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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탄핵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이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팀(특검팀) 구성이 발의되었고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의 승인으로 인해 대북송금에 대한 진실을 가리고자 특검팀이 구성된다.

김대중 정부와 협조하여 금강산 관광 사업에 박차를 가하던 현대그룹 또한 특검팀에 의해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이때 현대그룹의 비자금 150억 원이 드러나게 되었고현대그룹 회장 정몽헌이 2003년 8월 4일, 투신하여 자살한다.

사건의 내막은 이러했다.

2000년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던 박지원과 청와대 경제수석 이기호이 두 사람은 산업은행에 압력을 가해 북한에 보낼 돈을 마련하였고국정원장이었던 임동원은 현대측에서 준비한 4억 5천만 달러와박지원과 이기호가 마련한 1억 달러를 합한 5억 5천만 달러를북한에 비공식적으로 송금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에 김대중 정부 인사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강해졌고결국 이 사건과 관계된 박지원, 임동원, 이기호 등은 징역을 선고받게 된다.

----------------------------------------------------------------------------<열린우리당의 창당>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은 세 갈래의 계파가 존재했다.

1. 김대중을 필두로 하는 동교동계2. 노무현을 필두로 하는 친노계3. 쇄신을 주장하는 호남계이 글에서 다룬 김대중 정부의 불법대북송금 사건과제16대 대선 당시 이른바 '병풍 사건'이라 불리는 허위 사건을 조작한 것 등이 밝혀지면서새천년민주당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았다.

(천정배와 정동영, 그들은 쇄신파였다)이에 제17대 총선을 염두에 둔 친노계와 쇄신파는 새천년민주당의 재창당을 기획했다.

당연히 새천년민주당 내부에서는 갈등이 빚어지게 되었고 그들은 서로 반목하였다.

2003년 11월 11일새천년민주당에서 탈당한 40명, 한나라당에서 새로운 정당에 참여하려는 5명, 유시민이 주도한 개혁국민정당에서의 2명이 참여하여 47명의 의원으로 열린우리당이 창당된다.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자 야권은 분열했다.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2004년 2월 24일방송클럽초청 대통령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아래와 같은 발언을 한다.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

이 말은 즉, 두 달 후인 2004년 4월 15일에 예정되어있는 총선에서친노계가 속해있는 열린우리당을 지지해달라고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계는 발칵 뒤집혔다.

2004년 3월 5일새천년민주당은 선관위의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 의무 준수 요구를 근거로 하여노무현 대통령에게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에 대해 정식적으로 사과를 요구했다.

한발 더 나아가 새천년민주당은 초강수를 두게 되는데,이때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를 하지 않으면 탄핵을 발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출되게끔 해준 새천년민주당을 배반한 것도 모자라서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를 국민들에게 호소하였으니 강력하게 나간 것이었다.

2004년 3월 6일노무현은 새천년민주당의 사과 요구에 불응했다.

자신의 발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새천년민주당은 과연, 예고한대로 노무현 탄핵을 준비했고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였으며이 두 당은 요청을 받아들여 탄핵 소추안에 힘을 보태게 된다.

2004년 3월 12일새천년민주당의 주도 하에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 소속 의원 195명이 탄핵 소추안에 투표하였고찬성 193표, 반대 2표의 결과로 노무현은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다.

이에 국무총리였던 고건이 대통령 권한을 대리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시작이었다.

----------------------------------------------------------------------------<역풍의 시작>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를 개최했다.

위 자료를 보면 탄핵 사건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를 볼 수 있는데...보수언론 사이트에서는 찬성이 조금 앞서고 있지만타 기관에서 시행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보면과반수가 대통령 탄핵안에 대해 반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당 지지율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친노계 인사가 속해있는 미니여당 열린우리당은 44.4%거대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14.8%로 열린우리당에 한참 못 미쳤으며탄핵을 주도한 새천년민주당은 5.4%로 민주노동당보다 못한 결과를 보였다.

 한나라당은 다급해졌다.

이에 탄핵안에 동참한 최병렬 대표가 물러나게 되고후임으로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에 취임하게 된다.

박근혜는 한나라당 대표 취임 이후 "국민들께 사죄한다"며한나라당 당사의 간판을 떼어내 이른바 '천막당사'라 불리는 천막을 설치하여그곳에서 당의 업무를 보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제17대 총선>2004년 4월 15일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이 선거에서 47석에 불과하던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차지하였는데이것은 299석의 총원인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넘는 것이었다.

