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천경자 미인도


  ?사건의 발단과 전개는 이러하다.

 김재규 중정부장의 재산을 국가과 환수되면서 김부장이 가지고 있던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도 같이 딸려왔고, 최종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까지 왔단다.

그런데 국립현대미술관이 1991년 유명 화가의 그림을 복제해서 몇 만원에 팔았다.

시중에 나도는 복제품을 본 천경자 화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전화를 해서 자기 그림이 아닌 위작이라고 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천화백은 머리를 검게 개칠(改漆)하지 않으며, 머리에 흰꽃을 그린 적이 없으며, 어깨위의 나비도  그린 적이 없고, 작품년도 숫자도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한자로 표기하고, 결정적으로 자기그림에 느껴지는 혼이 담겨있지 않다는 사유로 위작이라고 주장하였다.

 천화백이 그린 "장미와 여인"(1981년)이라는 그림(둘째 딸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이 분도 미술가이고 사위도 미술가라네)과 비교해 보면 천화백의 주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사자가 자기 그림이 아니라고 하면 위작인 것으로 하면 그냥 에피소드 정도로 끝날 문제였는데, 국립현대미술관측이 이를 부인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한다.

 국립현대미술관측은 구입할 때에도 진품여부를 감정했고, 과학적 분석결과 천화백이 사용한 일본산 안료와 동일한 안료가 사용되었고, 화랑협회의 감정위원들이 감정한 결과도 진품이 맞다고 결론이 났기 때문에 진품이 맞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시 60이 넘은 천화백의 정신이 좀 오락가락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다.

실상, 몽환적인 그림(머리에 꽃을 꽂은?)을 그리고, 동네비디오방에서 SF영화를 빌려서 즐겨보는 천작가가 나이들더니만 드뎌 돌아버렸다는 정도의 모욕적인 언사였다.

 작가가 자기 작품이 아니라고 하는데, 미술계 권위자들 여럿이서 너 작품이 맞다고 일종의 다구리를 하는 상황에 충격을 받은 천화백은 자기가 낳은 자식을 몰라보는 엄마도 있냐며 다시는 한국에서 작품활동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딸이 사는 미국으로 가서 지금도 여전히 미국에서 살고 있다.

 반전은 1999년에 일어난다.

고문서 위조가였던 권춘식이 자신이 미인도를 위조했다고 인터뷰를 한 것이다.

자신의 친구요청에 따라 달력그림 몇 개를 그려주면서 천화백의 미인도도 위조해서 주었다는 것이다.

 이에 검찰은 공소시효 지났기 때문에 수사할 수 없다고 했고, 국립현대미술관측은 권춘식은 동양화 위조전문가이 깨문에 미인도 위조를 할 수가 없고, 1984년 위조했다고 했지만 이 그림은 그 전에 압수된 작품이기 때문에 권춘식의 말은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다시 진품이 맞다고 했다.

 권춘식씨에게 미인도 다시 한 번 그려보라고 해서 확인하면 될 것을 논란을 키우는 게 요즘 누군가를 보는 것 같다.

 어쨌든 요지는 아직도 미인도 위작여부는 알 수 없다는 것. 그런데 대체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면 작가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게 정석아닌가? 화랑협회 규정도 그런 것이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일이 흘러가는지 모를 일이다.

 전문가라는 권위로 진실을 압박하는 모양새이다.

요즘도 지긋하게 보이는...  천경자는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16살 일본 유학을 했고, 1942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가 입선하면서 화가로 데뷔했다.

1944년 귀국해서 광주공립여고보의 미술교사로 부임했다.

 해방직후 일본에서 만난 유학생과 결혼했다.

그러나 1남1녀를 떠 안은 채 이혼해야 했고, 사업실패로 실의에 젖은 아버지의 죽음. 폐결핵을 앓던 여동생의 죽음. 초혼 실패 이후 빠져든 한 유부남과의 사람도 김씨 성을 가진 남매만 낳고 결혼까지는 못하는 등 가정적으로는 매우 불행했다.

(천화백의 첫째와 둘째 남매는 이씨이고, 그 아래 남매는 김씨 성을 가지고 있다.

)  이처럼 정신적으로 피폐해 있던 상태에서 남들이 징그럽다고 피하던 뱀들이 눈에 들어왔고,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광주역 앞의 뱀집을 열심히 드나들면서 뱀들을 스케치해서, 청동색 뱀 35마리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똬리를 틀고 있는 '생태'를 완성했다.

이 그림으로 천경자는 화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천경자의 그림에 1970년대부터 꽃과 여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천경자의 작품에 대해서 환상, 몽환, 꿈과 정한의 세계 등으로 평가받았았는데, 요즘은 흔들리지 않은 여성성의 확보, 구태의연해 보이는 여성의 삶에 대한 환멸의 치유책, 여성애 표현 등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뉴욕의 큰 딸과 같이 살고 있는데, 말년에 또 구설수에 휘말려 있다.

사실 천화백은 이미 별세했는데, 큰 딸이 이것을 숨기고 예술원 회원수당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예술원에서 천화백의 최근 근황과 의료기록 등을 요청하는 팩스를 보냈는데, 큰 딸이 이에 대한 답이 없다는 것. 그래서 예술원은 수당지급을 중지했고, 큰 딸은 예술원 탈퇴신청을 했지만 예술원 측은 당사자 의견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탈퇴처리는 하지 않고 있다네.... 그렇게 의심되면 미국으로 가서 보던지....아니면 미국에 있는 사람에게 확인을 의뢰해 보던지....자존심 강한 예술가를 욕보이는 것 아닌가 싶다.

 10                                  <미인도> 진위 논쟁의 시발점은 25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은 ‘움직이는 미술관’ 전시를 기획했다.

이때 10여 년간 미술관 수장고에 있던 <미인도>가 서울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 전시됐다.

<미인도>가 처음 대중에 공개된 것이다.

당시 언론 기사에 따르면 <미인도>는 1979년 천 화백이 오모씨에게 줬고, 오씨가 다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준 걸 정부가 압류해 문화공보부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관됐다.

천 화백은 당시 어떤 그림인가를 오씨에게 준 건 맞지만 <미인도>는 아니라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인도>가 맞다”고 했다.

91년 전시된 미인도는 포스터로도 제작돼 일반인에게 판매됐다.

총 900장을 인쇄해 일부는 홍보용으로 사용하고 일부는 5만원에 판매했다.

이때 일이 터졌다.

한 사우나에서 액자에 걸린 미인도 포스터를 본 천 화백의 지인이 천 화백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천 화백은 인쇄물을 보고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미술관에 전했다.

“내 작품은 내 혼이 담겨 있는 핏줄이나 다름없습니다.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에 화랑협회 감정위원회에 감정을 의뢰했다.

결론은 ‘진품’이라는 거였다.

화풍과 천 화백 작품을 주로 표구한 동산방화랑의 표구가 장부에 기록돼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천 화백은 그해 4월 절필을 선언하며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붓을 들기 두렵습니다.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를 진짜로 우기는 풍토에서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

”천 화백은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정신 나간 작가’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정신적 고초를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천 화백은 98년 자신의 주요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큰딸 이혜선 씨가 살고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천 화백은 2003년 병환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미인도’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91년 사건 이후 <미인도>는 다시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보관됐고 위작 논란도 잊혀지는 듯했다.

잠복했던 논란은 99년 서화 위조범 권춘식(69) 씨를 검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다시 떠올랐다.

권씨가 “<미인도>는 내가 그렸다”고 주장한 것이다.

미술계에서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소장품이었다가 국가에 환수된 <미인도>를 국립현대미술관이 인수한 건 80년 5월인데 권씨가 그렸다고 주장한 시점이 84년이어서 권씨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고 보았다.

검찰은 공소 시효가 지난 사건이라며 수사를 접었다.

천 화백 사망과 함께 다시 살아난 논란이렇게 또 16년이 흐른 지난해 10월, 천 화백이 두 달 전 타계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시 <미인도> 위작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천 화백의 삶을 조명하면서 언론에서 이 작품 위작 논란까지 끄집어냈다.

  [출처: ] [심층취재] 법정으로 간 천경자 <미인도> 위작논쟁 【SBS 스페셜】 : ‘천경자 미인도 스캔들’ - 소문과  거짓말  1991년 4월, 대한민국 미술계가 당대 최고의 여류 화가 천경자와 국립현대미술관의 날 선 대립으로 발칵 뒤집혔다!  사건의 주인공은 <미인도>라는 한 점의 그림!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인도>를 진품으로 결론 내렸으나, 생전 천 화백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고 2015년  10월 하순 천경자(1924

2015) 화백이 두 달 전인 8월 6일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사건 발생 후 25년, 천 화백의 죽음으로 다시금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미인도> 위작 사건! SBS 스페셜이 25년 만에 입을 연 관계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거짓과 소문 속에 감춰진 <미인도>의 진실을 추적한다.

▣ 1991년 <미인도>감정단은 만장일치로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알려져 왔는데   당시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의견을 냈다는 화랑대표(공창호씨)가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장하는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거짓 근거와 이에 대한 반박 증언들첫번째  거짓 근거는 천경자화백의 화집(금성출판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 천경자화백의 사망소식과 함께 <미인도>에 대한 의혹들이 수면으로 떠오르자 국회에서도 재감정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국립현대미술관은 최근 한 국회의원실에 보낸 답변서에 <미인도>를 진품으로보는 근거들이 적혀 있는데 그중 하나가 1990년 발행된 천경자화백의 화집(금성출판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위장논란이 터지기 1년전에 발행된 이 책에 <나비와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미인도>가 실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책이 나올때 이미 화가가 <미인도>를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한것이 아니겠냐는 주장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최근 이석현 국회의원실에 보낸 답변서에 쓰여있는 <미인도>를 진품으로보는 근거☞유족측 반박내용유족들은 <미인도>가 실린 선집이 발간될때 천화백이  <미인도>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주장은 당연히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합니다.

