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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스



  (2015년 6월 촬영 - 기사단장의 궁전)1309년부터 1523년까지 로도스를 점유했던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은 1291년에 무슬림에 의해 팔레스타인에 있던 그들의 마지막 요새(아크레)가 함락되자 로도스 섬에 기사단의 근거지를 세웠습니다.

 1444년 이집트 술탄의 침공, 1480년 메메트(Mehmet) 2세의 침공 등 강력한 공격이 있었지만, 기사단은 이에 저항하면서 섬의 중심지를 요새화한 도시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로도스는 1522년 10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 슐레이만 2세(Suleiman II)의 침공에 6개월에 걸친 전투 끝에 마침내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로도스 옛 시가지의 고딕 건축양식은 도데카네스(Dodecanese) 제도의 전통 문화를 만나 변화되었고, 1523년 이후에 오스만 제국의 장식적 요소가 더해지면서, 두 문화의 만남이 이루어 낸 이 지역 특유의 건축 양식들이 만들어졌습니다.

   (2015년 6월 촬영)최초의 병원은 15세기에 ‘대병원’로 대치되었는데, 1440년

1489년에 지은 이 건물은 기사의 거리의 남쪽 편에 있습니다.

 오늘날 이곳은 고고학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2015년 6월 촬영)로도스의 올드타운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데에는-로도스 중세 도시의 문화적 자산은 십자군 전쟁 기간에 창립된 요한 기사단이 언제 점령당할지 모른다는 극단의 공포 속에서도 오랫동안 도시를 유지했던 역사를 보여 주며, 이곳의 건축물들은 이러한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는 탁월한 건축 복합체의 사례이다.

건축 역사가 1523년에 끝난 것이 아니라 모스크, 대중 목욕탕, 이슬람 가옥과 같은 귀중한 이슬람 기념물들을 통해 1912년까지 계속되었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프랑크식 건물들과 오토만 제국 방식의 건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지속적·복합적으로 이루어진 문화 순응 현상을 특징 있게 보여 준다.

 도데카네스의 전통과 만나면서 고딕 건축의 형식 변화가 일어나고, 1523년 이후에는 오스만 제국의 장식적인 요소들이 더해져서, 두 세계의 만남에서 오는 이 지역 특유의 형식들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1912년 이전에 만들어진 모든 건축 요소들은 훼손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이곳의 종교적·군사적 기념물, 민간 기념물, 교회, 수도원, 모스크, 대중목욕탕, 성채, 성문, 성벽들은 인류의 문화유산이므로 최대한 보호되어야 한다.

-  라는 이유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기사단장의 궁전 입니다.

 Palace of Grand Master of Knights현지 명칭 : Παλ?τι του Μεγ?λου Μαγ?στρου (Καστ?λο ? Παλ?τι των Ιπποτ?ν)현지 주소 : Παλι? Π?λη 영어 주소 : Old CIty of Rhodes, Rhodes Town, Greece 로도스 고고학 박물관 입니다.

Archaeological Museum of Rhodes (Hospital of the Knights)현지 명칭은 Αρχαιολογικ? Μουσε?ο Ρ?δου (Νοσοκομε?ο των Ιπποτ?ν)현지 주소는 Νοσοκομε?ο των Ιπποτ?ν, 85100개장 시간은 (겨울) 11월 1일

3월 31일화요일

일요일 : 08:00

15:00월요일은 휴무선사시대와 Epigrephical 관람관은 닫는다고 합니다.

(여름) - 겨울 제외한 모든 기간월요일 : 09:00

16:00화요일

금요일 : 08:00

20:00토,일,공휴일 : 08:00

15:00입니다.

http://odysseus.culture.gr/h/1/eh155.jsp?obj_id=3312#_=_Ministry of Culture and Sports | Archaeological Museum of Rhodesodysseus.culture.gr 로도스 고고학 박물관 홈페이지 입니다.

공휴일이나 표 가격은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솔직히 이소설은 두번보고끝이다.

판타지..이긴 한데.. 전개가 그다지 재미없고? 1인칭시점으로보는게없던것같고.. 글쓸때 참고했던것 이후로 본적이없다.

내용이 나쁜게아니라?? 그냥 지루하다??뭔가 소설많이보면 뻔한전개기도하고- 처음에봤을땐 나름 좋게봤는데 말이지?아는사람? 지인들한테도보여줘봤는데 재미없다고하더라.  두명인가?는 나쁘지않다고했던가. 10리뷰보기     시오노 나나미 / 전쟁 3부작; 제 1편;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제 2편; 로도스 섬 공방전제 3편; 레판토 해전   [서유럽 문명의 총화 콘스탄티노플 함락이후거대 동방제국을 형성하며 서진하는 오스만 투르크이슬람 세계에 맞선 기독교 최전선기지 로도스섬,에게 해의 작은섬 로도스를 핵으로 공격자와 방어자일어나는 쪽과 멸하는쪽이 격돌했다.

  1522년 섬을공략해 온 투르크대제 쉴레이만 1세의 10만 군대에 대항하며나선 이들은 백십자를 수놓은 검정 수도복을 걸친 성 요한 기사단.장미꽃 향기 날리는 옛 섬을 지키려는 젊은 기사들의 피로에게 해는 짙은 포도줏빛으로 물들어간다.

..]  이탈리아어로 카데토(cadetto)라는 말은 봉건귀족의 둘째아들 이하를 뜻하는 말이었다.

....영어로는 "cadet"중세 봉건시대에는 모든 지위나 상속은 장남에게 물려주는게 상례였고 둘째이하 아들은 성직이나 군인이되어 자수성가 하였다한다오늘날에는 귀족의 둘째 이하 자제라는 본래의 뜻은 사라지고 군사적인 면만이 남아서 사관학교의 생도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쓰이고있다성 요한기사단 소속 기사들은 푸른피(귀족)가 흐르는 귀족출신 이어야하고 전사인 동시에 그리스도에게 평생을 바치는 수도사일 것이 요구되며"FERT  FERT  FERT"세번이나 되풀이 되는 이 라틴문자는 "참고 견디라" 라는 의미이며 로도스의 기사들에겐 청빈,복종,순결의 의무를 바치는 기율이 강요된다.

....  [로도스 성채]   1512년 4월, 저녁 노을에 빛나는 로도스섬, 성벽으로 빙 둘러싸인 상항(商港)에 제노바를 출항한 상선이 닻을내린다이 배에는 요한 기사단의 안토니오 델 카레토라는 아름다운 젊은이가 타고있다.

