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손석희 유시민



com/Sunny_Im???? Sunny?????? ???? (@Sunny_Im) ?mobile.twitter.com B5 3.5장. 원고지 28매. 2007년 10월 26일 작성.------------------------------------------------------------------------------------------ 말(語)이 문제다.

말(인터넷 댓글)에 상처를 받아 사람들이 자살하고, 말(연설, 토론)을 잘해 대통령이 되기도 하고, 존경받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또한, 말을 잘못해 왕따가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예나 지금이나 말은 사람의 지위와 존재여부까지 결정짓는 결정적 인자가 되기도 한다.

미디어의 확산에 따른, 디지털 다중multitude들의 출현으로 대한민국은 온통 말로 가득 찬 언어공화국이 되었다.

잡설과 이론과 신의 계시가 난무하는 언어공화국 내에서 소수가 독점하고 있던 로고스는 이제 대중의 심판대 위에 서게 되었다.

 남북 대치선으로 갈라진 이 반쪽짜리 언어공화국에서 언어기계(료타르)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세 인물이 있다.

온종일 입에 침이 마르지 않는 ‘거침없는 파이터’ 진중권과 ‘냉철한 심판자’ 손석희, ‘싸가지 없는 독설가’ 유시민이 그들이다.

그들의 레토릭은 에둘러치는 완곡어법과 거리가 멀고 상대에 대해 직격탄을 날림으로써 담화를 지켜보고 있는 구경꾼들의 체증을 속 시원히 해소해준다.

이러한 배설효과는 모종의 쾌락을 동반하는 것이어서 대중들의 그들의 언어를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로고스를 부여받은 언어기계들은 이 세 개의 언어체계를 비틀고 자르고 이내 붙이고 꼬았다가 다시 용접하여, 언어에 대한 언어(메타언어)를 설하기 시작했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권리를 포기할 수 없어, 나 역시 그들의 언어(정확히 말하자면 레토릭)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기로 생각했다.

(생략한 단락들) ------------------------------------------------------------------------------------------토론을 내 페이스로 만든다.

조롱과 야유, 아이러니로 무장한 거침없는 파이터_진중권 온종일 입에 침이 마르지 않는 거침없는 파이터, 진중권.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지극히 수사학적이다.

말 그대로 진중권의 표현에만 머물러, 말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야말로 표면 위를 배회하는 인상비평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진중권의 레토릭 자체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최적화된 것으로, 마치 헐리우드 영화처럼 호흡이 짧고 빠르게 진행되어서, 대중들은 그의 언어에 대해 호흡을 가다듬고 살펴볼 겨를을 갖지 못한다.

이런 연유로 대중들은 그 때 그 때의 인상에 머물러 그의 레토릭을 비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논쟁에서 잔인한 미소를 머금고 승리를 하게 되는데, 그가 자신만만하게 승리하고 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를 대하자마자 그의 언어는 상대를 내던지기 위한 최적의 상태로 세팅된다.

상대를 꺼꾸러뜨리기 위해 그는 조롱하고, 비난하며, 특유의 아이러니를 구사한다.

그의 아이러니에 감정적 흥분을 하든지, 그가 상대를 꺾기 위해 동원하는 자잘한 수사에 매달려 비판을 시도한다든지 하면, 상대는 벌써부터 진중권의 페이스에 말려든 것이다.

진중권은 그야말로 아이러니의 귀재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의 아이러니는 상대의 논리에서 이중성을 발견했을 때 빛을 발한다.

최근 ‘100분 토론’(8월10일 방영)에서 실시된 ‘D-WAR’ 논쟁에서 그는 상대 패널로 출연한 문화평론가 하재근 씨의 애국주의 발언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방식의 말 비틀기를 구사하고 있지만, 그의 발화에서 단연 눈에 띠는 것은 비유다.

당시 토론에서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한국 평론가들은 어느 정도 자국 영화에 대해 관대하게 비평해야 한다"며 애국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디워에 대해 쏟아지는 사람들의 관심과 에너지가 한국영화 전반에 흐르게끔 지성인들이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진중권은 "영화를 축구로, 평론을 응원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고 반박해 하재근의 입문을 막았다.

다시 그의 언어를 따라가 보자. “플롯이 없는 영화는 대마를 잡힌 바둑이고, 심감독의 CG는 상아로 만든 바둑알이다.

” ‘디워’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극작술 이론에 비추어 봤을 때, 플롯의 기초가 없는 영화라고 지적한 뒤, 비유를 통해 자신의 주장에 쐐기를 박는 대목이다.

청자들은 비유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진중권의 말을 쉽게 이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진중권은 상대에게 서서히 쨉을 날리는 일이 결코 없다.

오히려 그는 상대의 언어 체계에서 틈새를 엿보다가, 상대가 논리의 이중성 내지는 자기모순을 드러낼 때 어퍼컷으로 때리고 연신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방식을 취한다.

상대가 쓰러질 기미가 보이면, 그는 논의의 종지부를 찍듯 쉬운 비유를 통해 청중의 동의를 이끌어낸다.

