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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그는 한국기원의 상임이사로서 온라인 바둑업체의 이사를 맡아 미풍을 일으킨 바 있다.

그리고 이제는 온라인 대국도 아닌 바둑 게임 ‘바투’에 뛰어들면서 아예 태풍을 불러왔다.

당대의 고수이자 일국의 바둑을 대표하는 프로기사가 헤드폰을 낀 채 마우스를 잡고 바둑게임에 뛰어들어 파격 행마를 보이는 것은 고금을 통틀어 처음이다.

왜 그랬을까. 일각의 의심대로 돈을 더 벌기 위한 목적일까, 아니면 그의 말대로 바둑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고육지책일까. 그를 만나 속내를 들어보기로 했다.

1. 바둑이란 무엇인가. 토요일 오후 용산의 어느 백화점에 있는 상설 e-게임장에 얼추 오륙십 명 정도의 관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간간이 사오십 대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20대 안팎의 젊은이들이었다.

잠시 후 조훈현 국수가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무대에 올라가더니 K-1 링에 오른 최홍만처럼 두 손을 번쩍 들어 답례를 했다.

그 모습에서는 (인터뷰어가 기대했던) 어떤 종류의 어색함도 발견할 수 없었다.

Q: 네 살 이후 50년간을 바둑을 둔 셈인데 아직도 바둑이 재미있습니까? 내게 바둑은 재미있다, 없다의 경지를 떠났지요. 의사가 사람을 살리는 일을 재미로 못 하듯 나도 최선을 다할 뿐이고, 그저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 들어선 길이니 앞으로도 걸어갈 뿐이죠. Q: 그렇다면 바둑이란 기(技)입니까? 술(術)입니까? 아니면 도(道)입니까? 일본에서는 기도(棋道)라고 배웠습니다.

일본은 차나 꽃꽂이까지 도를 붙이지요. 하지만 일본도 요새 바둑은 스포츠로 넘어오고 있어요. 이 때문에 바둑은 무엇이다, 이렇게 규정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에요. 어느 것 하나로 규정할 수 없고 판정 내릴 수 없는 것이 바둑입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알지 못해 규정하기가 싫어요. 그저 흐르는 대로 도로 생각하건, 예술로 생각하건, 스포츠로 생각하건 자신이 느끼는 대로가 바둑이겠지요. Q: 아홉 살에 입단 후 열 살 때 유학을 갔습니다.

본인 스스로 길을 결정할 나이가 아닌데 심경이 어땠습니까? 그때 내가 비행기를 타는 게 꿈이었어요. 배로 가라고 했으면 속마음은 싫었겠죠. 어린 마음에 ‘비행기 한번 타자’ 그렇게 떠났는데 어느새 10년이 흐르더군요. Q: 청소년기에 정규 교육보다 바둑 교육을 더 많이 받게 된 셈인데, 일본 생활은 어땠나요? 무인도에 떨어졌는데 먹을 것 없다고 그냥 죽을 수는 없잖아요. 고기도 잡고 열매도 따 먹으며 살아야죠. 인간은 떨어뜨려 놓으면 그 환경에 맞춰 자라게 돼 있어요. 나는 목적까지 있었으니 다행인 거죠. 좋은 일은 당시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잘살아 배 곯을 일이 없었고, 둘째로는 훌륭한 스승에게서 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죠. (과거 프로기사들은 어린 시절부터 지나치게 바둑 교육에만 치우친 탓에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조 국수는 다행히도 그곳에서 가장 부족해지기 쉬운 소양인 ‘정신’을 배웠다고 말했다.

) Q: 스승에게서 배웠다는 그 정신은 어떤 것이었나요? 우리 선생님(세고에 겐사쿠)은 도인이었죠. 나는 그 분을 사람 이상으로 봐요. 열 살의 나이에 일본말도 모르고 뭘 알았겠어요. 더구나 선생님도 당시 73세였는데 건강이 어땠겠어요. 그런 상황에서 외국인 제자의 입문을 허락했는데, 스승이 ‘바둑은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에서 꽃피웠다.

내가 다행히 중국의 우칭위안(吳淸源)을 키웠고 일본의 하시모토 우타로(橋本宇太郞)를 키웠지만, 한국에는 은혜를 갚을 길이 없었는데 네가 한국인이라 은혜를 갚게 됐다.

’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당시에는 대체 한국에 무슨 빚과 신세를 졌나 생각했죠. 그러나 이 이야기를 지금 돌아보니 선생님이 보통 경지가 아니었던 거죠. Q: 그렇다면 조 국수에게 그 스승은 어떤 존재입니까? 제가 같은 질문을 선생님께 한 적이 있었죠. 그랬더니 ‘답을 주는 것은 스승이 아니다.

가는 길을 갈 수 있게 만들어주고 길을 터주는 것이 스승이다.

이끄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생각의 차원이 달랐어요. 스스로 기도의 시범을 보이며 앞서 걸어가는 것이 스승이라는 뜻인데 당시엔 몰랐어요. 어린 마음에 ‘정신이 어두워지셨나?’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가슴에 와 닿고 한마디 한마디가 새겨지네요. Q: 조 국수 정도가 되면, 그렇게 배운 스승의 유산을 문하생들을 키워 전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 선생님은 1등이 아니면 안 받아줬죠. ‘배울 뜻만 있으면 아무나 와서 공부해라’ 이런 건 학원이 하는 거죠. 즉 스승은 1등 자질이 아닌데 시작하면 네가 불쌍하니 처음부터 딴 길로 가라고 하는 거죠. 그에 반해 기타니 문하는 제자가 60

