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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소산 박대성 화백님은 우리나라 최고의 한국화가로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경북 청도군 출신인 화백님은 1950년 시작된 한국전쟁 당시 양친을 잃었고, 어린 나이에 장애를 입기도 하셨습니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어릴적부터 붓글씨를 쓰며 필력을 키웠으며,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본인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오셨다고 하니박대성 화백님의 끈기와 노력, 그간의 삶에 경의를 표하게 되네요. 소산 박대성 화백님이 본인의 작품 830여점을 기증하여 이를 기본 소장품으로 출발한 경주 최초의 공립미술관인 솔거미술관이 경주엑스포 공원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주 솔거미술관 참 아름답죠?바로 이 장소에서 5월20일(금) 오후 4시 소산 박대성 화업 50년 기념전의 개막식이 열리게 됩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님, 최양식 경주시장님, 박권현 경북도의회 문화환경위원장님, 권영길 경주시의회 의장님을 비롯많은 분들이 이번 전시의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 오실 예정입니다.

 특히 소설가 이문열 선생님, 배우 유준상씨, 가수 김수철씨 등 박대성 화백님과 개인적인 인연을 맺고 있는 유명인사들도 많이 참석하실 예정입니다.

지난해 경주 솔거미술관을 찾았던 배우 유준상씨와 박대성 화백님 모습입니다소설가 이문열 작가님과 박대성 화백님이 작품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이번 특별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도 몇가지 소개해 드릴께요

^^솔거의 노래 신라시대 화가인 솔거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셨죠?솔거가 황룡사 벽에 그린 노송도 그림이 너무 실제같아서 새들이 날아와 앉으려다가 부딪혀서 떨어졌다는 일화가 있는데요. 이 작품은 화백님이 어릴적 들은 솔거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입니다.

실제로 보면 작품이 뿜어내는 기운에 압도되는 느낌이 드는  대작입니다.

  금강설경이 작품은 소산 화백님이 금강산을 15회나 다녀오신 후 금강산의 겨울 풍경을 담은 작품입니다.

눈덮힌 금강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풍경 가운데 설경은 단순하면서도 그리기 쉽지 않은 소재라고 합니다.

쌓인 눈의 부분은 붓질을 하지 않는데, 붓질을 하지 않고 대상을 표현한다는 것이흥미롭고 독특합니다.

법의 이 작품은 성철스님이 입었던 법의를 그대로 그린 작품입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이 작품들 외에도 80여점의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다음에 더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해드릴께요

^^소산 박대성 화백님의 50년 화업의 진수를 한 자리에 모은 이번 전시는 9월30일까지 계속됩니다.

절대 놓치지 마시구요. 시간이 된다면 5월20일(금) 오후4시에 열리는 개막식에도 놀러오세요

이문열 작가님, 가수 김수철님, 배우 유준상님의 팬이라면 특히 놓칠수 없는 기회겠죠?^^많이들 오세요

^^이상 오늘의 소식을 마치구요. 다음에도 더 알찬 소식, 우아한 소식으로 찾아올께요

^^* 포석정에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생을 마친 왕의 영혼을 하늘로 보내려고 옛 사람들이 무덤가에 심은 소나무들이다.

집 뒤 오솔길 따라 송림을 더 들어가면 왕을 셋 모신 삼릉이 있다.

사진작가 배병우가 찍어 세계를 매료시킨 소나무숲이 신비롭도록 아름다운 곳이다.

용 비늘 같은 나무 등껍질들이 아침 안개에 잠겨 있다.

박대성은 아침마다 집을 나서 경애왕릉부터 삼릉, 포석정까지 천천히 걷는다.

걸으면서 경주가 들려주는 신화에 귀 기울인다.

   박대성은 스스로를 능(陵)지기라고 했다.

이렇게 복 받은 능지기도 있을까. 왕복 5㎞쯤 되는 산책길은 그가 이미지를 길어 올리는 보고(寶庫)다.

그의 작품 열에 일곱이 경주를 담는다.

그는 작업실 통유리로 내다보이는 뜰도 정성껏 가꾼다.

자갈 깔아 맨발로 오간다.

자그마한 연못은 연꽃과 어리연꽃을 내밀었고 못가엔 빨간 석류꽃이 한창이다.

대밭 사이로 갖가지 석상(石像)과 괴석도 세워놓았다.

아담한 대나무 정자 묵은각(墨隱閣), 천장 유리에 소나무와 매화가 드리운 황토방 통천옥(通天獄)도 손수 지었다.

   뜰엔 꿩이 날아들고 산토끼도 드나든다.

가을이면 연못에 기러기가 내려앉아 노닌다.

집 뒤 솔숲에선 뻐꾸기가 우짖고 고라니가 뛰어다닌다.

"나이 들어 거동 불편해지면 뜰이 소재가 될 거라는 생각에서 꾸몄지요. 모네의 수련 정원처럼." 그는 "그래서 집은 화가에게 중요하다.

집이 삶이다"라고 했다.

박대성과 경주의 인연은 어릴 적으로 거슬러간다.

경북 청도에서 한의사였던 아버지는 1949년 빨치산들에게 '반동지주'로 지목돼 살해당했다.

빨치산들은 아버지에게 낫을 휘둘렀다.

아버지 등에 업혀 있던 네 살 박대성은 왼팔 팔꿈치 아래를 잃었다.

    그가 예닐곱 살 때 학교 선생님이던 맏형이 솔거 이야기를 들려 줬다.

가난했지만 마당에 꼬챙이로, 삽에 숯으로 그림을 그린 끝에 경주 황룡사 벽화를 남겼다는 신라 천재 솔거 얘기였다.

어린 동생이 팔 하나 없는 어려움을 이겨낼 길로 그림을 생각한 형의 바람대로 그는 그리기 시작했다.

계시(啓示)처럼 경주로 신라를 찾아오기까지 그로부터 40년이 걸렸다.

박대성은 아이들 놀림을 견디다 못해 중학교까지만 다녔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그는 "오다가 이리 처박히고 저리 꼬꾸라지고 번갯불 같은 어른을 만나기도 하며 독학의 길을 걸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없어진 한쪽 팔이 제일 큰 스승이었다.