자기 논리에 대한 철옹성 같은 방어보다도, 상대의 논리에 대한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자기 논리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방식.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가 되는 그러한 수사에 현란한 비유를 곁들여 청중의 동의를 구하는 방식. 진중권의 레토릭을 이러한 큰 틀에서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팩트’의 가면을 쓴 냉정한 심판자_손석희 손석희는 냉정한 시선과 내리 꽂는 직설적 화법으로 ‘냉철한 심판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의 화법은 에둘러치는 완곡어법과 거리가 멀고 상대에 대해 직격탄을 날림으로써 담화를 지켜보고 있는 구경꾼들의 체증을 속 시원히 해소해준다.

이러한 배설효과는 모종의 쾌락을 동반하는 것이어서 대중들은 그의 언어를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그가 논쟁에 주체적으로 참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는 항상 사회자 혹은 인터뷰어로서의 자리에서만 말(語)을 說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에게서 논쟁적 이미지를 지울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손석희는 항상 상대에게 무심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진다.

마치 언론은 중립이라는 듯이. 그런데 문제는 그 질문에 있다.

질문 자체가 굉장히 세세한 팩트로 무장되어 있다는 것. 브리짓 바르도와의 ‘개고기 논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때로는 매우 단순한 사실들과 ‘문화 상대주의’라는 테마 하나만을 가지고도 대화를 이끌고 있다(손석희의 시선집중, 2001년 12월 3일). 손석희의 이어지는 반문에 스스로 문화상대주의를 저버린 브리짓 바르도는 논거로 제시되는 사실까지 부인하며 대화를 중단시켰다.

 손석희 : “그럼 새로운 사실을 말씀드리죠. 제가 아는 프랑스인은 한국에 와서 개고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 BB : “(매우 화난 목소리로)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프랑스인, 독일인, 미국인들은 절대로 개고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개고기인줄 몰랐다면 가능한 일이겠죠. 하지만 그것이 개고기인 줄 알았다면 결코 그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

” 대답이 궁색해진 바르도는 결국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만다.

또 손석희는 산업폐기물을 재활용한 시멘트가 무해하다고 주장하는 환경부 관계자의 “중금속은 녹아서 인체에 들어가야 유해하다”는 말에 “고형 상태의 시멘트도 물에 넣었을 때 금붕어가 죽었다”는 세세한 팩트를 가지고 상대한다.

상대는 당연히 말문을 닫게 된다.

결국 손석희는 상대가 납득 가능한 설명을 할 때까지 중립을 가장한 가면을 쓴 채 냉정한 표정으로 연신 질문을 쏟아낸다.

이 질문들은 세세한 팩트로 구성되어 있어, 작은 사실 하나에도 대답하지 못한 상대는 마치 논쟁에서 KO를 당한 것처럼 나가떨어지는 것이다.

이 때 인터뷰나 토론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살짝 벗겨진 가면 뒤로 보이는 손석희의 의도를 파악이라도 한 듯,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모종의 카타르시스는 손석희의 반어적 질문이 특정 기득 세력에 대해 성공했을 때 한층 강화된다.

그는 상대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상대의 언어가 얼마나 형식-논리적이고, 팩트를 통해 현실에 부합하는지만 검증하는 것이다.

그러한 끈질긴 검증을 통해 논쟁 아닌 논쟁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또 하나의 기술. 상대의 언어를 공격할 수 있는 팩트를 최대한 준비하라.‘싸가지’ 없는 독설가, 유시민 ‘거침없는 독설가’로 불리는 유시민 역시 이해하기 쉬운 직설적 화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싸가지 없는’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뒤따라 다닌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싸가지 없게’ 만드는 것일까. 입바른 소리도 우회를 통해 들리면 상대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 소리가 단칼에 자신의 폐부를 향해 돌진해올 때면 논리의 적확성을 떠나, 무조건 부인하려고 드는 게 우리가 가진 구술문화의 한 특징이 아닐까. 이는 표현의 방식과 표현의 논리를 구별하지 못하고, 이성의 논리와 감성의 논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 땅의 얕은 토론문화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앞서 살펴본 두 명의 달변가와 마찬가지로 유시민은 철저히 이성에 입각해 논쟁을 이끌어나간다.

지난 9월 11일에 진행된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자 정책토론’에서 계산된 숫자를 동원해가며 ‘전문성’과 ‘해박함’을 자랑하려던 정동영에게 유시민이 어떻게 한 방을 먹이고 있는지 살펴보자.  정동영: “기업이 신규채용을 하면 한 사람을 채용할 때마다 5백만원씩 법인세를 감면해주겠다.

(...) 그러면 1년에 10만명의 고용효과가 있을 것 (...) 세수로 3백만원 정도가 들어오기 때문에 정부는 2천억원 정도를 부담하면 고용을 증대할 수 있다”유시민 : “정 후보는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면서 ‘중통령’이란 말을 하는데 (...) (그 정책의 추진 기간을) 몇 년 정도나 예상하나”정동영 : “4년 정도...”유시민 : “좋은 취지인데 내가 보기에는 경제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세액감면은 법인세를 내는 기업에 해당되는데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의 법인세를 내는 기업이면 상장기업이어야 하고 법인이어야 한다.

