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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럽 여론조사



?한국갤럽 여론조사 박그네 콘크리트 벽 깨져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면 박그네는 끝났다?세대별 긍/부정율20대 14%/67%, 30대 17%/74%, 40대 24%/64%, 50대 42%/49%60대 58%/27% 60대 이상에서만 긍정평가가 높았고 전부 낮았다대구 경북도 지지율 30% 뿐이고 부정평가는 50%를 넘어버렸다?정당별 지지율개눌당 30%, 더민주 24%, 궁물당 14%, 정의당 5%광주/전라     더민주 26%, 궁물당 24%? 당시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지(誌)는 수백만 독자들에게 엽서를 보내 조사하는 방법으로 우드로 윌슨 프린스턴대 총장의 당선을 정확히 예측했다.

이 잡지는 이후 같은 방법으로 네 차례 미국 대선의 결과를 정확히 맞히며 성가를 높였다.

▶문제는 1936년 대선이었다.

민주당 루스벨트, 공화당 랜던 후보를 놓고 1000만명에게 설문지를 보냈다.

유권자 4.5명 중 한명을 조사한 초대형 기획이었다.

237만명의 응답지를 집계하는 데만 석 달이 걸렸다.

이를 토대로 "랜던 후보가 지지율 57%로 이긴다"고 예상했는데 정작 결과는 62%를 얻은 루스벨트의 압승이었다.

▶당시 시장 조사 전문가였던 조지 갤럽은 이 선거를 불과 5000명만 조사하고도 정확히 맞혔다.

연령과 계층을 대표하는 표본인구 개념을 도입해 현대적 통계기법으로 결과를 족집게처럼 내다본 것이다.

반면 다이제스트지는 전화번호부와 자동차 소유자 또는 대학 동창회 명부를 이용해 1000만명을 선정했다.

그 바람에 잘 사는 계층만 표본이 되고 정작 표가 많은 저소득층이 조사에서 빠져버렸던 것이다.

▶그런 갤럽도 1948년 선거에서 망신을 당했다.

갤럽은 당시 듀이 뉴욕주지사가 트루먼 대통령에 이길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결과는 트루먼의 승리였다.

조사가 실패한 이유는 트루먼 인기가 선거 막판에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선거 한 달 전 13%포인트나 차이가 나자 더 이상 조사가 무의미하다며 중단했는데 민심이 그 후 급변했던 것이다.

▶우리 선거에서 출구조사로 결과 예측을 처음 시도한 것은 1996년 총선이다.

당시 253개 선거구 중 15%, 39곳이나 예측이 빗나갔다.

50개씩 지역구를 나눠 맡았던 5개 여론조사 회사 가운데 두 곳만 틀린 한국갤럽이 그 중 가장 정확했다.

갤럽은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 출구조사에서 서울·인천·충남·강원·경남 등 주요 지역을 모두 헛짚었다.

선거 일주일 전 예측 조사도 결과와는 10%포인트 넘게 차이가 났다.

조지 갤럽은 여론조사를 "소수의 정치 엘리트에 맞서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민주주의의 도구"라고 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우리 유권자들 마음을 정확히 반영하려면 여론조사 회사들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출처 : (2010.06.04)4% 응답, 연령대별 응답자수와 비율  밝히지 않아 의문필자는 여론 조사기관인 리얼미터(2005년 설립)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갤럽(1974년 설립, 국제적으로 유명한 갤럽의 제휴사)과 비교하여 조사결과가 늘 달라서다.

특히 이슈 때마다 민심과 너무 다른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더욱 그렇다.

??갤럽과 비교하여 박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늘 높게 나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더더욱 문제인 것은 이슈가 생길 무렵이면 늘 리얼미터의 여론 조사 결과가 뜬다.

이번에도 그랬다.

국정교과서 국정화 여론 조사 결과가 찬성이 더 높게 나왔다.

??여론조사 결과의 신뢰성을 가지려면표집자 수와 응답자의 지역별, 연령대별, 남녀별 수와 비율 등이 공개되어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처럼, 30% 이상 일 때 공개하는 것이 신뢰성을 준다.

리얼미터는 100명 중 4명 정도의 응답률로 결과를 공개하여 신뢰성에 의문을 더한다.

게다가 설문조사과정의 세부 내용도 공개하지 않는다.

   갤럽은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리얼미터는 이를 비공개하고 있는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갤럽은 늘 공개적으로 자세한 여론조사 과정을 상세한 설명을 들어 통계 자료를 공개한다.

(아래는 갤럽의 조사 세부 내용이다.

)*아래는 리얼미터 홈피 자료이다.

이것이 전부다.

갤럽과 달리 구체적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                                1필자는 이에 대한 대답을 들으려 홈피를 찾았지만 전화 번호도 나와 있지 않았다.

114에서도 공개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왜 회사번호를 비밀로 할까? 하나 하나 의문으로 쌓인 회사였다.

10분 여에 걸쳐 검색을 하다 우연히 리얼미터의 전화 번호를 찾았다.

 의문 사항에 대한 질의를 했지만 대답이 무성의 했다.

 결과적으로 통계자료 줄 수 없다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2필자가 질의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여론조사 때 갤럽과 달리 '무선전화와 유선전화 각각 50%'로 하면 응답자가 대부분 60대 이상이어서 여론조사의 결과에 신뢰성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질의에 대한 응답은 다음과 같다.

'조사 방법의 차이일 뿐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구체적인 표집집단의 연령대별 분포와 수, 응답자 수에 대한 연령대별 답변자 수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지만 '유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했고 회사의 방침이어서 공개가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둘째, '리얼미터의 응답률이 '4.4% 정도'여서 신뢰성에 의문이 든다'는 질문에 대해 '가중치를 부여해서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가중치를 둔들 4% 정도로 조사를 하다니...(집 전화 받는 고령자의 답변만 있을 개연성이 크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요소에 대한 대답이 이러하건대 뭘 더 물을 게 있겠는가? 직원의 무성의한 대답에 할말을 잊었다.

 결론으로 말하자면 기본적인 통계자료마저 공개하지 않고 응답률이 4.4%의 여론조사 믿어도 될까, 하는 문제제기이다.

신뢰성에 의문이 든다.

조사 결과만 내놓지 말고 신뢰성을 확보하려면 표집 대상의 연령대별 수와 응답자의 연령대별 수를 공개하는 것이 옳다.

 자칫 여론을 호도하고 시민들에게 혼돈만 주는 여론조사라면 안 하는 게 낫다.

                               3다음은 갤럽과 리얼미터의 비교이다.

독자들도 그 신뢰성의 정도를 파악하기 바란다.

 갤럽 회사 소개(홈페이지 1974년 6월 설립, 02-3701-2100) 세계적인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의 국제조사기구(Gallup International Association) 회원사 가입.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유니세프한국위원회 누적 후원금 1억 원 돌파했다는 대목

 

리얼미터 회사 소개(홈페이지 2005년∼ , 전화번호 없음 114에도 등재하지 않음) 2005년 설립 이후 명실상부한 한국의 대표 여론조사, 대표 TM 전문회사로 성장? 했다고 소개함, 구체적인 회사 규모에 대한 자료 없음.  한국갤럽의 응답률은 17%로 나와있고 홈피에 표집집단에 대한 자세한 응답자 수와 비율이 나와 있어 리얼미터( 아래, 4.4%)와는 대조적이며 공개를 요구해도 불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투표하셨나요?저는 했습니다.

사전투표율도 가장 높았다고 들었던거 같은데..투표결과 놀라웠죠.여당과 야당이 아주 근소한 차이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기억을 못하는거 같기는하지만 제 기억상으로는 제가 살면서 한번도 여당과 야당이 바뀐적이 없던거 같아요(23년동안)...? ?이번 개표방송을 재밌게 보셨다는 분들도 많으시더라구요.??총선이 생각나길래 총선관련해서 찾아보다가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여론조사가 있길래 한국갤럽에서 퍼왓습니다.

조사 개요- 조사기간: 2016년 4월 19

21일- 표본추출: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 응답방식: 전화조사원 인터뷰- 조사대상: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4명- 표본오차: ±3.1%포인트(95% 신뢰수준)- 응답률: 20%(총 통화 4,963명 중 1,004명 응답 완료)- 의뢰처: 한국갤럽 자체 조사조사 내용 (※ 아래 순서대로 질문)-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 / 긍정·부정 평가 이유(자유응답)- 정당 지지도?주요 사건- 4/16 세월호 2주기- 4/18 박근혜 대통령, 총선 결과 관련 '민의' 언급 / 이란 국빈 방문 예고- 4/19 유승민-새누리당, 이해찬-더불어민주당 복당 신청 / 4.19 혁명 56주기- 4/20 국민의당 박준영 공천헌금 의혹- 4/21 제19대 마지막 임시국회 시작- 새누리·더민주, '복당' 갈등 / 각 당 지도부 구성 논의 / 일본·에콰도르 강진주요 결과● 대통령 직무 '잘하고 있다' 29% vs. '잘못하고 있다' 58%- 직무 긍정률 취임 후 최저치, 2015년 연말정산·증세 논란기-메르스 확산기에도 29% 기록 한국갤럽이 2016년 4월 셋째 주(19

21일) 전국 성인 1,004명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지 잘못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지 질문한 결과, 29%가 긍정 평가했고 58%는 부정 평가했으며 13%는 의견을 유보했다(어느 쪽도 아님 6%, 모름/응답거절 7%). ◎ 대통령 직무 긍정률은 지난 주(11

12일, 총선 직전 이틀) 대비 10%포인트 하락, 부정률은 10%포인트 상승해 긍·부정률 격차가 29%포인트로 벌어졌다.

각 세대별 긍정/부정률은 20대 11%/73%, 30대 15%/74%, 40대 20%/67%, 50대 35%/50%, 60대+ 57%/31%로 60대 이상에서만 긍정률이 부정률을 앞섰다.

◎ 주요 지지정당별로 보면 새누리당 지지층(306명)은 69%가 '잘하고 있다'고 답했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층(238명), 국민의당 지지층(252명), 정의당 지지층(67명)에서는 각각 81%, 78%, 94%가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했으며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층(136명)에서도 부정적 견해가 더 많았다(긍정 21%, 부정 46%). ◎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자에게 그 이유를 물은 결과(289명, 자유응답) '열심히 한다/노력한다'(19%)(+8%포인트), '외교/국제 관계'(15%)(-4%포인트), '대북/안보 정책'(12%)(-3%포인트), '안정적인 국정 운영'(7%), '주관, 소신/여론에 끌려가지 않음'(4%)(-3%포인트), '복지 정책'(4%) 등으로 나타났다.

◎ 직무 수행 부정 평가자는 부정 평가 이유로(579명, 자유응답) '소통 미흡'(20%)(+8%포인트), '경제 정책'(15%)(-5%포인트), '독선/독단적'(12%)(+6%포인트), '국정 운영이 원활하지 않다'(8%), '전반적으로 부족하다'(5%), '공약 실천 미흡'(4%)(-3%포인트), '복지/서민 정책 미흡'(4%) 등을 지적했다.

◎ 대통령 직무 긍정률 29%는 취임 이후 최저치로, 연말정산/증세 논란이 일었던 2015년 1월 넷째 주와 2월 첫째 주 그리고 메르스 사태 중이던 6월 셋째 주에도 같은 수치를 기록한 바 있다.

그러나 작년에는 대통령 직무 긍정률만 하락했고, 새누리당 지지도는 40% 선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

 ● 정당 지지도: 새누리당 30%, 더불어민주당 24%, 국민의당 25%, 정의당 7%-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새누리당 지지도 최저치, 국민의당 창당 이후 최고치 경신2016년 4월 셋째 주(19

21일) 현재 지지하는 정당은 새누리당 30%, 더불어민주당 24%, 국민의당 25%, 정의당 7%, 없음/의견유보 14%다.

새누리당 지지도는 지난 주(11

12일, 총선 직전 이틀) 대비 7%포인트 하락했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각각 4%포인트, 8%포인트 상승했다.

정의당은 변함 없었고, 무당층 비율은 5%포인트 줄었다.

◎ 2012년 총선과 대선, 2014년 지방선거 직후에도 무당층이 연중 최소 규모로 줄었다가 이후 몇 주 만에 선거 전 평소 수준으로 회복됐다.

현재 무당층의 감소 역시 선거 직후 일시적 현상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16년 만의 '여소야대' 국회와 3당 경쟁 체제에 유권자들의 관심이 더 오래 머물 가능성도 있다.

◎ 이번 주 새누리당 지지도(30%)는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다.

2012년 1월 초 당시 한나라당 지지도는 '고승덕 돈봉투 폭로' 직후 22%까지 하락했으나, 이후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4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점차 상승했다.

◎ 더불어민주당 지지도(24%)는 올해 최고치로, 2014년 3월 초 민주당-새정치연합 신당 창당 선언 직후와 6월 지방선거 후 몇 차례 30%를 상회했고 민주통합당 시절이던 2012년 대선 직전에는 36

37%까지 오른 바 있다.

국민의당 지지도는 4주 연속 상승해 창당 이후 최고치(25%)를 경신했고, 정의당 지지도 역시 창당 이후 최고치(7%)에 해당한다.

◎ 이념 성향별로 볼 때 보수층은 59%가 새누리당을, 진보층은 39%가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며 중도층은 새누리:더민주:국민의당이 20%:27%:33%다.

특히 중도층에서의 국민의당 지지도는 3월 넷째 주 12% → 다섯째 주 15% → 4월 첫째 주 21% → 둘째 주(선거 직전 이틀) 27% → 셋째 주 33%로 바뀌어 최근 국민의당 약진에 기반이 됐다.

◎ 참고로 한국갤럽이 총선 직전인 4월 11

12일 투표할 비례대표 정당을 물은 결과 새누리당 30%, 더불어민주당 20%, 국민의당 20%, 정의당 8%, 기타 정당 2%였고 18%는 응답을 유보했다.

4월 13일 개표 결과 비례대표 득표율은 새누리당 33.5%, 더불어민주당 25.5%, 국민의당 26.7%, 정의당 7.2%, 기타 정당 7.0%였다.

즉 이번 주 정당 지지도는 비례대표 투표 결과와 비슷한 양상을 띤다.

◎ 더민주는 2012년 이후 여러 차례 위기 속에서도 지지도 20% 내외를 유지할 정도로 핵심 지지층이 견고하다.

반면 창당 후 채 3개월이 안 된 국민의당 지지층은 아직 기대 섞인 성원을 보내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주 정당 지지도에서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지만, 국민의당은 더민주에 비해 향후 변동의 여지가 더 크다.

 ● 응답자 특성표 - 조사완료/목표할당 사례수 병기 안내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은 2014년 지방선거 기간부터 중앙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이하 '여심위')의 권고로 매주 조사 진행 내역과 정당 지지도 조사 결과를 여심위 홈페이지에 등록하고 교차집계표에 조사완료 사례수(실제 응답 완료한 인원)와 목표할당 사례수(주민등록인구 통계 기준 가중 처리한 인원)를 병기합니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언론에 보도되는 선거여론조사의 상세 내역을 공개합니다.

조사의뢰자, 실제 응답 인원, 조사 방법(집전화/휴대전화, ARS자동응답/조사원인터뷰, 웹/모바일앱 등), 표본추출틀(RDD/DB/패널 이용 여부 등), 피조사자 접촉현황(콜로그), 전체 질문지와 자료 처리 결과를 보실 수 있습니다.

● 한국갤럽은 ARS(자동응답) 조사를 하지 않습니다.

한국조사협회(KORA: KOrea Research Association) 소속 41개 전체 회원사는 2014년 7월 14일 국가주요정책 수립에 이용되는 여론조사의 신뢰성 제고를 위해 ARS 조사를 수행하지 않는다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한국조사협회의 신은희 전 회장은 "그 동안 ARS 조사가 엄격한 방법론에 따른 여론조사와 구분 없이 인용되어 왔다"며 "일반 대중에게 많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여론조사에 ARS가 활용되거나 인용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래 회원사 행동규범을 첨부하오니, 향후 조사의 활용이나 인용 보도 시 참고해 주십시오. 이 여론조사결과를 보고 벌써 기사도 나오는거 같던데조사결과는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저는 나름의 정의를 적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씩보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론조사 결과가 여론을 반영하지 못하는 데에는 집 전화에 의존한 조사 방식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집 전화가 없는 가구가 40퍼센트에 달하고 스마트폰 이용자가 4,000만 명을 넘지만, 총선 여론조사는 대부분 집 전화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휴대전화는 전화번호부가 없어 지역구별로 거주자를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낮은 응답률도 문제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가 2014년 실시된 지방선거 관련 여론조사 자료 총 816건을 분석한 결과 응답률이 10퍼센트가 안 되는 경우가 50퍼센트가 넘었으며, 응답률이 3퍼센트 미만인 것도 76건이나 되었다.