이로써 친노계 인사 및 열린우리당은 여의도에 태풍을 몰고 오게 된다.

139석을 차지하고 있던 한나라당은 필패의 예상을 깨고나름대로 선방하여 121석을 차지하였는데이것을 박근혜가 주도하여 선거를 치루어 이렇게 결과가 나왔다고 하여후일 박근혜는 이른바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리우게 된다.

그리고, 군소정당에 불과하던 권영길이 이끌던 민주노동당이10석을 차지해 첫 원내진출을 이루게 된다.

..노무현의 탄핵을 주도하였던 새천년민주당은 그 결과가 참담했다.

겨우 9석을 차지하여 민주노동당보다도 못한 결과를 내는데 그쳤고, 김종필이 이끌던 자유민주연합은 4석을 차지하여 아예 망해버리고 만다.

----------------------------------------------------------------------------<그 후>2004년 5월 14일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해 기각 판정을 내리는데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국가원수를 탄핵하려면 국민의 신임을 저버리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적극적인 위반을 해야함2. 노무현 대통령의 행위는 개인의 소극적인 위반이라고 판단되어 탄핵소추안을 기각한다.

이로 인해 노무현은 대통령직에 복귀하게 된다.

이 사람은 이 때 당시 친노(親盧) 정당인 열린우리당의 대표로써 활동하였으나노무현 정권 말기 노무현을 비난하며 열린우리당을 탈당하였으며지지율이 낮던 노무현을 공격하며 제17대 대선에서 당선을 노렸으나...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큰 표 차이로 밀려 낙선하고만다.

정동영은 노무현이 자살한 후 봉하마을에 조문하기 위해 방문하였으나봉하마을 주민들과 노무현을 지지하는 시민들이"배신자"라 칭하며 입장을 저지하여 조문하지 못하였다.

박근혜는 한나라당이 어려울 때 대표로 활동하며선거 당시 보여준 모습과 결과를 토대로 지지층을 결집시켰으며결과적으로 제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의 후보로 출마하게 된다.

김종필은 제17대 총선 당시 자신도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였으나탄핵사건의 역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낙선하고만다.

김종필은 이 때를 계기로 하여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다.

 <주요 사건 관계자>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박근혜 대통령 출마 배경,탄핵 소추권)  ----------------------------------------------------------------------------<김대중 정부의 불법대북송금사건>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통령 선거 2002년 12월 19일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다.

그 전임자인 김대중은 2000년 6월, 방북(訪北)하여 김정일과 회담을 갖게 되는데이때 김대중 정부에서 회담의 성사를 위해 거액의 돈을 북한에 송금시켰다는 의혹이 일게 된다.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이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팀(특검팀) 구성이 발의되었고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의 승인으로 인해 대북송금에 대한 진실을 가리고자 특검팀이 구성된다.

김대중 정부와 협조하여 금강산 관광 사업에 박차를 가하던 현대그룹 또한 특검팀에 의해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이때 현대그룹의 비자금 150억 원이 드러나게 되었고현대그룹 회장 정몽헌이 2003년 8월 4일, 투신하여 자살한다.

사건의 내막은 이러했다.

2000년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던 박지원과 청와대 경제수석 이기호이 두 사람은 산업은행에 압력을 가해 북한에 보낼 돈을 마련하였고국정원장이었던 임동원은 현대측에서 준비한 4억 5천만 달러와박지원과 이기호가 마련한 1억 달러를 합한 5억 5천만 달러를북한에 비공식적으로 송금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에 김대중 정부 인사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강해졌고결국 이 사건과 관계된 박지원, 임동원, 이기호 등은 징역을 선고받게 된다.

----------------------------------------------------------------------------<열린우리당의 창당>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은 세 갈래의 계파가 존재했다.

1. 김대중을 필두로 하는 동교동계2. 노무현을 필두로 하는 친노계3. 쇄신을 주장하는 호남계이 글에서 다룬 김대중 정부의 불법대북송금 사건과제16대 대선 당시 이른바 '병풍 사건'이라 불리는 허위 사건을 조작한 것 등이 밝혀지면서새천년민주당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았다.