70명 정도는 되었죠. 그중에는 성공과 실패가 혼재하죠. 나는 스승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해요. Q: 그럼 지금 내제자를 키우지 않는 것은 아직 1등 자질을 만나지 못했다는 뜻인가요? 지금은 세계 1등할 사람을 거두기 쉽지 않아요. 예전에 운이 좋아 창호를 만났지만 이후에는 인연을 맺기가 어렵더군요. 재능이 부족해도 그저 바둑을 배우고 싶은 사람을 받는 것은 다른 사람이 해주면 되고, 그 한 명을 만나야 하는데 솔직히 나는 아직 그런 걸 보는 눈이 없어요. 느낌은 있는데 확신은 없는 거죠. Q: 그럼 내제자로 유일하게 가르쳤던 이창호는 어떤 제자였습니까? 일단 받아들인 후에는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창호도 스승의 뜻을 따랐다고 보죠. 지금 욕 안 먹고 있으니…. Q: 한데 이창호 국수는 내제자 시절 스승과 지도대국 몇 번 둔 것이 전부였다는 말을 한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창호 입장에서는 섭섭한 게 당연하죠. 사람 만들어주고 갈 길 만들어주는 게 선생인데, 처음엔 나도 서운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듯이… 바둑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내 방식이 서운하다고 해도, 또 배운 게 없다고 해도 나로서는 할 말이 없어요. 제자가 배웠다고 생각하면 배운 것이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 것이죠. Q: 이창호는 처음부터 재목이라고 생각하고 내제자로 받아들이신 건가요? 아니요. 처음에는 ‘계륵’으로 생각했어요. 뭔가 아쉬운,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그런 정도로 보였어요. 한데 이렇게 잘할 줄 몰랐죠. 어린 나이에 성실했어요. 창호는 ‘안의 천재’가 아니라 밖에서 ‘보이는 천재’죠. Q: 안의 천재가 아니라 보이는 부분이 천재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능력만큼의 성실성 같은 것이죠. 창호는 100번 중에 한 번이라도 역전당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판을 크게 이길 수 있어도 그 수를 안 둬요. 창호에게 ‘왜 그 수를 안 뒀느냐’고 하면 ‘자기가 가는 길로 가면 100번 중의 100번을 반집이라도 이길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이게 답이 될 수 있을 거예요. Q: 기풍(棋風)의 차이라는 뜻인가요? 보통 바둑에서 계열, 즉 ‘유(流)’는 강자와 약자의 실력 차가 확실하죠. 그래서 같은 유로 강자를 극복하기는 어려워요. 내가 다가가는 만큼 상대도 도망가니까요. 하지만 정반대의 유나 ‘형(形)’으로 하면 이길 수가 있어요. 허를 찌르는 것이니까요. 그 점에서 바둑에서 전세(승리의 모양)를 중시하는 나와 반집이라도 이기면 승리하는 창호는 차이가 있죠. 굳이 비유를 들자면 이창호는 ‘번쩍번쩍류’라고나 할까? 그에 비해 이세돌은 나와 유형이 비슷하죠. 그래서 창호는 나를 이겼고 이세돌은 다시 창호를 이겼고, 또 누군가가 이세돌을 이기려면 창호류나 혹은 다른 유가 나와야겠죠. (인터뷰 중에 자연스럽게 일본 사무라이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의 전설적인 결투 이야기가 나왔다.

한 사람은 장검을, 다른 사람은 쌍검을 사용했고 검법 역시 달랐다.

) Q: ‘번쩍번쩍류’라는 말은 어떤 의미입니까? 공식대로 말하면 창호는 ‘부동류’라고 하죠. 나는 ‘자유류’라고 하고요. 형에 매이지 않고 있는 데서 최선을 다하는 거죠. 한데 창호는 조용히 물처럼 기다려요. 그 부동의 흐름 속에서 번쩍번쩍하고 있는 거죠. Q: 바둑에서 정석이란 어떤 것인가요? 원래 바둑을 배울 때는 정석이 필요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달라져요. 나는 처음에 ‘전투’에는 강한데 ‘정석’과 ‘포석’에 약하다는 소리를 들었죠. 그래서 선생님 책 중에서 ‘정석백과사전’을 들고 모두 외워버렸죠. 이후에 바둑이 강해졌어요. 정석에 대한 걱정이 없었으니 말이죠. Q: 모든 정석을 다 외워도 다른 단계가 있다는 말씀인가요? 정석을 배운 다음에는 잊어버려야 하죠. 진정한 기사는 정석을 창조하고 끄집어내고 최선의 정석이 뭔지 만들어갑니다.

배움도 마찬가지예요. 선생에게 매 맞는 제자가 바둑이 세요. 왜냐? 스승이 시키는 대로 하면 매를 안 맞거든요. 그런데 스승이 두라고 해서 그냥 두면 왜 이렇게 두는지를 모르죠. 그것은 스승의 수이지 자신의 수가 아니에요. 이 때문에 스승에게 칭찬받고 매를 안 맞는 제자는 실전에 약해지죠. 반대로 자기 유로 두면 스승에게 맞아요. 하지만 그것이 내 바둑이에요. Q: 그렇다면 굳이 스승에게 배울 필요 없지 않습니까? 아니에요. 그러면서도 스승에게 배워야 하는 이유는 100개 중 한 개의 생각지도 못했던 수를 배우기 위해서죠. 오로지 그거 하나 배우기 위해 99번의 매를 맞아야 하는 겁니다.

(인터뷰어가 어느새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무대인사 장면과 헤드폰을 낀 그의 모습을 보고, 당대 최고의 바둑고수를 만난다는 흥분이 가라앉으며 굳어 버렸던 인터뷰어였다.

