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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표


그가 2007년부터 시작한 여러가지 제도들이 학생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 학생들이 정말 서 총장때문에 자살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책임을 물으려면 올 한해가 아니라 2007년부터 지금까지 4년 반의 결과를 놓고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만일 유독 올해만 자살이 늘어났다면 그것을 서 총장의 탓이라고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 서남표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은 2001년이다.

 당시 난 복학생으로 "창의적 설계 기법"이라는 기계과 수업을 들었었는데, 그 수업을 가르치시던 교수님께서 서남표라는 대단한 한인 학자가 미국 MIT에 있다고 알려주셨다.

 수업시간에 우리는 MIT의 서남표 교수가 만들어낸 "공리적 설계 이론 (Axiomatic design)"을 배웠다.

공리적 설계이론이란 어떤 공학적 설계를 하는데 있어서 주먹구구 식으로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과 원인, 결과 등을 정의하고 그들의 상관관계를 행렬을 통해 분석해서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공리적 설계이론은 이런 거다.

어떤 전자회사에서 신제품 토스터를 만들었는데, 웬일인지 이 토스터로 빵을 구우면 자꾸 타버린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접수되었다.

엔지니어는 문제가 된 토스터의 설계를 고쳐보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일단 엔지니어는 빵이 타는 것은 토스터 내부 히터가 너무 뜨거워지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히터의 온도를 낮게 조절하려고 시도하고 볼 것이다.

그렇게 직관적으로 접근하여 문제 해결에 성공할 수도 있지만, 빵이 제대로 구워지지 않는다던가 골고루 구워지지 않는다던가 맛이 없게 구워진다던가 하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다시 생길 수 있다.

혹은 온도를 낮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빵이 계속 탈 수도 있다.

또, 문제해결에 집착하다보면 토스터의 본질을 잊기도 쉽다.

세상은 사람의 직관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복잡하기 때문이다.

 공리적 설계이론에서는 먼저 토스터라는 것이 왜 존재하는지 (빵을 맛있게 굽기 위해. 빨리 굽기 위해. 편하게 굽기 위해. 맛있는 냄새를 풍겨주기 위해. 설겆이를 안하기 위해 등등)를 정의하고, 이를 위해 토스터가 갖추어야 할 기계적, 공학적 성질을 정의한다.

(빵에 열을 가해야 한다.

외부와 절연되어야 한다.

빨리 가열되고 빨리 식어야 한다.

위생적이어야 한다.

빵이 얼마나 구워지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등등) 그리고 이런 요건에 대한 하부 요건들을 또 나열하고, 이러한 여러가지 정의들의 상관관계를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좀 더 체계적이고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그리고 부작용이 적은 제품 설계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직관으로는 알 수 없었던 숨어있던 문제를 찾아낼 수 있다.

이를테면, 빵이 태워지는 이유는 히터의 문제가 아니라 토스터 케이스의 구조상 빵이 구워지는 냄새를 밖으로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여 조리하는 사람이 빵이 얼마나 구워졌는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공리적 설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 문제점을 알고나면 너무나 간단한 일이지만, 직관적인 접근으로는 무엇이 문제인지 확인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공리적 접근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한 직관을 배제하여 하나하나 사실에 기초하여 따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서남표 교수의 공리적 설계 이론은 공학에 수학과 논리학, 나아가 철학의 개념을 접목한 것이다.

공리 Axiom란 말 자체가 철학과 논리학에서 쓰이는 말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우선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각 요소들과의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그리고 단편적인 아닌 여러가지 변수의 복합작용으로 분석해봐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그래서 행렬(matrix)의 개념이 들어간다) 내가 이해하기론 그렇다.

 ================================== 서남표라는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것은 이 분이 카이스트에 총장으로 오고 난 후였다.

난 였다.

서 총장님을 단독 인터뷰 하지는 못했으나 대전과 서울에서 있었던 간담회에 갔었고 테이블에서 잠깐 얘기도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시절의 기억 때문에 나는 스타를 만나는 팬의 기분이었다.

 서 총장님은 개혁을 시작할 당시부터 학교 안팎에서 무수한 욕을 먹었다.

카이스트는 독특한 대학이다.

구성원들의 자존심도 세다.

또 재정을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의원들의 눈치도 보아야 한다.

그의 전임자였던 로버트 러플린 교수는 노벨상 수상자라는 명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카이스트 문화에 적응하는데 실패.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한 채 쓸쓸히 한국을 떠났다.

뒤이어 들어온 서 총장님 역시 초반부터 엄청난 반발에 직면했다.

