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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림 한의사



내가 베푼 것은 기억해도, 내가 받은 것은 잊어 버리는 것이 인간이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 자신과 약속을 지키내는 사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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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代때 肝디스토마로 투병 생활, 한의학 매력에 빠져 늦깎이 입학주한 이란 대사 어깨 치료 '인연' 18년간 왕실·대통령 주치의로이란서 '황금 손가락'이라 불러… 현지에 건설사 차려 富도 일궈"苦學生 시절 은사님 도움 커… 남은 인생 더 나누며 살겠다" 

"병(病)으로 사경을 헤매던 스물두 살 때 '완치되면 남은 생을 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결심했죠. 53년 만에 그 약속을 지키게 됐네요."지난 16일 모교인 경희대에 충남 금산에 있는 부동산과 소장품 등 약 1300억원 상당의 기부를 약속한 이영림(여·75) 영림한의원장은 18일 본지 인터뷰에서 "죽기 전에 약속을 지켜 행복하다"고 했다.

개인이 대학에 기부한 금액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본지 17일자 A25면〉이씨는 29세이던 지난 1970년 경희대 한의대에 '늦깎이'로 입학했다.

원래 스무 살 때 서울의 한 의대에 진학했지만 간(肝)디스토마에 걸려 학업을 중단했고 오랜 투병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키가 165㎝였던 이씨 몸무게가 42㎏까지 빠질 정도로 병세가 악화됐다.

[이영림 한의사] 알아보자


병원에서는 "곧 죽을 테니 마음의 준비나 하시라"며 치료를 포기했다고 한다.

앙상하게 야윈 딸이 부산 고향 집에 내려가자 어머니는 이씨를 끌고 한의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한약으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6남매 중 셋째인 이씨는 '안 그래도 어려운 집안 형편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혼자 이겨내고 돌아오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집을 나왔다.

월세방에 살며 12권짜리 백과사전을 짊어지고 방문 판매를 다녀 번 돈으로 약값을 댔다.

이렇게 7년간 한약을 먹으며 병을 이겨냈다.

그리고 투병 과정에서 한의학의 매력에 빠져 한의대에 진학했다.

기부 대상으로 모교를 선택한 것은 고학생(苦學生) 시절 자신을 아버지처럼 돌봐준 고(故) 신상주 경희대 한의대 교수 때문이었다.

프랑스 소르본대 출신으로 외국어를 잘했던 신 교수는 번역으로 가욋돈이 생기면 항상 고학생들을 불러 고기를 실컷 먹게 해주었다고 한다.

신 교수는 학비를 벌며 공부하느라 바빴던 이씨를 보면 항상 '어이, 도깨비'라고 불러세우고 따뜻한 말을 건넸다고 한다.

이씨는 "은사님께 배운 한의학과 가르침으로 이렇게 돈을 벌었으니 당연히 후배들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내가 학교에 진 빚을 다 갚으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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