) Q: 9단이면 입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경지에 이르니까 바둑이 어떻게 보이던가요? 나도 마찬가지지만 그 정도 수준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 물어보세요. 아마 다들 아직 멀었다고 말할 거예요. 그건 겸손이 아니에요. 처음이나 9단이나 같아요. 끝이 없는 길에 누구는 1m를, 누구는 100m를, 누구는 1㎞를 간 것일 뿐, 길 전체로 보면 아득하긴 매한가지죠. 하지만 아마추어들이 두는 것은 다음 수가 훤히 보여요. 굳이 말하라면 그 정도의 차이랄까요? (사람이 한 분야에서 경지에 다다르면, 물리가 저절로 트인다고 한다.

고등어 배를 가르고 소금을 치는 간잽이 이동삼씨도, 시골장터의 이름 없는 혁필 화가도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해보면 자신의 영역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물리와 이치가 트인 것이 느껴진다.

조 국수의 말도 툭툭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예사롭지 않았다.

) 2. 프로기사 조훈현 Vs 프로게이머 조훈현 나이 들면 보수가 된다? 조훈현은 반대를 택했다.

권위를 벋고 파격의 길로 들어섰다.

[권혁재 전문]인터뷰어는 바둑을 전혀 모른다.

하지만 입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문외한조차도 이해시키는 힘이 있다.

조 국수도 그랬다.

하지만 그전에 컴퓨터게임 장면을 지켜본 추억 때문일까? 결국 조 국수에게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Q: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은 그것에 대한 자부심과 보수성이 강한데 조 국수께서는 상당히 입장이 유연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 입장 때문에 오해도 꽤 있던데요?그 점에 대해 잡음과 말썽이 있지만 감수해야죠. 우리나라는 전보다 바둑이 침체돼 있고 그 점은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바둑도 변해야 하고 탈출구가 필요하죠. 이미 상황은 돌이키기 어려워요. 위로 상승하기 어렵고 이제 유지하거나 하락할 수밖에 없는데 기존 틀로서는 방법이 없죠. 가끔 ‘어떻게 조훈현이 그럴 수 있느냐’라는 말을 듣지만 나는 바둑을 보급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죠.Q: 그래서 ‘바투’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뜻인가요?이것은 게임입니다.

보통 ‘놀아라’ 하면 ‘공부하라’보다 낫듯이, 바투는 놀지만 바둑은 공부하는 것이니 접근성이 높죠. 그래서 바투로 놀다 보면 저절로 바둑을 배우게 되고, 결국에는 바투에서 고수가 되기 위해 연구하다가 다시 바둑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즉 바둑계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시작한 것이에요. 바투 입문서는 바둑 입문서와 거의 같아요.Q: 일생의 라이벌이 있다면 누구를 꼽으시겠습니까?없어요. 자기 자신이 라이벌이죠. 남들이 재미로 붙인 것이 라이벌이지 모두가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보통 비슷하면 라이벌이라는 소리를 듣는데 나이나 실력, 능력들이 비슷해야 라이벌이 되죠. 이런 것은 팬들이 재미로 만든 거지, 모두 자기가 라이벌이에요.Q: 그래도 바둑계에서는 조 국수께서 서봉수 9단과 실제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던데요?허허

남들이 말하는 대로라면, 바둑에서 졌다고 불편하다면 모두가 다 원수게요.Q: 서봉수 9단과는 대국 전후에 서로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복기(復棋)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설 정도라던데요?그건 말이죠….(인터뷰 내내 지켜지던 조 국수의 평정심이 다소 흔들리는 모습이 느껴졌다.