수익을 못내는 기업은 법인세를 낼 게 없다.

돈 많이 버는 기업에 돈을 주겠다는 것 아니냐?” 유시민은 정동영 스스로의 논리에 입각해 ‘정동영=중통령’이라는 도식을 설정한 뒤, 정동영 스스로가 어떻게 자기모순에 빠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상대의 논리가 지니는 이중성을 드러내는데 많은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세액감면→법인세→상장기업→돈 많이 버는 기업→(대기업)’이라는 내포관계에 따라 한 마디 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관계의 사슬은 이미 정동영의 말에 함축되어 있다.

유시민은 그의 말 속에서 보이지 않는 논리의 사슬을 표면화시켰을 뿐이다.

말문이 막힌 정동영이 “말씀과 함께 질문을 하겠다”고 말하자, 유시민은 “아니요, 내 질문이니까 1분간 답변하라”며 현재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은 반칙”이라고 쐐기를 박는다.

말의 논리를 떠나 토론의 외적인 상황(유시민이 질문하는 시간이라는)까지도 끌어들일 줄 아는 그가 논쟁에서 지기는 쉽지 않다.

한 치의 양보도 보일 줄 모르는 그의 저돌적인 논쟁태도 때문인지 그는 어느새 ‘싸가지 없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그깟 체면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상대의 언어가 지니고 있는 자기모순을 상대의 언어로써 드러내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언어외적인 상황을 잘 활용하는 것. 논쟁에서 이기는 또 하나의 기술이다.

Jtbc개표방송 손석희유시민전원책진행예정투표하고 왔습니다두장 꾹꾹 눌러 투표후 투표함에 넣었지요투표 인증샷?!지난주 썰전을 보는데썰전의 두 진행자 유시민 전원책 이 Jtbc개표방송 진행을 맡는다고 했거든요꼭 본방사수 할예정이랍니다이럴땐 집에 티비가 없는게 좀 불편하네요ㅜㅜ(핸드폰 옥수수 어플로 볼예정이지요)썰전 보며 빵빵 터지는 1인으로서개표방송이 기대되는건 난생처음인듯 ㅋ..- 60대 입니다.

.-전원책 변호사와 1살차이나는....ㅋjtbc 개표방송....은근 잼나네요...ㅎ..우리나라에도 토론문화가 자리잡으려 한 때가 있었다.

손석희가 100분 토론을 진행하던 때였다.

 손석희가 진행하던 때의 100분 토론은 배울것도 많았고 재미도 있었다.

내 생각을 저런식으로 논리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구나.?내 생각도 맞지만 저런 의견도 있을수가 있겠구나.서로간의 이견이 있을 때는 저런 식으로 풀어나가야 하는구나.토론을 위해서는 더 많은 독서를 하고 스스로 리서치를 해야 하는구나.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목소리만 높이는 사람은 논리가 부족하구나.학생으로써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에 토론 문화가 자리잡으려는 시점에 큰 역할을 한...?당시 100분 토론의 영상을 한 번 보고 싶다면 아래 영상을 보면 좋다.

2004년 100분 토론 200회 특집 토론이다.

이제는 작가 유시민과 최근 댓통령에게 미움받고 있는 유승민 등이 출연한 토론이다.

잘 모르는 학생들과 시민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토론이다.

.아니 이었다.

[손석희 유시민] 란 무엇인가?


더이상 이런 토론을 볼 수가 없게 되었으니... ? 그 중심에는 손석희가 있었지만...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손석희는 잘리고 100분 토론도 사람들에게 있어 볼 수 없는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이 때 이후로 한국의 토론문화는 사라졌다.

100분 토론에서 손석희가 빠진 후TV토론에서는 더 이상 토론이 벌어지지 않았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을 할 줄 아는 진짜 논객이라는 사람들은 부르지 않고목소리를 높이며 허위사실과 비논리적 레토릭과 인신공격만을 일삼는 사람들이 논객이라는 이름으로 패널로 출연했다.

그리고 사회자들은 이런 행동들에 제지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토론문화가 없던 시절의 고대 명언이 다시 한국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그리고 어제 JTBC의 밤샘토론이라는 토론 프로그램에 오랜만에 유시민이 나왔다.

'노유진의 정치카페'라는 팟캐스트에서 항상 유시민의 논리력과 분석력에 감탄하고는 하고 있는데역시나 어제도 유시민의 위엄을 보여줬다.

억지로라도 토론이라는 형태로 끌고 가려는 그의 힘을...어제밤 많은 이들이 오랜만에 본 토론 논객 유시민에 감동되었는지아침부터 내내 다시보기를 기다렸고,JTBC에 다시보기가 업로드 된 이후에도 하루 내내 버퍼링에 걸릴 정도로 많은 이들이 시청하는 듯 하다.