1?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이미 잘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언론은 그런 여론조사 결과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열심히 보도했고, 이런 수요에 부응하느라 선거 직전까지 엄청난 양의 여론조사가 양산되었다.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에 따르면 선거 한 달 전인 3월부터 등록된 여론조사 결과만 934건에 달했다.

2 그런 여론조사 결과를 정치 저널리즘의 주식(主食)으로 삼았던 언론은 스스로 낯이 뜨거워진 탓인지 뒤늦게 여론조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는 사설을 통해 “4·13 총선은 여론조사의, 여론조사에 의한, 여론조사를 위한 선거란 오명을 뒤집어썼다”고 했고,3 『』는 사설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특정 선거구에서는 같은 날 실시한 2개 회사의 조사가 30%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났다.

하루 이틀 사이에 10

20%포인트 오가면서 순위가 바뀐 조사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런 엉터리 조사들이 거꾸로 국민의 뜻을 왜곡하고 경선과 선거 결과를 조작하며 사실상 정치를 조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4?한국보다 정도는 덜할망정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도 여론조사의 정확성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밋 롬니(Mitt Romney) 공화당 후보의 승리를 예측했다가 실패한 여론조사 기관 갤럽은 올해 대선에선 예측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갤럽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한국 여론조사업체들도 “이대로면 내년 대선 때는 여론조사 결과가 쓰레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5?여론조사의 아버지라 할 조지 갤럽(George H. Gallup, 1901

1984)이 이 모습을 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사실 문제의 핵심은 정확성이 아니다.

여론조사의, 여론조사에 의한, 여론조사를 위한 선거와 더불어 선거가 아닌 평상시의 정치마저 여론조사에 휘둘리고 있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엘리트주의적 이상이 미국 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본 갤럽은 여론조사가 민주주의 발전과 공익 증진을 위해 기여하는견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은 여론조사의 정확성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갤럽??갤럽이 원했던 민주주의는 그런 게 아니었다.

엘리트주의적 이상이 미국 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본 갤럽은 여론조사가 그 견제책이라고 생각했다.

즉, 여론조사가 있어야 정치적 의사결정을 엘리트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6 여론조사가 민주주의 발전과 공익 증진을 위해 기여한다고 생각한 갤럽의 이상은 유효한가? 갤럽의 삶과 사상을 살펴보면서 그 의문에 답해보기로 하자. 최초의 여론조사는 언제 이루어졌을까?프랑스 계몽 사상가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

1778)는 “여론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여왕이며 그것은 국왕의 권력에도 복종하지 않는다.

국왕들은 바로 이 여왕에게 직접 시중을 들어야 하는 노예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여왕은 ‘선동(demagoguery)’에 취약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선동을 염려해서 대통령 권력을 헌법에 명문화했다.

추상적이어서 별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선동을 경계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널리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여론 측정 방법은 신문이었기에, 정치인과 정치세력들 사이에선 신문의 호의를 얻으려는 쟁탈전이 벌어졌으며, 주요 신문 한두 개를 장악하는 것은 대통령 후보들의 필수로 여겨졌다.

7?최초의 여론조사는 언제 이루어졌을까? 역사가들은 1824년 존 퀸시 애덤스(John Quincy Adams, 1767

1848)와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 1767

1845)이 격돌한 미 대통령 선거를 꼽는다.

당시 조사는 사람들을 모아 모의 투표를 하는 것이었는데, 이 일을 『해리스버그펜실베이니안(Harrisburg Pennsylvanian)』 신문이 주관했다.

?straw poll이라는 말도 이때에 최초로 사용되었다.

왜 여론조사에 ‘밀짚(straw)’이란 말이 쓰였을까? 풍향을 알아볼 때에 공중에 밀짚을 던져보았던 관행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오늘날엔 엄격한 통계적 샘플 방법을 거치지 않은 여론조사를 가리켜 straw poll이라고 하는데, 인터넷 여론조사가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영어로 take a straw poll은 “비공식 여론조사를 하다”는 뜻이다.

straw vote라고도 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말하고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The ballot is stronger than the bullet)”고 한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

1865)은 “여론은 전부다.

여론의 지지를 받으면 실패할 수 없고,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성공할 수 없다(Public Opinion is everything. With it nothing can fail. Without it nothing can succeed)”고 했다.

?대선과 무관하게 자주 거론되는 초기의 여론조사 사례는 제17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Andrew Johnson, 1808

1875)에 대해 보도한 『클리블랜드리더(Cleveland Leader)』의 1866년 기사다.

의회에서 통과된 민권 관련법을 존슨 대통령이 반대했는데, 어느 기차 승객들을 대상으로 한 straw poll에서 47대 12로 의회를 지지한 사람이 많았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겨우 59명을 상대로 한 조사였지만, 이 민심은 제법 정확한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

8 미국 민주주의는 ‘여론에 의한 정치 통제’재선을 노린 민주당의 그로버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 1837

1908)와 이에 도전한 공화당의 벤저민 해리슨(Benjamin Harrison, 1833

1901)의 대결 구도로 치러진 1888년 대선은 코카콜라와 백화점들이 선도한 광고 마케팅을 정치 분야에도 도입한 선거였다.

?이 선거를 미국에서 지켜본 영국 학자이자 정치가인 제임스 브라이스(James Bryce, 1838

1922)는 미국의 선거 운동은 석 달 동안 브라스밴드를 앞세우고 깃발과 배지가 난무하는 퍼레이드와 이에 환호하는 구경꾼들이 미국 전역을 뒤덮는 기간이라고 관찰 소감을 썼다.

이런 선거는 참여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고 믿게 만들고,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는 열성적인 모습을 보게 함으로써 강한 인상을 남기며,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을 읽는 시골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고도 했다.

즉, 미국의 선거는 붐을 고조시키고 지속시키는 비즈니스라는 것이다.

9?브라이스는 바로 그해에 출간한 『미국 공화국(The American Commonwealth)』(1888)이라는 책에서 미국은 ‘여론에 의해 움직이는 정부(government by public opinion)’와 ‘여론에 의한 지배(rule of public opinion)’가 실현된 나라며, 미국의 절대적 지배자는 여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중요한 여론의 형성 근거는 박약(slim)하다고 지적했다.

브라이스는 여론 측정의 ‘기술적 어려움(mechanical difficulty)’을 지적했는데, 그로부터 50년 후 ‘면대면 민주주의(face-to-face democracy)’에 대한 이상을 품고 있던 갤럽이라는 젊은이가 바로 그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일에 도전하면서 브라이스의 말을 즐겨 인용하게 된다.

10?1909년에서 1933년까지 하버드대학 총장으로 재임한 애벗 로런스 로웰(Abbott Lawrence Lowell, 1857

1943)은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었음에도 1909년에 출간한 『여론과 대중 정부(Public Opinion and Popular Government)』라는 책에서 미국 민주주의를 “여론에 의한 정치 통제(the control of political affairs by public opinion)”로 정의할 정도로 여론은 미국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위상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1914년 6월

1918년 11월)을 거치면서 프로파간다에 놀아나는 국민, 광신적 애국주의 등 부정적인 모습이 드러나자 여론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정치인이자 작가인 프레더릭 하우(Frederic C. Howe, 1867

1940)는 1921년에 출간한 『혁명과 민주주의(Revolution and Democracy)』에서 “우리는 믿으라고 주어지는 것을 믿는다(We believe the things we are told to believe)”고 개탄했다.

11?여론에 대한 결정적인 일격은 그다음 해에 출간된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 1889

1974)의 『여론(Public Opinion)』(1922)을 통해 이루어졌다.

리프먼은 흔히 여론으로 간주되는 것은 번쩍이는 이미지들의 결합, 표피적인 인상, 스테레오타입, 편견, 이기심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12 이 주장에 설득당한 로웰도 1923년 결국 리프먼의 의견에 동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13 그러나 이런 변화는 어디까지나 지식계에서만 일어난 것일 뿐 일반 대중 사이에서 여론은 민주주의의 냄새를 잔뜩 풍기는 아름다운 단어였다.

 여론조사에 큰 흥미를 느낀 조지 갤럽의 등장1901년 11월 18일 미국 아이오와주의 작은 마을인 제퍼슨(Jefferson)에서 낙농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갤럽은 아이오와대학(University of Iowa)에 진학해 독립적인 대학 신문인 『데일리아이오완(The Daily Iowan)』의 편집장을 지냈다.

그는 매우 유능한 편집장이었다.

캠퍼스 밖의 소식도 알차게 보도함에 따라 학교 외부에서 구독자도 늘어나 광고 수입을 크게 증가시켰다.

?갤럽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독자들이 어떻게 왜 신문을 읽는지에 대해 무척 알고 싶어 했다.

그가 처음으로 실시한 조사는 누가 대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인지를 여론조사를 통해 뽑는 일이었다.

그는 나중에 이 조사에서 1등으로 뽑힌 오필리아 스미스 밀러(Ophelia Smith Miller, 1898

1988)와 결혼해 2남 1녀를 낳았다.

?갤럽의 학생 시절 통계조사 기법은 광고 분야에 막 도입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1924년 광고주들의 연례 총회에서 컬럼비아대학 경제학 교수 웨슬리 미첼(Wesley C. Mitchell, 1874

1948)은 “통계조사는 원가 계산에서부터 시장조사에 이르기까지 현대 비즈니스의 필수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14?갤럽은 여론조사에 큰 흥미를 느껴 그 분야를 계속 공부했으며 그가 27세에 아이오와대학에서 취득한 박사학위의 논문은 「신문 독자의 관심 측정에 관한 객관적 연구 방법의 새로운 기법(A New Technique for Objective Methods for Measuring Reader Interest in Newspaper)」(1928)이었다.

그는 이후 드레이크대학과 노스웨스턴대학을 거쳐 컬럼비아대학의 저널리즘 교수로 일했다.

?갤럽은 1932년 컬럼비아대학 교수직을 유지한 채 뉴욕의 유명한 광고 회사인 영앤드루비컴(Young and Rubicam)의 리서치 책임자로 초빙되었다.

그해 여름 미국 아이오와주 민주당은 올라 바브콕 밀러(Ola Babcok Miller, 1871

1937)라는 환갑의 여성을 선거로 뽑는 부지사(Secretary of state) 후보로 지명했지만, 남북전쟁 이래 한 번도 주지사를 내지 못한 민주당으로선 큰 기대를 걸긴 어려웠다.

그녀는 대학교수이자 광고 회사 임원인 사위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 사위는 자신이 개발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유권자들이 원하는 걸 조사한 다음 선거 운동에 활용함으로써 밀러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 사위는 바로 갤럽이었다.

?갤럽은 1937년 컬럼비아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영앤드루비컴의 부사장이 되어 1947년까지 일했다.

영앤드루비컴은 갤럽에게 리서치를 맡기면서 대외적으로 라디오, 신문 수용자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한다고 자랑했다.

15 그렇게 뻐길 만도 했다.

갤럽의 밑에서 일한 바 있는 데이비드 오글비(David Ogilvy, 1911

1999)는 당시 갤럽이 광고의 열독률만 측정한 것이 아니라 그 수치를 축적해 분석하기도 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어떤 분석 기법들은 다른 기법들보다 지속적으로 뛰어난 기능을 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본 플래너리(Vaughn Flannery)라는 아트 디렉터는 갤럽이 발견한 결과들을 그의 작업에 적용했다.

수개월 만에 영앤드루비컴이 만든 광고는 다른 대행사에서 만든 광고보다 높은 열독률을 자랑했고 광고주에게는 헤아릴 수 없는 큰 이익을 주었다.

”16?갤럽은 영앤드루비컴에서 일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1935년 뉴저지주 프린스턴에 설립한 ‘미국여론연구소(American Institute of Public Opinion)’였다.

그는 매주 「미국이 말한다!(America Speaks!)」로 이름 붙인, 여론조사 내용을 담은 칼럼을 발표했다.

 여론조사의 분수령이 된 1936년 대선1936년 대선은 갤럽의 등장으로 미국 여론조사의 분수령이 된 사건이기도 했다.

당시 여론조사업계는 춘추전국시대였는데, 선두주자는 『리터러리다이제스트(Literary Digest)』라는 잡지였다.

이 잡지사는 1916년 이래 여론조사를 통해 매번 정확히 선거 결과를 예측한 걸로 유명했다.

당시의 여론조사는 오늘날의 기준에선 미련해 보일 정도의 물량 공세 위주였다.

이 잡지는 1924년 대선에서 1,600만 명의 유권자에게 설문지를 우송했고 1928년에는 1,800만 명한테 인기 투표 용지를 보냈으며, 1936년 대선에서도 1,000만 명에게 설문지를 발송해 230만 장을 반송 받았다.

17?그렇게 엄청난 공을 들여 얻어낸 설문지를 집계한 결과에 따라 『리터러리다이제스트』는 1936년 대선 전망에서 현직 대통령으로 민주당 후보인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

1945)가 42대 57로 공화당의 앨프리드 랜던(Alfred M. Landon, 1887

1987) 후보에게 패배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은 반면, 갤럽은 54대 46으로 루스벨트의 승리를 예측했다.

?『리터러리다이제스트』와 갤럽의 대결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 여겨졌기에, 갤럽의 예측은 엄청난 비난 공세에 시달렸다.

신생 업체가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게 아니냐는 질책이었다.

갤럽은 자신의 칼럼을 싣는 신디케이트 신문사들에게 만약 자신의 예측이 틀리면 그간 받은 돈을 환불하겠다고 선언하는 대담한 도박을 감행했다.

?당시 갤럽의 여론조사 표본은 오늘날의 10배에 이르는 1만 5,000명 수준이었는데, 제대로 된 표본의 추출 방법보다는 표본 크기의 다다익선(多多益善)을 굳게 믿고 있던 『리터러리다이제스트』는 갤럽의 표본이 적다고 비웃었다.

그렇게 비웃음을 당한 수준의 표본이었지만 1만 5,000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하는 데엔 비용이 많이 들었다.

?물론 그 비용은 신디케이트 신문사들에게서 나오지만 환불할 경우 파산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갤럽의 긴장은 극도로 고조되었고, 이를 보다 못한 부인이 쉬면서 긴장을 풀라고 갤럽을 일부러 플로리다 사라소타(Sarasota)로 데려갔다.

당시엔 선거일을 앞둔 막판 조사는 없었기에 갤럽이 휴양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선거 결과를 기다리는 것 이외엔 없었다.

18?승리의 여신은 갤럽의 손을 들어주었다.

갤럽의 예측대로 루스벨트가 61대 37로 승리했으며, 이 충격으로 『리터러리다이제스트』는 1938년에 폐간되고 말았다.

갤럽의 완전한 승리였지만, 갤럽은 자신의 예측이 실제 결과와 7퍼센트포인트의 격차가 난 것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했다.

19?『리터러리다이제스트』는 어떤 실수를 저질렀던 걸까? 갤럽은 이 잡지의 조사가 자동차와 전화를 가진 부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며 루스벨트의 우세를 주장했는데, 그의 말이 맞았다.

이 잡지는 구독자 주소록과 전화 가입자, 자동차 보유자 명단을 토대로 조사를 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부유층이며 공화당 지지자였다.

표본 크기가 아니라 표본 추출 방법이 중요하다는 점을 모르고, 특정 계층만 상대로 조사하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20?1936년 대선 예측에 성공하면서 갤럽의 명성은 전국적으로 알려졌으며, 이제 여론조사 산업은 전시(戰時)의 프로파간다 산업을 계승하는 동시에 압도할 정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37년엔 『여론 연구(Public Opinion Quarterly)』가 창간되었으며, 1935년 미국으로 건너온 오스트리아계 유대인 폴 라자스펠트(Paul F. Lazarsfeld, 1901

1976)는 미국의 미디어 효과 연구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21 ‘여론조사 역사상 최악의 날’이 된 1948년 대선갤럽은 1939년의 어느 강연에서 라디오 기술, 신문의 광범위한 보급, 그리고 그 자신이 대중화시킨 새로운 조사 기법에 의해 나타날 가능성들을 검토하면서 전국적 규모의 ‘타운 미팅(town meeting)’의 도래를 예측했다.

마치 이웃끼리 공동체의 문제를 논의하는 것처럼 새로운 기술은 그런 전국적 토론을 가능케 하리라는 것이었다.

22?갤럽은 1940년에 출간한 『민주주의의 맥박(The Pulse of Democracy)』에서 그럼 꿈을 재차 피력하면서 여론조사가 민심을 반영해 엘리트 중심의 정치와 행정을 견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라는 평소의 지론을 역설했다.

여론조사가 민주주의의 맥박을 측정하고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23?애초의 취지가 그러했던 만큼 갤럽의 여론조사는 처음엔 유권자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한 소작농부가 “내 생각을 묻는다구? 내 생각이 중요하단 말이요? 아직 그 누구도 내 생각을 물어본 적이 없었는데!”라고 말한 데에서도 드러나듯이, 당시 생소했던 여론조사에 대한 호응도는 썩 괜찮은 편이었다.

?갤럽은 여론조사에 대한 그런 호감도를 이용해 영화 주제, 줄거리의 결정에도 가담하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했다.