라이벌을 애써 부인하는 그는 바둑의 라이벌이라서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Q: 제자였던 이창호에게 처음 졌을 때는 기분이 어떠셨습니까?충격과 기쁨이 동시에 왔죠. 과거에는 그런 사례가 없었거든요. 서로 격차가 커 제자가 어릴 때는 스승이 고수고 제자가 왕성할 때는 스승이 돌아가셨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젊을 때(33살) 제자를 받았고 그 때문에 제자와 정상에서 진검 승부를 벌이는 기록을 남긴 셈이죠. 돌아보면 지금쯤 내제자를 받았어야 하는데 너무 빨랐던 거죠.Q: 이창호는 어떻게 문하를 떠났나요?그건 집이 이사 갈 때도 됐고, 더 가르칠 것도 없었고, 또 이미 창호에게 대국에서 ‘패’를 한 다음이라 내가 더 가르친다는 것이 적당치 않았기 때문이에요.Q: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바둑을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일본 바둑은 모양과 형식이 강하죠. 대신 수백 년간 형식에 얽매여서 발전이 더뎌요. 그에 비해 한국과 중국의 바둑은 전투적이죠. 승부를 너무 따지고 내용을 모르는 단점은 있지만 대신 승부에는 강해요.Q: 승부에 집착하면 ‘기도’로서의 바둑이 너무 살벌해지는 거 아닌가요?‘도’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죠. 예를 들어 우리 시대에는 연예인을 딴따라라고 불렀지만 지금 최불암씨는 다들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나요? 술도 지나치면 나쁜 것이지 어떻게 누구와 마시느냐에 따라 약도 될 수도 있어요. 잡기인 바둑도 ‘적당히’가 중요한 거죠.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 바둑이 잡기(雜技)나 기박(棋博)의 범주에 함께 속했지만, 그 다음에는 예술로, 지금은 스포츠로 바뀌었잖아요.Q: 그 말은 일각에서 제기하는 국수 조훈현이 바둑의 ‘고고한 도’를 저버렸다는 비판에 대한 답 같은데요?한복을 예로 들어보죠. 요새 개량 한복을 많이 입죠. 하지만 왜 전통을 파기하느냐고 항의하면 한복은 사라지고 말겠죠. 우리가 개량 한복을 인정하듯 바둑도 변화를 인정해야 해요.Q: 그래도 조 국수께서 나서기에는 본인이 지닌 상징성이 너무 크지 않을까요?아니에요. 지금은 내가 나서서 길을 터줘야 하는 상황이에요. 바둑계에서 내가 아니면 나설 사람이 없어요. 내가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이렇게 나선 걸 봤다면 나도 ‘프로기사가 헤드폰을 끼고 뭐 하는 거야?’ 라고 욕을 했겠죠. 그러나 일단 지금은 내가 나서서 노는 장을 만들어주고 이후에 후배들에게 물려줘야겠다고 생각해요. 시작은 내가 해야 하겠지만 끝까지야 가겠어요? 나머지는 후배들이 해줄 거라고 믿는 것이죠.Q: 바투 말고도, 온라인 바둑 사이트 ‘타이젬’의 이사도 맡고 계신데 ‘온라인 바 둑기전’ 등에 대해 한국기원에서는 반대하고 있지 않나요?막을 이유가 없어요. 바둑계에서 온라인이 인기가 있다면 그쪽을 열어줘야지 막을 이유가 없다고 봐요. 축구나 야구는 인터넷으로 직접 공을 차고 던질 수 없지만 바둑은 할 수 있죠. 어쩌면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가 바둑이에요. 바투 게임도 마찬가지죠. 나는 거기에 바둑의 길이 있다고 봐요.Q: 정신을 강조해 가르친 ‘세고에’ 선생이 지금의 조 국수를 보면 뭐라고 할 것 같나요?아마 스승님이 살아 계신다면 죽도록 야단을 맞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때는 세고에 선생님 시대죠. 바둑이 그렇게 항상 그대로 지키는 것이라면, 옛날 기박일 때는 노름이었으니 지금도 노름으로 지키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기박이 예술로 변했는데 이제 다시 스포츠로 변하는 것을 왜 막아야 하죠? 받아들여야지요.Q: 바둑은 육체 운동이 아닌데도 나이가 들면 왜 점점 고수가 되지 않고 약해지나요?바둑은 체력이 가장 중요해요. 내 몸이 건강해야 정신력이 나오죠. 예를 들어 20대에 100m를 10초에 뛰었다면 50대에는 50초에도 못 뛰겠죠. 대국에서는 순간 집중력과 불꽃 같은 정신력이 필요한데 나이가 들어 한 판을 길게 두다 보면 찰나에 딴 생각이 끼어들죠.Q: 불가에서 말하는 마구니 같은 것이로군요?맞아요. 그때 한 점 정도의 실수가 일어나죠. 그러면 그 한 수로 지고 말아요. 결국 바둑은 건강과 체력인데 나이가 들면 별 잡스러운 생각이 많아 어려워요. 하다못해 지금처럼 인터뷰 약속도 있고 가족도 있고 할 일도 자꾸 생기잖아요. 하지만 10

20대는 꿈도 삶도 모두가 바둑이니 이 두 정신상태에서 누가 이기겠어요? 어차피 그 수준에 이르면 실력은 차이가 없는데 말이죠.Q: 바둑에서 정신력이라는 부분이 정말 쉽지 않은 경지로군요.대국을 치르면 거의 무아의 경지에 이르죠. 음악이 시끄럽고 옆에서 쿵쾅거려도 몰두하면 그 소리가 안 들려요.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거죠. 대국에 들어가면 실력이 전부가 아니에요. 기분이 좋을 때와 나쁠 때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요. 아마 모든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은 같을 거예요.Q: 그런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세상 물정을 모두 버려야 하겠는데요?진짜 바둑의 고수는 19줄 반상의 바둑과 술 한잔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죠. 우리 선생님 같은 분인데 결국 세상 물정을 모르기가 쉬워요.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가요?공부를 열심히 해 ‘바둑의 국수’가 아닌 ‘바투의 국수’로 거듭나겠다는 정도로 해두죠.3. 마치며 마지막 한마디가 극적인 대반전이었다.

당대 고수와의 선문답이 바투로 시작해서 바투로 끝났다.

그에게 지금 이 현장은 새로운 시작일까? 아니면 그의 말대로 쇠퇴하는 바둑을 부흥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하심(下心)의 발로일까. 그와 헤어지며 이래저래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박경철 (donodonsu@naver.com), 사진= 권혁재 전문바투는 … 11줄 바둑판을 사용해 반상에 상대보다 더 많은 돌을 놓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돌 한 개를 놓을 때마다 1점씩 얻게 되는데 +5점짜리 자리와 -5점짜리 자리도 있다.

흑이 촘촘하게 놓여져 있을 경우 이 둘레를 백이 둘러싸면 안쪽 흑을 모두 걷어내 돌의 개수만큼 상대의 점수를 깎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세계 1인자로 군림했던 만큼 그의 이름으로 나온 책들은 수십 권에 이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책들은 대개 사활풀이 등 바둑 강좌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에는 아예 바둑돌이 없다.

바둑 외에는 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조9단이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직접 복기한 이야기다.

‘바둑황제’에서 이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조9단을 만나 그의 바둑인생을 복기해 봤다.

이 자리에 서울남부지방법원 박소형 실무관(‘바둑기우회’ 총무)도 함께했다.

 ‘바둑 황제’의 길을 걸어 온 조훈현 9단●○현재 국내에는 3명의 ‘조 국수(國手)’가 있다.

한 분은 한국의 첫 전문기사이자 ‘한국 현대바둑의 개척자’로 불리는 고(故) 조남철 선생이고, 한 분은 ‘바둑계 기부천사’로 통하는 조한승 9단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바둑계에서 일반적으로 ‘조 국수’라고 하면, 이는 조훈현 9단을 일컫는 말이다.