 지금이야 이른바 '징벌적 등록금'제도가 문제시 되지만, 사실 서 총장이 시도한 개혁에서 가장 먼저 반발을 받았던 것은 교수의 정년(테뉴어) 보장을 좀 더 엄격하게 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사실 지금까지도 한국에서는 명문대학 교수는 평생직이며 한번 교수가 되면 잘릴 일도 없고 학교를 옮길 일도 없다.

서 총장은 이것이 교수들을 게으르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서 테뉴어 심사를 엄격하게 바꾸었다.

당연히 많은 교수들이 반발했고 사퇴 압력도 받았지만 그는 밀어붙였다.

다행히 언론에서 이를 긍정적으로 보도해주었다.

카이스트는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정으로 운영되는 학교이고 정부는 여론과 언론에 아주 민감하다.

호의적인 언론 보도 덕분에 서남표 총장의 개혁은 계속 되었다.

 이번에 문제가 되는 '징벌적 등록금'제 역시 위에서 말한 교수 정년 보장과 어떻게 보면 같은 선상에 있는 논란이다.

연구자들을 무한 경쟁으로 몰고가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이 돈 걱정, 자리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싶은 연구를 하도록 해 주어야 하는가. 모든 학생과 모든 교수들이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한다면야 후자의 방법이 옳겠지만, 세상이 과연 그런가? 우리나라 교수들 스스로 자문해보아도 부끄럽게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다.

 ================================= 그러나 학생과 교수는 다르다.

교수는 성인이고, 학생, 특히 1,2학년 생은 정신적으로는 아직 어린아이에 가깝다.

그렇기에 차등 등록금제로 인해서 학생들이 자살의 유혹을 느낄 정도로 큰 스트레스와 굴욕감을 받았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데서 불행은 시작한다.

동료들이 연봉 1억씩 받는 회사에서 9천만원 받는 사람은, 동료들이 5천 받는 회사에서 6천만원 받고 다니는 사람보다 훨씬 불행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절대적인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가 훨씬 더 큰 스트레스를 준다.

등록금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90%의 학생들이 학비를 내고 10%의 학생만이 장학금을 받는다.

그런데 카이스트에서는 10%만 학비를 내고 90%는 장학금을 받는다.

전체적으로 보면 카이스트의 학생들은 일반 대학의 학생들보다 훨씬 많은 장학금의 수혜를 받고 있다.

하지만 개개인에게는 절대적인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남들과의 비교에서 뒤쳐진다는 기분과 자괴감이 더 무서운 것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경쟁과 비교가 더욱 심각하다.

서남표 총장의 개혁이 논리적으로는 옳지만, 감성적으로는 실패한 개혁이라는 비판이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특히 10대 후반의 대학 1,2학년들은 감수성이 가장 예민할 때이다.

그깟 학비 몇 십 만원 내주는 것이 아까워 카이스트까지 간 자식을 탓할 부모가 얼마나 있겠냐만은, 학생들은 돈의 액수 자체보다는 열등생이라는 낙인 자체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 자살한 학생은 학점이 3.0에서 0.07 모자랐다고 한다.

0.01점 당 6만원이니 다음 학기 등록금 42만원만 내면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다른 두 명은 아예 3.0 이상이었다 한다.

돈 때문은 아니란 얘기다.

불평하는 학생들이 너무 유약한 면도 분명히 있다.

그들은 학점이 어찌되었건 대한민국 0.1%에 드는 엘리트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다.

돈이 없거나 공부를 못하거 혹은 다른 사정으로 인해서 대학 문턱에도 못가보고 10대 때부터 힘겨운 노동에 뛰어들어야 하는 그들의 또래들도 이 나라에만 수십만 명 있음을 생각하면, 학교 게시판에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불만은 복에 겨운 철없는 불평 혹은 농담처럼 들린다.

만일 카이스트도 일반 대학처럼 모두가 제 학비를 내는 시스템이었다면 어땠을까. 학생들은 돈이야 더 많이 들었겠지만 기분은 해피했을지 모른다.

부모님께 죄송해서 자살한다는 말도 안했을 것이다.

  ================================= 서 총장의 개혁을 좀 더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가장 속편한 해결책은 예전처럼 모두 전액 학비 무료로 돌아가는 것이다.

전액 무료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학생도 해피하고, 교수도 편하고, 총장도 인기가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돈을 대주는 납세자의 마음은 불편하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학비를 면제해주는 혜택은 예전에 우리나라가 고도성장을 하던 시절,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과학자와 공학자를 키우기 위해 온 국민이 지원해주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지금은 카이스트 아니더라도 연구 열심히 하는 대학들이 많다.