..장미꽃 피는 옛 로도스섬.....로도스공방전은 16세기를 살았던 3명의 젊은 카데토에 관한 이야기이다책은 이 젊은이를 중심으로 마치 안토니오가 잔잔히 서술하는것같은 담담하게 이야기가 펼쳐진다.

.....................   [돌마바흐체 궁전안에 있는 그당시의 전투장면...어느술탄인지는 확실치않지만 이해를 돕기위해...]  1310년 요한 기사단이 오랜 유랑생활 끝에 에게해 로도스섬으로 이주를 마치고 둥지를 튼지 어언 200여년...기독교 세력과 날로 강대해지는 이슬람세력...긴박하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유럽의 상황과 맞물리며... 드디어 1522년 6월1일, 술탄 쉴레이만 1세가 이끄는 10만대군... 자국의 내륙과 해상으로 이동하며...콘스탄티노플을 떠난 투르크 함대는 드디어 7월 28일 로도스섬 상륙을 마친다.

..성벽 아래로는 투르크부대의 화려한  천막들이 구름같이 펼쳐지고...드디어 8월 1일 로도스섬 공방전이 시작된다.

..전투의 개시를 알리는 투르크군의 포격이 성벽을 향해 차례로 이어지고.....이에 대응하여, 아침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번쩍이는 갑주를 입은 기사들 600명이 성벽위에 나란히 늘어서 적을 맞이했다창 끝이 햇빛을 품어 번뜩이고 부대별로 색이다른 요한 기사단의 군기가 바람에 펄럭인다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강철 갑주로 성벽위에 무장한 요한 기사단은 600명이라는 숫자 이상의 인상을 투르크 병사들에게 심어준다여름부터 겨울까지 이어진 로도스섬의 공방전...뺏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들의 숭고하고 어찌보면 무모한 격돌이...모든것이 완료된 12월 29일 드디어 성문이 열리고 술탄 쉴레이만 1세의 입성이....1523년 1월 1일, 200여년동안 둥지를 틀었던 로도스섬을 뒤로하고 요한 기사단은 또다시 방랑의 길로...난민시대가 시작된다.

....오늘날 로마에서 가장 멋진 거리로 정평이 난 콘도티거리에는 지금도 성 요한 기사단의 본부가있다바티칸과 더불어 이탈리아 안에 있는 독립국이며 소유 자동차 번호판도 독자적으로 만들어 쓰고 있다한다우표도 따로 발행하며, 대상국이 제한 되어 있긴해도 본부안에 있는 우체국에서는 기사단의 우표를 붙여 편지를 보낼수도있다.

이 책[전쟁 3부작]이 나온뒤인 1988년 78대 기사단장이 취임했고 밑에는 8천명의 기사가있다대부분 결혼한 몸이며, 예전처럼 청빈,복종,순결을 강요하지는 않는다한다.

....성요한 기사단은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조직이고 이슬람교도들을 상대하던 전사들은 사라졌지만 기사단의 또 하나의 임무였던 의료활동...900년전 창설했던 당시의 사명으로 돌아갔다 주위를 세심히 돌아보면 붉은 바탕의 변형 십자가를 내건 병원이나 연구소혹은 구급차들을 볼수있을것이다아직도 옛날처럼 각 언어별로 부대를 나눠 활동하는 21세기의 기사들이다.

......... 시오노 나나미 의 책을 접 한 것이 언제적인가.....아마 10년도 전에 베네치아 공화국 1천년의 역사를 서술한 [바다의 도시 이야기(상.하)]를 읽고 부터이다이 책[바다의 도시이야기]은 1980

1981년에 걸쳐 탈고, 간행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출간된 해는 1996년도인것 같다그녀의 소설은 주인공들이 등장하여 스토리전개가 되는 흥미위주의  역사소설은 아니다충분한 고증과 답사...역사를 깊이 조사하고 단단한 사료의 뒷바침 으로 한 국가, 또는 도시국가의 역사를 긴장감있게 서술한 이야기체 역사서라고 말할수있다.

..흔히 역사책이라하면 내용이 딱딱하고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데 그녀의 책의 반응은 과히 폭발적이라 할수있겠다그러면 어떤점이 그토록 독자들에게 어필한것일까.....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역사서를 이야기하듯이 흥미있게 풀어나간 방식이 독자들에게 어필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든다그당시.....고대에서 중세로, 중세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유럽의 역사는 세계사를 전공한 사람이거나 유럽의 역사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환하게 꿰뚫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 이나 될까....본인 역시 이 책에서 조금, 저 책에서 조금씩 줏어들은 단편적인 사실들과 이 영화 저 영화에서 배경으로 나오는 기본적인 상식들만 접하고 있던 차에  책장을 뒤로 넘겨갈수록마치 퍼즐맞추기 게임을 하듯 하나하나 연결이 되며 눈앞에서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으며 지도를 찾아보며 지명과 인명등을 시키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던지



그후로 그녀의 처녀작[르네상스의 여인들], [체사레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을 차례로 읽어 보았으며[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는 지금 읽었는지 아닌지 헷갈리고있다그뒤로 [로마인 이야기]를 필생의 도서로 읽어보아야지 마음을 먹은 후로 몇년의 세월이 흘렀는지...그 당시에는 책의 집필이 완성이 안되었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는 더이상 엄두가 나질 않아 손을 못대고 있다.

.. 이번에 그리스 섬들을 여행하던중 중세의 도시 로도스섬에서의 진한 감동의 여운이 가시질 않아 여행 다녀오자 마자 시오노여사의 책을 다시 접해 본다가슴 뭉클함에 때로는 눈가를 적시며여행을 가기전에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뒤늦은 후회도 해보면서.............ㅡ.ㅡ;;  ....(로도스섬 포스트로 연결 됩니다)* 장미의 섬 로도스(1).......... http://blog.naver.com/limmok405/140075215481 * 투명에 가까운 블루, 로도스 섬(2).......... http://blog.naver.com/limmok405/140078825965        (2015년 6월 촬영 - 기사단장의 궁전)1309년부터 1523년까지 로도스를 점유했던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은 1291년에 무슬림에 의해 팔레스타인에 있던 그들의 마지막 요새(아크레)가 함락되자 로도스 섬에 기사단의 근거지를 세웠습니다.