국수란 ‘바둑에서 그 실력이 한 나라에서 으뜸가는 사람’을 뜻하는데, 실력으로나 인품으로나 나이로나 모든 면에서 그 격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조9단이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 최강의 한국바둑’은 조9단에게서 시작됐으며, 조9단에 의해 반석에 올랐다.

그는 30대에 이미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1989년 ‘바둑 올림픽’으로 불리는 제1회 잉창치배에서 우승한 것. 이때 그의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조9단의 잉창치배 우승은 한국바둑의 대전환을 불러온 일대 사건(?)이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바둑은 바둑 종주국 중국과 현대 바둑을 개척한 일본에 밀려 ‘바둑 변방’으로 취급받았다.

한·중·일 3국의 최강자 그룹 16명이 참가하는 잉창치배에 한국에는 달랑 1장의 출전권만 주어졌다.

한마디로 구색 맞추기였다.

그러나 ‘바둑 2류국’에서 혈혈단신으로 출전한 조9단은 승승장구해 결승에 오른 뒤 중국 최강자 녜웨이핑 9단을 3-2로 꺾고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이 승리는 한국바둑이 세계바둑계의 변방에서 중원으로 나아가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김포공항에서 서울 종로까지 카퍼레이드를 할 만한 쾌거였다.

이후 그는 ‘바둑 황제’의 길을 걸어왔다.

 삶의 위기에서 든 펜, 베스트셀러를 내다●○그런 그에게 지지난해 가슴을 쓸어내리는 변고(?)가 생겼다.

2개월 가까이 몹시 아팠다.

병원에서 X레이를 찍어 보니 폐가 새하얗게 나왔다.

의사는 ‘종양(암)이라면 죽은 목숨’이라고 했다.

하지만 단순히 균 때문에 그런 것이면 약으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확진을 기다리는 2주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데 지나온 세월을 반추해 보니 해 놓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이제 시간이 주어진다면 뭔가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암은 아니었다.

서둘러 펜을 들었다.

그리고 2년여 만에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박소형 실무관이 인터뷰가 있기 전날 밤에 쿵쾅거리는 가슴을 도닥이며 단숨에 읽었다는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에 조9단은 ‘세상에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고,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는 자신의 인생철학을 녹여냈다.

바둑은 ‘선택의 순간’이 연이어지는 승부다.

아울러 상대와 함께하되 자기만의 수법을 쌓아야 강해진다.

그렇게 반상에서 체득한 승부 호흡법, 즉 자기만의 생각으로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는 게 조9단의 얘기다.

[조훈현] 분석을 해보면


 ‘이창호’를 키워 더 자랑스러운 바둑 인생●○‘고수의 생각법’은 예스24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들며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면 ‘조 국수’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일까?“내 삶은 두 분 스승에 의해 시작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바둑의 기술’을 가르쳐 주신 후지사와 선생님과 ‘사람의 그릇’을 가르쳐 주신 세고에 선생님이시다.

그분들에게서 정말 큰 사랑을 받았다.

두 분에게서 받은 사랑을 나도 나눠 주고 싶다.

” 조9단의 대답은 명료했다.

어린 시절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가 사제의 연을 맺은 두 스승이었다.

이창호를 내 제자로 받아들인 데에도 두 분의 영향이 없지 않다고 했다.

‘제자’ 이창호에 대해 ‘스승’ 조훈현은 재미난 평가를 내렸다.

현대바둑 최고의 강자로 꼽히는 이창호가 ‘둔재형 천재’라는 것이다.

이창호의 천재성은 일반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창호는 암기를 잘하는 수재가 아니라 창의적 사고가 빛나는 영재라는 얘기다.

그런 제자에게 1인자 자리를 내준 심경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이창호와 같은 식탁에 앉아 내 아내가 차려준 아침밥을 나눠 먹고, 아내가 운전하는 자가용을 함께 타고 나와 피 터지게 대국한 후 한 사람은 승자가 되고 다른 한 사람은 패자가 돼 같이 집으로 돌아간 날이 부지기수다.

물론 내가 진 날이 더 많았다.

그런 날마다 아프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지더라도, 또 타이틀을 빼앗기더라도 제자에게 당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누가 뭐라 해도 이창호는 내 제자니까, 져도 내 이름은 남는 것 아닌가.”그러면서 조9단은 당시 자신보다 더 불편했던 사람은 부인(정미화씨)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이창호가 워낙 말이 없는 데다 자신이 이긴 날에는 무슨 죄인처럼 고개까지 푹 숙이고 있으니, 그런 모습을 보는 정 씨의 마음도 많이 무거웠을 듯하다는 게 조9단의 귀띔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창호가 누구에게도 욕을 먹지 않는 어른으로 크고, 세계를 대표하는 기사가 된 것을 자랑하는 일로 충분히 보상받고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바둑 대중화에 발벗고 나설 터●○조9단은 이번 에세이집 출간 전에도 인터넷 게임인 ‘바투 경기’에 출전하는가 하면 게임 광고에 나오는 등 ‘바둑 국수’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에 대해 조9단은 “아마도 스승님이 그런 모습을 보셨다면 호통을 치셨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며 “바둑의 도와 예도 중요하지만, 사람들과의 어울림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 나름의 철학을 전했다.

그런 점에서 바둑이 최근 처음으로 소년체전에서 정식종목으로 승부를 겨루고, 내년부터 전국체전에도 정식종목으로 출전하게 된 것은 정말 기쁜 일이라고 조9단은 덧붙였다.

 조9단은 현재 아마1단인 박소형 실무관이 아마2단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하자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기력이 늘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특히 정석을 익혀야 한다.

나도 어린 시절 ‘정석 책’을 읽고서 머리가 시원해지는 환희를 느꼈다.

