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완주 식품공장 불



비단 한국뿐만 아니다.

세계 속 화두다.

남미의 청정한 고산 지대에서 자라는 고대 식재료가 관심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한국의 사찰 음식, 그리고 발효 식품도 좋은 해답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발효’는 슬로 푸드의 대명사로 인식되면서 그 가치가 재발견되고 있다.

사실 한국의 대표적 발효 음식인 김치와 장아찌, 장은 서양의 피클과 버터로 비견될 수 있듯이, 발효가 우리만의 문화는 아니다.

그런데도 세계가 지금 우리 발효 음식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관심의 기저에는 우리 ‘장’이 지닌 깊은 맛이 있다.

소금과 초가 기본이 되는 서양 피클과 달리 우리 발효 음식은 된장, 간장, 고추장을 근간으로 훨씬 더 깊은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 ‘깊은 맛’은 비단 한식에서만 아니라 양식에도 충분히 그 접목의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자연이 선물해주는 좋은 재료와 사람의 정성, 제철이라는 시간, 좋은 맛이 날 때까지 감내하는 기다림의 시간이 만들어 낸 한국의 ‘맛’의 가치. 그래서 다시금 우리 식문화의 근간이 되는 발효에 주목하고자 한다.

전국 방방곡곡, 발효의 대가를 만나 한국 발효 식품이 갖는 우수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대를 잇는 일이 곧 명맥을 이어가는 가장 기본임을 확인했다.

「바앤다이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만드는 사람이 있고, 또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명맥이 끊이지 않는다’는 명인의 말을 되새기며 발효의 가치를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요리’를 떠올렸다.

우리는 완주의 천리장, 산청의 산야초 효소액, 지리산의 고추장, 평창의 장아찌를 들고 셰프의 주방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전북 완주군 경천면 산내골로 쉼없이 3시간을 내달리는 길. 천리장만큼이나 낯선 이름의 동네와 낯선 길 위에서 비구름이 몰려올까 노심초사 속도를 내는 가운데 갑자기 눈앞에 대둔산이 나타났다.

명인을 만나러 가는 길을 안내하듯 굽이굽이 길목을 포근하게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는 마치 서두르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장이 익어가듯 모든 것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고. 속도를 늦추고 주변 풍경을 즐기며 도착한 곳은 ‘대둔산 산내골 식품’. 이름만 듣고서 산골짜기 깊은 곳에 자리한 명인의 집을 상상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완만한 평지에 드넓은 옥수수밭과 콩밭, 그 옆 꽃나무 골목 안에 그림처럼 자리해 있었다.

명인의 남편 되는 이가 먼저 반기더니 “서울에서 손님 왔어. 어디 있어!”라고 외친다.

그러자 어떻게 들었는지 윤왕순 명인이 저 멀리서 “여기!”라고 외치며 과일 한 소쿠리와 달달한 커피를 들고 천천히 걸어 나온다.

국가 지정 ‘식품명인’ 천리장 명인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윤왕순 천리장 명인과 그녀의 남편천리장의 숨결을 잇다 부부가 서울 말을 쓰는 것이 궁금해 물으니 유년 시절 이후에는 서울에서 생활하고 경기도 광주에서 가구 공장을 크게 운영했었다고 한다.

무슨 이유 때문에 40여 년간 해온 도시 살이를 접고 이곳까지 흘러온 것일까. 명인의 고향이라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묻자 2000년 1월 13일이라는 날짜부터 또박또박 곱씹듯 내뱉었다.

그에 반해 이유에 대해서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어서, 그걸 잊으려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그녀를 이곳까지 이끈 건 평생 손에 흙 한번 묻혀보지 않았던 남편이라고 했다.

“가자. 살려면 가야 해.” 산맥이 높지 않아 하루 종일 해가 잘 들고 바람이 드나들면서 축사 등의 수질 오염 시설이 없는 곳을 고르고 골라 자리 잡았다.

[완주 식품공장 불] 대체 무엇때문에.