"책에 대해서는 저희도 존재를 알고 있었어요 그때.  그런데 그것이 제일뒤에 흑백으로 조그맣게 실렸기 때문에  아무도 그(미인도 사진의)존재를 몰랐어요. 거기 그런 사진이 실려있다는  자체를"다른 작품과는 달리 제일 뒤쪽 그것도 서편끝에 삽입된 작은 흑백사진이라 보지못했다는 겁니다.

이 책의 편집자도 <미인도>를 (천화백이)보여주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책에 <나비와 여인>이라는 제목을 붙인건 누구입니까?두번째 거짓 근거는 <미인도>"액자" 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출신 한 미술평론가는 이 내용을 기사로도 썼습니다.

 천화백 작품을 도맡아 표구하던 D화랑에 <미인도>에 대한 장부가 있고  <미인도>액자속에서 천경자의 고유번호(표구번호)까지 확인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유족측이 반박자료로 처음 공개한 영상에는..   미인도를 표구했다는 D화랑대표는 "천경자화백의 고유번호 같은 것은 없다"고 잘라말합니다.

  세번째 : 그런데 당시 현대미술관이 위작이 아니라며 강조한 거짓 증언이 하나 있었습니다.

  미인도는 분명 스승님의 작품이라고 증언한 제자가 있었다는 겁니다.

이경성 1991년 당시 현대미술관관장# 천 화백의 제자 25년 만에 입을 열다!천 화백의 제자인 A 씨가 자신이 미인도를 진품으로 감정했다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주장에 대해 25년 만에 직접 입을 열었다.

그동안 알려진 것과 완전히 다른 증언을 한 A 씨. 그녀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들은 말로 인해 지금껏 자신도 미인도가 진품이었다고 알고 있었다고 한다.

과연 A 씨는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에게 어떤 말을 들은 것일까?  그녀는 25년만의 증언에서..그러자 가만히 듣고있던 관장..▣국립현대미술관의 또 하나의 조작그러나 진실은...1991년4월2일 천경자화백의 집을 방문해 만나주지 않는 천화백에게  편지로 스스로 위작이라고 밝힌 당시 미술관 학예관B씨# 미리 맞춰진 퍼즐(?)천경자 화백의 지인이자 당시 언론사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그 무렵 의미심장한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미인도를) 진짜로 만들지 못하면 7명의 목을 치겠다고 했어요”<미인도>의 감정은 처음부터 답이 정해져 있는 퍼즐이었던 것일까. 사건발생의 시작은....위작자 권춘식의 등장달력과 화집에 실린 천경자화백의  작품 서너점을 재조합해 2

3일만에 <미인도>를 완성했다고故 천경자 화백 장녀, 천 화백 작품·개인소장품 4천여점 기증 [울산매일 20151214][단독] “천경자, 위작 주장 번복” 허위 보고한 국립현대미술관 [ 2016.3.29]"미인도 위작 맞다, 화랑협 임원 회유로 거짓 진술"- 위작범 권춘식 [중앙 2016.4.28][단독] 천경자 “미인도 눈에 힘 없고 코도 벙벙” [ 20160526] < 2016.07.22>미술관측은 위조범 권춘식 보고 넌 수묵화 전문인데 뭔 소리냐고 반발......??※ 작가가 자기 그림이 헬스장에 걸린걸 보고 자존심이 상해 자기 작품인걸 부정했다는 설도 있음  난 처음에 위작논란이 있고 미술관측의 적극 반박도 있다고 해서 완전 초 미세한 복제품 수준이라 작가가 자기 그림을 순간 착각한건 아닌가 했다.

?그런데 그림을 보니....착각할래야 착각 할수가 없다.

?여자와 꽃이 그려졌다뿐 내가 보기에도 완전 다른 그림인데.저렇게 다른 그림을? 어떻게 작가 본인이 착각하지? 작가가 거짓말 하지 않는 이상.??미술품 위작의 역사는 너무 길어서 외국에도 저런 사례가 종종 있는듯남의 유명한 그림을 복사하다시피 그려서 걸어놓고 중간에 거액의 그림값은 누가 삥땅하고......??세계의 유명한 미술품 짝퉁사건들(미술평론가들이 다 진품이라고 판정내렸던 그림들)영국-영국의 한 부동산기업가가 샤갈작품을 몇억 주고 샀다가 위작으로 판명되어 불 태우라는 명령을 받음네덜란드- 네덜란드의 한 중개상이 베르메르 그림 몇점을 나치(괴링)에 넘겼다가 체포 위기에 처하자 전부 자기가 그렸다고 해명미국-?미술상 로살레스가 15년간 위작 63점을 제작해 팔아서 수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림(15년간 전문가들 그 누구도 몰랐다고)영국런던 미술관 - 보티첼리의 위작을 커덜트 미술관내 전시했던걸로 드러남?미국 크리스틴유뱅스,설리번사건-인터넷경매업체를 운영하며 유명화가들의 위작들을 2천만달러에 판매러시아-국제범죄조직이 칸딘스키 등 유명 현대미술가들의 위작 4백점을 수백만유로에 판매하다 체포?※ 네덜란드의 중개상은 법정에서 직접 베르메르의 그림을 똑같이 그려내서 진짜 짝퉁을 팔았음을 증명해냈다.

? ??위작 사건들 찾아보니 엄청 많네.전문가들,미술관도 위작 못 알아보고 당한 사례들도 많고.....????????????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의 응답이 없자 예고한 대로 형사 고소를 진행키로 한 것이다.

 故 천경자 화백의 차녀 김정희 교수가 지난 2월에 제기한 친자확인 소송은 며칠전인 6월10일  "친자가 맞다"는 확정 판결이  나와 , 미인도 위작관련 소송에 힘을 얻게 되었으며, 지난 4월 같이 진행되어 온 "미인도 위작"관련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6명을 사자명예훼손, 저작권법 위반,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고소·고발건은(문제의 미인도)수사에 착수한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배용원 부장검사)는 지난 8일 그림을 감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 문제의 미인도를 제출받았으며,지난 8일에는 정희씨를 고소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하였고, 현재  다각도로 조사 분석하며 수사가 진행중이다.

“내 작품은 내 혼이 담겨 있는 핏줄이나 다름없습니다.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

” - 천경자 화백-"진실은 언제나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에 주의하지 않을 뿐, 항상 진실을 찾아야 한다.

진실은 우리를 늘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 -파스칼-그럼, 그림보는 안목을 열기위해  천화백의 70

80 년대 초반의  인물화 미인도를 살펴보면,... [1973' 길례언니] * 학교 선배이며 간호사 였던  임길례 초상     어린 추억속의 선배를 그린작품  [1974년작 고(孤)] *  우측의 검은 머리결에는  서너 송이의 꽃들이 덮여진 흔적들이 남아있다.

 크고작은 꽃들로인해 시선흐름이 방해되어  검은색계열로 개(蓋)칠하다보니, 다른 작품들에 비해  모발색이 조금 탁하게 표현된 작품중 하나임을 기억해 두시고,...더불어, 조금 서툴게 서명한 "경자(鏡子)"라는 사인과 제작연도도 한 번씩 눈길주시길

^^[1974' "四月"]  컴 모니터나 화집을 통한,  선생의 작품감상 주요 포인트! 조금 뒤로 물러앉아 거리를 두고 보거나,.. 눈을 흐리게 뜨고, 보시길

! 그리해야만,  작품의 온전한 느낌들이 전해져 옵니다

ㅎ* 이점은 실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의 눈 높이(거리)까지 생각한  선생의 의도적인 배려입니다.

 [1976' 여인] [1977' 유월의 신부] 이쯤에서,  잠시  우리의 전통 채색화 표현기법에 대해 살펴보죠 ^^*  채색화는 한 두번에  칠하는 "painting" 개념이 아니라 채색안료를 아교액에 묽게 개어, 원하는 색이 나올때까지 화지에 수없이 색을 올려 표현하는 전통방법으로단 기간에 쉽게 완성되는 그런 그림이 아니다.

 * 짝퉁을 구별하는 안목을 넓히고자 하시는 분들은 열어 만나 보시길

^^> 더 보기 └ 접기 앞서 더보기에 밝혀 두었듯이 천경자 화백의  채색화 작품들중  소품은  두 세 달, 대작은  해를 거듭넘긴, 긴 작업들이 대부분이다.

 * 위작 논란이 되고있는 미인도  공교롭게도  위,아래 소개한  1977년에 선생이 그린 "유월의 신부,멀리서 온 여인,미모사 향기,수녀 테레사,내슬픈 전설의 22페이지"는 一九七七 로 연도 서명이 되어 있는데,...위 미인도?만  1977 아라비아 숫자로 아주 정성스레 또박또박 잘 쓰여있다

ㅎ아래 쪽에서 다시 설명해 올리겠지만,..뭔가 그리다만 그림이다! 눈을 흐리게 뜨고 보면,...그 미숙한 느낌이 더 드러나 보인다.

 [1977' 멀리서 온 여인] (1977" 수녀 테레사) [1977' 미모사 향기] (1977' 내슬픈 전설의 22페이지) [1978' 탱고가 흐르는 황혼] 석판화  선과 점으로 간결하게 표현된 눈 그리고 입술과 코는  작가의 그것과 닮아있다! (1981' 미인도) (1981' 꽃을든 여인)   아래 작품은 눈의 촛점을 흐리고 살펴보면,  해부학적 골격과 근육의 표현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눈 주변의 안륜근과, 광대뼈, 미묘하게 올라간 입주변의 구륜근은 물론 쇄골과  가녀린 목의 근육,그리고 머리카락 표현! 자연스러운 바림으로 작품의 생기를 더해주고 있다.