하지만 정석을 익힌 뒤에는 여러 정석을 종합해서 응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상대도 정석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정석대로만 두면 상대를 이길 수 없다.

정석을 익히되 정석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만의 기풍을 만드는 것, 그것이 고수의 생각법이다.

”   ‘바둑 황제’ 조훈현 9단의 생각법은 역시 고수다웠다.

어릴 때 조9단 때문에 바둑을 시작했다는 박소형 실무관은 인터뷰 내내 감동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9단과의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그 여운을 좀체 가라앉히지 못하는 듯 상기돼 있었다.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새로운 도전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는 박 실무관은 서울남부지방법원 바둑동호회 '바둑기우회'를 위한 선물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조9단을 만나기 전 우연히 자리를 함께한 한종진 9단이 서울남부지방법원 바둑동호회를 찾아 ?한 수 지도해 줄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박소형 실무관은 이리저리 소득이 많았던 ‘인생 최고의 날’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글 엄민용· 사진 고인순출처 : 대법원 [법원사람들] 8월호'바둑 전설'로 유명한 조 의원은 지난 8월 4일 자신의 1호 법안으로 바둑진흥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정부의 바둑진흥기본계획 수립·시행, 바둑지도자와 바둑단체 지원, 한국기원 특수법인화 등을 골자로 한다.

'한국바둑의 위기와 기회'를 부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는 100여명의 방청객이 찾았다.

[조훈현] 는 진정 무엇인가.



조 의원은 인사말에서 "바둑은 2000년의 전통 위에, 세계적으로도 한국이 선도적 지위에 있는 희귀한 종목으로 진흥해야 할 만큼 특별한 가치가 있다"며 "토론회를 계기로 한국바둑을 열린마음으로 바로보고 바둑진흥이 논의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반드시 바둑진흥법이 통과하도록 해서 한국 바둑의 위상을 높이고, 한국바둑이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서는 다니엘라 트링스 명지대 교수와 홍맑은샘 일본 관서기원 프로기사가 한국 바둑의 위기 구조를 국제·국내 시각에서 진단했다.

이어 인공지능 전공자인 감동근 아주대 교수와 김용섭 문화체육관광부 체육정책과장 등이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 등장으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한국 바둑을 전망했다.

토론회에는 유창혁 한국기원 사무총장을 비롯한 바둑 관계자와 심재철 국회부의장, 유성엽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오제세 국회기우회 부회장 등 국회의원, 김재원 문체부 체육정책실장, 조영호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등 체육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abbie@yna.co.kr조훈현 의원 개회사심재철 국회 부의장 축사유성엽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축사오제세 국회 기우회 부회장 축사(좌측부터) 사회 양종호, 발제 1 다니엘라트릭스(명지대 예술체육대 교수), 홍맑은샘(일본 관서기원 프로기사, 도쿄 홍도장 대표)토론 1 김진환(명지대 예술체육대 바둑학과 교수)발제 2 감동근(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토론 2 김용섭(문화체육관광부 체육정책과장)발제 3 김용섭(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 스포츠엔터테인먼트법학회 부회장)토론 3 김동훈(국민대 법대 교수)유창혁 한국기원 사무총장신상철 대한바둑협회 회장바둑진흥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한국 바둑의 위기와 기회' 토론회 자료은 첨부된 파일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2/05/0200000000AKR20161205164300007.HTML?input=1195m???, ??? ????? ?? ??? ??(??=????) ??? ?? = ??? ??? 5? ???????? '????? ??? ?? ???'? ?? ???? ??? ??? ???.www.yonhapnews.co.krhttp://www.kukinews.com/news/article.html?no=414108??? ??,?????? ??? ?? '????? ??? ??'??????[????=??? ??] ?? ??????????? ?? ???(????, ????)??? 5?(?) ?? 10? ?? ??? ?????? ?2?...www.kukinews.com 오랫동안 세계 1인자로 군림했던 만큼 그의 이름으로 나온 책들은 수십 권에 이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책들은 대개 사활풀이 등 바둑 강좌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에는 아예 바둑돌이 없다.

바둑 외에는 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조9단이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직접 복기한 이야기다.

‘바둑황제’에서 이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조9단을 만나 그의 바둑인생을 복기해 봤다.

이 자리에 서울남부지방법원 박소형 실무관(‘바둑기우회’ 총무)도 함께했다.

 ‘바둑 황제’의 길을 걸어 온 조훈현 9단●○현재 국내에는 3명의 ‘조 국수(國手)’가 있다.

한 분은 한국의 첫 전문기사이자 ‘한국 현대바둑의 개척자’로 불리는 고(故) 조남철 선생이고, 한 분은 ‘바둑계 기부천사’로 통하는 조한승 9단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바둑계에서 일반적으로 ‘조 국수’라고 하면, 이는 조훈현 9단을 일컫는 말이다.

국수란 ‘바둑에서 그 실력이 한 나라에서 으뜸가는 사람’을 뜻하는데, 실력으로나 인품으로나 나이로나 모든 면에서 그 격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조9단이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 최강의 한국바둑’은 조9단에게서 시작됐으며, 조9단에 의해 반석에 올랐다.

그는 30대에 이미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1989년 ‘바둑 올림픽’으로 불리는 제1회 잉창치배에서 우승한 것. 이때 그의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조9단의 잉창치배 우승은 한국바둑의 대전환을 불러온 일대 사건(?)이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바둑은 바둑 종주국 중국과 현대 바둑을 개척한 일본에 밀려 ‘바둑 변방’으로 취급받았다.

한·중·일 3국의 최강자 그룹 16명이 참가하는 잉창치배에 한국에는 달랑 1장의 출전권만 주어졌다.

한마디로 구색 맞추기였다.

