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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기자



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04실검보다관심갖어야할...140년 패밀리 비즈니스 비결출처http://m.hg-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1605이상호 의고발뉴스를 통해 2012년에 공개된 최순실 일가의 은닉부동산은 3천억 원대가 넘는다.

자금출저에 관해선 설명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보도이후 4년이 지난 지금까지 검찰조사는 물론 여타 언론에 후속보도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이상호 는 개탄했다.

이상호 는 이에 대해 “또한 천문학적 규모의 최씨 일가의 부동산 구입자금 출처와 자금 조성경위 그 과정에 있어서 박근혜의 지시 및 공모관계에 대한 조사도 시급히 이뤄져야만 한다”면서 “그래야만 박근혜를 앞세워서 지난 40년 최씨일가가 빚은 전횡의 먹구름으로부터 억눌린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비로소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이상호 는 그러면서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

1975년 구국선교단으로부터 2015년 미르재단에 이르기까지 40년 세월을 한결같이 박근혜를 앞세워 벌여온 최씨 일가의 패밀리 비즈니스는 이제 국민의 이름으로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상호 인터뷰중2출처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60513100228004.“나 같은 ‘또라이’ 한 명쯤 있어야”이 는 또 ‘삼성 X파일 사건’을 폭로한 로 유명하지만 삼성으로 상징되는 자본권력의 문제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2003년 1월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의 분신자살 사건을 취재하면서부터였다.

이 는 배달호 열사 취재가 삼성 X파일 보도를 위한 자양분이 됐고 우리 시대가 뭐가 잘못됐는지, 정치권력도 중요하지만 자본권력도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인터뷰중최저임금 겨우받고 용역에 뜯겨은퇴후 잘릴가봐 백초반 월급에도버티며 하루하루 버티는 부모님들이 많다이상호 님 메세지는참 소름부동산3000억대전세구하기 힘든 국민들 등지고청와대에서 부동산을 몰아줬네ㅉㅉㅉ억압...그래도 착한 괴물은 있다 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29785이상호 결국 ‘사표’, “‘대통령의 7시간’ 계속 만들 것”2일 MBC로부터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이상호 MBC 가 결국 MBC를 떠난다.

이 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직의사를 밝혔고, 에 이날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는 대법원 해고무효 판결로 복직한 후 정직 6개월의 재징계를 받고 이 기간 중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과 구조 실패 책임을 묻는 다큐멘터리 ‘대통령의 7시간’을 제작했다는 등의 이유로 정직 6개월을 받았다.

MBC는 이 가 다큐멘터리 제작과 인터넷 매체 ‘고발뉴스’에 출연www.mediatoday.co.kr 지금은 서로 트위터로도, 페북으로도 서로 친분을 쌓았고, 무엇보다 잠깐이지만 그가 만든 '고발뉴스'의 '고발 리포터'로서도 활동한 바 있는 저로서, 이상호 의 MBC 사표 제출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놀랄 일이 아니라 해도 분노까지 접을 수는 없습니다.

 민완로서의 탁월함은 둘째치고라도, 무엇보다 는 '집념'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그 사건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면 그 의문을 끝까지 추적할 수 있는 것. 그것은 가 자기 본분을 다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품성입니다.

아마 제가 끝까지 의 길을 가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고 이렇게 공무원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마 제게 부족한 그 품성 때문일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상호 는 제가 늘 부러워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집념에 그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로서의 품성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공감'이었습니다.

어떤 사건에 대해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대부분의 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가 자기의 생산물에 뉴스 수용자의 분노, 아픔 같은 것들을 함께 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비록 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 해도, 그는 그가 취재해 온 뉴스들에 그 공감을 함께 담을 수 있는 사람임을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는 기사로 말을 하고, 그의 기사는 바로 그런 그의 품성을 기사에 다 담아 냈기 때문입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약자에 공감할 수 있는 . 아마 미국 같았으면 풀리처 상을 몇 번이고 탔을 그 가 지금 자기가 몸담았던 조직에 사표를 던지고 나와야 했습니다.

