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바라쿠다



http://www.kitguru.net/Kitguru에서는 스팀 라이브러리를 위한 HDD라 소개하고 있군요. 씨게이트(Seagate)에서 새로운 하드디스크를 선보였습니다.

무려 용량이 10TB에 달합니다.

10TB라는 용량은 200개의 스팀 라이브러리의 게임을 담을 수 있으며, 홈 미디어 서버로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크기입니다.

단 하나의 하드디스크로 말이죠.서버에서는 흔하겠지만 일반 소비자용으로는 놀랄 만큼 거대한 용량입니다.

씨게이트에서는 세 종류의 10TB 하드디스크를 출시했습니다.

 두 종류는 네트워킹이나 스토리지를 위한 제품이며, 나머지 하나는 일반 데스크탑 유저를 대상으로 합니다.

이 바라쿠다 프로(Barracuda Pro)는 7200RPM 표준으로 작동하며, 3.5인치 규격의 일반적인 하드디스크와 크기가 동일합니다.

따라서 특별한 변환 가이드나 주의점은 없는데요.대신 가격이 어마어마합니다.

바라쿠다 프로 10TB HDD의 가격은 $535 (한화 약 62만 원)입니다.

저렴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씨게이트의 8TB 데스크탑 드라이브가 $300 (한화 약 34만 원)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죠. 추가 2TB가 꽤나 프리미엄 가격대로 제공되는 셈입니다.

씨게이트에서 꾸준히 문제가 되어오던 불량률은 어떨지, 또한 A/S 정책과 워런티는 어느 정도인지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국내 출시 여부도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Related Posts메모리 혁신, 인텔 옵테인 SSD트랜지스터 없는 저장 매체, 상상할 수 있나요? 인텔이 또 하나의 혁신을 선보입니다.

Abstract / Introdu...blog.naver.com HGST, 10TB 헬륨 드라이브 출시Abstract / Introduction HGST는 첫 10TB 범용 하드 드라이브를 출시하였습니다.

Ultras...blog.naver.com SD카드 인식오류 복구, RAW 드라이브 및 포맷오류드라이브의 디스크를 사용하기 전에 포맷해야 합니다.

형식을 지정하시겠습니까? SD카드나 USB 메모리...blog.naver.com 알맞은 엔진을 선정하는데 시간이 걸려 주력 양산형인 Mk. II가 완성되기까지 약 1년 반이 걸려, 그 동안은 알바코어보다 더 구식이었던 소드피쉬(Swordfish)가 임무를 대행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 개발 배경1937년 항공성으로부터 단엽 뇌격기를 요구한 사양 S.24/37 대해 6개의 제안이 있었다.

이 중 페어리와 수퍼마린의 설계안이 선정되어 각각 2기의 시제기가 주문되었다.

페어리의 프로토타입은 1940년 12월 7일에 첫 비행했다.

바라쿠다는 전금속제 구조에 계란형 단면의 동체, 고익 배치를 가진 단엽기였다.

메인 랜딩기어는 유압으로 작동되는 인입식으로, 바퀴는 주익 아래에 수납되었지만 지주는 동체 측면에 수납되는 독특한 방식을 채용했다.

꼬리바퀴는 고정식에 어레스팅 후크보다 후방에 설치되었으며, 맞붙은 탠덤 좌석에 3명의 승무원을 배치했다.

전방석은 뒤로 열리는 슬라이드 캐노피, 후방의 2명은 옆으로 열리식 경첩식 캐노피였다.

기체 하방 시야를 얻기 위해 항법사 좌석에는 측면 유리창이 설치되었다.

날개는 에어 브레이크로 더블 영맨 플랩(Double Young Man Flap)을 제공했다.

시제기의 꼬리는 기존의 단일 꼬리였지만, 시험 비행에서 수평미익을 위로 올려 T자형 꼬리 같은 모양으로 바꾸자 급강하에서 높은 안정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이 확인되어, 2기의 시제기에 도입되었다.

 급강하 테스트 중인 Barracuda Mk.I  Barracuda MK.II 원래 바라쿠다는 액셀 엔진을 사용하는 것을 예정하고 있었지만 완성이 늦춰지자 시제기 시험 진행하기 위해 멀린 30 엔진(1,260 hp/940 kW)를 탑재하고 처음 비행했다.

그러나, 설계 후에 추가한 장비때문에 중량이 더욱 늘어나서 결과적으로 양산형 바라쿠다 Mk. I은 출력이 부족했다.

Mk. I는 페어리와 웨스트랜드에서 30기만 제조되고 시험과 훈련에 사용되었다.

보다 고출력의 멀린 32(1,640 hp / 1,225 kW)를 탑재한 바라쿠다 Mk. II는 1,688 기가 생산되었다.

페어리의 스톡포트 공장과 반즈웨이 공장에서 675기, 블랙번사에서 700기, 볼튼-폴에서 300기, 웨스트랜드 사에서 13대가 제작되었다.

 Mk. II는 파일럿들 사이에서 강력한 플랩이 높이 평가되어 기수를 높이 쳐들지 않고도 착함하는 것이 가능해 항모 운용에 편리성을 더했다.

바라쿠다 Mk. VMk. II는 날개에 안테나를 장치했고 미터파 ASV 레이다도 장비되었다.

대잠 임무를 위한 Mk. III는 후방 동체에 ASV 레이더를 설치했다.

Mk. III는 페어리에서 406기, 볼튼-폴에서 392대가 생산되었다.

  Mk. IV는 도면이 남아 있지 않아 상세한 내용은 불명이다.

 Mk. V는 엔진을 그리폰 엔진으로 바꾸었다.

그리폰으로 교환하여 출력과 토크가 늘어나자 다양한 항공 역학적인 변화를 필요로 했다.