(천정배와 정동영, 그들은 쇄신파였다)이에 제17대 총선을 염두에 둔 친노계와 쇄신파는 새천년민주당의 재창당을 기획했다.

당연히 새천년민주당 내부에서는 갈등이 빚어지게 되었고 그들은 서로 반목하였다.

2003년 11월 11일새천년민주당에서 탈당한 40명, 한나라당에서 새로운 정당에 참여하려는 5명, 유시민이 주도한 개혁국민정당에서의 2명이 참여하여 47명의 의원으로 열린우리당이 창당된다.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자 야권은 분열했다.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2004년 2월 24일방송클럽초청 대통령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아래와 같은 발언을 한다.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

이 말은 즉, 두 달 후인 2004년 4월 15일에 예정되어있는 총선에서친노계가 속해있는 열린우리당을 지지해달라고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계는 발칵 뒤집혔다.

2004년 3월 5일새천년민주당은 선관위의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 의무 준수 요구를 근거로 하여노무현 대통령에게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에 대해 정식적으로 사과를 요구했다.

한발 더 나아가 새천년민주당은 초강수를 두게 되는데,이때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를 하지 않으면 탄핵을 발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출되게끔 해준 새천년민주당을 배반한 것도 모자라서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를 국민들에게 호소하였으니 강력하게 나간 것이었다.

2004년 3월 6일노무현은 새천년민주당의 사과 요구에 불응했다.

자신의 발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새천년민주당은 과연, 예고한대로 노무현 탄핵을 준비했고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였으며이 두 당은 요청을 받아들여 탄핵 소추안에 힘을 보태게 된다.

2004년 3월 12일새천년민주당의 주도 하에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 소속 의원 195명이 탄핵 소추안에 투표하였고찬성 193표, 반대 2표의 결과로 노무현은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다.

이에 국무총리였던 고건이 대통령 권한을 대리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시작이었다.

----------------------------------------------------------------------------<역풍의 시작>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를 개최했다.

위 자료를 보면 탄핵 사건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를 볼 수 있는데...보수언론 사이트에서는 찬성이 조금 앞서고 있지만타 기관에서 시행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보면과반수가 대통령 탄핵안에 대해 반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당 지지율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친노계 인사가 속해있는 미니여당 열린우리당은 44.4%거대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14.8%로 열린우리당에 한참 못 미쳤으며탄핵을 주도한 새천년민주당은 5.4%로 민주노동당보다 못한 결과를 보였다.

 한나라당은 다급해졌다.

이에 탄핵안에 동참한 최병렬 대표가 물러나게 되고후임으로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에 취임하게 된다.

박근혜는 한나라당 대표 취임 이후 "국민들께 사죄한다"며한나라당 당사의 간판을 떼어내 이른바 '천막당사'라 불리는 천막을 설치하여그곳에서 당의 업무를 보기 시작한다.

[노무현 탄핵] 그것을 알려줍니다.


----------------------------------------------------------------------------<대한민국 제17대 총선>2004년 4월 15일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이 선거에서 47석에 불과하던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차지하였는데이것은 299석의 총원인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넘는 것이었다.

이로써 친노계 인사 및 열린우리당은 여의도에 태풍을 몰고 오게 된다.

139석을 차지하고 있던 한나라당은 필패의 예상을 깨고나름대로 선방하여 121석을 차지하였는데이것을 박근혜가 주도하여 선거를 치루어 이렇게 결과가 나왔다고 하여후일 박근혜는 이른바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리우게 된다.

그리고, 군소정당에 불과하던 권영길이 이끌던 민주노동당이10석을 차지해 첫 원내진출을 이루게 된다.

..노무현의 탄핵을 주도하였던 새천년민주당은 그 결과가 참담했다.

겨우 9석을 차지하여 민주노동당보다도 못한 결과를 내는데 그쳤고, 김종필이 이끌던 자유민주연합은 4석을 차지하여 아예 망해버리고 만다.

----------------------------------------------------------------------------<그 후>2004년 5월 14일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해 기각 판정을 내리는데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국가원수를 탄핵하려면 국민의 신임을 저버리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적극적인 위반을 해야함2. 노무현 대통령의 행위는 개인의 소극적인 위반이라고 판단되어 탄핵소추안을 기각한다.