신문사나 방송국은 그 들의 소속을 분명히 해 주는 동시에, 바깥에서의 외풍을 막아주는 바람벽이 돼야 합니다.

내 철없던 소시적에 몸담았던 신문사와 방송국들도, 적어도 제게 그 외풍을 막아주는 일만큼은 철저히 했습니다.

규모가 작았어도 그 조직은 제게 바람벽이 됐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름 취재를 철저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가끔은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로 기사에 빨간 줄이 그어지기도 했었지만, 일면 받아들일 가치나 혹은 명분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속사 에 대해 '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을 해 왔다는 이유로, 그리고 속내로는 더러운 정치와 힘의 논리에 휘둘려 그 소속 중 가장 실제로 능력있는 사람을 실질적으로는 해고해 버린(형식은 사표라고 하지만) MBC. 스스로 언론사임을 포기한 이 회사의 지금 위상은 시청률 하나로도 금방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런 언론사가 아직도 정권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지금 한국의 실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5.18때 광주 MBC는 불타버렸습니다.

민중이 왜곡보도와 편파보도에 분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각 지방이 독자적인 채산 운영을 하고 있는 MBC의 광주 방송국은 지금은 그 지역에서 나름 신뢰받고, 가장 공정한 방송국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민중의 분노를 직접 겪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정치적 이익 논리 때문에 소속 를 탄압한 MBC. 언론사로 불리우기도 창피해야 마땅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이상호 를 응원하고, 그를 위해 작지만 손바닥 하나 더 펴서 바람을 막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내 마음의 촛불을 늘 그를 위해 들 것입니다.

그같은 들이 더 많아져야 한국의 이 비정상적인, 언론도 아닌 언론들이 언론의 원래 본령으로 돌아갈 수 있을테니. 이상호 님, 늘 응원하고 사랑합니다.

힘내세요. 일곱 시간의 비밀, 반드시 밝혀질 것으로 믿습니다.

 시애틀에서... ..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 시절에는 아직 학생회장이란게 학도호국단으로 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 대대장, 연대장, 그리고 대대참모와 연대참모... 이런 구도로 되어있었다.

상호는 강서고등학교 대대장이었고, 나는 우리학교 선거에서 떨어졌고, 그냥 대대참모... 그 시절에는 지금은 소설가인 김영하라는, 나중에 단짝이 되었던 친구는 잠실고등학교 대대장이었다.

.. 전두환 시절, 그렇게 전부 군대 직책을 하나씩 가지고 서로 만났다.

..  너무 오래된 기억이지만, 예전 강서구와 영등포구와 구로구의 학생들은 문곡출신과 비문곡 출신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문곡에 갔다가 너무 이상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2주 나가고 그만두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보니 문곡 출신과 비문곡 출신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 문곡은 그 당시 영등포 도서관에서 운영하던 문학서클 같은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주위 사람들이 전부 문곡출신들이었다.

..  백일장에 나가면 결국은 문곡 출신과 비문곡 출신으로 나누어지고, 어쨌든 그렇게 모여서 놀 때 지금은 인 이상호도 역시 그렇게 모여 놓았던 친구 중의 한 명이다.

..  상호를 다시 만난 건 대학교 2학년 때였는데, 상호는 재수를 하고 경영학과에 들어왔다.

.. 실제로 같이 술을 마시고 논 건 기억을 뒤져보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 늘 시위나 농성할 때 만났다.

.. 영자신문사에 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유학을 가기 전에 마지막 만난게 농성 중에 동주 시비 앞에서 놀았다.

..  그리고 작년인가, 노무현 탄핵 때 촛불시위에 나는 초록정치 피케팅을 들고 나섰고, 그 앞에서 만났다.

.. 늘 그렇게 시위할 때 문득문득 만나고, 뉴타운 싸움할 때 약간의 도움을 받았다.

.. 난 아직 재판에 걸려있다.

[이상호기자] 알아보자


..  자본과 권력이라는 익숙한 주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기업에 대하여 지나친 환상과 지나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어차피 기업은 선거 때마다 돈을 주었었고, 끝에 몰린 후보들은 언제나 돈을 받았다.