심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이며 남보다 더 그렸고 더 고뇌했다.

몸을 내돌리지 않으면 정신을 시퍼렇게 벼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20대였던 1970년대, 국전에서 내리 여덟 번을 수상하며 동양화단을 흔들었다     그는 74년 후견인 주선으로 대만 고궁박물관에 여섯 달 연수를 갔다.

수장고에서 하루 한두 점씩 중국 고미술 작품을 꺼내보는 행운을 누렸다.

그는 "엄청나게 넓은 중국 미술의 스펙트럼을 보며 회화의 고정관념을 깼다.

내 서화관(書畵觀)을 열고 세웠다"고 했다.

80년대엔 중국 우루무치부터 히말라야 넘어 실크로드를 갔고, 카슈미르·인도·중동을 돌아다녔다.

94년엔 오래전부터 그를 압박해 온 현대미술의 정체를 찾아 뉴욕 소호로 떠났다.

창고 얻어 작업도 하고 유명 화가들 강의도 들었다.

1년 돼 가던 어느날 수채화 수업에서 우리 먹과 붓으로 순식간에 작품을 그려냈더니 선생이 경악했다.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 것 모르고 남의 것부터 찾았구나.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인데.' 뇌리에 번쩍하고 경주가 떠올랐다.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그날로 보따리 싸 들고 돌아와 이튿날 불국사로 내려왔다.

   박대성은 다짜고짜 스님들을 붙들고 통사정해 기거할 방을 얻었다.

11월 불국사에서 맞은 첫 밤 대웅전 앞마당에 서니 타임머신 타고 신라에 온 듯했다.

얼마나 흥분했던지 쉴 새 없이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아홉 차례나 들락거렸다.

그는 "석가탑과 다보탑 사이 정중앙에 뜨는 정월 보름달은 심장이 떨려 5분을 못 본다"고도 했다.

이듬해 초 매운 겨울날, 불국사에 7년 동안 눈이 안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함께 묵던 제자에게 "불국사 설경을 그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하곤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제자가 깨워서 보니 하얗게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20분 만에 그쳤고 두 시간 만에 녹아 버렸다.

그 사이 정신없이 스케치를 했다.

그날 감격은 드물게 불국사 전경(全景)을 다 아우른 가로 8m, 세로 2.7m 대작 '불국 설경'으로 태어났다.

그에게 경주는 신화의 동네다.


영적(靈的) 기운을 뿜어낸다.

그는 "경주 살다 보면 때때로 현실세계가 아닌 듯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달밤이나 안개 낀 날, 집 뒤 왕릉에 나와 보면 더욱 그렇다.

그의 집이 깃들인 남산도 갖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경주는 개발이 제한돼 하늘이 넓게 보이고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곳이 많다.

그것만으로도 작가의 창의적 기운을 북돋아 준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지금의 경주를 지켜 준 경주 사람들이 그는 고맙다.

그 깊은 정신이 존경스럽다.

박대성은 "경주야말로 작가가 살 만한 곳"이라고 했다.

불국사를 지은 김대성과 이름이 같은 것만 봐도 "경주는 내게 인연을 넘어 운명"이라고 했다.

 ▲ 일러스트=이철원 burbuck@chosun.com. 김관용 경북지사, 신달자 시인, 이문열 소설가, 이왈종 화가,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회장,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 등 소산 화백과 오랜 인연과 우정을 맺고 있는 지인들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엮은이 윤범모 예술총감독은 책의 서문에서 “소산의 폭 넓은 예술세계를 반영하듯 소산을 아끼는 인사가 많아 꼭 모셔야 할 필자를 다 모시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라며 “박 화백 지인들의 에세이 뿐 아니라 소산의 대표작 도판 모음과 작가론 등 자료 성격의 문헌들을 재수록해 문헌적 가치를 높이고자 했다”고 밝혔다.

김관용 경북지사는 “소산은 그의 작업실을 불편당(不便堂)이라 붙였을 만큼 ‘불편’을 선호한다”며 “소산은 경주의 보배이며 소산이 기증한 작품을 토대로 해 건립된 솔거미술관은 경주의 보물로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대성 화백 뿐 아니라 부인 정미연 화백과도 친분이 있는 신달자 시인은 “박 화백의 절대자랑은 ‘끈기’라는 것을 나는 안다.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면서 부드러움이 있다.

그의 그림에도 잘 나타나는 자연성의 힘과 유연성이 그 어느 그림에나 녹아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소산 화백과 40년 이상의 우정을 맺고 있는 이왈종 화가는 “소산 선생이 한국화의 실경산수를 독보적인 화풍으로 이룩한 업적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젊은 후배들이 소산풍을 많이 흠모해 그 열기가 식을 줄 몰랐다”며 “아직 건강하고 젊은 소산이 앞으로도 오랜 기간 새로운 작품에 도전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회장은 “인사동에서 가나화랑을 열고 정식 계약한 첫 번째 작가가 바로 소산 화백”이라며 “소산의 장점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그는 시장논리와 무관하게 자신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갔다.

작품 판매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소산은 고집 있는 화가였다”고 말했다.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호는 소산이라고 하고서 마음속의 대산(大山)을 깊숙하면서도 오묘하게 펼쳐 보이는 장관을 거듭 만나면서 감탄했다.

오랜 기간 동안 뻗어난 거작 산맥이 눈에 선하다”며 “소산의 그림에 관해 말하는 것은 분에 넘친다.

그림보다 더 좋은 말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소산 박대성 화백은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미술수업을 했으며 1979년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가나아트센터를 비롯해 서울 호암 갤러리, 파리 가나보부르, 베이징 중국미술관, 터키 이스탄불 마르마라대 미술관, 뉴욕 코리아 소사이어티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는 수묵화를 기본으로 서화일체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으며, 1999년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경주로 내려와 경주 남산자락 삼릉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박 화백은 지역 예술발전을 위해 830점의 소중한 작품을 경상북도와 경주시에 기증했다.

작품은 회화 435점, 글씨 182점, 작품 활동을 위해 소장하고 있던 먹, 벼루 등 213점이며 그의 기증작을 기본 소장품으로 한 경주 최초의 공립미술관인 경주 솔거미술관이 지난해 개관됐다.

