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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대



  부모님은 내게 재산보다는 작은 재능들을 주셔서 학창시절엔 미술부와 합창단 등을 하며 학업 외에도 다양한 과외활동들을 하였으나 가정형편을 고려하여 그 소질을 계발하지 못하고, 일찍이 꿈을 접었습니다.

한편으론 마을의 작은 교회를 통해 기독교신앙을 접하면서 문화적으로, 영적으로 좋은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었고, 기독교 사회운동을 통하여 그 당시의 사회구조를 공익적 측면에서 보는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학진학을 할 때는 교통비조차 넉넉하지 못하였던 가정형편을 고려하여 인하대학교 경상대에 정석장학생으로 수석 입학하였습니다.

이는 학교재단의 이사장이 주는 장학금으로 4년간의 학비를 전액 면제하고 한편으론 상당한 액수의 생활비를 별도로 지원해 주는 큰 혜택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장학제도가 없었더라면 가난한 집안의 나로서는 오늘의 내가 있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캠퍼스가 온통 민주화운동으로 가득하였던 80년대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대선 패배 후 1988년 가을에 육군에 입대, 광주에서 군복무를 하였습니다.

사단본부에서 약 두달 간 작전병 생활을 하던 저는 신임 사단장의 부임으로 관사 당번병으로 차출되어 만2년을 근무하고 제대하였습니다.

군에서 짬짬이 공부한 것을 기초로 하여 제대한 이듬해인 1992년에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 입학하고, 서울대발전기금장학금과 파트타임 알바로 석사과정을 마쳤고, 그 후엔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여, 삼일회계법인과 금융감독원에서 전문가로 직장생활을 한 후 현재는 한미회계법인을 창업하여 최대주주로서 회계법인을 운영하며, 경인본부를 개설하였고 적극적으로 인천지역에서 젊은 오피니언리더로서 경제적, 사회적 활동을 활발하게 영위하고 있습니다.

 인천연수지역은 염전 및 갯벌매립 등의 도시개발을 통해 남구에서 분리된 신도심지역으로 최근에는 송도국제도시의 개발로 인천에서는 중산층이 가장 많은 곳이며, 새누리당의 황우여대표가 내리 4선을 한 곳이기도 합니다.

  한편 연수구는 인천에서 정주의식이 가장 강한 곳 중의 하나로서 경제적 여건이 서울과 주변의 신도시에서 거주할 능력은 되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천을 떠날 수 없는 인천 전역의 토박이들이 다 모여 사는 곳으로 인천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그 자존감이 높은 곳입니다.

연수구민들의 교육수준이나 경제수준의 평균을 보면 중산층을 대변합니다.

  저는 공인회계사로서 삼일회계법인 및 세동회계법인의 국제부에서 회계 및 경제전문가의 기초를 다지고 금융감독원 공시감독국과 회계감독국에서 경력직 회계사로 직장생활을 한 후 한미회계법인을 창업하여, 20년 가까이 회계, 예산 및 경제전문가로서 수많은 민간기업과 공기업 그리고 국가기관 등과 함께 다양한 업무경험을 하였습니다.

한편으로 가난한 서민의 막내아들로서 공부하면서 성장하여 누구보다도 서민의 애환을 잘 알고 있으며,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의 필요성을 몸으로 경험하였습니다.

  저는 회계사의 사회적 기능을 충실하게 잘 감당한 시민의 한사람으로 전문성과 희소성 그리고 차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정치신인이지만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정치인을 기대하는 시민들의 니즈를 만족시켜줄 젊음과 참신성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능력있는 야당, 문제해결능력 및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야당, 아니 집권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기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라의 살림살이, 국민의 살림살이를 지키는 정치’를 하고자 합니다.

‘가계부채 1,200조’, ‘나라 빚은 5,000조’의 현실 앞에서 이를 해결할 정책대안을 경제민주화를 통해 관철시키고 싶습니다.

살림살이에 있어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삶의 질에 있어서 주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향과 경험은 이를 실천하는 기준이 되고, 바른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마소견저는 인천 남구 용현동 작은 빈민마을에서 태어나서 어려운 경제형편을 이기고 겨우겨우 학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을 하였고 그 이후로는 경제전문가로 회계전문가로 삼일회계법인과 금융감독원을 거쳐 한미회계법인을 창업해서 남들이 볼 때 소위 성공한 회계사로써의 삶을 쭉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갑자기 정치를 하겠다고 표현을 했을 때 그리고 제가 민주당을 선호하고 지지하는 성향의 회계사라고 이야기 했을 때 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커밍아웃과 같은 수준이었던 것이죠. 이 사회의 기득권자들과 있는 사람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그 사람들의 친구인줄 알았는데 보니까 자기네 편이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처음 들었던 말이 기득권 좌파였습니다.