그러나 ‘바둑 2류국’에서 혈혈단신으로 출전한 조9단은 승승장구해 결승에 오른 뒤 중국 최강자 녜웨이핑 9단을 3-2로 꺾고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이 승리는 한국바둑이 세계바둑계의 변방에서 중원으로 나아가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김포공항에서 서울 종로까지 카퍼레이드를 할 만한 쾌거였다.

이후 그는 ‘바둑 황제’의 길을 걸어왔다.

 삶의 위기에서 든 펜, 베스트셀러를 내다●○그런 그에게 지지난해 가슴을 쓸어내리는 변고(?)가 생겼다.

2개월 가까이 몹시 아팠다.

병원에서 X레이를 찍어 보니 폐가 새하얗게 나왔다.

의사는 ‘종양(암)이라면 죽은 목숨’이라고 했다.

하지만 단순히 균 때문에 그런 것이면 약으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확진을 기다리는 2주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데 지나온 세월을 반추해 보니 해 놓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이제 시간이 주어진다면 뭔가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암은 아니었다.

서둘러 펜을 들었다.

그리고 2년여 만에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박소형 실무관이 인터뷰가 있기 전날 밤에 쿵쾅거리는 가슴을 도닥이며 단숨에 읽었다는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에 조9단은 ‘세상에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고,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는 자신의 인생철학을 녹여냈다.

바둑은 ‘선택의 순간’이 연이어지는 승부다.

아울러 상대와 함께하되 자기만의 수법을 쌓아야 강해진다.

그렇게 반상에서 체득한 승부 호흡법, 즉 자기만의 생각으로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는 게 조9단의 얘기다.

 ‘이창호’를 키워 더 자랑스러운 바둑 인생●○‘고수의 생각법’은 예스24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들며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면 ‘조 국수’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일까?“내 삶은 두 분 스승에 의해 시작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바둑의 기술’을 가르쳐 주신 후지사와 선생님과 ‘사람의 그릇’을 가르쳐 주신 세고에 선생님이시다.

그분들에게서 정말 큰 사랑을 받았다.

두 분에게서 받은 사랑을 나도 나눠 주고 싶다.

” 조9단의 대답은 명료했다.

어린 시절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가 사제의 연을 맺은 두 스승이었다.

이창호를 내 제자로 받아들인 데에도 두 분의 영향이 없지 않다고 했다.

‘제자’ 이창호에 대해 ‘스승’ 조훈현은 재미난 평가를 내렸다.

현대바둑 최고의 강자로 꼽히는 이창호가 ‘둔재형 천재’라는 것이다.

이창호의 천재성은 일반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창호는 암기를 잘하는 수재가 아니라 창의적 사고가 빛나는 영재라는 얘기다.

그런 제자에게 1인자 자리를 내준 심경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이창호와 같은 식탁에 앉아 내 아내가 차려준 아침밥을 나눠 먹고, 아내가 운전하는 자가용을 함께 타고 나와 피 터지게 대국한 후 한 사람은 승자가 되고 다른 한 사람은 패자가 돼 같이 집으로 돌아간 날이 부지기수다.

물론 내가 진 날이 더 많았다.

그런 날마다 아프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지더라도, 또 타이틀을 빼앗기더라도 제자에게 당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누가 뭐라 해도 이창호는 내 제자니까, 져도 내 이름은 남는 것 아닌가.”그러면서 조9단은 당시 자신보다 더 불편했던 사람은 부인(정미화씨)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이창호가 워낙 말이 없는 데다 자신이 이긴 날에는 무슨 죄인처럼 고개까지 푹 숙이고 있으니, 그런 모습을 보는 정 씨의 마음도 많이 무거웠을 듯하다는 게 조9단의 귀띔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창호가 누구에게도 욕을 먹지 않는 어른으로 크고, 세계를 대표하는 기사가 된 것을 자랑하는 일로 충분히 보상받고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바둑 대중화에 발벗고 나설 터●○조9단은 이번 에세이집 출간 전에도 인터넷 게임인 ‘바투 경기’에 출전하는가 하면 게임 광고에 나오는 등 ‘바둑 국수’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에 대해 조9단은 “아마도 스승님이 그런 모습을 보셨다면 호통을 치셨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며 “바둑의 도와 예도 중요하지만, 사람들과의 어울림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 나름의 철학을 전했다.

그런 점에서 바둑이 최근 처음으로 소년체전에서 정식종목으로 승부를 겨루고, 내년부터 전국체전에도 정식종목으로 출전하게 된 것은 정말 기쁜 일이라고 조9단은 덧붙였다.

 조9단은 현재 아마1단인 박소형 실무관이 아마2단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하자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기력이 늘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특히 정석을 익혀야 한다.

나도 어린 시절 ‘정석 책’을 읽고서 머리가 시원해지는 환희를 느꼈다.

하지만 정석을 익힌 뒤에는 여러 정석을 종합해서 응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상대도 정석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정석대로만 두면 상대를 이길 수 없다.

정석을 익히되 정석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만의 기풍을 만드는 것, 그것이 고수의 생각법이다.

”   ‘바둑 황제’ 조훈현 9단의 생각법은 역시 고수다웠다.

어릴 때 조9단 때문에 바둑을 시작했다는 박소형 실무관은 인터뷰 내내 감동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9단과의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그 여운을 좀체 가라앉히지 못하는 듯 상기돼 있었다.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새로운 도전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는 박 실무관은 서울남부지방법원 바둑동호회 '바둑기우회'를 위한 선물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조9단을 만나기 전 우연히 자리를 함께한 한종진 9단이 서울남부지방법원 바둑동호회를 찾아 ?한 수 지도해 줄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박소형 실무관은 이리저리 소득이 많았던 ‘인생 최고의 날’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글 엄민용· 사진 고인순출처 : 대법원 [법원사람들] 8월호15. 상세보기바둑을 통해 세상살이를 배우는 기분이었다.