1946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아카데미 10개 부문을 수상하며 대히트한 윌리엄 와일러(William Wyler, 1902

1981) 감독의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해(The Best Years of Our Lives)〉는 갤럽이 32개 후보 가운데 여론조사를 통해 고른 제목이었다.

이런 성공은 마케팅으로까지 나아갔다.

갤럽은 『타임』 1948년 5월 3일자 표지 인물에 등장해 ‘누구나 아는 이름(household name)’이 되면서 ‘여론’과 동일시되었다.

24????갤럽은 여론조사에 대한 대중의 호감도를 이용해 영화 주제, 줄거리의 결정에도 가담하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했다.

사진은 갤럽이 32개 후보 가운데 여론조사를 통해 제목을 정한 영화 <우리 생에 최고의 해>의 등장인물들.??그러나 그런 유명세가 오히려 갤럽의 발목을 잡을 줄 누가 알았으랴. 1948년 11월 2일에 치러진 대선은 미국 여론조사 역사상 최악의 날(the most disastrous day in polling history)을 낳은 선거였다.

갤럽을 포함한 주요 여론조사업체들의 예측이 모두 빗나갔기 때문이다.

?당시 물가 상승과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인한 사회불안이 높아져 이미 1946년의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 여소야대 정국이 초래되었다.

1948년 마셜플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미국 내 반대 세력이 늘어갔으며 또한 민주당 내 분열이 심화되어 여론조사업체와 언론 대부분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토머스 듀이(Thomas E. Dewey, 1902

1971) 후보가 현직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1884

1972) 후보를 5

15퍼센트 격차로 누르고 당선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트루먼은 그런 예측에 굴하지 않고 그 유명한 3만 마일 전국 유세를 통해 유권자에 직접 호소하고 나섰다.

600만 이상의 사람들에게 300번 이상의 연설을 했다.

그는 아내와 딸을 동반하고 다니면서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25?『시카고데일리트리뷴』이 그 유명한 오보 「듀이, 트루먼을 물리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낼 정도로 막판까지 듀이의 우세가 확연해 보였지만, 결과는 트루먼의 승리로 나타났다.

일반 투표에서 트루먼 49.9퍼센트 듀이 45.1퍼센트, 선거인단 투표에서 303대 189의 결과였다.

그야말로 극적인 승리였다.

트루먼은 공화당계 신문인 『시카고데일리트리뷴』을 군중들 앞에서 신나게 흔들어 보이면서 승리를 자축했다.

트루먼의 승리를 예측하지 못한 갤럽도 여론조사업체들을 대표해 조롱거리가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여론조사의 대명사가 된 갤럽자신의 조사를 확신했던 갤럽은 선거 결과에 대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고 실토했다.

그는 그런 당혹감으로 인해 뇌물이나 투표용지 조작 등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의혹까지 제기했으나 곧바로 철회하고 실수를 인정했다.

갤럽은 실수를 저지른 이유가 최종 여론조사가 선거일 3주 전에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았다.

유권자 7명 중 1명꼴로 선거 마지막 2주 동안 결심했는데, 이들의 4분의 3이 트루먼을 지지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26 그는 대선 직후 가진 한 연설에서 자신의 새로운 각오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저는 트루먼 대통령에 대해 대단한 존경심을 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싸웠기 때문이죠. 저도 마찬가지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이 나라에 여론조사의 중요성이 있는 한, 그리고 누군가가 더 나은 방법을 발견할 때까지, 저는 사람들이 그들의 복지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알리는 일을 하며 계속 전진해나갈 것입니다.

”27?실제로 갤럽의 전진은 성과를 거두었다.

1948년 대선만 제외하고, 갤럽은 이후 1980년대까지 11차례의 대통령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 명예회복을 하게 된다.

그는 1958년 갤럽연구소(Gallup Organization)를 설립했고, 1937년 영국 갤럽을 시작으로 한국(1974년)을 비롯한 63개국에 갤럽이란 이름의 여론조사 기관이 갤럽국제조사연구소(Gallup International Research Institute) 회원사의 형식으로 독자적으로 운영되면서 그의 이름은 전 세계적으로 여론조사의 대명사가 된다.

28?그러나 갤럽의 원대한 꿈과는 달리 여론조사는 그의 뜻대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갤럽은 원래 여론에 순응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이상 아래 그의 사업을 시작했으나 여론조사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지면서 1952년부터 무응답(nonresponse) 비율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기술 발전으로 전화의 자동 응답 장치(answering machine), 발신자 확인 시스템(caller identification system)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여론조사는 더욱 힘들어졌다.

29?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게 여론인지라,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 후보들은 공식 여론조사와는 별도로 내부용 여론조사(private polls)를 했는데, 케네디 시대에 이르러 이런 내부 여론조사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케네디는 예선에서 50번, 본선에서 27번, 집권 후 16번을 했고,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1908

1973)은 1964년 대선 전 39번, 1965년 30번, 1966년 49번, 1967년 3번, 1968년 9번을 했으며,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 1913

1994)은 1969년 7번, 1970년 29번, 1971년 44번, 1972년 153번을 했다.

30?저널리스트 시드니 블루먼설(Sidney Blumenthal, 1948

)은 『영원한 캠페인(Permanent Campaign)』(1980)이라는 책에서 오늘날 미국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영원한 선거 캠페인 체제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늘 선거를 염두에 둔 선거 유세와 다를 바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31?블루먼설이 그렇게 말한 근거 중의 하나가 바로 여론조사였다.

예컨대, 닉슨이 대통령 재임 시 쓴 여론조사 비용은 1995년 기준으로 환산해서 500만 달러나 되었고, 대통령 당선자가 여론조사에만 쓴 비용은 1972년 160만 달러에서 1992년 400만 달러로 급증했다.

32?1970년대 초반까지도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업체들의 주관하에 이루어졌지만, 1975년 『뉴욕타임스』와 CBS News가 공동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언론사 자체 여론조사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76년 대선에선 네트워크 방송사들이 모두 자체 인하우스(in-house) 여론조사 기능을 갖춰서 보도했다.

33?1980년대 들어 거대 미디어들은 모두 자체 여론조사 기능을 갖거나 자기들만의 보도용으로 여론조사를 의뢰하는 관행을 정착시켰는데, 이는 적잖은 윤리 문제를 야기했다.

언론사가 뉴스를 보도하는 게 아니라 뉴스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즉 ‘의사사건(pseudo-event)’을 양산해도 괜찮은가 하는 의문이었다.

여론조사 비용을 써서 뉴스를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취재원에게 돈을 지불하는 이른바 ‘수표 저널리즘(checkbook journalism)’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되었다.

여론조사가 주요 뉴스 아이템으로 경쟁 국면에 접어들면서 자사 외의 다른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결과는 무시한다거나 이미 다 지적한 흐름인데도 자기들이 처음 밝혀낸 것처럼 판촉하는 일도 일어나기도 했다.

34 ‘갤럽 여론조사 멘털리티’에 대한 비판여론조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이미 1940년대부터 제기되었다.

1948년 사회학자 허버트 블루머(Herbert Blumer, 1900

1987)는 여론은 상호작용(interactions)과 커뮤니케이션의 산물인데, 이를 ‘개인 의견의 총합(aggregations of individual opinions)’으로 수량화하는 건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1949년 린지 로저스(Lindsay Rogers)는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

1797)의 말을 인용하면서 선거로 뽑힌 사람의 양심과 현명한 판단을 믿어야지 대중적 열정의 순간들에 노예가 되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35?“민심은 천심이다(The voice of the people is the voice of God)”는 말처럼 여론은 신성시되지만, 문제는 여론을 정확히 알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여론과 미국 민주주의(Public Opinion and American Democracy)』(1968)의 저자인 미국 정치학자 V. O. 키(V. O. Key, 1908

1963)는 이렇게 말했다.

“여론에 대해 정확히 말한다는 건 성령(聖靈)을 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다.

”36 독일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1883

1969)는 이렇게 우려했다.

“현대인은 질(質)보다는 양(量)에 의존하고, 새로운 믿음을 만드는 대신 편의주의에 굴복하는 일종의 ‘갤럽 여론조사 멘털리티’를 개발해냈다.

” ?논픽션 작가 수잔나 레저드(Suzannah Lessard)는 『워싱턴먼슬리(The Washington Monthly)』(1996년 1

2월호)에 기고한 「여론조사가들을 추방하라(Banish the Pollsters)」는 글에서 지도자 지망생들의 정신은 여론조사 기술에 의해 식민화되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여론조사의 과학적 방법론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정도로 제약적이고 정신을 파괴하는 노예화의 한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전에 정치가들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추측해야만 했다.

그러한 불확실성은 정치가로 하여금 자신의 신념에 더 가까운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게 하였다.

[갤럽 여론조사] 한번 파해쳐 봅시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하에서는 불확실성이란 거의 없다.

”37?데이비드 솅크(David Shenk)는 『데이터 스모그(Data Smog: Surviving the Information Glut)』(1997)에서 “만약 미국인들이 지도력의 자질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추종심은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삶으로 너무나도 바쁘며 그리고 그들의 지식은 너무 전문화되고 파편화되어 있어, 폭넓은 쟁점들에 관한 지적인 결정을 내리기에는 부적절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술의 두 가지 불행한 결과, 즉 더 적은 이해를 하면서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시민들을 접하고 있다.

”38?진보적 정치 컨설턴트 조 트리피(Joe Trippi)는 『혁명은 TV로 중계되지 않는다(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 Democracy, the Internet, and the Overthrow of Everything)』(2004)에서 다음과 같이 개탄했다.

?“여론조사와 이를 위한 초점 집단에 의존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에서 최악의 트렌드다.

이는 후보의 신념을 흐리멍텅한, 시장 테스트를 거친, 중도적 입장으로 대체해버린다.

정말이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론조사는 정치에 필요한 용기를 없애버렸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39?‘인간의 얼굴을 가진 여론조사’는 가능한가?이렇듯 비판자들은 지도자들이 여론조사의 노예가 되었다고 비판하고, 일부 학자들은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정치를 가리켜 냉소적인 의미로 ‘서베이 민주주의(survey democracy)’라는 신조어(新造語)를 만들었지만,40 미국인들이 여전히 여론조사를 지지하는 걸 어이하랴.?1996년 미국인의 70퍼센트가 여론조사가 민주주의 발전과 공익 증진을 위해 기여한다며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1 미국인들은 정치적 이슈들을 결정하는 데 여론조사의 역할에 대해 낙관적이며, 민주 생활의 기초로 여론조사가 갖는 능력에 대해 신뢰한다.

이렇듯 포퓰리즘과 여론조사는 상호 친화적이다.

42?포퓰리즘이 나쁜가? 꼭 그렇진 않다.

“정치인이 여론에 순응하는 걸 가리켜 ‘인기영합(pandering)’이라고 하는데, 이게 과연 온당한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정치적 대응성(political responsiveness)’이라고 부르는 게 온당하다”는 반론을 감안할 필요가 있겠다.

43 그럼에도 여론을 추종하는 정치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대중의 무지(public ignorance)에 관한 것이다.

대중을 깔보거나 얕잡아보는 게 아니라, 유식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할 일에 바쁘다 보면 공적 이슈들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 문제가 매우 심각한데도 이걸 모른 척하고 여론조사를 지금처럼 계속 해야 하는가? 이런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어떤 이슈에 대한 여론조사와 더불어 그 이슈에 대한 응답자의 지식수준, 그리고 그 이슈가 응답자에게 중요한지,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도 같이 조사하자는 대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44?스탠퍼드대학 커뮤니케이션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제임스 피시킨(James S. Fishkin, 1948

)은 1988년 ‘숙의 여론조사(deliberative poll)’를 제안했다.

전국적인 랜덤 샘플을 통해 고른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토의한 뒤 그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자는 것이다.

그는 1995년 자신의 주장을 체계화시킨 『국민의 목소리: 여론과 민주주의(The Voice of the People: Public Opinion & Democracy)』의 출간 이후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숙의 여론조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996년 1월 최초로 랜덤 샘플 미국인이 오스틴 텍사스대학에 모여 ‘숙의 여론조사’를 시도했는데, 이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여론조사(poll with a human face)”로 명명되었다.

45?숙의 여론조사의 장점 중 하나는 응답자들의 이른바 ‘의견없음(non-attitude)’의 문제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응답자가 진정한 의견이 없음에도 무식하게 안 보이려고 설문에 응답함으로써 여론을 왜곡시키는데, 숙의 여론조사는 이 문제를 확실하게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46?같은 맥락에서 심리학자이자 여론조사 전문가(pollster)인 대니얼 양켈로비치(Daniel Yankelovich, 1924

)는 『공적 판단을 위하여(Coming to Public Judgment: Making Democracy Work in a Complex World)』(1991)에서 “public opinion”이 너무 많은 것을 의미한다며 최소한 ‘대중 의견(mass opinion)’과 ‘공적 판단(public judgment)’은 구분해서 조사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자신은 “숙의적 판단(full deliberative judgment)”을 원했지만, 미디어는 “스냅샷(snapshot)”을 원했다면서, 기존 조사 방식이 대중의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을 가져올까봐 걱정했다.

47?여론조사 결과를 흥미 위주의 뉴스 상품으로 팔기 바쁜 언론이 그런 대안과 제안을 수용할 리는 만무했고, 그래서 여전히 심각한 결함이 교정되지 않은 채로 여론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1996년 칼럼니스트 아리아나 허핑턴(Arianna Huffington, 1950

)은 “여론조사가 정치 환경을 오염시켜서, 하루 빨리 이를 정화시켜야 한다”며 ‘여론조사에서 자유로운 미국을 위한 연대(Partnership for a Poll-Free America)’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그녀는 “최신 여론조사를 어깨너머로 계속 살피면서, ‘나는 여러분의 리더로서 여러분의 뜻을 따를 것이다’라는 좌우명을 가진 정치인들이 오늘날의 정치 환경을 흐려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48????여론조사 비판엔 좌우가 없다.

조지 W. 부시는 2000년 대통령 선거 운동 중에 여론조사는 필요없다며 대중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국정을 수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1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을 하고 있는 조지 W. 부시.??여론조사 비판엔 좌우가 없다.

조지 부시(George W. Bush, 1946

)는 2000년 대통령 선거 운동 중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라고 말하는 여론조사는 필요가 없다.

재선에 성공한다면, 대중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국정을 수행하지는 않을 것이다”고 했다.

49 좌파 언론학자 허버트 실러(Herbert I. Schiller, 1919

2000)는 “여론조사는 현상 유지를 위한 매춘”이라고까지 주장했다.

50 한국의 얄팍한 ‘여론조사 포퓰리즘’그럼에도 오늘날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들은 ‘여론 민주주의’를 위한 방법론인 여론조사를 왕성하게 실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여론조사는 여론 민주주의의 한 기둥이라 할 언론매체의 주요 영업 수단이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 여론조사를 통제한다는 건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기껏해야 여론조사 방법을 검증하는 수준의 공적 규제만 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한국처럼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정치판이 요동치는 나라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여론조사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다.

여론조사의 오·남용이 심하고, 국민 역시 여론조사 결과에 너무 휘둘리고 있다는 뜻이다.

?여론조사를 아무리 엄격하게 과학적·윤리적으로 한다 해도 여론조사 자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버리면 더욱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다른 문제들을 제쳐놓더라도 질문 순서만 바꿔도 여론조사 지지율이 전혀 ‘딴판’으로 나타나는데,51 이런 여론조사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는 건 그 얼마나 위험한가 말이다.

그런 과도한 의존의 대표적 사례가 정당 내 여론조사 경선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국민대학교 교수 이명진은 “당원들이 해야 하는 후보 선출에 여론조사를 활용하는 것은 정당정치를 포기한 얄팍한 포퓰리즘”이라고 했다.

52 서울대학교 교수 박찬욱도 “지금과 같은 정당의 후보 선출 방식은 여론조사의 본질을 모르는 ‘조사 문맹(Research Illiteracy)’ 현상이자, 정치적 선택이 가요 인기투표와 같다고 여기는 포퓰리즘”이라며 “노선과 이념에 관계없이 누구든 지지율만 높으면 된다는 풍조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53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김헌태는 “(여론조사 경선은) 세계적 망신거리”라고 했다.

54 『』 주용중은 “당 후보를 여론조사로 뽑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대만뿐이다.

대만은 국민당의 일당 통치에서 벗어난 지 10년도 되지 않는 민주정치의 후발국이다.

우리가 구태여 그런 나라의 제도를 본받을 이유는 없다.

여야는 여론조사를 여론조사 본연의 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55?정당 내 여론조사 경선의 원조는 2002년 대선 직전 여론조사로 성사된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였다.

당시 단일화의 드라마적 가치가 워낙 커 대충 넘어가긴 했지만, 그건 여론조사 오·남용의 극치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지금도 ‘드라마적 가치’에만 집착해 그 사건을 재현하려는 시도만 왕성하게 이루어질 뿐, 왜 그게 문제였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성찰도 찾아볼 수 없다.