지금은 강남좌파라는 말이 굉장히 익숙해져 있지만 저는 그 때 기득권 좌파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 주변사람들한테 듣게 되었는데요. 오늘 강의를 듣다 보니까 공익적 가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엘리트 또는 전문가 이것이 바로 국민이 원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84년도에 대학에 입학해서 87년도에 우리가 대선에서 실패하고 좌절하는 마음으로 88년도에 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리고 제대를 하고 그 이후에는 성실한 생활인이 되기 위해서 대학원도 진학을 했고 회계사 공부도 준비를 했습니다.

남들과 같이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던 것도 아니고 노동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에 이 몸을 헌신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게 우리 당의 선수들은 전부 이러한 3가지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들로만 많이 이루어져 있는데 지금 시대의 정치는 바로 열심히 생활을 해왔던 그런 모든 사람들이 정치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실한 생활인으로써 열심히 살아오면서 갖고 있던 제 전문적 지식을 꼭 필요한 정치에 활용하고 싶어서 정치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특히 2009년도에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보면서 그 때 노제에 제가 참석을 했습니다.

그 날짜 아직도 기억하는데 2009년 5월 31일이었습니다.

그 때 종합소득세 마감하면서 우리 회계법인의 1년 농사가 결실을 맺는 날인데 오전에 노제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내려와서 일을 마감해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그 날 하루종일 분노와 슬픔에 사실은 인천을 내려오지 못하고 서울역 주변과 광화문을 방황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한 저에게 사실은 정치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1년 민주통합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여의도에 있는 몇몇 뜻있는 동기들과 함께 이 사회 어떻게 이끌어 가야될 것인가 단순하게 공부하는 그런 자리에서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정치를 도외시하고 정치를 단지 바라만 봤을 때 그럴 때는 사실은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누구를 지켜줄 수도 없고 공연히 탄식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를 내가 할 수 있고 남을 밀어줄 수도 있지만 저를 기꺼이 내가 직접 정치를 참여하는 선수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은 저처럼 성실하게 생활을 해왔던 사람도 정치라고 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이 사회를 옳고 바르게 이끌어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정치라는 수단에 다른 사람을 기대하지 않고 내가 직접 뛰어들어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2012년 19대 총선에 뛰어들었지만 거대한 기존의 정치의 큰 틀을 뛰어넘지 못했고 다시 3년간 준비해서 지역위원장이 되었습니다.

다가오고 있는 2016년 20대 총선에는 저같이 성실하고 준비되어 있고 정치에 희망 주는 사람들이 정치에 뛰어들 수 있는 그런 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정치를 하게 된 큰 결심은 바로 정치가 이 사회를 바로 이끌고 바로 바꾸고 많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는 공인회계사도 하는 경제전문가 회계전문가 재정전문가로써 제가 꼭 갖춘 전문적 지식이 정치에 활용되고 그거로 인해서 이 사회가 이 나라가 조금이라도 확장성이 있게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면 거기에 헌신하기 위해서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현 출마 지역구 선택 이유저는 인천 남구에서 태어난 토박이입니다.

1995년 인천 남구에서 연수구가 분구되어 신도시로 정립되었고 이로 인해 연수구의 아파트 형태 주거비율은 87%에 육박합니다.

[박찬대] 세상에. 왜..


현재는 매립으로 조성된 송도 신도시가 만들어져 지속적인 인구유입으로 연수(갑)(연수동 일대)과 연수을(송도동 일대)로 분구될 계획입니다.

저는 연수(갑) 지역에 출마할 계획입니다.

  인천 남구가 어머니 아버지들의 고향이자 어릴 적 삶의 터전이었다면 인천 연수구는 장성한 자녀들이 인천에 정주하면서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천의 문학산(학산)을 중심으로 학익동 문학동은 남구로 구분되어 있고 청학동 선학동은 연수구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태어나서 직접 살아온 삶의 터전이었던 만큼 누구보다도 지역문제와 살림살이 문제의 해결에 자신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보건복지에 대한 공약과 이유전국에서 유일하게 인천에만 어린이 전문병원이 없는데요. 연수구는 유치원 보육교사 아동학대 사건과 얼마 전에는 16kg 11세 여자아이가 맨발로 탈출한 초등생 감금사건이 벌어진 지역입니다.