  '역사를 보면 세상을 바꾼 사람들은 믿고 수용한 자들이 아니라 의심하며 질문한 자들이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회를 바라본 자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자들이 세상을 변화시켰다.

변화와 혁명은 바로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생각을 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싸울 힘을 기른 후, 마침내 도전하여 이기는 것이다.

그 출발은 언제나 남과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창의적 사고에서 시작된다.

' 요즘 시대는 인터넷이 조금만 느려도, 카톡 전달 속도가 조금만 더뎌도 그 순간마저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 소식을 검색만 하면 다 알 수 있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에 가입해 팔로우만 해놓으면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남들의 근황을 알 수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테러방지법 제정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이어가고 있는 현재, 어쩌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웃이라는 이유로 국정원을 대신해 수많은 사람들의 정보를 자유롭게 얻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중에는 유명 연예인을 포함해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의 정보도 있을 테고..) 그만큼 이제는 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책을 뒤지거나 선생님이나 전문가에게 물어볼 시간조차 내기가 어려워진 시대가 된 것이다.

혼자 고민해보고 끙끙 앓아보는 시간, 자신의 고민으로 인해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매일 밤 자기 전 하던 망상과 걱정의 시간들도 핸드폰에 빼앗긴 것이다.

그렇게 손가락만 휘휘 넘기면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해주니 이젠 정작 자신이 궁금한 게 무엇인지, 내가 찾아야 할 정보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점점 무지해지는 것이다.

누군가 던져주는 정보를 받아먹는 것에만 익숙해지다 보니 갈수록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 없어지고 자신이 뭘 모르는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바둑 기사들은 유명한 선수들의 기보를 보며 그대로 둬보는 것으로 바둑을 공부한다고 한다.

이 돌을 이 자리에 둔 이유가 뭘까, 이 수가 최선이었을까, 다른 수는 없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함으로써 자신이 경기에 임할 때에 상대방이 예상하기 힘든 창의적인 한 수로 공격하고 방어한다.

따라서 여태껏 이루어진 바둑 경기들 중에 모든 수가 같았던 내용의 경기는 단 한 판도 없다고 한다.

그 좁은 바둑판 위에서의 한 수도 수많은 고민 끝에 두는데, 우리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내가 수를 놓아야 할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어떻게 스스로 내 길을 틀 것인가?  조훈현 9단은 '질문'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그는 창의성의 기본적인 출발점은 바로 '질문'에 있으며, 질문은 문제가 보이면 해결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창의력의 실체는 '풀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에 있다고도 생각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끈질긴 탐구심의 결과이며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 꿈을 실현하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에서의 영토 확장이라고 말한다.

  어떤 방식으로 삶을 대하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갈 것인지 우리는 실컷 헤매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5. 상세보기바둑을 통해 세상살이를 배우는 기분이었다.

  '역사를 보면 세상을 바꾼 사람들은 믿고 수용한 자들이 아니라 의심하며 질문한 자들이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회를 바라본 자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자들이 세상을 변화시켰다.

변화와 혁명은 바로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생각을 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싸울 힘을 기른 후, 마침내 도전하여 이기는 것이다.

그 출발은 언제나 남과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창의적 사고에서 시작된다.

' 요즘 시대는 인터넷이 조금만 느려도, 카톡 전달 속도가 조금만 더뎌도 그 순간마저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 소식을 검색만 하면 다 알 수 있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에 가입해 팔로우만 해놓으면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남들의 근황을 알 수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테러방지법 제정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이어가고 있는 현재, 어쩌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웃이라는 이유로 국정원을 대신해 수많은 사람들의 정보를 자유롭게 얻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중에는 유명 연예인을 포함해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의 정보도 있을 테고..) 그만큼 이제는 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책을 뒤지거나 선생님이나 전문가에게 물어볼 시간조차 내기가 어려워진 시대가 된 것이다.

혼자 고민해보고 끙끙 앓아보는 시간, 자신의 고민으로 인해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매일 밤 자기 전 하던 망상과 걱정의 시간들도 핸드폰에 빼앗긴 것이다.

그렇게 손가락만 휘휘 넘기면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해주니 이젠 정작 자신이 궁금한 게 무엇인지, 내가 찾아야 할 정보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점점 무지해지는 것이다.

누군가 던져주는 정보를 받아먹는 것에만 익숙해지다 보니 갈수록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 없어지고 자신이 뭘 모르는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바둑 기사들은 유명한 선수들의 기보를 보며 그대로 둬보는 것으로 바둑을 공부한다고 한다.

이 돌을 이 자리에 둔 이유가 뭘까, 이 수가 최선이었을까, 다른 수는 없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함으로써 자신이 경기에 임할 때에 상대방이 예상하기 힘든 창의적인 한 수로 공격하고 방어한다.

따라서 여태껏 이루어진 바둑 경기들 중에 모든 수가 같았던 내용의 경기는 단 한 판도 없다고 한다.

그 좁은 바둑판 위에서의 한 수도 수많은 고민 끝에 두는데, 우리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내가 수를 놓아야 할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어떻게 스스로 내 길을 틀 것인가?  조훈현 9단은 '질문'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그는 창의성의 기본적인 출발점은 바로 '질문'에 있으며, 질문은 문제가 보이면 해결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창의력의 실체는 '풀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에 있다고도 생각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끈질긴 탐구심의 결과이며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 꿈을 실현하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에서의 영토 확장이라고 말한다.

  어떤 방식으로 삶을 대하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갈 것인지 우리는 실컷 헤매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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