수직 미익과 날개 면적을 늘리고 주익의 가장자리는 타원형으로 재설계되었다.

1944년 11월 16일 첫 비행했으며, 유럽 전선의 종전까지 37기가 만들어졌다.

바라쿠다는 모든 형식을 합해 2,607대가 생산되었다.

 바라쿠다는 이상한 사고가 높은 확률로 발생했는데, 이는 경험있는 조종사라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1945년에야 우연히 밝혀진 진상에 의하면, 유압 시스템을 움직이는 윤활액이 사고 원인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액체는 에테르를 포함하고 있어 콕핏의 압력계에서 누수되어 파일럿의 얼굴에 뿜어지면 조종사가 의식을 잃고 이는 곧바로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졌다.

대부분의 바라쿠다가 산소 마스크를 갖추지 않았던데다, 3,000 미터 이하에서는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이런 사고는 몇번이나 반복되었고 1945년 5월에야 해군성에서 개선 요구가 나왔다.

  ?# 실전바라쿠다는 1943년 1월 10일 제827 비행대에서 처음으로 배치되어 운용이 개시되었다.

총 23개 비행대가 바라쿠다를 장비했지만, 대부분이 북대서양에서 초계 임무에 나섰다.

첫 번째 공격 임무는 1943년 7월 노르웨이 앞바다에서 항모 일러스트리어스 소속의 제 810 비행대에 의해 이루어졌다.

1943년에는 아발란체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지중해에 전개했다.

1944년부터 레이다를 장착한 Mk. III와 함께 대잠 초계 임무에 운용되었다.

 1943년에는 영국 공군이 Mk. II를 채용하고 우선 제567스쿼드론이 기종 전환했고 이듬해인 1944년에는 제667 비행중대, 제679 비행중대, 제691 비행중대가 차례로 장비했다.

이들은 모두 종전이 다가오는 1945년 3월부터 7월에 걸쳐 퇴역했다.

바라쿠다는 급강하 폭격기로도 사용되어 독일 전함 틸피츠에 대한 대규모 공격인 텅스텐 작전의 주역을 맡기도 했다.

1944년 4월 3일 항공모함 빅토리어스와 퓨리어스에서 발진한 42대의 바라쿠다는 1대가 격추되었지만 14발의 직격탄을 명중시켰다.

이 공격으로 틸피츠는 2개월 이상 행동 불능에 빠졌다.

 1944년 4월부터 일러스트리어스의 제827 비행대가 일본군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바라쿠다는 수마트라의 사반 공습(콕핏 작전)에 참가했다.

태평양의 고온 다습한 기후에 영향을 받아 바라쿠다의 행동 반경이 30%나 감소하자, 영국 태평양 함대에 배속된  항모는 TBF 어벤져로 기종을 전환했다.

1945년 6월에 영국 태평양 함대에 참가했던 경항공모함에는 각각 바라쿠다 1개 비행대와 콜세어 1개 비행대를 탑재하고 있었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4개 비행대가 바라쿠다를 운용했다.

바라쿠다는 TBF로 차례차례 교체되어갔지만, 1950년대 중반까지 영국 해군에서 운용되었다.

오늘날 전쟁 당시 서로 충돌해 추락한 바라쿠다 2대의 잔해가 남아 있지만, 조립에 필요한 충분한 부품이 남아있지 않아 전시된 실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 파생형Mk. I - 초기 생산형. 30대 생산.Mk. II - 뇌격기형으로 롤스로이스 멀린 30과 멀린 32로 엔진을 교환했고 4엽 프로펠러로 바꾸었다.

타사의 생산도 포함 1,688기 생산.Mk. III - 대잠 작전형으로 852기 생산.Mk. V - 일본과의 전투에 참가하여 롤스로이스 그리폰으로 엔진을 강화하고 37기 생산     전함 틸피츠 공격에 참가한 G. Russell 중위 탑승기 그 가운데 페어리와 슈퍼멀린의 설계안이 선정되어 각각 2기씩의 시제기가 발주되었다.

페어리의 시제기는 1940년 12월 7일에 첫 선을 보였는데 이것이 바라쿠다(창꼬치, 농어과의 꼬치고기 일종의 학명)였다.

 바라쿠다는 전금속재질의 계란형 동체에 고익배치한 날개를 가진 단엽기였다.

주각은 유압작동의 흡입식으로 타이어는주 날개아래에 격납되었지만 지주는 동체측면에 격납되었다.

꼬리바퀴는 노출되어 착함후크 후방에 설치되었다.

3인승의 바라쿠다는 가장 앞좌석이 뒤로 제껴지는 슬라이드식 캐노피로, 후방의 2명은 측면으로 열리는 캐노피였다.

 기체하부의 시계를 확보하기 위해 정찰좌석엔 창유리를 설계했다.

주익에는 에어브레이크로서 더블 영맨플랩을 장비했다.

시제기의 꼬리날개는 처음엔 단미식(單尾翼)이었지만 시험비행 후 T자 형상의 스타비라이저를 붙여 보다 높은 안정성을얻었기에 시제 2호기부터는 T형상으로 제작되었다.

 처음에 바라쿠다는 롤스로이드의 Exe 엔진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시제기에는 엔진이 아직 개발전이었기에멀린 30엔진(1,260hp)을 탑재해 첫비행했다.

 하지만 설계 후에 추가장비의 도입으로 중량이 늘어나자 양산형 바라쿠다 Mk.1은출력부족을 일으켰기에 Mk.1은 페어리와 웨스트랜드에서 30기만 제조되어 훈련용으로만 사용되었다.

 보다 고출력의 멀린 32엔진(1,640hp)을 탑재한 바라쿠다 Mk.2는 1,688기가 양산되었다.

