선형 주희정 박상오 김민수까지 있는 SK에 방성윤까지..상상만해도 무서운 팀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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