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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com/mister1315/레바님의 블로그그림 존나 잘그리시는분카카오레바의 모험의 그림을그려주는분임ㅋ    아비뇽 주차 하기 힘들단 글을 몇개 봐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교황청 뒷쪽 골목에는 넉넉하게 자리가 많았다.

 주차를 걱정할 정도는 아닌듯. 이정표를 따라서 교황청으로 고고싱



     아비뇽 교황청 가는 길. 무려 14세기에 지어진 교황청 그 시대에 이런 정도의 건출물을 22년만에 완공을 했으니 얼마나 많은 인력들이 동원되었을까 싶다.

 웅장한 돌길을 따라 걸어오면 도착하게되는 교황청 앞마당        금빛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띄는 아비뇽 노트르담 데 돔 성당    입장을 위해 줄서서 기다리는 중   기다리면서.... 용이 너무 귀여워 보이길래... 저런 용이면 애완으로 키우고 싶다 ㅋㅋㅋ      1334년부터 1352년에 걸쳐 지어진  아비뇽 교황청 궁전. 높은 담벼락과 뾰족뾰족한 첨탑들 때문에 현재의 바티칸 교황청보다 더 폐쇄적이고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교황청이다.

?? 건물 내부의 크고 작은 많은 홀들로 연결되는? 통로는 좁게 만들어져 있고 외부로 향하는 창도 많지 않아 ? 내부로 들어가면 더욱더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 줄을 따라 들어가면 보이는 매표소에서  티켓팅을 하고 공연장을 지나. 보이는 아비뇽 교황청 궁전의 자그마한 앞뜰.   ?앞뜰을 지나  본격적인 관람     Simone Martini 시에나 출생의 이탈리아 화가의 그는 1330년대 말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이전하며 함께 아비뇽으로 옮겨왔다.

 로마 근교의 아씨씨를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그의 이름을 보신적이 있으실듯. 바로 아씨씨의 산 프란체스코 교회의 부속 예배당인  산 마르티노 예배당의 거대한 프레스코 연작을 그린 화가이다.

      교황청의 전체 면적은  1만 5천 제곱미터에 달할 정도로 넓지만, 대부분의 교황청 내부는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이렇게 텅텅 비어있다.

?  그 이유인즉은 ?교황이 떠난 후 폐허로 방치되어 있는 동안 ?많은 조각품, 벽화 등 전성기 시절의 유물들?대부분 약탈되었고? 성상 대부분의  프랑스 혁명때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을 하긴 이르다.

???방별로 원래 이방의 용도라던가 역사를  잘 설명해놓았고....    전시물들도 그것들을?잘 이해할 수 있도록 비치되어있었다.

??다른 프랑스의 유적지들과는 달리?유물빨(?)없는 교황청 ㅋㅋ?하지만 그래서 더 본연의 교황청의?역사적 가치에 집중할 수 있게된다.

?나는 두번왔지만 만족 ㅋ?처음와본 남편도 와볼만하다는 의견.????평범해보이는 위의 사진속 방은Consistorium (Consistory room)? Consistorium은 본래 로마 황제궁의 재판소로서, 황제가 재판석에 앉고 배석자들은 그 옆에 서서(Consistentes) 있었던 데서 온 말이다.

?이것이 교회에 도입되어 교황을 둘러싼 추기경회를 가리키게 되었다.

?? 교회의 모든 문제를 판결하는 행정부로 주 3회 모임이 있었다.

???????1332년부터 1354년에 걸쳐서 건축된 아비뇽 교황청은?유럽에 창궐한 흑사병 때문에 ?1348년부터 4년 정도 공사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한달에 약 850명 정도의 인력이 동원되었고,?동원된 인력들이 사다리 같은 자그마한 장비부터?크레인같은 중장비까지 직접 가져왔다고 한다 ㄷㄷ???비치된 설명을 읽어보니 ?아비뇽 교황청 건설에는 철이 사용하여?건물의 내구성을 높혔다는데...?그러한 건축방식은 당시에는 보기 드문것이였다고 한다.

??? 아비뇽 유수(Avignonese Captivity)???교황이 68년 동안 이곳에 머물던 시기를 아비뇽 유수라고 부른다.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유대 왕국이 사라지고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붙여진 이름이다.

  13세기 초 교황권은 정점에 달했으나영토의 확장과 관료제의 확립을 통해 유럽의 왕권은  13세기 후반에는 교황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다.

?특히 유럽의 왕국 중 프랑스 국왕들은 교황과 밀접한 공생 관계를 유지했었다.