 1444년 이집트 술탄의 침공, 1480년 메메트(Mehmet) 2세의 침공 등 강력한 공격이 있었지만, 기사단은 이에 저항하면서 섬의 중심지를 요새화한 도시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로도스는 1522년 10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 슐레이만 2세(Suleiman II)의 침공에 6개월에 걸친 전투 끝에 마침내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로도스 옛 시가지의 고딕 건축양식은 도데카네스(Dodecanese) 제도의 전통 문화를 만나 변화되었고, 1523년 이후에 오스만 제국의 장식적 요소가 더해지면서, 두 문화의 만남이 이루어 낸 이 지역 특유의 건축 양식들이 만들어졌습니다.

   (2015년 6월 촬영)최초의 병원은 15세기에 ‘대병원’로 대치되었는데, 1440년

1489년에 지은 이 건물은 기사의 거리의 남쪽 편에 있습니다.

 오늘날 이곳은 고고학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2015년 6월 촬영)로도스의 올드타운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데에는-로도스 중세 도시의 문화적 자산은 십자군 전쟁 기간에 창립된 요한 기사단이 언제 점령당할지 모른다는 극단의 공포 속에서도 오랫동안 도시를 유지했던 역사를 보여 주며, 이곳의 건축물들은 이러한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는 탁월한 건축 복합체의 사례이다.

건축 역사가 1523년에 끝난 것이 아니라 모스크, 대중 목욕탕, 이슬람 가옥과 같은 귀중한 이슬람 기념물들을 통해 1912년까지 계속되었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프랑크식 건물들과 오토만 제국 방식의 건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지속적·복합적으로 이루어진 문화 순응 현상을 특징 있게 보여 준다.

 도데카네스의 전통과 만나면서 고딕 건축의 형식 변화가 일어나고, 1523년 이후에는 오스만 제국의 장식적인 요소들이 더해져서, 두 세계의 만남에서 오는 이 지역 특유의 형식들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1912년 이전에 만들어진 모든 건축 요소들은 훼손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이곳의 종교적·군사적 기념물, 민간 기념물, 교회, 수도원, 모스크, 대중목욕탕, 성채, 성문, 성벽들은 인류의 문화유산이므로 최대한 보호되어야 한다.

-  라는 이유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기사단장의 궁전 입니다.

 Palace of Grand Master of Knights현지 명칭 : Παλ?τι του Μεγ?λου Μαγ?στρου (Καστ?λο ? Παλ?τι των Ιπποτ?ν)현지 주소 : Παλι? Π?λη 영어 주소 : Old CIty of Rhodes, Rhodes Town, Greece 로도스 고고학 박물관 입니다.

Archaeological Museum of Rhodes (Hospital of the Knights)현지 명칭은 Αρχαιολογικ? Μουσε?ο Ρ?δου (Νοσοκομε?ο των Ιπποτ?ν)현지 주소는 Νοσοκομε?ο των Ιπποτ?ν, 85100개장 시간은 (겨울) 11월 1일

3월 31일화요일

일요일 : 08:00

15:00월요일은 휴무선사시대와 Epigrephical 관람관은 닫는다고 합니다.

(여름) - 겨울 제외한 모든 기간월요일 : 09:00

16:00화요일

금요일 : 08:00

20:00토,일,공휴일 : 08:00

15:00입니다.

http://odysseus.culture.gr/h/1/eh155.jsp?obj_id=3312#_=_Ministry of Culture and Sports | Archaeological Museum of Rhodesodysseus.culture.gr 로도스 고고학 박물관 홈페이지 입니다.

공휴일이나 표 가격은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01 전설에의 서장 02 불꽃의 출발 03 흑의의 기사 04 회색 마녀 05 사막의 왕 06 암흑왕의 검 07 영웅전쟁 08 전사의 진혼곡 09 지배의 왕홀 10 화룡산의 마룡 11 마도사의 야망 12 결전, 암흑의 섬 13 작열하는 로도스 OVA 로도스도 전기> 애니정보 └ 접기솔직히 이소설은 두번보고끝이다.

판타지..이긴 한데.. 전개가 그다지 재미없고? 1인칭시점으로보는게없던것같고.. 글쓸때 참고했던것 이후로 본적이없다.

내용이 나쁜게아니라?? 그냥 지루하다??뭔가 소설많이보면 뻔한전개기도하고- 처음에봤을땐 나름 좋게봤는데 말이지?아는사람? 지인들한테도보여줘봤는데 재미없다고하더라.  두명인가?는 나쁘지않다고했던가. 10리뷰보기     시오노 나나미 / 전쟁 3부작; 제 1편;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제 2편; 로도스 섬 공방전제 3편; 레판토 해전   [서유럽 문명의 총화 콘스탄티노플 함락이후거대 동방제국을 형성하며 서진하는 오스만 투르크이슬람 세계에 맞선 기독교 최전선기지 로도스섬,에게 해의 작은섬 로도스를 핵으로 공격자와 방어자일어나는 쪽과 멸하는쪽이 격돌했다.

  1522년 섬을공략해 온 투르크대제 쉴레이만 1세의 10만 군대에 대항하며나선 이들은 백십자를 수놓은 검정 수도복을 걸친 성 요한 기사단.장미꽃 향기 날리는 옛 섬을 지키려는 젊은 기사들의 피로에게 해는 짙은 포도줏빛으로 물들어간다.

..]  이탈리아어로 카데토(cadetto)라는 말은 봉건귀족의 둘째아들 이하를 뜻하는 말이었다.

....영어로는 "cadet"중세 봉건시대에는 모든 지위나 상속은 장남에게 물려주는게 상례였고 둘째이하 아들은 성직이나 군인이되어 자수성가 하였다한다오늘날에는 귀족의 둘째 이하 자제라는 본래의 뜻은 사라지고 군사적인 면만이 남아서 사관학교의 생도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쓰이고있다성 요한기사단 소속 기사들은 푸른피(귀족)가 흐르는 귀족출신 이어야하고 전사인 동시에 그리스도에게 평생을 바치는 수도사일 것이 요구되며"FERT  FERT  FERT"세번이나 되풀이 되는 이 라틴문자는 "참고 견디라" 라는 의미이며 로도스의 기사들에겐 청빈,복종,순결의 의무를 바치는 기율이 강요된다.