?왜 그럴까? 전문가와 일반 민심의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당정치의 원리를 내세워 여론조사 경선을 비판하지만, 정당을 포장마차보다도 수명이 짧은 것으로 알고 있거니와 실제로 그렇게 경험해온 유권자들로선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론조사 자체를 못하게 했던 독재정권 시절의 상흔이 유권자들의 뇌리에 ‘여론조사=민주주의’라는 등식을 성립시킨 점도 있다.

선거에 여론조사가 도입된 것은 1987년에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 이후였으니, 이제 겨우 3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자유롭게 자기 의사 표현을 해도 괜찮더라는 걸 알고 솔직하게 여론조사에 임한 건 1990년대 말부터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여론조사 경선을 선호하는 정치인들에게도 비슷한 상흔이 있다.

당내 민주화가 안 되어 있던 시절 여론조사는 이른바 ‘보스 정치’를 타파할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이었다.

여론에 따른 ‘상향식’ 공천과 의사 결정은 무슨 개혁의 보증수표인 양 떠받들어지던 시절이 꽤 길었던 것이다.

그런 의식 때문에 정치적 열세를 순식간에 만회해 보려는 한탕주의 심리가 작동하고 있다고나 할까.?국회의원들의 직업적 문화 또는 행태는 그 속성상 늘 한탕주의 심리로 가득하다.

그들은 뜨지 않으면 죽는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강박은 국정감사 때에 잘 드러난다.

‘언론플레이’라는 표현도 점잖은 말이다.

‘필사적 몸부림’이라는 게 더 적합한 표현이다.

언젠가 모 의원은 국정감사 전에 보좌진 전원에게서 ‘각서’를 받았는데, 그 내용은 “의원의 국감 활동이 언론에 제대로 부각되지 않으면 해고를 감수한다”는 내용이었다.

“TV 9시 주요 뉴스에 보도되면 10점, 신문 1면 톱에 실리면 10점” 등 구체적인 ‘성적표 작성 방식’까지 정했다고 한다.

?그런 언론플레이에 취약한 언론도 문제가 있지만, 이런 문제는 의원이나 언론 탓만 할 일은 아니다.

유권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별 업적이나 실적이 없는 정치인이라도 언론매체를 타서 유명해지면 금방 여론조사에서 유력 정치인 리스트에 오르는 세태에선 의원들이 언론 보도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 여론 형성 구조의 10가지 특성그런데 또 알고 보면 유권자들도 구조의 포로다.

무슨 구조인가? 한국의 독특한 여론 형성 구조다.

그 구조의 가장 큰 특성은 잦은 ‘변심’이다.

전여옥은 “변심은 유권자의 기본이자 특권”이라고 했다.

56 정치인으로선 백번 옳은 말이다.

민심은 무조건 위대한 것이며 그래야만 한다.

유권자의 표가 정치인의 존재근거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심의 이유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청춘 남녀 사이의 변심에도 이유는 있는 법인데, 여론조사나 투표에서 변심의 이유가 없을 리 없다.

?그런데 우리는 사회적 차원에서도 무조건 유권자의 변심을 정당화·미화하는 쪽으로만 치닫고 있다.

모두 다 ‘대중의 지혜’의 신봉자들 같다.

그렇지만 ‘대중의 지혜’는 하나마나 한 소리다.

구조적으로 대중은 늘 지혜롭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그 자체의 힘(머리 수 파워) 때문에 대중의 선택은 정당화되고 지혜가 되게끔 되어 있다.

대중은 이미 ‘지혜’라는 답을 내장하고 있는 개념인 것이다.

예컨대, 대중이 선거에서 아주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망정 그걸 무슨 수로 꾸짖을 것이며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런 선거에서 과실을 챙긴 사람들이 앞다투어 ‘대중의 지혜’를 역설할 게 뻔한데 말이다.

?우리는 여론의 변심 이유를 캐는 데에 너무 게으르거나 아니면 너무 선거 전문가 같은 냉소로 대응하고 있다.

누군가가 이벤트 한 건을 잘 올려 지지율이 좀 오르면, 너무도 쉽게 편승해 곧 눈덩이 효과를 만들어내고야 만다.

대중을 폄하하는 건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한국 여론 형성 구조의 10가지 특성을 지적하면서 이야기를 해보자.?첫째, 미디어의 1극 중앙집권 구조로 인해 ‘쏠림’이 심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기지만, 전 국민의 미디어 이용 시간의 90퍼센트 이상을 점유하는 미디어가 한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는 건 놀랍게 생각해야 할 사실이다.

그런 지리적 집중성과 더불어 학연·학벌주의로 인해 미디어 종사자들의 동질성이 매우 높아 ‘쏠림’을 악화시킨다.

?둘째, 강한 외부 지향성과 타인 지향성으로 인해 ‘편승’이 심하다.

그래서 “지지율이 높기 때문에 지지한다”는 동어반복 현상이 상례화되어 있다.

이는 각 개인의 신념 구조나 그 어떤 사실적 기반에 의해 형성된 여론이 아니기 때문에 여론의 불안정성과 휘발성을 낳는 주요 이유가 되고 있다.

?셋째, ‘반감의 정치’로 인한 반사적 성격이 강하다.

정치에 대한 냉소·불신이 강해 정치적 지지는 지지 대상에 대한 ‘포지티브’ 심리보다는 반대 대상에 대한 ‘네거티브’ 심리에 의해 형성된다.

이 또한 여론의 불안정성과 휘발성을 낳는 주요 이유가 되고 있다.

?넷째, 정당정치의 기반이 부실해 일관성이 약하다.

일종의 악순환이라고나 할까. 정치에 대한 불신·혐오 때문에 기존 정당보다는 늘 신진 세력을 선호하는 여론이 정당정치의 부실화를 가져오는 역설을 낳고 있다.

?다섯째, 인물 중심주의 문화가 강해 지속성이 약하다.

기득권 세력에 대한 총체적 불신과 반감으로 인해 새로운 인물을 대안으로 모색하는 성향이 농후하다.

물론 그로 인한 좋은 점도 있겠지만, 여론의 불안정성과 휘발성은 피할 길이 없다.

?여섯째, 지역주의적 고려가 이슈·정책 파워를 약화시킨다.

지역주의적 고려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모든 사람이 당위적으론 인정하기 때문에 이는 기존 여론조사 방식으론 잡아내기 어렵다.

그래서 더욱 문제가 된다.

?일곱째, 드라마와 이벤트에 약한 감성 체질이다.

타고난 감성 체질도 있겠지만, 앞에 지적한 이유들이 감성 파워를 키워 드라마와 이벤트의 가치를 증대시킨다.

드라마와 이벤트의 바탕엔 그 어떤 시대정신이 깔려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지만, 여론 형성의 안정성을 해치는 건 분명하다.

?여덟째, 여론 선도자의 기능이 강해 조작에 취약하다.

이 문제는 인터넷과 SNS 시대에 이르러 증폭되고 있다.

앞서 지적한 ‘쏠림’과 ‘편승’은 여론 형성 초기에 이른바 ‘작전 세력’이 활개 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홉째, 바람에 약하고 바람을 사랑한다.

이는 그간 한국 정치에서 대체적으로 보아 긍정적 영향을 미쳐왔다.

기득권 구조를 일시에 허물어버릴 수 있는 물갈이를 가능케 한다거나 기득권 세력에 경고의 의미를 보내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열째, 성찰을 어렵게 만든다.

이는 바람에 약하고 바람을 사랑하는 여론 형성 구조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바람기는 유권자의 특권이라지만, 그게 지나치면 대접받지 못한다.

정치인들은 여론을 무서워하는 동시에 여론을 깔보기 때문이다.

언제든 바람 한 번 불면 쉽게 뒤집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자신의 과오를 심각하게 성찰하기보다는 바람을 만들 수 있는 드라마·이벤트를 연출하는 데에 집중한다.

이는 정치인들의 한탕주의를 창궐케 하고 성찰의 씨를 마르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선거나 여론조사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결과가 나오면 ‘대중은 위대’하고,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반대편의 음모와 방해’ 때문에 또는 유권자가 어리석거나 탐욕스럽기 때문에 그렇다는 식의 이중 잣대가 만연해 있는 것도 바로 그런 대중 폄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여론조사는 게임이자 엔터테인먼트다이제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사람들의 ‘면대면 관계(old face-to-face relationships)’와 ‘마을 회의(the small-town meeting)에 대한 강한 향수를 갖고 있던 갤럽은 엘리트주의적 이상이 미국 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보았으며 여론조사가 그 견제책이라고 생각했다.

정치적 의사 결정을 엘리트 마음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57?자신이 지식인이자 전문가이면서도 지식인과 전문가를 불신한 갤럽은 엘리트 지배와 민주적 정부는 양립 불가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갤럽을 가리켜 시민들의 일상에서 집단지성을 신뢰한 ‘대초원 포퓰리스트(Prairie populist)’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58?그러나 방법이 문제지, 갤럽의 꿈을 어찌 포퓰리즘이라고 폄하할 수 있겠는가.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 갤럽의 꿈은 사라지고 없다는 점이다.

여론조사가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눈치 챈 사람들이, 또 여론조사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할 사람들이 여론조사를 양산해내고 또 언론이 비교적 생산원가가 싸게 먹히는 뉴스의 일종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함부로 이용함에 따라 여론조사는 그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오히려 매우 무책임하고 변덕스런 정부를 만들어내는 데에 일조했을 뿐만 아니라 여론조작을 더욱 쉽게 만들어주는 결과까지 초래하고 말았다.

?대중은 여론조사를 일종의 게임으로 즐길 뿐이기 때문에 바람 따라 노는 것에 별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여론조사는 범국민적 오락인 셈이다.

일종의 ‘바람 놀이’다.

굳이 좋게 말하자면, 정열과 소신의 부질없음을 깨달은 체념과 냉소의 지혜라고나 할까. 가벼운 인상 비평의 수준에서 자신의 선택을 게임으로 여기는 기존 ‘여론조사 공화국’ 체제는 신축성·융통성·역동성 등과 같은 그 나름의 장점이 있으므로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지만, 그 사회적 비용은 성찰의 고갈과 더불어 정치적 불확실성·불안정성의 증대다.

?하긴 그게 엔터테인먼트의 묘미이긴 하다.

그런데 엉뚱한 의문이 든다.

한국인은 진정 정쟁(政爭)을 혐오하는가? 혹 욕하면서 즐기는 건 아닌가?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게 어디 있겠는가만서도 정치를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여겨도 좋을 만큼 세상이 편안하지 않은 게 문제다.

?여론조사는 SNS 시대에 어떻게 바뀔까? 송인혁·이유진은 “트위터의 메시지 전파력과 소통성에 의거해서 주고받고 있는 서비스 중의 하나가 소셜 설문조사 시스템이다.

소위 ‘실시간 여론조사’ 방법이다”며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갤럽과 같은 여론조사 기업이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트위터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게다가 단순한 설문조사뿐만 아니라 전문 여론조사 기관 뺨칠 수준의 여론조사 툴을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된다.

”59?그러나 그 어떤 변화가 일어나든 여론조사 결과가 미디어의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되는 현 체제하에선 갤럽의 꿈은 꿈으로만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갤럽 여론조사] 해결책이 있는지



당장 한국을 보라. 4·13 총선에서 ‘여론조사의 재앙’을 핏대를 세워가며 개탄했던 언론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다시 대선 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여론조사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잖은가. 4·13 총선에서 제기된 여론조사의 문제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당해 놓고도 또 당하겠다는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망신을 당하는 것도 팔아먹을 수 있는 뉴스가 된다.

그렇다면 당한 게 아니라 알면서도 장사를 위해 같이 미쳐 돌아가는 것으로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실러는 “여론조사는 현상 유지를 위한 매춘”이라고 했지만, 그런 거친 표현보다는 여론조사는 “여론조사로 먹고사는 사람들을 위한 게임이자 그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엔터테인먼트”라고 하는 게 어떨까?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긴 안목과 호흡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물과 사상 2016.8 리뷰보기작가인물과사상 편집부출판인물과사상사발매2016.08.01. 이주영, 「[4·13 선거 혁명 또 빗나간 여론조사] 집 전화만 의존…스마트폰 세대 ‘숨은 표심’ 놓쳤다」, 『』, 2016년 4월 15일.이소아·채승기·이유정, 「23% 열세라던 조응천 40% 얻어 당선 ‘엉터리 여론조사’」, 『』, 2016년 4월 15일.「[사설] 빗나간 선거 여론조사, 유권자 혼란 막게 정비하라」, 『』, 2016년 4월 14일.「[사설] 여론조사가 더 이상 民意·선거 결과 조작하게 놔둬선 안 돼」, 『』, 2016년 4월 15일.이에스더·안효성, 「“이대로면 내년 대선 여론조사는 쓰레기 될 것”」, 『』, 2016년 4월 15일.Kenneth F. Warren, 『In Defense of Public Opinion Polling』(Boulder, CO: Westview, 2003), pp.54

57.Arvind Raichur & Richard W. Waterman, 「The Presidency, the Public, and the Expectations Gap」, Richard W. Waterman, ed., 『The Presidency Reconsidered』(Itasca, IL: F. E. Peacock Publishers, 1993), pp.2

4.Rosemarie Ostler, 『Let’s Talk Turkey: The Stories behind America’s Favorite Expressions』(New York: Prometheus Books, 2008), pp.73

74; Albert Jack, 『Red Herrings and White Elephants: The Origins of the Phrases We Use Every Day』(New York: HarperCollins, 2004), pp.173

174; Matthew J. Streb & Michael A. Genovese, 「Polling and the Dilemmas of Democracy」, Michael A. Genovese & Matthew J. Streb, eds., 『Polls and Politics: The Dilemmas of Democracy』(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4), pp.9

10; Leo Bogart, 『Silent Politics: Polls and the Awareness of Public Opinion』(New York: Wiley-Interscience, 1972), p.3.캐슬린 홀 재미슨(Kathleen Hall Jamieson), 원혜영 옮김, 『대통령 만들기: 미국 대선의 선거 전략과 이미지 메이킹』(백산서당, 1996/2002), 19쪽.James S. Fishkin, 『The Voice of the People: Public Opinion & Democracy』(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5), pp.71

79. 브라이스는 이 책에서 “민주주의만큼 위대한 지도자들을 필요로 하는 정부 형태는 없을 것이다(Perhaps no form of government needs great leaders so much as democracy)”는 명언을 남겼다.

Arthur M. Schlesinger, Jr., 『The Cycles of American History』(New York: Mariner Book, 1986/1999), p.429.Robert H. Wiebe, 『Self-Rule: A Cultural History of American Democracy』(Chicago, IL: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5), pp.173

175.Walter Lippmann, 『Public Opinion』(New York: Free Press, 1922/1965), pp.54

55. 이 책의 번역본엔 월터 리프먼, 오정환 옮김, 『여론·환상의 대중』(동서문화사, 2011); 월터 리프먼, 이충훈 옮김, 『여론』(까치, 2012); 월터 리프먼, 이동근 옮김, 『여론』(아카넷, 2013) 등이 있다.

