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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로도스다



25평점┃과거와 미래 그리고 인연 사람이라면,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후회라는 것을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자잘한 것부터 인생의 크나큰 의미로 다가오는 커다란 것까지, 주로 ‘선택’에 의해 좌우되는 훗날의 후회를 말이다.

그런 후회가 찾아들 때,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있다면 바꾸고 싶은 마음 가득할 것이다.

역사적인 일보다 개인적 일을 먼저 생각하는 걸 보면, 난 좀 이기적인가. 하지만 역사라는 것을 함부로 건드리기엔 크나큰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기에, 개인적 욕심부터 차릴 것 같다.

하지만 역사 중에서도 내가 만약 참여(?)를 한다면, 살짝 바꾸고 싶은 부분은 존재하는 법. 요즘 이산을 봐서 그런지, 조선시대 특히 영정조 시대로 돌아가, 사도세자를 살리거나 영조의 젊은 비인 정순왕후를 폐서인시키라고 정조에게 충고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도 역사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의미부여를 한 소설을 만나니, 그렇게 생각한 나에게 조금 타박을 줬다.

<타임슬립>은 시간여행을 매개체로 한 일본소설이다.

표지가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얼굴이 똑같은 두 명의 남자아이가 존재하고, 한쪽은 현대식(?) 머리 스타일, 다른 쪽은 빡빡머리 스타일로 시대적 차이를 느끼게 했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가 으레 비슷하듯, 이 소설에 기대는 대단치 않았다.

오히려 뻔히 보이는 식으로 다가왔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순전히 작가의 전작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의 책에 한참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그래서 구매는 했다), 그의 새로운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오락성을 가미한 재미만을 위한 소설이 아님은 분명하다.

미래와 과거를 교차하며 서술하고 있는 방식이, 글 속 인물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더 잘 보여주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1년간의 과거와 2001년 이후의 1년간의 미래가 공존했던 소설이다.

과거의 고이치와 미래의 겐타는 각각의 시대 속에 둘 다 바다에 빠지게 된다.

고이치의 과거는 2차 세계대전이 종전을 다다르던 시대였다.

우리에게는 광복절인 8월 15일이 이 책의 모든 것을 끝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미래의 겐타는 현대시대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년이다.

반세기 이상의 차이가 있는 이 둘이 몸이 바뀌게 된다.

말 그대로 몸만 바뀐다.

영혼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현대시대 모습 그대로(옷차림도) 전장의 중심에 들어가게 되는 겐타와 21세기가 별세계처럼 느껴지는 과거의 고이치. 이 두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는 미나미라는 인물이 아닐까싶다.

결국은 미나미로 인해 원래의 위치로 돌아온 것이나 마찬가지랄까.  과거의 고이치는 21세기를 살면서 겐타의 연인인 미나미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랑하는 이를 곁에서 지키며 행복을 원했을 텐데, 그는 가능하다면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 같다.

결국에야 어떤 것이든 간에, 고이치의 결단에 존경어린 시선을 보내며, 이후의 그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굉장히 순수하게 다가왔던 과거의 고이치였다.

미래의 겐타는 전쟁이라는 암흑의 시대에 홀로 떨어져, 그 시대의 참혹함과 무지 또는 순수했던 일개병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외쳤던 음성이 떠오른다.

“책임자 새끼들 다 나와!” 책임자라 불리는 자들은 전쟁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의 덧없음. 그런 측면도 엿볼 수 있는 소설이라 여겨진다.

 어렵거나 꼬인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술술 잘 풀린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리뷰를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 순간 고민을 했다.

결론은 못 내렸지만, 여유를 내어 읽어봐도 좋은 소설이라 여겨진다.

이 작가에 대한 느낌이 좋다.

        2008년 3월     ┃과거와 미래 그리고 인연 사람이라면,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후회라는 것을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자잘한 것부터 인생의 크나큰 의미로 다가오는 커다란 것까지, 주로 ‘선택’에 의해 좌우되는 훗날의 후회를 말이다.