....  [로도스 성채]   1512년 4월, 저녁 노을에 빛나는 로도스섬, 성벽으로 빙 둘러싸인 상항(商港)에 제노바를 출항한 상선이 닻을내린다이 배에는 요한 기사단의 안토니오 델 카레토라는 아름다운 젊은이가 타고있다.

..장미꽃 피는 옛 로도스섬.....로도스공방전은 16세기를 살았던 3명의 젊은 카데토에 관한 이야기이다책은 이 젊은이를 중심으로 마치 안토니오가 잔잔히 서술하는것같은 담담하게 이야기가 펼쳐진다.

.....................   [돌마바흐체 궁전안에 있는 그당시의 전투장면...어느술탄인지는 확실치않지만 이해를 돕기위해...]  1310년 요한 기사단이 오랜 유랑생활 끝에 에게해 로도스섬으로 이주를 마치고 둥지를 튼지 어언 200여년...기독교 세력과 날로 강대해지는 이슬람세력...긴박하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유럽의 상황과 맞물리며... 드디어 1522년 6월1일, 술탄 쉴레이만 1세가 이끄는 10만대군... 자국의 내륙과 해상으로 이동하며...콘스탄티노플을 떠난 투르크 함대는 드디어 7월 28일 로도스섬 상륙을 마친다.

..성벽 아래로는 투르크부대의 화려한  천막들이 구름같이 펼쳐지고...드디어 8월 1일 로도스섬 공방전이 시작된다.

..전투의 개시를 알리는 투르크군의 포격이 성벽을 향해 차례로 이어지고.....이에 대응하여, 아침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번쩍이는 갑주를 입은 기사들 600명이 성벽위에 나란히 늘어서 적을 맞이했다창 끝이 햇빛을 품어 번뜩이고 부대별로 색이다른 요한 기사단의 군기가 바람에 펄럭인다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강철 갑주로 성벽위에 무장한 요한 기사단은 600명이라는 숫자 이상의 인상을 투르크 병사들에게 심어준다여름부터 겨울까지 이어진 로도스섬의 공방전...뺏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들의 숭고하고 어찌보면 무모한 격돌이...모든것이 완료된 12월 29일 드디어 성문이 열리고 술탄 쉴레이만 1세의 입성이....1523년 1월 1일, 200여년동안 둥지를 틀었던 로도스섬을 뒤로하고 요한 기사단은 또다시 방랑의 길로...난민시대가 시작된다.

....오늘날 로마에서 가장 멋진 거리로 정평이 난 콘도티거리에는 지금도 성 요한 기사단의 본부가있다바티칸과 더불어 이탈리아 안에 있는 독립국이며 소유 자동차 번호판도 독자적으로 만들어 쓰고 있다한다우표도 따로 발행하며, 대상국이 제한 되어 있긴해도 본부안에 있는 우체국에서는 기사단의 우표를 붙여 편지를 보낼수도있다.

이 책[전쟁 3부작]이 나온뒤인 1988년 78대 기사단장이 취임했고 밑에는 8천명의 기사가있다대부분 결혼한 몸이며, 예전처럼 청빈,복종,순결을 강요하지는 않는다한다.

....성요한 기사단은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조직이고 이슬람교도들을 상대하던 전사들은 사라졌지만 기사단의 또 하나의 임무였던 의료활동...900년전 창설했던 당시의 사명으로 돌아갔다 주위를 세심히 돌아보면 붉은 바탕의 변형 십자가를 내건 병원이나 연구소혹은 구급차들을 볼수있을것이다아직도 옛날처럼 각 언어별로 부대를 나눠 활동하는 21세기의 기사들이다.

......... 시오노 나나미 의 책을 접 한 것이 언제적인가.....아마 10년도 전에 베네치아 공화국 1천년의 역사를 서술한 [바다의 도시 이야기(상.하)]를 읽고 부터이다이 책[바다의 도시이야기]은 1980

1981년에 걸쳐 탈고, 간행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출간된 해는 1996년도인것 같다그녀의 소설은 주인공들이 등장하여 스토리전개가 되는 흥미위주의  역사소설은 아니다충분한 고증과 답사...역사를 깊이 조사하고 단단한 사료의 뒷바침 으로 한 국가, 또는 도시국가의 역사를 긴장감있게 서술한 이야기체 역사서라고 말할수있다.

..흔히 역사책이라하면 내용이 딱딱하고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데 그녀의 책의 반응은 과히 폭발적이라 할수있겠다그러면 어떤점이 그토록 독자들에게 어필한것일까.....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역사서를 이야기하듯이 흥미있게 풀어나간 방식이 독자들에게 어필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든다그당시.....고대에서 중세로, 중세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유럽의 역사는 세계사를 전공한 사람이거나 유럽의 역사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환하게 꿰뚫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 이나 될까....본인 역시 이 책에서 조금, 저 책에서 조금씩 줏어들은 단편적인 사실들과 이 영화 저 영화에서 배경으로 나오는 기본적인 상식들만 접하고 있던 차에  책장을 뒤로 넘겨갈수록마치 퍼즐맞추기 게임을 하듯 하나하나 연결이 되며 눈앞에서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으며 지도를 찾아보며 지명과 인명등을 시키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던지



그후로 그녀의 처녀작[르네상스의 여인들], [체사레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을 차례로 읽어 보았으며[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는 지금 읽었는지 아닌지 헷갈리고있다그뒤로 [로마인 이야기]를 필생의 도서로 읽어보아야지 마음을 먹은 후로 몇년의 세월이 흘렀는지...그 당시에는 책의 집필이 완성이 안되었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는 더이상 엄두가 나질 않아 손을 못대고 있다.

.. 이번에 그리스 섬들을 여행하던중 중세의 도시 로도스섬에서의 진한 감동의 여운이 가시질 않아 여행 다녀오자 마자 시오노여사의 책을 다시 접해 본다가슴 뭉클함에 때로는 눈가를 적시며여행을 가기전에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뒤늦은 후회도 해보면서.............ㅡ.ㅡ;;  ....(로도스섬 포스트로 연결 됩니다)* 장미의 섬 로도스(1).......... http://blog.naver.com/limmok405/140075215481 * 투명에 가까운 블루, 로도스 섬(2).......... http://blog.naver.com/limmok405/140078825965        기사단장 성채에서 바라보는 바깥 거리.  로도스 성벽 위를 걷는 것은 화요일과 토요일 오전에만 허용된단다.