페어리의 공장에서 675기,블랙번에서 700기, 볼튼폴에서 300기, 웨스트랜드에서 13기가 제작된 Mk.2는 조종사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강력한 급강하성능 및 양호한 시계로 항공모함의 착륙도 양호해 각광을 받았다.

 Mk.3는 날개위에 야기식(八木式)안테나를 탑재하여 메토르 파장 ASV 레이더도 탑재했다.

대잠초계형의 Mk.3는후방동체에 ASV 레이더를 격납했다.

Mk.3는 페어리에서 406기, 볼튼폴에서 392기가 생산되었다.

Mk.4는 미제작으로 제작도면도 남아있지 않지만 후속인 Mk.5는 멀린 엔진을 그리폰 엔진으로 교체했다.

 그리폰 엔진으로 교체된 Mk.5는 출력의 증가로 인해 항공역학적으로 재설계가 필요하여 수직 꼬리날개를 대형화하고날개면적을 늘여 날개끝을 타원형으로 제작했다.

Mk.5는 1944년 11월 16일에 첫 선을 보였지만 유럽전선의 종결까지제작된 것은 37기 뿐이어서 이것들은 태평양전선으로 보내져 일본군과의 전투에 투입되었다.

바라쿠다는 모든 형을 합해총 2,607기가 제작되었다.

 그러나 바라쿠다는 이해할 수 없는 사고가 높은 확률로 발생했었다.

이것은 베테랑 조종사들도 예외가 아니었는데1945년에 유압시스템의 기름누출이 사고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당시 흘러나온 누액에는 마취성분인 에테르가 함유되어있어조종사들이 들이마시곤 정신을 잃어 추락사고가 일어나는 일이 많았다.

 당시 바라쿠다에는 산소마스크가 장비되어 있지 않았는데 이는 3,000m 이하에서 작전에 임하는 바라쿠다에는 산소마스크가필요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45년 5월말에 해군성은 개선요구를 받아들여 보수를 실시한 결과 더 이상의 사고는 일어나지않았다.

 일본과의 전투에 투입된 바라쿠다 Mk.5       바라쿠다는 1943년 1월 10일에 제 827 비행대에 배치되어 운용이 시작되었다.

전부 23개의 비행대가 바라쿠다를 장비했지만대부분이 북대서양의 초계임무에 사용되었다.

첫 공격임무는 1943년 7월에 노르웨이 해협에서 항공모함 <일러스토리우스>의제 810 비행대에 의해 이루어졌다.

 1943년에는 지중해로 활동영역을 높인 바라쿠다는 1944년부터 레이더를 장비한 Mk.3가 병용되어 대잠초계에 나섰다.

[바라쿠다] 할말이 없네요.


이후 바라쿠다는 1945년 3월부터 7월에 걸쳐 일선에서 물러났다.

바라쿠다는 급강하폭격기로도 사용되어 독일전함 <티르피츠>를공격할 때 주력을 맡기도 했다.

 1944년 4월 3일에는 항공모함 <빅토리우스>와 <퓨리어스>에서 발진한 42기의 바라쿠다는 1기가 격추당했지만<티르피츠>에 14발의 직격탄을 안겨 2개월간 행동불능 상태에 빠트리게 했다.

한편 1944년 4월부터는 <일러스토리우스>의제 827 비행대가 일본군에 대해 공격을 개시했다.

 바라쿠다는 수마트라의 사반공습에 참가했다.

그러나 태평양의 고온다습한 기후에 의해 바라쿠다의 행동반경은 30%나 줄어영국태평양함대의 함대항모는 TBF 어벤저로 기종을 전환했다.

1945년 6월에 영국태평양함대에 참가한 함대 경항모는각각 바라쿠다 1개 비행대와 콜세어 1개 비행대를 탑재하여 일본이 항복하기 전까지 4개 비행대에서 바라쿠다를 이용했다.

 TBF와 순차적으로 교되된 바라쿠다였지만 전후 1950년 중반까지 영국해군은 바라쿠다를 계속 운용했다.

현재 영국에선 충돌로 부숴진 바라쿠다 2기의 잔해가 남아있지만 재건에 필요한 부품이 없어 바라쿠다는 복원되지 못한 채박물관의 창고에서 보관중이라 한다.

    <성능제원> - Mk.2 기준 전장 : 12.1m전폭 : 15m높이 : 4.6m중량 : 4,445kg엔진 : 롤스로이드 멀린 32 수냉 12기통출력 : 1,640hp최대속도 : 367km/h항속거리 : 1,165km상승고도 : 6,585m무장 : 7.7mm 기총 2정, 폭탄 726kg 또는 어뢰 1발승원 : 3명  출처 : 빌 건스톤 <제 2차 세계대전의 클래식항공기>, 사진은 상업적 사용이 제한된 공개용.  그 가운데 페어리와 슈퍼멀린의 설계안이 선정되어 각각 2기씩의 시제기가 발주되었다.

페어리의 시제기는 1940년 12월 7일에 첫 선을 보였는데 이것이 바라쿠다(창꼬치, 농어과의 꼬치고기 일종의 학명)였다.

 바라쿠다는 전금속재질의 계란형 동체에 고익배치한 날개를 가진 단엽기였다.

주각은 유압작동의 흡입식으로 타이어는주 날개아래에 격납되었지만 지주는 동체측면에 격납되었다.

꼬리바퀴는 노출되어 착함후크 후방에 설치되었다.

3인승의 바라쿠다는 가장 앞좌석이 뒤로 제껴지는 슬라이드식 캐노피로, 후방의 2명은 측면으로 열리는 캐노피였다.

 기체하부의 시계를 확보하기 위해 정찰좌석엔 창유리를 설계했다.

주익에는 에어브레이크로서 더블 영맨플랩을 장비했다.