 현재 솔거미술관에서는 소산 박대성 화업 반세기를 기념하는 특별전 ‘솔거묵향-먹 향기와 더불어 살다’전이 열리고 있다.

 ‘솔거묵향’전은 화업(畵業) 반세기 소산 예술의 진수를 한 자리에 모은 전시로 대작 ‘솔거의 노래’, ‘제주곰솔’, ‘금강설경’, ‘법의’ 등 82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전시는 오는 9월25일까지 계속된다.

(2016.5.29. 국민일보/ 경주=김재산 )  국민일보 http://www.kmib.co.kr  포석정에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생을 마친 왕의 영혼을 하늘로 보내려고 옛 사람들이 무덤가에 심은 소나무들이다.

집 뒤 오솔길 따라 송림을 더 들어가면 왕을 셋 모신 삼릉이 있다.

사진작가 배병우가 찍어 세계를 매료시킨 소나무숲이 신비롭도록 아름다운 곳이다.

용 비늘 같은 나무 등껍질들이 아침 안개에 잠겨 있다.

박대성은 아침마다 집을 나서 경애왕릉부터 삼릉, 포석정까지 천천히 걷는다.

걸으면서 경주가 들려주는 신화에 귀 기울인다.

   박대성은 스스로를 능(陵)지기라고 했다.

이렇게 복 받은 능지기도 있을까. 왕복 5㎞쯤 되는 산책길은 그가 이미지를 길어 올리는 보고(寶庫)다.

그의 작품 열에 일곱이 경주를 담는다.

그는 작업실 통유리로 내다보이는 뜰도 정성껏 가꾼다.

자갈 깔아 맨발로 오간다.

자그마한 연못은 연꽃과 어리연꽃을 내밀었고 못가엔 빨간 석류꽃이 한창이다.

대밭 사이로 갖가지 석상(石像)과 괴석도 세워놓았다.

아담한 대나무 정자 묵은각(墨隱閣), 천장 유리에 소나무와 매화가 드리운 황토방 통천옥(通天獄)도 손수 지었다.

   뜰엔 꿩이 날아들고 산토끼도 드나든다.

가을이면 연못에 기러기가 내려앉아 노닌다.

집 뒤 솔숲에선 뻐꾸기가 우짖고 고라니가 뛰어다닌다.

"나이 들어 거동 불편해지면 뜰이 소재가 될 거라는 생각에서 꾸몄지요. 모네의 수련 정원처럼." 그는 "그래서 집은 화가에게 중요하다.

집이 삶이다"라고 했다.

박대성과 경주의 인연은 어릴 적으로 거슬러간다.

[박대성] 세상에. 왜..


경북 청도에서 한의사였던 아버지는 1949년 빨치산들에게 '반동지주'로 지목돼 살해당했다.

빨치산들은 아버지에게 낫을 휘둘렀다.

아버지 등에 업혀 있던 네 살 박대성은 왼팔 팔꿈치 아래를 잃었다.

    그가 예닐곱 살 때 학교 선생님이던 맏형이 솔거 이야기를 들려 줬다.

가난했지만 마당에 꼬챙이로, 삽에 숯으로 그림을 그린 끝에 경주 황룡사 벽화를 남겼다는 신라 천재 솔거 얘기였다.

어린 동생이 팔 하나 없는 어려움을 이겨낼 길로 그림을 생각한 형의 바람대로 그는 그리기 시작했다.

계시(啓示)처럼 경주로 신라를 찾아오기까지 그로부터 40년이 걸렸다.

박대성은 아이들 놀림을 견디다 못해 중학교까지만 다녔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그는 "오다가 이리 처박히고 저리 꼬꾸라지고 번갯불 같은 어른을 만나기도 하며 독학의 길을 걸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없어진 한쪽 팔이 제일 큰 스승이었다.

심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이며 남보다 더 그렸고 더 고뇌했다.

몸을 내돌리지 않으면 정신을 시퍼렇게 벼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20대였던 1970년대, 국전에서 내리 여덟 번을 수상하며 동양화단을 흔들었다     그는 74년 후견인 주선으로 대만 고궁박물관에 여섯 달 연수를 갔다.

수장고에서 하루 한두 점씩 중국 고미술 작품을 꺼내보는 행운을 누렸다.

그는 "엄청나게 넓은 중국 미술의 스펙트럼을 보며 회화의 고정관념을 깼다.

내 서화관(書畵觀)을 열고 세웠다"고 했다.

80년대엔 중국 우루무치부터 히말라야 넘어 실크로드를 갔고, 카슈미르·인도·중동을 돌아다녔다.

94년엔 오래전부터 그를 압박해 온 현대미술의 정체를 찾아 뉴욕 소호로 떠났다.

창고 얻어 작업도 하고 유명 화가들 강의도 들었다.

1년 돼 가던 어느날 수채화 수업에서 우리 먹과 붓으로 순식간에 작품을 그려냈더니 선생이 경악했다.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 것 모르고 남의 것부터 찾았구나.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인데.' 뇌리에 번쩍하고 경주가 떠올랐다.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그날로 보따리 싸 들고 돌아와 이튿날 불국사로 내려왔다.

   박대성은 다짜고짜 스님들을 붙들고 통사정해 기거할 방을 얻었다.

11월 불국사에서 맞은 첫 밤 대웅전 앞마당에 서니 타임머신 타고 신라에 온 듯했다.

얼마나 흥분했던지 쉴 새 없이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아홉 차례나 들락거렸다.

그는 "석가탑과 다보탑 사이 정중앙에 뜨는 정월 보름달은 심장이 떨려 5분을 못 본다"고도 했다.

이듬해 초 매운 겨울날, 불국사에 7년 동안 눈이 안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함께 묵던 제자에게 "불국사 설경을 그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하곤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제자가 깨워서 보니 하얗게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20분 만에 그쳤고 두 시간 만에 녹아 버렸다.

그 사이 정신없이 스케치를 했다.

그날 감격은 드물게 불국사 전경(全景)을 다 아우른 가로 8m, 세로 2.7m 대작 '불국 설경'으로 태어났다.

그에게 경주는 신화의 동네다.