장 담그기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은 풍수지리를 꼼꼼하게 따진 것이다.

그때도 집에서 먹는 장은 늘 직접 만들었고, 경기도 광주시 농업기술센터와 서울 한국전통음식연구소의 전통 음식 제조 기법 연수 과정을 거친 전통 음식 기능 보유자로 이미 그 일대에서는 손맛으로 이름 꽤나 떨치던 그녀였다.

무엇보다 명인의 어머니가 함께였다.

그녀에게 ‘천리장’을 가르쳐준 어머니 말이다.

“옛 어르신들이 다 그렇잖아요. 딸보다는 아들을 위하는 분이었어요. 위로 언니 둘과 오빠 둘, 아래로 여동생 넷과 남동생 하나가 있는데, 중간인 내가 불만이 제일 많았어요. 왜 아들만 챙기느냐고 볼멘소리를 자주 했는데, 어머니가 곁을 내주시는 건 장 담글 때나 음식을 할 때였어요. 그럴 때마다 찍어 먹던 장이 어찌나 맛있던지. 집에 귀한 손님이 올 때 장독이 열리면 몰래 떠다 먹기도 했어요. 고기장이었죠. 아무 때나 먹는 장이 아니었어요. 정말 귀하고 중요한 손님이 오실 때 대접하던 것인데, 누가 먹었냐고 불호령이 떨어질 때만 잠깐 쥐 죽은 듯이 눈치를 볼 뿐, 그다음 장독이 열리는 날을 다시 기다렸어요. 그만큼 맛있었죠. 여기 완주로 내려와서 그 고기장 좀 제대로 담가 보련다고, 방법 좀 알려달라 하니 어머니는 이제 늙어서 모른다고 한사코 알려주지 않으셨어요. 언니들에게 물어보라며 몇 번이나 내침을 당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 때쯤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너는 장 사 먹을 형편도 되면서 뭐하려고 장을 담그려 하느냐고. 그때 알았어요. 딸자식 고생길이 눈에 훤해 부러 알려주고 싶지 않으셨다는 것을요.” 그래도 명인은 어릴 때부터 어깨 너머 보아온 것을 발판 삼아 노모에게 이리 하면 되느냐, 저리 하면 되느냐 달라붙어 결국 천리장을 배웠다고 한다.

천리장은 파평 윤씨 가문 대대로 전수되어온 내림장으로 고종에게도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귀한 장이다.

천 리 길을 가도 상하지 않는다 하여 이름 붙었을 정도로 보존성도 뛰어나다.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였기에 대중은 물론 전문가에게도 그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2013년 말, 식품명인 50호로 지정되면서 그 존재가 세상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윤씨 가문에서도 처음부터 천리장이라 부른 것은 아니라고 한다.

고추장, 된장, 간장 부르듯 고기를 넣고 만드니 그저 고기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제대로 된 이름을 찾은 건 명인의 딸 지나 씨 덕분이다.




명인이 하는 일이라면 두 팔 걷어붙이고 돕는 딸이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던 중 천리장이라는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천리장은 우리나라 최초 음식 책인 「산가요록」(1450)에 ‘햇볕에 말렸다가 곱게 가루를 내어 참깨가루와 섞어 기름종이에 싸두었다가 국 끓일 때나 조림을 할 때 양념으로 쓰면 그 맛이 두루 미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증보산림경제」(1766)에도 간략하게나마 조리법이 전해지고 있다.

윤왕순 명인의 천리장은 「증보산림경제」에 나온 방법에 가깝다.

딸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일어서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다는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왔다.

식품명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준비한 것이라고 하는데, 명인이 걸어온 행보와 천리장에 대해 딸이 빼곡히 적은 종이가 몇백 페이지를 훌쩍 넘긴다.

부러 준비했다기보다는 늘 곁에서 따라 다니며 기록을 남겨둔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동안 긴 자랑이 이어졌다.

전통 장 명인이기에 앞서 딸 자랑에 여념 없는 부모의 모습이었다.