* 바림: 일종의 그라데이션 개인적으로 퍽

마음가는 작품이다 ^^* [1981' 장미와 여인] 1976년경 천경자 선생이 둘째 딸을 모델로 그린  스케치 이 스케치는 “장미와 여인”의 바탕이 된 그림으로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데,..                                                                                           천화백의 장녀가 부경대학에 작품 기증하는 과정에서 다시 소개된 것으로 그사이 세월의 흔적들이 묻어있다.

 헌데, 논란이 되고있는 그 문제의 미인도의 습작이 새롭게 발견되었다고 똥아에서 언론 플레이?하듯  기사화 되었고, 기사를 확인한  선생의 차녀 김정희 교수측은 “미인도”가 진품의 근거가 나온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보도는 명백히 허위보도이며, “미인도 습작”이 발견됐다는 의도적인 왜곡 보도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명예를 또 한번 훼손하고   있다.

"고 반박한다.

관련기사=>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525_0014107483&cID=10701&pID=10700 이어, 화가 천경자의  인물화 구도는 화면밖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결정되며, 그 응시하는 눈에는  작가의 내면세계가 아스라이 담겨있다.

 [1982' 황금의 비][1982' 두상(頭像)] 선생의 작품에서, 시선은 화면 전체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시발점이며화면밖  관람자의 내면 즉, 마음속 생각까지 들여다 보는 듯한,..그리하여 마음속 고민과 시름마져 잊게 해주는 그런 묘하고 기이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럼, 이제 선생의  미인도 속에 감춰진 진실을,...  지금까지 살펴본 천경자 선생 작품들의  공통점은  하루 이틀만에 쉽게 그려진 그림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래전 호암 미술관 전시장에서 실제 작품들을 접하며  받았던 20 여년 전의 그 감동이 지금도 뭉클하게 전해져온다.

당시, 전통채색화를 어설피 흉내내던  저 "다 사랑"은 이틀후 확대경을 챙겨 작품들을 다시 살펴본 적이 있었다.

 확대경속에 드러나던 조금 거친듯한 붓자국들은  서너 발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면, 탄력있는 피부가 되고,윤기흐르는 머리결로 드러나고, 피어나는 꽃잎들이 되는 것이 신기하여 한참을 들여다 보았던 기억이다.

  수많은 붓질로 켜켜이 쌓아 올린 깊은 색감들이 그윽하게 베어나오는 깊은 맛!우리의 전통 채색화들과  천경자 화백 채색그림의 특징중 하나이다.

  어설프게 그림을 그려 온 "다 사랑"이 보아도  위에서 설명한 그런 느낌들을 찾아 보기 어렵다는 생각웬지 마네킹을 보고 그린 듯한 느낌은, 저 만의 생각일ㄲㅏ요? "감춘 것이 깊으면,망하는 것도 깊다.

" - 명심보감- 시간이 허락되시는 분들은 지난 2월14일 SBS 스페셜에 방영되었던 "소문과 거짓말-미인도 스캔들"편을 아래 걸어 둔 링크를 통해 시청해 보시기 바랍니다( 56 분 분량) 아직 접해보지 못한 미술학도들은 꼭! 열어 보세요 ^^* http://www.gomtv.com/view.gom?contentsid=14118022&auto=1  지난 2월 시청하며 들었던 생각   "보이지 않는 손"  그놈의 실체가 많이도 궁금했었던 1인 대학에서,채색화를 배우고 있는  예비작가들에게 물어 확인해 보아도 뻔

한  그림을 거짓이 진실로 포장되는 일들이 다시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제 그 근거들을  들추어 보겠습니다! 참고 (위에 소개한 sbs 스페셜  화면 캡쳐사진) *참고로 위작시비가 제기되어 온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미인도는 편의상  이하 "문제작"이라 표기하겠습니다.

 가) 1981년 장미와 여인 화관                                                   나)  1977 미인도 화관 (문제작)다) 1974년 바리의 처녀                                                         라) 1974년 고 (孤)의 화관 참고로,  다), 의 그림은 바로 아래 그림의 부분으로 진한채색이 아닌  엷은 채색작품이며 아래 좌측            나), 는 위작시비의 그  문제작 아래 우측의 화관부분으로  아래 좌.우 그림은 머리에 쓴 화관이 거의 흡사하다(두작품 모두 좌측 변각에 희미하게 표현된 하얀 꽃도 비슷함)더불어 아라비아 숫자도 비교해 보시길 1974 와 1977   그럼, 제작연도의 글씨들과 경자(鏡子)라 쓴 서명을 살펴 보시죠 먼저, 1991 년 천경자 선생이 밝힌 아라비아 숫자 연도를 쓴 적이 없다고  한부분은  비슷한 구도로 그시기에 그려진 그림에국한된 표현이었다고 짐작이 되는바, 사실확인코자 화집들과 인터넷에 상에 올려진 선생의 작품들을 분석확인해 보니 1977년도에 그려진 여인상은 모두 한자 연도로 쓰여졌고, 나비와 꽃을 그린  아래 작품에만 1977 이라 서명됨 (1977 년작 나비와 꽃)                                                                                                              "문제작"  위의 사진의 좌측 두장은 위의 "나비와 꽃" 그림 부분이며    우측 두장은 "문제작" 부분사진으로 각 한장은 채도를 낮춘 사진임아라비아 숫자들을 비교해 보시고, 무엇보다 이름자의 필획이 미숙하여 그려 쓴 듯 보인다.

(특히, 아들자 "子"字)  다음은  코와 입술 부분으로  좌측 첫번째가 문제작으로 코끝은 물론 코의 날개(비익) 부분이 때낀듯 어둡게 표현되어 있고무엇보다 위아래 입술의 중앙라인의 선과 입술라인이 두리뭉실 흐리게 표현되어 있다.

    故 천경자 선생의 작품들 속에는  인체의 해부학적 골격과 근육들이 숨어있으며, 수 많은 드로잉 작업에서 습득된동양화의 필선들이  감춰진 듯 살아있다.

     이러한 부분들은  아래 1981년작  "장미와 여인"을  통해 눈을 지그시 감고 살펴보면,..   머리의 웨이브나,  화관의 꽃잎 테두리등 자연스러운 선들이 입체감을 살려주고 있으며, 해부학적 골격위로 근육을 붙여 가듯,  근육과 골격의 방향대로 겹겹이 켜를 이루며 붓질이 되어있다.

  좌측이 "문제작"  우측은 "장미와여인" 으로 두 작품 모두  채도만 낮춘 사진이다.

[천경자 미인도] 사실은.


 진위여부를 떠나  좌측은 누가 보아도 미완성된 그림으로 보여 질 것이다.

  앞서 밝혀 두었듯 목의 흉쇄유돌근과 여인의 매력 포인트 쇄골은 물론눈주변의 안륜근, 입 주변을 감싸고 있는 구륜근등  해부학적 지식이 없는 이가 그린 그림이다.

* 반 고흐처럼 좌측 귀는 잘라 버린걸까? 머리는 어디 싸구려 미용실에서 했는지 웨이브는 다 풀려있고,  좌우 눈꼬리 옆트임과  하악각(양악 수술?)도잘 못 나온 것 같다

ㅎ 천에 하 나,  만에 하나,  저 "문제작"이  또 다시 "보이지 않는 손"의 압력으로  진작(眞作)이라  판정된다해도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려서는 안 될 일이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 하지만,  마네킹같은  성형미인이 모셔질?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거짓이 세상을 돌아 다녔으니,..이젠 진실이 신발을 신고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 숨 죽이며 침묵하고 있던, 대한민국의  예술인들이여  깨어나라

!!  결코 왜곡되면 안될 진실들을 위하여 !!  이상으로 또 하나의  긴 포스팅을 사려가며   "짝퉁을 가려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명품을 자주 접해보며,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안목을 여는 것 입니다.

" 이 여름이 가기전 그 명품들을 만나러 길을 나서볼까 합니다!(故)천경자 선생의  1 주기 추모전 (서울 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2층) 6.14

8.7일까지1998년 작가가 시에 기증한 작품 93점과,  아래 개인 소장품도 만나 볼 수 있는기회 (1989' 막은내리고) 8억6천만원에 거래 개인소장(1978' 초원 2)2009년 K옥션을 통해 거래된 '초원Ⅱ'(1978, 105.5×130㎝)로 12억원에 거래된 개인소장품     참고문헌  이주헌: 내마음속의 그림 학고재 1997千鏡子: 그 생애 아름다운 찬가』, 2007 천경자의 혼, 서울시립미술관, 2002 천경자, 꿈과 情恨의 세계, 호암미술관, 1995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자유문학사 1984서성록:한국의 현대미술 문예출판 1995고흥군 문예지,,한겨레신문,sbs 스페셜.                                                        현이의 다락방에서    "다 사랑" _()_ 천경자 선생의 또 다른 위작 ( 뉴델리 와 기행 화첩, 그리고 "위작을 진품으로 둔갑?시키는 방법 등) 바로가기 => http://m.blog.naver.com/kuku_nine/220770160426   ?해외 화가 중에서는 고갱과 피카소 작가는 헤밍웨이, 국내 화가분들 중에서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을 유난히 좋아했는데 아쉬습니다.

그녀를 간호해온 맏딸의 말로는 '지난 8월6일 새벽 5시쯤,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 가셨다'고 합니다.