   프랑스 국왕의 입장에서는 교황의 지지를 받으면 왕의 신성한 권위를 높일 수 있었고, 교황의 입장에서는 서임권(Investiture Controversy)을 두고 독일 황제와 대립하고 있는 처지라 프랑스 국왕의 후원이 절실히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 남프랑스 아비뇽 교황청  여행 - 아비뇽 유수 ???하지만 당시 프랑스의 필립4세는 막강해진 왕권을 바탕으로?성직자들에게까지 세금을 부과하였고열받은 프랑스 교회는 로마교황에게 일러바침 ㅋㅋㅋ??완전 뚜껑열린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필립에게 따졌으나눈에 뵈는거 없던 필리프 4세는 삼부회까지 소집해?교황을 디스하며 성직자 과세를 고착화시키려고 했다(필리프 4세의 Show me the money)?교황님 분노하며 필립을 파문시키려고 했지만1303년 역관광당하심 ㅠㅠ바로 필립4세가 교황을 이단으로 재판에 회부하고기습적으로 병력을 파견, 교황을 납치한후로마 근교의 깡촌 아나니(Anagni)에서?재판에 회부하는 막장 시전...이것이 "아나니 사건"??이야기는 점점 더 막장을 향해 가는데....??????? 남프랑스 아비뇽 교황청  여행 - 아비뇽 유수 당시에 보기드문 80세로 무병장수를 누리던곱디고운 교황 보니파시오8세는?아나니 사건 과정에서 싸대기까지 맞고 감금까지 당했고.??그 충격으로 사망 ㅠㅠ?프랑스는 더 눈에 뵈는거 없이새로운 교황 선출에 압박을 가해 1305년드뎌 프랑스 출신의 클레멘스 5세가 교황에 선출되게 한다.

?이때부터 필립이는 교황을 자기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리고교황청까지 아비뇽으로 옮겨버리게 한다.

[교황] 근본적 원인은 ?


????? 그 후 7명의 아비뇽 교황은 모두 프랑스인이었고, 이 시기에 임명된 추기경도 134명 중 111명이 프랑스인이었다.

??교황이 아비뇽에서 머물던? 68년의 굴욕적인'아비뇽 유수 '????그 역사와 배경을 알고보면유럽의 동네 성당보다도 더 휑한 느낌의아비뇽 교황청이 이해가 될 거다 :) ??????근데 왜 하필 다른 곳도 아닌아비뇽으로 교황청을 옮긴걸까???당시 아비뇽은 신성로마제국령으로 교황의 꼬붕들이 소유하고 있던 영지였지만 (정확한 용어를 쓰자면 교황의 봉신封臣?들, 봉건제 사회에서 자신의 상위 주군에게 봉사하는 대가로 봉토를 받던 사람) ??론 강을 중심으로 프랑스와 경계를 이루고 있어 프랑스와의 관계에 있어 중요성이 큰 지역이였다.

이렇게 프랑스에게 놀아난 아비뇽은나중에 결국 프랑스에 합병되어 버리고만다.

?? ????조금은 마음이 무거워질때쯤?올라간  테라스에서 바라본 아비뇽(Avignon)   ???? ??????아비뇽 교황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요 뾰족뾰족 올록볼록 지붕???? 멀리 보이는 강은 ?아비뇽과 아를 등 프로방스를 흐르는  론강  ?? 교황들은 여기서?풍경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였을지....??전시관의 설명 하나하나 읽어가며?제대로 공부했더니 머리가 아파?한참동안 남편과 함께 테라스에서 ?아비뇽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 마지막은 기념품 가게ㅋㅋ        아비뇽 주차 하기 힘들단 글을 몇개 봐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교황청 뒷쪽 골목에는 넉넉하게 자리가 많았다.

 주차를 걱정할 정도는 아닌듯. 이정표를 따라서 교황청으로 고고싱



     아비뇽 교황청 가는 길. 무려 14세기에 지어진 교황청 그 시대에 이런 정도의 건출물을 22년만에 완공을 했으니 얼마나 많은 인력들이 동원되었을까 싶다.

 웅장한 돌길을 따라 걸어오면 도착하게되는 교황청 앞마당        금빛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띄는 아비뇽 노트르담 데 돔 성당    입장을 위해 줄서서 기다리는 중   기다리면서.... 용이 너무 귀여워 보이길래... 저런 용이면 애완으로 키우고 싶다 ㅋㅋㅋ      1334년부터 1352년에 걸쳐 지어진  아비뇽 교황청 궁전. 높은 담벼락과 뾰족뾰족한 첨탑들 때문에 현재의 바티칸 교황청보다 더 폐쇄적이고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교황청이다.