[로도스] 매력을 알아보자


  문이 굳게 닫힌 성벽 위로 가는 길.  기사단장 궁전 밖으로 나와 서쪽 거리로 꺾어지는 곳에도 성채와 성문이 있는데아마도 일반인 거주구와 기사 거주구를 나누는 담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사단장 성채 서측에 남북으로 난 오르페오스(Orfeos) 거리에서 바라보는 거리와 성채.  거리에서 바로 성벽 쪽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길래 따라가 본다.

  성채 아래를 지나는 터널.성채가 기능을 하던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시설이다.

  본성벽과 외성벽 사이의 공원화된 해자 공간으로 나왔다.

  해자 치고는 대단히 넓은 느낌이 든다.

 1453년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전에서 최초로 위력을 발휘한 병기가 바로 대포였다.

투르크의 대포는 난공불락이라 여겨지던 콘스탄티노플의 높다란 삼중 성벽을 사정없이 때려부수었고그 결과 도시는 쉽게 함락되고 만다.

이후 도시의 성벽은 높게 세우는 것보다는포탄의 타격에 쉽게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낮고 두껍게 지어지는 경향을 띠게 되며해자 역시 깊게 파기보다는 넓게 파는 쪽으로 바뀐다.

이러한 성채 개조작업이 16세기 초에 로도스 섬의 성채에도 이루어졌다.

  낮다고 해도 깊은 해자 안에서 올려다보는 성벽은 위압감이 느껴진다.

위에서 사정없이 공격이 퍼붓는데 어떻게 저기를 기어올라갈까 싶다.

  여기도 둥근 구형의 석제 포탄이 쌓여 있다.

로도스 공방전 당시의 것이었을까.  성 밖과 안을 연결하는 성문 부근의 방어시설.  이렇게 보면 성 밖(왼쪽)과 성 안(오른쪽)의 성벽 높이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내성벽 윗부분은 직각으로 꺾이지 않고 비스듬한 경사면을 이루고 있다.

  포탄에 맞았을 때 직각에 가깝게 직격당하는 것보다는 저렇게 각도를 두고 비스듬히 맞는 것이더 파괴가 덜하기 때문이다.

  성벽 북쪽 면으로 접어든다.

  중세풍의 느낌이 드는 성벽 중간의 공격용 탑.집중적 포격에 대비해 다른 곳보다 튼튼하게 지어졌을 것이다.

  바닥에 석재가 흩어져 있고 성벽 일부는 보수공사중이다.

  성벽을 따라 걸어도 성 안쪽으로 들어가는 곳이 보이지 않아서 다시 왔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정면에는 다시 기사단장 성채가 보인다.

  성 안으로 들어와 다시 오르페오스 거리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오래된 교회 종탑.  종탑 너머에는 이슬람사원의 첨탑도 함께 보여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슬람 사원 입구의 현관 장식이 완전히 그리스 신전 모습이다.

  터키로 돌아가는 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숙소에 맡겨둔 짐을 찾으러 가는 길.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중세 풍경이다.

  중세의 석조 건물벽과 현대의 플라스틱 쓰레기통. 로도스 성벽 서남쪽 모퉁이 부근을 지나는 중. 이곳 서남쪽 모퉁이 부근에는 로마시대의 유적을 볼 수 있다.

  로마시대 로도스 아고라의 공공건물 터란다.

  남측 성벽이 보이는 곳까지 올라왔다.

   숙소로 통하는 오미로스(Omirou) 거리를 따라간다.

  숙소에서 배낭을 찾아 둘러메고 다시 사람들로 북적이는 중심가로 나왔다.

  로도스 중심가 마르티론(Martyron) 광장.  핀다로스(Pindarou) 거리를 따라 여객터미널로 걸어가는 중.  로도스에 도착해 처음 성 안으로 들어왔던 성문으로 다시 나간다.

  옛 로도스의 상업항이었던 콜로나(Kolona) 항구로 나왔다.

  그 옛날 로도스의 청동 거상은 저기 어디쯤에 있었을까.저 너머에는 옛날에 군항으로 사용되던 만드라키(Mandraki) 항구가 또 있다.

  백사장만 있으면 어디나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항구 안쪽의 바다인데도 물은 매우 맑다.

  거대한 크루즈선들이 정박해 있는 여객선터미널.  저기 정면의 크루즈선은 거대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될 만큼 크다.

  정면 낮은 건물이 여객선터미널이다.

  터키로 가는 배표를 파는 매표소인 동시에 체크인 카운터 역할도 하는 허름한 목조건물.  터키 페티예(Fethiye)로 가는 티켓을 샀다.

이것을 다시 보딩패스로 바꾸어야 한다.

  초거대 크루즈선과 오래된 풍차의 대비.  내가 타고 갈 페티예 행 쾌속선의 크기와 뒤쪽의 크루즈선이 대비된다.

  5년 전 그리스 여행때도 느낀 거지만 그리스에는 벤츠 택시가 아주 많다.

  작은 기념품점과 상점에 딸린 테이블 외에는 앉아 기다릴 곳도 없고 냉방도 안 되던로도스의 국제여객터미널.  보딩패스를 받기 위해 다시 표를 샀던 곳으로 간다.

깔끔한 터키 마르마리스의 여객선터미널과 매우 비교가 된다.

   페티예 행 쾌속선 보딩패스.  초호화 크루즈선에서 유유자적 여유를 즐기는 저들이 부러워 찍어 본다.

  출국심사를 받고 배를 타러 나간다.

  터키 페티예와 그리스령 로도스 섬을 오가는 하이드로포일 쾌속선, '플라잉 포세이돈'호.  아담한 선실 내부.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예정시각 16:30에 맞춰 배는 크루즈선을 옆으로 바라보며 로도스항을 출발한다.

  아까 본 초거대 크루즈선을 보고 나니 이 큰 배도 아담해 보인다.

  그리스의 국내선 카페리인 블루스타 페리.  뒤로 멀어지는 로도스 섬.  장미꽃 피는 고대 학문과 예술의 섬이자, 기독교 전사들이 둥지를 틀었던 중세 기사들의 섬.로도스 안녕!2011년 8월 24일, 터키 여행 10/18일째. 18일간의 터키 일주 중 24시간의 그리스령 로도스(Rodos, 영어 Rhodes) 섬 여행중.  기사단장 성채에서 바라보는 바깥 거리.  로도스 성벽 위를 걷는 것은 화요일과 토요일 오전에만 허용된단다.