그런 후회가 찾아들 때,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있다면 바꾸고 싶은 마음 가득할 것이다.

[여기가 로도스다] 대체 무엇때문에.


역사적인 일보다 개인적 일을 먼저 생각하는 걸 보면, 난 좀 이기적인가. 하지만 역사라는 것을 함부로 건드리기엔 크나큰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기에, 개인적 욕심부터 차릴 것 같다.

하지만 역사 중에서도 내가 만약 참여(?)를 한다면, 살짝 바꾸고 싶은 부분은 존재하는 법. 요즘 이산을 봐서 그런지, 조선시대 특히 영정조 시대로 돌아가, 사도세자를 살리거나 영조의 젊은 비인 정순왕후를 폐서인시키라고 정조에게 충고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도 역사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의미부여를 한 소설을 만나니, 그렇게 생각한 나에게 조금 타박을 줬다.

<타임슬립>은 시간여행을 매개체로 한 일본소설이다.

표지가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얼굴이 똑같은 두 명의 남자아이가 존재하고, 한쪽은 현대식(?) 머리 스타일, 다른 쪽은 빡빡머리 스타일로 시대적 차이를 느끼게 했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가 으레 비슷하듯, 이 소설에 기대는 대단치 않았다.

오히려 뻔히 보이는 식으로 다가왔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순전히 작가의 전작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의 책에 한참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그래서 구매는 했다), 그의 새로운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오락성을 가미한 재미만을 위한 소설이 아님은 분명하다.

미래와 과거를 교차하며 서술하고 있는 방식이, 글 속 인물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더 잘 보여주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1년간의 과거와 2001년 이후의 1년간의 미래가 공존했던 소설이다.

과거의 고이치와 미래의 겐타는 각각의 시대 속에 둘 다 바다에 빠지게 된다.

고이치의 과거는 2차 세계대전이 종전을 다다르던 시대였다.

우리에게는 광복절인 8월 15일이 이 책의 모든 것을 끝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미래의 겐타는 현대시대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년이다.

반세기 이상의 차이가 있는 이 둘이 몸이 바뀌게 된다.

[여기가 로도스다] 알아보자



말 그대로 몸만 바뀐다.

영혼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현대시대 모습 그대로(옷차림도) 전장의 중심에 들어가게 되는 겐타와 21세기가 별세계처럼 느껴지는 과거의 고이치. 이 두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는 미나미라는 인물이 아닐까싶다.

결국은 미나미로 인해 원래의 위치로 돌아온 것이나 마찬가지랄까.  과거의 고이치는 21세기를 살면서 겐타의 연인인 미나미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랑하는 이를 곁에서 지키며 행복을 원했을 텐데, 그는 가능하다면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 같다.

결국에야 어떤 것이든 간에, 고이치의 결단에 존경어린 시선을 보내며, 이후의 그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굉장히 순수하게 다가왔던 과거의 고이치였다.

미래의 겐타는 전쟁이라는 암흑의 시대에 홀로 떨어져, 그 시대의 참혹함과 무지 또는 순수했던 일개병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외쳤던 음성이 떠오른다.

“책임자 새끼들 다 나와!” 책임자라 불리는 자들은 전쟁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의 덧없음. 그런 측면도 엿볼 수 있는 소설이라 여겨진다.

 어렵거나 꼬인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술술 잘 풀린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리뷰를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 순간 고민을 했다.

결론은 못 내렸지만, 여유를 내어 읽어봐도 좋은 소설이라 여겨진다.

이 작가에 대한 느낌이 좋다.

        2008년 3월     여기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추어라.??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1831)의 ?<법철학> 서문에서) ????프리드리히 헤겔? 로도스 섬은 그리스령으로 에게해 동남쪽 끝, 터키 반도 남서쪽에 있는 섬으로 길이 70킬로미터에너비 32킬로미터의 꽤 큰 섬입니다.