“자기도 딸 둘 키우랴 힘들 텐데,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에요.” 그도 그럴 것이 경영학을 전공한 지나 씨는 마흔을 넘긴 나이에 다시 식품영양학과로 진학해 열혈 학도의 길을 걷고 있다.

서류 처리 등 사무 일을 도울 뿐 아니라, 장 담그는 날이면 서울에서 내려와 옆에서 돕는다는 그녀는 천리장의 맥을 잇기 위해 한창 준비 중이다.

천리장은 어떻게 만드나요? 메주부터 시작이 되죠. 직접 농사 지은 콩을 맑은 물에 씻은 뒤 무쇠 가마솥에 넣고 삶아 메주를 빚어 잘 숙성시켜요. 이 메주에 양질의 소금을 더해 숙성시켜 감청장을 만들고요. 날씨가 너무 더워도 추워도 안 되기 때문에 매해 정월에 작업을 해요. 이렇게 만든 감청장을 오랜 시간 졸여요. 정해진 시간은 없어요. 간장 양이 절반가량이 될 때까지 몇 시간이고 약한 불에서 졸입니다.

감청장이요? 간장을 깨끗하게 잘 걸러낸 것을 청장이라 하고, 특히 맛이 달고 좋은 청장에는 감청장이라는 이름을 붙여요. 간장은 햇간장이, 된장은 묵힐수록 맛있더라고요. 나는 그렇던데(웃음). 그래서 천리장을 만들 때도 그해에 만든 간장을 걸러낸 감청장을 사용해요. 거품과 찌꺼기를 걸러내다 보면 마음도 시원해지고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보존성이 뛰어나다고 들었어요. 소고기도 기름기가 적은 우둔살을 잘 말려서 사용하고 장을 긴 시간 졸이는 과정에서 수분 함량이 줄어들고 농도가 진해져서 그래요. 덧붙이자면 일반 간장보다 영양가도 높아요. 한의학에서 소고기는 맛이 달고 따뜻한 성질이 있어 뱃속을 편안하게 하고 소화 기능을 좋게 한다고 해요. 감청장에 이 귀한 소고기로 영양을 더하니 그럴 수밖에요. 천리장의 재료가 되는 감청장어떻게 먹는 게 좋을까요? 사람들이 간장을 어려워하진 않잖아요. 천리장도 같아요. 물론 예전에는 사대부가만 즐길 수 있었지만 말이에요. 맛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장조림 같다는 말을 자주 해요. 갓 지은 따뜻한 밥에 쓱쓱 비벼 먹으면 좋고, 나물 무침을 해도 맛이 달라요. 볶음이나 조림을 할 때 천리장이나 어육장을 사용하면 엄청 맛있어요. 왜, 그 집 음식 맛 알려면 장부터 맛보라고 하잖아요? 우리집 어육장도 기가 막혀요.(웃음) 똑같이 고기를 사용하잖아요. 어육장과 천리장은 어떻게 달라요? 둘다 귀하디귀한 장인데, 어육장은 육해공군이 다 들어가요. 소고기, 닭고기, 꿩고기, 숭어, 전복, 새우, 멸치, 홍합. 이런 것들을 켜켜이 쌓고 장을 담가서 땅속에서 1년 동안 숙성시켜요. 바깥 온도는 들쑥날쑥인데 땅속은 거의 일정 하니까. 1년 후에 장을 가르면 짙은 젓갈 냄새 같은 것이 나는데, 특히 미역국에 넣어 끓이면 맛이 좋아요. 한 번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임산부가 어떻게 끓여도 미역국이 맛이 없다며 어디서 들었는지 어육장을 사갔어요. 그 후에 맛있다고, 맛있다고 몇 번을 말하던지. 뿌듯했지요. 앞으로 천리장이 어떤 길을 걸었으면 하시나요? 시작은 귀한 양반가의 품격 높은 장이었지만, 요즘은 못 먹고 사는 시대는 아니잖아요. 더 많은 사람이 천리장의 존재를 알았으면 좋겠어요. 만드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 맥이 끊기지 않잖아요. 요즘 한식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것 같아요. 그 바탕이 되는 우리 장에 요리하는 분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면 좋죠.정직과 정성이라는 재료 “나랏상감 밥상 안 부러워요.” 시종일관 아내 손맛 자랑이 넘치는 남편. 요리사들도 맛보면 좋겠다는 말에 명인이 손사래를 쳤다.