명색에 교육부장관의 지역구인데 이런 상황이 연달아 벌어져서 굉장히 안타까웠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병문안도 갔었는데 예린이를 6인실 일반병실에다가 13일간이나 방치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24시간 간호를 전담하는 전문 간호인력도 없었고 체계적인 보살핌도 없어서 학대 피해아동을 치료하는데는 한계가 있었고 12월 24일에 언론에서 문제점들을 지적받고 나서야 개인병실로 옮기는 것을 보면서 인천에 반드시 어린이 전문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015년 3월에 인천 어린이전문병원(보건복지부지정 달빛 어린이병원)으로 한림병원이 지정되었으나 석달 만에 폐원 되었습니다.

운영방안과 지원체계를 확실히 정립하여 피해아동들을 구제하는 사회보호망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도 한 아이의 아버지로 우리 부모님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한 연수, 부모님들이 안심하고 학교를 보낼 수 있는 연수구가 되어야지만 부차적으로 교육도 있고 문화도 있고 여가도 있을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기초적인 단위의 안전도 정비하지 못하고는 더 큰 일을 해낼 수 없겠지요. 우리 아이들의 안전과 치료는 저 박찬대가 연수살림꾼의 마음으로 주부의 마음으로 해결해내고자 합니다.

 [예비후보자 본인의 의견을 서면 또는 온라인을 통하여 접수 기재했습니다.

본 내용은 헬스앤라이프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사보기http://health.compa.kr/event/reserved_candidate/rc_view.php?idx=65&page=1&search_party=&location_code=&city_code=&search_keyword=박찬대예비후보자 특집예비후보자 특집 페이지입니다.

health.compa.kr   부모님은 내게 재산보다는 작은 재능들을 주셔서 학창시절엔 미술부와 합창단 등을 하며 학업 외에도 다양한 과외활동들을 하였으나 가정형편을 고려하여 그 소질을 계발하지 못하고, 일찍이 꿈을 접었습니다.

한편으론 마을의 작은 교회를 통해 기독교신앙을 접하면서 문화적으로, 영적으로 좋은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었고, 기독교 사회운동을 통하여 그 당시의 사회구조를 공익적 측면에서 보는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학진학을 할 때는 교통비조차 넉넉하지 못하였던 가정형편을 고려하여 인하대학교 경상대에 정석장학생으로 수석 입학하였습니다.

이는 학교재단의 이사장이 주는 장학금으로 4년간의 학비를 전액 면제하고 한편으론 상당한 액수의 생활비를 별도로 지원해 주는 큰 혜택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장학제도가 없었더라면 가난한 집안의 나로서는 오늘의 내가 있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박찬대] 분석을 해보면



  캠퍼스가 온통 민주화운동으로 가득하였던 80년대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대선 패배 후 1988년 가을에 육군에 입대, 광주에서 군복무를 하였습니다.

사단본부에서 약 두달 간 작전병 생활을 하던 저는 신임 사단장의 부임으로 관사 당번병으로 차출되어 만2년을 근무하고 제대하였습니다.

군에서 짬짬이 공부한 것을 기초로 하여 제대한 이듬해인 1992년에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 입학하고, 서울대발전기금장학금과 파트타임 알바로 석사과정을 마쳤고, 그 후엔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여, 삼일회계법인과 금융감독원에서 전문가로 직장생활을 한 후 현재는 한미회계법인을 창업하여 최대주주로서 회계법인을 운영하며, 경인본부를 개설하였고 적극적으로 인천지역에서 젊은 오피니언리더로서 경제적, 사회적 활동을 활발하게 영위하고 있습니다.

 인천연수지역은 염전 및 갯벌매립 등의 도시개발을 통해 남구에서 분리된 신도심지역으로 최근에는 송도국제도시의 개발로 인천에서는 중산층이 가장 많은 곳이며, 새누리당의 황우여대표가 내리 4선을 한 곳이기도 합니다.

  한편 연수구는 인천에서 정주의식이 가장 강한 곳 중의 하나로서 경제적 여건이 서울과 주변의 신도시에서 거주할 능력은 되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천을 떠날 수 없는 인천 전역의 토박이들이 다 모여 사는 곳으로 인천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그 자존감이 높은 곳입니다.

연수구민들의 교육수준이나 경제수준의 평균을 보면 중산층을 대변합니다.