.. 기본에 해당하는 것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나라인데, 이 이상한 고리는 차라리 대선 후보들에게는 좀 낫다.

지역... 군수와 군수 언저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더욱 이상하다.

 사실 궁금한 건... 삼성 에버랜드가 지방에서 벌이는 사업과 실질적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연계고리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는 정말 궁금하다.

도청 테이프 같은 건 준다고 해도 듣고 싶지도 않지만, 삼성 에버랜드와 지방과 건설사의 관계 그리고 기업도시 만든다고 했을 때 여당과 지역 사이의 관계 그런 건 정말 궁금하다.

.. ..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 시절에는 아직 학생회장이란게 학도호국단으로 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 대대장, 연대장, 그리고 대대참모와 연대참모... 이런 구도로 되어있었다.

상호는 강서고등학교 대대장이었고, 나는 우리학교 선거에서 떨어졌고, 그냥 대대참모... 그 시절에는 지금은 소설가인 김영하라는, 나중에 단짝이 되었던 친구는 잠실고등학교 대대장이었다.

.. 전두환 시절, 그렇게 전부 군대 직책을 하나씩 가지고 서로 만났다.

..  너무 오래된 기억이지만, 예전 강서구와 영등포구와 구로구의 학생들은 문곡출신과 비문곡 출신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문곡에 갔다가 너무 이상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2주 나가고 그만두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보니 문곡 출신과 비문곡 출신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 문곡은 그 당시 영등포 도서관에서 운영하던 문학서클 같은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주위 사람들이 전부 문곡출신들이었다.

..  백일장에 나가면 결국은 문곡 출신과 비문곡 출신으로 나누어지고, 어쨌든 그렇게 모여서 놀 때 지금은 인 이상호도 역시 그렇게 모여 놓았던 친구 중의 한 명이다.

..  상호를 다시 만난 건 대학교 2학년 때였는데, 상호는 재수를 하고 경영학과에 들어왔다.

.. 실제로 같이 술을 마시고 논 건 기억을 뒤져보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 늘 시위나 농성할 때 만났다.

.. 영자신문사에 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유학을 가기 전에 마지막 만난게 농성 중에 동주 시비 앞에서 놀았다.

..  그리고 작년인가, 노무현 탄핵 때 촛불시위에 나는 초록정치 피케팅을 들고 나섰고, 그 앞에서 만났다.

.. 늘 그렇게 시위할 때 문득문득 만나고, 뉴타운 싸움할 때 약간의 도움을 받았다.

.. 난 아직 재판에 걸려있다.

..  자본과 권력이라는 익숙한 주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기업에 대하여 지나친 환상과 지나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어차피 기업은 선거 때마다 돈을 주었었고, 끝에 몰린 후보들은 언제나 돈을 받았다.

.. 기본에 해당하는 것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나라인데, 이 이상한 고리는 차라리 대선 후보들에게는 좀 낫다.

지역... 군수와 군수 언저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더욱 이상하다.

 사실 궁금한 건... 삼성 에버랜드가 지방에서 벌이는 사업과 실질적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연계고리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는 정말 궁금하다.

[이상호기자] 하지만 현실은



도청 테이프 같은 건 준다고 해도 듣고 싶지도 않지만, 삼성 에버랜드와 지방과 건설사의 관계 그리고 기업도시 만든다고 했을 때 여당과 지역 사이의 관계 그런 건 정말 궁금하다.

.. 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29785이상호 결국 ‘사표’, “‘대통령의 7시간’ 계속 만들 것”2일 MBC로부터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이상호 MBC 가 결국 MBC를 떠난다.

이 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직의사를 밝혔고, 에 이날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는 대법원 해고무효 판결로 복직한 후 정직 6개월의 재징계를 받고 이 기간 중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과 구조 실패 책임을 묻는 다큐멘터리 ‘대통령의 7시간’을 제작했다는 등의 이유로 정직 6개월을 받았다.