이로 인해 노무현은 대통령직에 복귀하게 된다.

이 사람은 이 때 당시 친노(親盧) 정당인 열린우리당의 대표로써 활동하였으나노무현 정권 말기 노무현을 비난하며 열린우리당을 탈당하였으며지지율이 낮던 노무현을 공격하며 제17대 대선에서 당선을 노렸으나...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큰 표 차이로 밀려 낙선하고만다.

정동영은 노무현이 자살한 후 봉하마을에 조문하기 위해 방문하였으나봉하마을 주민들과 노무현을 지지하는 시민들이"배신자"라 칭하며 입장을 저지하여 조문하지 못하였다.

박근혜는 한나라당이 어려울 때 대표로 활동하며선거 당시 보여준 모습과 결과를 토대로 지지층을 결집시켰으며결과적으로 제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의 후보로 출마하게 된다.

김종필은 제17대 총선 당시 자신도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였으나탄핵사건의 역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낙선하고만다.

김종필은 이 때를 계기로 하여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다.

3.12(金) 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 대통령도 법을 어기면 물러나야우리나라에서 탄핵이 실제로 진행된 사례는 적다.

1985년 10월 18일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 102명이 당시 대법원장(유태흥)에 대한 탄핵소추결의안을 발의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21일 재적의원 247명 중 찬성95...terms.naver.com 저점 대비 많이 회복하기도 했고, 이후 1

2달 동안은 오히려 시장이 안정을 찾는 모습이었지만,적어도 당일에는 5.5%까지 급락하는 현상이 나타났었다는 건 참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p.s 당연히 이번에도 탄핵이 진행되면, 5.5% 빠질 거다라는 걸 이야기한 건 아닙니다.

ㅎㅎㅎ 탄핵 때문에 왜 주가가 빠져야 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는지를 고민해보고, 대응하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입니당 ^^/노무현 대통령 연극-탄핵안 가결 후 '활짝 웃던' 朴대통령26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가운데 12년 전 박 대통령의 모습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04년 8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환생경제'라는 연극을 관람하며 박장대소했다.

'환생경제'는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을 "노가리", "육X헐 놈", "개X놈"이라고 비하하는 등 원색적인 내용으로 논란이 됐던 연극이다.

여기에는 주성영, 나경원, 송영선, 주호영, 심재철, 이혜훈, 정두언, 정병국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24명이 출연했다.

박 대통령은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프로를 방불케 하는 연기'라고 극찬했다고 전해졌다.

이에 앞서 같은해 3월12일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당시 박 대통령은 해맑게 웃기도 했다.

25일 sns상에는 YTN이 촬영했던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 모습이 돌아 다닌다.

YTN이 공개한 '돌발영상'에는 노 전 대통령의 탄핵을 막으려는 열린우리당과 표결에 부치려는 야당 의원들의 몸싸움 등 아수라장이 된 국회 모습이 담겨 있다.

12년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표를 던진후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다.

국회의장은 경위를 대동해 의장석 점거 농성을 하던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끌어냈고, 여야 의원들은 격한 몸싸움을 벌였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투표를 마치고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오는 박 대통령은 혼란스러운 주변 상황과 대조적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짧지만 강렬한 이미지였다.

최근, 네티즌들은 헌정사상 두 번째로 탄핵 대상이 될 박 대통령의 지난 모습을 찾아내서 sns상에 공유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현재를 비교해 “어쩐지 소름 돋는다” “다음 차례가 머지 않았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노무현 전대통령에게 했던 그대로 당하는 꼴로 업보다" 등 댓글이 줄을 이었다.

한편, 노대통령 탄핵 당시  노 대통령의 탄핵안 표결은 재적의원 271명 중 195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가결됐다.

당시 박관용 국회의장은 표결 후 “대한민국은 어떤 경우가 있어도 꼭 전진해야 한다”고 외쳤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의 국회 본회의 의결정족수는 200명이다.

현재 야권과 무소속 의원은 172명이다.

탄핵소추안 의결을 위해선 최소 28명의 새누리당 의원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노무현 탄핵] 대체 무엇때문에.