  저는 공인회계사로서 삼일회계법인 및 세동회계법인의 국제부에서 회계 및 경제전문가의 기초를 다지고 금융감독원 공시감독국과 회계감독국에서 경력직 회계사로 직장생활을 한 후 한미회계법인을 창업하여, 20년 가까이 회계, 예산 및 경제전문가로서 수많은 민간기업과 공기업 그리고 국가기관 등과 함께 다양한 업무경험을 하였습니다.

한편으로 가난한 서민의 막내아들로서 공부하면서 성장하여 누구보다도 서민의 애환을 잘 알고 있으며,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의 필요성을 몸으로 경험하였습니다.

  저는 회계사의 사회적 기능을 충실하게 잘 감당한 시민의 한사람으로 전문성과 희소성 그리고 차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정치신인이지만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정치인을 기대하는 시민들의 니즈를 만족시켜줄 젊음과 참신성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능력있는 야당, 문제해결능력 및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야당, 아니 집권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기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라의 살림살이, 국민의 살림살이를 지키는 정치’를 하고자 합니다.

‘가계부채 1,200조’, ‘나라 빚은 5,000조’의 현실 앞에서 이를 해결할 정책대안을 경제민주화를 통해 관철시키고 싶습니다.

살림살이에 있어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삶의 질에 있어서 주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향과 경험은 이를 실천하는 기준이 되고, 바른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마소견저는 인천 남구 용현동 작은 빈민마을에서 태어나서 어려운 경제형편을 이기고 겨우겨우 학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을 하였고 그 이후로는 경제전문가로 회계전문가로 삼일회계법인과 금융감독원을 거쳐 한미회계법인을 창업해서 남들이 볼 때 소위 성공한 회계사로써의 삶을 쭉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갑자기 정치를 하겠다고 표현을 했을 때 그리고 제가 민주당을 선호하고 지지하는 성향의 회계사라고 이야기 했을 때 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커밍아웃과 같은 수준이었던 것이죠. 이 사회의 기득권자들과 있는 사람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그 사람들의 친구인줄 알았는데 보니까 자기네 편이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처음 들었던 말이 기득권 좌파였습니다.

지금은 강남좌파라는 말이 굉장히 익숙해져 있지만 저는 그 때 기득권 좌파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 주변사람들한테 듣게 되었는데요. 오늘 강의를 듣다 보니까 공익적 가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엘리트 또는 전문가 이것이 바로 국민이 원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84년도에 대학에 입학해서 87년도에 우리가 대선에서 실패하고 좌절하는 마음으로 88년도에 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리고 제대를 하고 그 이후에는 성실한 생활인이 되기 위해서 대학원도 진학을 했고 회계사 공부도 준비를 했습니다.

남들과 같이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던 것도 아니고 노동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에 이 몸을 헌신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게 우리 당의 선수들은 전부 이러한 3가지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들로만 많이 이루어져 있는데 지금 시대의 정치는 바로 열심히 생활을 해왔던 그런 모든 사람들이 정치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성실한 생활인으로써 열심히 살아오면서 갖고 있던 제 전문적 지식을 꼭 필요한 정치에 활용하고 싶어서 정치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특히 2009년도에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보면서 그 때 노제에 제가 참석을 했습니다.

그 날짜 아직도 기억하는데 2009년 5월 31일이었습니다.

그 때 종합소득세 마감하면서 우리 회계법인의 1년 농사가 결실을 맺는 날인데 오전에 노제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내려와서 일을 마감해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그 날 하루종일 분노와 슬픔에 사실은 인천을 내려오지 못하고 서울역 주변과 광화문을 방황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한 저에게 사실은 정치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1년 민주통합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여의도에 있는 몇몇 뜻있는 동기들과 함께 이 사회 어떻게 이끌어 가야될 것인가 단순하게 공부하는 그런 자리에서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정치를 도외시하고 정치를 단지 바라만 봤을 때 그럴 때는 사실은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누구를 지켜줄 수도 없고 공연히 탄식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를 내가 할 수 있고 남을 밀어줄 수도 있지만 저를 기꺼이 내가 직접 정치를 참여하는 선수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은 저처럼 성실하게 생활을 해왔던 사람도 정치라고 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이 사회를 옳고 바르게 이끌어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정치라는 수단에 다른 사람을 기대하지 않고 내가 직접 뛰어들어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2012년 19대 총선에 뛰어들었지만 거대한 기존의 정치의 큰 틀을 뛰어넘지 못했고 다시 3년간 준비해서 지역위원장이 되었습니다.