뒤늦게 나마,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국내 미술계에 많은 원망을 가지고 돌아가셨지 않을까 염려도 됩니다.

?꽃과 여인,뱀의 화가,보헤미안 화가,한을 표현한 세계적인 화가...그녀의 작품 세계를 소개 합니다.

?? ?헤밍웨이의 집(키웨스트) 1983년 37.5x45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풍과 소재?  그라나다의 흑인 자매 1993년 37.5x45.2?  펜실바니아 아미쉬 마을 1995년 37.6x45.3? ??그라나다의 여도서관장 1993년 37.5x45.2? ?그라나다의 창고지기 하는 女人 1993년 37.5x45.2? ??러시아 서커스단 1995년 31.4x40.5? ?마이애미로 가는 길 1989년 41x32? ?막은 내리고 1989년 41x31.5? ??미모사 향기 1977년 33.4x21.2?  발리섬의 소녀 1986년 40.9x31.8?  볼티모어에서 온 여인 1993년 41x32?  그녀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적인 인물 길례 언니는 소록도 나병원 간호부로 있던,깊은 인상을 받았던 선배 언니. 길례 언니 1973년 41x26 ?  소녀와 바나나 1993년 40.8x315? ??윤사월(閏四月) 1987년 25.8x17?  자마이카의 고약한 여인 1989년 32x41? ??재즈 1987년 24x33?  캬바레(뉴욕)1990년 24x27.5? ??탱고가 흐르는 黃昏(황혼) 1978년 48x43?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1987년 31.5x41??천경자 화백의 작품 세계의 핵심인 꽃과 여인은 천경자 화백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표현이자 관념이며 상징이다.

그녀는 단순히 이를 통해 아름다움만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소재속에 자신의 모습을 동일화 시키고 상징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는데, 삶과 죽음의 경계?,자연,내면적 갈등 등 굴곡 많았던 그녀의 인생을 반영 하지 않았을까 한다.

??? 그녀는 왜 절필하며 한국 미술계를 등지고, 한국을 떠나저 멀리 뉴욕에서 타계 하였나?? 1991년 미인도 위작 사건?1991년 미인도(위사진) 소유권이 김재규에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위작 논란이 가속 되자,천경자 화백이 직접 미인도를 감정" 이 작품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절대 없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화랑협회에 감정을 의뢰1차 감정결과 - 적어도 가짜는 아니다.

2차 감정결과 ?- 진품이다.

엑스레이,적외선?,자외선 촬영등 과학적 방법 총동원 진품확정"앞으로 위작임을 확증할 수 있는 증거가 밝혀지면 받아들이겠다"-국립현대미술관이에 천경자 화백은 감정 결과에 불복,위작이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천경자 화백은 상당한 정신적 피해를 받음"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가짜를 진품으로 오도하는 화단풍토에선 창작 행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천경자 화백은 이말을 남기며 절필 선언과 함께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직 사퇴각종 지원 수당 중지?미국으로 건너간 천경자 화백은 1998년 잠시 귀국,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그 이후로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1999년 고서화 위조범 권춘식씨가 자신이 미인도를 위조 했다고 증언" 화랑을 하는 친구의 요청에 따라 소액을 받고 만들었다"국립현대미술관은 다시 후속 조치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한국과학기술원에 감정의뢰한국화랑협회에서는 다시 진품이라고 판정,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위조범과 현대미술관중 어느쪽을 믿느냐?"?"자신의 그림도 몰라보는 정신 나간 작가"?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거동이 불편,뉴욕 맨하탄 큰딸 집에 머무름?딸 이씨 "2013년 서울시에 기증했던 작품이 관리 소홀로 훼손,93점을 반환해 달라" 요구 두달전,2015년 8월6일 타계????"고독이 삶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는 말이 와닿습니다.

분명 그런 면이 있어요.고독한 사람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 마련 입니다.

역으로,자신의 삶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스스로 고독을 자청 할 수도 있는 거겠지요"? 천경자 화백(1924년-2015년 8월6일) 전남고흥 태생?/한국을 대표하는 꽃과 영혼의 화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인간은 죽을지는 모르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하늘소블로그 花香千里行 人德萬年薰 ? "국가기관과 특정 이익단체가 조직적으로 나서, 일평생 외골수로 작업한 화가의 작가 정신을 말살하는 사건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 -천경자 화백 딸   ?우리 사회는 지금도 그녀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 ?해외 화가 중에서는 고갱과 피카소 작가는 헤밍웨이, 국내 화가분들 중에서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을 유난히 좋아했는데 아쉬습니다.

그녀를 간호해온 맏딸의 말로는 '지난 8월6일 새벽 5시쯤,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 가셨다'고 합니다.

뒤늦게 나마,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국내 미술계에 많은 원망을 가지고 돌아가셨지 않을까 염려도 됩니다.

?꽃과 여인,뱀의 화가,보헤미안 화가,한을 표현한 세계적인 화가...그녀의 작품 세계를 소개 합니다.

?? ?헤밍웨이의 집(키웨스트) 1983년 37.5x45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풍과 소재?  그라나다의 흑인 자매 1993년 37.5x45.2?  펜실바니아 아미쉬 마을 1995년 37.6x45.3? ??그라나다의 여도서관장 1993년 37.5x45.2? ?그라나다의 창고지기 하는 女人 1993년 37.5x45.2? ??러시아 서커스단 1995년 31.4x40.5? ?마이애미로 가는 길 1989년 41x32? ?막은 내리고 1989년 41x31.5? ??미모사 향기 1977년 33.4x21.2?  발리섬의 소녀 1986년 40.9x31.8?  볼티모어에서 온 여인 1993년 41x32?  그녀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적인 인물 길례 언니는 소록도 나병원 간호부로 있던,깊은 인상을 받았던 선배 언니. 길례 언니 1973년 41x26 ?  소녀와 바나나 1993년 40.8x315? ??윤사월(閏四月) 1987년 25.8x17?  자마이카의 고약한 여인 1989년 32x41? ??재즈 1987년 24x33?  캬바레(뉴욕)1990년 24x27.5? ??탱고가 흐르는 黃昏(황혼) 1978년 48x43?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1987년 31.5x41??천경자 화백의 작품 세계의 핵심인 꽃과 여인은 천경자 화백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표현이자 관념이며 상징이다.

그녀는 단순히 이를 통해 아름다움만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소재속에 자신의 모습을 동일화 시키고 상징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는데, 삶과 죽음의 경계?,자연,내면적 갈등 등 굴곡 많았던 그녀의 인생을 반영 하지 않았을까 한다.

??? 그녀는 왜 절필하며 한국 미술계를 등지고, 한국을 떠나저 멀리 뉴욕에서 타계 하였나?? 1991년 미인도 위작 사건?1991년 미인도(위사진) 소유권이 김재규에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위작 논란이 가속 되자,천경자 화백이 직접 미인도를 감정" 이 작품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절대 없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화랑협회에 감정을 의뢰1차 감정결과 - 적어도 가짜는 아니다.

2차 감정결과 ?- 진품이다.

엑스레이,적외선?,자외선 촬영등 과학적 방법 총동원 진품확정"앞으로 위작임을 확증할 수 있는 증거가 밝혀지면 받아들이겠다"-국립현대미술관이에 천경자 화백은 감정 결과에 불복,위작이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천경자 화백은 상당한 정신적 피해를 받음"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가짜를 진품으로 오도하는 화단풍토에선 창작 행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천경자 화백은 이말을 남기며 절필 선언과 함께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직 사퇴각종 지원 수당 중지?미국으로 건너간 천경자 화백은 1998년 잠시 귀국,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그 이후로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1999년 고서화 위조범 권춘식씨가 자신이 미인도를 위조 했다고 증언" 화랑을 하는 친구의 요청에 따라 소액을 받고 만들었다"국립현대미술관은 다시 후속 조치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한국과학기술원에 감정의뢰한국화랑협회에서는 다시 진품이라고 판정,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위조범과 현대미술관중 어느쪽을 믿느냐?"?"자신의 그림도 몰라보는 정신 나간 작가"?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거동이 불편,뉴욕 맨하탄 큰딸 집에 머무름?딸 이씨 "2013년 서울시에 기증했던 작품이 관리 소홀로 훼손,93점을 반환해 달라" 요구 두달전,2015년 8월6일 타계????"고독이 삶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는 말이 와닿습니다.

분명 그런 면이 있어요.고독한 사람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 마련 입니다.

역으로,자신의 삶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스스로 고독을 자청 할 수도 있는 거겠지요"? 천경자 화백(1924년-2015년 8월6일) 전남고흥 태생?/한국을 대표하는 꽃과 영혼의 화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인간은 죽을지는 모르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하늘소블로그 花香千里行 人德萬年薰 ? "국가기관과 특정 이익단체가 조직적으로 나서, 일평생 외골수로 작업한 화가의 작가 정신을 말살하는 사건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 -천경자 화백 딸   ?우리 사회는 지금도 그녀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 궁금했었다 살아 계신 건지.얼마 전 돌아가셨다는 뉴스가 있었고 2월 14일 sbs 스페셜에서 미인도 스캔들이라는 제목의다큐를 방송했고 또한 관심 있게 지켜봤던 일인이다.

마음이 너무 답답하다.

1991년도 미인도의 위작 논란이 있었다.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위작 논란이 일자현대미술관측은 한국화랑협회에 진품 감정 의뢰를 한다.

감정위원 전원 진품이라고 감정했다.