영적(靈的) 기운을 뿜어낸다.

그는 "경주 살다 보면 때때로 현실세계가 아닌 듯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달밤이나 안개 낀 날, 집 뒤 왕릉에 나와 보면 더욱 그렇다.

그의 집이 깃들인 남산도 갖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경주는 개발이 제한돼 하늘이 넓게 보이고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곳이 많다.

그것만으로도 작가의 창의적 기운을 북돋아 준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지금의 경주를 지켜 준 경주 사람들이 그는 고맙다.

그 깊은 정신이 존경스럽다.

박대성은 "경주야말로 작가가 살 만한 곳"이라고 했다.

불국사를 지은 김대성과 이름이 같은 것만 봐도 "경주는 내게 인연을 넘어 운명"이라고 했다.

 ▲ 일러스트=이철원 burbuck@chosun.com. 김관용 경북지사, 신달자 시인, 이문열 소설가, 이왈종 화가,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회장,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 등 소산 화백과 오랜 인연과 우정을 맺고 있는 지인들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엮은이 윤범모 예술총감독은 책의 서문에서 “소산의 폭 넓은 예술세계를 반영하듯 소산을 아끼는 인사가 많아 꼭 모셔야 할 필자를 다 모시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라며 “박 화백 지인들의 에세이 뿐 아니라 소산의 대표작 도판 모음과 작가론 등 자료 성격의 문헌들을 재수록해 문헌적 가치를 높이고자 했다”고 밝혔다.

김관용 경북지사는 “소산은 그의 작업실을 불편당(不便堂)이라 붙였을 만큼 ‘불편’을 선호한다”며 “소산은 경주의 보배이며 소산이 기증한 작품을 토대로 해 건립된 솔거미술관은 경주의 보물로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대성 화백 뿐 아니라 부인 정미연 화백과도 친분이 있는 신달자 시인은 “박 화백의 절대자랑은 ‘끈기’라는 것을 나는 안다.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면서 부드러움이 있다.

그의 그림에도 잘 나타나는 자연성의 힘과 유연성이 그 어느 그림에나 녹아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소산 화백과 40년 이상의 우정을 맺고 있는 이왈종 화가는 “소산 선생이 한국화의 실경산수를 독보적인 화풍으로 이룩한 업적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젊은 후배들이 소산풍을 많이 흠모해 그 열기가 식을 줄 몰랐다”며 “아직 건강하고 젊은 소산이 앞으로도 오랜 기간 새로운 작품에 도전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회장은 “인사동에서 가나화랑을 열고 정식 계약한 첫 번째 작가가 바로 소산 화백”이라며 “소산의 장점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그는 시장논리와 무관하게 자신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갔다.

작품 판매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소산은 고집 있는 화가였다”고 말했다.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호는 소산이라고 하고서 마음속의 대산(大山)을 깊숙하면서도 오묘하게 펼쳐 보이는 장관을 거듭 만나면서 감탄했다.

오랜 기간 동안 뻗어난 거작 산맥이 눈에 선하다”며 “소산의 그림에 관해 말하는 것은 분에 넘친다.

그림보다 더 좋은 말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소산 박대성 화백은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미술수업을 했으며 1979년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가나아트센터를 비롯해 서울 호암 갤러리, 파리 가나보부르, 베이징 중국미술관, 터키 이스탄불 마르마라대 미술관, 뉴욕 코리아 소사이어티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는 수묵화를 기본으로 서화일체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으며, 1999년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경주로 내려와 경주 남산자락 삼릉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박대성] 최선의 선택



박 화백은 지역 예술발전을 위해 830점의 소중한 작품을 경상북도와 경주시에 기증했다.

작품은 회화 435점, 글씨 182점, 작품 활동을 위해 소장하고 있던 먹, 벼루 등 213점이며 그의 기증작을 기본 소장품으로 한 경주 최초의 공립미술관인 경주 솔거미술관이 지난해 개관됐다.

 현재 솔거미술관에서는 소산 박대성 화업 반세기를 기념하는 특별전 ‘솔거묵향-먹 향기와 더불어 살다’전이 열리고 있다.

 ‘솔거묵향’전은 화업(畵業) 반세기 소산 예술의 진수를 한 자리에 모은 전시로 대작 ‘솔거의 노래’, ‘제주곰솔’, ‘금강설경’, ‘법의’ 등 82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전시는 오는 9월25일까지 계속된다.

(2016.5.29. 국민일보/ 경주=김재산 )  국민일보 http://www.kmib.co.kr  수묵의 카오스다! 우리는 더 이상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박대성의 작품은 말없이 증언한다.

자연 속에 잠재되어 있는 원초적인 본성이 그를 통해 다시금 깨어나고 있다.

우리 회화의 역사상 이처럼 통렬한 작품을 본 적이 없고, 이처럼 장쾌한 기상이 서려있는 작품을 가진 적이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중국의 장다첸(張大千)이나 리커란(李可染)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박대성은 수묵의 세찬 기세로 우리의 화단 속에 우뚝 서있기 때문이다.

  1978년 그가 중앙미술대전을 통해 혜성같이 등장하였을 때, 누구보다 날카롭고 누구보다 세밀한 화풍을 선보였다.

가을의 쓸쓸한 정경을 섬세한 붓질로 묘사하고, 갈색의 톤으로 물들이며, 감각적인 구도로 탄생시켰다.

리얼리티에 대한 그의 탐색은 지금도 도자기와 탈속에서 치열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는 단순히 세밀한 묘사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흥이 나지 않으면 그림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화가는 늘 가슴을 촉촉하게 일구어나가야 한다.

메마른 감정으로는 결코 대상의 진면목을 나타내지 못한다.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감성이 녹아있는 리얼리티다.

 어느 날 그는 도자기를 그리다 갑자기 붓을 멈추었다.

치밀한 묘사와 다른 세계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언가 ‘애절한 흐느낌’이 느껴지는 그러한 이미지다.

이는 기교를 넘어선 감흥이요, 사실적 묘사와 다른 차원의 감흥적인 리얼리티다.

순박한 백자 항아리는 추상으로 환원되고, 그 안의 대나무가 흉중성죽(胸中成竹)처럼 그가 깨달은 대나무의 진수를 보여준다.