시제기의 꼬리날개는 처음엔 단미식(單尾翼)이었지만 시험비행 후 T자 형상의 스타비라이저를 붙여 보다 높은 안정성을얻었기에 시제 2호기부터는 T형상으로 제작되었다.

 처음에 바라쿠다는 롤스로이드의 Exe 엔진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시제기에는 엔진이 아직 개발전이었기에멀린 30엔진(1,260hp)을 탑재해 첫비행했다.

 하지만 설계 후에 추가장비의 도입으로 중량이 늘어나자 양산형 바라쿠다 Mk.1은출력부족을 일으켰기에 Mk.1은 페어리와 웨스트랜드에서 30기만 제조되어 훈련용으로만 사용되었다.

 보다 고출력의 멀린 32엔진(1,640hp)을 탑재한 바라쿠다 Mk.2는 1,688기가 양산되었다.

페어리의 공장에서 675기,블랙번에서 700기, 볼튼폴에서 300기, 웨스트랜드에서 13기가 제작된 Mk.2는 조종사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강력한 급강하성능 및 양호한 시계로 항공모함의 착륙도 양호해 각광을 받았다.

 Mk.3는 날개위에 야기식(八木式)안테나를 탑재하여 메토르 파장 ASV 레이더도 탑재했다.

대잠초계형의 Mk.3는후방동체에 ASV 레이더를 격납했다.

Mk.3는 페어리에서 406기, 볼튼폴에서 392기가 생산되었다.

Mk.4는 미제작으로 제작도면도 남아있지 않지만 후속인 Mk.5는 멀린 엔진을 그리폰 엔진으로 교체했다.

 그리폰 엔진으로 교체된 Mk.5는 출력의 증가로 인해 항공역학적으로 재설계가 필요하여 수직 꼬리날개를 대형화하고날개면적을 늘여 날개끝을 타원형으로 제작했다.

Mk.5는 1944년 11월 16일에 첫 선을 보였지만 유럽전선의 종결까지제작된 것은 37기 뿐이어서 이것들은 태평양전선으로 보내져 일본군과의 전투에 투입되었다.

바라쿠다는 모든 형을 합해총 2,607기가 제작되었다.

 그러나 바라쿠다는 이해할 수 없는 사고가 높은 확률로 발생했었다.

이것은 베테랑 조종사들도 예외가 아니었는데1945년에 유압시스템의 기름누출이 사고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당시 흘러나온 누액에는 마취성분인 에테르가 함유되어있어조종사들이 들이마시곤 정신을 잃어 추락사고가 일어나는 일이 많았다.

 당시 바라쿠다에는 산소마스크가 장비되어 있지 않았는데 이는 3,000m 이하에서 작전에 임하는 바라쿠다에는 산소마스크가필요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45년 5월말에 해군성은 개선요구를 받아들여 보수를 실시한 결과 더 이상의 사고는 일어나지않았다.

 일본과의 전투에 투입된 바라쿠다 Mk.5       바라쿠다는 1943년 1월 10일에 제 827 비행대에 배치되어 운용이 시작되었다.

전부 23개의 비행대가 바라쿠다를 장비했지만대부분이 북대서양의 초계임무에 사용되었다.

첫 공격임무는 1943년 7월에 노르웨이 해협에서 항공모함 <일러스토리우스>의제 810 비행대에 의해 이루어졌다.

 1943년에는 지중해로 활동영역을 높인 바라쿠다는 1944년부터 레이더를 장비한 Mk.3가 병용되어 대잠초계에 나섰다.

이후 바라쿠다는 1945년 3월부터 7월에 걸쳐 일선에서 물러났다.

바라쿠다는 급강하폭격기로도 사용되어 독일전함 <티르피츠>를공격할 때 주력을 맡기도 했다.

 1944년 4월 3일에는 항공모함 <빅토리우스>와 <퓨리어스>에서 발진한 42기의 바라쿠다는 1기가 격추당했지만<티르피츠>에 14발의 직격탄을 안겨 2개월간 행동불능 상태에 빠트리게 했다.

한편 1944년 4월부터는 <일러스토리우스>의제 827 비행대가 일본군에 대해 공격을 개시했다.

 바라쿠다는 수마트라의 사반공습에 참가했다.

그러나 태평양의 고온다습한 기후에 의해 바라쿠다의 행동반경은 30%나 줄어영국태평양함대의 함대항모는 TBF 어벤저로 기종을 전환했다.

1945년 6월에 영국태평양함대에 참가한 함대 경항모는각각 바라쿠다 1개 비행대와 콜세어 1개 비행대를 탑재하여 일본이 항복하기 전까지 4개 비행대에서 바라쿠다를 이용했다.

[바라쿠다] 완전 대박



 TBF와 순차적으로 교되된 바라쿠다였지만 전후 1950년 중반까지 영국해군은 바라쿠다를 계속 운용했다.

현재 영국에선 충돌로 부숴진 바라쿠다 2기의 잔해가 남아있지만 재건에 필요한 부품이 없어 바라쿠다는 복원되지 못한 채박물관의 창고에서 보관중이라 한다.

    <성능제원> - Mk.2 기준 전장 : 12.1m전폭 : 15m높이 : 4.6m중량 : 4,445kg엔진 : 롤스로이드 멀린 32 수냉 12기통출력 : 1,640hp최대속도 : 367km/h항속거리 : 1,165km상승고도 : 6,585m무장 : 7.7mm 기총 2정, 폭탄 726kg 또는 어뢰 1발승원 : 3명  출처 : 빌 건스톤 <제 2차 세계대전의 클래식항공기>, 사진은 상업적 사용이 제한된 공개용. V-1은 메인 주 포츠머스 해군조선소에서 1923년에 기공해 1924년 7월 17일 진수 후 1924년 10월 1일에 완공되어초대함장 S. 비킹 소령의 지휘하에 취역하였다.