천경자 화백은 본인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작가가 아니라는데 진품이라니배경-김재규 전 중앙 정보부장 개인 소장품에서 현대미술관으로 작품 유입 당시 진품 감정 안 함-1990년 문화부 주관 현대미술관 시행 움직이는 미술관에 작품전시함전시내용을 작가와 상의하지 않음-이후 현대미술관이 미인도 복제본을 작가와 저작권 상의 없이 유통이렇게 때문에 위작 논란이 일었지만위작이면 입장 곤란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한국화랑협회의 입장천경자 화백의 기존 작품 인쇄물과 미인도를 비교원작 감정을 하지 않고 진품이 맞다고 주장함.70년대의 작가의 두꺼운 채색화풍과 미인도의 화풍이 다른데도작가의 시대별 화풍 변화는 감정 기준이 되지도 않음.개인적으로 저 전 화랑협회장 자료화면 나갈 때마다참 부끄럽겠다 싶다.

현대미술관의 입장위작자 등장권춘식은 민화 화가 송규태 화백의 수하에 있었다.

미술교육을 받은 적은 없고 국립박물관의 미술작품 복원작업을 주로 했고천경자 화백의 채색화 기법 아교 분채를 사용하는 법과 위작을 만드는 것을 이때 다 습득했다고 한다.

미인도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 짜깁기 본이다.

권춘식은 방송에서 본인이 그린 미인도를 다시 카피하는 작업을 보여주기도 했다.

미인도 외에 천경자 화백의 다른 작품을 여러 점 위작했다는 증거가 많이 있다.

미인도는천경자 화백의 작품이 아니다.

작가 본인이 말했다.

미인도가 현대미술관에 흘러가게 된 배경이 나왔다.

위작자가 자발적으로 나왔다.

현대미술관이 작가에게 원작 확인을 하지 않았고저작권 협의 없이 유통한 실수가 확인됐다.

무엇보다 작가 본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현대미술관은 미인도의 공개 및 재감정을 거부했다.

이 외에 방송 내용에는천경자 화백의 선집에 수록된 미인도가 진품의 증거로 나오기도 했다.

출판 편집자 인터뷰로는 그 작품은 천 화백에게 받은 게 아니라현대미술관에서 찍어온 것이며작품 이름을 누가 지어서 수록됐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천경자 미인도] 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카이스트에서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들과 미인도의 작품 에너지를 분석하여진품과 가품의 에너지가 다름을 확연히 보여주는 결과를 보여줬다.

 작가가  내 작품 아니라는데화랑협회가 뭐라고 생존 작가의 작품을 감정하고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류 화가가 붓을 놓게 되었다.

천경자 화백의 무수히 멋진 작품이 많으나어이없게 미인도가 가장 유명하다.

뭐가 정말 사실인지는 모르나미인도가 천경자 화백의 작품이 아니라는증거는 상당히 많은듯하다.

정치적 입장이 예술가의 입장보다 우선시되고거기에 맞춰 널을 뛰는예술계의 입장이 참 안타깝다.

다른 무엇보다천경자화백의 희생이 너무 안타깝다.

생사가 늘 궁금했었다.

돌아가셔서 너무 애석하다.

아마도 미인도에 대한 진품 가품 논란은가시지 않겠지만나는 작가와 유족의 주장과여러가지 정황증거로 미인도는천경자화백의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술쪽 권위자들이 천경자화백 작품이 맞다고 우겨천경자화백은 충격을 받고 자신이 낳은 자식을몰라보는 엄마가 어디있냐면서 한국에서활동을 하지 않겠다며 딸이 사는 미국으로 가서살았었고 현재는 돌아가신 상태라고하네요오늘 sbs스페셜에서 방송을 한다고 하니꼭 챙겨봐야겠어요!동영상SBS [스페셜] - 7일(일) 예고SBS 스페셜 소문과 거짓말-미인도 스캔들 일요일 밤 11시 10분www.youtube.com  (왼쪽은 논란이 되는 <미인도>, 오른쪽은 천경자 화백)천경자 화백의 그림은 학부에서 공부할 때 목적 없이 시립미술관에 갔다가 처음 접했다.

 천경자 화백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무심결에 돌아본 전시였지만, 당시 박노수 화백을 너무 좋아하고 있을 때라 또 다른 동양적인 분위기의 그림을 한참 보다 나왔던 기억이 있다.

 천경자 화백 그림 가운데 '미인도'는 1991년 위작 논란이 불거졌다.

 (왼쪽에서부터 <장미와 처녀, 1981>,<고(孤, 1974)>,<바리의 처녀, 1974>)단지 그림이 진짜다 가짜라고 판별하는 것이 단순한 결정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이 감정 후 진품이라 주장했고 천경자 화백은 자신은 이런 그림을 그린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국현은 이에 대해 화백이 그림을 기억 못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번 sbs 스페셜에는 이를 반박할 만한 근거들이 보였다.

그래서 작품이 진짜고 가짜고 그게 뭐가 중요하냐. 원래 그림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니냐 싶은 사람들도 있겠다.

 그러나 이제 와서 국립현대미술관이 "다시 보니까 가짜네, 죄송합니다 잘못 봤네요."라는 대처로 단순하게 끝낼 일이 아니다.

 한 국가의 미술을 연구하고 수집하는 가장 권위 있는 미술관이 단순한 실수로 작품을 잘못 판단하여 전시에 내놓았고 그 작품의 인쇄판을 수 백장 팔았다는 게 이 얼마나 망신스럽고 황당한 일인가.. 미국의 MoMA나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작품 감정을 잘못해서 위작을 진품처럼 전시해놓고 팔았다고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1991년에 태어난 나는 당시 사건이나 논란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관련 기사나 미디어를 통해 접했고 이번 새로운 근거들도 방송을 통해 어느 정도 설득당한 면도 있다.

 이 포스팅을 통해서 이게 진짜 위작이다 아니다를 이야기하고 싶다기보다는 미술 작품을 더 신중하고 철저하게 감정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관심과 노력이 기울어졌으면 좋겠다.

 예술은 과학이나 기술이 할 수 없는 가장 인간적인 분야이다.

그런 예술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지나치는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http://www.gomtv.com/view.gom?contentsid=14118022&auto=1SBS 스페셜 423회 - 소문과 거짓말. 미인도 스캔들소문과 거짓말 - 미인도 스캔들 1991년 4월, 대한민국 미술계가 당대 최고의 여류 화가 천경자와 국립현대미술관의 날 선 대립으로 발칵 뒤집혔다! 사건의 주인공은 미인도라는 한 점의 그림! 국립현대미술관은 결국 미인도를 진품으로 결론 내렸으나, 생전 천 화백은 2003년 병환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25년, 천 화백의 죽음으로 다시금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미인도 위작 사건! SBS 스페셜이 25년 만에 입을 연 관계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거짓과 소문 속에 감춰진 미인도의 진실을 추적한다.

#www.gomtv.com 즐거운 크리스마스 잘 보내고 계시지요?오늘 여유가 좀 생겨서 웹 서핑을 하다가 흥미로운 것이 있어서 포스팅을 해 볼까합니다.

    아마도 한국 미술계 희대의 위작사건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천경자 화백의 그림으로 알려졌던 '미인도'의 진위 여부를 놓고 벌어졌던 사건입니다.

짧게 본론부터 말하자면 작가 본인이 그린 적 없다고 했는데도 미술계의 권위를 내세워 강제로 진품으로 몰아 붙여 작가가 절필하게 만든 사건입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다른곳에서 퍼 왔어요.  ============================================================================================== 천경자 <미인도>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움직이는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원작을 복제해 판매하던 중 작가가 원작을 보고 내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천경자의 위작 주장에 대해 국립현대미술관은 진위를 가리기 위해 과학적인 방법인 X-ray, 적외선, 자외선 촬영 등을 동원하였다.

그 결과 한국화랑협회 미술품 감정위원회는 1991년 4월 11일 진품이라고 판정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앞으로 위작임을 확증할 수 있는 증거가 밝혀지면 받아들이겠다"는 단서를 붙인 끝에 진품임을 주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상당한 정신적 피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작가는 사건 직후 예술원 회원직을 사퇴하고 전시회 출품 등 작품공개 활동을 중지하겠다고 선언하고 미국으로 갔다.

이후 대규모 회고전을 가진 적은 있으나 신작은 보기가 어려워졌으며, 1998년 말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 93점과 화구 등을 기증하였다.

<미인도>에 대한 논란은 1999년 고서화 위조범 권춘식씨가 자신이 미인도를 위조했다는 증언을 함으로써 논란이 재개되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은 작품입수 시점과 위조했다고 진술한 시점이 불일치하고, 위조자가 수묵화 위조 전문이어서 천경자 화백의 채색화를 위조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기존 입장을 고수하였다.

검찰에서는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더 이상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당사자들의 언급위작사건은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 중이던 미인도를 아트포스터로 제작해 판매하면서 시작되었다.

천화백의 후배 시인이 천화백 댁을 방문했을 때 대화 중에 "선생님 그림 잘 보고 있다"고 말씀드렸다고 한다.

후배 시인은 현대그룹 사옥 부근에 살면서 현대그룹 사옥 지하 사우나탕에 자주 들리는데 그 안에 천선생님의 미인도가 하나 걸려있다고 했다.

그 미인도는 오리지날 작품이 아니고 보기 좋은 그림, 유명작가의 그림을 선택하여 미술문화 대중화 차원에서 한 장당 만원씩 받고 팔고 있었다.

그 중에 인기작가인 천경자 선생님의 그림(프린트)이 잘 팔려 나갔고 현대사옥의 헬스클럽도 예외는 아니었다.

