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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지금은 오후 9시. 유치원 문이 닫혀서 찾으러 갈 수 없다고 했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안쓰러운 마음에 열심히 달랬다.

그런데 30분을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누가 가져가라고 했어? 소중한 것이면 네가 잘 챙겼어야지! 계속 울면 뭐해?” 엄마는 꽥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분명 엄마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그런데 어째서 고작 30분 만에 반응이 달라진 걸까. 정서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아이가 표현하는 감정을 수긍해주는 것이다.

어떤 감정이든 감정을 느끼는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불편한 감정일수록 부모가 안전하게 받아줘야 아이의 감정이 잘 발달하고 정서가 안정된다.

엄마는 아이의 감정이 소화되기를 기다렸어야 했다.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사람마다 소화시키는 시간이 다르듯 감정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사건이라도 사람마다 감정을 느끼고 소화하는 시간은 다 다르다.

그런데 부모들은 종종 아이의 감정의 형성과 해결까지 자기 기준에 맞추려고 하는 우(愚)를 범한다.

이 엄마도 그랬다.

하지만 기다려주지 못한 데에는 그런 대로 이유가 있다.

아이가 계속 울자, 엄마 안에는 ‘안타까움’ 이외에 많은 감정이 일어났다.

감정이 많아지자 엄마는 그 감정들을 다 감당해 낼 수 없어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러다 자신의 핵심 감정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것이다.

결국 감정은 제 길을 잃고, 첫 마음과는 다른 반응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감정은 자주 길을 잃는다.

처음에는 ‘걱정’으로 시작하는데 종국에는 ‘화’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왜 처음 느낀 감정 그대로 아이를 대해주지 못하는 걸까. 유난히 ‘불편한 감정’에 취약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이의 불편한 감정도, 나의 불편한 감정도 너무 부담스러워한다.

감정마다 표현되는 길이 있다.

기분이 좋으면 웃는다, 슬플 때는 운다, ‘안타까울’ 때는 위로한다, ‘걱정’이 되면 더 세심하게 돌본다…. 감정의 길대로 표현하려면 지금 이 감정의 본질을 직시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감정이 길을 잃어 반응이 얼토당토않아진다.

감정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표현하게 되어 있다.

별것 아닌 일에 통곡하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물건을 던지기도 하고, 심지어 아이를 때리기도 한다.

아니면 악성 댓글을 달기라도 해야 한다.

자기 몸이 아파져서라도 표현을 한다.

아이 감정을 잘 발달시켜 주려면 부모 감정이 잘 발달해야 한다.

감정이 잘 발달한 사람은 감정의 길을 잘 찾아간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잘 인식하기 때문이다.

상사에게 프로젝트를 보고했는데 꾸지람을 들었다고 치자. 기분이 나쁠 수 있다.

[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근본적 원인은 ?


이때 감정이 잘 발달한 사람은 ‘내가 지금 기분이 좀 나쁘네’를 잘 포착하고 인정한다.

그리고 ‘저 사람은 충고를 한 건데, 나는 기분이 나빴구나. 듣기 싫은 소리를 들으면 기분 나빠지는 특성이 나에게 있구나. 나는 왜 그럴까’ 하고 나의 특성을 이해하려고 한다.

‘저 사람이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니, 기분 나빠해서는 안 되지’라고 감정을 다뤄낸다.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루는 사람은 상대의 감정도 잘 이해를 한다.

상대가 갑자기 화를 내어도 ‘저 사람이 왜 갑자기 화를 내지? 뭔가 일시적으로 기분이 좀 나쁜 것이 있나?’ 하면서 내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도 있다.

너무 성인군자 이야기 같은가. 물론 하루 만에 이렇게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감정발달은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질 수 있다.

내 감정으로 인해 내 아이에게 주는 나쁜 영향을 줄일 수 있다.

다행히 감정발달은 후천적이다.

교육으로, 훈련으로,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

감정을 발달시키려면 가장 먼저 내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것이 너무 어렵다.

오랫동안 나의 불편한 감정이 건드려지는 것이 너무 싫어 숨겨왔기 때문이다.

다양한 감정 표현이 부족해졌고, 표현했다 하면 폭탄처럼 갑자기 과다한 감정을 쏟아내게 되었다.

누군가 나의 불편한 감정을 건드리면 바로 폭발한다.

누군가를 공격할 때, 그의 불편한 감정부터 건드린다.

치명적인 약점임을 알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반응을 내 아이에게도 그대로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자주 ‘부모의 감정’에 대한 글을 실으려고 한다.