또 카이스트 대학생들이 모두 다 과학자나 공학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비싼 학비를 면제받아 공부시켜놨더니 기껏 의사 면허를 따거나, 증권회사에 들어가거나 혹은 연예인이나 가 된다면 그들이 세상을 바꾸는 과학자가 될 줄 알고 전액 학비를 대준 국민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일반 대학처럼 전원이 학비를 내고 소수만 장학금을 받도록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경쟁이 덜 치열해지니 학생들의 마음은 오히려 지금보다 편해질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과학기술자를 양성한다는 카이스트 설립취지에는 맞지 않는다.

등록금 혜택이 없는 카이스트는 그냥 또 하나의 그저 그런 대학으로 변할 것이다.

 제 3의 방법도 있다.

대학교 과정 중 2년은 학비를 일반 대학의 절반 수준으로 일률적으로 받고, 나머지 2년은 서남표 총장 식으로 성적에 따른 차등 납부를 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창 꿈많고 호기심 많을 나이인 1,2학년 학생들은 성적에 따른 큰 스트레스 없이 지낼 수 있을 것이다.

3,4학년의 치열한 공부를 위한 자유로운 준비 과정이 될 것이다.

또, 일정 정도의 학비를 받음으로써 중간에 자퇴하거나 다른 길로 새는 학생들로 인한 세금의 손실도 줄일 수 있다.

  ================================== 이것은 꼭 등록금, 즉 돈 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학이라는 공동체의 문화 자체가 갈 길을 잃고 헤메는 과정이며, 돈의 문제가 아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얼마전 서울대 성악과 교수가 학생들을 때리고 음악회 표를 강매하는 등 문제가 있어 교수직을 잃었다.

알고보니 이런 도제식 문화는 서울대만이 아니란다.

<한겨레21>에서는 H대 음대 성악과에서 이루어지는 군대식 얼차려 문화에 대해 잠입 르포를 쓰기도 했다.

 이번 카이스트 논란이 지나친 경쟁적 교육 시스템에 대한 반발이라면, H대 음대를 비롯한 예체능계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도제식 문화에 대한 논란은 지나친 권위주의적, 평등주의적 교육 시스템에 대한 반발인 것 같다.

사람이 참 알 수 없는 것이, 카이스트에서 학비 몇 십 만원 청구서를 받은 학생들이 힘들고 부모님께 죄송하다며 자살을 하지만, 성악과에서 그 수십 배에 달하는 고액의 학비를 내는 것은 물론, 교수에게 얻어맞고 삥뜯끼고 선배에게 갈굼당하고 시멘트 바닥에 머리 박고 있는 불쌍한 학생들이 자살한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적어도 '우린 한 배를 탄 가족이다, 같이 고생하자'는 유대감은 갖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는 것 같다.

 과연 바람직한 대학교육 모델은 무엇일까? 서남표 식 개별 경쟁주의와 H대 성악과 식의 집단주의 군대문화, 이것을 양 극단으로 놓고 그 중간 어디쯤 해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게 꼭 대립되는 모델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양 모델의 장점을 추려서 더 좋은 방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즉 서 총장의 모델은 분명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옳다.

하지만 사회적, 문화적 측면에서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서남표] 의 매력 포인트


성악과식 단체 얼차려는 분명 시대착오적이지만, 그 바탕에 깔려있는 전통 한국식 공동체 문화는 구식이라고 치부해서 내다 버리기에 아깝다.

그런 것이 사람을 자살로부터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서 총장에 대한 옹호를 조금 더 하고 싶다.

사람들은 그가 학생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려 한다고 비난한다.

정치성향이 강한 한 서울대 법대 교수는 그에게 사퇴하라고 트위터에서 운동하고 계신다.

내가 보기에 그 서울대 교수님은 서 총장을 탓하기 전에, 카이스트와 마찬가지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그 학교의 그 학과 졸업생들이 사회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부터 돌이켜봐야 할 것 같다.

카이스트 물리학과가 없다면 대한민국엔 재앙이지만, 서울대 법대 없다고 대한민국에 별로 달라질 것은 없지 않은가?  내가 아는 서 총장은 몰지각한 신자유주의자는 아니다.

공학자로는 성공�?지만 교육자로서는 인문적 소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도 아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그의 대표적인 업적은 공학에 논리학과 철학을 접목한 공리적 설계 이론이다.

