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도살장 알란


당시에는 이 영상에 관심이 없어서 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세계 농장동물의 날’ 집회에 다녀와서 검색을 하던 중 이 영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됐다.

이 영상을 촬영한 토론토 피그 세이브(Toronto Pig Save)라는 단체는 개인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이다.

그 개인은 바로 이 단체의 설립자인 아니타 크라이츠라는 여성이다.

아니타는 ‘미스터 빈’이라는 이름의 개를 입양한 후 날마다 산책을 하던 중, 집 근처의 도축장으로 돼지들을 싣고 가는 트럭을 보게 됐다고 한다.

교통이 막히는 날에는 한 도로에 그런 트럭이 7-8대가 밀려 있곤 했다.

죽음을 앞두고 겁에 질려 있는 돼지들을 보며, 아니타는 무언가를 하기로 결심했다.

개인으로서 그녀가 그 동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은 그들을 외면하지 말고 지켜보는 것이었다.

즉, 돼지들의 고통을 ‘증언’하는 것이었다.

그런 돼지들을 보고 무심하게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과 달리 아니타는 그 동물들을 똑똑히 바라봤다.

이런 그녀의 행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수백 명으로 구성된 집회(vigil)로 발전됐고, 그들은 매주 세 번씩 그 지역 도축장으로 실려 가는 돼지들에게 물과 먹을 것을 주는 방식으로 그들의 고통을 증언했다.

그리고 이들의 모임은 토론토 피그 세이브라는 단체로 발전했고, 돼지뿐만이 아니라 소와 닭을 비롯한 여타 농장동물의 고통을 증언하는 집회로 발전했다.

그리고 이러한 집회는 영국·미국·오스트레일리아·브라질 등으로 확산되어 세계적인 운동으로 거듭나고 있다.

아니타의 증언은 오늘날 수백 명이 모이는 집회로 발전되어 도축장으로 가는 트럭을 잠시 멈춰 세울 정도의 힘을 갖게 됐다.

그리고 이들은 집회 중 닭과 양 한 마리를 구조하여 각각 '머시'와 '미도우'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이들은 농장동물 보호시설에서 안락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누군가의 고통이 당신을 괴롭힌다고 해서 도망치지 말라. 고통 받는 이에게 가능한 가까이 다가가 도와줘라." - 톨스토이도축장에 실려 가는 돼지들을 목격하고 아니타가 무언가를 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채식주의자였던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책이었다.

[도살장 알란] 보면 볼수록..


농장동물들은 도축되기 전 12시간이 넘도록 사료를 공급받지 못한다.

어차피 죽을 동물들에게 사료를 주는 것이 낭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캐나다와 같이 국토가 넓은 나라의 농장동물은 도축장까지 장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큰 고통에 시달린다.

도축장으로 가는 트럭은 혹한과 폭염으로부터 동물들을 전혀 보호해주지 못하며, 이동 과정 동안 먹을 것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페북에서 공유되던 영상에서 돼지들이 절박하게 물을 받아먹은 이유는 그들이 탈수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폭염의 날씨에 금속으로 된 트럭 내부의 온도는 어마어마하게 높을 수밖에 없다.

돼지는 발달된 땀샘이 없어 더위에 취약한 동물이다.

그래서 이동 과정 동안에 열사병으로 죽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아니타가 이끄는 토론토 피그 세이브는 톨스토이, 간디,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비폭력 평화주의의 정신을 지향한다.

도살장에 실려 가는 동물들을 당연시 여기지 않고,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물과 먹을 것을 주는 그들의 행동은 농장동물의 고통을 줄이자고 호소하는 외침이다.

이 단체는 채식산업을 성장시키고 축산업 종사자들의 업종 전환을 돕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

또한 도축장에 잠입하여 실상을 알리는 일도 하고 있다.

개인의 결심이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얻는다.

정말 멋진 롤모델이다.

▲ '세계 농장동물의 날'이었던 10월 2일, 동물자유연대·카라·케어는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알리는 공동 회견을 가졌다.

이날 동물자유연대·카라·케어는 도살 전 배고픔에 시달리는 농장동물의 현실을 알리고, 이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의미로 하루 단식을 제안했다.

비폭력 평화주의. 말은 쉽지만 엄청난 노력을 요하는 일이다.

가끔 보면 동물 학대에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된 사람들을 향해 엄청난 언어폭력을 가하는 사람들을 본다.

분노하는 심정이야 인정하지만, 때로 그런 언어폭력이 동물들에게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에 우려가 된다.

우리는 사회 변화를 원하지만, 사실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만 주장할 뿐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 대중에게 설득하는 데에는 대부분 실패한다.

그래서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동물을 왜 보호해야 하는지 우리가 아무리 완벽한 논리를 펼친다 해도, 사람들은 감동하기 전에는 설득당하지 않는다.

어려운 사람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행동에서 감동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감동을 주기도 어려운데, 언어폭력을 구사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동물보호운동에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반감이나 품지 않으면 다행이다.

생명을 위한다면서 다른 이들에게는 서슴없이 언어폭력을 가하는 그들은 사실 생명 감수성이 매우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런 식의 운동은 대중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내게 동의할 사람은 따라오고 아님 말라”는 식의 극우 또는 극좌로 변질될 뿐이다.

동물보호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생각에 갇히다 보면, 정작 사람들을 등 돌리게 하기 쉽다.

내 반려동물을 보듯이 다른 이를 대하는 것,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공유하기 링크
TAG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