위의 글은 시가 아니라 ‘법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란 부제가 달린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 글의 배경에는 이솝우화의 <허풍쟁이 여행객(The Boasting Traveller)>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외국으로 여행을 다니던 남자가 고향에 돌아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자기가 떠돌면서 겪었던 일들을 허풍을 섞어서이야기합니다.

 자기가 로도스 섬에서 있었던 뜀뛰기 대회에서 그 누구도 흉내를 낼 수 없게 멋진 뜀뛰기를 했다는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는 로도스 섬에 가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누구라도 자신의 이야기가 진짜라고 할 거라고장담합니다.

그때 이야기를 듣던 마을 사람이 말합니다.

“그토록 멋지게 뜀뛰기를 진짜로 했다면 우리가 구태여 로도스 섬까지 갈필요가 있겠는가? 여기가 로도스 섬이라 생각하고 여기에서 뛰어보게."?헤겔의 말은 관념과 환상, 허구의 세상을 향해서 헛되게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발을 딛고 선지금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말일 것입니다.

아울러 <법철학> 서문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도 등장합니다.

 ?세계의 사상으로서의 철학은 현실이 그 형성과정을 완료하여 스스로를 마무리한 다음에라야 비로소시간 속에서 출현한다.

······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그리스 시대의 지혜의 여신인 아테네 여신을 미네르바라고 하였습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철학(혹은 지혜)은 세상을 미리 디자인하거나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이미 역사적 조건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에야 그 뜻이 분명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원래 미네르바 여신이 데리고 다니는 신조는 까마귀였습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따르면까마귀는 미네르바의 비밀을 누설한 죄를 짓고 신조의 자리를 부엉이에게 내주었습니다.

그 부엉이는 원래 레스보스 섬의 뉘티메네였는데, 전설에 따르면 자신의 아버지와의 통정한 죄로 인해부엉이가 되었으며, 이를 부끄럽게 여겨 사람들의 눈이 있는 낮에는 숨어 있다가밤이 되어서야 활동한다고 합니다.

???여기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추어라.??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1831)의 ?<법철학> 서문에서) ????프리드리히 헤겔? 로도스 섬은 그리스령으로 에게해 동남쪽 끝, 터키 반도 남서쪽에 있는 섬으로 길이 70킬로미터에너비 32킬로미터의 꽤 큰 섬입니다.

위의 글은 시가 아니라 ‘법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란 부제가 달린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 글의 배경에는 이솝우화의 <허풍쟁이 여행객(The Boasting Traveller)>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외국으로 여행을 다니던 남자가 고향에 돌아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자기가 떠돌면서 겪었던 일들을 허풍을 섞어서이야기합니다.

 자기가 로도스 섬에서 있었던 뜀뛰기 대회에서 그 누구도 흉내를 낼 수 없게 멋진 뜀뛰기를 했다는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는 로도스 섬에 가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누구라도 자신의 이야기가 진짜라고 할 거라고장담합니다.

그때 이야기를 듣던 마을 사람이 말합니다.

“그토록 멋지게 뜀뛰기를 진짜로 했다면 우리가 구태여 로도스 섬까지 갈필요가 있겠는가? 여기가 로도스 섬이라 생각하고 여기에서 뛰어보게."?헤겔의 말은 관념과 환상, 허구의 세상을 향해서 헛되게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발을 딛고 선지금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말일 것입니다.

아울러 <법철학> 서문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도 등장합니다.

 ?세계의 사상으로서의 철학은 현실이 그 형성과정을 완료하여 스스로를 마무리한 다음에라야 비로소시간 속에서 출현한다.

······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그리스 시대의 지혜의 여신인 아테네 여신을 미네르바라고 하였습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철학(혹은 지혜)은 세상을 미리 디자인하거나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이미 역사적 조건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에야 그 뜻이 분명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원래 미네르바 여신이 데리고 다니는 신조는 까마귀였습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따르면까마귀는 미네르바의 비밀을 누설한 죄를 짓고 신조의 자리를 부엉이에게 내주었습니다.