박 대통령은 당시 상황과 대조적으로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누리꾼들은 당시 사진과 영상에 대해 "거친 욕설 쓰며 노무현 비난했던 한나라당 극단이 박근혜·최순실은 어떻게 비난할지 궁금하다" "12년 뒤 뒤바꾼 운명" "박근혜 탄핵되는 날 세상 떠나가게 웃어주겠다" "탄핵으로 흥한 자 탄핵으로 망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3.12(金) 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 대통령도 법을 어기면 물러나야우리나라에서 탄핵이 실제로 진행된 사례는 적다.

1985년 10월 18일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 102명이 당시 대법원장(유태흥)에 대한 탄핵소추결의안을 발의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21일 재적의원 247명 중 찬성95...terms.naver.com 저점 대비 많이 회복하기도 했고, 이후 1

2달 동안은 오히려 시장이 안정을 찾는 모습이었지만,적어도 당일에는 5.5%까지 급락하는 현상이 나타났었다는 건 참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p.s 당연히 이번에도 탄핵이 진행되면, 5.5% 빠질 거다라는 걸 이야기한 건 아닙니다.

ㅎㅎㅎ 탄핵 때문에 왜 주가가 빠져야 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는지를 고민해보고, 대응하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입니당 ^^3.12(金) 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 대통령도 법을 어기면 물러나야우리나라에서 탄핵이 실제로 진행된 사례는 적다.

1985년 10월 18일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 102명이 당시 대법원장(유태흥)에 대한 탄핵소추결의안을 발의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21일 재적의원 247명 중 찬성95...terms.naver.com 저점 대비 많이 회복하기도 했고, 이후 1

2달 동안은 오히려 시장이 안정을 찾는 모습이었지만,적어도 당일에는 5.5%까지 급락하는 현상이 나타났었다는 건 참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p.s 당연히 이번에도 탄핵이 진행되면, 5.5% 빠질 거다라는 걸 이야기한 건 아닙니다.

ㅎㅎㅎ 탄핵 때문에 왜 주가가 빠져야 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는지를 고민해보고, 대응하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입니당 ^^그렇게 12년이 지난 후 우린 참 많은 걸 알게 되었습니다.

12년전에 얼마나 좋은 대통령을 우리가 갖고 있었는지,12년후 얼마나 후진 대통령을 갖게 되었는지.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에서 지켰드렸습니다.

2016년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에 성공할 때입니다.

2004년에 좋았던 대통령을 끝내 잃어서 가슴 아팠다면,2016년에는 반드시 이 때를 놓치지 말고 그를 물러나게 해야할 때입니다.

시간은 항상 우리편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을 지키는 데 실패했지만나쁜 사람을 몰아내는데는 꼭 성공하기를.더 좋은 나라를 우리 아이들에게 줄 수 있기를.*사진출처 : 페이스북 '역사대장정'3.12(金) 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 대통령도 법을 어기면 물러나야우리나라에서 탄핵이 실제로 진행된 사례는 적다.

1985년 10월 18일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 102명이 당시 대법원장(유태흥)에 대한 탄핵소추결의안을 발의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21일 재적의원 247명 중 찬성95...terms.naver.com 저점 대비 많이 회복하기도 했고, 이후 1

2달 동안은 오히려 시장이 안정을 찾는 모습이었지만,적어도 당일에는 5.5%까지 급락하는 현상이 나타났었다는 건 참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p.s 당연히 이번에도 탄핵이 진행되면, 5.5% 빠질 거다라는 걸 이야기한 건 아닙니다.

ㅎㅎㅎ 탄핵 때문에 왜 주가가 빠져야 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는지를 고민해보고, 대응하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입니당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이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팀(특검팀) 구성이 발의되었고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의 승인으로 인해 대북송금에 대한 진실을 가리고자 특검팀이 구성된다.

김대중 정부와 협조하여 금강산 관광 사업에 박차를 가하던 현대그룹 또한 특검팀에 의해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이때 현대그룹의 비자금 150억 원이 드러나게 되었고현대그룹 회장 정몽헌이 2003년 8월 4일, 투신하여 자살한다.

사건의 내막은 이러했다.

2000년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던 박지원과 청와대 경제수석 이기호이 두 사람은 산업은행에 압력을 가해 북한에 보낼 돈을 마련하였고국정원장이었던 임동원은 현대측에서 준비한 4억 5천만 달러와박지원과 이기호가 마련한 1억 달러를 합한 5억 5천만 달러를북한에 비공식적으로 송금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에 김대중 정부 인사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강해졌고결국 이 사건과 관계된 박지원, 임동원, 이기호 등은 징역을 선고받게 된다.