                                                <만월>  그는 강렬한 이미지만 향해 내달리지 않는다.

그 속에는 느닷없이 금빛을 발하는 부처님이 등장하고, 세밀하게 묘사된 집이 강한 대조를 이루며, 명랑한 색채의 바위가 경쾌하게 배치된다.

강약의 대비, 음양의 조화, 경중(輕重)의 절제로 균형을 잡는다.

힘찬 붓질과 강한 먹빛을 구사할 뿐만 아니라 서정정인 감성도 함께 지녔다.

그의 작품을 보노라면,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과 더불어 미물의 호흡조차 놓치지 않는 예민한 감수성이 느껴진다.

그는 호방함과 세밀함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스케일을 갖추면 세밀함이 부족하고 디테일을 갖추면 강렬함이 부족한데, 그는 스케일과 디테일의 양 극단을 힘껏 거머쥐고 자유롭게 넘나든다.

글 I 정병모       <오후여담>박대성 화백과 ‘뇌관’‘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하고 시작하는 박두진 작사, 김동진 작곡의 ‘6·25의 노래’ 그대로 ‘6·25’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예외없이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되는 날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전쟁을 겪은 세대는 물론 겪지 않은 세대 역시 직·간접적인 상처가 크고 깊을 뿐만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다.

수묵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세계적 한국화가인 소산(小山) 박대성 화백도 그렇다.

1945년에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박 화백은 6·25 전쟁통에 부모도 잃고 왼쪽 팔도 잃었다.

정규학교를 전혀 다니지 못하고 10세 때부터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하면서 겪은 고초가 오죽 컸겠는가. “신체적 불구를 극복하기 위해 죽기살기로 그림에 매달렸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는 그의 말대로 온갖 고난을 딛고 일어선 그의 작품은 현대 한국화 대작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국제 미술시장에서 고가에 팔리고 있고, 국립현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미국 휴스턴 미술관과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에는 세계와 겨룰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해 있고, 한국에서 가장 유서 깊고 가장 세계적인 곳이 경북 경주’라고 믿어 1960년대 중반부터 ‘천년 고도(古都)’의 다양한 면모를 그려오다 2000년에 아예 경주에 한옥 화실을 짓고 정착한 박 화백. 그의 작품에 대해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강렬한 에너지가 천지를 뒤흔드는 수묵의 카오스”라면서 “한국은 더이상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지로 증언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전시관에서 30일까지 ‘현대가 깃든 전통’을 작품화해 초대전을 열고 있는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런 요지로 말했다.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서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

전통을 바탕으로 모던을 수용해야 한다.

그러려면 뭔가 열려 있어야 한다.

닫혀 있으면 썩게 마련이다.

경주는 현대성이 부족하다.

신라 천 년의 잠을 깨우는 ‘뇌관’이 되고 싶다.

”6·25의 상흔을 딛고 세계로 도약한 박 화백이 ‘뇌관’이 돼 깨우고 싶은 것이 잠자고 있는 ‘천년 고도’의 문화와 전통뿐이겠는가. 사회 일각에서 잊어가고 있는 북한의 6·25 남침과 적화통일 야욕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뇌관 또한 되고 싶어할 성싶다.

[김종호 / 논설위원]문화일보 2009-06-24 ---------------------------------------------  60년 한국화 인생, 천년고도서 펼쳐진다박대성 초대전…24일부터 경주세계문화엑스포서 실경 산수 진수 보여줘기사 | 2009-04-23현향'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곳' 경주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흡입한다는 한국화가 소산(小山) 박대성(朴大成·64) 화백. 지난 99년부터 남산 기슭에 정착한 그가 오는 24일부터 6월30일까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초대전'을 갖는다.

"이번 전시회 준비에 신경을 많이 써서 '골병'이 많이 들었습니다.

"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엑스포문화센터) 200여 평 전시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60년 화력을 쏟아 부은 생애 최고의 대작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분황사, 포석정, 서출지 등 천년고도의 속살을 화폭에 담은 진경산수(眞景山水)와 부처, 도자기 등 고미(古味)를 다룬 작품이 주를 이룬다.

작게는 소품 6호에서 크게는 수천 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12점이 한 작품인 경우도 있어 전체 출품작이 몇 점이라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대부분 신작이며 몇몇 미공개 작품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박대성 화백박 화백의 애장품인 고려시대 벼루와 송나라·연나라 때 화첩 등 보물급 유물 80여점도 함께 전시된다.

"팔자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지만 무학이 내겐 행운이었고, 자연이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그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한국전쟁 때 부모님과 왼손을 잃어버렸고 혈혈단신으로 고학했다.

학벌과 인맥 없이는 '쳐주지' 않았던 1970년대 국전을 휩쓸고 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한국 화단의 혁명적 이변'을 일으켰다.

겸재 정선, 변관식, 이상범에 이어 실경 산수의 맥을 잇는 작가로 명성을 얻은 그는 '블루칩 작가'로도 불린다.

경기 불황으로 미술품 경매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지난해에도 그의 그림은 내놓는 대로 팔리기에. 한국화 대작을 외국에 '팔아먹는' 사람도 박 화백뿐이다.

미국 휴스턴 뮤지엄,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뮤지엄에도 그의 작품은 걸려있다.

우리의 문화, 우리의 정서를 그린 그림으로는 최초다.

만월(滿月)경주대학교 문화재학부 정병모 교수는 "한국 회화 역사상 이처럼 통렬한 작품을 본 적이 없고, 이처럼 장쾌한 기상이 서려있는 작품을 가진 적이 없다"고 평한다.

경주엑스포 관계자는 "서라벌에 석굴암을 만든 김대성이 있었다면, 경주에는 신라의 숨결을 현재에 재현하는 박대성이 있다"고 비유하며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훌륭한 작가의 전시를 지속적으로 유치하고 신인 발굴에 앞장서는 한국의 문화예술 1번지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개막식은 24일 오후 6시. (054-740-3051)곽성일kwak@kyongbuk.co.kr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한국화가 박대성 초대전' 24일부터

| 기사2009-04-22 11:39【경주=뉴시스】경주문화엑스포공원은 한국화가 소산(小山) 박대성(64) 화백의 작품으로 이달 24일부터 6월30일까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초대전'을 갖는다고 22일 밝혔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내 엑스포문화센터 전시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60년 화력을 쏟아 부은 작품으로 분황사, 포석정, 서출지 등 천년고도의 속살을 화폭에 담은 진경산수(眞景山水)와 부처, 도자기 등 고미(古味)를 다룬 작품를 선보일 예정이다.