?? 건물 내부의 크고 작은 많은 홀들로 연결되는? 통로는 좁게 만들어져 있고 외부로 향하는 창도 많지 않아 ? 내부로 들어가면 더욱더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 줄을 따라 들어가면 보이는 매표소에서  티켓팅을 하고 공연장을 지나. 보이는 아비뇽 교황청 궁전의 자그마한 앞뜰.   ?앞뜰을 지나  본격적인 관람     Simone Martini 시에나 출생의 이탈리아 화가의 그는 1330년대 말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이전하며 함께 아비뇽으로 옮겨왔다.

 로마 근교의 아씨씨를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그의 이름을 보신적이 있으실듯. 바로 아씨씨의 산 프란체스코 교회의 부속 예배당인  산 마르티노 예배당의 거대한 프레스코 연작을 그린 화가이다.

[교황] 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교황청의 전체 면적은  1만 5천 제곱미터에 달할 정도로 넓지만, 대부분의 교황청 내부는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이렇게 텅텅 비어있다.

?  그 이유인즉은 ?교황이 떠난 후 폐허로 방치되어 있는 동안 ?많은 조각품, 벽화 등 전성기 시절의 유물들?대부분 약탈되었고? 성상 대부분의  프랑스 혁명때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을 하긴 이르다.

???방별로 원래 이방의 용도라던가 역사를  잘 설명해놓았고....    전시물들도 그것들을?잘 이해할 수 있도록 비치되어있었다.

??다른 프랑스의 유적지들과는 달리?유물빨(?)없는 교황청 ㅋㅋ?하지만 그래서 더 본연의 교황청의?역사적 가치에 집중할 수 있게된다.

?나는 두번왔지만 만족 ㅋ?처음와본 남편도 와볼만하다는 의견.????평범해보이는 위의 사진속 방은Consistorium (Consistory room)? Consistorium은 본래 로마 황제궁의 재판소로서, 황제가 재판석에 앉고 배석자들은 그 옆에 서서(Consistentes) 있었던 데서 온 말이다.

?이것이 교회에 도입되어 교황을 둘러싼 추기경회를 가리키게 되었다.

?? 교회의 모든 문제를 판결하는 행정부로 주 3회 모임이 있었다.

???????1332년부터 1354년에 걸쳐서 건축된 아비뇽 교황청은?유럽에 창궐한 흑사병 때문에 ?1348년부터 4년 정도 공사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한달에 약 850명 정도의 인력이 동원되었고,?동원된 인력들이 사다리 같은 자그마한 장비부터?크레인같은 중장비까지 직접 가져왔다고 한다 ㄷㄷ???비치된 설명을 읽어보니 ?아비뇽 교황청 건설에는 철이 사용하여?건물의 내구성을 높혔다는데...?그러한 건축방식은 당시에는 보기 드문것이였다고 한다.

??? 아비뇽 유수(Avignonese Captivity)???교황이 68년 동안 이곳에 머물던 시기를 아비뇽 유수라고 부른다.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유대 왕국이 사라지고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붙여진 이름이다.

  13세기 초 교황권은 정점에 달했으나영토의 확장과 관료제의 확립을 통해 유럽의 왕권은  13세기 후반에는 교황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다.

?특히 유럽의 왕국 중 프랑스 국왕들은 교황과 밀접한 공생 관계를 유지했었다.

   프랑스 국왕의 입장에서는 교황의 지지를 받으면 왕의 신성한 권위를 높일 수 있었고, 교황의 입장에서는 서임권(Investiture Controversy)을 두고 독일 황제와 대립하고 있는 처지라 프랑스 국왕의 후원이 절실히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 남프랑스 아비뇽 교황청  여행 - 아비뇽 유수 ???하지만 당시 프랑스의 필립4세는 막강해진 왕권을 바탕으로?성직자들에게까지 세금을 부과하였고열받은 프랑스 교회는 로마교황에게 일러바침 ㅋㅋㅋ??완전 뚜껑열린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필립에게 따졌으나눈에 뵈는거 없던 필리프 4세는 삼부회까지 소집해?교황을 디스하며 성직자 과세를 고착화시키려고 했다(필리프 4세의 Show me the money)?교황님 분노하며 필립을 파문시키려고 했지만1303년 역관광당하심 ㅠㅠ바로 필립4세가 교황을 이단으로 재판에 회부하고기습적으로 병력을 파견, 교황을 납치한후로마 근교의 깡촌 아나니(Anagni)에서?재판에 회부하는 막장 시전...이것이 "아나니 사건"??이야기는 점점 더 막장을 향해 가는데....??????? 남프랑스 아비뇽 교황청  여행 - 아비뇽 유수 당시에 보기드문 80세로 무병장수를 누리던곱디고운 교황 보니파시오8세는?아나니 사건 과정에서 싸대기까지 맞고 감금까지 당했고.??그 충격으로 사망 ㅠㅠ?프랑스는 더 눈에 뵈는거 없이새로운 교황 선출에 압박을 가해 1305년드뎌 프랑스 출신의 클레멘스 5세가 교황에 선출되게 한다.