 V-1은 제 20 잠수함 부대에 소속되어 뉴잉글랜드 연안에서 훈련항해 후 1925년 1월 14일에 카리브 해역에서 훈련 후1927년까지 대서양에서 훈련에 종사했다.

이후 하와이 및 카리브 수역에서 활동한 V-1은 1931년 3월 9일에 바라쿠다로 개명 후1932년 5월에 제 15 잠수함 부대에 배속되어 메어 아일랜드 해군조선소에 입고되어 수리를 받았다.

 1933년 1월에 바라쿠다는 제 12 잠수함 부대에 배속되어 1937년까지 훈련에 종사한 다음 1월 14일에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후5월 14일에 예비역이 되었다.

바라쿠다는 1940년 9월 5일에 포츠머스에서 재취역하여 제 9 잠수함 부대에 배속되었다.

1941년 3월 2일에 버뮤다로 향하여 6월에 귀환한 다음 제 71 잠수함 부대에 합류하여 뉴잉글랜드 수역에서 활동했다.

 1941년 11월 17일에 태평양함대에 참가한 바라쿠다는 초계임무를 담당했는데 1941년 12월 15일에 다시 대서양함대로 이동하여1942년 9월 7일까지 제 31 잠수함 부대의 일원으로 6번의 초계임무를 담당했다.

바라쿠다는 1942년 9월 7일에 필라델피아로 귀환해오버휠 수리 후 뉴 런던을 거점으로 1945년 2월까지 제 13 및 31 잠수함 부대소속으로 활동했다.

 1945년 2월 16일에 필라델피아 해군공창에 입고된 바라쿠다는 3월 3일에 퇴역해 11월 16일에 매각되어 해체되었다.

   <성능제원> 전장 : 99.4m전폭 : 8.4m높이 : 4.9m기준배수량 : 2,000t최대출력 : 5,450hp최대속력 : 수상 18.7kn, 수중 9kn항속력 : 11kn로 6,000해리무장 : 12.7cm 단장포 1문, 53.3cm 수중어뢰발사관 6문, 캘리버 기관총 2기승원 : 80명동형함 : 베스, 보니타  출처 : 해인사 <미해군 잠수함사>, 사진은 라이센스가 필요없는 무료공개용.   그 가운데 페어리와 슈퍼멀린의 설계안이 선정되어 각각 2기씩의 시제기가 발주되었다.

페어리의 시제기는 1940년 12월 7일에 첫 선을 보였는데 이것이 바라쿠다(창꼬치, 농어과의 꼬치고기 일종의 학명)였다.

 바라쿠다는 전금속재질의 계란형 동체에 고익배치한 날개를 가진 단엽기였다.

주각은 유압작동의 흡입식으로 타이어는주 날개아래에 격납되었지만 지주는 동체측면에 격납되었다.

꼬리바퀴는 노출되어 착함후크 후방에 설치되었다.

3인승의 바라쿠다는 가장 앞좌석이 뒤로 제껴지는 슬라이드식 캐노피로, 후방의 2명은 측면으로 열리는 캐노피였다.

 기체하부의 시계를 확보하기 위해 정찰좌석엔 창유리를 설계했다.

주익에는 에어브레이크로서 더블 영맨플랩을 장비했다.

시제기의 꼬리날개는 처음엔 단미식(單尾翼)이었지만 시험비행 후 T자 형상의 스타비라이저를 붙여 보다 높은 안정성을얻었기에 시제 2호기부터는 T형상으로 제작되었다.

 처음에 바라쿠다는 롤스로이드의 Exe 엔진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시제기에는 엔진이 아직 개발전이었기에멀린 30엔진(1,260hp)을 탑재해 첫비행했다.

 하지만 설계 후에 추가장비의 도입으로 중량이 늘어나자 양산형 바라쿠다 Mk.1은출력부족을 일으켰기에 Mk.1은 페어리와 웨스트랜드에서 30기만 제조되어 훈련용으로만 사용되었다.

 보다 고출력의 멀린 32엔진(1,640hp)을 탑재한 바라쿠다 Mk.2는 1,688기가 양산되었다.

페어리의 공장에서 675기,블랙번에서 700기, 볼튼폴에서 300기, 웨스트랜드에서 13기가 제작된 Mk.2는 조종사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강력한 급강하성능 및 양호한 시계로 항공모함의 착륙도 양호해 각광을 받았다.

 Mk.3는 날개위에 야기식(八木式)안테나를 탑재하여 메토르 파장 ASV 레이더도 탑재했다.

대잠초계형의 Mk.3는후방동체에 ASV 레이더를 격납했다.

Mk.3는 페어리에서 406기, 볼튼폴에서 392기가 생산되었다.

Mk.4는 미제작으로 제작도면도 남아있지 않지만 후속인 Mk.5는 멀린 엔진을 그리폰 엔진으로 교체했다.

 그리폰 엔진으로 교체된 Mk.5는 출력의 증가로 인해 항공역학적으로 재설계가 필요하여 수직 꼬리날개를 대형화하고날개면적을 늘여 날개끝을 타원형으로 제작했다.

Mk.5는 1944년 11월 16일에 첫 선을 보였지만 유럽전선의 종결까지제작된 것은 37기 뿐이어서 이것들은 태평양전선으로 보내져 일본군과의 전투에 투입되었다.

바라쿠다는 모든 형을 합해총 2,607기가 제작되었다.

 그러나 바라쿠다는 이해할 수 없는 사고가 높은 확률로 발생했었다.

이것은 베테랑 조종사들도 예외가 아니었는데1945년에 유압시스템의 기름누출이 사고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당시 흘러나온 누액에는 마취성분인 에테르가 함유되어있어조종사들이 들이마시곤 정신을 잃어 추락사고가 일어나는 일이 많았다.