편협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서 총장의 개혁 내용 중에 등록금 차등제 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이 재수강을 줄이려는 노력이었다.

그가 보기에 학생들이 학점관리 하기 위해 재수강을 하고 학기를 더 듣는 것은 청춘의 낭비다.

특히 방학 때 학생들이 학교 기숙사에 남아 재수강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꼭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집에서 나와 기숙사 생활을 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일반적인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인생에 대한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그래서 방학때라도 우리 학생들은 꼭 학교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에 가서 부모님 곁에서 지금껏 못해 본 효도도 하고, 카이스트에서는 엘리트들에만 둘러쌓여 있다가 방학때는 고향의 평범한 친구들과도 어울리며 술도 진탕 마셔보고, 몸쓰는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배낭여행도 다녀봐야 합니다.

공부는 학기 중에 열심히 하고, 방학은 인생의 다른 경험을 쌓아야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것이 내가 들었던 서남표다.

이런 사람이 정말 신자유주의자인가?===================================서남표 총장은 나이가 많다.

돈이나 명성 누릴만큼 누렸다.

언론으로부터 인신공격성의 비난을 듣고 죽은 학생들의 친구와 부모들에게 원망을 사고, 나아가 국회 청문회에 나가 의원들로부터 공개적인 모욕을 당해가면서까지 대전에 있는 세계 60위권 대학(그가 오기전엔 200위 정도)의 총장직에 연연할 이유가 없는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왜 이런 힘든 싸움을 고집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사람은 실패로부터 가장 많이 배운다는 것이 그의 교육론이었다.

실패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본인의 말처럼 이번 실패를 딛고 일어서시길 바란다.

경제적으로도 사회문화적으로도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교육모델을 찾는데, 바로 공리주의적 설계 이론을 적용한다면 어떨까? 학교와 경쟁력과 과학기술의 발전, 학생과 교직원들의 성취감과 행복, 그리고 세금을 내주는 국민들의 만족. 이런 여러가지 지표를 목적 변수로 설정해놓고, 이를 이루기 위한 여러가지 변수(등록금의 액수와 납부방식, 학내 문화, 동아리 활동, 사회적 인식과 홍보활동, 신입생 선발방식, 학생 평가방식, 동문들과의 교류 등)가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밝혀보는 것이다.

맛있는 빵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만들어내는 토스터를 만들 때 처럼. "서남표가 학비를 걷기 시작한 후에 사람이 죽었으니, 서남표를 내쫓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식의 직관적이고 일차원적인 접근은 옳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그렇게 단순했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이미 자가용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가사로봇이 빨래와 다림질을 대신 해주는 천국이 되어있을 법하다.

서 총장은 분명 도움과 조언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카이스트의 장래에 대해 더 깊이, 더 긴 안목으로 생각해 본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위기만 넘긴다면, 그는 더 잘 하실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이 나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의견이다.

팬레터다.

  26>  주제: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 사퇴 논란    카이스트에서 벌어진 연속 자살사건이 세간에 큰 충격을 몰고 왔다.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경쟁 제일 위주의 .( '제일'을 빼고 '경쟁 위주의' 혹은 '경쟁을 제일로 하는' 로 바꿔 쓸 것.)서남표식 개혁이 거론 되면서 그가 추진했던 차등수업료제도와 100% 영어강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서남표 총장은 여론과 국민들의 비난을 들으면서도,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카이스트측은 학교 홈페이지에 징벌적 수업료제도 대폭 조정, 영어 강의 축소, 학사경고제도안화 등의 개선안을 발표했다.

.( 카이스트 측이라는 주체가 확실 하지 않음, 이럴 경우 '카이스트 학교 홈페이지에

개선안이 발표되었다.

'  수통태로 표현 할것.)하지만 서총장은 “카이스트의 발전을 포기하려는 것이냐” 며 오히려 화를 냈고, 개선안은 5시간 만에 백지화됐다.

여전히 자신의 입장만을 유지한 채, 소통하길 거부하는 서총장의 용퇴가.(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서총장의 퇴진이 요구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변하지 않는 경쟁 제일위주의 학사운영 방침 때문이다.

서총장의 취임 후, 세계대학평가에서 카이스트는 232위에서 62위로 상승 했다.

그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카이스트의 개혁은 계속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학생들보다 학교의 발전을 우선시 하는 그의 태도는, 교육자의 마인드가 아니라 기업가의 마인드에 가깝다.

학교의 주인은 총장이 아니다.