다가오고 있는 2016년 20대 총선에는 저같이 성실하고 준비되어 있고 정치에 희망 주는 사람들이 정치에 뛰어들 수 있는 그런 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정치를 하게 된 큰 결심은 바로 정치가 이 사회를 바로 이끌고 바로 바꾸고 많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는 공인회계사도 하는 경제전문가 회계전문가 재정전문가로써 제가 꼭 갖춘 전문적 지식이 정치에 활용되고 그거로 인해서 이 사회가 이 나라가 조금이라도 확장성이 있게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면 거기에 헌신하기 위해서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현 출마 지역구 선택 이유저는 인천 남구에서 태어난 토박이입니다.

1995년 인천 남구에서 연수구가 분구되어 신도시로 정립되었고 이로 인해 연수구의 아파트 형태 주거비율은 87%에 육박합니다.

현재는 매립으로 조성된 송도 신도시가 만들어져 지속적인 인구유입으로 연수(갑)(연수동 일대)과 연수을(송도동 일대)로 분구될 계획입니다.

저는 연수(갑) 지역에 출마할 계획입니다.

  인천 남구가 어머니 아버지들의 고향이자 어릴 적 삶의 터전이었다면 인천 연수구는 장성한 자녀들이 인천에 정주하면서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천의 문학산(학산)을 중심으로 학익동 문학동은 남구로 구분되어 있고 청학동 선학동은 연수구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태어나서 직접 살아온 삶의 터전이었던 만큼 누구보다도 지역문제와 살림살이 문제의 해결에 자신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보건복지에 대한 공약과 이유전국에서 유일하게 인천에만 어린이 전문병원이 없는데요. 연수구는 유치원 보육교사 아동학대 사건과 얼마 전에는 16kg 11세 여자아이가 맨발로 탈출한 초등생 감금사건이 벌어진 지역입니다.

명색에 교육부장관의 지역구인데 이런 상황이 연달아 벌어져서 굉장히 안타까웠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병문안도 갔었는데 예린이를 6인실 일반병실에다가 13일간이나 방치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24시간 간호를 전담하는 전문 간호인력도 없었고 체계적인 보살핌도 없어서 학대 피해아동을 치료하는데는 한계가 있었고 12월 24일에 언론에서 문제점들을 지적받고 나서야 개인병실로 옮기는 것을 보면서 인천에 반드시 어린이 전문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015년 3월에 인천 어린이전문병원(보건복지부지정 달빛 어린이병원)으로 한림병원이 지정되었으나 석달 만에 폐원 되었습니다.

운영방안과 지원체계를 확실히 정립하여 피해아동들을 구제하는 사회보호망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도 한 아이의 아버지로 우리 부모님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한 연수, 부모님들이 안심하고 학교를 보낼 수 있는 연수구가 되어야지만 부차적으로 교육도 있고 문화도 있고 여가도 있을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기초적인 단위의 안전도 정비하지 못하고는 더 큰 일을 해낼 수 없겠지요. 우리 아이들의 안전과 치료는 저 박찬대가 연수살림꾼의 마음으로 주부의 마음으로 해결해내고자 합니다.

 [예비후보자 본인의 의견을 서면 또는 온라인을 통하여 접수 기재했습니다.

본 내용은 헬스앤라이프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사보기http://health.compa.kr/event/reserved_candidate/rc_view.php?idx=65&page=1&search_party=&location_code=&city_code=&search_keyword=박찬대예비후보자 특집예비후보자 특집 페이지입니다.

health.compa.kr 박찬대 후보는 이날 선대위원장으로 나완수 변호사를 위촉하는 등 20대부터 70대까지 세대를 대표하는 다양한 위원들 100명을 1차 위촉했으며 3차 위촉식까지 500명을 위촉할 예정이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인천 연수갑 국회의원 예비후보 모습./아시아뉴스통신=양행복 이날 박 후보는 “나라살림전문가로서 가계부채와 나라부채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사명을 당과 구민들로부터 받았다”며 “새누리당이 연수구에서 지난 20년간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여러분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반드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 한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이어  박찬대 후보는 “가계부채 걱정 없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연수구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13일 단수공천을 받은 박찬대 예비후보는 1967년 인천에서 태어나 용현초, 대건중, 동인천고, 인하대학교를 졸업한 대표적인 인천 토박이로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 미국 공인회계사를 합격해 금융감독원 재직 후 한미회계법인 부대표로 활동했으며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988385&thread=11r02박찬대 예비후보, 선대본부 1차 위촉장 수여식아시아뉴스통신www.anewsa.com   지인찾기 http://me2.do/x8MNpUZu3. 후원회 안내(농협:302 1050 9022 61)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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