?이때부터 필립이는 교황을 자기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리고교황청까지 아비뇽으로 옮겨버리게 한다.

????? 그 후 7명의 아비뇽 교황은 모두 프랑스인이었고, 이 시기에 임명된 추기경도 134명 중 111명이 프랑스인이었다.

??교황이 아비뇽에서 머물던? 68년의 굴욕적인'아비뇽 유수 '????그 역사와 배경을 알고보면유럽의 동네 성당보다도 더 휑한 느낌의아비뇽 교황청이 이해가 될 거다 :) ??????근데 왜 하필 다른 곳도 아닌아비뇽으로 교황청을 옮긴걸까???당시 아비뇽은 신성로마제국령으로 교황의 꼬붕들이 소유하고 있던 영지였지만 (정확한 용어를 쓰자면 교황의 봉신封臣?들, 봉건제 사회에서 자신의 상위 주군에게 봉사하는 대가로 봉토를 받던 사람) ??론 강을 중심으로 프랑스와 경계를 이루고 있어 프랑스와의 관계에 있어 중요성이 큰 지역이였다.

이렇게 프랑스에게 놀아난 아비뇽은나중에 결국 프랑스에 합병되어 버리고만다.

?? ????조금은 마음이 무거워질때쯤?올라간  테라스에서 바라본 아비뇽(Avignon)   ???? ??????아비뇽 교황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요 뾰족뾰족 올록볼록 지붕???? 멀리 보이는 강은 ?아비뇽과 아를 등 프로방스를 흐르는  론강  ?? 교황들은 여기서?풍경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였을지....??전시관의 설명 하나하나 읽어가며?제대로 공부했더니 머리가 아파?한참동안 남편과 함께 테라스에서 ?아비뇽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 마지막은 기념품 가게ㅋㅋ    com/mister1315/레바님의 블로그그림 존나 잘그리시는분카카오레바의 모험의 그림을그려주는분임ㅋ 시렌 에일린.향년 87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다.

  “설…… 마 꿈?”   다시 눈을 떴을 때,시렌 에일린은 현실의 도세은으로 돌아와 있었다.

돈, 명예, 직위.어차피 다 부질없는 것.다시 돌아온 지구에서는 부모님과 함께 구속 받지 않고 평범하게 살 것이라고.   하지만 그를 향한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난게이트와 몬스터, 각성자, 그리고…… 마왕까지.   “젠장. 이 새끼들은 왜 또 난리야?”    에일린 교단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교황은다시 세계를 움직인다.

여러분, 새로운 판타지 소설이 또 출간되었어요! 바로 련율님의 <나는 교황이다>!!이세계에서 교황으로서 세상을 구한 교황님이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셔서 활약하시는 이야기예요!만날 사고를 몰고 다니시는 교황님은유쾌, 상쾌, 통쾌!더운 여름! 통쾌한 교황님을 만나 보세요!먼치킨을 좋아하시는 독자님께 강추! 지금 카카오페이지에서 절찬 연재중이에요

!!  .-프란치스코 교황제가 애정하는 이웃이신티라미슈님 블로그에는 늘 좋은 글귀와공감  가는 이야기로 채워져있답니다내것은 하나도 없다.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 단지 이 몸뚱이를 나라고 생각하고 살아 갈 뿐이다.

하지만 이 몸은 내 의지와...blog.naver.com 오늘도 좋은 글귀에...한 번 읽고 또 읽고^^그러다 확 퍼와버렸네요

애정하는 이웃님들도 함께 공감하는 글이였음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제가 애정하는 이웃이신티라미슈님 블로그에는 늘 좋은 글귀와공감  가는 이야기로 채워져있답니다내것은 하나도 없다.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 단지 이 몸뚱이를 나라고 생각하고 살아 갈 뿐이다.

하지만 이 몸은 내 의지와...blog.naver.com 오늘도 좋은 글귀에...한 번 읽고 또 읽고^^그러다 확 퍼와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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