싸고 좋은 천선생님의 미인도 프린트를 사다 장식용으로 걸어 놓았던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그 말을 전해 들으신 예민하고 자존심 강한 선생님께서 그냥 넘어가실 분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없다고 한다.

이튿날 아침 일찍 헬스클럽에 찾아가 확인하신 뒤에 그 그림의 미인도는 진짜가 아니라고 현대미술관 측에 통보했다고 한다.

 당시 천경자 화백은 분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내 작품은 내 혼이 담겨 있는 핏줄이나 다름 없습니다.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

나는 절대 머릿결을 새카맣게 개칠하듯 그리지 않아요.머리위의 꽃이나 어깨 위의 나비 모양도 내 것과는 달라요.작품 사인과 연도 표시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난 작품 년도를 한자로 적는데, 이 그림에는 아라비아 숫자로 적혀 있어요.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 보는 일은 없습니다.

   작가 자신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말했으니 위작을 발견한 단순한 사건으로 결론이 날 것으로 생각 되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이 이 작품은 진품이라고 맞서며 한국 미술계 최대의 위작사건이 벌어지게 된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소장품이었다가 국가에 환수되어 재무부 문공부를 거쳐 미술관으로 넘어온 소장 경위가 확실하다는 근거와, 전문위원이었던 미술평론가 오광수씨가 이미 진품으로 감정했다는 이유를 들어 진품으로 주장했다.

화랑협회 감정위원회는 1차 감정 실시후 적어도 가짜는 아니다란 결론을 냈고, 2차 감정에서도 진품이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생존 작가이고 정신 상태가 정상이라면 작가 의견에 감정의 우선 순위를 둔다는 화랑협의회 내부의 규정에도 어긋난 결론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재판까지 가게 되었지만 법원에서는 판단 불가를 판정했다.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천경자 화백은 사건 직후인 1991년 4월 7일 아래와 같이 절필을 선언하는 말을 남겼다.

 붓을 들기 두렵습니다.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채 가짜를 진짜로 우기는 풍토에서는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예술원에 회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화백은 자신의 작품 90여 점을 서울 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는 딸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천경자 화백의 둘째딸 김정희씨는 이에 대해 감정위원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8년 후인 1999년, 고서화 위작 및 사기판매사건으로 구속된 위조범 권춘식씨가 붙잡혔다.

이 위조범은 검찰 수사과정에서 "화랑을 하는 친구의 요청에 따라 소액을 받고 달력 그림 몇 개를 섞어서 '미인도'를 만들었다"고 말하면서 위작사건은 재연됐다.

 이에 대해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당시 "'미인도'는 진짜이며 현대미술관이 현재 소장하고 있다"면서 "한국화 위조범과 현대 미술관 중 어느 쪽을 믿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그 미술관이 진품이라면 직접 그렸어야 할 사람의 말은 믿지 않는다는 것은 뭔지..본인이 안 그렸다는데 진품이라고 한것은 어떻게 설명할려고 하는지.. 국립현대미술관은 후속 조치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에 작품 감정을 의뢰했고 한국화랑협회에서는 다시 진품이라는 감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재수사는 없었으며 수많은 의혹을 간직한 채 이 그림은 여전히 진품으로 소장되고 있다네요.2014년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공식사이트에서 소장품 검색을 해 보면 이 작품은 검색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참고로 2010년 즈음에 공식사이트 개편 이전까지는 검색이 되었다고 합니다.

 ================================================================================================  진실은 저너머에이렇게 된건 기본적으로 작품 감정 시스템이 부실했기 때문일듯 합니다.

90년대까지도 한국에는 이렇다할 감정시스템이 없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의 식견과 기억에 의존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죠. 게다가 작품 감정은 과학시료분석 같은 것으로도 한계가 있다고 하네요.분석기계는 그 작품이 어떤 물질로 이루어졌는지를 말해줄 뿐, 누가 그 그림을 그렸는지를 말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위조범이 작가가 사용했던 재료를 그대로 사용해 위작을 만든다면 과학분석은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건 미술작품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그 자료를 가지고 감정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 작가의 화풍이나 제작습관 등을 면밀히 아는 감정전문가나 연구자들도 많아져야 겠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전쟁을 거친데다, 산업성장에 치중해 문화 연구 지원이 미비한 한국에서 이런 자료 구축이 제대로 되었을리가 없겠죠. 게다가 화랑이나 콜렉터들은 작품 가격에만 관심이 있지, 이런 감정에는 무관심합니다.

기껏 산 작품이 위작이라고 평가받으면 기분 좋겠는가? 도리어 위작인걸 감추려고 애쓰는게 현실이겠죠. 이런 문제는 그나마 나아졌지만 21세기가 와서도 현재진행형입니다.

   황당한건 천경자 미인도 위작사건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라는 것입니다.

일단 정황상 놓고 봤을 때는 위작일 가능성이 높은 듯 합니다.

하지만 천경자 화백이 자기 작품이 마음대로 상품화돼서 팔리는 것에 기분 상해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을 철회'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죠. 자존심이 강했던 천경자 화백의 성격상 국립현대미술관 측을 상종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대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죠. 천경자 화백처럼 석채화를 구사하는 화가가 적었다는 주장도 있어 권춘식의 자백이 의심 스럽다는 말도 있네요, 즉 위 내용을 토대로 가설을 세워보면1) 권춘식이 위조한걸 김재규가 입수하고 그것이 국가 환수된후 다시 국립현대미술관 순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입니다.

2) 김재규가 위조하고 그 작품이 국가 환수되어 국립현대미술관 순으로 넘어갔을 가능성도 있죠.3) 국립현대미술관과 화랑협회 감정위원회 측에서 작정하고 위조했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근데 이게 사실이면 완전 막장 이죠.4) 권춘식, 김재규, 국립현대미술관, 화랑협회 외의 다른 인물( 제 3의 인물)이 위조하고 개입했을 가능성입니다.

5) 천경자 화백이 직접 그린 것이지만 작품을 위작이라고 선언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측을 '역 관광 보낼려는 가능성입니다.

이것도 사실이면 완전 반전이죠.ㅋㅋ 하지만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면서 진실밝히기도 뭐하고, 말 그대로 진실은 저너머로 가 버렸네요. 설령 5번일 가능성이 있다 해도, 현대미술에서 작품의 가치는 엄연히 작가가 정하는 것이다라는 이 말이 무색하죠. " 대중에겐 예술계의 높으신 분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려고 원작자를 바보로 몰아갔다" 이것도 참.... 거시기 하네요. 결과만 보면 국립현대미술관과 화랑협회 감정위원회가 이러한 비리 의혹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듯합니다.

국내 미술시장에 위작이 범람할 개연성을 만들어 줬다는 문제도 있지만, 사실 한국 미술시장에서도 비싸게 팔리는 작품들은 위작이 많았잖아요. ^^;  아래는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유튜브 영상과 간단한 약력 소개입니다.

 채색화가 천경자   ? 출생 : 1924년 11월 11일 (전라남도 고흥) ? 학력 : 전남여자고등학교 일본여자미술전문학교파리 아카데미 고쓰에? 수상 : 1983년 은관 문화훈장  60, 70년대 한국 화단을 이끈 대표적인 화가이다.

 천경자 화백의 그림 속에는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 속에 깃들인 알 수 없는 슬픔과 어둠의 그늘이 숨어있다     미스테리 사건파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라면 어떤 결론을 내려줄지 궁금해 지네요. ㅋㅋ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제가 너무 부정적인가요?  ^^남은 시간도 해피하게 보내세요



   지난 10년 동안 근황은 물론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돌아가신지 두 달이나 지나서 별세 소식이 알려졌다는 사실도 그렇고 미인도 위작 논란에 절필 선언까지 모든 게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래도 주무시듯 평안하게 눈을 감으셨다고 하니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요ㅠ  ???   ?천경자 화백은 미인도 위작 논란으로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화가입니다.

 미인도 위작 사건은 화가 스스로가 자신이 그린 작품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미술관과 정부기관에서 진품이 맞다고 주장한, 말하는 저도 참 어이가 없는 사건입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났으면 이 사건으로 천경자 화백은 절필을 선언했고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절대 없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떠나고 말았지요. ??사건의 발단은 1979년 10·26 사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재산을 압류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미술품이 발견되었는데, 그중 어깨에 나비가 앉은 여성  바로 문제의 미인도가 있었습니다.

작품은 국가로 환수됐고 절차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관됐습니다.

그리고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1991년 국립 미술관이 미인도를 공개 전시했는데, 작품을 본 천 화백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이에 미술관은 진위 감정을 의뢰했고 감정단은 3차에 걸린 감정 끝에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천경자 화백은 끝까지 자신이 그린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이 사건은 법정까지 가기에 이릅니다.

당시 법원은 '판단 불가 '판정을 내렸습니다.

화가가 아니라고 하는데 주위에서 진품을 확정 지어 버리는, 어때요? 희대의 사건 아닌가요? ㅎㅎ ?????논란이 된 미인도 ?????분노한 천 화백은 결국 절필을 선언했고 자신의 그림이 흩어지지 않고 시민들에게 영원히 남겨지질 바란다는 말과 함께 작품 98점을 서울 시립미술관에 기증한 후 한국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직까지 사퇴하면서 말이지요. 이 과정에서 그녀는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거 아니냐,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등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더 재밌는 것은 그로부터 8년 후인 1999년 고서화 위작 및 사기판매사건으로 구속된 위조범 권모씨가 자신이 논란의 미인도를 위작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에 국립 미술관은 국립 과학 연구소, 한국 과학기술원에 작품 감정을 의뢰했고 또다시 진품 결론이 나옵니다.