오늘밤 잠이 안 오는 이들은 꼭 한 번 감상해보기를..(물론 상대편 패널들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인데,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 좌편향, 빨갱이, 공산주의, 전교조, 통진당 등등)[JTBC] ???? 36?"??? ???? ?? ????"??? ???? ??? ?? ????? ???????? ?? ? ???, ?? ???..home.jtbc.joins.com위 링크를 클릭하면 무료 다시보기가 가능하다.

유시민의 어제 마지막 발언이다.

체제 전쟁이 끝난지 벌써 수십년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걸 인정하지 않은채로 북한의 정치체제와 교육체제를 따라하려는 이들이 있다.

누가 종북일까?어제 유시민의 모습을 보니 정말 많이 유해졌다.

27살의 그는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1985년 군사독재의 판사들이 그에게 실형을 내릴 때도 눈 하나 깜짝 않으면서 이렇게 외쳤다.

전대가리의 개들아 백년만년 잘 처먹고 살아라  B5 3.5장. 원고지 28매. 2007년 10월 26일 작성.------------------------------------------------------------------------------------------ 말(語)이 문제다.

말(인터넷 댓글)에 상처를 받아 사람들이 자살하고, 말(연설, 토론)을 잘해 대통령이 되기도 하고, 존경받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또한, 말을 잘못해 왕따가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예나 지금이나 말은 사람의 지위와 존재여부까지 결정짓는 결정적 인자가 되기도 한다.

미디어의 확산에 따른, 디지털 다중multitude들의 출현으로 대한민국은 온통 말로 가득 찬 언어공화국이 되었다.

잡설과 이론과 신의 계시가 난무하는 언어공화국 내에서 소수가 독점하고 있던 로고스는 이제 대중의 심판대 위에 서게 되었다.

 남북 대치선으로 갈라진 이 반쪽짜리 언어공화국에서 언어기계(료타르)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세 인물이 있다.

온종일 입에 침이 마르지 않는 ‘거침없는 파이터’ 진중권과 ‘냉철한 심판자’ 손석희, ‘싸가지 없는 독설가’ 유시민이 그들이다.

그들의 레토릭은 에둘러치는 완곡어법과 거리가 멀고 상대에 대해 직격탄을 날림으로써 담화를 지켜보고 있는 구경꾼들의 체증을 속 시원히 해소해준다.

이러한 배설효과는 모종의 쾌락을 동반하는 것이어서 대중들의 그들의 언어를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로고스를 부여받은 언어기계들은 이 세 개의 언어체계를 비틀고 자르고 이내 붙이고 꼬았다가 다시 용접하여, 언어에 대한 언어(메타언어)를 설하기 시작했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권리를 포기할 수 없어, 나 역시 그들의 언어(정확히 말하자면 레토릭)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기로 생각했다.

(생략한 단락들) ------------------------------------------------------------------------------------------토론을 내 페이스로 만든다.

조롱과 야유, 아이러니로 무장한 거침없는 파이터_진중권 온종일 입에 침이 마르지 않는 거침없는 파이터, 진중권.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지극히 수사학적이다.

말 그대로 진중권의 표현에만 머물러, 말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야말로 표면 위를 배회하는 인상비평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진중권의 레토릭 자체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최적화된 것으로, 마치 헐리우드 영화처럼 호흡이 짧고 빠르게 진행되어서, 대중들은 그의 언어에 대해 호흡을 가다듬고 살펴볼 겨를을 갖지 못한다.

이런 연유로 대중들은 그 때 그 때의 인상에 머물러 그의 레토릭을 비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논쟁에서 잔인한 미소를 머금고 승리를 하게 되는데, 그가 자신만만하게 승리하고 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를 대하자마자 그의 언어는 상대를 내던지기 위한 최적의 상태로 세팅된다.

상대를 꺼꾸러뜨리기 위해 그는 조롱하고, 비난하며, 특유의 아이러니를 구사한다.

그의 아이러니에 감정적 흥분을 하든지, 그가 상대를 꺾기 위해 동원하는 자잘한 수사에 매달려 비판을 시도한다든지 하면, 상대는 벌써부터 진중권의 페이스에 말려든 것이다.

진중권은 그야말로 아이러니의 귀재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의 아이러니는 상대의 논리에서 이중성을 발견했을 때 빛을 발한다.

최근 ‘100분 토론’(8월10일 방영)에서 실시된 ‘D-WAR’ 논쟁에서 그는 상대 패널로 출연한 문화평론가 하재근 씨의 애국주의 발언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방식의 말 비틀기를 구사하고 있지만, 그의 발화에서 단연 눈에 띠는 것은 비유다.

당시 토론에서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한국 평론가들은 어느 정도 자국 영화에 대해 관대하게 비평해야 한다"며 애국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손석희 유시민] 놀랍네요.



이어 그는 "디워에 대해 쏟아지는 사람들의 관심과 에너지가 한국영화 전반에 흐르게끔 지성인들이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진중권은 "영화를 축구로, 평론을 응원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고 반박해 하재근의 입문을 막았다.