[로도스] 대박이네요.



  문이 굳게 닫힌 성벽 위로 가는 길.  기사단장 궁전 밖으로 나와 서쪽 거리로 꺾어지는 곳에도 성채와 성문이 있는데아마도 일반인 거주구와 기사 거주구를 나누는 담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사단장 성채 서측에 남북으로 난 오르페오스(Orfeos) 거리에서 바라보는 거리와 성채.  거리에서 바로 성벽 쪽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길래 따라가 본다.

  성채 아래를 지나는 터널.성채가 기능을 하던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시설이다.

  본성벽과 외성벽 사이의 공원화된 해자 공간으로 나왔다.

  해자 치고는 대단히 넓은 느낌이 든다.

 1453년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전에서 최초로 위력을 발휘한 병기가 바로 대포였다.

투르크의 대포는 난공불락이라 여겨지던 콘스탄티노플의 높다란 삼중 성벽을 사정없이 때려부수었고그 결과 도시는 쉽게 함락되고 만다.

이후 도시의 성벽은 높게 세우는 것보다는포탄의 타격에 쉽게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낮고 두껍게 지어지는 경향을 띠게 되며해자 역시 깊게 파기보다는 넓게 파는 쪽으로 바뀐다.

이러한 성채 개조작업이 16세기 초에 로도스 섬의 성채에도 이루어졌다.

  낮다고 해도 깊은 해자 안에서 올려다보는 성벽은 위압감이 느껴진다.

위에서 사정없이 공격이 퍼붓는데 어떻게 저기를 기어올라갈까 싶다.

  여기도 둥근 구형의 석제 포탄이 쌓여 있다.

로도스 공방전 당시의 것이었을까.  성 밖과 안을 연결하는 성문 부근의 방어시설.  이렇게 보면 성 밖(왼쪽)과 성 안(오른쪽)의 성벽 높이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내성벽 윗부분은 직각으로 꺾이지 않고 비스듬한 경사면을 이루고 있다.

  포탄에 맞았을 때 직각에 가깝게 직격당하는 것보다는 저렇게 각도를 두고 비스듬히 맞는 것이더 파괴가 덜하기 때문이다.

  성벽 북쪽 면으로 접어든다.

  중세풍의 느낌이 드는 성벽 중간의 공격용 탑.집중적 포격에 대비해 다른 곳보다 튼튼하게 지어졌을 것이다.

  바닥에 석재가 흩어져 있고 성벽 일부는 보수공사중이다.

  성벽을 따라 걸어도 성 안쪽으로 들어가는 곳이 보이지 않아서 다시 왔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정면에는 다시 기사단장 성채가 보인다.

  성 안으로 들어와 다시 오르페오스 거리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오래된 교회 종탑.  종탑 너머에는 이슬람사원의 첨탑도 함께 보여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슬람 사원 입구의 현관 장식이 완전히 그리스 신전 모습이다.

  터키로 돌아가는 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숙소에 맡겨둔 짐을 찾으러 가는 길.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중세 풍경이다.

  중세의 석조 건물벽과 현대의 플라스틱 쓰레기통. 로도스 성벽 서남쪽 모퉁이 부근을 지나는 중. 이곳 서남쪽 모퉁이 부근에는 로마시대의 유적을 볼 수 있다.

  로마시대 로도스 아고라의 공공건물 터란다.

  남측 성벽이 보이는 곳까지 올라왔다.

   숙소로 통하는 오미로스(Omirou) 거리를 따라간다.

  숙소에서 배낭을 찾아 둘러메고 다시 사람들로 북적이는 중심가로 나왔다.

  로도스 중심가 마르티론(Martyron) 광장.  핀다로스(Pindarou) 거리를 따라 여객터미널로 걸어가는 중.  로도스에 도착해 처음 성 안으로 들어왔던 성문으로 다시 나간다.

  옛 로도스의 상업항이었던 콜로나(Kolona) 항구로 나왔다.

  그 옛날 로도스의 청동 거상은 저기 어디쯤에 있었을까.저 너머에는 옛날에 군항으로 사용되던 만드라키(Mandraki) 항구가 또 있다.

  백사장만 있으면 어디나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항구 안쪽의 바다인데도 물은 매우 맑다.

  거대한 크루즈선들이 정박해 있는 여객선터미널.  저기 정면의 크루즈선은 거대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될 만큼 크다.

  정면 낮은 건물이 여객선터미널이다.

  터키로 가는 배표를 파는 매표소인 동시에 체크인 카운터 역할도 하는 허름한 목조건물.  터키 페티예(Fethiye)로 가는 티켓을 샀다.

이것을 다시 보딩패스로 바꾸어야 한다.

  초거대 크루즈선과 오래된 풍차의 대비.  내가 타고 갈 페티예 행 쾌속선의 크기와 뒤쪽의 크루즈선이 대비된다.

  5년 전 그리스 여행때도 느낀 거지만 그리스에는 벤츠 택시가 아주 많다.

  작은 기념품점과 상점에 딸린 테이블 외에는 앉아 기다릴 곳도 없고 냉방도 안 되던로도스의 국제여객터미널.  보딩패스를 받기 위해 다시 표를 샀던 곳으로 간다.

깔끔한 터키 마르마리스의 여객선터미널과 매우 비교가 된다.

   페티예 행 쾌속선 보딩패스.  초호화 크루즈선에서 유유자적 여유를 즐기는 저들이 부러워 찍어 본다.

  출국심사를 받고 배를 타러 나간다.

  터키 페티예와 그리스령 로도스 섬을 오가는 하이드로포일 쾌속선, '플라잉 포세이돈'호.  아담한 선실 내부.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예정시각 16:30에 맞춰 배는 크루즈선을 옆으로 바라보며 로도스항을 출발한다.

  아까 본 초거대 크루즈선을 보고 나니 이 큰 배도 아담해 보인다.

  그리스의 국내선 카페리인 블루스타 페리.  뒤로 멀어지는 로도스 섬.  장미꽃 피는 고대 학문과 예술의 섬이자, 기독교 전사들이 둥지를 틀었던 중세 기사들의 섬.로도스 안녕!2011년 8월 24일, 터키 여행 10/18일째. 18일간의 터키 일주 중 24시간의 그리스령 로도스(Rodos, 영어 Rhodes) 섬 여행중.  기사단장 성채에서 바라보는 바깥 거리.  로도스 성벽 위를 걷는 것은 화요일과 토요일 오전에만 허용된단다.

