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마이클 잭슨



<프레디 머큐리>는 그가 생전에 인터뷰했던 내용들을 가지고 그의 생각을 알아볼 수 있게 엮은 독특한 형식의 책이었다.

<마이클 잭슨 자서전>은 제목 그대로 마이클 잭슨 본인이 과거를 회상하며 쓴 자서전이다.

세 권 모두 재미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니다.

그들 모두 슈퍼스타라는 점.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체험했으며, 정상에 오른 자의 느낌을 안다.

많은 스캔들과 부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읽는 사람들에게는 노력해야 할 이유와 성공을 향한 의지를 일깨워준다.

어떻게 하면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마이클 잭슨은 2009년 사망했다.

<자서전>을 발간된 것은 1988년이다.

<자서전>과 사망 사이에 물론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앨범들이 발매되었다.

그러나 동시대적인 경험이랄까, 개인적으로 마이클 잭슨의 절정은 1982년 발매된 <스릴러>(Thriller) 앨범이다.

현재까지 1억 장 넘게 팔려 역사상 최고로 많이 팔린 앨범이기도 하다.

그냥 팔린 게 아니다.

전 세계 어디서나 마이클 잭슨이 추는 문 워커 화면이 나왔다.

앨범 자체의 완성도도 있지만, 전 세계의 모든 젊은이들은 길거리에서 뒷걸음질 치게 만든 위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의 마이클 잭슨은 진정한 최고였다고 믿기에 이 책은 더더욱 재미있다.

마이클 잭슨과 형제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가수 지망생 경연대회에 출연했다.

결국 당대 흑인 음악의 최고봉이었던 모타운과 전속 계약을 맺게 된다.

사장인 배리 고디는 “너희들에 대한 것이 역사책에 쓰여지게 될 거”라고 ‘예언’했다.

그러면서 잭슨5의 최초의 레코드부터 세 번째까지 전부 넘버 원이 될 거라고 격려했다.

그것은 그대로 사실이 되었다.

어린 시절, <벤> 앨범. 1969년 11월 <아이 원트 유 백>이 발매되자 6주 동안 200만 장이 팔리면서 1위가 되었다.

다음 싱글 <ABC> 역시 3주 만에 200만 장이 팔렸다.

세 번째 싱글 <The Love You Save> 역시 1970년 6월 1위 자리에 등극했다.

잭슨5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면서 유사한 그룹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그 중에는 우리나라에서 미스 유니버스 대회가 처음으로 열릴 때 방한했던 도니 오스먼드가 속해있던 더 오스먼즈도 있었다.

그가 존경했던 연예인들은 진정한 프로페셔널들이었다.

최선을 다해서 자기 자신을 연마한 이들이었다.

마이클 잭슨은 그런 ‘선배’들을 표본으로 삼았다.

나에겐 존경하는 연예인, 음악인, 무용가들이 많이 있다.

어렸을 때 내가 보아온 것은 제임스 브라운,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프레드 아스테어, 진 켈리 등의 진짜 연예인들이었다.

위대한 연예인은 청중을 감동시킨다.

그들처럼. 진정한 위대함은 그런 것으로 시험되는 것이 아닐까. 미켈란젤로의 작품처럼 그들은 청중을 감동시킨다.

청중을 고르지 않는 것이다.

(p91

92)유명해지는 만큼, 성공을 거두는 만큼 개인적으로는 갈등이 더 커져 갔다.

1979년 마이클 잭슨이 21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와의 매니지먼트 계약 기간이 끝난다.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아버지를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

창작적인 면에서 실질적으로 아버지 세대와의 결별을 표한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그렇게 엔터테인먼트의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 유명해질수록 외로움은 심해져 갔다.

마이클 잭슨은 자기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고독한 인간이라고 믿고 있었다.

<스릴러> 앨범.  스무 살이 넘으면서, 형제들과 꾸렸던 잭슨즈에서 독립하면서 처음 낸 앨범은 <Off the Wall>이다.

퀸시 존스를 비롯한 많은 음악인들이 도움으로 완성도도 높았다.

앨범은 미국에서 600만 장이 팔렸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그 이상으로 위대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세계에서 퀸시 존스를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

마이클이 퀸시 존스를 처음 만난 것은 12살 때였다고 한다.

같은 자리에 있던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가 퀸시에게 “이 애는 빵이 인류의 식탁에 오른 후, 드물게 보는 굉장한 녀석이 될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퀸시도 “정말?” 이라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만났던 퀸시 존스에게 마이클은 말했다.