다시 그의 언어를 따라가 보자. “플롯이 없는 영화는 대마를 잡힌 바둑이고, 심감독의 CG는 상아로 만든 바둑알이다.

” ‘디워’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극작술 이론에 비추어 봤을 때, 플롯의 기초가 없는 영화라고 지적한 뒤, 비유를 통해 자신의 주장에 쐐기를 박는 대목이다.

청자들은 비유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진중권의 말을 쉽게 이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진중권은 상대에게 서서히 쨉을 날리는 일이 결코 없다.

오히려 그는 상대의 언어 체계에서 틈새를 엿보다가, 상대가 논리의 이중성 내지는 자기모순을 드러낼 때 어퍼컷으로 때리고 연신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방식을 취한다.

상대가 쓰러질 기미가 보이면, 그는 논의의 종지부를 찍듯 쉬운 비유를 통해 청중의 동의를 이끌어낸다.

자기 논리에 대한 철옹성 같은 방어보다도, 상대의 논리에 대한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자기 논리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방식.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가 되는 그러한 수사에 현란한 비유를 곁들여 청중의 동의를 구하는 방식. 진중권의 레토릭을 이러한 큰 틀에서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팩트’의 가면을 쓴 냉정한 심판자_손석희 손석희는 냉정한 시선과 내리 꽂는 직설적 화법으로 ‘냉철한 심판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의 화법은 에둘러치는 완곡어법과 거리가 멀고 상대에 대해 직격탄을 날림으로써 담화를 지켜보고 있는 구경꾼들의 체증을 속 시원히 해소해준다.

이러한 배설효과는 모종의 쾌락을 동반하는 것이어서 대중들은 그의 언어를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그가 논쟁에 주체적으로 참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는 항상 사회자 혹은 인터뷰어로서의 자리에서만 말(語)을 說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에게서 논쟁적 이미지를 지울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손석희는 항상 상대에게 무심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진다.

마치 언론은 중립이라는 듯이. 그런데 문제는 그 질문에 있다.

질문 자체가 굉장히 세세한 팩트로 무장되어 있다는 것. 브리짓 바르도와의 ‘개고기 논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때로는 매우 단순한 사실들과 ‘문화 상대주의’라는 테마 하나만을 가지고도 대화를 이끌고 있다(손석희의 시선집중, 2001년 12월 3일). 손석희의 이어지는 반문에 스스로 문화상대주의를 저버린 브리짓 바르도는 논거로 제시되는 사실까지 부인하며 대화를 중단시켰다.

 손석희 : “그럼 새로운 사실을 말씀드리죠. 제가 아는 프랑스인은 한국에 와서 개고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 BB : “(매우 화난 목소리로)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프랑스인, 독일인, 미국인들은 절대로 개고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개고기인줄 몰랐다면 가능한 일이겠죠. 하지만 그것이 개고기인 줄 알았다면 결코 그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

” 대답이 궁색해진 바르도는 결국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만다.

또 손석희는 산업폐기물을 재활용한 시멘트가 무해하다고 주장하는 환경부 관계자의 “중금속은 녹아서 인체에 들어가야 유해하다”는 말에 “고형 상태의 시멘트도 물에 넣었을 때 금붕어가 죽었다”는 세세한 팩트를 가지고 상대한다.

상대는 당연히 말문을 닫게 된다.

결국 손석희는 상대가 납득 가능한 설명을 할 때까지 중립을 가장한 가면을 쓴 채 냉정한 표정으로 연신 질문을 쏟아낸다.

이 질문들은 세세한 팩트로 구성되어 있어, 작은 사실 하나에도 대답하지 못한 상대는 마치 논쟁에서 KO를 당한 것처럼 나가떨어지는 것이다.

이 때 인터뷰나 토론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살짝 벗겨진 가면 뒤로 보이는 손석희의 의도를 파악이라도 한 듯,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모종의 카타르시스는 손석희의 반어적 질문이 특정 기득 세력에 대해 성공했을 때 한층 강화된다.

그는 상대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상대의 언어가 얼마나 형식-논리적이고, 팩트를 통해 현실에 부합하는지만 검증하는 것이다.

그러한 끈질긴 검증을 통해 논쟁 아닌 논쟁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또 하나의 기술. 상대의 언어를 공격할 수 있는 팩트를 최대한 준비하라.‘싸가지’ 없는 독설가, 유시민 ‘거침없는 독설가’로 불리는 유시민 역시 이해하기 쉬운 직설적 화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싸가지 없는’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뒤따라 다닌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싸가지 없게’ 만드는 것일까. 입바른 소리도 우회를 통해 들리면 상대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 소리가 단칼에 자신의 폐부를 향해 돌진해올 때면 논리의 적확성을 떠나, 무조건 부인하려고 드는 게 우리가 가진 구술문화의 한 특징이 아닐까. 이는 표현의 방식과 표현의 논리를 구별하지 못하고, 이성의 논리와 감성의 논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 땅의 얕은 토론문화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앞서 살펴본 두 명의 달변가와 마찬가지로 유시민은 철저히 이성에 입각해 논쟁을 이끌어나간다.