MBC는 이 가 다큐멘터리 제작과 인터넷 매체 ‘고발뉴스’에 출연www.mediatoday.co.kr 지금은 서로 트위터로도, 페북으로도 서로 친분을 쌓았고, 무엇보다 잠깐이지만 그가 만든 '고발뉴스'의 '고발 리포터'로서도 활동한 바 있는 저로서, 이상호 의 MBC 사표 제출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놀랄 일이 아니라 해도 분노까지 접을 수는 없습니다.

 민완로서의 탁월함은 둘째치고라도, 무엇보다 는 '집념'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그 사건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면 그 의문을 끝까지 추적할 수 있는 것. 그것은 가 자기 본분을 다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품성입니다.

아마 제가 끝까지 의 길을 가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고 이렇게 공무원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마 제게 부족한 그 품성 때문일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상호 는 제가 늘 부러워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집념에 그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로서의 품성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공감'이었습니다.

어떤 사건에 대해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대부분의 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가 자기의 생산물에 뉴스 수용자의 분노, 아픔 같은 것들을 함께 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비록 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 해도, 그는 그가 취재해 온 뉴스들에 그 공감을 함께 담을 수 있는 사람임을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는 기사로 말을 하고, 그의 기사는 바로 그런 그의 품성을 기사에 다 담아 냈기 때문입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약자에 공감할 수 있는 . 아마 미국 같았으면 풀리처 상을 몇 번이고 탔을 그 가 지금 자기가 몸담았던 조직에 사표를 던지고 나와야 했습니다.

신문사나 방송국은 그 들의 소속을 분명히 해 주는 동시에, 바깥에서의 외풍을 막아주는 바람벽이 돼야 합니다.

내 철없던 소시적에 몸담았던 신문사와 방송국들도, 적어도 제게 그 외풍을 막아주는 일만큼은 철저히 했습니다.

규모가 작았어도 그 조직은 제게 바람벽이 됐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름 취재를 철저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가끔은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로 기사에 빨간 줄이 그어지기도 했었지만, 일면 받아들일 가치나 혹은 명분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속사 에 대해 '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을 해 왔다는 이유로, 그리고 속내로는 더러운 정치와 힘의 논리에 휘둘려 그 소속 중 가장 실제로 능력있는 사람을 실질적으로는 해고해 버린(형식은 사표라고 하지만) MBC. 스스로 언론사임을 포기한 이 회사의 지금 위상은 시청률 하나로도 금방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런 언론사가 아직도 정권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지금 한국의 실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5.18때 광주 MBC는 불타버렸습니다.

민중이 왜곡보도와 편파보도에 분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각 지방이 독자적인 채산 운영을 하고 있는 MBC의 광주 방송국은 지금은 그 지역에서 나름 신뢰받고, 가장 공정한 방송국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민중의 분노를 직접 겪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정치적 이익 논리 때문에 소속 를 탄압한 MBC. 언론사로 불리우기도 창피해야 마땅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이상호 를 응원하고, 그를 위해 작지만 손바닥 하나 더 펴서 바람을 막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내 마음의 촛불을 늘 그를 위해 들 것입니다.

그같은 들이 더 많아져야 한국의 이 비정상적인, 언론도 아닌 언론들이 언론의 원래 본령으로 돌아갈 수 있을테니. 이상호 님, 늘 응원하고 사랑합니다.

힘내세요. 일곱 시간의 비밀, 반드시 밝혀질 것으로 믿습니다.

 시애틀에서... ( http://www.ustream.tv/recorded/47925375 )  이 영상에서 이상호 는 선박 전문가와 오하마나호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 침몰 원인이 급격한 변침이 아닐 수도 있다는 내용을 보도하며 일부 생존자들의 '폭발음' 증언과 생존자들 영상에 찍혀있는 '이상한 가스 냄새'를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문제가 되었던 구원파 출신 해경 정보국장 이야기를 하며 그가 예전 한국화약 연구소 출신으로 폭발물 전문가였다라는 청해진 관계자의 증언을 토대로 세월호 구조 당시 하얀색 마스크를 쓰고 주황색 점프슈트를 입은 의문의 한 남자를 지목했습니다.