학교의 주가 되는 학생들과 교수들은 서총장의 사퇴를 원하고 있다.

교수 189명을 대상으로 한 투표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는 의견이 56%, .( 나아가) ‘용퇴해야 한다.

’는 의견은 33.8%나 되었다.

.( 정확한 사실 관계 확인)학생들 역시 서총장을 지지하는 쪽 보다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서남표] 세상에. 왜..

 일각에서는 이번 자살사건을 두고, 서총장의 책임으로만 몰아세우는 것은 억지스럽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서총장과 자살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고 한다.

자살한 학생 4명중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학점 3.0이 넘기 때문에, 이들의 자살이 ‘징벌적 벌금제도’와 관계가 없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근시안적이며 이번 사태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

서남표식 개혁의 문제는 성적위주의 경쟁으로 학업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경쟁을 부추겨 학생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을 준것이다.

.( 것에 있다.

) 단순히 자살한 학생들을 징벌적 벌금제도에 적용하여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카이스트를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만든 책임은 피하기 힘들다.

 서남표 총장의 취임이후,.( 이 취임한 이후 이뤄진 )카이스트의 가시적인 성과들은 부정할 수 없다.

일부 언론들은 이러한 성과에만 찬사를 보내며, 서총장의 개혁이 계속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눈에 띄는 성과.( 외형적인 성과)이면에는, 보이지 않게 곪아가고 있는 상처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곪은 상처를 치유하는 게 우선이다.

앞으로의 카이스트의 정책에 대하여, 학생과 교수가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고, .( 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고)카이스트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 이 모색되어야 한다.

)서총장이 이번 사건의도덕적, 정치적.( 도의적,교육적)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카이스트 재정비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그가 2007년부터 시작한 여러가지 제도들이 학생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 학생들이 정말 서 총장때문에 자살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책임을 물으려면 올 한해가 아니라 2007년부터 지금까지 4년 반의 결과를 놓고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만일 유독 올해만 자살이 늘어났다면 그것을 서 총장의 탓이라고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 서남표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은 2001년이다.

 당시 난 복학생으로 "창의적 설계 기법"이라는 기계과 수업을 들었었는데, 그 수업을 가르치시던 교수님께서 서남표라는 대단한 한인 학자가 미국 MIT에 있다고 알려주셨다.

 수업시간에 우리는 MIT의 서남표 교수가 만들어낸 "공리적 설계 이론 (Axiomatic design)"을 배웠다.

공리적 설계이론이란 어떤 공학적 설계를 하는데 있어서 주먹구구 식으로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과 원인, 결과 등을 정의하고 그들의 상관관계를 행렬을 통해 분석해서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공리적 설계이론은 이런 거다.

어떤 전자회사에서 신제품 토스터를 만들었는데, 웬일인지 이 토스터로 빵을 구우면 자꾸 타버린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접수되었다.

엔지니어는 문제가 된 토스터의 설계를 고쳐보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일단 엔지니어는 빵이 타는 것은 토스터 내부 히터가 너무 뜨거워지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히터의 온도를 낮게 조절하려고 시도하고 볼 것이다.

그렇게 직관적으로 접근하여 문제 해결에 성공할 수도 있지만, 빵이 제대로 구워지지 않는다던가 골고루 구워지지 않는다던가 맛이 없게 구워진다던가 하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다시 생길 수 있다.

혹은 온도를 낮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빵이 계속 탈 수도 있다.

또, 문제해결에 집착하다보면 토스터의 본질을 잊기도 쉽다.

세상은 사람의 직관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복잡하기 때문이다.

 공리적 설계이론에서는 먼저 토스터라는 것이 왜 존재하는지 (빵을 맛있게 굽기 위해. 빨리 굽기 위해. 편하게 굽기 위해. 맛있는 냄새를 풍겨주기 위해. 설겆이를 안하기 위해 등등)를 정의하고, 이를 위해 토스터가 갖추어야 할 기계적, 공학적 성질을 정의한다.

(빵에 열을 가해야 한다.

외부와 절연되어야 한다.

빨리 가열되고 빨리 식어야 한다.

위생적이어야 한다.

빵이 얼마나 구워지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등등) 그리고 이런 요건에 대한 하부 요건들을 또 나열하고, 이러한 여러가지 정의들의 상관관계를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좀 더 체계적이고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그리고 부작용이 적은 제품 설계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직관으로는 알 수 없었던 숨어있던 문제를 찾아낼 수 있다.