지난 9월 11일에 진행된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자 정책토론’에서 계산된 숫자를 동원해가며 ‘전문성’과 ‘해박함’을 자랑하려던 정동영에게 유시민이 어떻게 한 방을 먹이고 있는지 살펴보자.  정동영: “기업이 신규채용을 하면 한 사람을 채용할 때마다 5백만원씩 법인세를 감면해주겠다.

(...) 그러면 1년에 10만명의 고용효과가 있을 것 (...) 세수로 3백만원 정도가 들어오기 때문에 정부는 2천억원 정도를 부담하면 고용을 증대할 수 있다”유시민 : “정 후보는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면서 ‘중통령’이란 말을 하는데 (...) (그 정책의 추진 기간을) 몇 년 정도나 예상하나”정동영 : “4년 정도...”유시민 : “좋은 취지인데 내가 보기에는 경제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세액감면은 법인세를 내는 기업에 해당되는데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의 법인세를 내는 기업이면 상장기업이어야 하고 법인이어야 한다.

수익을 못내는 기업은 법인세를 낼 게 없다.

돈 많이 버는 기업에 돈을 주겠다는 것 아니냐?” 유시민은 정동영 스스로의 논리에 입각해 ‘정동영=중통령’이라는 도식을 설정한 뒤, 정동영 스스로가 어떻게 자기모순에 빠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상대의 논리가 지니는 이중성을 드러내는데 많은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세액감면→법인세→상장기업→돈 많이 버는 기업→(대기업)’이라는 내포관계에 따라 한 마디 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관계의 사슬은 이미 정동영의 말에 함축되어 있다.

유시민은 그의 말 속에서 보이지 않는 논리의 사슬을 표면화시켰을 뿐이다.

말문이 막힌 정동영이 “말씀과 함께 질문을 하겠다”고 말하자, 유시민은 “아니요, 내 질문이니까 1분간 답변하라”며 현재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은 반칙”이라고 쐐기를 박는다.

말의 논리를 떠나 토론의 외적인 상황(유시민이 질문하는 시간이라는)까지도 끌어들일 줄 아는 그가 논쟁에서 지기는 쉽지 않다.

한 치의 양보도 보일 줄 모르는 그의 저돌적인 논쟁태도 때문인지 그는 어느새 ‘싸가지 없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그깟 체면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상대의 언어가 지니고 있는 자기모순을 상대의 언어로써 드러내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언어외적인 상황을 잘 활용하는 것. 논쟁에서 이기는 또 하나의 기술이다.

Jtbc개표방송 손석희유시민전원책진행예정투표하고 왔습니다두장 꾹꾹 눌러 투표후 투표함에 넣었지요투표 인증샷?!지난주 썰전을 보는데썰전의 두 진행자 유시민 전원책 이 Jtbc개표방송 진행을 맡는다고 했거든요꼭 본방사수 할예정이랍니다이럴땐 집에 티비가 없는게 좀 불편하네요ㅜㅜ(핸드폰 옥수수 어플로 볼예정이지요)썰전 보며 빵빵 터지는 1인으로서개표방송이 기대되는건 난생처음인듯 ㅋ B5 3.5장. 원고지 28매. 2007년 10월 26일 작성.------------------------------------------------------------------------------------------ 말(語)이 문제다.

말(인터넷 댓글)에 상처를 받아 사람들이 자살하고, 말(연설, 토론)을 잘해 대통령이 되기도 하고, 존경받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또한, 말을 잘못해 왕따가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예나 지금이나 말은 사람의 지위와 존재여부까지 결정짓는 결정적 인자가 되기도 한다.

미디어의 확산에 따른, 디지털 다중multitude들의 출현으로 대한민국은 온통 말로 가득 찬 언어공화국이 되었다.

잡설과 이론과 신의 계시가 난무하는 언어공화국 내에서 소수가 독점하고 있던 로고스는 이제 대중의 심판대 위에 서게 되었다.

 남북 대치선으로 갈라진 이 반쪽짜리 언어공화국에서 언어기계(료타르)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세 인물이 있다.

온종일 입에 침이 마르지 않는 ‘거침없는 파이터’ 진중권과 ‘냉철한 심판자’ 손석희, ‘싸가지 없는 독설가’ 유시민이 그들이다.

그들의 레토릭은 에둘러치는 완곡어법과 거리가 멀고 상대에 대해 직격탄을 날림으로써 담화를 지켜보고 있는 구경꾼들의 체증을 속 시원히 해소해준다.

이러한 배설효과는 모종의 쾌락을 동반하는 것이어서 대중들의 그들의 언어를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로고스를 부여받은 언어기계들은 이 세 개의 언어체계를 비틀고 자르고 이내 붙이고 꼬았다가 다시 용접하여, 언어에 대한 언어(메타언어)를 설하기 시작했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권리를 포기할 수 없어, 나 역시 그들의 언어(정확히 말하자면 레토릭)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기로 생각했다.