“앨범을 만들까 하는데 프로듀서 한 분을 소개시켜주셨으면 해요.” 어색한 순간. 여러 뮤지션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퀸시는 괜히 헛기침을 하기도 하고, 말꼬리를 흐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떠냐?” 나는 예술은 멋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미켈란젤로에게, 그리고 일에 관해 열중하는 그의 자세에 대하여 심취해 있었다.

그는 사람은 언젠가 죽지만, 자기의 업적은 계속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모든 정성과 힘을 다해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벽화를 그렸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아는 일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것을 깨뜨려서까지 고쳐 그리기도 했다.

그는 그것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포도주가 신맛이 난다면 내버려라”라고. (p256

257)“스릴러” 뮤직비디오. <스릴러>가 발매될 무렵 모타운 25주년 쇼에 출연해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마이클 잭슨은 다른 회사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쇼에 출연해서 “빌리 진”을 춤추며 노래했다.

약 5천만 명의 사람들이 그 프로그램을 보았다고 한다.

그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스릴러>를 구매했다.

“빌리 진”과 “빗 잇”에 이어 “스릴러”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한 편 한 편 나올 때마다 전 세계의 모든 젊은이들이 마이클 잭슨을 따라 스텝을 밟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더 메이킹 오브 스릴러> 뮤직비디오만 100만 장이 팔렸다.

앨범이 나온 후 홍보 캠페인을 펼치는 1년 사이에 <스릴러>는 무려 3천2백만 장이나 팔렸다.

그것은 완벽함을 추구했던 마이클 잭슨의 의지에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상 최고의 매상고를 기록할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 나는 소원을, 그리고 그 소원을 현실에 실현시키는 인간의 능력을 믿고 있다.

나는 해가 가라앉을 때, 그 해가 서쪽 수평선에 완전히 숨어버리기 전에 조요하게 내 비밀의 소원을 걸곤 했다.

태양이 내 소원을 받아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빛의 조각이 사라지기 전에 소원을 걸었던 것이다.

소원은 소원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최종 도달점이고, 의식, 무의식의 힘으로 그것을 현실에서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다.

(p214)그의 영원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문워크.<마이클 잭슨 자서전>을 통해서 팔의 전설인 그의 삶과 노력을 느끼게 된다.

마이클 잭슨은 치열한 삶을 살다 저 세상으로 떠났다.

<자서전>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성형에 관한 이야기, 아이들에 관한 여러 오해들은 이 책에서는 풀리지 않는다.

역시 <자서전>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다.

번역도 조금 거슬리는 편이다.

그래도 마이클 잭슨이 실제로 들려주는 듯한 생생한 육성을 느낄 수 있다.

  무려 50피트짜리 (약 15미터) 로봇을 만들어 네바다 사막을 거니는 홍보용 로봇을 만들고 싶어했음. 역시 스케일이 남다르신!!!? 2. 많은 사람들이 마이클과 그의 누나 라토야 잭슨(La Toya Jackson)은 동일인이라는 음모를 믿고 있다.

라토야 잭슨의 외모를 보면 끄덕끄덕

?? 3. Marvel 사를 거의 인수하려하였다.

이유는 그 자신이 스파이더맨이 되서 그 역활을 해보고 싶었다는!!!??? 4. 사후에 은행금고에 수백개의 미발표 곡들이 발견되었다.

 공개될 것인가 그냥 묻힐것인가!!! ??? 5. 911 테러당시 쌍둥이 빌딩에서 미팅이 있었으나 늦잠을 자는 바람에 화를 면함. 그 뿐만이 기네스 팰트로, 패티 오스틴, 쥴리 스토퍼, 마이클 로모나코, 래리 실버스타인, 이란 토르페, 마크 월버그, 사라 퍼거슨, 세쓰 맥팔레인도  같은 유명인들도 화를 면했다고 합니다.

  6. Beat it 뮤비에 실제 깡패들을 캐스팅 했다고 합니다.

??  7. 그가 입었던 사각 트렁크가 이베에서 무려 백만달러에 팔립니다.

근데 이 캘빈클라인 반바지는 2005년 아동성추행 사건때 경찰이 증거로 가져갔다는!!!! (그럼 산사람은??)?? 8. A특공대에서 알려진 Mr.T가 1980년 당시 그의 보디가드로 활동했습니다.

마이클 잭슨 뿐 아니라 스티브 맥퀸, 다이아나 로스, 무하마드 알리같은 유명인을 하루밤 삼천달러에 경호를 해줬다는군요. 단순히 배우인줄 알았는데 이 분야에서도 실력자인 모양입니다.

 ? 9. 주술사에게 부두 스티븐 스필버그를 저주해 주는 댓가로 십오만달러를 지출합니다.

빛에 쪼들리던 상황이었다던데, 무슨 악감정이 있었길.....---> 이 부분은 루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10. N Sync의 Gone이라는 곡은 져스틴 팀버레이크가 마이클 잭슨을 위해 쓴곡이라고 합니다.