또 박 화백의 애장품인 고려시대 벼루와 송나라·연나라 때 화첩 등 보물급 유물 80여점도 함께 전시된다.

특히 박 화백은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고 한국전쟁 때 부모님과 왼손을 잃어버려 혈혈단신 고학으로 국내에 손꼽히는 한국화가로 등극한 인물이다.

박 화백은 미국 휴스턴 뮤지엄,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뮤지엄에도 그의 작품이 걸려 있을 정도로외국에서도 인정을 받고있다.

경주대학교 문화재학부 정병모 교수는 "박 화백의 작품은 먹과 붓이 뒤섞이며 화산처럼 분출하고 현향(玄響)과 현률(玄律)이 내뿜는 강렬한 에너지가 천지를 뒤흔들 듯한 이는 수묵의 카오스로 한국 회화 역사상 이처럼 통렬한 작품, 장쾌한 기상이 서려있는 작품을 가진 적이 없다"고 높이 평가했다.

경주엑스포 관계자는 "서라벌에 석굴암을 만든 김대성이 있었다면, 경주에는 신라의 숨결을 현재에 재현하는 박대성이 있다"고 비유하며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훌륭한 작가의 전시를 지속적으로 유치해 신인 발굴에 앞장서는 한국의 문화예술 1번지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개막식은 24일 오후 6시부터 열리며 자세한 문의는 (054-740-3051)하면 된다.

<관련사진 있음>제갈수만jgsm@newsis.com    "수묵의 카오스.." 박대성 화백 초대전

2009-04-22 11:09 포항CBS 김재원

 

 "자다가 '스리빠(슬리퍼)'를 신고 나가도 신라유적의 '볼테기'를 만질 수 있는 곳이 경주입니다.

경주는 경북의 경주가 아닙니다.

한국의 경주라 해도 억울하죠. 세계의 경주라고 해야 걸맞습니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곳' 경주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흡입한다는 한국화가 소산(小山) 박대성(朴大成?64) 화백. 지난 99년부터 남산 기슭에 정착한 그가 오는 24일부터 6월30일까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초대전'을 갖는다.

"이번 전시회 준비에 신경을 많이 써서 '골병'이 제일 많이 들었습니다.

"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엑스포문화센터) 200여 평 전시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60년 화력을 쏟아 부은 생애 최고의 대작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분황사, 포석정, 서출지 등 천년고도의 속살을 화폭에 담은 진경산수(眞景山水)와 부처, 도자기 등 고미(古味)를 다룬 작품이 주를 이룬다.

작게는 소품 6호에서 크게는 수천 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12점이 한 작품인 경우도 있어 전체 출품작이 몇 점이라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대부분 신작이며 몇몇 미공개 작품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박 화백의 애장품인 고려시대 벼루와 송나라?연나라 때 화첩 등 보물급 유물 80여점도 함께 전시된다.

"팔자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지만 무학이 내겐 행운이었고, 자연이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 그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한국전쟁 때 부모님과 왼손을 잃어버렸고 혈혈단신으로 고학했다.

학벌과 인맥 없이는 '쳐주지' 않았던 1970년대 국전을 휩쓸고 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한국 화단의 혁명적 이변'을 일으켰다.

겸재 정선, 변관식, 이상범에 이어 실경 산수의 맥을 잇는 작가로 명성을 얻은 그는 '블루칩 작가'로도 불린다.

경기 불황으로 미술품 경매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지난해에도 그의 그림은 내놓는 대로 팔리기에. 한국화 대작을 외국에 '팔아먹는' 사람도 박 화백뿐이다.

미국 휴스턴 뮤지엄,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뮤지엄에도 그의 작품은 걸려있다.

우리의 문화, 우리의 정서를 그린 그림으로는 최초다.

경주대학교 문화재학부 정병모 교수는 "먹과 붓이 뒤섞이며 화산처럼 분출한다.

현향(玄響)과 현률(玄律)이 내뿜는 강렬한 에너지가 천지를 뒤흔든다.

이는 수묵의 카오스다.

한국은 더 이상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박대성은 이미지로 증언하다.

자연 속에 잠재되어 있는 원초적인 본성이 그를 통해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 회화 역사상 이처럼 통렬한 작품을 본 적이 없고, 이처럼 장쾌한 기상이 서려있는 작품을 가진 적이 없다"고 평한다.

경주엑스포 관계자는 "서라벌에 석굴암을 만든 김대성이 있었다면, 경주에는 신라의 숨결을 현재에 재현하는 박대성이 있다"고 비유하며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훌륭한 작가의 전시를 지속적으로 유치하고 신인 발굴에 앞장서는 한국의 문화 예술 1번지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화백에게 무궁무진한 예술적 모티브를 공급하는 신화의 땅 경주가 그의 화선지에서 이번엔 어떠한 조형언어로 살아날 지 기대가 모아진다.

개막식은 24일 오후 6시. jwkim@cbs.co.kr  수묵의 카오스다! 우리는 더 이상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박대성의 작품은 말없이 증언한다.

자연 속에 잠재되어 있는 원초적인 본성이 그를 통해 다시금 깨어나고 있다.

우리 회화의 역사상 이처럼 통렬한 작품을 본 적이 없고, 이처럼 장쾌한 기상이 서려있는 작품을 가진 적이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중국의 장다첸(張大千)이나 리커란(李可染)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박대성은 수묵의 세찬 기세로 우리의 화단 속에 우뚝 서있기 때문이다.

  1978년 그가 중앙미술대전을 통해 혜성같이 등장하였을 때, 누구보다 날카롭고 누구보다 세밀한 화풍을 선보였다.

가을의 쓸쓸한 정경을 섬세한 붓질로 묘사하고, 갈색의 톤으로 물들이며, 감각적인 구도로 탄생시켰다.