Robert H. Wiebe, 『Self-Rule: A Cultural History of American Democracy』(Chicago, IL: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5), pp.173

175.Merle Curti, 「The Changing Concept of “Human Nature” in the Literature of American Advertising」, 『Business History Review』, 41(Winter 1967), pp. 335

357.Roland Marchand, 『Advertising the American Dream: Making Way for Modernity, 1920-1940』(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5), p.311.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 최경남 옮김, 『광고 불변의 법칙』(거름, 1983/2004), 34쪽.박창식, 「[유레카] 신종 여론조사 왜곡」, 『한겨레』, 2010년 1월 15일.David W. Moore, 『The Superpollsters: How They Measure and Manipulate Public Opinion in America』(New York: Four Walls Eight Windows, 1992), pp.31

33; Susan Ohmer, 『George Gallup in Hollywood』(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6), pp.60

61; 프랭크 뉴포트(Frank Newport), 정기남 옮김, 『여론조사: 대중의 지혜를 읽는 핵심 키워드』(휴먼비즈니스, 2004/2007), 200쪽.David W. Moore, 『The Opinion Makers: An Insider Exposes the Truth Behind the Polls』 (Boston, MA: Beacon Press, 2008), p.44.박창식, 「[유레카] 신종 여론조사 왜곡」, 『한겨레』, 2010년 1월 15일.Daniel J. Czitrom, 『Media and the American Mind: From Morse to McLuhan』(Chapel Hill: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1982), pp.122

133.브루스 빔버(Bruce Bimber), 이원태 옮김, 『인터넷시대 정치권력의 변동: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진화』(삼인, 2003/2007), 380쪽.George Gallup & Saul Rae, 『The Pulse of Democracy』(New York: Greenwood, 1940).한겨레신문 문화부 편, 『20세기 사람들 (상)』(한겨레신문사, 1995), 272

276쪽; Sarah E. Igo, 『The Averaged American: Surveys, Citizens, and the Making of a Mass Public』(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p.159.윌리엄 라이딩스 2세(William J. Ridings, Jr.) & 스튜어트 매기버(Stuart B. McIver), 김형곤 옮김, 『위대한 대통령 끔찍한 대통령』(한?언, 1997/2000),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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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전성원,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인물과사상사, 2012), 194

195쪽.한겨레신문 문화부 편, 『20세기 사람들 (상)』(한겨레신문사, 1995), 272

276쪽; 전성원,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인물과사상사, 2012),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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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Robert S. Erikson & Kent L. Tedin, 『American Public Opinion: Its Origins, Content, and Impact』, 5th ed.(Boston, MA: Allyn and Bacon, 1995), p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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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Jeffrey Bell, 『Populism and Elitism: Politics in the Age of Equality』(Washington, D.C.: Regnery Gateway, 1992), pp.76

91.Lawrence R. Jacobs & Robert Y. Shapiro, 『Politicians Don’t Pander: Political Manipulation and the Loss of Democratic Responsiveness』(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0), pp.xiv-xv.David W. Moore, 『The Opinion Makers: An Insider Exposes the Truth Behind the Polls』(Boston, MA: Beacon Press, 2008), p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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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프랭크 뉴포트(Frank Newport), 정기남 옮김, 『여론조사: 대중의 지혜를 읽는 핵심 키워드』(휴먼비즈니스, 2004/2007), 26, 85쪽.프랭크 뉴포트(Frank Newport), 정기남 옮김, 『여론조사: 대중의 지혜를 읽는 핵심 키워드』(휴먼비즈니스, 2004/2007), 85쪽.빈센트 모스코, 김지운 옮김,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나남, 1998), 379쪽.정철운, 「“질문 순서만 바꿔도 여론조사 지지율 전혀 ‘딴판’”」, 『』, 2012년 8월 21일.홍영림, 「여론조사 기관들 “한나라 경선조사? 아이고, 안 할래요”」, 『』, 2007년 8월 8일.기획취재팀, 「여론조사 공화국/민심 측정 넘어 ‘심판관’ 노릇」, 『』, 2007년 2월 27일, 1면.이동훈, 「여론조사 후보 선출, 한국만의 ‘유행가’」, 『』, 2007년 8월 6일.주용중, 「여론조사로 후보 뽑기의 우스꽝스러움」, 『』, 2007년 8월 9일.이유식, 「지평선/고객의 바람기」, 『』, 2007년 5월 4일, A26면.Sarah E. Igo, 『The Averaged American: Surveys, Citizens, and the Making of a Mass Public』(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p.123; Kenneth F. Warren, 『In Defense of Public Opinion Polling』(Boulder, CO: Westview, 2003), pp.54

57.Robert S. Erikson & Kent L. Tedin, 『American Public Opinion: Its Origins, Content, and Impact』, 5th ed.(Boston, MA: Allyn and Bacon, 1995), pp.3

4.송인혁·이유진 외, 『모두가 광장에 모이다: 소셜이 바꾸는 멋진 세상』(아이앤유, 2010), 300

301쪽.?한국갤럽 여론조사 박그네 콘크리트 벽 깨져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면 박그네는 끝났다?세대별 긍/부정율20대 14%/67%, 30대 17%/74%, 40대 24%/64%, 50대 42%/49%60대 58%/27% 60대 이상에서만 긍정평가가 높았고 전부 낮았다대구 경북도 지지율 30% 뿐이고 부정평가는 50%를 넘어버렸다?정당별 지지율개눌당 30%, 더민주 24%, 궁물당 14%, 정의당 5%광주/전라     더민주 26%, 궁물당 24%?1%포인트)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전체의 5%로, 3주째 같은 수치를 기록했다.

부정적인 평가도 전주와 같은 90%를 기록하며 취임 후 최고치를 유지했다.

?대구경북도 5%…30대 지지율 0%지역별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대구·경북(TK)도 전주보다 4%포인트 하락한 5%를 기록해 전국 평균과 같았다.

서울은 지지율이 4%로 전주보다 2%포인트 떨어졌고, 호남에서는 3주째 0% 지지율을 유지했다.

반면 충청은 11%로 전주에 비해 4%포인트 올랐다.

?연령별로는 전주 3%를 기록했던 30대 지지율이 이주에는 0%를 기록했다.

전주 0%였던 20대는 1%를 기록했고, 40대는 4%, 50대와 60대 이상은 각각 9%로 집계됐다.

특히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대해 높은 지지를 보였던 60대 이상의 지지율은 13%를 기록했던 전주보다 4%포인트나 하락해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새누리당 지지도 15%로 역대 최저정당지지율은 민주당이 전주와 같은 31%를 기록해 수위를 지켰으며, 새누리당은 2%포인트 추가 하락한 15%로 그 뒤를 이었다.

국민의당은 1%포인트 오른 14%를 기록했고, 정의당은 전주와 같은 6%로 나타났다.

새누리당 지지도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이며, 전신인 한나라당 지지도 최저치와도 동률이라고 한국갤럽은 설명했다.

새누리당은 '전통적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경북에서 26%로, 일주일만에 민주당(19%)에 앞서면서 1위로 올라섰지만 나머지 지역에서는 모두 2위 밑으로 떨어졌다.

이번 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출처 : KBS> ?여론조사 결과가 여론을 반영하지 못하는 데에는 집 전화에 의존한 조사 방식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집 전화가 없는 가구가 40퍼센트에 달하고 스마트폰 이용자가 4,000만 명을 넘지만, 총선 여론조사는 대부분 집 전화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휴대전화는 전화번호부가 없어 지역구별로 거주자를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낮은 응답률도 문제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가 2014년 실시된 지방선거 관련 여론조사 자료 총 816건을 분석한 결과 응답률이 10퍼센트가 안 되는 경우가 50퍼센트가 넘었으며, 응답률이 3퍼센트 미만인 것도 76건이나 되었다.

1?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이미 잘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언론은 그런 여론조사 결과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열심히 보도했고, 이런 수요에 부응하느라 선거 직전까지 엄청난 양의 여론조사가 양산되었다.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에 따르면 선거 한 달 전인 3월부터 등록된 여론조사 결과만 934건에 달했다.

2 그런 여론조사 결과를 정치 저널리즘의 주식(主食)으로 삼았던 언론은 스스로 낯이 뜨거워진 탓인지 뒤늦게 여론조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는 사설을 통해 “4·13 총선은 여론조사의, 여론조사에 의한, 여론조사를 위한 선거란 오명을 뒤집어썼다”고 했고,3 『』는 사설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특정 선거구에서는 같은 날 실시한 2개 회사의 조사가 30%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났다.

하루 이틀 사이에 10

20%포인트 오가면서 순위가 바뀐 조사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런 엉터리 조사들이 거꾸로 국민의 뜻을 왜곡하고 경선과 선거 결과를 조작하며 사실상 정치를 조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4?한국보다 정도는 덜할망정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도 여론조사의 정확성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밋 롬니(Mitt Romney) 공화당 후보의 승리를 예측했다가 실패한 여론조사 기관 갤럽은 올해 대선에선 예측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갤럽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한국 여론조사업체들도 “이대로면 내년 대선 때는 여론조사 결과가 쓰레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5?여론조사의 아버지라 할 조지 갤럽(George H. Gallup, 1901

1984)이 이 모습을 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사실 문제의 핵심은 정확성이 아니다.

여론조사의, 여론조사에 의한, 여론조사를 위한 선거와 더불어 선거가 아닌 평상시의 정치마저 여론조사에 휘둘리고 있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엘리트주의적 이상이 미국 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본 갤럽은 여론조사가 민주주의 발전과 공익 증진을 위해 기여하는견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은 여론조사의 정확성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갤럽??갤럽이 원했던 민주주의는 그런 게 아니었다.

엘리트주의적 이상이 미국 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본 갤럽은 여론조사가 그 견제책이라고 생각했다.

즉, 여론조사가 있어야 정치적 의사결정을 엘리트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6 여론조사가 민주주의 발전과 공익 증진을 위해 기여한다고 생각한 갤럽의 이상은 유효한가? 갤럽의 삶과 사상을 살펴보면서 그 의문에 답해보기로 하자. 최초의 여론조사는 언제 이루어졌을까?프랑스 계몽 사상가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

1778)는 “여론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여왕이며 그것은 국왕의 권력에도 복종하지 않는다.

국왕들은 바로 이 여왕에게 직접 시중을 들어야 하는 노예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여왕은 ‘선동(demagoguery)’에 취약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선동을 염려해서 대통령 권력을 헌법에 명문화했다.

추상적이어서 별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선동을 경계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널리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여론 측정 방법은 신문이었기에, 정치인과 정치세력들 사이에선 신문의 호의를 얻으려는 쟁탈전이 벌어졌으며, 주요 신문 한두 개를 장악하는 것은 대통령 후보들의 필수로 여겨졌다.

7?최초의 여론조사는 언제 이루어졌을까? 역사가들은 1824년 존 퀸시 애덤스(John Quincy Adams, 1767

1848)와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 1767

1845)이 격돌한 미 대통령 선거를 꼽는다.

당시 조사는 사람들을 모아 모의 투표를 하는 것이었는데, 이 일을 『해리스버그펜실베이니안(Harrisburg Pennsylvanian)』 신문이 주관했다.

?straw poll이라는 말도 이때에 최초로 사용되었다.

왜 여론조사에 ‘밀짚(straw)’이란 말이 쓰였을까? 풍향을 알아볼 때에 공중에 밀짚을 던져보았던 관행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오늘날엔 엄격한 통계적 샘플 방법을 거치지 않은 여론조사를 가리켜 straw poll이라고 하는데, 인터넷 여론조사가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영어로 take a straw poll은 “비공식 여론조사를 하다”는 뜻이다.

straw vote라고도 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말하고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The ballot is stronger than the bullet)”고 한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

1865)은 “여론은 전부다.

여론의 지지를 받으면 실패할 수 없고,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성공할 수 없다(Public Opinion is everything. With it nothing can fail. Without it nothing can succeed)”고 했다.

?대선과 무관하게 자주 거론되는 초기의 여론조사 사례는 제17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Andrew Johnson, 1808

1875)에 대해 보도한 『클리블랜드리더(Cleveland Leader)』의 1866년 기사다.

의회에서 통과된 민권 관련법을 존슨 대통령이 반대했는데, 어느 기차 승객들을 대상으로 한 straw poll에서 47대 12로 의회를 지지한 사람이 많았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겨우 59명을 상대로 한 조사였지만, 이 민심은 제법 정확한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

8 미국 민주주의는 ‘여론에 의한 정치 통제’재선을 노린 민주당의 그로버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 1837

1908)와 이에 도전한 공화당의 벤저민 해리슨(Benjamin Harrison, 1833

1901)의 대결 구도로 치러진 1888년 대선은 코카콜라와 백화점들이 선도한 광고 마케팅을 정치 분야에도 도입한 선거였다.

?이 선거를 미국에서 지켜본 영국 학자이자 정치가인 제임스 브라이스(James Bryce, 1838

1922)는 미국의 선거 운동은 석 달 동안 브라스밴드를 앞세우고 깃발과 배지가 난무하는 퍼레이드와 이에 환호하는 구경꾼들이 미국 전역을 뒤덮는 기간이라고 관찰 소감을 썼다.

이런 선거는 참여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고 믿게 만들고,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는 열성적인 모습을 보게 함으로써 강한 인상을 남기며,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을 읽는 시골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고도 했다.

즉, 미국의 선거는 붐을 고조시키고 지속시키는 비즈니스라는 것이다.

9?브라이스는 바로 그해에 출간한 『미국 공화국(The American Commonwealth)』(1888)이라는 책에서 미국은 ‘여론에 의해 움직이는 정부(government by public opinion)’와 ‘여론에 의한 지배(rule of public opinion)’가 실현된 나라며, 미국의 절대적 지배자는 여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중요한 여론의 형성 근거는 박약(slim)하다고 지적했다.

브라이스는 여론 측정의 ‘기술적 어려움(mechanical difficulty)’을 지적했는데, 그로부터 50년 후 ‘면대면 민주주의(face-to-face democracy)’에 대한 이상을 품고 있던 갤럽이라는 젊은이가 바로 그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일에 도전하면서 브라이스의 말을 즐겨 인용하게 된다.

10?1909년에서 1933년까지 하버드대학 총장으로 재임한 애벗 로런스 로웰(Abbott Lawrence Lowell, 1857

1943)은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었음에도 1909년에 출간한 『여론과 대중 정부(Public Opinion and Popular Government)』라는 책에서 미국 민주주의를 “여론에 의한 정치 통제(the control of political affairs by public opinion)”로 정의할 정도로 여론은 미국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위상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1914년 6월

1918년 11월)을 거치면서 프로파간다에 놀아나는 국민, 광신적 애국주의 등 부정적인 모습이 드러나자 여론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정치인이자 작가인 프레더릭 하우(Frederic C. Howe, 1867

1940)는 1921년에 출간한 『혁명과 민주주의(Revolution and Democracy)』에서 “우리는 믿으라고 주어지는 것을 믿는다(We believe the things we are told to believe)”고 개탄했다.

11?여론에 대한 결정적인 일격은 그다음 해에 출간된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 1889

1974)의 『여론(Public Opinion)』(1922)을 통해 이루어졌다.

리프먼은 흔히 여론으로 간주되는 것은 번쩍이는 이미지들의 결합, 표피적인 인상, 스테레오타입, 편견, 이기심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12 이 주장에 설득당한 로웰도 1923년 결국 리프먼의 의견에 동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13 그러나 이런 변화는 어디까지나 지식계에서만 일어난 것일 뿐 일반 대중 사이에서 여론은 민주주의의 냄새를 잔뜩 풍기는 아름다운 단어였다.

 여론조사에 큰 흥미를 느낀 조지 갤럽의 등장1901년 11월 18일 미국 아이오와주의 작은 마을인 제퍼슨(Jefferson)에서 낙농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갤럽은 아이오와대학(University of Iowa)에 진학해 독립적인 대학 신문인 『데일리아이오완(The Daily Iowan)』의 편집장을 지냈다.

그는 매우 유능한 편집장이었다.

캠퍼스 밖의 소식도 알차게 보도함에 따라 학교 외부에서 구독자도 늘어나 광고 수입을 크게 증가시켰다.

?갤럽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독자들이 어떻게 왜 신문을 읽는지에 대해 무척 알고 싶어 했다.

그가 처음으로 실시한 조사는 누가 대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인지를 여론조사를 통해 뽑는 일이었다.

그는 나중에 이 조사에서 1등으로 뽑힌 오필리아 스미스 밀러(Ophelia Smith Miller, 1898

1988)와 결혼해 2남 1녀를 낳았다.

?갤럽의 학생 시절 통계조사 기법은 광고 분야에 막 도입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1924년 광고주들의 연례 총회에서 컬럼비아대학 경제학 교수 웨슬리 미첼(Wesley C. Mitchell, 1874

1948)은 “통계조사는 원가 계산에서부터 시장조사에 이르기까지 현대 비즈니스의 필수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14?갤럽은 여론조사에 큰 흥미를 느껴 그 분야를 계속 공부했으며 그가 27세에 아이오와대학에서 취득한 박사학위의 논문은 「신문 독자의 관심 측정에 관한 객관적 연구 방법의 새로운 기법(A New Technique for Objective Methods for Measuring Reader Interest in Newspaper)」(1928)이었다.

그는 이후 드레이크대학과 노스웨스턴대학을 거쳐 컬럼비아대학의 저널리즘 교수로 일했다.

?갤럽은 1932년 컬럼비아대학 교수직을 유지한 채 뉴욕의 유명한 광고 회사인 영앤드루비컴(Young and Rubicam)의 리서치 책임자로 초빙되었다.

그해 여름 미국 아이오와주 민주당은 올라 바브콕 밀러(Ola Babcok Miller, 1871

1937)라는 환갑의 여성을 선거로 뽑는 부지사(Secretary of state) 후보로 지명했지만, 남북전쟁 이래 한 번도 주지사를 내지 못한 민주당으로선 큰 기대를 걸긴 어려웠다.

그녀는 대학교수이자 광고 회사 임원인 사위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 사위는 자신이 개발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유권자들이 원하는 걸 조사한 다음 선거 운동에 활용함으로써 밀러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 사위는 바로 갤럽이었다.

?갤럽은 1937년 컬럼비아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영앤드루비컴의 부사장이 되어 1947년까지 일했다.

영앤드루비컴은 갤럽에게 리서치를 맡기면서 대외적으로 라디오, 신문 수용자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한다고 자랑했다.

15 그렇게 뻐길 만도 했다.

갤럽의 밑에서 일한 바 있는 데이비드 오글비(David Ogilvy, 1911

1999)는 당시 갤럽이 광고의 열독률만 측정한 것이 아니라 그 수치를 축적해 분석하기도 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어떤 분석 기법들은 다른 기법들보다 지속적으로 뛰어난 기능을 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본 플래너리(Vaughn Flannery)라는 아트 디렉터는 갤럽이 발견한 결과들을 그의 작업에 적용했다.