져스틴은 마이클의 엄청난 팬이라고 전해집니다.

?? 11. 부검의는 마이클잭슨이 눈썹은 어두운 색으로 문신한 반면 입술은 핑크색으로 문신했다고 밝힙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마이클은 백반증으로 고생했으며 이를 감추기 위해 얼굴, 가슴, 배, 팔등에 두꺼운 화장을 하고 다녔죠...??? 12. Thriller의 제목이 거의 "Starlight"가 될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코러스도 "Starlight! Starlight sun...." 요런식으로!  어쨌거나 뭐가 됐든지간에 히트했겠죠. ??? 13.  프레디 머큐리와 듀오로 녹음한 적이 있는데 이는 녹음 후 30년이 지난 다음에야 발표가 됩니다.

(무슨 노래죠? 아시는 분!)?? 14. 심슨, 특히 바트 캐릭터에 대한 애정으로 90년대 히트곡 "Do the Bartman"을 아무런 댓가도 받지않고 작업을 해줍니다.

역시 멋있어요 마이클 잭슨!!!?? 15. 그가 제일 좋아한 만화 캐틱터는 피노키오 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는 생전에 디즈니랜드 25년 주년 기념식 등과 같은 디즈니 특별 프로그램에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 16. 지금은 여러모로 엉망이 되버린 나홀로 집에의 맥컬리 컬킨이 마이클의 두 아들의 대부라 합니다.

 맥컬리는 마이클은 친구로서 나를 보호해주었으며 그 어떤 부적절한 행위도 한적이 없다라고 지난 성추행 사건때 진술을 해주었죠.?? 17.  자선활동을 많이 하는 유명인들은 세계에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기리기 위해 좋종 검은 완장을 차곤합니다.

2000년에 마이클 잭슨은 팝스타중 가장 많이 자선활동을 한 사람으로 기네스에 오르기도 합니다.

?? 18. 마이클은 채식주의자였고 많은 사람들도 그에게 영감을 받아 채식주의자가 되었죠.  ?? 19. 그는 The Gloved One, Wacko Jacko, Jacko, The King of Pop, MJ 등과 같은 별명이 있었는데, 측근들은 그를 Smelly라고 불렀다는군요. 그에게선 어떤 품격있는 냄새가 났을까요... ^^  20. 그의 밀랍인형은 세계적으로 다섯곳의 Madame Tussauds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인형들은 주요 공연에서 보여준 그의 퍼포먼스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  사랑합니다.

마이클 잭슨! 영원히!!!!?      ..) 보류하고 있다가 와장창 올려버린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껏 내내 추억장사로 연명했다오늘은 마이클 잭슨의 공식적인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Invincible 얘기나 해볼까 한다.

Invincible은 95년작 HIStory 이후 6년 만에 출시된 음반인만큼 마이클 잭슨의 잠수함 같은(...) 음반 활동에 지쳤던 수많은 팬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던 앨범이다.

제목부터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감히 '무적'이라는 단어를 앨범명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은 팝계에서 마이클 잭슨 하나 뿐일거라 장담한다.

동시에 깔별로 앨범 커버색을 달리 출시하는 등 치졸한(...) 마케팅 수법을 일삼아 팬들이 치를 떨며 지갑을 열게 만들었던 애증의 앨범이기도 하다.

나는 2001년에 노란색을 구입했는데 가끔 저 노란색 앨범 좀 팔라며 쪽지를 날리는 분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앨범을 돈 받고 팔 수 없는 이유는 워낙 이 앨범을 막 굴리는 바람에(...) 앨범 파손이 무척 심해서 그렇다.

아예 케이스가 CD와 따로 노는 수준이니까. 어린 시절에 저걸 샀으니 그땐 음반을 소중히 보관해야 한다는 개념조차 없어서 그랬을텐데 만약 이 앨범이 요새 나왔다면 절대 저런 식으로 보관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 앨범이 이 꼴이 나버린 것은 이 앨범이 내가 '머리털 나고 처음 돈 주고 샀던' 음반이라 케이스가 분리될 때까지 듣고 또 들었기 때문이다.

국내판이다보니 앨범 내부엔 늘 그렇듯이 평론가들의 음반 리뷰가 있다.

2001년 9월?쯤에 마이클 잭슨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가 있었는데 그 즈음에 나온 리뷰인걸로 보인다.

"마잭 성님의 위엄 좀 보시라우." 정도로 쓴 글인데 그 당시엔 팬으로서의 내공이 얕다보니 대체 뭔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새삼 마이클 잭슨 사후에 오랜만에 이 리뷰를 보니 이 정도 수준이라도 제법 마이클 잭슨에 대해 좋게 설명하려 애쓴게 느껴진다.