 당시 바라쿠다에는 산소마스크가 장비되어 있지 않았는데 이는 3,000m 이하에서 작전에 임하는 바라쿠다에는 산소마스크가필요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45년 5월말에 해군성은 개선요구를 받아들여 보수를 실시한 결과 더 이상의 사고는 일어나지않았다.

 일본과의 전투에 투입된 바라쿠다 Mk.5       바라쿠다는 1943년 1월 10일에 제 827 비행대에 배치되어 운용이 시작되었다.

전부 23개의 비행대가 바라쿠다를 장비했지만대부분이 북대서양의 초계임무에 사용되었다.

첫 공격임무는 1943년 7월에 노르웨이 해협에서 항공모함 <일러스토리우스>의제 810 비행대에 의해 이루어졌다.

 1943년에는 지중해로 활동영역을 높인 바라쿠다는 1944년부터 레이더를 장비한 Mk.3가 병용되어 대잠초계에 나섰다.

이후 바라쿠다는 1945년 3월부터 7월에 걸쳐 일선에서 물러났다.

바라쿠다는 급강하폭격기로도 사용되어 독일전함 <티르피츠>를공격할 때 주력을 맡기도 했다.

 1944년 4월 3일에는 항공모함 <빅토리우스>와 <퓨리어스>에서 발진한 42기의 바라쿠다는 1기가 격추당했지만<티르피츠>에 14발의 직격탄을 안겨 2개월간 행동불능 상태에 빠트리게 했다.

한편 1944년 4월부터는 <일러스토리우스>의제 827 비행대가 일본군에 대해 공격을 개시했다.

 바라쿠다는 수마트라의 사반공습에 참가했다.

그러나 태평양의 고온다습한 기후에 의해 바라쿠다의 행동반경은 30%나 줄어영국태평양함대의 함대항모는 TBF 어벤저로 기종을 전환했다.

1945년 6월에 영국태평양함대에 참가한 함대 경항모는각각 바라쿠다 1개 비행대와 콜세어 1개 비행대를 탑재하여 일본이 항복하기 전까지 4개 비행대에서 바라쿠다를 이용했다.

 TBF와 순차적으로 교되된 바라쿠다였지만 전후 1950년 중반까지 영국해군은 바라쿠다를 계속 운용했다.

현재 영국에선 충돌로 부숴진 바라쿠다 2기의 잔해가 남아있지만 재건에 필요한 부품이 없어 바라쿠다는 복원되지 못한 채박물관의 창고에서 보관중이라 한다.

    <성능제원> - Mk.2 기준 전장 : 12.1m전폭 : 15m높이 : 4.6m중량 : 4,445kg엔진 : 롤스로이드 멀린 32 수냉 12기통출력 : 1,640hp최대속도 : 367km/h항속거리 : 1,165km상승고도 : 6,585m무장 : 7.7mm 기총 2정, 폭탄 726kg 또는 어뢰 1발승원 : 3명  출처 : 빌 건스톤 <제 2차 세계대전의 클래식항공기>, 사진은 상업적 사용이 제한된 공개용. 이것도 수명이 있어서 사용환경에 따라 다르지만몇년이 지나면 고장이나기도하고겉으로는 멀쩡해보이나 언제 고장나도 전혀 이상하지않을 상태에 다다르기도한다.

나는 보통 하드 교체주기를 한 3년 정도 생각한다물론 24시간 켜두는 서버에 사용했을때말이다.

3년되면 싹 갈아 엎는다는건 아니고3년에 한개씩 새 하드를 사고 보유하고있는 하드중 제일 오래된것의 데이터를 빼고 밀어내기 식으로 하드를 최신화 하는 것이다.

현재 15테라정도의 하드를 보유하고있고이중 제일 오래된것은 2테라 WD그린하드다.

점점 자료들도 쌓여가고 하드한개 용량이 점점 커지다 보니 하드 하나라도 잃으면정말 큰일이 나는 상황이다.

특히나 다시 구할수도없는 지난날의 사진같은 경우는 2중으로 백업 보관하고있다.

그래서 실제가진 데이터보다도 2배나 많은 하드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게 가지고싶다.

..ㅋㅋㅋ한 16만원정도?내 자료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가치에 비하면 그리 비싼게 아니니할인쿠폰을 좀 기다렸다가 사야겠다.

모두 모두 여분의 하드를 구입해서늘 데이터를 백업해두는 습관을 가져요

이건 선택이 아니라 요즘 같이 미디어가 늘어나고 사진, 영상이 곧 추억으로 저장되는 시절에는필수입니다.

연인, 가족, 아이 들과의 추억, 영상, 사진, 녹음파일 등잃어버리는 순간! 다시는 돌릴수없는 상황을 대비하는데15만원이면충분히 가치있지않나요?이것도 수명이 있어서 사용환경에 따라 다르지만몇년이 지나면 고장이나기도하고겉으로는 멀쩡해보이나 언제 고장나도 전혀 이상하지않을 상태에 다다르기도한다.

나는 보통 하드 교체주기를 한 3년 정도 생각한다물론 24시간 켜두는 서버에 사용했을때말이다.

3년되면 싹 갈아 엎는다는건 아니고3년에 한개씩 새 하드를 사고 보유하고있는 하드중 제일 오래된것의 데이터를 빼고 밀어내기 식으로 하드를 최신화 하는 것이다.

현재 15테라정도의 하드를 보유하고있고이중 제일 오래된것은 2테라 WD그린하드다.

점점 자료들도 쌓여가고 하드한개 용량이 점점 커지다 보니 하드 하나라도 잃으면정말 큰일이 나는 상황이다.

특히나 다시 구할수도없는 지난날의 사진같은 경우는 2중으로 백업 보관하고있다.