리얼리티에 대한 그의 탐색은 지금도 도자기와 탈속에서 치열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는 단순히 세밀한 묘사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흥이 나지 않으면 그림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화가는 늘 가슴을 촉촉하게 일구어나가야 한다.

메마른 감정으로는 결코 대상의 진면목을 나타내지 못한다.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감성이 녹아있는 리얼리티다.

 어느 날 그는 도자기를 그리다 갑자기 붓을 멈추었다.

치밀한 묘사와 다른 세계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언가 ‘애절한 흐느낌’이 느껴지는 그러한 이미지다.

이는 기교를 넘어선 감흥이요, 사실적 묘사와 다른 차원의 감흥적인 리얼리티다.

순박한 백자 항아리는 추상으로 환원되고, 그 안의 대나무가 흉중성죽(胸中成竹)처럼 그가 깨달은 대나무의 진수를 보여준다.

                                                <만월>  그는 강렬한 이미지만 향해 내달리지 않는다.

그 속에는 느닷없이 금빛을 발하는 부처님이 등장하고, 세밀하게 묘사된 집이 강한 대조를 이루며, 명랑한 색채의 바위가 경쾌하게 배치된다.

강약의 대비, 음양의 조화, 경중(輕重)의 절제로 균형을 잡는다.

힘찬 붓질과 강한 먹빛을 구사할 뿐만 아니라 서정정인 감성도 함께 지녔다.

그의 작품을 보노라면,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과 더불어 미물의 호흡조차 놓치지 않는 예민한 감수성이 느껴진다.

그는 호방함과 세밀함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스케일을 갖추면 세밀함이 부족하고 디테일을 갖추면 강렬함이 부족한데, 그는 스케일과 디테일의 양 극단을 힘껏 거머쥐고 자유롭게 넘나든다.

글 I 정병모       <오후여담>박대성 화백과 ‘뇌관’‘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하고 시작하는 박두진 작사, 김동진 작곡의 ‘6·25의 노래’ 그대로 ‘6·25’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예외없이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되는 날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전쟁을 겪은 세대는 물론 겪지 않은 세대 역시 직·간접적인 상처가 크고 깊을 뿐만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다.

수묵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세계적 한국화가인 소산(小山) 박대성 화백도 그렇다.

1945년에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박 화백은 6·25 전쟁통에 부모도 잃고 왼쪽 팔도 잃었다.

정규학교를 전혀 다니지 못하고 10세 때부터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하면서 겪은 고초가 오죽 컸겠는가. “신체적 불구를 극복하기 위해 죽기살기로 그림에 매달렸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는 그의 말대로 온갖 고난을 딛고 일어선 그의 작품은 현대 한국화 대작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국제 미술시장에서 고가에 팔리고 있고, 국립현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미국 휴스턴 미술관과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에는 세계와 겨룰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해 있고, 한국에서 가장 유서 깊고 가장 세계적인 곳이 경북 경주’라고 믿어 1960년대 중반부터 ‘천년 고도(古都)’의 다양한 면모를 그려오다 2000년에 아예 경주에 한옥 화실을 짓고 정착한 박 화백. 그의 작품에 대해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강렬한 에너지가 천지를 뒤흔드는 수묵의 카오스”라면서 “한국은 더이상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지로 증언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전시관에서 30일까지 ‘현대가 깃든 전통’을 작품화해 초대전을 열고 있는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런 요지로 말했다.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서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

전통을 바탕으로 모던을 수용해야 한다.

그러려면 뭔가 열려 있어야 한다.

닫혀 있으면 썩게 마련이다.

경주는 현대성이 부족하다.

신라 천 년의 잠을 깨우는 ‘뇌관’이 되고 싶다.

”6·25의 상흔을 딛고 세계로 도약한 박 화백이 ‘뇌관’이 돼 깨우고 싶은 것이 잠자고 있는 ‘천년 고도’의 문화와 전통뿐이겠는가. 사회 일각에서 잊어가고 있는 북한의 6·25 남침과 적화통일 야욕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뇌관 또한 되고 싶어할 성싶다.

[김종호 / 논설위원]문화일보 2009-06-24 ---------------------------------------------  60년 한국화 인생, 천년고도서 펼쳐진다박대성 초대전…24일부터 경주세계문화엑스포서 실경 산수 진수 보여줘기사 | 2009-04-23현향'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곳' 경주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흡입한다는 한국화가 소산(小山) 박대성(朴大成·64) 화백. 지난 99년부터 남산 기슭에 정착한 그가 오는 24일부터 6월30일까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초대전'을 갖는다.

"이번 전시회 준비에 신경을 많이 써서 '골병'이 많이 들었습니다.

"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엑스포문화센터) 200여 평 전시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60년 화력을 쏟아 부은 생애 최고의 대작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분황사, 포석정, 서출지 등 천년고도의 속살을 화폭에 담은 진경산수(眞景山水)와 부처, 도자기 등 고미(古味)를 다룬 작품이 주를 이룬다.

작게는 소품 6호에서 크게는 수천 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12점이 한 작품인 경우도 있어 전체 출품작이 몇 점이라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대부분 신작이며 몇몇 미공개 작품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박대성 화백박 화백의 애장품인 고려시대 벼루와 송나라·연나라 때 화첩 등 보물급 유물 80여점도 함께 전시된다.

"팔자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지만 무학이 내겐 행운이었고, 자연이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그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한국전쟁 때 부모님과 왼손을 잃어버렸고 혈혈단신으로 고학했다.

학벌과 인맥 없이는 '쳐주지' 않았던 1970년대 국전을 휩쓸고 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한국 화단의 혁명적 이변'을 일으켰다.

겸재 정선, 변관식, 이상범에 이어 실경 산수의 맥을 잇는 작가로 명성을 얻은 그는 '블루칩 작가'로도 불린다.

경기 불황으로 미술품 경매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지난해에도 그의 그림은 내놓는 대로 팔리기에. 한국화 대작을 외국에 '팔아먹는' 사람도 박 화백뿐이다.

미국 휴스턴 뮤지엄,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뮤지엄에도 그의 작품은 걸려있다.

우리의 문화, 우리의 정서를 그린 그림으로는 최초다.