장이라면 모를까, 어떻게 그들 앞에서 요리를 하느냐고 하는데도, 평생 맛봐온 남편은 믿음이 크다.

부부가 매일 차려 먹는 밥상에 둘러앉아 같이 먹으면 장맛을 가장 깊이, 빠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별미로 코다리찜과 콩비지를 꼽는다.

천리장은 양을 조금만 넣어도 음식 맛을 살려준다.

일반 재래 간장이나 소금으로 간을 맞추다 보면 양을 많이 사용할 때가 있는데, 긴 시간 졸여 아주 소량으로도 깊은 맛을 내니 빛깔도 맛도 산다는 것이다.

천리장은 크게 봄에 한 번, 추석쯤 한 번 졸인다.

많이 졸여두고 오래 묵히면 까맣게 변하고 졸아들어 본래 맛보다 훨씬 짠맛이 들고 쓰기 때문이라고. 아쉽게도 장을 졸이는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그 숨결이라도 느껴볼 수 있을까 싶어 작업장으로 향했다.

비밀의 장소 아니냐 묻자 “비밀 장소 그런 거 없어요. 있어도 안 되고”라며 문을 활짝 열어준다.

정직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긴 세월 살아온 어른으로, 전통을 잇는 장인으로서 요리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물었을 때도 정직이라고 했다.

정직하게 만든 맛이 결국 살아남는 것이라고. 봄에 한 번 졸였으니 마지막으로 사용한 지 수개월 됐을 텐데, 가마솥에서 반들반들 윤이 나고 고소한 냄새가 풍겨나왔다.

깨끗하게 기름칠을 해둔 것. 그 집 장독이 깨끗하면 장맛 또한 좋은 법이라더니. 장독대는 아니지만 콩을 삶고 천리장을 졸이는 솥에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것을 보고 나니 그 맛이 한층 더 궁금해졌다.

한 그릇 꺼내준 천리장을 숟가락으로 밑바닥부터 떠올리자 고운 모래처럼 되직한 소고기 가루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조금 집어 먹자 깊은 짠맛 뒤로 달달한 맛이 올라오고 이내 입안이 개운하다.

감청장과 소고기를 기본으로 만드는 맛깔난 조미장. 우선 감청장의 맛이 중요할 것 같아 좋은 장맛의 비결을 물었다.

좋은 재료와 정성이라고 한다.

명인과 남편은 5천여 평 땅에서 농사를 짓는다.

겨울 작물인 마늘과 양파를 심었다가 그 자리에 콩과 옥수수를 심는 이모작을 하고 있다.

농약을 덜 쓰고 비옥한 토양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 콩에 질 좋은 국산 소금을 더해 장을 만든다.

생전 농사를 지어본 적 없는 남편은 아내를 위해 농사꾼을 넘어 박사가 됐다.

직접 키운 보리와 찰옥수수 등으로 가공품까지 척척 만들며 ‘대둔산 산내골 식품’이라는 이름 아래 판매도 한다.

장과 차를 한 아름 안겨주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한 세상 살다가는 건데, 잘 먹어야 해요. 잘 먹는다는 것이 늘 10첩 반상 차려놓고 먹으라는 게 아니고 한 끼를 먹더라도 좋은 재료로 건강하게 만든 음식, 맛있게 먹으라는 거예요. 먹는 것이 곧 자신이 되는 거라고.”장이 졸아들고 남은 소금과 장 찌꺼기EDIT 이도연?김민지?장새별 | PHOTO 김철성?강현욱 | DESIGN 성지희기사 전문은 바앤다이닝 152호(2016.08월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공유하기 링크
TAG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