그래서 실제가진 데이터보다도 2배나 많은 하드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게 가지고싶다.

..ㅋㅋㅋ한 16만원정도?내 자료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가치에 비하면 그리 비싼게 아니니할인쿠폰을 좀 기다렸다가 사야겠다.

모두 모두 여분의 하드를 구입해서늘 데이터를 백업해두는 습관을 가져요

이건 선택이 아니라 요즘 같이 미디어가 늘어나고 사진, 영상이 곧 추억으로 저장되는 시절에는필수입니다.

연인, 가족, 아이 들과의 추억, 영상, 사진, 녹음파일 등잃어버리는 순간! 다시는 돌릴수없는 상황을 대비하는데15만원이면충분히 가치있지않나요? 알맞은 엔진을 선정하는데 시간이 걸려 주력 양산형인 Mk. II가 완성되기까지 약 1년 반이 걸려, 그 동안은 알바코어보다 더 구식이었던 소드피쉬(Swordfish)가 임무를 대행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 개발 배경1937년 항공성으로부터 단엽 뇌격기를 요구한 사양 S.24/37 대해 6개의 제안이 있었다.

이 중 페어리와 수퍼마린의 설계안이 선정되어 각각 2기의 시제기가 주문되었다.

페어리의 프로토타입은 1940년 12월 7일에 첫 비행했다.

바라쿠다는 전금속제 구조에 계란형 단면의 동체, 고익 배치를 가진 단엽기였다.

메인 랜딩기어는 유압으로 작동되는 인입식으로, 바퀴는 주익 아래에 수납되었지만 지주는 동체 측면에 수납되는 독특한 방식을 채용했다.

꼬리바퀴는 고정식에 어레스팅 후크보다 후방에 설치되었으며, 맞붙은 탠덤 좌석에 3명의 승무원을 배치했다.

전방석은 뒤로 열리는 슬라이드 캐노피, 후방의 2명은 옆으로 열리식 경첩식 캐노피였다.

기체 하방 시야를 얻기 위해 항법사 좌석에는 측면 유리창이 설치되었다.

날개는 에어 브레이크로 더블 영맨 플랩(Double Young Man Flap)을 제공했다.

시제기의 꼬리는 기존의 단일 꼬리였지만, 시험 비행에서 수평미익을 위로 올려 T자형 꼬리 같은 모양으로 바꾸자 급강하에서 높은 안정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이 확인되어, 2기의 시제기에 도입되었다.

 급강하 테스트 중인 Barracuda Mk.I  Barracuda MK.II 원래 바라쿠다는 액셀 엔진을 사용하는 것을 예정하고 있었지만 완성이 늦춰지자 시제기 시험 진행하기 위해 멀린 30 엔진(1,260 hp/940 kW)를 탑재하고 처음 비행했다.

그러나, 설계 후에 추가한 장비때문에 중량이 더욱 늘어나서 결과적으로 양산형 바라쿠다 Mk. I은 출력이 부족했다.

Mk. I는 페어리와 웨스트랜드에서 30기만 제조되고 시험과 훈련에 사용되었다.

보다 고출력의 멀린 32(1,640 hp / 1,225 kW)를 탑재한 바라쿠다 Mk. II는 1,688 기가 생산되었다.

페어리의 스톡포트 공장과 반즈웨이 공장에서 675기, 블랙번사에서 700기, 볼튼-폴에서 300기, 웨스트랜드 사에서 13대가 제작되었다.

 Mk. II는 파일럿들 사이에서 강력한 플랩이 높이 평가되어 기수를 높이 쳐들지 않고도 착함하는 것이 가능해 항모 운용에 편리성을 더했다.

바라쿠다 Mk. VMk. II는 날개에 안테나를 장치했고 미터파 ASV 레이다도 장비되었다.

대잠 임무를 위한 Mk. III는 후방 동체에 ASV 레이더를 설치했다.

Mk. III는 페어리에서 406기, 볼튼-폴에서 392대가 생산되었다.

  Mk. IV는 도면이 남아 있지 않아 상세한 내용은 불명이다.

 Mk. V는 엔진을 그리폰 엔진으로 바꾸었다.

그리폰으로 교환하여 출력과 토크가 늘어나자 다양한 항공 역학적인 변화를 필요로 했다.

수직 미익과 날개 면적을 늘리고 주익의 가장자리는 타원형으로 재설계되었다.

1944년 11월 16일 첫 비행했으며, 유럽 전선의 종전까지 37기가 만들어졌다.

바라쿠다는 모든 형식을 합해 2,607대가 생산되었다.

 바라쿠다는 이상한 사고가 높은 확률로 발생했는데, 이는 경험있는 조종사라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1945년에야 우연히 밝혀진 진상에 의하면, 유압 시스템을 움직이는 윤활액이 사고 원인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액체는 에테르를 포함하고 있어 콕핏의 압력계에서 누수되어 파일럿의 얼굴에 뿜어지면 조종사가 의식을 잃고 이는 곧바로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졌다.

대부분의 바라쿠다가 산소 마스크를 갖추지 않았던데다, 3,000 미터 이하에서는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이런 사고는 몇번이나 반복되었고 1945년 5월에야 해군성에서 개선 요구가 나왔다.

  ?# 실전바라쿠다는 1943년 1월 10일 제827 비행대에서 처음으로 배치되어 운용이 개시되었다.

총 23개 비행대가 바라쿠다를 장비했지만, 대부분이 북대서양에서 초계 임무에 나섰다.

첫 번째 공격 임무는 1943년 7월 노르웨이 앞바다에서 항모 일러스트리어스 소속의 제 810 비행대에 의해 이루어졌다.

1943년에는 아발란체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지중해에 전개했다.