수개월 만에 영앤드루비컴이 만든 광고는 다른 대행사에서 만든 광고보다 높은 열독률을 자랑했고 광고주에게는 헤아릴 수 없는 큰 이익을 주었다.

”16?갤럽은 영앤드루비컴에서 일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1935년 뉴저지주 프린스턴에 설립한 ‘미국여론연구소(American Institute of Public Opinion)’였다.

그는 매주 「미국이 말한다!(America Speaks!)」로 이름 붙인, 여론조사 내용을 담은 칼럼을 발표했다.

 여론조사의 분수령이 된 1936년 대선1936년 대선은 갤럽의 등장으로 미국 여론조사의 분수령이 된 사건이기도 했다.

당시 여론조사업계는 춘추전국시대였는데, 선두주자는 『리터러리다이제스트(Literary Digest)』라는 잡지였다.

이 잡지사는 1916년 이래 여론조사를 통해 매번 정확히 선거 결과를 예측한 걸로 유명했다.

당시의 여론조사는 오늘날의 기준에선 미련해 보일 정도의 물량 공세 위주였다.

이 잡지는 1924년 대선에서 1,600만 명의 유권자에게 설문지를 우송했고 1928년에는 1,800만 명한테 인기 투표 용지를 보냈으며, 1936년 대선에서도 1,000만 명에게 설문지를 발송해 230만 장을 반송 받았다.

17?그렇게 엄청난 공을 들여 얻어낸 설문지를 집계한 결과에 따라 『리터러리다이제스트』는 1936년 대선 전망에서 현직 대통령으로 민주당 후보인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

1945)가 42대 57로 공화당의 앨프리드 랜던(Alfred M. Landon, 1887

1987) 후보에게 패배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은 반면, 갤럽은 54대 46으로 루스벨트의 승리를 예측했다.

?『리터러리다이제스트』와 갤럽의 대결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 여겨졌기에, 갤럽의 예측은 엄청난 비난 공세에 시달렸다.

신생 업체가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게 아니냐는 질책이었다.

갤럽은 자신의 칼럼을 싣는 신디케이트 신문사들에게 만약 자신의 예측이 틀리면 그간 받은 돈을 환불하겠다고 선언하는 대담한 도박을 감행했다.

?당시 갤럽의 여론조사 표본은 오늘날의 10배에 이르는 1만 5,000명 수준이었는데, 제대로 된 표본의 추출 방법보다는 표본 크기의 다다익선(多多益善)을 굳게 믿고 있던 『리터러리다이제스트』는 갤럽의 표본이 적다고 비웃었다.

그렇게 비웃음을 당한 수준의 표본이었지만 1만 5,000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하는 데엔 비용이 많이 들었다.

?물론 그 비용은 신디케이트 신문사들에게서 나오지만 환불할 경우 파산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갤럽의 긴장은 극도로 고조되었고, 이를 보다 못한 부인이 쉬면서 긴장을 풀라고 갤럽을 일부러 플로리다 사라소타(Sarasota)로 데려갔다.

당시엔 선거일을 앞둔 막판 조사는 없었기에 갤럽이 휴양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선거 결과를 기다리는 것 이외엔 없었다.

18?승리의 여신은 갤럽의 손을 들어주었다.

갤럽의 예측대로 루스벨트가 61대 37로 승리했으며, 이 충격으로 『리터러리다이제스트』는 1938년에 폐간되고 말았다.

갤럽의 완전한 승리였지만, 갤럽은 자신의 예측이 실제 결과와 7퍼센트포인트의 격차가 난 것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했다.

19?『리터러리다이제스트』는 어떤 실수를 저질렀던 걸까? 갤럽은 이 잡지의 조사가 자동차와 전화를 가진 부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며 루스벨트의 우세를 주장했는데, 그의 말이 맞았다.

이 잡지는 구독자 주소록과 전화 가입자, 자동차 보유자 명단을 토대로 조사를 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부유층이며 공화당 지지자였다.

표본 크기가 아니라 표본 추출 방법이 중요하다는 점을 모르고, 특정 계층만 상대로 조사하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20?1936년 대선 예측에 성공하면서 갤럽의 명성은 전국적으로 알려졌으며, 이제 여론조사 산업은 전시(戰時)의 프로파간다 산업을 계승하는 동시에 압도할 정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37년엔 『여론 연구(Public Opinion Quarterly)』가 창간되었으며, 1935년 미국으로 건너온 오스트리아계 유대인 폴 라자스펠트(Paul F. Lazarsfeld, 1901

1976)는 미국의 미디어 효과 연구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21 ‘여론조사 역사상 최악의 날’이 된 1948년 대선갤럽은 1939년의 어느 강연에서 라디오 기술, 신문의 광범위한 보급, 그리고 그 자신이 대중화시킨 새로운 조사 기법에 의해 나타날 가능성들을 검토하면서 전국적 규모의 ‘타운 미팅(town meeting)’의 도래를 예측했다.

마치 이웃끼리 공동체의 문제를 논의하는 것처럼 새로운 기술은 그런 전국적 토론을 가능케 하리라는 것이었다.

22?갤럽은 1940년에 출간한 『민주주의의 맥박(The Pulse of Democracy)』에서 그럼 꿈을 재차 피력하면서 여론조사가 민심을 반영해 엘리트 중심의 정치와 행정을 견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라는 평소의 지론을 역설했다.

여론조사가 민주주의의 맥박을 측정하고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23?애초의 취지가 그러했던 만큼 갤럽의 여론조사는 처음엔 유권자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한 소작농부가 “내 생각을 묻는다구? 내 생각이 중요하단 말이요? 아직 그 누구도 내 생각을 물어본 적이 없었는데!”라고 말한 데에서도 드러나듯이, 당시 생소했던 여론조사에 대한 호응도는 썩 괜찮은 편이었다.

?갤럽은 여론조사에 대한 그런 호감도를 이용해 영화 주제, 줄거리의 결정에도 가담하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했다.

1946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아카데미 10개 부문을 수상하며 대히트한 윌리엄 와일러(William Wyler, 1902

1981) 감독의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해(The Best Years of Our Lives)〉는 갤럽이 32개 후보 가운데 여론조사를 통해 고른 제목이었다.

이런 성공은 마케팅으로까지 나아갔다.

갤럽은 『타임』 1948년 5월 3일자 표지 인물에 등장해 ‘누구나 아는 이름(household name)’이 되면서 ‘여론’과 동일시되었다.

24????갤럽은 여론조사에 대한 대중의 호감도를 이용해 영화 주제, 줄거리의 결정에도 가담하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했다.

사진은 갤럽이 32개 후보 가운데 여론조사를 통해 제목을 정한 영화 <우리 생에 최고의 해>의 등장인물들.??그러나 그런 유명세가 오히려 갤럽의 발목을 잡을 줄 누가 알았으랴. 1948년 11월 2일에 치러진 대선은 미국 여론조사 역사상 최악의 날(the most disastrous day in polling history)을 낳은 선거였다.

갤럽을 포함한 주요 여론조사업체들의 예측이 모두 빗나갔기 때문이다.

?당시 물가 상승과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인한 사회불안이 높아져 이미 1946년의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 여소야대 정국이 초래되었다.

1948년 마셜플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미국 내 반대 세력이 늘어갔으며 또한 민주당 내 분열이 심화되어 여론조사업체와 언론 대부분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토머스 듀이(Thomas E. Dewey, 1902

1971) 후보가 현직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1884

1972) 후보를 5

15퍼센트 격차로 누르고 당선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트루먼은 그런 예측에 굴하지 않고 그 유명한 3만 마일 전국 유세를 통해 유권자에 직접 호소하고 나섰다.

600만 이상의 사람들에게 300번 이상의 연설을 했다.

그는 아내와 딸을 동반하고 다니면서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25?『시카고데일리트리뷴』이 그 유명한 오보 「듀이, 트루먼을 물리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낼 정도로 막판까지 듀이의 우세가 확연해 보였지만, 결과는 트루먼의 승리로 나타났다.

일반 투표에서 트루먼 49.9퍼센트 듀이 45.1퍼센트, 선거인단 투표에서 303대 189의 결과였다.

그야말로 극적인 승리였다.

트루먼은 공화당계 신문인 『시카고데일리트리뷴』을 군중들 앞에서 신나게 흔들어 보이면서 승리를 자축했다.

트루먼의 승리를 예측하지 못한 갤럽도 여론조사업체들을 대표해 조롱거리가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여론조사의 대명사가 된 갤럽자신의 조사를 확신했던 갤럽은 선거 결과에 대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고 실토했다.

그는 그런 당혹감으로 인해 뇌물이나 투표용지 조작 등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의혹까지 제기했으나 곧바로 철회하고 실수를 인정했다.

갤럽은 실수를 저지른 이유가 최종 여론조사가 선거일 3주 전에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았다.

유권자 7명 중 1명꼴로 선거 마지막 2주 동안 결심했는데, 이들의 4분의 3이 트루먼을 지지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26 그는 대선 직후 가진 한 연설에서 자신의 새로운 각오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저는 트루먼 대통령에 대해 대단한 존경심을 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싸웠기 때문이죠. 저도 마찬가지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이 나라에 여론조사의 중요성이 있는 한, 그리고 누군가가 더 나은 방법을 발견할 때까지, 저는 사람들이 그들의 복지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알리는 일을 하며 계속 전진해나갈 것입니다.

”27?실제로 갤럽의 전진은 성과를 거두었다.

1948년 대선만 제외하고, 갤럽은 이후 1980년대까지 11차례의 대통령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 명예회복을 하게 된다.

그는 1958년 갤럽연구소(Gallup Organization)를 설립했고, 1937년 영국 갤럽을 시작으로 한국(1974년)을 비롯한 63개국에 갤럽이란 이름의 여론조사 기관이 갤럽국제조사연구소(Gallup International Research Institute) 회원사의 형식으로 독자적으로 운영되면서 그의 이름은 전 세계적으로 여론조사의 대명사가 된다.

28?그러나 갤럽의 원대한 꿈과는 달리 여론조사는 그의 뜻대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갤럽은 원래 여론에 순응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이상 아래 그의 사업을 시작했으나 여론조사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지면서 1952년부터 무응답(nonresponse) 비율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기술 발전으로 전화의 자동 응답 장치(answering machine), 발신자 확인 시스템(caller identification system)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여론조사는 더욱 힘들어졌다.

29?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게 여론인지라,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 후보들은 공식 여론조사와는 별도로 내부용 여론조사(private polls)를 했는데, 케네디 시대에 이르러 이런 내부 여론조사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케네디는 예선에서 50번, 본선에서 27번, 집권 후 16번을 했고,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1908

1973)은 1964년 대선 전 39번, 1965년 30번, 1966년 49번, 1967년 3번, 1968년 9번을 했으며,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 1913

1994)은 1969년 7번, 1970년 29번, 1971년 44번, 1972년 153번을 했다.

30?저널리스트 시드니 블루먼설(Sidney Blumenthal, 1948

)은 『영원한 캠페인(Permanent Campaign)』(1980)이라는 책에서 오늘날 미국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영원한 선거 캠페인 체제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늘 선거를 염두에 둔 선거 유세와 다를 바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31?블루먼설이 그렇게 말한 근거 중의 하나가 바로 여론조사였다.

예컨대, 닉슨이 대통령 재임 시 쓴 여론조사 비용은 1995년 기준으로 환산해서 500만 달러나 되었고, 대통령 당선자가 여론조사에만 쓴 비용은 1972년 160만 달러에서 1992년 400만 달러로 급증했다.

32?1970년대 초반까지도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업체들의 주관하에 이루어졌지만, 1975년 『뉴욕타임스』와 CBS News가 공동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언론사 자체 여론조사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76년 대선에선 네트워크 방송사들이 모두 자체 인하우스(in-house) 여론조사 기능을 갖춰서 보도했다.

33?1980년대 들어 거대 미디어들은 모두 자체 여론조사 기능을 갖거나 자기들만의 보도용으로 여론조사를 의뢰하는 관행을 정착시켰는데, 이는 적잖은 윤리 문제를 야기했다.

언론사가 뉴스를 보도하는 게 아니라 뉴스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즉 ‘의사사건(pseudo-event)’을 양산해도 괜찮은가 하는 의문이었다.

여론조사 비용을 써서 뉴스를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취재원에게 돈을 지불하는 이른바 ‘수표 저널리즘(checkbook journalism)’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되었다.

여론조사가 주요 뉴스 아이템으로 경쟁 국면에 접어들면서 자사 외의 다른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결과는 무시한다거나 이미 다 지적한 흐름인데도 자기들이 처음 밝혀낸 것처럼 판촉하는 일도 일어나기도 했다.

34 ‘갤럽 여론조사 멘털리티’에 대한 비판여론조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이미 1940년대부터 제기되었다.

1948년 사회학자 허버트 블루머(Herbert Blumer, 1900

1987)는 여론은 상호작용(interactions)과 커뮤니케이션의 산물인데, 이를 ‘개인 의견의 총합(aggregations of individual opinions)’으로 수량화하는 건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1949년 린지 로저스(Lindsay Rogers)는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

1797)의 말을 인용하면서 선거로 뽑힌 사람의 양심과 현명한 판단을 믿어야지 대중적 열정의 순간들에 노예가 되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35?“민심은 천심이다(The voice of the people is the voice of God)”는 말처럼 여론은 신성시되지만, 문제는 여론을 정확히 알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여론과 미국 민주주의(Public Opinion and American Democracy)』(1968)의 저자인 미국 정치학자 V. O. 키(V. O. Key, 1908

1963)는 이렇게 말했다.

“여론에 대해 정확히 말한다는 건 성령(聖靈)을 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다.

”36 독일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1883

1969)는 이렇게 우려했다.

“현대인은 질(質)보다는 양(量)에 의존하고, 새로운 믿음을 만드는 대신 편의주의에 굴복하는 일종의 ‘갤럽 여론조사 멘털리티’를 개발해냈다.

” ?논픽션 작가 수잔나 레저드(Suzannah Lessard)는 『워싱턴먼슬리(The Washington Monthly)』(1996년 1

2월호)에 기고한 「여론조사가들을 추방하라(Banish the Pollsters)」는 글에서 지도자 지망생들의 정신은 여론조사 기술에 의해 식민화되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여론조사의 과학적 방법론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정도로 제약적이고 정신을 파괴하는 노예화의 한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전에 정치가들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추측해야만 했다.

그러한 불확실성은 정치가로 하여금 자신의 신념에 더 가까운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하에서는 불확실성이란 거의 없다.

”37?데이비드 솅크(David Shenk)는 『데이터 스모그(Data Smog: Surviving the Information Glut)』(1997)에서 “만약 미국인들이 지도력의 자질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추종심은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삶으로 너무나도 바쁘며 그리고 그들의 지식은 너무 전문화되고 파편화되어 있어, 폭넓은 쟁점들에 관한 지적인 결정을 내리기에는 부적절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술의 두 가지 불행한 결과, 즉 더 적은 이해를 하면서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시민들을 접하고 있다.

”38?진보적 정치 컨설턴트 조 트리피(Joe Trippi)는 『혁명은 TV로 중계되지 않는다(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 Democracy, the Internet, and the Overthrow of Everything)』(2004)에서 다음과 같이 개탄했다.

?“여론조사와 이를 위한 초점 집단에 의존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에서 최악의 트렌드다.

이는 후보의 신념을 흐리멍텅한, 시장 테스트를 거친, 중도적 입장으로 대체해버린다.

정말이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론조사는 정치에 필요한 용기를 없애버렸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39?‘인간의 얼굴을 가진 여론조사’는 가능한가?이렇듯 비판자들은 지도자들이 여론조사의 노예가 되었다고 비판하고, 일부 학자들은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정치를 가리켜 냉소적인 의미로 ‘서베이 민주주의(survey democracy)’라는 신조어(新造語)를 만들었지만,40 미국인들이 여전히 여론조사를 지지하는 걸 어이하랴.?1996년 미국인의 70퍼센트가 여론조사가 민주주의 발전과 공익 증진을 위해 기여한다며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1 미국인들은 정치적 이슈들을 결정하는 데 여론조사의 역할에 대해 낙관적이며, 민주 생활의 기초로 여론조사가 갖는 능력에 대해 신뢰한다.

이렇듯 포퓰리즘과 여론조사는 상호 친화적이다.

42?포퓰리즘이 나쁜가? 꼭 그렇진 않다.

“정치인이 여론에 순응하는 걸 가리켜 ‘인기영합(pandering)’이라고 하는데, 이게 과연 온당한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정치적 대응성(political responsiveness)’이라고 부르는 게 온당하다”는 반론을 감안할 필요가 있겠다.

43 그럼에도 여론을 추종하는 정치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대중의 무지(public ignorance)에 관한 것이다.