'와코잭코'가 일상적으로 타블로이드에 오르락내리락하던 시절에 이런 좋은 글을 써주시다니...OTL불싸조 한상철 씨만큼 마잭 음반 리뷰를 잘 쓰시는 분은 없다 생각하시지만 이분도 나름대로 인빈서블을 꼼꼼하게 듣고 쓰신 모양이다.

잘 보면 트랙별 감상평이 꽤 찰지다.

로드니 저킨스를 '제 2의 퀸시 존스를 노리는'이라 표현한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다.

Invincible의 메인 프로듀서 '다크차일드'의 로드니 저킨스는 Dangerous 시절부터 마이클 잭슨의 사이드킥이었던 테디 라일리의 제자다.

라일리 입장에선 나름대로 저킨스를 마잭에게 연결하면서 마이클 잭슨과의 공조 체계를 구축하려 했겠지만 당시 고작 24살에 불과했던 로드니 저킨스가 30년 넘게 음악만 파고 살았던 마이클 잭슨이라는 인물을 품기에 그릇이 많이 부족한 인물이었다는 것은 누구든 인정할거다.

뭐 여러 대외적 요인을 감안하고서라도 인빈서블은 그리 성공하지 못 했으니 로드니 저킨스의 새로운 시도는 대차게 실패ㅠ... 웃긴 것이 정작 로드니 저킨스와 자넷 잭슨과의 궁합은 잘 맞았던 걸 생각해 보면 로드니 저킨스는 주로 여가수에 특화된 프로듀서인가보다.

부클릿 초반엔 작사가인 캐롤 베이어 세이거에게 남긴 마이클 잭슨과 로드니 저킨스의 메시지가 있는데 캐롤은 마이클 잭슨의 Off the wall의 It's the falling in love의 작사를 맡은 그 아줌마다(...) 인빈서블에서는 You are my life의 작사를 맡아주셨다.

참고로 이분은 47년생인데 마잭보다 장수하시는 중 ^.ㅠ 역시 스트레스는 만악의 근원.인빈서블의 부클릿. 인빈서블 부클릿 속 마이클 잭슨 사진은 진짜 이거 하나 뿐이다.

인빈서블이 워낙 급하게 낸 앨범으로 악명이 높은 앨범이지만 오랜만에 나온 앨범 소책자가 이 정도 허접한 퀄리티면 마잭 vs 소니가 될 만하다(...)소니를 죽입시다 소니는 마잭의 원쑤 하지만 소니의 박한 대우만이 문제가 아니라 인빈서블은 팬들 사이에서도 '범작'이냐 '평작'이냐를 두고 호불호가 정말 심하게 갈렸던 앨범이다.

'마이클 잭슨 = 댄스'라는 공식이 워낙 강하게 박혀 있는 대중이 봤을 때 발라드 트랙만 10곡이 넘는 이 앨범이 무척 어색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마이클 잭슨은 이것 땜시 생전 처음으로 사인회까지 열었다또한 70년대 말 카세트 테입 레코더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불법 음원 다운로드가 기승을 부렸던 시절이니 Thriller 앨범 하나를 6000만장 가까이 팔아먹었던 마이클 잭슨의 전성기 시절 위엄과 비교를 해봤을 때 상업적으로 실패해버린 이 앨범을 흑역사 취급하는 팬들도 꽤 많이 봤다.

다만 내 경우는 2001년 당시 이 음반을 처음 청취했을 때만 해도 마이클 잭슨의 전성기 대표곡들의 영향을 좀 덜 받았던 편이라 이 앨범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고 순수하게 인빈서블을 즐길 수 있었다.

사실 소니도 겉으론 신경써주긴 했었다.

싱글 홍보랑 음원 라디오 송출을 안해줘서 문제였지(...)물론 예전만 해도 이 앨범을 '시대를 앞선 앨범'이라며지들끼리 호들갑을 떨던(...) 몇몇 팬들의 의견에는 공감하지 못 했지만 발매된 지 15년이 지나 발라드 트랙을 다시 들어봐도 요즘 노래들과 이질감이 없는 것을 보면 '시대를 앞선'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잘 만든 앨범이라는걸 다시금 느낀다.

그래서인지 2년 전에 쓴 내가 좋아하는 마이클 잭슨의 발라드 목록에도 인빈서블의 트랙이 꽤 많아서 그 글을 읽던 이들도 의문을 표하기도 했고ㅋㅋㅋ지금 와서 생각하건대 인빈서블은 마이클 잭슨 입장에서도 꽤 모험적인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다.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