만월(滿月)경주대학교 문화재학부 정병모 교수는 "한국 회화 역사상 이처럼 통렬한 작품을 본 적이 없고, 이처럼 장쾌한 기상이 서려있는 작품을 가진 적이 없다"고 평한다.

경주엑스포 관계자는 "서라벌에 석굴암을 만든 김대성이 있었다면, 경주에는 신라의 숨결을 현재에 재현하는 박대성이 있다"고 비유하며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훌륭한 작가의 전시를 지속적으로 유치하고 신인 발굴에 앞장서는 한국의 문화예술 1번지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개막식은 24일 오후 6시. (054-740-3051)곽성일kwak@kyongbuk.co.kr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한국화가 박대성 초대전' 24일부터

| 기사2009-04-22 11:39【경주=뉴시스】경주문화엑스포공원은 한국화가 소산(小山) 박대성(64) 화백의 작품으로 이달 24일부터 6월30일까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초대전'을 갖는다고 22일 밝혔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내 엑스포문화센터 전시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60년 화력을 쏟아 부은 작품으로 분황사, 포석정, 서출지 등 천년고도의 속살을 화폭에 담은 진경산수(眞景山水)와 부처, 도자기 등 고미(古味)를 다룬 작품를 선보일 예정이다.

또 박 화백의 애장품인 고려시대 벼루와 송나라·연나라 때 화첩 등 보물급 유물 80여점도 함께 전시된다.

특히 박 화백은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고 한국전쟁 때 부모님과 왼손을 잃어버려 혈혈단신 고학으로 국내에 손꼽히는 한국화가로 등극한 인물이다.

박 화백은 미국 휴스턴 뮤지엄,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뮤지엄에도 그의 작품이 걸려 있을 정도로외국에서도 인정을 받고있다.

경주대학교 문화재학부 정병모 교수는 "박 화백의 작품은 먹과 붓이 뒤섞이며 화산처럼 분출하고 현향(玄響)과 현률(玄律)이 내뿜는 강렬한 에너지가 천지를 뒤흔들 듯한 이는 수묵의 카오스로 한국 회화 역사상 이처럼 통렬한 작품, 장쾌한 기상이 서려있는 작품을 가진 적이 없다"고 높이 평가했다.

경주엑스포 관계자는 "서라벌에 석굴암을 만든 김대성이 있었다면, 경주에는 신라의 숨결을 현재에 재현하는 박대성이 있다"고 비유하며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훌륭한 작가의 전시를 지속적으로 유치해 신인 발굴에 앞장서는 한국의 문화예술 1번지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개막식은 24일 오후 6시부터 열리며 자세한 문의는 (054-740-3051)하면 된다.

<관련사진 있음>제갈수만jgsm@newsis.com    "수묵의 카오스.." 박대성 화백 초대전

2009-04-22 11:09 포항CBS 김재원

 

 "자다가 '스리빠(슬리퍼)'를 신고 나가도 신라유적의 '볼테기'를 만질 수 있는 곳이 경주입니다.

경주는 경북의 경주가 아닙니다.

한국의 경주라 해도 억울하죠. 세계의 경주라고 해야 걸맞습니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곳' 경주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흡입한다는 한국화가 소산(小山) 박대성(朴大成?64) 화백. 지난 99년부터 남산 기슭에 정착한 그가 오는 24일부터 6월30일까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초대전'을 갖는다.

"이번 전시회 준비에 신경을 많이 써서 '골병'이 제일 많이 들었습니다.

"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엑스포문화센터) 200여 평 전시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60년 화력을 쏟아 부은 생애 최고의 대작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분황사, 포석정, 서출지 등 천년고도의 속살을 화폭에 담은 진경산수(眞景山水)와 부처, 도자기 등 고미(古味)를 다룬 작품이 주를 이룬다.

작게는 소품 6호에서 크게는 수천 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12점이 한 작품인 경우도 있어 전체 출품작이 몇 점이라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대부분 신작이며 몇몇 미공개 작품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박 화백의 애장품인 고려시대 벼루와 송나라?연나라 때 화첩 등 보물급 유물 80여점도 함께 전시된다.

"팔자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지만 무학이 내겐 행운이었고, 자연이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 그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한국전쟁 때 부모님과 왼손을 잃어버렸고 혈혈단신으로 고학했다.

학벌과 인맥 없이는 '쳐주지' 않았던 1970년대 국전을 휩쓸고 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한국 화단의 혁명적 이변'을 일으켰다.

겸재 정선, 변관식, 이상범에 이어 실경 산수의 맥을 잇는 작가로 명성을 얻은 그는 '블루칩 작가'로도 불린다.

경기 불황으로 미술품 경매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지난해에도 그의 그림은 내놓는 대로 팔리기에. 한국화 대작을 외국에 '팔아먹는' 사람도 박 화백뿐이다.

미국 휴스턴 뮤지엄,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뮤지엄에도 그의 작품은 걸려있다.

우리의 문화, 우리의 정서를 그린 그림으로는 최초다.

경주대학교 문화재학부 정병모 교수는 "먹과 붓이 뒤섞이며 화산처럼 분출한다.

현향(玄響)과 현률(玄律)이 내뿜는 강렬한 에너지가 천지를 뒤흔든다.

이는 수묵의 카오스다.

한국은 더 이상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박대성은 이미지로 증언하다.

자연 속에 잠재되어 있는 원초적인 본성이 그를 통해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 회화 역사상 이처럼 통렬한 작품을 본 적이 없고, 이처럼 장쾌한 기상이 서려있는 작품을 가진 적이 없다"고 평한다.

경주엑스포 관계자는 "서라벌에 석굴암을 만든 김대성이 있었다면, 경주에는 신라의 숨결을 현재에 재현하는 박대성이 있다"고 비유하며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훌륭한 작가의 전시를 지속적으로 유치하고 신인 발굴에 앞장서는 한국의 문화 예술 1번지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화백에게 무궁무진한 예술적 모티브를 공급하는 신화의 땅 경주가 그의 화선지에서 이번엔 어떠한 조형언어로 살아날 지 기대가 모아진다.

개막식은 24일 오후 6시. jwk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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