대중을 깔보거나 얕잡아보는 게 아니라, 유식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할 일에 바쁘다 보면 공적 이슈들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 문제가 매우 심각한데도 이걸 모른 척하고 여론조사를 지금처럼 계속 해야 하는가? 이런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어떤 이슈에 대한 여론조사와 더불어 그 이슈에 대한 응답자의 지식수준, 그리고 그 이슈가 응답자에게 중요한지,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도 같이 조사하자는 대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44?스탠퍼드대학 커뮤니케이션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제임스 피시킨(James S. Fishkin, 1948

)은 1988년 ‘숙의 여론조사(deliberative poll)’를 제안했다.

전국적인 랜덤 샘플을 통해 고른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토의한 뒤 그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자는 것이다.

그는 1995년 자신의 주장을 체계화시킨 『국민의 목소리: 여론과 민주주의(The Voice of the People: Public Opinion & Democracy)』의 출간 이후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숙의 여론조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996년 1월 최초로 랜덤 샘플 미국인이 오스틴 텍사스대학에 모여 ‘숙의 여론조사’를 시도했는데, 이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여론조사(poll with a human face)”로 명명되었다.

45?숙의 여론조사의 장점 중 하나는 응답자들의 이른바 ‘의견없음(non-attitude)’의 문제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응답자가 진정한 의견이 없음에도 무식하게 안 보이려고 설문에 응답함으로써 여론을 왜곡시키는데, 숙의 여론조사는 이 문제를 확실하게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46?같은 맥락에서 심리학자이자 여론조사 전문가(pollster)인 대니얼 양켈로비치(Daniel Yankelovich, 1924

)는 『공적 판단을 위하여(Coming to Public Judgment: Making Democracy Work in a Complex World)』(1991)에서 “public opinion”이 너무 많은 것을 의미한다며 최소한 ‘대중 의견(mass opinion)’과 ‘공적 판단(public judgment)’은 구분해서 조사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자신은 “숙의적 판단(full deliberative judgment)”을 원했지만, 미디어는 “스냅샷(snapshot)”을 원했다면서, 기존 조사 방식이 대중의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을 가져올까봐 걱정했다.

47?여론조사 결과를 흥미 위주의 뉴스 상품으로 팔기 바쁜 언론이 그런 대안과 제안을 수용할 리는 만무했고, 그래서 여전히 심각한 결함이 교정되지 않은 채로 여론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1996년 칼럼니스트 아리아나 허핑턴(Arianna Huffington, 1950

)은 “여론조사가 정치 환경을 오염시켜서, 하루 빨리 이를 정화시켜야 한다”며 ‘여론조사에서 자유로운 미국을 위한 연대(Partnership for a Poll-Free America)’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그녀는 “최신 여론조사를 어깨너머로 계속 살피면서, ‘나는 여러분의 리더로서 여러분의 뜻을 따를 것이다’라는 좌우명을 가진 정치인들이 오늘날의 정치 환경을 흐려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48????여론조사 비판엔 좌우가 없다.

조지 W. 부시는 2000년 대통령 선거 운동 중에 여론조사는 필요없다며 대중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국정을 수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1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을 하고 있는 조지 W. 부시.??여론조사 비판엔 좌우가 없다.

조지 부시(George W. Bush, 1946

)는 2000년 대통령 선거 운동 중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라고 말하는 여론조사는 필요가 없다.

재선에 성공한다면, 대중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국정을 수행하지는 않을 것이다”고 했다.

49 좌파 언론학자 허버트 실러(Herbert I. Schiller, 1919

2000)는 “여론조사는 현상 유지를 위한 매춘”이라고까지 주장했다.

50 한국의 얄팍한 ‘여론조사 포퓰리즘’그럼에도 오늘날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들은 ‘여론 민주주의’를 위한 방법론인 여론조사를 왕성하게 실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여론조사는 여론 민주주의의 한 기둥이라 할 언론매체의 주요 영업 수단이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 여론조사를 통제한다는 건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기껏해야 여론조사 방법을 검증하는 수준의 공적 규제만 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한국처럼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정치판이 요동치는 나라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여론조사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다.

여론조사의 오·남용이 심하고, 국민 역시 여론조사 결과에 너무 휘둘리고 있다는 뜻이다.

?여론조사를 아무리 엄격하게 과학적·윤리적으로 한다 해도 여론조사 자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버리면 더욱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다른 문제들을 제쳐놓더라도 질문 순서만 바꿔도 여론조사 지지율이 전혀 ‘딴판’으로 나타나는데,51 이런 여론조사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는 건 그 얼마나 위험한가 말이다.

그런 과도한 의존의 대표적 사례가 정당 내 여론조사 경선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국민대학교 교수 이명진은 “당원들이 해야 하는 후보 선출에 여론조사를 활용하는 것은 정당정치를 포기한 얄팍한 포퓰리즘”이라고 했다.

52 서울대학교 교수 박찬욱도 “지금과 같은 정당의 후보 선출 방식은 여론조사의 본질을 모르는 ‘조사 문맹(Research Illiteracy)’ 현상이자, 정치적 선택이 가요 인기투표와 같다고 여기는 포퓰리즘”이라며 “노선과 이념에 관계없이 누구든 지지율만 높으면 된다는 풍조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53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김헌태는 “(여론조사 경선은) 세계적 망신거리”라고 했다.

54 『』 주용중은 “당 후보를 여론조사로 뽑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대만뿐이다.

대만은 국민당의 일당 통치에서 벗어난 지 10년도 되지 않는 민주정치의 후발국이다.

우리가 구태여 그런 나라의 제도를 본받을 이유는 없다.

여야는 여론조사를 여론조사 본연의 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55?정당 내 여론조사 경선의 원조는 2002년 대선 직전 여론조사로 성사된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였다.

당시 단일화의 드라마적 가치가 워낙 커 대충 넘어가긴 했지만, 그건 여론조사 오·남용의 극치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지금도 ‘드라마적 가치’에만 집착해 그 사건을 재현하려는 시도만 왕성하게 이루어질 뿐, 왜 그게 문제였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성찰도 찾아볼 수 없다.

?왜 그럴까? 전문가와 일반 민심의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당정치의 원리를 내세워 여론조사 경선을 비판하지만, 정당을 포장마차보다도 수명이 짧은 것으로 알고 있거니와 실제로 그렇게 경험해온 유권자들로선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론조사 자체를 못하게 했던 독재정권 시절의 상흔이 유권자들의 뇌리에 ‘여론조사=민주주의’라는 등식을 성립시킨 점도 있다.

선거에 여론조사가 도입된 것은 1987년에 치러진 제13대 대통령 선거 이후였으니, 이제 겨우 3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자유롭게 자기 의사 표현을 해도 괜찮더라는 걸 알고 솔직하게 여론조사에 임한 건 1990년대 말부터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여론조사 경선을 선호하는 정치인들에게도 비슷한 상흔이 있다.

당내 민주화가 안 되어 있던 시절 여론조사는 이른바 ‘보스 정치’를 타파할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이었다.

여론에 따른 ‘상향식’ 공천과 의사 결정은 무슨 개혁의 보증수표인 양 떠받들어지던 시절이 꽤 길었던 것이다.

그런 의식 때문에 정치적 열세를 순식간에 만회해 보려는 한탕주의 심리가 작동하고 있다고나 할까.?국회의원들의 직업적 문화 또는 행태는 그 속성상 늘 한탕주의 심리로 가득하다.

그들은 뜨지 않으면 죽는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강박은 국정감사 때에 잘 드러난다.

‘언론플레이’라는 표현도 점잖은 말이다.

‘필사적 몸부림’이라는 게 더 적합한 표현이다.

언젠가 모 의원은 국정감사 전에 보좌진 전원에게서 ‘각서’를 받았는데, 그 내용은 “의원의 국감 활동이 언론에 제대로 부각되지 않으면 해고를 감수한다”는 내용이었다.

“TV 9시 주요 뉴스에 보도되면 10점, 신문 1면 톱에 실리면 10점” 등 구체적인 ‘성적표 작성 방식’까지 정했다고 한다.

?그런 언론플레이에 취약한 언론도 문제가 있지만, 이런 문제는 의원이나 언론 탓만 할 일은 아니다.

유권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별 업적이나 실적이 없는 정치인이라도 언론매체를 타서 유명해지면 금방 여론조사에서 유력 정치인 리스트에 오르는 세태에선 의원들이 언론 보도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 여론 형성 구조의 10가지 특성그런데 또 알고 보면 유권자들도 구조의 포로다.

무슨 구조인가? 한국의 독특한 여론 형성 구조다.

그 구조의 가장 큰 특성은 잦은 ‘변심’이다.

전여옥은 “변심은 유권자의 기본이자 특권”이라고 했다.

56 정치인으로선 백번 옳은 말이다.

민심은 무조건 위대한 것이며 그래야만 한다.

유권자의 표가 정치인의 존재근거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심의 이유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청춘 남녀 사이의 변심에도 이유는 있는 법인데, 여론조사나 투표에서 변심의 이유가 없을 리 없다.

?그런데 우리는 사회적 차원에서도 무조건 유권자의 변심을 정당화·미화하는 쪽으로만 치닫고 있다.

모두 다 ‘대중의 지혜’의 신봉자들 같다.

그렇지만 ‘대중의 지혜’는 하나마나 한 소리다.

구조적으로 대중은 늘 지혜롭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그 자체의 힘(머리 수 파워) 때문에 대중의 선택은 정당화되고 지혜가 되게끔 되어 있다.

대중은 이미 ‘지혜’라는 답을 내장하고 있는 개념인 것이다.

예컨대, 대중이 선거에서 아주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망정 그걸 무슨 수로 꾸짖을 것이며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런 선거에서 과실을 챙긴 사람들이 앞다투어 ‘대중의 지혜’를 역설할 게 뻔한데 말이다.

?우리는 여론의 변심 이유를 캐는 데에 너무 게으르거나 아니면 너무 선거 전문가 같은 냉소로 대응하고 있다.

누군가가 이벤트 한 건을 잘 올려 지지율이 좀 오르면, 너무도 쉽게 편승해 곧 눈덩이 효과를 만들어내고야 만다.

대중을 폄하하는 건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한국 여론 형성 구조의 10가지 특성을 지적하면서 이야기를 해보자.?첫째, 미디어의 1극 중앙집권 구조로 인해 ‘쏠림’이 심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기지만, 전 국민의 미디어 이용 시간의 90퍼센트 이상을 점유하는 미디어가 한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는 건 놀랍게 생각해야 할 사실이다.

그런 지리적 집중성과 더불어 학연·학벌주의로 인해 미디어 종사자들의 동질성이 매우 높아 ‘쏠림’을 악화시킨다.

?둘째, 강한 외부 지향성과 타인 지향성으로 인해 ‘편승’이 심하다.

그래서 “지지율이 높기 때문에 지지한다”는 동어반복 현상이 상례화되어 있다.

이는 각 개인의 신념 구조나 그 어떤 사실적 기반에 의해 형성된 여론이 아니기 때문에 여론의 불안정성과 휘발성을 낳는 주요 이유가 되고 있다.

?셋째, ‘반감의 정치’로 인한 반사적 성격이 강하다.

정치에 대한 냉소·불신이 강해 정치적 지지는 지지 대상에 대한 ‘포지티브’ 심리보다는 반대 대상에 대한 ‘네거티브’ 심리에 의해 형성된다.

이 또한 여론의 불안정성과 휘발성을 낳는 주요 이유가 되고 있다.

?넷째, 정당정치의 기반이 부실해 일관성이 약하다.

일종의 악순환이라고나 할까. 정치에 대한 불신·혐오 때문에 기존 정당보다는 늘 신진 세력을 선호하는 여론이 정당정치의 부실화를 가져오는 역설을 낳고 있다.

?다섯째, 인물 중심주의 문화가 강해 지속성이 약하다.

기득권 세력에 대한 총체적 불신과 반감으로 인해 새로운 인물을 대안으로 모색하는 성향이 농후하다.

물론 그로 인한 좋은 점도 있겠지만, 여론의 불안정성과 휘발성은 피할 길이 없다.

?여섯째, 지역주의적 고려가 이슈·정책 파워를 약화시킨다.

지역주의적 고려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모든 사람이 당위적으론 인정하기 때문에 이는 기존 여론조사 방식으론 잡아내기 어렵다.

그래서 더욱 문제가 된다.

?일곱째, 드라마와 이벤트에 약한 감성 체질이다.

타고난 감성 체질도 있겠지만, 앞에 지적한 이유들이 감성 파워를 키워 드라마와 이벤트의 가치를 증대시킨다.

드라마와 이벤트의 바탕엔 그 어떤 시대정신이 깔려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지만, 여론 형성의 안정성을 해치는 건 분명하다.

?여덟째, 여론 선도자의 기능이 강해 조작에 취약하다.

이 문제는 인터넷과 SNS 시대에 이르러 증폭되고 있다.

앞서 지적한 ‘쏠림’과 ‘편승’은 여론 형성 초기에 이른바 ‘작전 세력’이 활개 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홉째, 바람에 약하고 바람을 사랑한다.

이는 그간 한국 정치에서 대체적으로 보아 긍정적 영향을 미쳐왔다.

기득권 구조를 일시에 허물어버릴 수 있는 물갈이를 가능케 한다거나 기득권 세력에 경고의 의미를 보내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열째, 성찰을 어렵게 만든다.

이는 바람에 약하고 바람을 사랑하는 여론 형성 구조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바람기는 유권자의 특권이라지만, 그게 지나치면 대접받지 못한다.

정치인들은 여론을 무서워하는 동시에 여론을 깔보기 때문이다.

언제든 바람 한 번 불면 쉽게 뒤집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자신의 과오를 심각하게 성찰하기보다는 바람을 만들 수 있는 드라마·이벤트를 연출하는 데에 집중한다.

이는 정치인들의 한탕주의를 창궐케 하고 성찰의 씨를 마르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선거나 여론조사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결과가 나오면 ‘대중은 위대’하고,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반대편의 음모와 방해’ 때문에 또는 유권자가 어리석거나 탐욕스럽기 때문에 그렇다는 식의 이중 잣대가 만연해 있는 것도 바로 그런 대중 폄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여론조사는 게임이자 엔터테인먼트다이제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사람들의 ‘면대면 관계(old face-to-face relationships)’와 ‘마을 회의(the small-town meeting)에 대한 강한 향수를 갖고 있던 갤럽은 엘리트주의적 이상이 미국 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보았으며 여론조사가 그 견제책이라고 생각했다.

정치적 의사 결정을 엘리트 마음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57?자신이 지식인이자 전문가이면서도 지식인과 전문가를 불신한 갤럽은 엘리트 지배와 민주적 정부는 양립 불가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갤럽을 가리켜 시민들의 일상에서 집단지성을 신뢰한 ‘대초원 포퓰리스트(Prairie populist)’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58?그러나 방법이 문제지, 갤럽의 꿈을 어찌 포퓰리즘이라고 폄하할 수 있겠는가.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 갤럽의 꿈은 사라지고 없다는 점이다.

여론조사가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눈치 챈 사람들이, 또 여론조사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할 사람들이 여론조사를 양산해내고 또 언론이 비교적 생산원가가 싸게 먹히는 뉴스의 일종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함부로 이용함에 따라 여론조사는 그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오히려 매우 무책임하고 변덕스런 정부를 만들어내는 데에 일조했을 뿐만 아니라 여론조작을 더욱 쉽게 만들어주는 결과까지 초래하고 말았다.

?대중은 여론조사를 일종의 게임으로 즐길 뿐이기 때문에 바람 따라 노는 것에 별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여론조사는 범국민적 오락인 셈이다.

일종의 ‘바람 놀이’다.

굳이 좋게 말하자면, 정열과 소신의 부질없음을 깨달은 체념과 냉소의 지혜라고나 할까. 가벼운 인상 비평의 수준에서 자신의 선택을 게임으로 여기는 기존 ‘여론조사 공화국’ 체제는 신축성·융통성·역동성 등과 같은 그 나름의 장점이 있으므로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지만, 그 사회적 비용은 성찰의 고갈과 더불어 정치적 불확실성·불안정성의 증대다.

?하긴 그게 엔터테인먼트의 묘미이긴 하다.

그런데 엉뚱한 의문이 든다.

한국인은 진정 정쟁(政爭)을 혐오하는가? 혹 욕하면서 즐기는 건 아닌가?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게 어디 있겠는가만서도 정치를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여겨도 좋을 만큼 세상이 편안하지 않은 게 문제다.

?여론조사는 SNS 시대에 어떻게 바뀔까? 송인혁·이유진은 “트위터의 메시지 전파력과 소통성에 의거해서 주고받고 있는 서비스 중의 하나가 소셜 설문조사 시스템이다.

소위 ‘실시간 여론조사’ 방법이다”며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갤럽과 같은 여론조사 기업이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트위터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게다가 단순한 설문조사뿐만 아니라 전문 여론조사 기관 뺨칠 수준의 여론조사 툴을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된다.