이 남성은 조타실 구조 직전 세월호 좌현 중간에서 고무보트에 의해 구조되었고 이후 팽목항에서 선장과 함께 영상에 잡히기도 했습니다만 이상호 는 폭발물이나 화학물 처리 인력들이 주로 주황색 점프슈트를 입는다는 것을 근거로, 또 승선인 명단에도 없는 인물이라고 주장하며 의혹을 키웠습니다.

             약 9시 35분경에 세월호 현장에 도착한 해경 123정은 9시 38분 30초경 고무보트(단정)를 내려 최초로 세월호 구조활동을 시작합니다.

첫번째 구조에서 총 다섯명의 3

4층 생존자들(승무원들로 추정)을 구해 123정에 태우고 9시 41분 물에 빠진 생존자 한 명을 고무보트에 태운 채 4층 생존자 세명(부부 한쌍과 아이 한명)을 구하는 순간 3층 갑판 후미쪽에 흰색 마스크를 쓴 남성이 보입니다.

(아래 사진 주황색 원)  해경이 제공한 영상은 잠시 후 흰색 마스크를 쓴 남자가 구조된 장면으로 점프하는데 해경 고무보트에는 앞서 4층의 세명과 물에 빠졌던 한명, 그리고 주황색 옷을 입고 흰색 마스크를 썼으며 검정 비니를 쓴 남자가 함께 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구조에서도 다섯명 태움)    해경 123정에서 채증하여 공개한 영상의 9시 42분경 흰색 마스크를 쓴 의문의 남자가 구조되어 123정으로 다가오고 있는 모습입니다.

   해경 세명을 제외하면 보트 앞 쪽에 물에 빠졌다 구조된 승무원으로 보이는 생존자 한명과 보트 뒷 쪽에 남성과 여성(부부), 그리고 남성의 품에 안겨있는 아이 한명이 구조되는 장면입니다.

(파란 원) 보트 앞 쪽에 검정색 비니와 흰색 마스크를 쓴 주황색 의상의 남자가 보입니다.

(주황색 원) 이 남자는 다른 탈출 승무원들처럼 면장갑을 끼고 있었습니다.

저 때 탈출한 부부와 아이(아빠를 찾으러 나왔다가 저 부부에 의해 구조)의 이야기는 이후 기사화 된 적이 있습니다.

( 기사 보기 - 클릭 )       해경 공개 영상에는 없었지만 의문의 남성이 123정에 가장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모습(파란 박스)이 사진으로 공개된 모습입니다.

배에는 이미 올라온 다른 생존자(빨간 박스)의 모습도 보입니다.

일부 네티즌들이 주장하는 '해경이 주황색 의상의 남성 한 명만 먼저, 그리고 따로 구조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닙니다.

   ?   의문의 주황색 복장의 남성이 123정에 마지막으로 올라 탄 후 123정 선내로 들어서는 모습이 찍힌 장면입니다.

      조타실 승무원들까지 모두 구조한 후, 9시 57분 123정의 생존자들이 진도 707 행정선으로 옮겨 타는 장면입니다.

이 순간에도 주황색 복장에 하얀 마스크, 검정 비니를 쓴 의문의 남자가 촬영되었습니다.

           오전 11시 5분 팽목항에 처음 도착한 수송선에서 선장과 선원 및 다른 생존자들이 내리고 있는 장면에서 주황색 복장의 남성이 또 촬영되었습니다.

저 주황색 복장은 점프수트 형태의 방염복으로 상하의 일체형 작업복입니다.

보통의 일반인들은 잘 입지 않는 작업복으로 추정됩니다.

이 남성은 다리를 다쳐 먼저 내려진 생존자를 제외하면 육지에 발을 디딘 제일 첫번째 생존자였습니다.

       이준석 선장이 배에서 내리는 장면에서 이 남성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는데 비니와 마스크로 인해 눈과 눈썹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주황색 의상의 상의 포켓 부분에 청해진 해운 마크나 여타 소속 패치가 붙어 있지 않습니다.