  문이 굳게 닫힌 성벽 위로 가는 길.  기사단장 궁전 밖으로 나와 서쪽 거리로 꺾어지는 곳에도 성채와 성문이 있는데아마도 일반인 거주구와 기사 거주구를 나누는 담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사단장 성채 서측에 남북으로 난 오르페오스(Orfeos) 거리에서 바라보는 거리와 성채.  거리에서 바로 성벽 쪽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길래 따라가 본다.

  성채 아래를 지나는 터널.성채가 기능을 하던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시설이다.

  본성벽과 외성벽 사이의 공원화된 해자 공간으로 나왔다.

  해자 치고는 대단히 넓은 느낌이 든다.

 1453년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전에서 최초로 위력을 발휘한 병기가 바로 대포였다.

투르크의 대포는 난공불락이라 여겨지던 콘스탄티노플의 높다란 삼중 성벽을 사정없이 때려부수었고그 결과 도시는 쉽게 함락되고 만다.

이후 도시의 성벽은 높게 세우는 것보다는포탄의 타격에 쉽게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낮고 두껍게 지어지는 경향을 띠게 되며해자 역시 깊게 파기보다는 넓게 파는 쪽으로 바뀐다.

이러한 성채 개조작업이 16세기 초에 로도스 섬의 성채에도 이루어졌다.

  낮다고 해도 깊은 해자 안에서 올려다보는 성벽은 위압감이 느껴진다.

위에서 사정없이 공격이 퍼붓는데 어떻게 저기를 기어올라갈까 싶다.

  여기도 둥근 구형의 석제 포탄이 쌓여 있다.

로도스 공방전 당시의 것이었을까.  성 밖과 안을 연결하는 성문 부근의 방어시설.  이렇게 보면 성 밖(왼쪽)과 성 안(오른쪽)의 성벽 높이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내성벽 윗부분은 직각으로 꺾이지 않고 비스듬한 경사면을 이루고 있다.

  포탄에 맞았을 때 직각에 가깝게 직격당하는 것보다는 저렇게 각도를 두고 비스듬히 맞는 것이더 파괴가 덜하기 때문이다.

  성벽 북쪽 면으로 접어든다.

  중세풍의 느낌이 드는 성벽 중간의 공격용 탑.집중적 포격에 대비해 다른 곳보다 튼튼하게 지어졌을 것이다.

  바닥에 석재가 흩어져 있고 성벽 일부는 보수공사중이다.

  성벽을 따라 걸어도 성 안쪽으로 들어가는 곳이 보이지 않아서 다시 왔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정면에는 다시 기사단장 성채가 보인다.

  성 안으로 들어와 다시 오르페오스 거리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오래된 교회 종탑.  종탑 너머에는 이슬람사원의 첨탑도 함께 보여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슬람 사원 입구의 현관 장식이 완전히 그리스 신전 모습이다.

  터키로 돌아가는 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숙소에 맡겨둔 짐을 찾으러 가는 길.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중세 풍경이다.

  중세의 석조 건물벽과 현대의 플라스틱 쓰레기통. 로도스 성벽 서남쪽 모퉁이 부근을 지나는 중. 이곳 서남쪽 모퉁이 부근에는 로마시대의 유적을 볼 수 있다.

  로마시대 로도스 아고라의 공공건물 터란다.

  남측 성벽이 보이는 곳까지 올라왔다.

   숙소로 통하는 오미로스(Omirou) 거리를 따라간다.

  숙소에서 배낭을 찾아 둘러메고 다시 사람들로 북적이는 중심가로 나왔다.

  로도스 중심가 마르티론(Martyron) 광장.  핀다로스(Pindarou) 거리를 따라 여객터미널로 걸어가는 중.  로도스에 도착해 처음 성 안으로 들어왔던 성문으로 다시 나간다.

  옛 로도스의 상업항이었던 콜로나(Kolona) 항구로 나왔다.

  그 옛날 로도스의 청동 거상은 저기 어디쯤에 있었을까.저 너머에는 옛날에 군항으로 사용되던 만드라키(Mandraki) 항구가 또 있다.

  백사장만 있으면 어디나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항구 안쪽의 바다인데도 물은 매우 맑다.

  거대한 크루즈선들이 정박해 있는 여객선터미널.  저기 정면의 크루즈선은 거대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될 만큼 크다.

  정면 낮은 건물이 여객선터미널이다.

  터키로 가는 배표를 파는 매표소인 동시에 체크인 카운터 역할도 하는 허름한 목조건물.  터키 페티예(Fethiye)로 가는 티켓을 샀다.

이것을 다시 보딩패스로 바꾸어야 한다.

  초거대 크루즈선과 오래된 풍차의 대비.  내가 타고 갈 페티예 행 쾌속선의 크기와 뒤쪽의 크루즈선이 대비된다.

  5년 전 그리스 여행때도 느낀 거지만 그리스에는 벤츠 택시가 아주 많다.

  작은 기념품점과 상점에 딸린 테이블 외에는 앉아 기다릴 곳도 없고 냉방도 안 되던로도스의 국제여객터미널.  보딩패스를 받기 위해 다시 표를 샀던 곳으로 간다.

깔끔한 터키 마르마리스의 여객선터미널과 매우 비교가 된다.

   페티예 행 쾌속선 보딩패스.  초호화 크루즈선에서 유유자적 여유를 즐기는 저들이 부러워 찍어 본다.

  출국심사를 받고 배를 타러 나간다.

  터키 페티예와 그리스령 로도스 섬을 오가는 하이드로포일 쾌속선, '플라잉 포세이돈'호.  아담한 선실 내부.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예정시각 16:30에 맞춰 배는 크루즈선을 옆으로 바라보며 로도스항을 출발한다.

  아까 본 초거대 크루즈선을 보고 나니 이 큰 배도 아담해 보인다.

  그리스의 국내선 카페리인 블루스타 페리.  뒤로 멀어지는 로도스 섬.  장미꽃 피는 고대 학문과 예술의 섬이자, 기독교 전사들이 둥지를 틀었던 중세 기사들의 섬.로도스 안녕!2011년 8월 24일, 터키 여행 10/18일째. 18일간의 터키 일주 중 24시간의 그리스령 로도스(Rodos, 영어 Rhodes) 섬 여행중.  기사단장 성채에서 바라보는 바깥 거리.  로도스 성벽 위를 걷는 것은 화요일과 토요일 오전에만 허용된단다.