----------------------------------------------------------------------------<열린우리당의 창당>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은 세 갈래의 계파가 존재했다.

1. 김대중을 필두로 하는 동교동계2. 노무현을 필두로 하는 친노계3. 쇄신을 주장하는 호남계이 글에서 다룬 김대중 정부의 불법대북송금 사건과제16대 대선 당시 이른바 '병풍 사건'이라 불리는 허위 사건을 조작한 것 등이 밝혀지면서새천년민주당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았다.

(천정배와 정동영, 그들은 쇄신파였다)이에 제17대 총선을 염두에 둔 친노계와 쇄신파는 새천년민주당의 재창당을 기획했다.

당연히 새천년민주당 내부에서는 갈등이 빚어지게 되었고 그들은 서로 반목하였다.

2003년 11월 11일새천년민주당에서 탈당한 40명, 한나라당에서 새로운 정당에 참여하려는 5명, 유시민이 주도한 개혁국민정당에서의 2명이 참여하여 47명의 의원으로 열린우리당이 창당된다.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자 야권은 분열했다.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2004년 2월 24일방송클럽초청 대통령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아래와 같은 발언을 한다.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

이 말은 즉, 두 달 후인 2004년 4월 15일에 예정되어있는 총선에서친노계가 속해있는 열린우리당을 지지해달라고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계는 발칵 뒤집혔다.

2004년 3월 5일새천년민주당은 선관위의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 의무 준수 요구를 근거로 하여노무현 대통령에게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에 대해 정식적으로 사과를 요구했다.

한발 더 나아가 새천년민주당은 초강수를 두게 되는데,이때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를 하지 않으면 탄핵을 발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출되게끔 해준 새천년민주당을 배반한 것도 모자라서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를 국민들에게 호소하였으니 강력하게 나간 것이었다.

2004년 3월 6일노무현은 새천년민주당의 사과 요구에 불응했다.

자신의 발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새천년민주당은 과연, 예고한대로 노무현 탄핵을 준비했고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였으며이 두 당은 요청을 받아들여 탄핵 소추안에 힘을 보태게 된다.

2004년 3월 12일새천년민주당의 주도 하에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 소속 의원 195명이 탄핵 소추안에 투표하였고찬성 193표, 반대 2표의 결과로 노무현은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다.

이에 국무총리였던 고건이 대통령 권한을 대리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시작이었다.

----------------------------------------------------------------------------<역풍의 시작>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를 개최했다.

위 자료를 보면 탄핵 사건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를 볼 수 있는데...보수언론 사이트에서는 찬성이 조금 앞서고 있지만타 기관에서 시행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보면과반수가 대통령 탄핵안에 대해 반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당 지지율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친노계 인사가 속해있는 미니여당 열린우리당은 44.4%거대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14.8%로 열린우리당에 한참 못 미쳤으며탄핵을 주도한 새천년민주당은 5.4%로 민주노동당보다 못한 결과를 보였다.

 한나라당은 다급해졌다.

이에 탄핵안에 동참한 최병렬 대표가 물러나게 되고후임으로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에 취임하게 된다.

박근혜는 한나라당 대표 취임 이후 "국민들께 사죄한다"며한나라당 당사의 간판을 떼어내 이른바 '천막당사'라 불리는 천막을 설치하여그곳에서 당의 업무를 보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제17대 총선>2004년 4월 15일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이 선거에서 47석에 불과하던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차지하였는데이것은 299석의 총원인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넘는 것이었다.

이로써 친노계 인사 및 열린우리당은 여의도에 태풍을 몰고 오게 된다.

139석을 차지하고 있던 한나라당은 필패의 예상을 깨고나름대로 선방하여 121석을 차지하였는데이것을 박근혜가 주도하여 선거를 치루어 이렇게 결과가 나왔다고 하여후일 박근혜는 이른바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리우게 된다.

그리고, 군소정당에 불과하던 권영길이 이끌던 민주노동당이10석을 차지해 첫 원내진출을 이루게 된다.

..노무현의 탄핵을 주도하였던 새천년민주당은 그 결과가 참담했다.