(생략한 단락들) ------------------------------------------------------------------------------------------토론을 내 페이스로 만든다.

조롱과 야유, 아이러니로 무장한 거침없는 파이터_진중권 온종일 입에 침이 마르지 않는 거침없는 파이터, 진중권.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지극히 수사학적이다.

말 그대로 진중권의 표현에만 머물러, 말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야말로 표면 위를 배회하는 인상비평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진중권의 레토릭 자체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최적화된 것으로, 마치 헐리우드 영화처럼 호흡이 짧고 빠르게 진행되어서, 대중들은 그의 언어에 대해 호흡을 가다듬고 살펴볼 겨를을 갖지 못한다.

이런 연유로 대중들은 그 때 그 때의 인상에 머물러 그의 레토릭을 비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논쟁에서 잔인한 미소를 머금고 승리를 하게 되는데, 그가 자신만만하게 승리하고 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를 대하자마자 그의 언어는 상대를 내던지기 위한 최적의 상태로 세팅된다.

상대를 꺼꾸러뜨리기 위해 그는 조롱하고, 비난하며, 특유의 아이러니를 구사한다.

그의 아이러니에 감정적 흥분을 하든지, 그가 상대를 꺾기 위해 동원하는 자잘한 수사에 매달려 비판을 시도한다든지 하면, 상대는 벌써부터 진중권의 페이스에 말려든 것이다.

진중권은 그야말로 아이러니의 귀재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의 아이러니는 상대의 논리에서 이중성을 발견했을 때 빛을 발한다.

최근 ‘100분 토론’(8월10일 방영)에서 실시된 ‘D-WAR’ 논쟁에서 그는 상대 패널로 출연한 문화평론가 하재근 씨의 애국주의 발언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방식의 말 비틀기를 구사하고 있지만, 그의 발화에서 단연 눈에 띠는 것은 비유다.

당시 토론에서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한국 평론가들은 어느 정도 자국 영화에 대해 관대하게 비평해야 한다"며 애국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디워에 대해 쏟아지는 사람들의 관심과 에너지가 한국영화 전반에 흐르게끔 지성인들이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진중권은 "영화를 축구로, 평론을 응원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고 반박해 하재근의 입문을 막았다.

다시 그의 언어를 따라가 보자. “플롯이 없는 영화는 대마를 잡힌 바둑이고, 심감독의 CG는 상아로 만든 바둑알이다.

” ‘디워’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극작술 이론에 비추어 봤을 때, 플롯의 기초가 없는 영화라고 지적한 뒤, 비유를 통해 자신의 주장에 쐐기를 박는 대목이다.

청자들은 비유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진중권의 말을 쉽게 이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진중권은 상대에게 서서히 쨉을 날리는 일이 결코 없다.

오히려 그는 상대의 언어 체계에서 틈새를 엿보다가, 상대가 논리의 이중성 내지는 자기모순을 드러낼 때 어퍼컷으로 때리고 연신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방식을 취한다.

상대가 쓰러질 기미가 보이면, 그는 논의의 종지부를 찍듯 쉬운 비유를 통해 청중의 동의를 이끌어낸다.

자기 논리에 대한 철옹성 같은 방어보다도, 상대의 논리에 대한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자기 논리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방식.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가 되는 그러한 수사에 현란한 비유를 곁들여 청중의 동의를 구하는 방식. 진중권의 레토릭을 이러한 큰 틀에서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팩트’의 가면을 쓴 냉정한 심판자_손석희 손석희는 냉정한 시선과 내리 꽂는 직설적 화법으로 ‘냉철한 심판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의 화법은 에둘러치는 완곡어법과 거리가 멀고 상대에 대해 직격탄을 날림으로써 담화를 지켜보고 있는 구경꾼들의 체증을 속 시원히 해소해준다.

이러한 배설효과는 모종의 쾌락을 동반하는 것이어서 대중들은 그의 언어를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그가 논쟁에 주체적으로 참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는 항상 사회자 혹은 인터뷰어로서의 자리에서만 말(語)을 說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에게서 논쟁적 이미지를 지울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손석희는 항상 상대에게 무심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진다.

마치 언론은 중립이라는 듯이. 그런데 문제는 그 질문에 있다.

질문 자체가 굉장히 세세한 팩트로 무장되어 있다는 것. 브리짓 바르도와의 ‘개고기 논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때로는 매우 단순한 사실들과 ‘문화 상대주의’라는 테마 하나만을 가지고도 대화를 이끌고 있다(손석희의 시선집중, 2001년 12월 3일). 손석희의 이어지는 반문에 스스로 문화상대주의를 저버린 브리짓 바르도는 논거로 제시되는 사실까지 부인하며 대화를 중단시켰다.