이를테면, 빵이 태워지는 이유는 히터의 문제가 아니라 토스터 케이스의 구조상 빵이 구워지는 냄새를 밖으로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여 조리하는 사람이 빵이 얼마나 구워졌는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공리적 설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 문제점을 알고나면 너무나 간단한 일이지만, 직관적인 접근으로는 무엇이 문제인지 확인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공리적 접근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한 직관을 배제하여 하나하나 사실에 기초하여 따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서남표 교수의 공리적 설계 이론은 공학에 수학과 논리학, 나아가 철학의 개념을 접목한 것이다.

공리 Axiom란 말 자체가 철학과 논리학에서 쓰이는 말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우선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각 요소들과의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그리고 단편적인 아닌 여러가지 변수의 복합작용으로 분석해봐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그래서 행렬(matrix)의 개념이 들어간다) 내가 이해하기론 그렇다.

 ================================== 서남표라는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것은 이 분이 카이스트에 총장으로 오고 난 후였다.

난 였다.

서 총장님을 단독 인터뷰 하지는 못했으나 대전과 서울에서 있었던 간담회에 갔었고 테이블에서 잠깐 얘기도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시절의 기억 때문에 나는 스타를 만나는 팬의 기분이었다.

 서 총장님은 개혁을 시작할 당시부터 학교 안팎에서 무수한 욕을 먹었다.

카이스트는 독특한 대학이다.

구성원들의 자존심도 세다.

또 재정을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의원들의 눈치도 보아야 한다.

그의 전임자였던 로버트 러플린 교수는 노벨상 수상자라는 명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카이스트 문화에 적응하는데 실패.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한 채 쓸쓸히 한국을 떠났다.

뒤이어 들어온 서 총장님 역시 초반부터 엄청난 반발에 직면했다.

 지금이야 이른바 '징벌적 등록금'제도가 문제시 되지만, 사실 서 총장이 시도한 개혁에서 가장 먼저 반발을 받았던 것은 교수의 정년(테뉴어) 보장을 좀 더 엄격하게 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사실 지금까지도 한국에서는 명문대학 교수는 평생직이며 한번 교수가 되면 잘릴 일도 없고 학교를 옮길 일도 없다.

서 총장은 이것이 교수들을 게으르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서 테뉴어 심사를 엄격하게 바꾸었다.

당연히 많은 교수들이 반발했고 사퇴 압력도 받았지만 그는 밀어붙였다.

다행히 언론에서 이를 긍정적으로 보도해주었다.

카이스트는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정으로 운영되는 학교이고 정부는 여론과 언론에 아주 민감하다.

호의적인 언론 보도 덕분에 서남표 총장의 개혁은 계속 되었다.

 이번에 문제가 되는 '징벌적 등록금'제 역시 위에서 말한 교수 정년 보장과 어떻게 보면 같은 선상에 있는 논란이다.

연구자들을 무한 경쟁으로 몰고가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이 돈 걱정, 자리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싶은 연구를 하도록 해 주어야 하는가. 모든 학생과 모든 교수들이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한다면야 후자의 방법이 옳겠지만, 세상이 과연 그런가? 우리나라 교수들 스스로 자문해보아도 부끄럽게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다.

 ================================= 그러나 학생과 교수는 다르다.

교수는 성인이고, 학생, 특히 1,2학년 생은 정신적으로는 아직 어린아이에 가깝다.

그렇기에 차등 등록금제로 인해서 학생들이 자살의 유혹을 느낄 정도로 큰 스트레스와 굴욕감을 받았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데서 불행은 시작한다.

동료들이 연봉 1억씩 받는 회사에서 9천만원 받는 사람은, 동료들이 5천 받는 회사에서 6천만원 받고 다니는 사람보다 훨씬 불행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절대적인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가 훨씬 더 큰 스트레스를 준다.

등록금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90%의 학생들이 학비를 내고 10%의 학생만이 장학금을 받는다.

그런데 카이스트에서는 10%만 학비를 내고 90%는 장학금을 받는다.

전체적으로 보면 카이스트의 학생들은 일반 대학의 학생들보다 훨씬 많은 장학금의 수혜를 받고 있다.

하지만 개개인에게는 절대적인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남들과의 비교에서 뒤쳐진다는 기분과 자괴감이 더 무서운 것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경쟁과 비교가 더욱 심각하다.

서남표 총장의 개혁이 논리적으로는 옳지만, 감성적으로는 실패한 개혁이라는 비판이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특히 10대 후반의 대학 1,2학년들은 감수성이 가장 예민할 때이다.