 화가는 내가 안 그렸다고 주장하고 위작범이 내가 그렸다고 주장하는 와중에 정부 기관에서만 진품이라고 우기는 희한하고 어이없는 사건. 하지만 이에 대한 재수사는 없었으며 수많은 의혹을 간직한 채 이 그림은 여전히 진품으로 소장되고 있습니다.

그 후 천 화백에 대한 소식은 끊겼고 올 8월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 개인적으로 이 사건은 국내 미술 시장에 위작이 범람할 가능성을 열어준 아주 위험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계의 높으신 분들의 주장이라면, 비록 원작가가 반대 의견을 낸다고 해도 위작도 진품이 되고 진품도 위작이 될 수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죠. 모르긴해도 우리나라 미술관들 소장품에 위작으로 추정되는  작품들이 꽤 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런 작품들은 대개 공개를 잘 안하고 수장고에 처박아 두지요. 미술관 측은 미인도 역시 공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 ??? ? 강렬한 채색화로 꽃과 여성을 그리며 한국 화단에 큰 자취를 남긴 천경자 화백. 별세 소식을 듣고 난 후 가장 먼저 그녀의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몽환적이로 애틋한 눈빛의 여인이 떠올랐습니다.

작품 속 여인은 바로 화가의 자화상이었지요. 서울시립미술관에 갈 때마다 그녀의 작품을 일부러 찾아 보고 왔었는데.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사망 기사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도 전에 작품 금액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천박함은 잔인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 종이에 채색 / 43.5x36cm / 1977 /  ??천 화백은 당대를 풍미했던 여류 화가였지만 개인사는 부침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혼도 했고 이래저래 맘 고생을 많이 했지요. 그래서 혹자는 그녀의 삶을 멕시코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프리다 칼로처럼 그녀도 정신적 고통을 작품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리고 한국 여성 특유의 정(情)과 한(恨)의 정서를 작품에 꾹꾹 담았습니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화려한 꽃은 '꿈'이고 뱀과 여성은 자신의 운명적 현실에서 오는 짙은 고독을 담고 있습니다.

특유의 진한 색채와 강렬한 필력은 마음을 울리기 충분했지요. 그래서인지 천 화백의 작품은 유독 여성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평생을 고독과 한을 가슴에 품고 사랑을 갈망했던 여인, 저세상에서는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편안히 지내시길 바래봅니다.

?? ??여인의 시Ⅱ / 종이에 채색 / 60x44.5cm / 1985 /  ?생태 / 종이에 채색 / 51.5x87cm / 1951 /  ? ?황혼의 통곡 / 종이에 채색 / 96x129cm / 1995 / ?  ?자마이카의 여인 곡예사 / 종이에 채색 / 40x31.5cm / 1989 / ???????미술관측은 위조범 권춘식 보고 넌 수묵화 전문인데 뭔 소리냐고 반발......??※ 작가가 자기 그림이 헬스장에 걸린걸 보고 자존심이 상해 자기 작품인걸 부정했다는 설도 있음  난 처음에 위작논란이 있고 미술관측의 적극 반박도 있다고 해서 완전 초 미세한 복제품 수준이라 작가가 자기 그림을 순간 착각한건 아닌가 했다.

?그런데 그림을 보니....착각할래야 착각 할수가 없다.

?여자와 꽃이 그려졌다뿐 내가 보기에도 완전 다른 그림인데.저렇게 다른 그림을? 어떻게 작가 본인이 착각하지? 작가가 거짓말 하지 않는 이상.??미술품 위작의 역사는 너무 길어서 외국에도 저런 사례가 종종 있는듯남의 유명한 그림을 복사하다시피 그려서 걸어놓고 중간에 거액의 그림값은 누가 삥땅하고......??세계의 유명한 미술품 짝퉁사건들(미술평론가들이 다 진품이라고 판정내렸던 그림들)영국-영국의 한 부동산기업가가 샤갈작품을 몇억 주고 샀다가 위작으로 판명되어 불 태우라는 명령을 받음네덜란드- 네덜란드의 한 중개상이 베르메르 그림 몇점을 나치(괴링)에 넘겼다가 체포 위기에 처하자 전부 자기가 그렸다고 해명미국-?미술상 로살레스가 15년간 위작 63점을 제작해 팔아서 수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림(15년간 전문가들 그 누구도 몰랐다고)영국런던 미술관 - 보티첼리의 위작을 커덜트 미술관내 전시했던걸로 드러남?미국 크리스틴유뱅스,설리번사건-인터넷경매업체를 운영하며 유명화가들의 위작들을 2천만달러에 판매러시아-국제범죄조직이 칸딘스키 등 유명 현대미술가들의 위작 4백점을 수백만유로에 판매하다 체포?※ 네덜란드의 중개상은 법정에서 직접 베르메르의 그림을 똑같이 그려내서 진짜 짝퉁을 팔았음을 증명해냈다.

? ??위작 사건들 찾아보니 엄청 많네.전문가들,미술관도 위작 못 알아보고 당한 사례들도 많고.....????????????10                                  <미인도> 진위 논쟁의 시발점은 25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은 ‘움직이는 미술관’ 전시를 기획했다.

이때 10여 년간 미술관 수장고에 있던 <미인도>가 서울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 전시됐다.

<미인도>가 처음 대중에 공개된 것이다.

당시 언론 기사에 따르면 <미인도>는 1979년 천 화백이 오모씨에게 줬고, 오씨가 다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준 걸 정부가 압류해 문화공보부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관됐다.

천 화백은 당시 어떤 그림인가를 오씨에게 준 건 맞지만 <미인도>는 아니라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인도>가 맞다”고 했다.

91년 전시된 미인도는 포스터로도 제작돼 일반인에게 판매됐다.

총 900장을 인쇄해 일부는 홍보용으로 사용하고 일부는 5만원에 판매했다.

이때 일이 터졌다.

한 사우나에서 액자에 걸린 미인도 포스터를 본 천 화백의 지인이 천 화백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천 화백은 인쇄물을 보고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미술관에 전했다.

“내 작품은 내 혼이 담겨 있는 핏줄이나 다름없습니다.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에 화랑협회 감정위원회에 감정을 의뢰했다.

결론은 ‘진품’이라는 거였다.

화풍과 천 화백 작품을 주로 표구한 동산방화랑의 표구가 장부에 기록돼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천 화백은 그해 4월 절필을 선언하며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붓을 들기 두렵습니다.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를 진짜로 우기는 풍토에서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

”천 화백은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정신 나간 작가’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정신적 고초를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천 화백은 98년 자신의 주요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큰딸 이혜선 씨가 살고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천 화백은 2003년 병환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미인도’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91년 사건 이후 <미인도>는 다시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보관됐고 위작 논란도 잊혀지는 듯했다.

잠복했던 논란은 99년 서화 위조범 권춘식(69) 씨를 검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다시 떠올랐다.

권씨가 “<미인도>는 내가 그렸다”고 주장한 것이다.

미술계에서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소장품이었다가 국가에 환수된 <미인도>를 국립현대미술관이 인수한 건 80년 5월인데 권씨가 그렸다고 주장한 시점이 84년이어서 권씨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고 보았다.

검찰은 공소 시효가 지난 사건이라며 수사를 접었다.

천 화백 사망과 함께 다시 살아난 논란이렇게 또 16년이 흐른 지난해 10월, 천 화백이 두 달 전 타계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시 <미인도> 위작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천 화백의 삶을 조명하면서 언론에서 이 작품 위작 논란까지 끄집어냈다.

  [출처: ] [심층취재] 법정으로 간 천경자 <미인도> 위작논쟁 【SBS 스페셜】 : ‘천경자 미인도 스캔들’ - 소문과  거짓말  1991년 4월, 대한민국 미술계가 당대 최고의 여류 화가 천경자와 국립현대미술관의 날 선 대립으로 발칵 뒤집혔다!  사건의 주인공은 <미인도>라는 한 점의 그림!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인도>를 진품으로 결론 내렸으나, 생전 천 화백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고 2015년  10월 하순 천경자(1924

2015) 화백이 두 달 전인 8월 6일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사건 발생 후 25년, 천 화백의 죽음으로 다시금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미인도> 위작 사건! SBS 스페셜이 25년 만에 입을 연 관계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거짓과 소문 속에 감춰진 <미인도>의 진실을 추적한다.

▣ 1991년 <미인도>감정단은 만장일치로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알려져 왔는데   당시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의견을 냈다는 화랑대표(공창호씨)가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장하는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거짓 근거와 이에 대한 반박 증언들첫번째  거짓 근거는 천경자화백의 화집(금성출판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 천경자화백의 사망소식과 함께 <미인도>에 대한 의혹들이 수면으로 떠오르자 국회에서도 재감정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국립현대미술관은 최근 한 국회의원실에 보낸 답변서에 <미인도>를 진품으로보는 근거들이 적혀 있는데 그중 하나가 1990년 발행된 천경자화백의 화집(금성출판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위장논란이 터지기 1년전에 발행된 이 책에 <나비와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미인도>가 실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책이 나올때 이미 화가가 <미인도>를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한것이 아니겠냐는 주장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최근 이석현 국회의원실에 보낸 답변서에 쓰여있는 <미인도>를 진품으로보는 근거☞유족측 반박내용유족들은 <미인도>가 실린 선집이 발간될때 천화백이  <미인도>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주장은 당연히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합니다.

"책에 대해서는 저희도 존재를 알고 있었어요 그때.  그런데 그것이 제일뒤에 흑백으로 조그맣게 실렸기 때문에  아무도 그(미인도 사진의)존재를 몰랐어요. 거기 그런 사진이 실려있다는  자체를"다른 작품과는 달리 제일 뒤쪽 그것도 서편끝에 삽입된 작은 흑백사진이라 보지못했다는 겁니다.