겨우 9석을 차지하여 민주노동당보다도 못한 결과를 내는데 그쳤고, 김종필이 이끌던 자유민주연합은 4석을 차지하여 아예 망해버리고 만다.

----------------------------------------------------------------------------<그 후>2004년 5월 14일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해 기각 판정을 내리는데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국가원수를 탄핵하려면 국민의 신임을 저버리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적극적인 위반을 해야함2. 노무현 대통령의 행위는 개인의 소극적인 위반이라고 판단되어 탄핵소추안을 기각한다.

이로 인해 노무현은 대통령직에 복귀하게 된다.

이 사람은 이 때 당시 친노(親盧) 정당인 열린우리당의 대표로써 활동하였으나노무현 정권 말기 노무현을 비난하며 열린우리당을 탈당하였으며지지율이 낮던 노무현을 공격하며 제17대 대선에서 당선을 노렸으나...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큰 표 차이로 밀려 낙선하고만다.

정동영은 노무현이 자살한 후 봉하마을에 조문하기 위해 방문하였으나봉하마을 주민들과 노무현을 지지하는 시민들이"배신자"라 칭하며 입장을 저지하여 조문하지 못하였다.

박근혜는 한나라당이 어려울 때 대표로 활동하며선거 당시 보여준 모습과 결과를 토대로 지지층을 결집시켰으며결과적으로 제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의 후보로 출마하게 된다.

김종필은 제17대 총선 당시 자신도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였으나탄핵사건의 역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낙선하고만다.

김종필은 이 때를 계기로 하여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다.

 <주요 사건 관계자>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박근혜 대통령 출마 배경,탄핵 소추권)  ----------------------------------------------------------------------------<김대중 정부의 불법대북송금사건>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통령 선거 2002년 12월 19일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다.

그 전임자인 김대중은 2000년 6월, 방북(訪北)하여 김정일과 회담을 갖게 되는데이때 김대중 정부에서 회담의 성사를 위해 거액의 돈을 북한에 송금시켰다는 의혹이 일게 된다.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이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팀(특검팀) 구성이 발의되었고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의 승인으로 인해 대북송금에 대한 진실을 가리고자 특검팀이 구성된다.

김대중 정부와 협조하여 금강산 관광 사업에 박차를 가하던 현대그룹 또한 특검팀에 의해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이때 현대그룹의 비자금 150억 원이 드러나게 되었고현대그룹 회장 정몽헌이 2003년 8월 4일, 투신하여 자살한다.

사건의 내막은 이러했다.

2000년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던 박지원과 청와대 경제수석 이기호이 두 사람은 산업은행에 압력을 가해 북한에 보낼 돈을 마련하였고국정원장이었던 임동원은 현대측에서 준비한 4억 5천만 달러와박지원과 이기호가 마련한 1억 달러를 합한 5억 5천만 달러를북한에 비공식적으로 송금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에 김대중 정부 인사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강해졌고결국 이 사건과 관계된 박지원, 임동원, 이기호 등은 징역을 선고받게 된다.

----------------------------------------------------------------------------<열린우리당의 창당>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은 세 갈래의 계파가 존재했다.

1. 김대중을 필두로 하는 동교동계2. 노무현을 필두로 하는 친노계3. 쇄신을 주장하는 호남계이 글에서 다룬 김대중 정부의 불법대북송금 사건과제16대 대선 당시 이른바 '병풍 사건'이라 불리는 허위 사건을 조작한 것 등이 밝혀지면서새천년민주당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았다.

(천정배와 정동영, 그들은 쇄신파였다)이에 제17대 총선을 염두에 둔 친노계와 쇄신파는 새천년민주당의 재창당을 기획했다.

당연히 새천년민주당 내부에서는 갈등이 빚어지게 되었고 그들은 서로 반목하였다.

2003년 11월 11일새천년민주당에서 탈당한 40명, 한나라당에서 새로운 정당에 참여하려는 5명, 유시민이 주도한 개혁국민정당에서의 2명이 참여하여 47명의 의원으로 열린우리당이 창당된다.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자 야권은 분열했다.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2004년 2월 24일방송클럽초청 대통령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아래와 같은 발언을 한다.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

이 말은 즉, 두 달 후인 2004년 4월 15일에 예정되어있는 총선에서친노계가 속해있는 열린우리당을 지지해달라고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계는 발칵 뒤집혔다.