그깟 학비 몇 십 만원 내주는 것이 아까워 카이스트까지 간 자식을 탓할 부모가 얼마나 있겠냐만은, 학생들은 돈의 액수 자체보다는 열등생이라는 낙인 자체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 자살한 학생은 학점이 3.0에서 0.07 모자랐다고 한다.

0.01점 당 6만원이니 다음 학기 등록금 42만원만 내면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다른 두 명은 아예 3.0 이상이었다 한다.

돈 때문은 아니란 얘기다.

불평하는 학생들이 너무 유약한 면도 분명히 있다.

그들은 학점이 어찌되었건 대한민국 0.1%에 드는 엘리트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다.

돈이 없거나 공부를 못하거 혹은 다른 사정으로 인해서 대학 문턱에도 못가보고 10대 때부터 힘겨운 노동에 뛰어들어야 하는 그들의 또래들도 이 나라에만 수십만 명 있음을 생각하면, 학교 게시판에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불만은 복에 겨운 철없는 불평 혹은 농담처럼 들린다.

만일 카이스트도 일반 대학처럼 모두가 제 학비를 내는 시스템이었다면 어땠을까. 학생들은 돈이야 더 많이 들었겠지만 기분은 해피했을지 모른다.

부모님께 죄송해서 자살한다는 말도 안했을 것이다.

  ================================= 서 총장의 개혁을 좀 더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가장 속편한 해결책은 예전처럼 모두 전액 학비 무료로 돌아가는 것이다.

전액 무료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학생도 해피하고, 교수도 편하고, 총장도 인기가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돈을 대주는 납세자의 마음은 불편하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학비를 면제해주는 혜택은 예전에 우리나라가 고도성장을 하던 시절,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과학자와 공학자를 키우기 위해 온 국민이 지원해주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지금은 카이스트 아니더라도 연구 열심히 하는 대학들이 많다.

또 카이스트 대학생들이 모두 다 과학자나 공학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비싼 학비를 면제받아 공부시켜놨더니 기껏 의사 면허를 따거나, 증권회사에 들어가거나 혹은 연예인이나 가 된다면 그들이 세상을 바꾸는 과학자가 될 줄 알고 전액 학비를 대준 국민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일반 대학처럼 전원이 학비를 내고 소수만 장학금을 받도록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경쟁이 덜 치열해지니 학생들의 마음은 오히려 지금보다 편해질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과학기술자를 양성한다는 카이스트 설립취지에는 맞지 않는다.

등록금 혜택이 없는 카이스트는 그냥 또 하나의 그저 그런 대학으로 변할 것이다.

 제 3의 방법도 있다.

대학교 과정 중 2년은 학비를 일반 대학의 절반 수준으로 일률적으로 받고, 나머지 2년은 서남표 총장 식으로 성적에 따른 차등 납부를 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창 꿈많고 호기심 많을 나이인 1,2학년 학생들은 성적에 따른 큰 스트레스 없이 지낼 수 있을 것이다.

3,4학년의 치열한 공부를 위한 자유로운 준비 과정이 될 것이다.

또, 일정 정도의 학비를 받음으로써 중간에 자퇴하거나 다른 길로 새는 학생들로 인한 세금의 손실도 줄일 수 있다.

  ================================== 이것은 꼭 등록금, 즉 돈 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학이라는 공동체의 문화 자체가 갈 길을 잃고 헤메는 과정이며, 돈의 문제가 아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얼마전 서울대 성악과 교수가 학생들을 때리고 음악회 표를 강매하는 등 문제가 있어 교수직을 잃었다.

알고보니 이런 도제식 문화는 서울대만이 아니란다.

<한겨레21>에서는 H대 음대 성악과에서 이루어지는 군대식 얼차려 문화에 대해 잠입 르포를 쓰기도 했다.

 이번 카이스트 논란이 지나친 경쟁적 교육 시스템에 대한 반발이라면, H대 음대를 비롯한 예체능계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도제식 문화에 대한 논란은 지나친 권위주의적, 평등주의적 교육 시스템에 대한 반발인 것 같다.

사람이 참 알 수 없는 것이, 카이스트에서 학비 몇 십 만원 청구서를 받은 학생들이 힘들고 부모님께 죄송하다며 자살을 하지만, 성악과에서 그 수십 배에 달하는 고액의 학비를 내는 것은 물론, 교수에게 얻어맞고 삥뜯끼고 선배에게 갈굼당하고 시멘트 바닥에 머리 박고 있는 불쌍한 학생들이 자살한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적어도 '우린 한 배를 탄 가족이다, 같이 고생하자'는 유대감은 갖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는 것 같다.