  문이 굳게 닫힌 성벽 위로 가는 길.  기사단장 궁전 밖으로 나와 서쪽 거리로 꺾어지는 곳에도 성채와 성문이 있는데아마도 일반인 거주구와 기사 거주구를 나누는 담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사단장 성채 서측에 남북으로 난 오르페오스(Orfeos) 거리에서 바라보는 거리와 성채.  거리에서 바로 성벽 쪽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길래 따라가 본다.

  성채 아래를 지나는 터널.성채가 기능을 하던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시설이다.

  본성벽과 외성벽 사이의 공원화된 해자 공간으로 나왔다.

  해자 치고는 대단히 넓은 느낌이 든다.

 1453년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전에서 최초로 위력을 발휘한 병기가 바로 대포였다.

투르크의 대포는 난공불락이라 여겨지던 콘스탄티노플의 높다란 삼중 성벽을 사정없이 때려부수었고그 결과 도시는 쉽게 함락되고 만다.

이후 도시의 성벽은 높게 세우는 것보다는포탄의 타격에 쉽게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낮고 두껍게 지어지는 경향을 띠게 되며해자 역시 깊게 파기보다는 넓게 파는 쪽으로 바뀐다.

이러한 성채 개조작업이 16세기 초에 로도스 섬의 성채에도 이루어졌다.

  낮다고 해도 깊은 해자 안에서 올려다보는 성벽은 위압감이 느껴진다.

위에서 사정없이 공격이 퍼붓는데 어떻게 저기를 기어올라갈까 싶다.

  여기도 둥근 구형의 석제 포탄이 쌓여 있다.

로도스 공방전 당시의 것이었을까.  성 밖과 안을 연결하는 성문 부근의 방어시설.  이렇게 보면 성 밖(왼쪽)과 성 안(오른쪽)의 성벽 높이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내성벽 윗부분은 직각으로 꺾이지 않고 비스듬한 경사면을 이루고 있다.

  포탄에 맞았을 때 직각에 가깝게 직격당하는 것보다는 저렇게 각도를 두고 비스듬히 맞는 것이더 파괴가 덜하기 때문이다.

  성벽 북쪽 면으로 접어든다.

  중세풍의 느낌이 드는 성벽 중간의 공격용 탑.집중적 포격에 대비해 다른 곳보다 튼튼하게 지어졌을 것이다.

  바닥에 석재가 흩어져 있고 성벽 일부는 보수공사중이다.

  성벽을 따라 걸어도 성 안쪽으로 들어가는 곳이 보이지 않아서 다시 왔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정면에는 다시 기사단장 성채가 보인다.

  성 안으로 들어와 다시 오르페오스 거리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오래된 교회 종탑.  종탑 너머에는 이슬람사원의 첨탑도 함께 보여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슬람 사원 입구의 현관 장식이 완전히 그리스 신전 모습이다.

  터키로 돌아가는 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숙소에 맡겨둔 짐을 찾으러 가는 길.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중세 풍경이다.

  중세의 석조 건물벽과 현대의 플라스틱 쓰레기통. 로도스 성벽 서남쪽 모퉁이 부근을 지나는 중. 이곳 서남쪽 모퉁이 부근에는 로마시대의 유적을 볼 수 있다.

  로마시대 로도스 아고라의 공공건물 터란다.

  남측 성벽이 보이는 곳까지 올라왔다.

   숙소로 통하는 오미로스(Omirou) 거리를 따라간다.

  숙소에서 배낭을 찾아 둘러메고 다시 사람들로 북적이는 중심가로 나왔다.

  로도스 중심가 마르티론(Martyron) 광장.  핀다로스(Pindarou) 거리를 따라 여객터미널로 걸어가는 중.  로도스에 도착해 처음 성 안으로 들어왔던 성문으로 다시 나간다.

  옛 로도스의 상업항이었던 콜로나(Kolona) 항구로 나왔다.

  그 옛날 로도스의 청동 거상은 저기 어디쯤에 있었을까.저 너머에는 옛날에 군항으로 사용되던 만드라키(Mandraki) 항구가 또 있다.

  백사장만 있으면 어디나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항구 안쪽의 바다인데도 물은 매우 맑다.

  거대한 크루즈선들이 정박해 있는 여객선터미널.  저기 정면의 크루즈선은 거대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될 만큼 크다.

  정면 낮은 건물이 여객선터미널이다.

  터키로 가는 배표를 파는 매표소인 동시에 체크인 카운터 역할도 하는 허름한 목조건물.  터키 페티예(Fethiye)로 가는 티켓을 샀다.

이것을 다시 보딩패스로 바꾸어야 한다.

  초거대 크루즈선과 오래된 풍차의 대비.  내가 타고 갈 페티예 행 쾌속선의 크기와 뒤쪽의 크루즈선이 대비된다.

  5년 전 그리스 여행때도 느낀 거지만 그리스에는 벤츠 택시가 아주 많다.

  작은 기념품점과 상점에 딸린 테이블 외에는 앉아 기다릴 곳도 없고 냉방도 안 되던로도스의 국제여객터미널.  보딩패스를 받기 위해 다시 표를 샀던 곳으로 간다.

깔끔한 터키 마르마리스의 여객선터미널과 매우 비교가 된다.

   페티예 행 쾌속선 보딩패스.  초호화 크루즈선에서 유유자적 여유를 즐기는 저들이 부러워 찍어 본다.

  출국심사를 받고 배를 타러 나간다.

  터키 페티예와 그리스령 로도스 섬을 오가는 하이드로포일 쾌속선, '플라잉 포세이돈'호.  아담한 선실 내부.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예정시각 16:30에 맞춰 배는 크루즈선을 옆으로 바라보며 로도스항을 출발한다.

  아까 본 초거대 크루즈선을 보고 나니 이 큰 배도 아담해 보인다.

  그리스의 국내선 카페리인 블루스타 페리.  뒤로 멀어지는 로도스 섬.  장미꽃 피는 고대 학문과 예술의 섬이자, 기독교 전사들이 둥지를 틀었던 중세 기사들의 섬.로도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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