2004년 3월 5일새천년민주당은 선관위의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 의무 준수 요구를 근거로 하여노무현 대통령에게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에 대해 정식적으로 사과를 요구했다.

한발 더 나아가 새천년민주당은 초강수를 두게 되는데,이때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를 하지 않으면 탄핵을 발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출되게끔 해준 새천년민주당을 배반한 것도 모자라서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를 국민들에게 호소하였으니 강력하게 나간 것이었다.

2004년 3월 6일노무현은 새천년민주당의 사과 요구에 불응했다.

자신의 발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새천년민주당은 과연, 예고한대로 노무현 탄핵을 준비했고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였으며이 두 당은 요청을 받아들여 탄핵 소추안에 힘을 보태게 된다.

2004년 3월 12일새천년민주당의 주도 하에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 소속 의원 195명이 탄핵 소추안에 투표하였고찬성 193표, 반대 2표의 결과로 노무현은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다.

이에 국무총리였던 고건이 대통령 권한을 대리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시작이었다.

----------------------------------------------------------------------------<역풍의 시작>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를 개최했다.

위 자료를 보면 탄핵 사건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를 볼 수 있는데...보수언론 사이트에서는 찬성이 조금 앞서고 있지만타 기관에서 시행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보면과반수가 대통령 탄핵안에 대해 반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당 지지율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친노계 인사가 속해있는 미니여당 열린우리당은 44.4%거대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14.8%로 열린우리당에 한참 못 미쳤으며탄핵을 주도한 새천년민주당은 5.4%로 민주노동당보다 못한 결과를 보였다.

 한나라당은 다급해졌다.

이에 탄핵안에 동참한 최병렬 대표가 물러나게 되고후임으로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에 취임하게 된다.

박근혜는 한나라당 대표 취임 이후 "국민들께 사죄한다"며한나라당 당사의 간판을 떼어내 이른바 '천막당사'라 불리는 천막을 설치하여그곳에서 당의 업무를 보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제17대 총선>2004년 4월 15일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이 선거에서 47석에 불과하던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차지하였는데이것은 299석의 총원인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넘는 것이었다.

이로써 친노계 인사 및 열린우리당은 여의도에 태풍을 몰고 오게 된다.

139석을 차지하고 있던 한나라당은 필패의 예상을 깨고나름대로 선방하여 121석을 차지하였는데이것을 박근혜가 주도하여 선거를 치루어 이렇게 결과가 나왔다고 하여후일 박근혜는 이른바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리우게 된다.

그리고, 군소정당에 불과하던 권영길이 이끌던 민주노동당이10석을 차지해 첫 원내진출을 이루게 된다.

..노무현의 탄핵을 주도하였던 새천년민주당은 그 결과가 참담했다.

겨우 9석을 차지하여 민주노동당보다도 못한 결과를 내는데 그쳤고, 김종필이 이끌던 자유민주연합은 4석을 차지하여 아예 망해버리고 만다.

----------------------------------------------------------------------------<그 후>2004년 5월 14일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해 기각 판정을 내리는데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국가원수를 탄핵하려면 국민의 신임을 저버리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적극적인 위반을 해야함2. 노무현 대통령의 행위는 개인의 소극적인 위반이라고 판단되어 탄핵소추안을 기각한다.

이로 인해 노무현은 대통령직에 복귀하게 된다.

이 사람은 이 때 당시 친노(親盧) 정당인 열린우리당의 대표로써 활동하였으나노무현 정권 말기 노무현을 비난하며 열린우리당을 탈당하였으며지지율이 낮던 노무현을 공격하며 제17대 대선에서 당선을 노렸으나...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큰 표 차이로 밀려 낙선하고만다.

정동영은 노무현이 자살한 후 봉하마을에 조문하기 위해 방문하였으나봉하마을 주민들과 노무현을 지지하는 시민들이"배신자"라 칭하며 입장을 저지하여 조문하지 못하였다.

박근혜는 한나라당이 어려울 때 대표로 활동하며선거 당시 보여준 모습과 결과를 토대로 지지층을 결집시켰으며결과적으로 제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의 후보로 출마하게 된다.

김종필은 제17대 총선 당시 자신도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였으나탄핵사건의 역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낙선하고만다.

김종필은 이 때를 계기로 하여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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