캡쳐한 사진과는 다른 영상입니다만 직접 유튜브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ZEDcEGTgA5U#t=20 )       이준석 선장이 의료진에게 일반인 행세를 하며 가료를 받기 시작할 무렵(빨간 원) 이미 의료진이 마련한 의자에 앉아 상담을 받고 있는 마스크맨이 포착되었습니다.

(주황색 박스)   심지어 여러 방송에서 이 의문의 남성이 마스크를 벗고 의사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촬영된 실제 얼굴을 확인해 보면 눈 밑의 눈두덩이나 주름을 고려해 볼 때 약 50대 중후반 정도의 나이로 추정되는 남성이었습니다.

(얼굴은 임의로 흐리게 처리하였습니다.

)     의료진이 모포를 덮어 준 후 옆으로 이준석 선장이 지나가는 장면에서 마스크를 벗고 의료진에게 입에 대해 뭔가를 설명하는 의문의 남성이 보입니다.

캡쳐한 사진과는 다른 영상이지만 직접 유튜브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2초경 https://www.youtube.com/watch?v=LEmiH_dKzc4#t=12 )       다른 방송 영상에서 확인해 본 결과 함께 123정으로 구조되었던 파란색 점프수트 작업복을 입은 승무원이 의사와 주황색 작업복의 남성을 번갈아 바라보며 뭔가를 이야기 하는게 촬영되었습니다.

(핑크색 박스) 저 파란색 점프수트의 승무원은 9시 38분 해경 123정 고무보트로 제일 처음 구조된 생존자들 중 한 명으로 당시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상태로 구조되었습니다.

의료진에 의해 가려져 있지만 주황색 박스로 표시된 곳에 마스크를 들고 있는 손과 주황색 바지가 선명히 보입니다.

이 장면에서 의료진 두명이 주황색 작업복의 남성에게 '입술'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병원에 가야한다'고 말하는 음성이 뚜렷이 들렸습니다.

         이 의문의 남성은 홀로 3층 갑판으로 탈출했다가 다른 승객들이 구조될 당시 3층 갑판에서 고무보트로 구조되었으며 당시 마스크와 비니 착용 그리고 심상치 않은 주황색 점프수트 작업복을 입고 있었기에 이상호 로부터 폭발물이나 화학물과 관련된 인물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보도되었습니다.

그 근거로 해외 폭발물이나 화학물 처리 인력들이 주황색 복장을 하고 작업 중인 사진을 제시했지만 국내의 경우엔 폭발물이나 화학물 처리 인력의 복장은 주황색이 아닌 경우가 더 많습니다.

        위 사진에서 처럼 대형 선박의 기관실에서는 종종 기관사들이 주황색 점프수트(화재에 강한 방염복)를 입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다 사진의 기관사도 면장갑을 끼고 있습니다.

위 세월호에서 탈출한 의문의 남자도 주황색 점프수트 작업복에 면장갑을 끼고 있었으므로 기관실 승무원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또한 다른 구조 장면에서 생존한 승무원들을 보면 대부분 면장갑을 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간의 의구심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 의문의 남성은 왜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지, 작업복에 청해진 해운 패치가 붙어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작업복이 너무 깨끗하고 새 것 같았다는 점이 궁금합니다만 그렇다고 저 복장 하나로 '폭발이나 화학'관련 인물로 추측하기에는 근거가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몰래 승선했던 '폭발이나 화학'에 관련된 인물이었다면 저렇게 눈에 띄는 복장을 하고 탈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 모로 봐도 저 남성은 기관실 승무원으로 추정되므로, 세월호 승무원이 직접 폭발이나 화학 사건을 일으켰다면 모를까, 의문의 외부 인물이 세월호 내에서 폭발을 일으켰다거나 하는 의혹에 대해선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 오렌지맨의 정체가 사고 당일 입사한 56세 조기장 전영준씨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 http://blog.daum.net/back08250/48 )       본 포스팅은 아래 '오렌지맨 의혹글'에 대한 주관적 의견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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