그 부엉이는 원래 레스보스 섬의 뉘티메네였는데, 전설에 따르면 자신의 아버지와의 통정한 죄로 인해부엉이가 되었으며, 이를 부끄럽게 여겨 사람들의 눈이 있는 낮에는 숨어 있다가밤이 되어서야 활동한다고 합니다.

???” 누가 듣다 못해 이렇게 쏘아 붙였다나요.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Hic Rhodus, hic saltus! 히크 로두스 히크 살투스!) 로도스에서 잘 뛰는 사람이라면, 지금 여기서 못 뛸 이유가 없겠죠? 아이소포스의 우화집, 곧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에라스뮈스에 따르면 “이 격언은 자기 능력을 떠벌리기만 할 뿐 그 능력을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지 못하는 사람을 겨냥한 말”이래요. 물론 환경이 바뀌면 제 실력이 안 나오는 경우도 있죠. 20세기 첫머리에 참 좋은 그림을 그리던 젊은 화가들이 있었어요. 전쟁과 독재를 피해 고향을 등진 후, 대부분은 한창때만큼 좋은 작품을 내지 못했어요. 그러나 평생 망명객으로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마르크 샤갈처럼 꾸준히 잘 그리던 화가도 있기는 하니까요. 그러고 보면 아마 다른 화가들의 부진도 공간이 바뀐 탓만은 아닐 듯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요.(샤갈의 <산책>을 보고 다시 그렸는데요, 이 작품이 마침 한국에 와 있대요.) “서툰 목수 연장 탓만 한다”는 우리 속담이 있죠. 물론 연장이 안 좋으면 일할 때 힘들겠지만, 연장을 변명 삼아 부족한 솜씨를 감추려는 사람도 많잖아요. 다른 자리라면 다른 기회라면 다른 여건이라면 잘할 수 있는데, 하필 ‘지금 여기’서는 그런 능력을 보여줄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아무래도 핑계가 아닐까요?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도 하니까요. ‘여기가 로두스다’는 최근 홍세화 선생의 연작 칼럼 제목이기도 합니다.

(로두스는 로도스 섬의 라틴어 이름이래요.) 말로는 사회를 쥐락펴락하면서도, ‘지금 여기’의 사소한 실천에 우리는 인색해지기 쉽지요. 그러나 실천은 나중에 하면 된다며 당장 입만 살아 큰소리친다면, 로도스에서만 잘 뛴다는 허풍쟁이와 다르지 않겠지요.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 할 일”이라는 글을 읽으며 저도 뜨끔하더군요. 그런데 잠깐, “여기 장미(die Rose)가 있다, 여기서 춤을 추어라!(Hic ‘Rhodus’, hic salta!)”라는 표현도 있어요. 마르크스가 써서 뉴명해진 말인데요, 뭔가 비슷하면서도 다르지요? 서양 근대의 문학과 철학에 정통한 이사야 벌린은 이 격언이 달라지는 과정을 추적합니다.

벌린에 따르면, 철학자 헤겔이 <법철학> 서문에 “여기가 로도스다…”라는 격언을 끌어 쓰면서 로도스 섬을 장미(희랍어로 로돈, rhodon)로, 멀리뛰기를 ‘춤을 춘다’로 고쳤대요. 헤겔은 단순히 실수를 한 걸까요 아니면 벼르고 별러 고단수의 패러디를 한 걸까요? 헤겔이 보수적인 맥락에서 끌어다 쓴 이 말을, 마르크스는 어떻게 정반대의 맥락으로 가져다 쓴 걸까요? 이 문제에 바로 대답해 드리고 싶지만, 지금 여기서는 곤란하네요. 다른 기회라면 다른 여건이라면 알기 쉽게 정리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제 공부가 부족한 탓이 아니라, 여기가 로도스 섬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아마. //               만화가·<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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