1944년부터 레이다를 장착한 Mk. III와 함께 대잠 초계 임무에 운용되었다.

 1943년에는 영국 공군이 Mk. II를 채용하고 우선 제567스쿼드론이 기종 전환했고 이듬해인 1944년에는 제667 비행중대, 제679 비행중대, 제691 비행중대가 차례로 장비했다.

이들은 모두 종전이 다가오는 1945년 3월부터 7월에 걸쳐 퇴역했다.

바라쿠다는 급강하 폭격기로도 사용되어 독일 전함 틸피츠에 대한 대규모 공격인 텅스텐 작전의 주역을 맡기도 했다.

1944년 4월 3일 항공모함 빅토리어스와 퓨리어스에서 발진한 42대의 바라쿠다는 1대가 격추되었지만 14발의 직격탄을 명중시켰다.

이 공격으로 틸피츠는 2개월 이상 행동 불능에 빠졌다.

 1944년 4월부터 일러스트리어스의 제827 비행대가 일본군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바라쿠다는 수마트라의 사반 공습(콕핏 작전)에 참가했다.

태평양의 고온 다습한 기후에 영향을 받아 바라쿠다의 행동 반경이 30%나 감소하자, 영국 태평양 함대에 배속된  항모는 TBF 어벤져로 기종을 전환했다.

1945년 6월에 영국 태평양 함대에 참가했던 경항공모함에는 각각 바라쿠다 1개 비행대와 콜세어 1개 비행대를 탑재하고 있었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4개 비행대가 바라쿠다를 운용했다.

바라쿠다는 TBF로 차례차례 교체되어갔지만, 1950년대 중반까지 영국 해군에서 운용되었다.

오늘날 전쟁 당시 서로 충돌해 추락한 바라쿠다 2대의 잔해가 남아 있지만, 조립에 필요한 충분한 부품이 남아있지 않아 전시된 실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 파생형Mk. I - 초기 생산형. 30대 생산.Mk. II - 뇌격기형으로 롤스로이스 멀린 30과 멀린 32로 엔진을 교환했고 4엽 프로펠러로 바꾸었다.

타사의 생산도 포함 1,688기 생산.Mk. III - 대잠 작전형으로 852기 생산.Mk. V - 일본과의 전투에 참가하여 롤스로이스 그리폰으로 엔진을 강화하고 37기 생산     전함 틸피츠 공격에 참가한 G. Russell 중위 탑승기마누엘의 국적은 스위스,하지만 그는 포르투갈+이탈리아 사람이다.

(사실 이게 다 무슨 상관인가, 인간은 다 똑같다)스위스에서 해양생물학을 공부해바닷속 수중 생태계 연구로 스쿠버 다이빙에 빠지면서다이브 마스터 과정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누엘은 스위스로 돌아가 일을 시작하기로 한 직장이 있어한 달 안에 트레이닝을 끝내야 했다.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고 보드를 타고, 인도네시아에서 서핑을 하던 마누엘은수영도 잘 하고 체력도 좋아 조금은 빡빡할 수도 있는 한 달 일정의 다이브 마스터 과정을 잘 소화해냈다.

바쁘게 훈련 받고 있는 마누엘에게"우리, 그냥 아무 것도 안 하는 펀 다이빙 가는 게 어때?"하고 제안하니좋다고 "Cool! Cool!"을 연발한다.

다이브 마스터 과정을 밟을 때 DMT들끼리 펀 다이빙 나가는 게 사실 가장 재밌다.

이것 저것 시도해볼 수 있고,여기 저기 가볼 수 있고,일단 프로 과정의 다이버들이니 공기 소모량도 나쁘지 않고.계획만 잘 세워 안전하게 다이빙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거다.

모닝 트립으로 떠난 첫번째 다이브 사이트는 춤폰 피나클.하강하자마자 시원하고 깊은 푸른 빛깔과 수많은 물고기들이 반긴다.

딥 다이빙 사이트인 춤폰 피나클엔 이렇게 커다란 덩치의 Giant Grouper들이 많다.

이날 구름이 많이 낀 날씨라 바닷속도 어스름해 토치를 켰다.

Anemone 밭을 지나가는데 꿈틀거리는 Jelly fish 발견!추춤폰의 명관, Anemone Fish들.한동안 춤폰에서 보기 힘들었던 Bat Fish들도 돌아왔다!지나가다 만난 아시아 다이버스 중국팀 강사 Shao와 그의 오픈워터 교육생.Shao와 인사를 나누고 북쪽으로 갔더니바라쿠다 떼들이 있었다.

마누엘이 항상 바라쿠다 떼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노래를 불렀는데이렇게 보여주게 되어 얼마나 기쁘던지."바라쿠다야!!"내가 수신호를 했더니 마누엘은 좋다고 춤을 춘다.

춤폰 피나클에서 안 보면 서운한 푸질리어 떼들.?이 친구가 바로 마누엘!두번째로 옮긴 다이브 사이트는 화이트 락.화이트 락에서 또 만난 중국팀 강사 Shao.Shao는 얼마 전 강사 시험을 통과해 PADI 강사가 되었는데가르치는 스타일이 참 좋다.

아직은 서툰 교육생을 기다릴 줄 알고 인내할 줄 알고부드럽고 부담 없이 가르친다.

나 역시 배워야 할 덕목이다.

화이트 락에서 출수 전 마지막으로 만난 아이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File Fish.+   제가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함부로 가져가 사용하지 말아주세요. +   다이빙하는 에디터, 조하나 스쿠버 다이빙 코스 & 펀 다이빙 예약 및 상담  * 카카오톡: editorh  * 이메일: editor.chohana@gmail.com 아시아 다이버스 웨스턴팀, 꼬따오, 태국  Asia Divers Western Team, Koh Tao, Thailand
공유하기 링크
TAG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