부모 안에 있는 여러 종류의 감정이 어떻게 왜곡되어 표현되고 있는지, 어떻게 감정의 본질을 직시해야 하는지 다루려고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 on 일때 대체텍스트 '듣는중..'으로 변경 -->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여섯 살 남자아이와 엄마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내가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에게 “이제 엄마랑 원장님이랑 얘기를 좀 해야 해. ○○이는 좀 기다리고 있어야겠다”라고 하자 아이는 곧 엄마 쪽으로 오른손을 내밀었다.

엄마는 힐끔 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안 된다고 했잖아” 한다.

아이는 바로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짜증은 금세 떼로 바뀌었다.

엄마는 몹시 난처해하며 “얘가 참. 안 돼, 오늘은 안 된다니까…” 한다.

아이의 떼는 잦아들 줄 몰랐다.

안절부절못하던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럼, 딱 5분만 해야 돼” 하면서 슬그머니 스마트폰을 꺼냈다.

잠시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단호하게 “어머님, 주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얼른 스마트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아이는 “아, 왜∼요∼?”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원장님은 기다릴 때 스마트폰 못 주게 해.” 아이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뺄 대로 빼며 다리를 쭉 뻗어 진료실 책상을 발로 탁탁 쳤다.

“그럼, 난 어떡하라고요!” 여전히 화가 많이 난 목소리다.

“밖에 네가 할 수 있는 다른 것이 많아. 만화를 보여줄 수도 있어.” 아이는 싫다고 했다.

“그럼 책을 봐. 그림책도 많아. 장난감도 많고. 다른 선생님들이 그림 그리기나 종이접기를 해줄 수도 있어.” 아이는 다 싫다고 했다.

“그럼, 그냥 기다려.” 아이는 처음에는 퉁탕퉁탕 화를 내기는 했으나 결국 스마트폰 없이 기다리다 갔다.

요즘 지하철에서도, 자동차 안에서도, 병원에서도, 식당에서도 어린아이가 스마트폰을 잡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본다.

어린아이일수록 두뇌는 물론이고 여러 발달 면에서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스마트폰을 잡고 있는 아이는 늘어만 간다.

부모들의 변명은 항상 똑같다.

“안 주면 난리가 나서….” 정말 그럴까? 아니다.

그보다는 스마트폰 없이 기다리는 연습을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은 반응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충동적이다, 산만하다, 조금만 지루해도 못 견딘다, 생각하기를 싫어한다”며 혀를 찬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것들은 부모가 침묵의 시간, 기다림의 시간을 만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아이가 스마트폰을 주지 않는다고 난리를 피우는 것은 아이가 유별나서가 아니다.

스마트폰 없이 기다리는 연습을 성공적으로 해보지 않은 탓이다.

이 글을 읽은 이 순간부터 기다리는 동안, 제발 아이에게 스마트폰 좀 주지 말자. 아이가 울고불고 고집을 피울 수도 있다.

그래도 안 주면 된다.

그 대신 재밌게 놀아주면 된다.

초등 저학년 이하는 부모가 정말 재미있게 놀아 주면 의외로 쉽게 스마트폰을 잊는다.

물론 한 번의 경험으로 잊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없이 기다려본 경험이 서너 번만 쌓여도 아이는 더이상 떼를 부리지 않는다.

지금 이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아이는 스마트폰 같은 도구가 없으면 혼자서는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이 된다.

기다리는 것도 연습을 해야 한다.

몸에 배어야 자연스럽게 나온다.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면, 아이가 아무리 심심하다고 해도 “기다리는 거야”라고 말하자. 그리고 같이 기다려주자. 너무 힘들어하면 좀 도와줄 수는 있다.

이때 도와주는 것은 “그럼, 스마트폰 5분만 하고 기다리는 거야”가 아니다.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보여주고 가르쳐주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은 벌이 아니다.

부모가 느긋하고 편안하게 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아이도 기다리는 것을 ‘짜증 나고 지루한 시간’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몇 가지 팁을 주자면, 기다리는 장소가 자동차 안과 같이 다른 사람이 없는 곳이라면 부모의 어릴 적 이야기, 아이의 어릴 적 이야기, 동요 부르기, 끝말잇기 등을 할 수 있다.

좀 더 조용히 노는 방법으로는 말 참기 놀이와 눈(目)싸움, 눈빛이나 표정으로 말하기, 손가락 놀이도 있다.

떠들 수 없는 곳이라면 조용함 속에서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있어 보게 한다.

가만히 주변 사물이나 사람을 관찰하고, 하늘도 보고 발밑도 보고 공기도 느끼면서 기다려보게 한다.

아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부모가 편안한 표정으로 그런 장소에서 그렇게 기다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면 아이도 그냥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 줄 안다.

눈에 익고 몸에 배기 때문이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진실로 아이들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게 하고 싶다면 부모뿐 아니라 모든 어른이 필요 이상으로 스마트폰을 쥐고 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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