 손석희 : “그럼 새로운 사실을 말씀드리죠. 제가 아는 프랑스인은 한국에 와서 개고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 BB : “(매우 화난 목소리로)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프랑스인, 독일인, 미국인들은 절대로 개고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개고기인줄 몰랐다면 가능한 일이겠죠. 하지만 그것이 개고기인 줄 알았다면 결코 그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

” 대답이 궁색해진 바르도는 결국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만다.

또 손석희는 산업폐기물을 재활용한 시멘트가 무해하다고 주장하는 환경부 관계자의 “중금속은 녹아서 인체에 들어가야 유해하다”는 말에 “고형 상태의 시멘트도 물에 넣었을 때 금붕어가 죽었다”는 세세한 팩트를 가지고 상대한다.

상대는 당연히 말문을 닫게 된다.

결국 손석희는 상대가 납득 가능한 설명을 할 때까지 중립을 가장한 가면을 쓴 채 냉정한 표정으로 연신 질문을 쏟아낸다.

이 질문들은 세세한 팩트로 구성되어 있어, 작은 사실 하나에도 대답하지 못한 상대는 마치 논쟁에서 KO를 당한 것처럼 나가떨어지는 것이다.

이 때 인터뷰나 토론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살짝 벗겨진 가면 뒤로 보이는 손석희의 의도를 파악이라도 한 듯,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모종의 카타르시스는 손석희의 반어적 질문이 특정 기득 세력에 대해 성공했을 때 한층 강화된다.

그는 상대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상대의 언어가 얼마나 형식-논리적이고, 팩트를 통해 현실에 부합하는지만 검증하는 것이다.

그러한 끈질긴 검증을 통해 논쟁 아닌 논쟁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또 하나의 기술. 상대의 언어를 공격할 수 있는 팩트를 최대한 준비하라.‘싸가지’ 없는 독설가, 유시민 ‘거침없는 독설가’로 불리는 유시민 역시 이해하기 쉬운 직설적 화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싸가지 없는’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뒤따라 다닌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싸가지 없게’ 만드는 것일까. 입바른 소리도 우회를 통해 들리면 상대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 소리가 단칼에 자신의 폐부를 향해 돌진해올 때면 논리의 적확성을 떠나, 무조건 부인하려고 드는 게 우리가 가진 구술문화의 한 특징이 아닐까. 이는 표현의 방식과 표현의 논리를 구별하지 못하고, 이성의 논리와 감성의 논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 땅의 얕은 토론문화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앞서 살펴본 두 명의 달변가와 마찬가지로 유시민은 철저히 이성에 입각해 논쟁을 이끌어나간다.

지난 9월 11일에 진행된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자 정책토론’에서 계산된 숫자를 동원해가며 ‘전문성’과 ‘해박함’을 자랑하려던 정동영에게 유시민이 어떻게 한 방을 먹이고 있는지 살펴보자.  정동영: “기업이 신규채용을 하면 한 사람을 채용할 때마다 5백만원씩 법인세를 감면해주겠다.

(...) 그러면 1년에 10만명의 고용효과가 있을 것 (...) 세수로 3백만원 정도가 들어오기 때문에 정부는 2천억원 정도를 부담하면 고용을 증대할 수 있다”유시민 : “정 후보는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면서 ‘중통령’이란 말을 하는데 (...) (그 정책의 추진 기간을) 몇 년 정도나 예상하나”정동영 : “4년 정도...”유시민 : “좋은 취지인데 내가 보기에는 경제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세액감면은 법인세를 내는 기업에 해당되는데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의 법인세를 내는 기업이면 상장기업이어야 하고 법인이어야 한다.

수익을 못내는 기업은 법인세를 낼 게 없다.

돈 많이 버는 기업에 돈을 주겠다는 것 아니냐?” 유시민은 정동영 스스로의 논리에 입각해 ‘정동영=중통령’이라는 도식을 설정한 뒤, 정동영 스스로가 어떻게 자기모순에 빠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상대의 논리가 지니는 이중성을 드러내는데 많은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세액감면→법인세→상장기업→돈 많이 버는 기업→(대기업)’이라는 내포관계에 따라 한 마디 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관계의 사슬은 이미 정동영의 말에 함축되어 있다.

유시민은 그의 말 속에서 보이지 않는 논리의 사슬을 표면화시켰을 뿐이다.

말문이 막힌 정동영이 “말씀과 함께 질문을 하겠다”고 말하자, 유시민은 “아니요, 내 질문이니까 1분간 답변하라”며 현재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은 반칙”이라고 쐐기를 박는다.

말의 논리를 떠나 토론의 외적인 상황(유시민이 질문하는 시간이라는)까지도 끌어들일 줄 아는 그가 논쟁에서 지기는 쉽지 않다.

한 치의 양보도 보일 줄 모르는 그의 저돌적인 논쟁태도 때문인지 그는 어느새 ‘싸가지 없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그깟 체면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상대의 언어가 지니고 있는 자기모순을 상대의 언어로써 드러내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언어외적인 상황을 잘 활용하는 것. 논쟁에서 이기는 또 하나의 기술이다.


공유하기 링크
TAG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