 과연 바람직한 대학교육 모델은 무엇일까? 서남표 식 개별 경쟁주의와 H대 성악과 식의 집단주의 군대문화, 이것을 양 극단으로 놓고 그 중간 어디쯤 해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게 꼭 대립되는 모델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양 모델의 장점을 추려서 더 좋은 방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즉 서 총장의 모델은 분명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옳다.

하지만 사회적, 문화적 측면에서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성악과식 단체 얼차려는 분명 시대착오적이지만, 그 바탕에 깔려있는 전통 한국식 공동체 문화는 구식이라고 치부해서 내다 버리기에 아깝다.

그런 것이 사람을 자살로부터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서 총장에 대한 옹호를 조금 더 하고 싶다.

사람들은 그가 학생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려 한다고 비난한다.

정치성향이 강한 한 서울대 법대 교수는 그에게 사퇴하라고 트위터에서 운동하고 계신다.

내가 보기에 그 서울대 교수님은 서 총장을 탓하기 전에, 카이스트와 마찬가지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그 학교의 그 학과 졸업생들이 사회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부터 돌이켜봐야 할 것 같다.

카이스트 물리학과가 없다면 대한민국엔 재앙이지만, 서울대 법대 없다고 대한민국에 별로 달라질 것은 없지 않은가?  내가 아는 서 총장은 몰지각한 신자유주의자는 아니다.

공학자로는 성공�?지만 교육자로서는 인문적 소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도 아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그의 대표적인 업적은 공학에 논리학과 철학을 접목한 공리적 설계 이론이다.

편협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서 총장의 개혁 내용 중에 등록금 차등제 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이 재수강을 줄이려는 노력이었다.

그가 보기에 학생들이 학점관리 하기 위해 재수강을 하고 학기를 더 듣는 것은 청춘의 낭비다.

특히 방학 때 학생들이 학교 기숙사에 남아 재수강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꼭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집에서 나와 기숙사 생활을 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일반적인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인생에 대한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그래서 방학때라도 우리 학생들은 꼭 학교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에 가서 부모님 곁에서 지금껏 못해 본 효도도 하고, 카이스트에서는 엘리트들에만 둘러쌓여 있다가 방학때는 고향의 평범한 친구들과도 어울리며 술도 진탕 마셔보고, 몸쓰는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배낭여행도 다녀봐야 합니다.

공부는 학기 중에 열심히 하고, 방학은 인생의 다른 경험을 쌓아야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것이 내가 들었던 서남표다.

이런 사람이 정말 신자유주의자인가?===================================서남표 총장은 나이가 많다.

돈이나 명성 누릴만큼 누렸다.

언론으로부터 인신공격성의 비난을 듣고 죽은 학생들의 친구와 부모들에게 원망을 사고, 나아가 국회 청문회에 나가 의원들로부터 공개적인 모욕을 당해가면서까지 대전에 있는 세계 60위권 대학(그가 오기전엔 200위 정도)의 총장직에 연연할 이유가 없는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왜 이런 힘든 싸움을 고집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사람은 실패로부터 가장 많이 배운다는 것이 그의 교육론이었다.

실패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본인의 말처럼 이번 실패를 딛고 일어서시길 바란다.

경제적으로도 사회문화적으로도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교육모델을 찾는데, 바로 공리주의적 설계 이론을 적용한다면 어떨까? 학교와 경쟁력과 과학기술의 발전, 학생과 교직원들의 성취감과 행복, 그리고 세금을 내주는 국민들의 만족. 이런 여러가지 지표를 목적 변수로 설정해놓고, 이를 이루기 위한 여러가지 변수(등록금의 액수와 납부방식, 학내 문화, 동아리 활동, 사회적 인식과 홍보활동, 신입생 선발방식, 학생 평가방식, 동문들과의 교류 등)가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밝혀보는 것이다.

맛있는 빵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만들어내는 토스터를 만들 때 처럼. "서남표가 학비를 걷기 시작한 후에 사람이 죽었으니, 서남표를 내쫓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식의 직관적이고 일차원적인 접근은 옳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그렇게 단순했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이미 자가용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가사로봇이 빨래와 다림질을 대신 해주는 천국이 되어있을 법하다.

서 총장은 분명 도움과 조언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카이스트의 장래에 대해 더 깊이, 더 긴 안목으로 생각해 본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위기만 넘긴다면, 그는 더 잘 하실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이 나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의견이다.

팬레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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