이 책의 편집자도 <미인도>를 (천화백이)보여주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책에 <나비와 여인>이라는 제목을 붙인건 누구입니까?두번째 거짓 근거는 <미인도>"액자" 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출신 한 미술평론가는 이 내용을 기사로도 썼습니다.

 천화백 작품을 도맡아 표구하던 D화랑에 <미인도>에 대한 장부가 있고  <미인도>액자속에서 천경자의 고유번호(표구번호)까지 확인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유족측이 반박자료로 처음 공개한 영상에는..   미인도를 표구했다는 D화랑대표는 "천경자화백의 고유번호 같은 것은 없다"고 잘라말합니다.

  세번째 : 그런데 당시 현대미술관이 위작이 아니라며 강조한 거짓 증언이 하나 있었습니다.

  미인도는 분명 스승님의 작품이라고 증언한 제자가 있었다는 겁니다.

이경성 1991년 당시 현대미술관관장# 천 화백의 제자 25년 만에 입을 열다!천 화백의 제자인 A 씨가 자신이 미인도를 진품으로 감정했다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주장에 대해 25년 만에 직접 입을 열었다.

그동안 알려진 것과 완전히 다른 증언을 한 A 씨. 그녀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들은 말로 인해 지금껏 자신도 미인도가 진품이었다고 알고 있었다고 한다.

과연 A 씨는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에게 어떤 말을 들은 것일까?  그녀는 25년만의 증언에서..그러자 가만히 듣고있던 관장..▣국립현대미술관의 또 하나의 조작그러나 진실은...1991년4월2일 천경자화백의 집을 방문해 만나주지 않는 천화백에게  편지로 스스로 위작이라고 밝힌 당시 미술관 학예관B씨# 미리 맞춰진 퍼즐(?)천경자 화백의 지인이자 당시 언론사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그 무렵 의미심장한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미인도를) 진짜로 만들지 못하면 7명의 목을 치겠다고 했어요”<미인도>의 감정은 처음부터 답이 정해져 있는 퍼즐이었던 것일까. 사건발생의 시작은....위작자 권춘식의 등장달력과 화집에 실린 천경자화백의  작품 서너점을 재조합해 2

3일만에 <미인도>를 완성했다고故 천경자 화백 장녀, 천 화백 작품·개인소장품 4천여점 기증 [울산매일 20151214][단독] “천경자, 위작 주장 번복” 허위 보고한 국립현대미술관 [ 2016.3.29]"미인도 위작 맞다, 화랑협 임원 회유로 거짓 진술"- 위작범 권춘식 [중앙 2016.4.28][단독] 천경자 “미인도 눈에 힘 없고 코도 벙벙” [ 20160526] < 2016.07.22>?해외 화가 중에서는 고갱과 피카소 작가는 헤밍웨이, 국내 화가분들 중에서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을 유난히 좋아했는데 아쉬습니다.

그녀를 간호해온 맏딸의 말로는 '지난 8월6일 새벽 5시쯤,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 가셨다'고 합니다.

뒤늦게 나마,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국내 미술계에 많은 원망을 가지고 돌아가셨지 않을까 염려도 됩니다.

?꽃과 여인,뱀의 화가,보헤미안 화가,한을 표현한 세계적인 화가...그녀의 작품 세계를 소개 합니다.

?? ?헤밍웨이의 집(키웨스트) 1983년 37.5x45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풍과 소재?  그라나다의 흑인 자매 1993년 37.5x45.2?  펜실바니아 아미쉬 마을 1995년 37.6x45.3? ??그라나다의 여도서관장 1993년 37.5x45.2? ?그라나다의 창고지기 하는 女人 1993년 37.5x45.2? ??러시아 서커스단 1995년 31.4x40.5? ?마이애미로 가는 길 1989년 41x32? ?막은 내리고 1989년 41x31.5? ??미모사 향기 1977년 33.4x21.2?  발리섬의 소녀 1986년 40.9x31.8?  볼티모어에서 온 여인 1993년 41x32?  그녀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적인 인물 길례 언니는 소록도 나병원 간호부로 있던,깊은 인상을 받았던 선배 언니. 길례 언니 1973년 41x26 ?  소녀와 바나나 1993년 40.8x315? ??윤사월(閏四月) 1987년 25.8x17?  자마이카의 고약한 여인 1989년 32x41? ??재즈 1987년 24x33?  캬바레(뉴욕)1990년 24x27.5? ??탱고가 흐르는 黃昏(황혼) 1978년 48x43?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1987년 31.5x41??천경자 화백의 작품 세계의 핵심인 꽃과 여인은 천경자 화백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표현이자 관념이며 상징이다.

그녀는 단순히 이를 통해 아름다움만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소재속에 자신의 모습을 동일화 시키고 상징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는데, 삶과 죽음의 경계?,자연,내면적 갈등 등 굴곡 많았던 그녀의 인생을 반영 하지 않았을까 한다.

??? 그녀는 왜 절필하며 한국 미술계를 등지고, 한국을 떠나저 멀리 뉴욕에서 타계 하였나?? 1991년 미인도 위작 사건?1991년 미인도(위사진) 소유권이 김재규에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위작 논란이 가속 되자,천경자 화백이 직접 미인도를 감정" 이 작품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절대 없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화랑협회에 감정을 의뢰1차 감정결과 - 적어도 가짜는 아니다.

2차 감정결과 ?- 진품이다.

엑스레이,적외선?,자외선 촬영등 과학적 방법 총동원 진품확정"앞으로 위작임을 확증할 수 있는 증거가 밝혀지면 받아들이겠다"-국립현대미술관이에 천경자 화백은 감정 결과에 불복,위작이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천경자 화백은 상당한 정신적 피해를 받음"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가짜를 진품으로 오도하는 화단풍토에선 창작 행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천경자 화백은 이말을 남기며 절필 선언과 함께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직 사퇴각종 지원 수당 중지?미국으로 건너간 천경자 화백은 1998년 잠시 귀국,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그 이후로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1999년 고서화 위조범 권춘식씨가 자신이 미인도를 위조 했다고 증언" 화랑을 하는 친구의 요청에 따라 소액을 받고 만들었다"국립현대미술관은 다시 후속 조치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한국과학기술원에 감정의뢰한국화랑협회에서는 다시 진품이라고 판정,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위조범과 현대미술관중 어느쪽을 믿느냐?"?"자신의 그림도 몰라보는 정신 나간 작가"?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거동이 불편,뉴욕 맨하탄 큰딸 집에 머무름?딸 이씨 "2013년 서울시에 기증했던 작품이 관리 소홀로 훼손,93점을 반환해 달라" 요구 두달전,2015년 8월6일 타계????"고독이 삶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는 말이 와닿습니다.

분명 그런 면이 있어요.고독한 사람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 마련 입니다.

역으로,자신의 삶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스스로 고독을 자청 할 수도 있는 거겠지요"? 천경자 화백(1924년-2015년 8월6일) 전남고흥 태생?/한국을 대표하는 꽃과 영혼의 화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인간은 죽을지는 모르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하늘소블로그 花香千里行 人德萬年薰 ? "국가기관과 특정 이익단체가 조직적으로 나서, 일평생 외골수로 작업한 화가의 작가 정신을 말살하는 사건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 -천경자 화백 딸   ?우리 사회는 지금도 그녀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 미술관측은 위조범 권춘식 보고 넌 수묵화 전문인데 뭔 소리냐고 반발......??※ 작가가 자기 그림이 헬스장에 걸린걸 보고 자존심이 상해 자기 작품인걸 부정했다는 설도 있음  난 처음에 위작논란이 있고 미술관측의 적극 반박도 있다고 해서 완전 초 미세한 복제품 수준이라 작가가 자기 그림을 순간 착각한건 아닌가 했다.

?그런데 그림을 보니....착각할래야 착각 할수가 없다.

?여자와 꽃이 그려졌다뿐 내가 보기에도 완전 다른 그림인데.저렇게 다른 그림을? 어떻게 작가 본인이 착각하지? 작가가 거짓말 하지 않는 이상.??미술품 위작의 역사는 너무 길어서 외국에도 저런 사례가 종종 있는듯남의 유명한 그림을 복사하다시피 그려서 걸어놓고 중간에 거액의 그림값은 누가 삥땅하고......??세계의 유명한 미술품 짝퉁사건들(미술평론가들이 다 진품이라고 판정내렸던 그림들)영국-영국의 한 부동산기업가가 샤갈작품을 몇억 주고 샀다가 위작으로 판명되어 불 태우라는 명령을 받음네덜란드- 네덜란드의 한 중개상이 베르메르 그림 몇점을 나치(괴링)에 넘겼다가 체포 위기에 처하자 전부 자기가 그렸다고 해명미국-?미술상 로살레스가 15년간 위작 63점을 제작해 팔아서 수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림(15년간 전문가들 그 누구도 몰랐다고)영국런던 미술관 - 보티첼리의 위작을 커덜트 미술관내 전시했던걸로 드러남?미국 크리스틴유뱅스,설리번사건-인터넷경매업체를 운영하며 유명화가들의 위작들을 2천만달러에 판매러시아-국제범죄조직이 칸딘스키 등 유명 현대미술가들의 위작 4백점을 수백만유로에 판매하다 체포?※ 네덜란드의 중개상은 법정에서 직접 베르메르의 그림을 똑같이 그려내서 진짜 짝퉁을 팔았음을 증명해냈다.

? ??위작 사건들 찾아보니 엄청 많네.전문가들,미술관도 위작 못 알아보고 당한 사례들도 많고.....????????????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