”59?그러나 그 어떤 변화가 일어나든 여론조사 결과가 미디어의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되는 현 체제하에선 갤럽의 꿈은 꿈으로만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당장 한국을 보라. 4·13 총선에서 ‘여론조사의 재앙’을 핏대를 세워가며 개탄했던 언론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다시 대선 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여론조사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잖은가. 4·13 총선에서 제기된 여론조사의 문제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당해 놓고도 또 당하겠다는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망신을 당하는 것도 팔아먹을 수 있는 뉴스가 된다.

그렇다면 당한 게 아니라 알면서도 장사를 위해 같이 미쳐 돌아가는 것으로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실러는 “여론조사는 현상 유지를 위한 매춘”이라고 했지만, 그런 거친 표현보다는 여론조사는 “여론조사로 먹고사는 사람들을 위한 게임이자 그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엔터테인먼트”라고 하는 게 어떨까?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긴 안목과 호흡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물과 사상 2016.8 리뷰보기작가인물과사상 편집부출판인물과사상사발매2016.08.01. 이주영, 「[4·13 선거 혁명 또 빗나간 여론조사] 집 전화만 의존…스마트폰 세대 ‘숨은 표심’ 놓쳤다」, 『』, 2016년 4월 15일.이소아·채승기·이유정, 「23% 열세라던 조응천 40% 얻어 당선 ‘엉터리 여론조사’」, 『』, 2016년 4월 15일.「[사설] 빗나간 선거 여론조사, 유권자 혼란 막게 정비하라」, 『』, 2016년 4월 14일.「[사설] 여론조사가 더 이상 民意·선거 결과 조작하게 놔둬선 안 돼」, 『』, 2016년 4월 15일.이에스더·안효성, 「“이대로면 내년 대선 여론조사는 쓰레기 될 것”」, 『』, 2016년 4월 15일.Kenneth F. Warren, 『In Defense of Public Opinion Polling』(Boulder, CO: Westview, 2003), pp.54

57.Arvind Raichur & Richard W. Waterman, 「The Presidency, the Public, and the Expectations Gap」, Richard W. Waterman, ed., 『The Presidency Reconsidered』(Itasca, IL: F. E. Peacock Publishers, 1993), pp.2

4.Rosemarie Ostler, 『Let’s Talk Turkey: The Stories behind America’s Favorite Expressions』(New York: Prometheus Books, 2008), pp.73

74; Albert Jack, 『Red Herrings and White Elephants: The Origins of the Phrases We Use Every Day』(New York: HarperCollins, 2004), pp.173

174; Matthew J. Streb & Michael A. Genovese, 「Polling and the Dilemmas of Democracy」, Michael A. Genovese & Matthew J. Streb, eds., 『Polls and Politics: The Dilemmas of Democracy』(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4), pp.9

10; Leo Bogart, 『Silent Politics: Polls and the Awareness of Public Opinion』(New York: Wiley-Interscience, 1972), p.3.캐슬린 홀 재미슨(Kathleen Hall Jamieson), 원혜영 옮김, 『대통령 만들기: 미국 대선의 선거 전략과 이미지 메이킹』(백산서당, 1996/2002), 19쪽.James S. Fishkin, 『The Voice of the People: Public Opinion & Democracy』(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5), pp.71

79. 브라이스는 이 책에서 “민주주의만큼 위대한 지도자들을 필요로 하는 정부 형태는 없을 것이다(Perhaps no form of government needs great leaders so much as democracy)”는 명언을 남겼다.

Arthur M. Schlesinger, Jr., 『The Cycles of American History』(New York: Mariner Book, 1986/1999), p.429.Robert H. Wiebe, 『Self-Rule: A Cultural History of American Democracy』(Chicago, IL: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5), pp.173

175.Walter Lippmann, 『Public Opinion』(New York: Free Press, 1922/1965), pp.54

55. 이 책의 번역본엔 월터 리프먼, 오정환 옮김, 『여론·환상의 대중』(동서문화사, 2011); 월터 리프먼, 이충훈 옮김, 『여론』(까치, 2012); 월터 리프먼, 이동근 옮김, 『여론』(아카넷, 2013) 등이 있다.

Robert H. Wiebe, 『Self-Rule: A Cultural History of American Democracy』(Chicago, IL: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5), pp.173

175.Merle Curti, 「The Changing Concept of “Human Nature” in the Literature of American Advertising」, 『Business History Review』, 41(Winter 1967), pp. 335

357.Roland Marchand, 『Advertising the American Dream: Making Way for Modernity, 1920-1940』(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5), p.311.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 최경남 옮김, 『광고 불변의 법칙』(거름, 1983/2004), 34쪽.박창식, 「[유레카] 신종 여론조사 왜곡」, 『한겨레』, 2010년 1월 15일.David W. Moore, 『The Superpollsters: How They Measure and Manipulate Public Opinion in America』(New York: Four Walls Eight Windows, 1992), pp.31

33; Susan Ohmer, 『George Gallup in Hollywood』(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6), pp.60

61; 프랭크 뉴포트(Frank Newport), 정기남 옮김, 『여론조사: 대중의 지혜를 읽는 핵심 키워드』(휴먼비즈니스, 2004/2007), 200쪽.David W. Moore, 『The Opinion Makers: An Insider Exposes the Truth Behind the Polls』 (Boston, MA: Beacon Press, 2008), p.44.박창식, 「[유레카] 신종 여론조사 왜곡」, 『한겨레』, 2010년 1월 15일.Daniel J. Czitrom, 『Media and the American Mind: From Morse to McLuhan』(Chapel Hill: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1982), pp.122

133.브루스 빔버(Bruce Bimber), 이원태 옮김, 『인터넷시대 정치권력의 변동: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진화』(삼인, 2003/2007), 380쪽.George Gallup & Saul Rae, 『The Pulse of Democracy』(New York: Greenwood, 1940).한겨레신문 문화부 편, 『20세기 사람들 (상)』(한겨레신문사, 1995), 272

276쪽; Sarah E. Igo, 『The Averaged American: Surveys, Citizens, and the Making of a Mass Public』(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p.159.윌리엄 라이딩스 2세(William J. Ridings, Jr.) & 스튜어트 매기버(Stuart B. McIver), 김형곤 옮김, 『위대한 대통령 끔찍한 대통령』(한?언, 1997/2000), 323

324쪽; 밥 돌(Bob Dole), 김병찬 옮김, 『대통령의 위트: 조지 워싱턴에서 부시까지』(아테네, 2001/2007), 147쪽.David W. Moore, 『The Opinion Makers: An Insider Exposes the Truth Behind the Polls』 (Boston, MA: Beacon Press, 2008), pp.50

51; James David Barber, 『The Pulse of Politics: Electing Presidents in the Media Age』(New Brunswick, NJ: Transaction Publishers, 1980/1992), pp.62

63.전성원,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인물과사상사, 2012), 194

195쪽.한겨레신문 문화부 편, 『20세기 사람들 (상)』(한겨레신문사, 1995), 272

276쪽; 전성원,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인물과사상사, 2012), 196

197쪽; 「George Gallup」, 『Wikipedia』.Susan Herbst, 『Numbered Voices: How Opinion Polling Has Shaped American Politics』(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3), p.124.Lawrence R. Jacobs & Melinda S. Jackson, 「Presidential Leadership and the Threat to Popular Sovereignty」, Michael A. Genovese & Matthew J. Streb, eds., 『Polls and Politics: The Dilemmas of Democracy』(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4), p.32.Sidney Blumenthal, 『Permanent Campaign: Inside the World of Elite Political Operations』(Boston, MA: Beacon Press, 1980).Diane J. Heith, 「Continuing to Campaign: Public Opinion and the White Hose」, Michael A. Genovese & Matthew J. Streb, eds., 『Polls and Politics: The Dilemmas of Democracy』(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4), pp.55

56.William E. Bicker, 「Network Television News and the 1976 Presidential Primaries: A Look from the Networks’ Side of the Camera」, James David Barber, ed., 『Race for the Presidency: The Media and the Nominating Process』(Englewood Cliffs, NJ: Prentice-Hall, 1978), p.96.David W. Moore, 『The Opinion Makers: An Insider Exposes the Truth Behind the Polls』(Boston, MA: Beacon Press, 2008), pp.54

56.Robert S. Erikson & Kent L. Tedin, 『American Public Opinion: Its Origins, Content, and Impact』, 5th ed.(Boston, MA: Allyn and Bacon, 1995), pp.4

5.Donald R. Kinder, 「Diversity and Complexity in American Public Opinion」, Ada W. Finifter ed., 『Political Science: The State of the Discipline』(Washington, D.C.: The American Political Science Association, 1983), p.389.데이비드 솅크(David Shenk), 정태석?유홍림 옮김, 『데이터 스모그』(민음사, 1997/2000), 170

171쪽.데이비드 솅크(David Shenk), 정태석?유홍림 옮김, 『데이터 스모그』(민음사, 1997/2000), 171쪽.Joe Trippi,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 Democracy, the Internet, and the Overthrow of Everything』(New York: ReganBooks, 2004), p.36.홍영림, 「여론조사가 ‘국민의 뜻’일까」, 『』, 2012년 11월 5일.Kenneth F. Warren, 『In Defense of Public Opinion Polling』(Boulder, CO: Westview, 2003), pp.54

57.Jeffrey Bell, 『Populism and Elitism: Politics in the Age of Equality』(Washington, D.C.: Regnery Gateway, 1992), pp.76

91.Lawrence R. Jacobs & Robert Y. Shapiro, 『Politicians Don’t Pander: Political Manipulation and the Loss of Democratic Responsiveness』(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0), pp.xiv-xv.David W. Moore, 『The Opinion Makers: An Insider Exposes the Truth Behind the Polls』(Boston, MA: Beacon Press, 2008), pp.145

146.James S. Fishkin, 『The Voice of the People: Public Opinion & Democracy』(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5), pp.161

203; James S. Fishkin, 「Deliberative Polling, Public Opinion, and Democratic Theory」, Michael A. Genovese & Matthew J. Streb, eds., 『Polls and Politics: The Dilemmas of Democracy』(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4), p.154.Matthew J. Streb & Michael A. Genovese, 「Polling and the Dilemmas of Democracy」, Michael A. Genovese & Matthew J. Streb, eds., 『Polls and Politics: The Dilemmas of Democracy』(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4), p.5.Daniel Yankelovich, 『Coming to Public Judgment: Making Democracy Work in a Complex World』(Syracuse, NY: Syracuse University Press, 1991), p.42; David W. Moore, 『The Opinion Makers: An Insider Exposes the Truth Behind the Polls』 (Boston, MA: Beacon Press, 2008), pp.28

29.프랭크 뉴포트(Frank Newport), 정기남 옮김, 『여론조사: 대중의 지혜를 읽는 핵심 키워드』(휴먼비즈니스, 2004/2007), 26, 85쪽.프랭크 뉴포트(Frank Newport), 정기남 옮김, 『여론조사: 대중의 지혜를 읽는 핵심 키워드』(휴먼비즈니스, 2004/2007), 85쪽.빈센트 모스코, 김지운 옮김,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나남, 1998), 379쪽.정철운, 「“질문 순서만 바꿔도 여론조사 지지율 전혀 ‘딴판’”」, 『』, 2012년 8월 21일.홍영림, 「여론조사 기관들 “한나라 경선조사? 아이고, 안 할래요”」, 『』, 2007년 8월 8일.기획취재팀, 「여론조사 공화국/민심 측정 넘어 ‘심판관’ 노릇」, 『』, 2007년 2월 27일, 1면.이동훈, 「여론조사 후보 선출, 한국만의 ‘유행가’」, 『』, 2007년 8월 6일.주용중, 「여론조사로 후보 뽑기의 우스꽝스러움」, 『』, 2007년 8월 9일.이유식, 「지평선/고객의 바람기」, 『』, 2007년 5월 4일, A26면.Sarah E. Igo, 『The Averaged American: Surveys, Citizens, and the Making of a Mass Public』(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p.123; Kenneth F. Warren, 『In Defense of Public Opinion Polling』(Boulder, CO: Westview, 2003), pp.54

57.Robert S. Erikson & Kent L. Tedin, 『American Public Opinion: Its Origins, Content, and Impact』, 5th ed.(Boston, MA: Allyn and Bacon, 1995), pp.3

4.송인혁·이유진 외, 『모두가 광장에 모이다: 소셜이 바꾸는 멋진 세상』(아이앤유, 2010), 300

301쪽. 한국갤럽이 7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역대 대통령 중 한국을 가장 잘 이끈 대통령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들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1위 : 박정희 44%2위 : 노무현 24%3위 : 김대중 14%4위 : 이승만 3%5위 : 전두환 3%6위 : 김영삼 1%7위 : 이명박 1%8위 : 노태우 0.1% (의견 유보 11%)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

30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50대 이상 연령층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역대 대통령 각각에 대한 평가 결과는 다음과 같이 조사됐다.

 잘한 일이 많다1위 : 박정희 67%2위 : 노무현 54%3위 : 김대중 50%4위 : 이승만 27%잘못한 일이 많다1위 : 이명박 64%2위 : 전두환 60%3위 : 노태우 45%4위 : 김영삼 42% 좀 더 구체적으로 설문 결과를 살펴보면, 응답자들은 각 대통령의 공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이승만?잘한 일 : '건국/나라 기초/정부 수립'(36%), '민주주의를 지켜냄/공산화 막은 점'(12%), '어려운 시기/혼란 극복'(11%) 등?잘못한 일 : '일제 청산 못함'(19%), '독재'(13%), '부정선거'(8%), '6.25 한국전쟁/전쟁을 막지 못함'(8%), '미국에 종속'(7%) 등? ?박정희?잘한 일 : ?'경제발전'(52%), '새마을 운동'(15%), '국민들을 먹고 살게 해 줌/민생 해결'(12%), '경부고속도로 건설/국토 개발'(8%) 등?잘못한 일 : ?'독재/유신/민주화 후퇴'(72%), '쿠데타/군사정권'(10%), '정경유착/대기업 밀어주기'(3%) 등 ?전두환?잘한 일 : ?'경제 정책/경기, 물가 안정'(25%), '범죄자 소통/사회 정화/질서/삼청교육대'(23%), '먹고 살기 좋았다/생활은 지금보다 나았다'(18%), '리더십/내각 관리 잘됨'(14%) 등?잘못한 일 : ?'5.18 광주 민주화운동 폭압'(20%), '개인 비리/부정부패/비자금'(20%), '독재/강압'(17%), '쿠데타/군사 정권'(15%), '사람 많이 죽임/인권 유린'(8%), '민주화 탄압/민주주의 후퇴'(7%) 등 ??노태우?잘한 일 : ?'직선제/민주화'(28%), '무난했다'(18%), '먹고 살기 좋았다/생활은 지금보다 나았다'(12%), '외교 정책'(8%) 등?잘못한 일 : ?'개인 비리/부정부패/비자금'(22%), '성과 없음/무능력'(19%), '소신 부족/나약함/우유부단'(15%), '리더십, 추진력 부족'(5%), '쿠데타/군사 정권'(5%), '전두환 정권 계승'(5%) 등 ?김영삼?잘한 일 : ?'금융실명제'(34%), '문민정부/문민화'(9%), '열심히 했다'(9%), '군부독재 청산'(6%) 등??잘못한 일 : ?'IMF 외환 위기 초래'(43%), '가족, 아들 비리/부패'(12%), '무능력/뚜렷한 업적 없음'(6%), '서민, 민생 경제 파탄'(5%) 등 ?김대중?잘한 일 : ?'대북/햇볕 정책'(27%), 'IMF 외환 위기 극복'(18%), '민주주의 정착/민주화'(7%), '경제 정책/경제 회복'(5%), '남북정상회담'(5%) 등?잘못한 일 : ?'대북/햇볕/퍼주기 정책'(54%), '가족, 아들 비리/부패'(7%), '경제 어려움'(5%) 등 ?노무현?잘한 일 : ?'국민과의 소통'(17%), '국민, 서민을 위함/국민 입장 대변'(17%), '서민 경제/민생 노력'(10%), '민주주의 실현/민주화'(7%), '권위적이지 않음'(6%), '친근함/인간적임'(5%) 등?잘못한 일 : ?'죽음/자살'(10%), '대통령 자질 부족'(9%), '대북 정책/퍼주기'(8%), '국론 분열'(7%), '말 실수/막말'(7%), '가벼움'(7%) 등 ?이명박?잘한 일 : ?'4대강 사업'(21%), '경제 정책'(14%), '열심히 했다'(10%) 외 '청계천 복원사업'(7%), '대중교통/버스 전용차로, 환승'(7%), '추진력/리더십'(6%) 등 ?잘못한 일 : ?'4대강 사업'(57%), '경제 문제'(6%), '개인 비리'(6%), '자원외교 비리'(4%) 등  한편 이번 조사는 한국갤럽이 7월28

30일, 8월4

6일 전국 성인 2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표본오차 ±2.2%포인트(95% 신뢰수준)에 응답률은 18%였다.

더 자세한 설문조사 결과는 한국갤럽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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